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heng Huang. 2023.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How Exam, Autocracy, Stability, and Technology brought China success, and why they might lead to its decline. Yale University Press. 353 pages.
저자는 정치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15세기까지 서구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던 중국 문명이 이후 왜 서구에 뒤지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이론적 및 경험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은 서기 600년경 수나라에서 과거가 도입된 이후, 사회의 모든 인적 자원과 이념적 자원이, 오로지 유교 지식만을 테스트하는 과거를 통해 국가 관료가 되는 길 하나로 집중되면서 다양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기술 발전, 경제 발전, 정치 발전의 동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서구가 16세기 이래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 세계가 여러 나라로 잘게 쪼개져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였기 때문이라고,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주장한다. 여러 나라들이 경쟁하는 유럽 세계에서 어느 나라의 군주도 자신의 독단적인 변덕과 억압때문에 기술발전이 뒤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이웃나라를 앞설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유럽 전체적으로 과학 기술이 상승 발전할 수 있었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권위체로 일찌감치 통일되었기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쟁적으로 장려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15세기 명나라 때에는 군주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해상 무역을 금지하고 먼바다를 항해하는 선박 건조를 금지함으로서 기술의 맥이 끊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중국 정부는 상공업을 천대한 반면 지주와 관료를 우대했기 때문에, 상공업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의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나라가 멸망한 뒤 350년간의 혼란을 수습하고, 서기 600년경 수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이래, 중국은 현재까지 대체로 계속하여 하나의 나라로서 통일을 유지해 왔다. 수나라는 과거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과거제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하는 '성과주의 체제' meritocracy 를 구현하였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귀족과 군벌이 왕과 권력을 분점하고 통치에 참여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객관적인 시험인 과거를 통해 선발된 관료가 왕의 권한 위임을 받아 통치를 담당하였다. 과거를 통해 선발된 많은 유능한 관료들은 국가의 권력이 국민의 생활 전반에 침투하는 매우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국가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는 서구 유럽의 국가 역량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한적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전체적으로 왕의 감독하에 치러지는 과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집행되었다. 이중 블라인드 처리를 하여 시험 응시자의 가족 배경이 선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과거제도는 전국의 모든 인적 자원과 이념적 자원을 이것 하나에 전적으로 집중시켰으므로, 다른 사상이나 다른 경력이 존재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전국의 모든 인재들은 오로지 과거의 시험 과목, 즉 유교의 경전을 익히는데 어린시절부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였다. 중국이 오랜 동안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통일을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과거제에 있다. 과거제는 가족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객관적인 시험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었으므로, 웬만한 지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과거를 준비하고, 과거에 붙으면 그것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오랫동안 과거를 준비할려면 생산 활동에 종사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은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지주 계층이 주를 이루었다. 상공인들도 어느 정도 재력을 모으면, 자식에게 자신의 가업을 잇게하기보다, 과거 준비에 몰두하게 했기 때문에, 상공업 자본의 축적이나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요컨대 과거제도는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체제를 오랫동안 안정되게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전을 막고 경제적 및 정치적 발전의 동력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경제사학자들은 중국이 서구보다 기술이 뒤떨어지게 된 시기를 대체로 1500년경 명나라 때로 지적한다. 특히 명나라때 정화의 대원정 이후 왕의 명령으로 해외 무역을 금하고 먼바다를 나가는 배를 짓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중국이 기술발전의 대열에서 벗어난 상징적 사건으로 종종 언급한다. 그러나 저자가 중국의 10,000건이 넘는 발명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경험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기술 개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서기 600년 수나라 때 무렵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역사에서 기술발전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 춘추전국시대라 일컬어지는 혼란기와, 한나라가 망하고 수나라가 통일하기 이전 위진 남북조 시대라 일컷는 혼란기였다. 