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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2. 17:41

Carol Kaesuk Yoon. 2009. Naming Nature: The Clash between Instinct and Science. W.W.Norton. 299 pages.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분류학(taxonomy)의 발달 과정을 서술한다. 분류학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각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아마추어 자연관찰자의 영역으로부터, 수학을 사용하고 유전자 분석과 진화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과학의 영역으로 이전하면서, 인간의 직관적 상식으로 부터 멀어졌음을 지적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주위 환경(umwelt)를 인식하는 고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동물 또한 생존을 위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환경 인식 방식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개가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와 다르며, 이는 물고기가 인식하는 세계나 새가 인식하는 세계와 다르다.

인간은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주위의 생물체를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물체를 구별하고 이것들에 체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즉 분류하는 일은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인간에게 위험한 생물과 그렇지 않은 생물을 구별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렇게 생물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생물체를 인식하는 부분과 무생물체를 인식하는 부분이 따로 나누어져 있다. 원시사회의 부족들이나 서구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생물 세계에 대해 매우 유사한 분류체계를 만들어 냈다. 이는 인류는 어디에서 살든 주위환경을 인식하는 능력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분류학은 18세기 린네에 의해 기초가 놓였다. 그는 Domain에서부터 시작하여 Species로 세분화되는 여섯 단계(D,K,P,C,F,G,S/ 문,과,목,과,속,종)의 분류 체계를 만들고, genus와 species 를 결합하여 두개의 이름으로 구성된 생물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창안해 냈다. 예컨대 인간을 homo sapiens라고 명명하는 식이다. 린네가 생물을 분류한 방식은 순전히 인간의 감각 능력에 바탕을 둔 관찰에 의존하였다. 생물체를 면밀히 관찰하여 서로 유사한 특징과  서로 다른 특징들을 파악한 후, 생물체들 사이에 직관적으로 중요한 차이점을 추출하여 그룹짓는 작업이다. 이러한 분류 작업은 주위환경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였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대체로 동의하는 분류 체계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는 이러한 분류 방식은, 왜 특정 생물이 다른 특정 생물과 같은 그룹으로 묶여야 하는지에 대해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연구자의 직관적이며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적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생물세계를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분류한 것이다.

1950년 경 기존의 분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분류 방식이 개발되었다. 이는 인간의 감각적 관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린네이래 사용된 분류 방식과 동일하지만, 생물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하여 그룹을 짓는 기준으로 오로지 통계적 상관성만을 적용할 뿐, 연구자의 주관성이 배제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통계적 분류 방식은, 기존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특징이 다른 특징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유사성이 높은 순으로만 그룹을 정렬한다. 따라서 연구자의 경험이나 통찰력은 분류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그러나 이 방식 역시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므로 생물체의 본질적 속성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1950년대 후반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다. 이는 생물체의 보이지 않는 구성 요소인 세포의 화학적 성분과 유전자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를 계기로 생물의 분류학은 인간의 감각적 관찰을 토대로 한 것에서부터, 세포와 유전자의 성분을 토대로 한 학문으로 거듭났다. 세포와 유전자의 화학적 성분을 비교하여 생물체들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파악하고, 진화의 발달 경로를 객관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외적인 특징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진화적 연관성을 밝혀내게 된 것은 가히 혁명적이다. 그 결과 과거에 동일한 집단으로 묶여 있던 생물체들이 진화적 경로에서 볼 때 상이한 집단에 속하는 경우가 많이 밝혀졌으며, 거꾸로 과거에 상이한 집단에 속한다고 분류했던 생물체들이 유전자 분석결과 진화의 경로에서 동일한 집단으로 밝혀졌다. 유전자 분석 결과 가장 혁명적인 발견은, 진화의 경로에서 박테리아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체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곰팡이가 식물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생물체의 외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하면서도 논리적인 추론만을 전적으로 적용하여 진화의 발달 경로를 밝히는 새로운 접근도 나타났다. 이러한 접근에 따르면, 진화의 발달 선상에서 볼 때 물고기가 육지 동물과 다른 별도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중 일부는 특정 육지 동물과 유사성이 더 크기 때문에 같은 집단으로 묶이지만, 다른 물고기들은 또 다른 육지 동물 집단과 함께 묶이게 된다. 예컨대 허파로 숨을 쉬는 폐어라는 동물은 아가미로 숨쉬는 물고기가 아닌 허파 호흡을 하는 육지 동물과 같은 집단으로 묶이며, 고래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 속한다. 이렇다면 '물고기'라는 독립된 범주는 의미를 잃게 된다.

세포와 유전자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던, 진화적인 경로를 논리적 추론하던, 문제는 이렇게 하여 만든 분류 체계는 기존에 인간의 감각적 관찰에 따라 직관적으로 분류하여 만든 결과와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감각적 인식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므로 이렇게 만든 분류 체계는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만, 화학적 성분이나 논리적 추론에 따라 진화의 경로를 추리하여 만든 분류체계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생물체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해온 자연관찰의 습관에 따라 형성된 세계의 인식 방법과 유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사람들은 물속에 사는 동물은 '물고기'라고 인식하고 생활해 왔는데, 과학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물고기'라는 독립된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생물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분류학은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 만남의 산물이었는데, 생물 세계를 분류하는 작업을 과학자들이 전적으로 독차지 하면서, 인간은 자연, 특히 주위 생물 세계로부터 멀어졌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감각 능력에 호소하여 이름을 붙이던 그러한 낭만적인 전통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자의 어린 시절, 집주위 숲에서 놀고 관찰하던 그러한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은 저자의 어릴 때 경험을 바탕으로 분류학의 발달 과정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인데, 곳곳에서 군더더기 논의를 반복하여,  왜 이렇게 번잡하게 빙빙둘러 이야기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한편으로는 과학을 옹호하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사랑하는 오랜 습관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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