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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 17. 22:49

Richard Easterlin. 1996. Growth Triumph: The twenty-first Century in Historical Perspective. Univ. of Michigan Press. 154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 경제가 어떻게 성장해 왔으며, 인구 증가는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21세기에도 경제성장이 계속 이루어질지에 대해 논의한다.

세계의 경제는 18세기 후반 영국의 산업혁명에서부터 시작하여 이전과 다른 속도로 장기간 고도의 성장 궤도에 접어든다. 이렇게 매년 1~3%의 성장을 오랫동안 지속한 혁명적 변화의 동력은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새로운 과학 기술 뿐만 아니라 문제를 접근하는 경험적 실험적 객관적인 방법론 덕분에 끊임없는 탐구와 신기술 개발이 이어졌다. 산업혁명 이래의 경제 발전은 자본과 노동 등의 생산요소를 과거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양적으로 성장한 면보다는, 생산성의 향상을 통해 질적으로 성장한 면이 더 크다. 

산업혁명 시기 국가들 사이에 경제성장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들 사이에 세력 균형의 변화가 따른다. 신기술을 개발하여 경제력을 높인 나라는 군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이전에 형성된 국가간 세력 분포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산업혁명을 통해 성장한 서유럽 국가들은 산업 발전에 착수하지 못한 아시아 아프리카의 나라들을 19세기 후반 식민지로 복속시켰다. 유럽에서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영국 및 프랑스와, 뒤에 발전하여 따라잡은 독일 사이에 세력 분포의 변화를 둘러싼 갈등은 제1차 세계대전을 불러왔다.

과학 지식과 기술은 국가간에 쉽게 전파된다. 과학 지식과 기술이 경제성장의 동력이라면 유럽을 넘어서 세계로 경제성장이 빠르게 퍼져 나갔어야 하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한데, 왜일까?  과학 기술이 생산성의 향상으로 이어질려면 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져야 한다. 교육과 민주적 의회제도가 생산성 향상에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다. 과학 기술을 이해하여 생산에 적용하며 기술의 변화를 수용하려면 교육받은 노동력이 필수이다. 노동자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아무리 외국으로부터 과학기술을 도입해도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경제활동의 결과 산출된 부를 정치 권력자들이 임으로 뺏어간다면, 즉 정부가 시민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계약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과학기술을 적용하여 생산성을 향상시키려 노력하지 않는다.  의회제도는 권력자의 임의적 권력 행사를 제한하고, 시민의 사유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하고 존중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과학 기술 및 이를 뒷받침하는 교육 제도와 의회제도가 다른 물적인 요소보다 경제성장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은, 제1,2차 세계대전후 독일과 일본이 폐허를 딛고 빠르게 성장한 사실에서 입증된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지만 과학 기술 및 제도적 기반이 손상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과 일이십년만에 전쟁 이전의 경제 수준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서구에서 19세기 중반 부터 '사망율의 혁명' mortality revolution 이 일어났으며, 시간 차이를 두고 이어서 출산율이 떨어지는 인구 변천 population transition 과정을 겪었다.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진 원인은 위생과 건강에 대한 과학 지식과 기술의 발전에 있다. 병균이 질병의 원인이며 위생상태가 불결하면 병균이 창궐한다는 과학 지식을 기반으로 하여, 병균이 서식하는 환경을 체계적으로 제거한 결과 사망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경제성장에 필요한 과학 기술과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것보다, 질병과 위생에 대한 과학 지식 및 불결한 환경을 제거하는 제도를 갖추는 것이 훨씬 용이하기 때문에,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보다 사망율을 떨어뜨리는 데에서 훨씬 더 빨리 성공할 수 있었다.  

선진국은 인구 노령화 및 인구 감소로 인해 경제성장이 멈추는 미래를 걱정하는데, 이는 기우이다. 인구 노령화의 문제로 크게 두가지가 언급된다. 첫째는 인구가 노령화하면 노동 공급이 줄어들고 노동의 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 어렵다는 우려이다. 2030년까지 노동공급이 약간 줄어들지만 우려할만큼 크지 않으며, 이후에는 이미 낮은 출생율의 세대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노동 공급이 더이상 줄지 않는다.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전인구 대비 노동공급이 크게 줄지 않는 이유는, 노령 인구가 느는 것과 함께 아동의 비율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령의 노동력은 젊은 사람보다 생산성이 낮다는 주장에 대해, 사무직이 주류인 선진국에서 고령의 노동력은 경험이 풍부하여 육체적 정력이 부족한 부분을 커버하며, 과거와 달리 미래에 고령의 노동자는 젊은 사람에 비해 교육 수준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고령이라고 하여 생산성이 젊은 노동자보다 크게 낮지 않다.

인구 노령화로 우려되는 두번째 문제는 인구 부양비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구 노령화는 노인 인구의 증가와 아동 인구의 감소를 동시에 수반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부양비는 변함이 없다. 노인이 늘면 연금이나 의료비가 증가하는 데 이는 젊은이들의 노동 소득을 갉아먹기 때문에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아동을 부양하는 비용은 노인을 부양하는 비용 못지 않게 많이 드는 데, 아동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부양 부담의 총량은 노령화로 인해 높아지지 않는다. 노인이 는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소득이 과거에 비해 부양 인구를 부양하는 데 더 투입되지는 않는 것이다.다만 아동을 부양하는 것은 개인의 사적인 지출로 충당되지만, 노인을 부양하는 것은 세금 등의 공적인 지출로 충당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과거에 아동을 부양하는 데 들던 비용을 노인을 부양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이전하도록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요컨대 노령화로 인한 부양 부담의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다.

동일 시점에서 비교할 때, 한 사회에서 소득이 높은 사람은 소득이 낮은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그러나 시간차를 두고 비교를 하면, 과거와 비교하여 현재에 소득이 높아졌다고 하여 과거보다 더 행복하지는 않다. 이는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의 기대수준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나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이 있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이 평균적인 규범과 비교하여 행복 여부를 판가름한다. 경제가 성장하면 생활수준에 대한 평균적인 규범도 함께 높아진다. 물질적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이 물질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비물질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증거는 아직 서구사회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미래에 소득이 지속적으로 증가한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갖추어야 할 물질적 수준이 함께 높아지기 때문에, 그때에 가서도 행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들이 계속 추가적으로 존재할 것이다. 즉 미래에도 현재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좀 더 높은 생활을 갈망할 것이다. 

선진국에서 경제성장은 과거보다 속도는 떨어지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이루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앞으로도 이전보다 더 큰 풍요를 원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에 기반한 생산성 향상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시작된 경제성장은 아시아를 넘어 아프리카로 확산될 것이다. 후발 산업국들은 선발 산업국들과의 격차를 좁혀갈 것이다. 후발 산업국은 선진국이 개발한 과학기술을 빌려와 쓸 수 있으므로, 선진국이 성장하던 때와 비교하여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 반면 선진국은 완전히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성장하여 선진국에 근접하게 되면 후발 산업국들은 성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배경으로 선진국들에 대해 국제적 영향력의 재분배를 요구할 것이다. 20세기 초반 영국대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충돌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선진국의 과학 기술이 세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의 문화와 가치의 차이는 줄며, 효율과 합리성을 우선하는 세속적 가치가 전세계를 지배할 것이다.

