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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 15:35

혹시 저와 독서 모임을 함께 할 분을 모집합니다. 한두달에 한번씩 만나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두시간쯤 자유롭게 하는 것이지요. 어떤 책을 함께 읽을지는 참여자들이 상의하여 정하고요. 저와 관심이 유사하면 좋겠습니다만. 저는 앞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일단, 소설류, 자기개발, 투자 관련 책은 우선순위에서 제외한답니다. 그보다는 인문, 사회과학, 자연과학 분야의 책을 선호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국내 작가와 국외 작가의 책을 가리지 않습니다. 국외 작가의 경우 저는 번역보다 원서를 구입하여 읽는 편입니다. 물론 독서 모임의 다른 분들은 번역본을 읽어도 무방합니다. 저는 번역글을 읽는 것이 원서를 읽는 것보다 어렵답니다.

다섯명 이내의 소모임으로 동일한 책을 읽고 만나서 토론한다면, 책을 읽을 때 더욱 적극적으로 읽을 것이고 토론을 하는 가운데 아이디어가 활발히 교환되리라 기대합니다. 독서 모임을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기한은 없습니다. 이 글을 읽고 관심이 있으시면 언제라도 제게 이메일 (hslee@hufs.ac.kr)로 연락주세요. 서울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면 좋겠고, 남녀 연령 제한은 없습니다. 각자 사정에 따라 가끔씩 참여할 수 있으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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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 2. 15:17

Rudolf Vrba. 2020(2002). I escaped from Auschwitz: The shocking true story of the world war II hero who escaped the Nazis and helped save over 200,000 Jews. Racehorse publishing. 446 pages.

저자는 17세에 슬로바키아에서 유태인 집단 이주 명령에 따라, 나찌의 유태인 집단학살로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어 1942년에서 1944년까지 약 2년간 지내다가 탈출에 성공하였다. 그는 탈출 후 유태인 조직의 도움으로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전세계에 알려지도록 했으며, 이후 전범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 유태인 학살 잔학행위에 연관된 사람들의 처벌에 앞장섰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일을 상세히 묘사하고, 그가 어떻게 탈출에 성공했는지, 탈출 후에 어떻게 아우슈비츠의 실상을 외부로 알렸는지 설명한다. 그가 수용소에 있던 2년동안 1,750,000명이 죽었다고 진술했는데, 나치의 유태인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아우슈비츠에서 200~300만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떻게 그렇게 짧은 시간에 전유럽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유태인을 잡아들여  신속히 살해할 수 있었을까. 유태인들은 유럽 전역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박해 받고 있었다. 따라서 나찌 혹은, 나찌에 협력하는 지역 정부에서 그들을 새로운 곳으로 이주시킨다고 했을 때, 유태인들은 박해받는 곳을 떠나 미지의 삶의 장소로 이주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아우슈비츠로부터 탈출하여 그곳의 실상을 폭로한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나찌의 집단 학살 정책에 대해 아무 정보도 없었다. 나찌는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철통 보안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많은 유태인들은 자식의 앞날을 위해 지금 사는 곳보다 앞으로 가는 곳이 더 나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이주 열차에 순순히 올라탔다.

이 수기의 대부분은 저자가 어떻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피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아우슈비츠에서 대량 학살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려면 많은 보조 인력이 필요한데, 수용자들 중 건장한 사람을 선발하여 이러한 일을 맡긴다. 이들은 강압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사람들을 대량으로 죽이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작업에 동원된 수용자들은 굶주림의 위협이 없었다. 이들에게는 규칙을 위반하지 않고 건강을 계속 유지하는 한, 생존이 확보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우슈비츠에서 1년 이상 생존하는 사람은 드문데, 저자가 2년이나 죽지 않고 버텼다는 것은 예외적이다.

저자는 젊음의 활기 뿐 아니라, 상황을 잘 판단하고 신중히 행동하는 영민함을 갖추었다. 그는 독일어, 러시아어 등 다섯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는데, 이것이 힘있는 사람의 호감을 얻는데 유용하게 작용했다. 윗 사람이 그를 잠시 접해보고 호감을 느껴 그와 함께 일하도록 하는 일이 여러번 벌어진다. 사회적인 지위의 대물림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강제 수용소에서 도, 사람들의 인적자본의 차이가 지위의 차이, 삶과 죽음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는 전쟁후에 대학에 진학하여 의학을 공부하고 이후 의학자로서 하바드 의대에서 교수까지 하였다. 그는 수용소 내에서 드문 인재(elite)였음은 물론, 수용소 밖에서도 드문 인재(elite)였던 것이다.  

