Robin Dunbar. 2021. Friends: Understanding the Power of Our Most Important Relationships. Little, Brown. 359 pages.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한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 유지시키는 요인은 무엇인지, 최대 몇명까지 친구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 친구관계 맺기에서 남녀의 차이는 무엇인지, 등의 의문에 대해 저자의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설명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 맺기는 도구적 목적에 한정되지 않는다. 타인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건강한 삶을 위해 필수적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없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발생하며 병에 쉽게 걸리고 일찍 죽는다.
침팬지는 깨어있는 시간의 거의 5분의 1을 다른 침팬지의 털을 골라주는 일 grooming 에 사용한다. 다른 침팬지의 털을 골라주는 일은, 단순히 위생적인 목적을 넘어,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수단이다. 인간 역시 타인과 관계 맺는 일과 연관된 활동에 깨어있는 시간의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협동을 통해 생존의 경쟁력 fitness 를 높이는 것이다. 자신이 위험에 처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평소 친밀한 관계를 맺은 타인은 기꺼이 자신을 도와주는 반면, 친밀하지 않은 타인은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과 친밀한 관계의 사람, 즉 친구와 함께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진화적 필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람들은 즐거움을 주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친밀한 사람과 관계 맺기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다.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일은 인지적으로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다른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사물을 상대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인지 능력이 필요하며 높은 자원 소모를 수반한다. 타인과 적절히 상호작용을 하려면 상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theory of mind). 상대가 나에게 왜 저렇게 하는지, 상대의 행위에 대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적절한지,나의 행위에 대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이 상황에서 상대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등등을 모두 추론하는 일은 고도의 인지 활동이다. 인간은 최대 다섯명까지 타인의 마음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다.셰익스피어의 희곡이나 유명한 소설에서 동시에 다섯명의 생각이 함께 다루어지는 것을 종종 본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은 5살 때부터 시작해 20대 초반까지 서서히 발달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사람의 생각을 동시에 읽을 수 있으며, 타인의 생각를 복잡하게 추론하는 능력과, 자신의 충동적 사고와 행위를 제어하는 능력도 발달한다. 20대 중반을 넘으면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이 더 이상 크게 진전되지 않으며, 타인과 상호작용을 할 때 크게 머리를 쓰지 않고도 어느 정도 타인의 마음을 읽으면서 사회활동을 영위한다. 성장기에 또래들과 학교 혹은 놀이를 통해 집단 활동을 하면서, 타인의 마음을 읽는 기술과 자신의 충동적 반응을 제어하는 기술을 익힌다. 이러한 기술을 웬만큼 익히지 못하면 사회생활이 어렵다. 사이코 패스나 자폐증 환자는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추측하지 못하거나 타인의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원만한 사회관계를 영위하지 못한다.
인간의 인지적 능력의 한계 때문에,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는 수는 제한되어 있다. 상대와 공감 simpathy을 주고 받는 최대 숫자는 15 명이며, 최대 150명까지의 사람들과 비익명적인 관계, 즉 상대가 누구인지를 인지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사람들의 전화통화 기록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회관계에 쏟는 시간의 40%를 5명과 하며, 15명의 사람들과 전체 시간의 60%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범위가 좁은 이유는 인간의 인지적 자원 및 시간의 한계 때문이다.
친밀한 관계는 크게 두 종류, 즉 가족과 친구 관계로 나뉘는데, 두 관계는 성격이 다르다. 대체로 가족 관계가 친구 관계보다 더 친밀하다. 가족 관계의 유지를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투입하여 관리하지 않아도 되며, 갈등이 발생하여 일시적으로 소원해져도 다시 복원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친구 관계는 지속적으로 시간과 관심을 투입하여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소원해지며, 일단 멀어지면 다시 가까워지기 어렵다.
유사한 특성의 사람들은 우연히 만났을 때 서로 친구 관계를 맺기 쉽다. 다음 일곱가지의 차원 각각이 관계의 친밀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유사한 언어/방언을 구사하는가, 같은 지역에서 성장했는가, 같은 교육과 직업 경험을 가지고 있는가(특히 의사와 변호사는 각각 그들끼리 노는 성향이 강하다), 유사한 취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세계관(도덕적 가치관, 종교,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음악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가, 유사한 유머감각을 가지고 있는가. 이 일곱가지 차원 중 유사한 부분이 많을 수록 친구를 맺을 가능성이 높다.
여성은 남성보다 친밀한 친구를 가진 경우가 더 많으며 관계가 더 깊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친밀한 관계의 70~80%는 동성 친구이다. 친밀한 관계의 성격에 남녀간 차이가 있다. 여성은 주로 대화와 잦은 접촉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제인 반면, 남성은 함께 참여하는 활동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즉 남성은 같이 운동을 하고, 같이 술을 마시고, 같이 일을 하고, 등 활동을 함께하면서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여성은 함께 참여하는 활동에 더하여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데 핵심이다. 반면 친한 남성들간에는 함께 활동을 하는 동안 서로 대화를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여성은 친한 친구와 헤어지면 다른 사람이 그를 대체하지 못하는 반면, 남성은 친한 친구와 헤어져도 집단활동에 참여하는 다른 사람이 그를 대치할 수 있다.
친밀한 관계는 직접 만나서 감정을 교환하는 것이 관계 유지의 핵심이기 때문에, 온라인 접촉이 대면 접촉을 대치하지 못한다. 전화나 SNS 등의 온라인 접촉은 오프라인 관계를 관리하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상대의 눈을 보며, 상대와 함께 웅직이는 것에서 사람들은 감정적 만족을 느낀다. 서로 큰 소리로 웃고, 함께 노래하고, 함께 춤을 추고, 단체로 행진을 하고, 등등 리듬을 맞추어 함께 행위를 하는 가운데 공감, 상호 신뢰, 집단 결속감을 느낀다. 전통적으로 모든 사회가 이러한 함께 하는 활동을 주기적으로 갖는 것은 집단의 생존을 위하여 필수적이다.