이책은 저자의 경제 성장에 관한 오랜 연구를 정리하는 취지로 쓰여졌다. 논쟁적이기보다 상식적인 부분을 재확인하면서 평이하게 서술한다. 경제 성장에 관한 기존 논의가 잘 녹아 있는 느낌을 받았다. 인구 노령화를 둘러싼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참신하게 들렸다. 인구 노령화나 선진국의 인구 감소는 경제적 효과보다는 국가의 위신과 같은 비경제적 요인 때문에 그렇게 아우성친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2023. 5. 14. 22:57

Eric Jones. 2003(1981). The European Miracle: Environments, Economics and Geopolitics in the History of Europe and Asia. 3rd ed. Cambridge. 25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인, 서구가 왜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을 앞서 발전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는다. 자연 환경적인 요인과 제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서구가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앞서게 된 시점은 대략 1500년대, 즉 북서유럽 사람들이 대양으로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인도와 중국에 진출하게 된 무렵이다. 1500년대 이전에는 중국 문명이나, 이슬람 문명이 기술적으로 서유럽보다 앞섰으며, 물질적 수준에서도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었다.

서유럽은 아시아의 다른 문명권과 비교하여 인구 출산률이 낮았으며,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 재해가 빈발하였기 때문에 자연출생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로 자녀를 낳는 전략을 택한 반면, 서유럽은 자연재해가 적었으므로 최대 자연출생력에 못미치는 출산 관행이 지배했다. 서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서 출산력을 조절하는 사회관습이 정착했다.

서유럽은 아시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므로 인력보다 자본을 더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농업이 주였던 시절에, 아시아는 논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서유럽에서는 목초지에 가축을 키우고,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투입하여 밭을 경작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 서유럽에서 수력, 풍차, 석탄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 즉 생산 과정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서구가 발전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높았으며,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주의가 지배하였다.  

1500년대 무렵 유라시아 대륙에는 크게 네개의 문명권, 즉 유럽 문명, 중동의 오토만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나라 제국이 존재했다.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은 정복 문명이었다. 중동과 인도 및  중국의 원나라와 청나라 제국은 모두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 유목민들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이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과 달리 유목민 약탈자 권력이 닿지 못한 행운을 누렸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정복 세력은 토착인을 최대한 착취 약탈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뿐,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를 관리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복 국가의 국민들은 중앙 집권의 권력에 포획되어 있었으며, 귀족들 또한 권력 집단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착취하는 역할만 하였다.

반면 서유럽은 작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하였다. 유럽의 자연 환경은 산, 강, 바다로 지역을 잘게 나누고 있으며, 북서 유럽에는 숲이 널리 퍼져 있어 지역간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였으므로, 단일 권력이 전 지역을 장악하기 어려웠다. 각각 분할된 지역에 토대를 둔 국가들은 서로간 끊임 없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 집단들의 틈바구니에서 상공업자들은 상대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서유럽의 권력자들은 자의적으로 상공업을 제한하거나 상공업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 전횡을 부릴 수 없었다. 서유럽의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축적하여 재투자하여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아시아의 약탈적 정권 하에서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모으는 것이 위험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사치한 생활에 소비하거나, 지주 혹은 관료의 지위로 갈아타려고 노력했다.

서유럽은 작은 나라들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지만, 기독교 문화의 일원으로서 서로 간 어느 정도는 유사했다. 서유럽의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사람들의 이동을 통한 아이디어의 전파가 매우 빨랐다. 한 지역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면 서유럽 전체로 곧 퍼졌다. 지역간 언어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 대륙 전체로 지식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지역 언어들 사이에 유사성이 높았으므로 다른 언어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 나라의 권력 집단이 자의적 횡포를 부리면, 곧 그 나라의 상공업자와 자본가들은 다른 지역으로 기술과 자본을 들고 이동하여, 그 지역의 세수가 감소하고 군사력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각 지역의 권력 집단은 자신의 지역에서 경제가 활발하도록 항시 관심을 기울였다. 상공업자들은 정치 권력 집단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누렸으므로, 이후 이들이 주도하여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달하였으며, 상공인들의 경제활동을 돕기위해 도로를 닦고 상공업의 규칙을 관리하는 등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국가 service state 로  발전하였다. 

저자는 서유럽이 1500년경 무렵에 세계를 앞서게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1400년경 혹은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점차로 배경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력이 상공업자의 자본을 자의적으로 탈취하지 못하는 관행은 1200년경 이탈리아에서 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와 비교하여 볼 때 서유럽에서는 1500년 이전부터  상공인의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이다. 중세시대에도 교회와 왕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전통은 영국에서 1300년대 후반 세금을 내는 상공인과 지주가 왕에게 압력을 가해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문서인 마그나 카르타를 받아내었으며, 서유럽 전지역에서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의회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중동이나 인도 문명은 역병의 피해를 자주 많이 받았으나 국가가 역병의 확산을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반면,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국가가 주도하여 방역을 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전 서유럽보다 발달했던 생산 기술과 항해 기술을 국가가 금지하여 이후 기술이 퇴화하였다. 이는 중앙 관료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보수 세력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이겼기 때문이다. 반면 서유럽에서 보수세력의 변화에 저항하는 힘은 중국만큼 크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신기술의 도입을 금지하였다고 해도 이웃나라가 버티고 있으므로 이러한 명령은 실제로 엄격히 지켜지지 못했다.

서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 1000년대 이래 인구가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증가하여 기존의 생산수단에 비교하여 인구압력이 계속 높아졌다. 1300년대 중반 페스트가 창궐하여 인구압이 일시적으로 낮아졌지만 100년도 못되어 다시 인구가 증가하였다. 서유럽과 중국은 높아진 인구압을 배출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농업 기술의 발전 및, 1500년대 이래 아메리카 대륙 등 식민지 개척으로 높아진 인구 압력이 분출될 탈출구가 마련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시장의 확대 등으로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한편 중국은 명나라 이래 남쪽 지역으로 경작을 확대하여 높아지는 인구압을 배출하였다. 중국에서는 논농사 지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 없이 인구를 많이 투입하여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한 반면, 서유럽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농업과 이후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즉 중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제의 외연적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생산성의 향상은 높지 않았던 반면, 서유럽에서는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기술 발전과 자본 투입이 높아지면서 생산성의 향상이 함께 갔다.

