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369)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배나무 (1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사회이동'에 해당되는 글 3건
2021. 2. 24. 17:58

Benjamin Friedman. 2005. The Moral Consequences of economic growth. Vintage books. 436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경제성장이 사회에 미친 영향을 18세기 이래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의 역사 전개를 사례로 하여 설명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가 개방적이고, 이민자와 다양성을 포용하고, 사회이동이 높으며, 공정성과 민주주의가 향상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반면, 경제가 침체 혹은 후퇴하면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로부터 멀어진다. 절대적인 경제 수준보다는 경제가 성장하는가 여부가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다. 즉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라도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되는 반면, 아무리 소득이 높은 나라라도 경제가 침체하거나 후퇴하면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먼저 자신의 과거의 상황과 비교하며, 그 다음으로 주변의 다른 사람의 상황과 비교한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면 자신의 과거와 비교하여 자신의 현재가 나을 가능성이 크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의 상황도 조만간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비록 자신의 상황의 개선 속도가 주변 사람의 개선속도보다 느리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과거와 비교해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 상황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게 되면, 사회적으로 개방성과 포용성이 높아지며, 사회이동의 가능성이 높아지며, 공정성과 민주주의도 향상되게 된다(movements toward openess, tolerance, mobility, fairness, democracy). 반면 경제가 침체하면 자신의 상황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리버럴한 가치에 대해 등을 돌린다.

미국이 1960년대에 민권운동으로 흑인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고, 이후 여성운동으로 여성의 지위가 크게 향상된데에는 이차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꾸준한 경제성장이 배경 요인이다. 1970년대 중반이래 경제가 어려워지고, 1980년대 구조조정의 기간에 노동자의 소득이 정체되고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흑인의 지위 향상은 중단되었으며, 이민을 통제하는 조치가 등장하고,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게 되었다. 1870년대에 큰 불황을 겪으면서 일시적으로 농민을 중심으로 대중영합주의가 세력을 얻고 인종차별이 심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19세기 말에 미국 사회의 전반적 개혁을 추진한 진보주의 progressivism 사회운동이 발흥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볼 때 19세기의 경제성장과 중류층의 부상 덕분이다.

영국은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이래 19세기 전기간 동안 경제가 꾸준히 팽창하는 것을 배경으로 하여 1880년대 이래 자유무역 정책을 추진했으며, 투표권을 꾸준히 확대하였다. 영국과 프랑스는 1930년대의 대공황 기간 동안 배타적인 민족주의 세력이 활개를 쳤으며, 독일은 1차대전 이후의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배경으로 나찌의 파시즘이 득세하였다.

근래에 선진국에서 경제가 침체하면서 사회적 불만이 높아지고 정치가 불안정해지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자식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면, 사람들이 리버럴한 가치에 등을 돌리게 된다. 약자에게 권리와 혜택을 나누어주는 것에 인색해지며,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데 더 신경을 곤두세운다.

이 책은 지난 200년 동안의 서구의 경제 사회의 변화를 주마간산으로 훑으면서 사회과학에서 논의하는 주요 주제들을 거의다 건드린다. 저자는 소득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정치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꾸준한 경제성장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경제성장과 사회적 리버럴리즘 사이에 인과적 관계가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전반적으로 당연한듯 보이지만, 엄밀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예외를 많이 발견한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시대에 뉴딜 정책을 통해 리버럴한 정책이 많이 도입된 것이 대표적인 예외이다. 이는 사회 현상이 하나의 법칙으로 포괄할 수 없이 복잡하다는 의미이거나, 혹은 저자의 명제가 맞지 않다는 의미일 수 있다. 후반으로 갈수록 같은 이야기를 여러번 반복하고, 문장이 장황하여 읽기 쉽지 않았다.

2021. 2. 9. 16:24

Michael J. Sandel. 2020.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Farrar, Straus and Giroux. 227 pages.

저자는 사회철학자로, 이 책은 미국 사회에서 성과주의 혹은 업적주의(meritorcracy)가 지배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한다. 성과주의 혹은 업적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이 주어지는 사회원칙을 의미한다. 이러한 원칙이 지배할 때, 상위의 지위를 차지한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상위 지위를 얻었다는 자긍심을 갖고 사는 반면, 하위 지위의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이 모자라서 어렵게 산다고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다. 성과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패배한 사람을 낮추어보는(condescend) 반면, 패배한 사람은 수치심과 함께 승리자에 대해 불만과 분노에 가득차게 된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고, 영국에서 유럽탈퇴 결정이 이루어진 배경에는 이들, 성과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의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의 시장 경쟁력은 높아졌으며 소득이 크게 증가한 반면,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은 좋은 일자리를 잃고 열악한 서비스 일자리만 남은 처지에 빠졌다. 지난 사십년 동안 미국의 경제는 잘 나갔는데, 상위소득자의 소득은 현저히 증가한 반면, 중하위 소득자의 소득은 정체되었다. 그 결과 소득 불평등은 높아졌다.

