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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에 해당되는 글 1건
2020. 12. 12. 17:02

Malcolm Gladwell. 2019. Talking to Strangers: What we should know about the people we don't know. Little Brown. 346 pages

저자는 비소설부문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 책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가 하는 주제에 관해 다양한 사례를 이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결론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면서 상대의 표정과 행동거지을 관찰하면 상대가 진실을 말하는지 알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실증적인 근거가 박약하다. 인간의 감정과 마음 속 상태는 전형적인 표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특정 표정은 특정 감정 상태를 드러낸다고 하는 일반적 상식이 항시 맞는 것은 아니다. 

첫번째 이야기는 텍사스 교통 경찰이 어느 흑인 여성 운전자를 사소한 교통 위반으로 검문하면서 티걱태걱하다가 감정이 고조되고 결국 그 여성을 구속하고 그 여성이 유치장에서 자살한 사건을 두고 왜 일이 그렇게 전개됐을까 묻는 데에서 시작한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의 맨 마지막에 제시된다. 

두번째 이야기는 쿠바의 이중간첩이 오랫동안 미국의 CIA를 속인 사건을 두고 전개된다. 그렇게 여러명의 이중간첩이 미국 정보기관의 감시망을 속이고 활동할 수있었던 이유는, 인간은 상대를 진실하다고 믿는(default to truth) 본성적 성향 때문이다. 최후에 잡히기까지 의심의 단서는 여럿있었지만,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이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의심의 단서를 묵살하고 상대를 신뢰했다. 서구에서 오랫동안 엄청난 금융사기를 쳐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메이도프 역시 사람들이 그를 기본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의심스런 단서가 많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오랫동안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다.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성향은 진화의 산물이다. 사람들이 상대를 신뢰하기 때문에 집단 생활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있다. 만일 상대를 의심하는 성향이 인간의 기본 상태라면 신뢰의 부족 때문에 사람들 간 거래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없다.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상대의 거짓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입게 되는 피해는,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의심하는 성향을 가진다면 입을 피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즉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얻는 이익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의심할 때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성향이 선택된 것이다. 

세번째 이야기는 대학가의 파티에 참여한 남녀간에 발생한 성폭행 사건을 두고 전개된다. 두 남녀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정상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상대의 의사를 읽을 능력을 상실했다. 술에 심하게 취한 상태에서는 일의 장기적인 결과를 고려하여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는 능력을 상실한다. 대신 당면한 상황에 단기적으로 감정이 내키는 대로 반응할 뿐이다. 술에 심하게 취한 여성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상대 남자에게 어떻게 비칠지, 상대와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한 장기적 기억에 접속하지 못함으로 상황에 합리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며 상대가 상황을 악용하는 데 빠져들기 쉽다. 술에 취한 남성 역시 상대 여성의 반응을 합리적으로 평가할 능력을 상실한 상태이며, 자신의 행동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에 대한 장기 기억에 접속하지 못함으로 나중에 후회할 행위를 쉽게 저지른다. 

상대가 보이는 표정으로부터 내적 감정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다. 인간의 감정은 표정으로부터 그렇게 투명하게(transparent) 읽혀지는 것이 아니다. 프랜즈와 같은 드라마에서 연기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반영하는 과장된 표정 연기를 하는 데 실제 세계에서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흔히 특정 감정은 특정 표정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이는 실험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서구 사람들의 감정 연기를 원시부족에게 보였을 때 어떤 감정인지 전혀 맞추지 못한 것에서, 인간의 감정과 표정이 문화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대응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네번째 이야기는 영국의 한 여성이 가스 스토브에 머리를 쳐박고 자살한 사건을 두고 전개된다. 그녀가 정신적으로 불안정 상태에 있는 것은 맞지만 가스 스토브라는 자살을 감행할 수있는 수단이 쉽게 가용했기 때문에 자살이 성사된 것이다. 영국에서 1960년대에 가정용 가스를 일산화탄소가 많이 섞인 것에서 일산화탄소가 거의 섞이지 않은 도시가스로 바꾸었을 때 자살 빈도가 현저히 감소한 것에서, 동기와 수단이 맞아떨어졌을 때(coupling)에 일이 성사될 수 있음이 확실하다. 이렇게 동기와 수단이 밀접하게 연관되는 경우는 범죄 발생에도 적용된다. 도시에서 범죄는 아무곳에서나 일어나는게 아니라, 범죄가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곳이 있다. 이곳만 경찰이 집중적으로 통제하면 범죄 발생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    

미국의 경찰이 범죄 발생을 줄이기 위해 교통경찰이 운전자를 적극적으로 검색하여 의심스러운 요소를 차단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사소한 교통 위반을 구실로 운전자와 그의 차를 샅샅이 검색하여 범죄를 예방하고 범인을 잡는 전략이다. 이러한 정책은 언급한 인간이 상대를 기본적으로 신뢰하는 성향에 반대가 된다. 첫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텍사스의 교통경찰의 행위가 바로 이러한 전략의 소산이다. 문제는 그의 심문을 받은 흑인 여성이 바로 사람들의 전형적인 감정 표현 방식과 어긋나는 타입이었다는 점이다. 그녀는 근래에 안좋은 일이 연거푸 벌어져 정신상태가 불안정하였으므로, 경찰이 사소한 구실을 붙여 검색을 하는 데 까탈스럽게 반응하였고, 경찰은 그녀의 이러한 과민반응을 범죄자로 의심하였다. 그결과 교통경찰과 여성간에 사소한 만남으로 시작하여 불행한 만남으로 귀결된 것이다. 

저자는 마치 영화의 플롯처럼 여러 사례를 이리저리 쪼개고 교차하면서 복잡하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은 그럴듯해 보일지는 몰라도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서술하는 방식은 아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답게 그의 이야기는 술술 넘어가지만, 그의 논리전개는 그렇게 신빙성있지 않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자신에게 유리한 사례만 선택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측면만 부각하여 설명한다는 그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 끝까지 읽었지만 역시나 건진 것이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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