중국에서 새로이 개척할 땅이 다했을 때, 결국 권력 집단은 국민을 더 가혹하게 탈취하고 국민들은 참다참다 결국 폭발하여 정권이 교체되지만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중국의 청나라 시절 연거퍼 발생한 대규모 민중 봉기와 엄청난 인명 피해의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새로이 개척할 땅이 없었던 중동의 오스만 제국이나 인도의 무굴제국이 간 길이기도 하다.  반면 서유럽은 인구 증가와 생산성의 향상 및 식민지로의 인구 배출이 함께 전개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민중의 대규모 반란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의 학술적 논의를 비판적으로 낱낱이 검토하면서 저자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교양서로 읽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글 쓰는 방식 역시 축약적이고 복합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논의가 균형되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읽기는 어려웠지만 영양가가 높았다.

2023. 5. 10. 18:02

Edward Conze. 1959(1951). Buddhism: its essence and development. Harper Torchbooks. 212 pages.

저자는 서구의 유명한 불교학자이며, 이 책은 주로 반야바라밀다심경에 의존해 불교의 교리를 설명하고 있다.

불교는 서구의 철학과 달리, 세상의 진리를 파악하려는 지적인 관심보다, 도 darma 를 깨닫는 실천에 촛점을 맞춘 실용적인 접근을 택한다. 불교의 목표는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자아를 버려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세상과 삶은 고통으로 차있음으로 세상과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물러나 마음의 평정을 확보해야 한다. 업보를 쌓아 윤회를 거듭하면서,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고 극락 Nirvana 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교의 목표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은, 소유를 최소화하고 가난을 꺼리지 않는 것이다. 남을 괴롭히고 마음 상하게 하는 행위 역시,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에 반하는 행동이다. 자아를 버리고, 세상과 내가 구별되지 않는 하나임을 깨달아, 주위 사람과 생물에 대해 동정심 compassion 을 가져야 한다.

불교는 서구에서와 같은 전지전능한 인격신을 설정하지 않지만, 일반인들은 전지전능한 존재로서 부처를 숭배한다. 깨닮음은 세상과 나 자신에 내재되어 있는 부처의 길, 즉 도를 발견하는 것이므로, 불교에서 인격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빈 empty 것이다. 구별을 하는 것, 주체와 객체, 나와 너, 긍정과 부정, 등으로, 인식하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 불교의 진리는 언어나 논리로 표현할 수 없다.

불교는 지적인 전통과 신비적 체험의 전통으로 나뉘어 있다. 전문가들은 지적인 깨닮음을 강조하나, 일반 신도는 신비적 체험에 관심이 많다. 소원을 성취하고 병을 고치고 등 일반인의 염원을 신비한 힘으로 풀어주는 것 역시 불교 믿음의 일부이다. 탄트라 불교는 신비적 체험을 강조하는 종파이다. 

소승 불교는 구도자 개인의 깨달음에 촛점을 두며, 대승 불교는 대중 전체의 구원에 촛점을 둔다. 불교의 원래 교리는 소승불교에 가까운데,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대승 불교가 갈려나왔다. 대승불교의 한 종파인 선불교는 지적인 탐구를 중요시하지 않는다. 세상의 모순을 꿰뚤어보는 통찰력은 논리적인 탐구를 통해 획득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불교의 고전이라고 추천받아 읽었으나, 많은 부분의 서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200쪽의 책을 중간에 던지지 않고 끝까지 참고 읽었으나, 이해가 높아지지 않아 실망했다. 집중해서 읽었으나 읽은 것이 아니다. '언어와 논리를 넘어선 깨달음' 이라는 말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고통도 즐거움도 염려도 관심도 없는 무념무상의 세상에 들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지 않는가? 윤회는 허구이다, 이 세상의 고통과 부정의와 우연를 이겨내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

2023. 5. 6. 22:34

William McNeill. 1991(1963). 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0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고대에서부터 1950년경까지 세계 문명의 전개를 설명한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중동지역이 인류의 문명을 대표한 500 BC 경까지, 이후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이 유라시아대륙의 곳곳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농업 혹은 상업을 기반으로 한 문명들(헬레니즘, 인도, 중국, 이슬람 제국)을 위협한 시기인 서기 1500년까지, 전세계에 대한 서구의 압도적 지배로 요약되는 1500년 이후 현재까지, 이렇게 인류 역사를 세개의 시기로 구분을 한다. 그는 세계의 문명권이 고대부터 서로 영향을끼치며 전개되어 왔다는 점, 1500년 총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발전은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의 전개에 의해 크게 좌우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이곳에서 농경이 처음 시작되고 도시가 출현하였으며, 부족의 규모를 넘어선 큰 규모의 정치체가 등장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후 변방으로 확대되어, 기원전 1700년경에는 이집트, 소아시아, 크레테, 이란으로 확대되었으며, 이후 인도, 그리스, 중국 문명이 기원전 500년경까지 세워졌다. 중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는 독립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인도와 그리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

그리스 문명은 서쪽으로는 로마제국과 서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소아시아의 헬레니즘으로 확장되었다. 인도문명은 동남아시아로 확장되었으며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은 철기문화를 일찌기 발전시키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멸망시켰으며, 이란 아프간 지역으로 남하하면서 인도 문명을 위협하였다.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유목민족들은 중동과 중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문명간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동유럽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중국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기존 사회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 문명은 동으로는 이란과 인도 지역으로, 서로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로 확장하였다.

1500년까지 서유럽은 문명의 변방지대에서 낙후되었었다. 그러나 이후 항해 및 총포 기술과 함께 체계적으로 군사를 조련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다른 모든 지역을 압도하는 전쟁 능력을 획득하였다. 서유럽이 중국, 인도와 비교하여 이렇게 크게 발전한데는, 여러 작은 정치체들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쟁 능력을 함양한 것, 지주층과 비교하여 상공인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던 점이 큰 이유이다. 서유럽의 이러한 전통은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부터 발전되었다. 반면, 중국은 지주세력이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하여 상공인의 발전을 억눌렀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정된 중앙 집권체제가 계속 유지되면서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의 힘이 매우 강했으며, 다수의 정치체들간 경쟁을 통한 변화의 역동성이 부족하였다.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초원지역에 사는 유목민족은 주변의 농경민족보다 군사적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수시로 주변의 문명들을 위협하였다. 서쪽으로는 헝가리까지 진출하였으며, 이들의 압박으로 역시 유목민족이던 고트족이나 게르만족이 서유럽으로 밀려나 정착하였다. 유럽인은 고대부터 군사적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으므로, 호전적인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다. 유목민족들은 남으로는 북인도로 진출하여 인도 유러피안어족의  인도문명을 세웠다. 이들은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원나라, 청나라, 금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의 문화에 흡수되는 길을 택했다.

중동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헬레니즘을 수용하고, 이슬람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오랜동안 주변의 다른 문명권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을 거듭하였으며, 노예를 기반으로 군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들의 거듭된 반란으로 국력이 쇠하였으며, 신정 정치가 계속되면서 변화를 거부하여, 외부의 위협에 대응한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였다.