이 두시기에 여러 나라가 경쟁하는 분열의 양상이 펼쳐졌는데, 이는 유럽에서 여러 나라가 분열해 경쟁하던 상황과 흡사하다. 이 시기에 유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이 경쟁하였으며, 정부의 이념에서도 여러 사상이 혼합되고 교차하였다. 이 시기를 "백가쟁명의 시대"라 지칭하는데, 이렇게 생각과 행동의 다양성이 허용되는 환경에서 새로운 발명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다. 반면 국가의 이념이 유교로 제한되고, 과거제도로 모든 인재들이 쏠리던 송나라 이후에는 발명의 건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중국은 1970년대 중반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개혁의 시기를 맞았다.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가 허용되고, 국유기업의 사유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고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개혁파가 제거되고 보수파가 실권을 잡으면서, 이전 시기의 개혁적 조치들은 취소되거나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개혁의 모멘텀은 계속 유지되었으며, 경제성장을 정권의 정당성으로 삼는 기조는 이어졌다. 각 지방 정부는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개발을 추진하면서, 경제성장의 성과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성과주의 원칙 meritocratic principle 이 지배하였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체제이지만, 과거 모든 권력을 한 사람이 독점하여 무모한 정책을 밀어붙여 중국을 위기에 빠뜨린 모택동 시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등소평 시대 이래 권력을 여러 지위로 분산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당서기, 수상, 군 총사령관, 원로회의, 등으로 최고의 권력이 분산되어,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되었다. 또한 당서기의 임기를 최대 10년까지로 하여, 두차례에 걸쳐 평화적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앙의 권력을 여러 지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는 관행은 1989년 보수파가 실권을 잡으면서 부분적으로 깨어졌다.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한 이래 모든 최고위 자리를 그가 겸직하여 독점하거나 폐지하면서 일인이 권력을 전적으로 독점하는 체제로 다시 돌아갔다. 시진핑은 2018년 헌법을 개정하여 당서기의 임기 제한을 없앰으로서, 등소평 시대 이래 권력을 제한하는 취지의 개혁적 조치는 완전히 무위로 돌아갔다.
시진핑은 중국에서 다양성을 제거하는 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하였다. 홍콩의 독립 체제를 무너뜨리고, 시지핑 일인의 개인 숭배 이념을 주입하고, 시진핑의 독재 권력에 위협이 되는 잠재적 경쟁자를 부패 처단을 명분으로 숙청하고, 언론과 미디어의 통제를 강화하고, 민간 기업을 국가의 통제권 하에 두고, 성공한 기업가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등으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진핑의 정책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새로운 기술 발전을 억압하고,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결국 체제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시진핑은, 과거 명나라 시대에 철저하게 유교 이념으로 무장하여 다양성을 죽이고, 국가의 명령으로 기술 발전을 가로막던, 그런 길로 중국을 몰아가고 있다. 시진핑이 이끄는, 다양성이 사라진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과거 정체되고 폐쇄된 중국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서구에 의해 몰락했듯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무장된 서구와의 대결에서 중국이 또다시 패배할 위험을 안고 있다.
저자는 과거 중국의 역사로 부터 얻은 교훈으로 현재의 체제를 들여다보는 흥미있는 사고 실험을 한다. 과거제도에 대한 논의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논의는 연결되기는 하지만 구분된 논의이다. 그의 분석은 과거제도에 대한 논의에서 더 설득력이 있다. 시진핑 체제가 그의 예상과 같이 위기에 빠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서술하는 것은 흥미를 북돋우기는 하지만, 논의의 중복이 매우 많다. 경쟁과 다양성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나아가 경제성장을 낳는다는 그의 지적은 설득력이 크다. 서구가 앞서게 된 원인을 서구가 아닌 중국, 특히 과거제도에서 찾는 그의 분석은 흥미롭고 한국의 과거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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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on Acemoglu and Simon Johnson. 2023. Power and Progress: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Public Affairs. 422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경영학자이며, 이 책은 역사적으로 기술발전의 방향에 대해 검토하고, 특히 근래에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 발전이 내포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기술 발달이 노동자의 삶에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농업기술이 발달하면서 농업의 생산성이 높아졌지만, 높아진 생산성의 과실을 권력자들이 독차지 했을뿐, 농민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19세기 초반까지 산업혁명을 통해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지만, 공장 노동자의 삶은 나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더욱 비참해졌다. 기술 개발의 주도권을 자본가들이 쥐고 있었기에, 새로운 기술을 통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 통제를 강화하여 노동자의 노동력을 더욱 착취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하였다. 기술 발전에 대한 비젼에 노동자의 삶의 향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성이 향상되면, 소득이 높아지고, 수요가 증가하여, 노동자의 임금이 올라가고, 기술발전의 혜택이 전계층에게 널리 퍼진다는 주류 경제학의 전형적인 발전모델 (productivity bandwagon effect)은 실제 현실과 맞지 않는다.