근래로 올수록 대학 졸업장이 경쟁에서 승리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 되었다. 문제는 미국 성인의 3분의 1만이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3분의 2의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를 접하면서 어떤 감정을 가질지 미국의 엘리트들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엘리트들은 이들에게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가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낮은 지위의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를 더 쓰라리게 하고 분통을 살뿐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라도 성공할 수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은 이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위안이 되지 않는다. 미국은 서구 유럽과 비교하여 사회이동이 덜 활발한 사회이므로,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의 이념은 더 많은 미국인을 좌절에 빠뜨린다.

미국의 대학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 필수적 경로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대학 교육은 지위 상승이동의 경로가 되지 못한다. 우수한 대학의 학생 중 상위층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우수한 대학은 사실상 상위층의 지위 대물림의 수단이 되었다. 상위층 자녀는 대학 준비과정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SAT 성적은 부모의 소득 수준과 비례한다.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은 지난 사십년간 갈수록 치열해졌다.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는 경쟁에 몰려 젊은이들의 정신과 인생이 좀먹는 정도에 이르렀다.

요컨대 성과주의가 심해지면서 미국의 정치는 파행에 빠져 비민주적 대중영합주의가 득세하였으며, 많은 중하층 사람들이 좌절과 분노에서 자기파괴적 행위를 하며, 중상층 젊은이들도 경쟁에 치여서 전인적인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어떻게 성과주의의 폐해를 막을 것인가?

저자는 우선 우수한 대학의 대학입시 방식의 개혁을 제안한다. 성과에 따라서 줄을 세워서 입학을 결정하는 방식을 버리고, 대신 일정 학업 능력을 넘어선 학생들 풀에 대해 추첨을 통해 입학을 허용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우수한 대학 졸업장을 얻는 것이 완전히 개인의 성과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개입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사실 사회적 성공이 완전히 개인의 능력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통제하지 못하는 다양한 요인이 개입되어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사회적 성공의 핵심 경로인 대학 입시에서부터 운의 작용을 개입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한다면 성과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이 이것은 완전히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만 이룬 것이라는 자긍심에서 실패한 사람을 낮추어보는 태도가 조금은 사라질 것이며, 경쟁에 실패한 사람도 이것이 자신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쓰라림이 덜 할 것이다.  

개인이 시장경쟁에서 거둔 성과가 아니라 개인이 사회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개인의 가치가 결정되도록 사회제도를 조정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분배에서의 정의'(distributive justice)에 대비되는 용어인 '기여에서의 정의'(contributive justice)라고 지칭한다. 개인이 시장경쟁에서 거둔 성과는 개인의 소득으로 귀결되는 데, 이는 그가 사회에 기여한 정도와 반드시 일치 하지는 않는다. 이 두가지가 어긋나는 경우, 이 두가지를 근접시키려는 사회적 노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금융시장에서 투기를 통해 엄청난 소득을 거둔 사람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서, 사회에 기여한 정도보다 보상을 덜 받은 사람, 예컨대 청소부나 학교 선생님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재산 소득에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대신, 노동 소득에는 세금을 면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있도록 최저한의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 준다면, 성과주의에 따른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문제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다. 아무리 능력에 따라 경쟁해서 패한다고 해도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면 패자의 쓰라림은 덜 할 것이다. 또한 승자와 패자의 보상의 간격이 크지 않다면, 즉 소득 불평등이 크지 않다면, 승자와 패자의 갈림이 덜 쓰라릴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공공재(common good)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승리와 패배에 관계없이 누리는 부분을 많이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말하지만, 사실 성과주의는 서구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이룬 동력이다. 능력과 노력을 가진 사람에게 중요한 자리를 배당하고 보상을 많이 주는 시스템은, 사회발전을 추구하는 가장 과학적 기술적 접근방식이다.과거에 신분사회, 즉 능력과 노력에 관계없이 태어난 지위에 따라 삶이 결정된 사회의 부정의와 비효율을 생각한다면 성과주의가 얼마나 우수한 체제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걱정하기 전에,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한다는 성과주의 이념이 완벽히 구현되지 않은 것을 먼저 문제삼아야 한다. 부모의 지위에 따라 자식에게 기회의 차등이 주어지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멀다. 저자가 지적하는 미국이 당면한 성과주의의 부작용이란 것은, 사실 성과주의 자체의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성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데 따른 문제이다.  