1500년경 이후 서구 문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으로 이어지는 세계 확장의 길에 접어든다. 1400년경 부터 서유럽은 점차 기독교의 지배에서 풀려나,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세속적인 합리주의가 세를 더하였다. 이는 1700년대에 계몽주의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국민의 힘을 키우고 민족국가를 형성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7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급속한 인구증가로 이어졌다. 결국 1800년대 중반쯤 세계 모든 지역은 서구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유라시아대륙에 비해 3,000년 정도 문명의 발전이 낙후되어, 1500년경 서구와 만났을 때 아직 철기문화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유라시아대륙의 질병에 취약하여 쉽게 무너졌다. 서구의 위협에 대응해 자신의 선조로부터 계승한 문화의 무력함에 절망한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서구의 문화를 급속히 수용하였으며, 자신의 전통 문화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저자의 역사관은 두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첫째, 세계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 어느 지역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발전이 전개되면, 이것은 얼마 안되어 주변지역에 모방되고, 이러한 과정이 빠른 속도로 전지구를 돌며 영향을 미친다. 둘째, 서구가 앞서기 전인 1500년 무렵까지 유목민족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이 세계사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총포의 발명으로 유목민족의 파괴력이 무력해진 후에도 여전히, 군사적 능력은 역사의 전개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서구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우월한 군사력 덕분이다.  현재 세계는 서구의 문명권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대체할 어떤 다른 문명이 등장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인류의 과학기술 문명이 계속 발전하면, 아마도 미래에 인류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현재의 인류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저자는 역사의 전개를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 말로 많이 설명한다. 다양한 사회와 제도, 지역, 시간을 종행무진으로 비교하면서 엄청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공부한 역사는 서유럽에 국한된 역사이며, 통찰력과는 거리가 먼 단순 학습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 데에 역사 공부의 목적을 둔다면, 이 책은 정말 최상의 교재이다. 감탄을 거듭하면서 800쪽의 책을 읽었다. 여러번 읽을만한 책이다. 다만 20세기의 역사나, 동아시아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2023. 4. 21. 10:03

William McNeill. 1995. Keeping Together in Time: Dance and Drill in Human History. Harvard. 1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동시에 움직일 때 느끼는 흥분이 종교, 군사, 정치, 사회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2차대전에 징집되어 군사훈련을 할 때, 여러 시간 동안 보조를 맞추어 행진연습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적 흥분의 기억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러 사람이 함께 리듬을 맞추어 육체적인 활동을 하면, 집단 소속감과 함께 삶에 대한 흥분이 고조되면서 집단결속이 높아진다. 저자는 이를 '육체적인 결속' mascular bonding 이라 지칭하는데, 인간 진화의 과정에서 집단 구성원들과 언어 뿐만 아니라 감정적으로 소통을 할 때 집단 결속력이 높아지고 집단적인 일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게 되기 때문에, 사람들의 감정적 소통 방식은 후대의 인류에게 계승되었다. 인간의 삶에서 감정은 지적인 활동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체로 감정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고 나서, 이를 지적으로 정당화 내지 제도화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과거 인류가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살 때,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하는 활동은 그들의 삶의 중요한 일부였다. 종교적인 목적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여러 시간 동안 함께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고 춤을 추었다. 집단적으로 하는 노동에서 노동요에 맞추어 단체로 일하므로서 오랜시간 노동의 고됨과 지루함을 극복하였다. 축제 기간에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름으로서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이러한 집단 활동은 서기 2000년전 수메르 시대의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새로운 종교가 시작되는 계기는, 지도자의 이끌림에 따라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주문을 외우고 기도를 하면서 종교적 황홀경(trance)를 맛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는 초기 단계에 이러한 신비한 영적 체험으로 신도를 유인하는데, 이는 여러 사람이 모여 동시에 몸을 움직이면 느끼게 되는 집단적 '흥분'  effervescence 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집단적 흥분은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도의 규모가 커지고 종교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제한하려하고, 감정보다 지적인 접근을 중시하게 된다. 그러나 지적인 접근에 반발하여 영적인 체험을 강조하는 이단이 생겨나고, 이들이 새로운 교파를 형성하면서 신도가 증가하면서 종교의 합리화 과정이 되풀이 된다. 과거 감리교, 침례교, 몰몬교가 발흥하게 된 계기, 근래에 복음주의 개신교 교회, 특히 오순절 교회Pentecostal 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크게 성황을 이루는 이유는, 예배 시간에 신도들이 동시에 몸을 움직임이고 큰 소리로 외치고 기도하면서 영적인 흥분을 체험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떠한 종교건 이러한 집단적 흥분을 떠나 지적인 접근만으로 오래 존속할 수는 없다.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집단적인 군사 훈련, 특히 병사들이 보조를 통일해 움직이는 훈련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러한 훈련을 강도 높게 받은 병사들은, 사기가 높고, 전장의 혼란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며, 무엇보다 전우애가 투철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투에 몸을 던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훈련을 받은 군대가 이러한 훈련을 받지 않은 군대를 만나 번번히 이겼기 때문에, 이러한 군사 훈련은 서구 전역에 급속히 확대되었다. 일본은 이러한 훈련 방식을 일찍이 도입하여 강력한 군대를 만들었으나, 오스만 터키는 자신의 전통적 방식을 고집하여 낙후된 군대로  남아 있다가, 유럽의 침공에 몰락하였다.

19세기 중반 독일과 프랑스 전쟁에서 독일이 패한 이후, 독일에서는 건장한 젊은이를 길러내기 위해 체조와 운동을 통해 육체를 단련하는 사회적 운동이 정부의 적극적 주도로 전개되었다. 같은 시기 이웃나라 스웨덴에서도 전국민 체조 운동이 전개되었으며, 이는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고, 일본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국가가 주도하여 전국민 혹은 집단 구성원 모두를 리듬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도록 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건강 증진을 도모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군사적인 의도를 내포하였으며,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의식으로 장려되었다.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람이 독일의 히틀러이다. 히틀러는 청년 친위대를 양성하면서 체조와 행진을 중시했으며, 나치 시절에 매년 벌어진 뉴렌베르크 집회에서는 대규모 군중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나치 특유의 손을 높이들어 인사하는 행위 역시, 동시에 몸을 움직임으로서 결속감을 고취시키는 수단이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히틀러의 악몽을 잊기 위해 유럽에서는 국가주도로 체조와 행진하는 것이 기피되었지만, 히틀러의 기억이 미약한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집단 결속을 다지기 위해 집단적으로 체조를 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현대 도시인의 삶에서 리듬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거나 행진을 하거나 구호를 외칠 기회는 많지 않다. 운동 경기장에서 자신의 팀을 응원하는 집단적 행위가 미국에서는 가장 이에 근접한 활동이다. 많은 사람이 보조를 맞추어 움직임으로서 집단 소속의 흥분감을 느끼는 것은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화 과정을 통해 그러한 욕구를 타고 났기 때문이다. 근래에 젊은이들이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서 가수의 이끌림에 맞추어 집단적으로 춤을 추고 떼창을 부르고 소리를 외치고 흥분하는 이유는 이러한 활동이 인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집단 행사에 참여하고 나서 속이 뻥 뚫리는 후련한 느낌을 받고 삶의 활력을 얻는다.