저자는 전문 연구자이며, 책 내용의 대부분을 구체적인 연구 결과의 인용으로 채우고 있다. 전반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수많은 연구 결과에 대한 설명을 세세히 따라가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가 제시하는 사회적 두뇌 가설 (social brain hypothesis), 즉 인간의 두뇌가 발달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집단생활에 소요되는 고도의 인지 활동 때문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크다.
'과일나무 > 체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폭력성은 어디서 오는가 (0) | 2023.10.01 |
---|---|
어떻게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일까 (0) | 2023.09.27 |
왜 대부분의 회사는 망하는가 (0) | 2023.09.16 |
인류는 분명히 진보하고 있다 (0) | 2023.09.14 |
사람들의 정치 성향은 어떻게 결정되나 (0) | 2023.09.08 |
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각자의 세계 속에 몰입해 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눈이 어두운 노인이거나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사실 스마트폰을 산지 얼마 안되었기에 사용법을 익히고 새로운 앱을 시험해 보느라 바쁜 것은 이해한다. 나는 전철을 타면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맞은편에 앉은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무슨 재미로 살까, 어떤 고민을 안고 헤메고 있나, 어떻게 저런 표정의 얼굴이 만들어졌을까,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저사람은 과연 어떤 희망을 가졌을까, 여자는 남자와 어떻게 다를까, 등등 사람을 보면서 이모저모로 관찰하노라면 연민의 정이 느껴지고, 호기심이 피어오르고, 덧없다는 느낌도 들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페이스북 계정을 처음 만들면, 알만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추천해 주어 친구를 맺게 한다. 오랫 동안 소식을 몰랐던 사람을 새삼 발견하고 신기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 상의 접촉은 실제 대면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연락을 취하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의 관계가 피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친구 초청에도 응하지 않고 아예 들어가 보지도 않는다. 내 페이스 북 계정에는 친구가 한명도 없다.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자주 휴대전화를 열어보고 이메일을 체크하는 것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든다. 누군가 찾아주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지만, 막상 상대와 접촉하면 왠지 불편해지는 것이 요즈음 사람의 심사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사람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개인주의적으로 된 것이다. 집단의 압력에 구속되던 상태에서 해방된 것까지는 좋은데, 의미있게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각자 자신의 틀을 지키면 서로 접촉하기가 조심스럽다. 상대가 쉽게 접근해 오면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 튀기고 싶은 변덕이 발동한다. 내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고 싶건만 막상 상대를 마주치면 왠지 상대의 못난 구석이 먼저 눈에 띠어 물러서 버리곤 한다. 나도 상대에게 그렇게 보일 것임을 알고, 나 자신이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각자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자신에게 충실하면 의미있는 무엇을 발견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 속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삶의 울림을 찾지 못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으라는 조언은 그릇되다. 아무래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가장 감동을 받을 때는 남과의 연결 속에서 무엇을 할 때이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이 그렇게 많은 접속건수를 기록하지만 그것이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대면 관계를 대치하지는 못한다. 인터넷에 시간을 많이 쏟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둘 간에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외로운 사람이 인터넷에 더 몰두하기는 할 것이다. 인터넷을 많이 들여다보다 인터넷 세상으로 빠져든다는 환상은 매트릭스나 아바타와 같은 영화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세컨드 라이프라는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속의 대리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아직 인간의 진화 수준은 인터넷 가상 세계에서보다는 물리적으로 대면하는 관계 속의 삶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동굴에서 나와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서로에게 구속되는 것을, 또한 상대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각자의 동굴 속에 머물러 있다. 인터넷이라는 제한된 통로를 통해 상대와 접하려고 하나,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별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 사회에 외로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으며 그들에게 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직업이 번성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혼자만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물질적인 여유가 있는 선진국 사람들은 외로움이라는 비용을 비싸게 치른다. 가난한 나라에서라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항시 남과 부대껴야 하니 부자나라의 개인주의적 삶에는 양면성이 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면 그래도 선진국 사람의 개인주의적이며 외로운 삶이 집단의 압력에 이리저리 밀치면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나는 도저히 뗄 수없는 끈끈한 관계나 함께 망가져본 경험이 있는 허물없는 사이가 한편으로는 부럽지만 썩 내키지는 않는다. 일생 함께 점심을 같이해야 하는 직장 동료라는 말은 나에게 구속으로 다가올 뿐이다.
관계 맺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니. 선진국 사람과 같이 제한적으로 또 계약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결코 그 관계가 편안해 질 수 없다. 하긴 나도 그리 관계 맺는 데 능한 사람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내식으로 살아가는 개인주의적인 삶이 편하기는 하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끊임없이 남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나도 마음속 구석에 사람들과 관계 맺고자 하는 갈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게다. 나도 따지고 보면 외로움에 절은 사람이다.
'세계의 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지한 연애는 사절합니다. (0) | 2012.09.04 |
---|---|
일하지 않는 중년 남성들은 어떻게 지낼까? (0) | 2012.08.24 |
여성이 남성처럼 일하면 삶이 어떻게 바뀔까? (0) | 2012.04.08 |
종교가 없는 사람은 대체 무엇에 의지하여 살까? (1) | 2012.03.24 |
핵 에너지에 대한 생각 (2) | 2012.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