기회가 완벽히 평등하게 주어졌음에도 실패하는 사람의 좌절과 분노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이들에게 인간적으로 살만한 수준의 삶을 보장하고, 그들의 자녀에게 부모의 실패와 완전히 독립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한다면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다. 자신은 능력과 노력이 모자라 실패했더라도, 자신의 자녀가 부모의 실패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새로운 인생의 게임을 시작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결코 게임을 파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게임이 정말 공정하고 믿는다면 자신의 실패를 받아들일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식에게 새로운 공정한 게임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결코 자신에게서 게임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노동계층이 좌절하고 분노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과 함께 자신의 자녀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 반발하는 것이지, 성과주의 그자체에 반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열심히 했음에도 자신에게 돌아온 몫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빈약하다고 느낄 때, 분노한다. 게임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에는 오류가 있다. 세계화가 되면서 그들보다 더 가난한 제삼세계의 사람들이 그들만큼 열심히 살지만 그들보다 덜 가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다만 그들보다 더 열심히 산 것은 아닌 월스트리트에서 일하거나 대도시에 교육 많이 받은 사람들이 엄청난 몫을 가져가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그들의 분노의 근원이다. 불평등이 그들의 분노와 좌절의 원인이며, 지난 사십년 동안 그들의 소득이 정체한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남은 잘 나가는데 나는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만큼 사람을 좌절시키고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이 책은 저자의 강의 명성만큼 좋은 책은 아니다. 같은 말을 반복하며 논의가 답답하게 전개된다.

2020. 3. 19. 23:56

Richard V. Reeves. 2017. Dream Hoarders: How the American upper middle class is leaving everyone else in the dust, why that is a problem, and what to do about it. Brookings Institute Press. 156 pages.

저자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로 미국사회의 불평등의 핵심은 상위 20%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흔히 중상층(upper middle class)이라 칭하는데, 소득분포에서 상위 5분의 1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최상위 1%가 부를 가장 많이 독점하고 있지만, 이들 못지않게 그 바로 아래 19% 역시 지난 수십년간 미국 경제에서 소득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이들 중상층은 업적주의(meritocracy)를 지위획득의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 이들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직과 관리직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며,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엄청나게 투자하며, 성실하게 일하며, 자신을 잘 통제하며, 건강한 생활을 하고 오래살며,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현재의 지위에 올라선 사람들이다. 부부 모두 대학 졸업자로 맞벌이를 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가구소득 110,000 달러이상이다. 이들은 미국 사회의 여론 주도층으로, 사회 각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80년대 이래 상위 20%의 사람들과 이들 밑에 있는 80%의 사람들 사이에 소득 및 생활 양식에서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두 집단 사이에 세대간 사회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 최상위 1%의 사람과 바로 밑에 19%의 사람들 사이에는 교류가 활발하다. 최상위 1%의 사람은 바로 밑 19%의 사람들 중 운좋은 사람들이 올라서며, 서로 간에 들고 나는 사례가 많다. 반면 상위 20%와 그 밑에 80% 사이에는 들고 나는 사례가 적다.