저자는 인류학 배경을 가진 역사학자답게, 공식적인 제도보다는, 사람들의 삶의 현실, 즉 사람들이 경험하고 느끼는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역사 사료는 많지 않지만, 마치 인류학자의 현지 답사를 바탕으로 서술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동시에 리듬에 맞추어 움직일 때 삶의 흥분을 느끼고 집단 결속감이 높아지며, 이것이 언어나 제도 못지 않게 사회와 삶의 버팀목이라는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독창적인 그의 주장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었다.

2023. 4. 19. 20:21

살구나무 목록 (47).  2022.5.22 ~ 2023.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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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Joshua Greene. 2013. Moral Tribes: Emotion, Reason, and the Gap between Us and Them. Penguin books. 353 pages.

15. Rudolf Vrba. 2020(2002). I escaped from Auschwitz: The shocking true story of the world war II hero who escaped the Nazis and helped save over 200,000 Jews. Racehorse publishing. 446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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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박창식. 2017. 언론의 언어 왜곡, 숨은 의도와 기법. 커뮤니케이션북스. 109.

20. Daniel Kahneman, Oliver Sibony, and Cass Sunstein. 2021. Noise: A Flaw in Human Judgement. Little, Brown Spark. 395 pages.

21. 한혜경. 2022. 기꺼이 오십, 나를 배워야 할 시간: 오래된 나와 화해하는 자기 역사 쓰기의 즐거움. 297.

22. 이즈미 마사토 (김윤수 옮김). 2014. 부자의 그릇: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다산 북스. 223.

23. 자청. 2022. 역행자: , 시간, 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웅진 지식하우스.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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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4. 19. 17:24

Elinor Ostrom. 1990. Governing the Commons: the Evolution of Institions for Collective Action. Cambridge. 216 pages.

저자는 정치학자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이책은 사람들이 공동으로 활용하는 자원은 '공유지의 비극' (tradegy of commons)이라 지칭하는 집단행동의 딜레마에 봉착하여 자원이 고갈될 수 밖에 없다는 기존의 주장을 뒤집는 사례들이 세계 곳곳에 많이 존재하며, 그러한 사례가 가능한 조건을 경험 연구를 통해 밝힌다. 

기존의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공유지의 비극을 막으려면 다음의 두가지 중 한가지에 해당되야 한다. 정부의 권력을 동원하여 자원의 사용을 통제함으로서 고갈을 막거나, 아니면, 자원의 소유권을 잘게 쪼개 사유화시킴으로서 시장 기구에 따라 자원의 효율적인 관리를 도모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 두가지 이외에 공유자원을 관리하는 제3의 대안이 존재함을 경험 연구를 통해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사례는 스위스와 일본의 목초지와 숲의 관리, 스페인과 필리핀과 스리랑카의 관개용수 관리, 터키와 캐나다의 어장 관리, 캘리포니아의 지하수 관리 등 전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사례에서 관찰되는 공통점은, 자원 사용자들 스스로 조직하여, 가용 자원의 상태와 규모를 확인하고, 자원을 분배하고 사용하는 규칙을 정하고, 규칙이 지켜지도록 감시하고, 위반자를 제제하고,  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규칙을 조정한다. 이러한 제도들이 깨지지 않고 오래도록 유지되려면 8가지의 조건이 만족되어야 하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공유자원의 사용자 범위가 명확히 제한되어야 한다. 사용자의 범위가 확실치 않다면, 언제라도 신규 진입자가 들어와 기존의 규칙을 무시하고 제한된 자원을 마구 사용하여, 기존의 사용자들이 준수하는 규칙을 허물어뜨릴 것이다. 둘째, 공유자원의 사용 규칙에 구속된 사람들은 그 규칙을 만들고 조정하는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들을 구속하는 규칙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권리를 실제로 보유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그 규칙이 자신을 차별하지 않고 공정하다고 느끼며, 그 규칙을 준수할 가능성이 크다.  만일 공동의 규칙을 세우는데서 자신이 배제되고 차별을 받는다고 느낀다면, 그러한 규칙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러한 규칙은 곧 유명무실해 질 것이다. 셋째, 사용자들 본인 혹은 그들에게 책임을 지는 대리인이 제한된 공유자원의 사용 상황을 감시해야 한다. 자신이 동의한 공동의 규칙을 어기면서까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공유자원을 과다하게 사용하려는 유혹은 항시 존재하기 때문에, 사용을 감시하는 유효한 장치가 없다면 규칙은 곧 깨질 것이다. 넷째,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에 대해 위반의 정도에 따라 벌칙을 부과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개인 사정에 따라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은 종종 발생하므로, 경중을 가려 불이익을 부과해야만 규칙은 유지될 수 있다. 다섯째, 공유자원의 사용자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할 경우 시시비비를 공정하게 가릴 기구가 존재해야 한다. 공동으로 합의한 규칙을 구체적인 상황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둘러싸고 사용자들 사이에 이견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여섯째, 공유자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직접 만든 제도를 외부의 정부기관이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나서서 공유자원을 관리한다고 행정력을 동원하여 주민 자치로 만든 제도를 부정한다면, 주민들이 스스로 만든 제도는 유지되기 어렵다.

저자는 공유자원을 주민들의 합의로 잘 관리하는 성공 사례뿐만 아니라 실패한 사례도 소개한다.  캘리포니아의 모하비군에서는, 이웃 군들의 성공 사례와 달리,  지하수를 공동 관리하는데 실패하여, 사용자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최대로 지하수를 뽑아내어 지하수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 이들이 실패한 이유는, 주민들이 소규모로 밑에서부터 조직하여 단계적으로 신뢰를 쌓아가야만 공동의 규칙을 만들고 이를 지키는 관행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데, 모하비군에서는 넓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사용자 조직을 단번에 만들려고 시도하여 실패하였다. 사용자들 소규모의 단위에서부터 조직하여 다층적으로 조직의 범위를 넓히는 식으로 발전시켜 나가지 않는다면, 주민들 사이에 신뢰가 쌓이지 않으며, 주민들 사이에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지 않으면 주민들 스스로 조직하여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제도는 만들어질 수 없다. 