사회는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데, 19세기 중반까지 기술 발전은 노동 친화적이지 않았다. 19세기 후반 도시 공장의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에 대항하는 세력을 형성하면서 노동조건과 임금이 향상되기 시작했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항하는 세력화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2차대전후 1970년대까지 미국을 포함한 서구사회는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하였는데, 이 기간 동안 모든 계층에게 고루 혜택이 돌아갔다. 일반 노동자에게까지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고루 돌아간데에는, 1930년대 뉴딜정책의 영향과 전쟁후 관대한 복지정책이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의 반노동정책과,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하는 산업구조조정은, 노동자의 힘을 크게 약화시킨 반면 대기업 집중을 심화시켰다. 이 시기 이래 노동자의 소득은 정체하거나 감소한 반면, 고급 기술을 보유한 엘리트들에게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집중되었다.
1990년대 이래 정보기술의 발달은 소수의 대기업에 산업이 집중되고 엘리트들이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독점하는 경향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정보 기술의 발전 방향은 일반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자동화와 노동 통제에 맞추어졌으며, 데이터의 중앙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 현재와 같이 기계가 노동자를 대치하는 방향이 아니라, 노동자가 기계를 이용하여 업무 능력을 향상시키고 다양한 새로운 연관 업무가 생겨나는 방향으로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 소수의 엘리트들이 기술 발전 방향을 일방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에 일반 노동자의 이해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는데, 기술 발전에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세금이나 규제를 동원한 정부의 개입 및 노동자의 세력화를 통해, 노동 친화적인 방향으로 기술 발전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사회가 기술 발전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거나, 노동 친화적인 기술 발전에 대한 그들의 아이디어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고, 그들이 제시하는 대응 방안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역사적인 검토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서구에서 노동자의 임금 향상과 복지제도의 발전은, 그들의 지적과 같이 노동자들의 정치 세력화의 결과였다. 물론 앞으로도 노동자의 힘이 반영된 정치적 개입이 정보기술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저자는 why nations fail 이라는 좋은 책을 썼기에 기대를 갖고 읽었는데, 이 책에서는 서술하는 내용의 깊이가 얕아 읽는 내내 의아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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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essen. 2015. Learning by Doing: the Real connection between innovation, wages, and wealth. Yale University Press. 227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개발되는지, 근래에 왜 임금격차가 확대되는지,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해야 할지에 관해 서술한다.
새로운 기술은 소수의 엘리트 발명가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기술을 적용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험 속에 체화된 실용적 기술을 통해 발전한다. 기술 혁신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는 시행착오와 개량을 통해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이루어진다. 처음 아이디어를 만든 발명가를 칭송하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제 쓸모가 있는 기술로 구체화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점진적 개량 노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현장 경험을 통해 익힌 (on-the-job) 실용 기술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기계나 기술이라도 제대로 성능을 내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영국이 개발한 면직 기계를 일본과 중국에 수출했을 때, 영국의 기술자가 함께 따라왔음에도, 이 기계를 활용한 생산성에서 일본과 중국은 영국의 수준에 훨씬 못미쳤다. 일반 노동자들이 보유한 실용 기술은 엔지니어의 추상적 기술 못지 않게 생산성을 내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특정 분야에서 기술의 변화가 빠르며 아직 표준화가 되지 않은 초기 발전단계에는, 노동자들이 실용적 현장 기술을 배우는 것을 꺼린다. 이 단계에는 보편적 아이디어를 보유한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반면 기술이 성숙하여 표준화가 된 단계에서는 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관련 기술을 배워 생산성 향상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에 임금도 올라간다. 즉 기술이 아직 유동적인 단계에서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엘리뜨 엔지니어에 머물 뿐 일반 노동자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 1980년대 이래 정보통신기술은 아직 표준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관련 기술이 일반 노동자들에게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일반 노동자와 엘리뜨 엔지니어 간의 소득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현재 미국의 노동시장은 현장에 필요한 실용적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많으나 이러한 중간 수준의 기술을 갖춘 노동자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신기술로 인한 소득 불평등 확대를 줄이려면, 일반 노동자들이 신기술과 관련된 구체적 실용 기술을 익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전문대학의 기술 교육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국민의 4년제 대학교육을 장려하고, 대학의 고급 연구활동에 재정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방향이 잘 못 되었다.
새로운 기술 개발을 촉진하려면 기술의 공유를 장려해야 한다. 성숙한 단계에 도달한 기술은 지적재산권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유동적인 초기 단계의 기술에 대해 특허를 남발할 경우, 기술 개발을 방해하게 된다. 특허권을 엄격히 보호하는 정책은 표준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에게 유리하기에, 지금까지 미국의 특허 정책은 특허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해 왔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start-up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이다. 표준화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불확실한 기술의 경우, 특허권으로 보호하지 않아도 모방을 통해 이익을 거두기 어려운 반면, 서로 모방하면서 기술을 향상시키는 상승 효과가 더 크다.