상위 20% 사람의 지위 획득은 업적주의에 근거한다. 즉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시장에서 경쟁을 통하여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문제는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는 자질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상위 20%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여 자원과 지위를 배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지만, 시장경쟁에서 높이 사는 자질을 획득하는 기회는 공정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고 중상층에 의해 독점되어 있으므로 이 것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에서 높이 사는 자질은 좋은 대학교와 대학원의 졸업장이다. 중상층은 자신의 자녀를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자녀에게 양질의 양육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의 건강을 위해 부모가 신경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잠자리에 들때 동화책을 읽어주기, 숙제를 봐주기, 자녀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키도록 박물관, 현장 학습,여행에 데려다니기, 좋은 유치원과 초중등학교에 보내기,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기, 과외 활동에 엄청난 정성과 비용을 지불하기,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개인 교습, 진학 코치 서비스, 캠퍼스 방문, 등에 투자하기 등등. 이렇게 부모가 자녀의 질 높은 교육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덕분에 자녀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중상층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갈 무렵에 부모의 인맥으로 좋은 인턴 자리를 구하여 취업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반면 이들 밑에 있는 80%의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에 크게 투자할 능력도 시간도 재력도 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자녀는 좋지 않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문대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동시장에 나온다. 중상층의 자녀 교육 방식은 부모로서 옳바른 일을 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자녀가 부모의 노력으로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80% 부모들이 상위 20%의 부모들만큼 못하는 것을 외부의 도움으로 보충하여, 그들의 자녀가 상위의 자녀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식경제 Knowledge Economy 에서는 좋은 교육을 받고 고급 기술을 획득하는 것, 구체적으로 우수한 대학의 졸업장은 좋은 직장을 얻고 높은 소득을 얻는데 매우 중요하다. 좋은 교육을 받은 남녀는 서로를 찾아 결혼하는 동류결혼의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좋은 교육을 받은 중상류와 그렇지 않은 80%의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벌어지며 세대간 지위의 세습이 공고해진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길로 자녀를 이끄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부모는 자녀를 좋은 대학으로 이끌지 못한다. 따라서 좋은 대학이 지원자의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고 해도, 즉 meritocracy의 원칙으로 공정 경쟁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결국 중상층 부모의 자녀들을 선택적으로 선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떻게 상위 20%가 지위를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들이 지위를 획득하는 기회를 배타적으로 자신들에게만 제한하는 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보다 효율적인 피임 방식을 확산시킴으로서 원치않는 임신을 막아야 한다. 원치 않는 임신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임신에서 나은 아이에 비해 삶의 기회가 열악하다. 중상류층은 임신과 출산을 계획적으로 조절하는 반면, 밑에 층은 원치않는 임신에서 나은 아이가 많다. 미국 전체 임신의 60%는 원치 않는 임신인데, 다수가 하위층에 몰려 있다. 계획에 없이 원치 않는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교육을 중단하고 직업활동에 지장을 받으며 빈곤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정부가 나서서 청소년들에게 효율적인 피임을 교육하고 효과적 피임 수단을 보급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둘째, 부모교육을 위해 가정 방문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간호사가 방문하여 임신출산 및 어린 아이 양육에 조언을 하는 것은 중하층 부모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셋째, 열악한 환경의 아동이 다니는 학교에 우수한 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현재는 반대로 중상층 자녀의 학교에 우수한 교사가 배치된 반면, 열악한 아동의 학교에는 열악한 교사가 배치되어 있다. 교사는 아동의 학업 성취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현재의 상황은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정부의 재정으로 열악한 지역에 우수한 교사의 배치를 지원해야 한다. 넷째, 대학교의 재정을 공정하게 조달해야 한다. 현재 부모가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미리 저축하는 것에 대해 세금면제 혜택을 주는데, 이는 상위 20%에게 혜택이 집중되어 있다. 부유한 집 자녀의 학자금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는 중단해야 한다.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은 80% 계층의 자녀에게 과도하게 몰려 있다. 자녀의 졸업후 소득 수준에 따라 학자금 상환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중하층 자녀에게 지워지는 지나친 대학교 등록금 빚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 

다섯째, 배타적인 토지 용도 제한 규정(exclusionary zoning)을 완화해야 한다. 중상층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자신과 유사한 소득의 사람들만 살도록 하기 위해 일정규모 이상의 단독주택만 허용하는 토지 용도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거주지에 따라 배정하는 방식이므로, 배타적 토지 용도제한 규정은 계층이 다른 집 자녀는 중상층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 그 결과 중상층 자녀의 학교에 배타적으로 혜택이 집중되며, 이러한 학교 졸업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길을 독점하고 있다. 중상층 거주지의 배타적 토지용도제한 규정을 풀어 복합주택을 지을 수있도록 하여, 다양한 계층이 한 동네에 섞여 살도록 하여, 좋은 학교의 혜택이 다양한 계층 자녀에게 고루 미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우수한 대학교에서 이 학교를 졸업한 부모나 큰 돈을 기부한 사람의 자녀에게 입학에 특전을 주는 불공정한 입학제도(legacy admission)를 금지해야 한다. 이들 대학에 대한 세제혜택을 끊고 불공정 입학제도를 법으로 금하는 등의 수단으로 명백히 불공정한 세대간 지위세습을 막아야 한다. 일곱째, 인턴십 제도를 개방해야 한다. 중상층 부모의 인맥으로 그들의 자녀가 좋은 인턴십 기회를 독점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하다. 정부의 재정으로 무급 인턴을 지원하는 제도와 인턴 선발을 공정히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여덟째, 중상층에게 몰려 있는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줄이거나 폐지함으로서 증대된 세수로, 중상층에게 집중된 기회를 다른 계층에게 개방하는 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정을 조달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 방안은 모두 정치적 결정과 정부의 개입을 요하는데, 중상층이 여론을 주도하고 정부와 민간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핵심 세력이므로, 자신들에게 손해가 나는 제도를 스스로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자는 중상층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각함으로서, 중상층의 삶의 신조인 공정성에 호소하여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도록 움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중상층이 자신의 자녀들의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를 스스로 도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불평등이 확대되고 계층 이동이 줄어들면서 아랫 집단의 불만이 높아져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경제가 효율성과 활력을 잃고, 외국과의 경쟁에서 패하고, 결국 중상층의 기득권 구조가 부서지는 시나리오가 역사적으로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 책은 미국의 현실을 명쾌하게 분석하고 솔직하게 핵심을 지적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 그렇듯,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뛰어나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흐릿한 결함을 공유한다.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도 파국을 예상하고 싶지는 않을테지만.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