두번째의 실패 사례는 스리랑카의 관개용수 관리 사례이다. 관개용수를 사용하여 농사짓는 사람들의 토지 소유 규모에 큰 차이가 있고, 대지주는 노동자를 고용한 부재지주인 경우가 많으므로, 공유자원의 사용자들 사이에 동질성이 낮다. 사용자들 사이에 이익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공동의 규칙에 합의하기 어렵다. 대지주는 지역의 정치인과 결탁하여 관개수 사용 등에서 특혜를 누리기 때문에, 소농들과 대등하게 협의하여 공정하게 수자원을 분배 받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지역 정치인들은 자신의 정치적 후원자들에게 특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이러한 정치인을 등에 없은 관료나 지역의 토호들은 일반 주민들이 만든 공유자원의 자율 규약을 위반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권력자와 대지주들은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지역 전체의 이익이 희생되는 행위를 저지른다. 

한편, 개발도상국에서 외부의 개입으로 성공한 사례도 나타났다. 역시 스리랑카의 관개용수 관리사례인데, 코넬대학 연구팀이 지역 정부 조직과 연대하여 주민이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운영하는 관개용수 관리 제도를 만들어 내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지역 출신으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이들을 교육시키고, 이들이 현장에 나가 직접 주민들을 접촉하고 설득하여 5~7명 규모의 주민 자치 관개용수 관리 조직들을 결성하도록 하고, 이러한 소규모 조직활동을 통해 주민들스스로 사용 규칙을 제정하고, 사용을 감시하고, 그 결과 효율적으로 자원이 활용되는 것을 확인하는 경험을 쌓도록 했다. 이러한 주민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조직의 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혀서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관개용수 관리 조직을 만들어 냈다.  즉 밑으로부터의 기층 조직(grassroots organizing)을 바탕으로 누적적으로 단계를 높여가는 공유자원 관리 체계를 만든 것이 성공의 핵심이다. 이렇게 외부의 개입을 통해 주민 스스로 관리하는 조직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지역 엘리트들의 반발도 일시 있었으나, 조직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사용을 감시하고, 위반을 제재하는 장치가 작동하면서 지역 엘리트들도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저자는 기존의 학설을 뒤집는 이론을 경험 연구를 통해 입증하므로서 노벨상을 받았다. 사실 전통사회에서 지역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지역의 자원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사례는 흔하다. 사회적인 통제 장치를 통해 개인의 일탈을 막고 공유자원의 남용을 막는 것은 과거 지역사회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러한 지역사회의 사회적인 통제 장치는 위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지역사회에서 힘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힘없는 다수의 경제행위에 대해 제한을 가함으로서 공유 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유지되었다. 저자가 이책에서 주장하는 대안은 참여자가 대등한 권리를 가지고, 공동으로 규칙을 만들고, 공동으로 이행을 감시하고, 위반자를 제제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조직에 불만족을 느끼면 탈퇴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조직을 결속시키는 중요한 장치이다. 왜냐하면 탈퇴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즉 공통의 규칙에 불만을 품고 그러한 규칙을 위반하는 사람이 발생한다면, 그러한 조직 자체은 와해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평등한 민주적인 주민참여 조직이 개발도상국에서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민주적이면서 가난한 나라는 없다. 권력자와 엘리트가 그러한 조직의 형성을 방해하고, 설사 어떻게 만들어진다고 해도 이를 와해시키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Acemoglue의 "Why Nations Fail"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개발도상국이 가난한 이유가 권력자와 엘리트들이 기득권을 틀어쥐고 개발을 막기 때문이다.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로 기회가 확산되는 것인데, 이는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기득권자들이 시장을 외곡시키면서 독점적으로 틀어쥐고 있는 권리를 내어 놓아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개발도상국의 권력자와 부자들은 선진국을 부러워하기는 하지만 자신의 나라가 민주화되고 부유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선진국에서도 공유자원을 주민 자치로 민주적으로 공동 관리하는 체제가 들어서기 어려운데, 개발도상국에서는 더욱 더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공유자원의 관리 조직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해 후반부에서 많이 논의하면서, 참여자의 다양성 특히 권력과 이익의 차이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기만 하는데,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외면하는 지적이다.

2023. 4. 17. 18:03

Edward O. Wilson. 2014. The Meaning of Human Existence. Liveright. 187 pages.

저자는 저명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은 생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인류의 존재에 대해 생각한 바를 서술한 에세이 모음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그리 복잡하지 않다. 인류는 생물계의 진화의 산물이다. 생물체가 존재하기에 적절한 환경을 지구는 타고 났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오랜 동안 전개된 생물체의 진화 과정에서 우연이 중첩되면서 현재의 인간이 만들어졌다. 물론 그러한 진화의 과정에서 마주친 수많은 대안들이  출현하지 못했거나 후손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으며, 인간이 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어 다른 생물체로 발전하였다. 인간과 가장 근접한 유인원인 침팬지와 인간의 길이 갈라진 이후에도, 수십종의 인간의 조상이 절멸된 끝에, 현재의 인간 Homo Sapiens 가 탄생하였다. 인간이 되는 진화의 과정은 매우 매우 작은 확률의 소산이다. 그 많은 조합(permutation)의 과정에서 하나라도 다르게 선택되었다면 현재의 인간이 출현하지 못했다. 진화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전개되는 것이므로, 인간이 되는 길에 필연이란 없다.

지구상에 지금까지 존재한 사회적 동물이 총 20가지 있는데, 인류는 그중 하나이다. 사회적 동물이란 군집하여 생활하며, 군집 생활에 삶을 의존하며,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동물을 의미한다. 개미나 벌이 속하는 사회적 동물은 지구 전체 생물계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진화의 과정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인간은 다른 사회적 동물과 마찬가지로 분업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사회적 동물과 달리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된 분업 생활을 하지 않는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순적이다. 개인간의 생존 경쟁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그러나 집단간의 생존경쟁에서는 집단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이타적 행동을 한다. 즉 인간은 이기적이면서 동시에 이타적인 동물이다. 자신의 집단 구성원을 위해서는 이타적이지만, 타집단에 대해서는 냉혹하게 배타적이며, 타집단에게 행하는 아무리 나쁜 행동도 자신의 집단에 도움이 된다면 미덕으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범위가 맥락에 따라 가장 작은 규모의 가족에서부터 크게는 국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수시로 바뀐다는 점이다. 자신의 가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마을에는 해가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속한 작은 클럽에 이익이 되는 것이 자신의 사회에는 해가 될 수 있다. 종교 또한 이러한 부족주의 (tribalism)의 발로이다.

지구의 생물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이다. 미생물은 종의 다양성이나 규모에서 다른 모든 생물체를 훨씬 능가한다. 인간은 인간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하기 때문에, 근래까지 지구상에서 미생물의 중요성에 대해 거의 무지하였다.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의 매우 제한된 감각 범위 때문에 지구상의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도 매우 좁다. 지구상에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생물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한편, 지구 밖에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데, 외계 미생물의 존재는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진 외계의 생물체가 존재할 가능성은 매우 작으며, 설사 존재한다고 해도 지구상의 인류와 접촉할 가능성은 더더욱 작다.