미국의 20세기 주요 기술의 개발과정을 보면, 정부의 군사 용도의 기술 개발이 민간에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 TV, 컴퓨터, 인터넷, GPS, AI, 등 대부분의 핵심 기술은 군사용도의 기술 성과를 민간에서 받아 개량하면서 이루어졌다. 정부가 군사용도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면서 참여 기관과 연구자들 사이에 기술 공유를 적극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연구의 효율이 매우 높았다. 개별 기업은 자신의 연구 과정과 성과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관련 연구자 공동체의 집단적 협력을 기대할 수없다. 근래에 미국의 군사 목적의 연구는 배타적 비밀주의를 엄격히 강요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높은 연구 효율과 민간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이 유럽보다 기술 개발이 활발한 것은, 기술과 기술자에 대한 사회전반의 우호적 분위기와 함께, 기술 기득권자를 보호하는 정도가 유럽보다 덜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 개량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 진다. 기술 개발은 소수의 엘리뜨 엔지니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일에 참여하면서 배우고 개량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기술은 발전한다.
이책은 저자의 과거 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이 실제 어떻게 쓰이고 개발되는지 이야기 한다. 학자가 쓴 글과 달리 이론적 논의보다는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신 기술 개발이라는 것이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저자는 실제 적용하면서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기술발전에 관한 기존의 이야기는 대체로 신화일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기술 개발은 엘리뜨 이론가나 골방의 발명가의 업적만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평이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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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el Mokyr. 1990. The Lever of Riches: Technological creativity and economic progress. Oxford. 304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이다. 이 책은 인류의 기술 발전의 역사를 조감하고, 왜 어떤 사회에서 어떤 시기에는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는데, 다른 사회의 다른 시기에는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설명한다. 책의 전반부는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기를 지나, 19세기를 산업 발전기를 거쳐 1914년까지 각 시기별로 에너지, 재료, 운송수단 등의 분야에 집중하여 기술 발전의 역사를 기술한다. 책의 후반부는 기술 발전의 사회적 메카니즘을 설명하는데 할당한다.
어떤 요인이 기술발전을 이끄는가? 자연자원, 임금수준, 경로의존, 종교, 가치관, 소유권 보호 제도,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개방성, 혁신에 대한 반발, 국가와 정치, 인구 증가, 등의 요인을 차례 차례 검토한다. 이러한 요인들이 기술 발전에 기여 요인이기는 하지만, 어느 한 요인도 외생적 사건인 신기술 출현을 이끈 결정적 요인은 아니다.
중국은 600~1200년대 당송 시대만 해도 기술 발전이 매우 활발하였으며 서구를 수백년 앞섰다. 그러나 1300년대에 명나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미 존재하던 기술도 퇴보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지 않는 기술 정체 상태를 오래동안 지속했다. 반면 서구는 1300년대 르네상스, 1400년대 발견의 시대, 1500년대 종교개혁, 등을 거치면서 그리스 로마 헬레니즘 시대의 지식을 되살리고, 중국과 이슬람으로부터 기술을 배워오고, 마침내 1700년대 중반 산업혁명을 통해 비약적 기술 발전과 경제 성장의 길을 걸으며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다.
왜 어떤 사회에서 기술이 발전하는지 설명하려면 두가지 요인을 동시에 검토해야 한다.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기여하는 긍정적 요인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막는 부정적 요인이다. 모든 사회는 전통과 이에 기반한 기득이권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방법은 이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면 손해를 보기때문에,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 한다. 새로운 기술로 이익을 보는 사람 winner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반면, 손해를 보는 사람 loser 은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을 저지하는 조직적인 세력을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기술 혁신의 관건이다.
왜 중국은 정체된 반면, 서구는 계속 발전했을까? 두가지 요인을 핵심으로 든다. 첫째는 물질주의적 실용주의 materialistic pragmatism 세계관이다. 자연을 통제함으로서 물질적 풍요를 높일 수있으며,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목적에서 지식을 접근하는 관점이다. 이는 도덕적 가치, 미적 가치, 지적 가치, 종교적 가치를 삶과 지식에서 우선시하는 세계관과 대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럽은 다른 사회와 달리 물질적 실용주의가 정착하게 되었을까? 유럽에서도 중세까지 기독교 신앙은 금욕과 세속 부정의 교리를 설파했다. 그러나 근세로 오면서 기독교의 교리는 변하였다.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하느님의 영광을 실현하는 행위로 보는 기독교 교리가 세속적 경제활동과 결합하면서, 물질주의적 실용주의가 정착하였다. 반면 인도의 힌두교, 중국의 불교와 유교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거부하였으므로, 인간의 복리를 높이기 위한 자연의 물리적 탐구와 기술적 조작이 권장되지 않았다.