인간은 과거 수렵채취 시절에 발달시킨 본성을 가지고 현대 도시 산업사회를 살고 있으므로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사는 환경에 적합하지 않으며, 인류의 과학 기술은 불과 200년 남짓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미흡하다. 현재 인류는 자연계의 진화의 과정을 중단한채 살고 있는데, 앞으로 과학기술이 계속 발달한다면, 인류는 조만간 인간 유전자 자체를 조작 변형하는 단계에 도달할 것이다.  질병을 예방 치료하는 부수적인 조작을 넘어서서, 본질적으로 인간의 성질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은 저자가 다양한 잡지에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이므로 중복이 많고 논의에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맨 처음에 제시된다. 사실 이는 너무나도 투명하므로 '왜' 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인간은 우연의 산물이다. 인간을 포함한 세상은 우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기에, 인간은 이야기를 꾸며내었다. 창조 신화, 하나님의 은총, 선과 악, 내세와 구원 등이 '우연'이라는 사실이 담고 있는 허무함을 잊기 위한 노력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왜 존재하는지, 왜 이러한 일을 당해야 하는지, 견디기 힘들 것이다. 현대 서구의 과학기술 문명이 500년을 넘지 않으므로, 앞으로 1천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기 어렵다.  저자의 희망과 달리, 앞으로 인간은 다른 생물체로 유전자 변형되면서, 현재의 인간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2023. 4. 12. 17:41

Carol Kaesuk Yoon. 2009. Naming Nature: The Clash between Instinct and Science. W.W.Norton. 299 pages.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분류학(taxonomy)의 발달 과정을 서술한다. 분류학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감각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아마추어 자연관찰자의 영역으로부터, 수학을 사용하고 유전자 분석과 진화의 과정을 체계적으로 밝히는 과학의 영역으로 이전하면서, 인간의 직관적 상식으로 부터 멀어졌음을 지적한다.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주위 환경(umwelt)를 인식하는 고유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각각의 동물 또한 생존을 위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환경 인식 방식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개가 인식하는 세계는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와 다르며, 이는 물고기가 인식하는 세계나 새가 인식하는 세계와 다르다.

인간은 아주 어린 나이에서부터 주위의 생물체를 인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물체를 구별하고 이것들에 체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즉 분류하는 일은 생존을 위해 중요하다.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구별하고, 인간에게 위험한 생물과 그렇지 않은 생물을 구별하는 능력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다. 이렇게 생물체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생물체를 인식하는 부분과 무생물체를 인식하는 부분이 따로 나누어져 있다. 원시사회의 부족들이나 서구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모두, 생물 세계에 대해 매우 유사한 분류체계를 만들어 냈다. 이는 인류는 어디에서 살든 주위환경을 인식하는 능력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서구의 분류학은 18세기 린네에 의해 기초가 놓였다. 그는 Domain에서부터 시작하여 Species로 세분화되는 여섯 단계(D,K,P,C,F,G,S/ 문,과,목,과,속,종)의 분류 체계를 만들고, genus와 species 를 결합하여 두개의 이름으로 구성된 생물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창안해 냈다. 예컨대 인간을 homo sapiens라고 명명하는 식이다. 린네가 생물을 분류한 방식은 순전히 인간의 감각 능력에 바탕을 둔 관찰에 의존하였다. 생물체를 면밀히 관찰하여 서로 유사한 특징과  서로 다른 특징들을 파악한 후, 생물체들 사이에 직관적으로 중요한 차이점을 추출하여 그룹짓는 작업이다. 이러한 분류 작업은 주위환경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였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대체로 동의하는 분류 체계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는 이러한 분류 방식은, 왜 특정 생물이 다른 특정 생물과 같은 그룹으로 묶여야 하는지에 대해 객관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한다. 연구자의 직관적이며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학적 엄밀성이 결여되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생물세계를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분류한 것이다.

1950년 경 기존의 분류 방식과는 다른 새로운 분류 방식이 개발되었다. 이는 인간의 감각적 관찰에 의존한다는 점에서는 린네이래 사용된 분류 방식과 동일하지만, 생물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비교하여 그룹을 짓는 기준으로 오로지 통계적 상관성만을 적용할 뿐, 연구자의 주관성이 배제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러한 통계적 분류 방식은, 기존의 연구자들이 특정한 특징이 다른 특징보다 더 중요하다고 하는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유사성이 높은 순으로만 그룹을 정렬한다. 따라서 연구자의 경험이나 통찰력은 분류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 그러나 이 방식 역시 인간의 감각에 의존하므로 생물체의 본질적 속성에 바탕을 두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1950년대 후반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나타났다. 이는 생물체의 보이지 않는 구성 요소인 세포의 화학적 성분과 유전자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이를 계기로 생물의 분류학은 인간의 감각적 관찰을 토대로 한 것에서부터, 세포와 유전자의 성분을 토대로 한 학문으로 거듭났다. 세포와 유전자의 화학적 성분을 비교하여 생물체들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파악하고, 진화의 발달 경로를 객관적으로 추적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외적인 특징만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던 진화적 연관성을 밝혀내게 된 것은 가히 혁명적이다. 그 결과 과거에 동일한 집단으로 묶여 있던 생물체들이 진화적 경로에서 볼 때 상이한 집단에 속하는 경우가 많이 밝혀졌으며, 거꾸로 과거에 상이한 집단에 속한다고 분류했던 생물체들이 유전자 분석결과 진화의 경로에서 동일한 집단으로 밝혀졌다. 유전자 분석 결과 가장 혁명적인 발견은, 진화의 경로에서 박테리아가 지구상의 다른 모든 생물체와는 전혀 다른 별도의 집단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곰팡이가 식물보다는 동물에 더 가깝다는 사실 또한 놀라운 일이다.

생물체의 외적인 특징을 기준으로 하면서도 논리적인 추론만을 전적으로 적용하여 진화의 발달 경로를 밝히는 새로운 접근도 나타났다. 이러한 접근에 따르면, 진화의 발달 선상에서 볼 때 물고기가 육지 동물과 다른 별도의 그룹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중 일부는 특정 육지 동물과 유사성이 더 크기 때문에 같은 집단으로 묶이지만, 다른 물고기들은 또 다른 육지 동물 집단과 함께 묶이게 된다. 예컨대 허파로 숨을 쉬는 폐어라는 동물은 아가미로 숨쉬는 물고기가 아닌 허파 호흡을 하는 육지 동물과 같은 집단으로 묶이며, 고래는 인간과 같은 포유류에 속한다. 이렇다면 '물고기'라는 독립된 범주는 의미를 잃게 된다.

세포와 유전자의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던, 진화적인 경로를 논리적 추론하던, 문제는 이렇게 하여 만든 분류 체계는 기존에 인간의 감각적 관찰에 따라 직관적으로 분류하여 만든 결과와 어긋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감각적 인식이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므로 이렇게 만든 분류 체계는 사람들에게 직관적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만, 화학적 성분이나 논리적 추론에 따라 진화의 경로를 추리하여 만든 분류체계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즉 생물체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해온 자연관찰의 습관에 따라 형성된 세계의 인식 방법과 유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예컨대 사람들은 물속에 사는 동물은 '물고기'라고 인식하고 생활해 왔는데, 과학적으로 엄밀히 따져보면 '물고기'라는 독립된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과학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고 감정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그러한 생물 세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의 분류학은 인간과 자연의 직접적 만남의 산물이었는데, 생물 세계를 분류하는 작업을 과학자들이 전적으로 독차지 하면서, 인간은 자연, 특히 주위 생물 세계로부터 멀어졌다.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간의 감각 능력에 호소하여 이름을 붙이던 그러한 낭만적인 전통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저자의 어린 시절, 집주위 숲에서 놀고 관찰하던 그러한 경험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이 책은 저자의 어릴 때 경험을 바탕으로 분류학의 발달 과정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인데, 곳곳에서 군더더기 논의를 반복하여,  왜 이렇게 번잡하게 빙빙둘러 이야기하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한편으로는 과학을 옹호하면서 자연을 관찰하고 사랑하는 오랜 습관이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도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2023. 4. 7. 16:48

Amitav Acharya and Barry Buzan. 2019. The Making of Global International Relations: Origins and Evolution of IR at its Centenary. Cambridge. 320 pages.

저자는 국제관계학자들이며,  이책은 제1차 세계대전 이래 최근까지 국제관계의 변화를 정리하면서, 이러한 정세 변화가 국제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국제관계의 변화는 크게 5개의 시기로 구분한다. 제 1차대전 이전까지,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기간, 2차대전 이후, 1989년 공산권의 몰락 이후, 21세기에 접어들어 지난 20년간.

제 1차 대전 이전 시기의 국제관계는 유럽의 중심국이 여타 세계의 식민지를 거느리는 제국주의 시기이다.  인종주의가 이 시기를 지배하는 이념이었다. 근대화에 성공한 서구와 여타 국가들간의 격차는 매우 컸다. 일본은 이러한 서구 백인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애매한 존재로 중심국에 편입되어 있었다. 서구 국가들 사이의 국제관계는 강대국들 사이에 '힘의 균형' (balance of power)이라는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1차대전에서 2차대전 사이의 국제관계는 기본적으로 1차 대전 이전 상황의 연장이다. '국제연맹'이라는 국가들을 아우르는 조직이 국제사회에 새로이 등장하여 강대국들 사이에서 약간이나마 역할을 했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1차 대전은 영국, 프랑스 등 선진 산업국과 독일이라는 후발 산업국간 힘의 균형의 변화가 원인인데, 전쟁이 그러한 원인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서구사회는 또다시 전쟁을 맞게 되었다. 두 차례의 전쟁을 벌이면서, 전쟁이 국제간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더이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대국들이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전면전은 패전국은 물론 승전국에게도 엄청난 손실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1,2차 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은 몰락하였으며, 국제질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강대국이 주도하게 되었다. 미국은 2차대전을 계기로, 오랫동안 견지하던 고립주의를 버리고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2차대전 이후 유럽 제국주의에 복속되어 있던 식민지들이 독립함으로서, 비록 국가들간 상당한 차이는 있지만 국제사회는 서유럽 국가들만이 아니라 세계 여타지역의 국가들도 참여하는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게 되었다. 제국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난 국가들 중 일부는, 미국과 소련의 양진영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는 제3세계 비동맹 그룹을 형성하였다. 냉전시기에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와 소련을 중심으로 한 전체주의 공산주의 체제간에 대립과 경쟁이, 식민지에서 해방된 제삼세계를 대상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미국은 이차대전 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제도를 만들고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이는 자유주의 (liberalism) 국제정치 이론에 반영되었다.

2차대전은 핵무기를 국제사회에 등장시켰다. 핵무기는 전쟁의 승패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를 멸망시킬 위험을 안고 있으므로, 이후 미국과 소련간 핵무기 경쟁과 억제의 구도 속에서, 강대국간 전면전의 가능성을 없애고 평화를 가져왔다. 강대국간 전면전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후원을 받는 대리 전쟁은 세계 지역 곳곳에서 끊임없이 터졌음으로 이 시기를 평화롭다고 규정하는 것은 서구 편향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1989년 공산권은 내부적인 비효율 때문에 함몰하였다. 소련의 붕괴로 인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단극 체제의 세계질서가 등장하였다. 냉전체제가 종식된 후, 더이상 강대국간의 충돌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낙관론이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중국과 인도가 성장하여 점차 국제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들어 브라질과 러시아 등과 함께 강대국 군을 형성하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는 다극체제로 이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21세기에 들어 국제사회는 다극체제의 모습을 점차 분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세계의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이 수반하는 비용을 지불하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커졌다. 2008년의 금융위기는 서구의 자본주의의 약점을 두드러지게 노출시켰으며, 반면 30여년 동안 꾸준한 고속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중국은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제삼세계 국가들에게 중국의 위상을 높였다. 영국의 유럽연합탈퇴와 미국의 도날드 트럼프의 등장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의 약점을 세계 만방에 재확인시켰다. 미국은 이제 세계를 전면에서 이끄는 지위에서 내려왔으며, 자신의 국익을 우선시하는 여러 강대국 중 하나의 위치로 하락하였다. 이러한 세계질서에서 자본주의와 민족주의가 중심을 차지하는 반면, 오랫동안 국제관계를 지배했던 인종주의는 점차 쇠퇴할 것이다.

세계 경제와 정치에서 제삼세계 국가들의 비중이 커진 반면, 서구 강대국들의 비중은 계속 줄어들었다. 미래에 오늘날의 시기를 뒤돌아볼 때, 국제정세의 가장 큰 변화는 제삼세계 국가들의 부상일 것이다. 앞으로 중국과 인도의 비중이 계속 커질 것이며, 이에 따라 국제관계 학문도 서구 중심의 패러다임에서, 비서구를 아우르는 글로벌한 접근으로 바뀔 것이다.

이 책은 학술서로서, 국제관계 학문는 국제정세에 좌우된다는 지식사회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사실 20세기 후반까지 비서구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크게 낙후됬으므로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없었으며, 국제관계 학문에서도 거의 존재가 없었다. 최근에 들어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한 비서구 사회의 부상이 앞으로 국제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지는 두고볼 일이다. 16세기에 서구가 아시아를 앞서 근대화한 이후, 비서구 사회는계속 뒤쳐져 있었으며, 앞으로도 비서구 사회가 서구사회를 앞설 가능성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서구 문명을 대체할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이 책은 지난 백년동안 국제정세의 변화를 잘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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