둘째는 유럽의 다원주의적 사회이다. 유럽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으며 서로 간 경쟁관계에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한 나라에서 억압을 받더라도 이웃 나라로 도피하여 뜻을 펼수 있기에 기존의 방식과 다른 것에 대한 억압이 철저할 수없었다. 유럽은 중국과 달리 새로운 것이 숨쉴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 열려 있었다. 물론 여러나라로 분열되어 있으면 갈등과 전쟁의 비용이 엄청날 수있지만, 유럽은 전체로 볼 때 다원주의의 이익이 피해보다 더 컸다.
세번째 요인은, 왜 유럽에서도 영국이 먼저 산업 혁명에 착수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요인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주도한 발명가 기술자들은 중류층 출신인데, 이들이 대륙의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많았다. 프랑스는 귀족과 빈농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한 반면, 영국은 1688년 명예혁명 이후 중류층 상공인들이 증가했는데, 이들이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영국의 정치 지배층은 지주들이었는데, 이들은 기술발전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집단이 아니었으므로 새로운 기술이 발전하여 기존의 방식을 뒤업고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영국의 지주들은 상공인으로 탈바꿈하면서 기술혁신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의 이익을 보았으므로, 새로운 기술 도입에 대한 노동자들의 반발을 억압하였다. 반면 중국에서는 지주와 관료를 중심으로 한 지배층이 상공업 계층이 기술발전을 통해 부를 쌓아 힘을 축적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주와 관료 계층은 기존 질서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기술 발전의 싹을 엄격히 틀어 막았다. 사실 영국과 서구에서도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반발과 억압하려는 노력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서구는 중국과 달리 기술 발전을 틀어막는데 실패했다.
네번째 요인은, 영국의 기술발전은 민간이 주도하여 이루어졌으며 시장 경쟁이 기술발전을 이끈 동력이었다. 반면 중국은 고대부터 국가가 큰 사업을 주도하고 기술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회였다. 중국에서 민간의 사업은 국가의 보호아래 독점적 사업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중국에서는 지배층 특히 통치자의 의지에 따라 기술 개발이 억압되었다.
기술 혁신의 선두에 선 나라가 그런 다이나믹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는 없다 (Caldwell's Law). 기술 발전의 선두에 섰던 영국은 1800년대 후반으로 오면서 독일과 미국에 기술 개발의 기수 지위를 넘겨주고 국력이 쪼그라 들었다. 기술 발전이 계속되지 않으면 생산성이 향상되지 않기에 부가 확대될 수 없다. 기술 혁신이 오랫동안 계속 지속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서 기존의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점차 몰아내고 자신들이 기득권층으로 올라서게 되는데, 이들은 다음 세대의 새로운 기술 발전을 저지하는 세력이 되기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개발에서 뒤쳐져 있던 나라가 선두에 선 나라들을 모방하고 따라잡으면서 선두 자리를 대체한다. 서구 전체로 보면 산업기술의 발전이 영국에서 시작되어, 대륙과 미국으로 이전되면서 지금까지 서구가 세계 다른 지역에 앞서 기술 발전의 선두를 계속 유지한 것이 지난 300년간의 역사이다. 서구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기술 발전의 동력을 계속 유지시킨 것이다. 현재 미국이 기술 발전에서 가장 앞서 있는데, 후발국인 중국이 일부 기술 분야에서 서구를 따라잡고 앞서는 현상이 관찰된다. 앞으로 서구가 서구이외의 지역에 의해 따라잡히고 뒤로 물러나게 될지는 미지수이다.
기술 발전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요약하자면, 사회의 다양성과 개방성이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는데 기여하였으며, 신기술에 대한 반발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사회가 다양성을 잃거나 폐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면 기술 발전은 정체하게 된다. 서구 사회는 여러 나라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다양성과 개방성을 계속 유지했기에 세계의 다른 지역과 달리 기술이 계속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서구의 기술발전을 연구한 최고의 전문가답게, 저자의 전문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통찰력을 제공한다. 서술이 명료하고, 주제와 관련해 밝혀진 것과 의심되는 사항을 비교하면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며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면서 몰입하게 되는 정말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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