강제 수용소에서 수용자들 사이에 지위의 불평등은 인적 자본과 운이 결합하여 만들어졌다. 그는 죽을 고비를 여러번 겪는데, 그때마다 운이 함께 하였다. 수용소에서 그가 쌓은 신뢰관계는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누구를 신뢰하고 누구를 신뢰하지 않을지 잘 판단하는 것은 삶과 죽음 사이의 결정인데, 그는 남의 마음을 읽는 눈이 있었다. 십장의 명령에 따라 규칙을 위반하다 발각되었을 때, 그는 엄청난 고문을 받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 고문의 후유증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으나, 그 십장의 관리하에 특별 대접을 받으면서 건강을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가 수용소에서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은, 처음에는 순전히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였지만, 집단 학살의 참상을 대면하면서 마음 속에서 분노가 쌓이고, 이를 그대로 지속하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이 그를 계속 살게 한 힘이 되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이송된 사람들이 그곳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대량 학살 사업을 가능케 하는 동력이라는 점을 깨닫고, 자신이 탈출하여 외부세계에 이곳의 실상을 알리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았다. 아우슈비츠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서부터 탈출을 염두에 두고, 그의 표현대로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접근하였다. 아우슈비츠 보안의 허점을 면밀히 탐색하고, 다른 탈출자들의 실패를 꼼꼼히 분석하였으며, 섣부른 충동이나 탈출 제안에 쉽게 빠져들지 않았다. 외부로 탈출하여 실상을 폭로할 것을 목표로 살았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되는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수집하고, 자신의 기억속에 저장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탈출하여 슬로바키아의 유태인 조직 사람들에게 헝가리 유태인들의 대량 이주 학살이 계획되고 있음을 경고했음에도, 헝가리 유태인 조직이 자신의 나라의 유태인들에게 대량 이주의 실상을 알리지 않고 죽게 내버려둔 것에 분노했다. 전쟁후에 알게 되었는데, 헝가리 유태인 조직의 우두머리가 나치 우두머리와 거래를 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거래의 내용은, 상당한 규모의 헌금을 내는데 대한 보상으로, 헝가리 유태인 상류사회 사람들 1,800명이 스위스로 도망가는 것을 허용하는 대신, 일반 유태인들이 대량 이주의 실상에 무지한채 순순히 이주 정책을 따르도록 한 것이었다. 그 결과 헝가리 유태인 약 40만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이 책의 서문에서 자신이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설명한다. 1960년 초 영국에서 지낼 때 지역 신문에 아우슈비츠의 집단 학살 실상을 폭로하는 기사를 게재하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그를 악의적인 사람으로 비난하는데 충격을 받고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히 설명하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나찌의 집단 학살이 거짓이라고 믿는 사람이 서구에서 적지 않다.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그것도 부녀자와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하여, 잔혹하게 수백만이나 죽일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죽이고 비참하게 만드는데 기꺼이 참여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유태인의 집단 학살 사업은 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에게 이익을 제공하였다. 유대인 집단 강제이주 정책을 집행한 지역 사람들은 유태인이 떠나면서 남긴 집, 사업체 등 소중한 재산을 거져 빼앗았으며, 아우슈비츠에서는 유태인이 가지고 온 것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여 독일로 보냈다. 아우슈비츠의 수용자들은 인근에 있는 독일의 군수 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였다. 유태인을 처분하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쌓았던 재산들은 독일과 지역 경제에 윤활유로 작용한 것이다.

이 책은 인재(elite), 인적 자본(human capital)이란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인재는 필요하며, 인재는 생존의 확율이 높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간 사회는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

2023. 1. 30. 17:19

Gary Marcus. 2008. Kludge: the Haphazard Evolution of the Human Mind. Mariner Books. 17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의 사고 작용에 내재한 결함을 설명하고, 그것의 원인을 진화에서 찾는다. 인간의 신체 기관은 진화를 통해, 초기에 단순한 것에서부터 조금씩 복잡한 기능을 덧붙이며 발전하였다. 그 결과 우리의 신체 기관은 '클루지'(kludg)의 집합체이다. 여기서 '클루지'란 당장의 필요에 따라 성급히 엉성하게 만들어진 땜질 처방을 뜻한다. 처음부터 복잡한 기능을 염두에 두고 계획적으로 만들었다면 그와 같은 땜질 처방을 하지 않았겠지만,  진화란 방향성이 정해지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최적의 선택(total maximum)이 아닌, 그때그때 발달 과정에서 가용한 것(regional maximum)을 선택하였으므로 결함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심리와 사고작용은 인체의 다른 기관과 마찬가지로 이런 과정을 겪어 진화했으므로 결함을 내포한다.

인간은 '맥락 기억'(contextual memory) 장치를 가지고 있다. 기억의 대상과 과거에 그것을 체험한 맥락이 함께 얽혀 저장되어 있으며 불러일으켜 진다. 따라서 기억의 대상에 수반된 맥락이 기억 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이는 과거 원시 인간의 생존 조건에 기인한다. 과거에 체험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잘 기억해 내는 것은 원시인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이렇게 맥락이 기억에 영향을 주는 상황은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을 방해하며, 기억 자체를 외곡시킨다. 

사람들은 그때그때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따라 움직이며, 좀처럼 논리적으로 따지며 사고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복잡한 사안은 논리적으로 손익을 따지고, 미래에 예상되는 결과를 염두에 두고 생각할 때만 잘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렇게 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피곤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할 때 찬찬히 사고하는 능력은 가동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과 부합되는 것을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반대되는 것은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자신이 믿는 것에 부합되는 사실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자신의 믿음에 부합되지 않는 사실은 소홀히 하고 외곡하여 인식한다. 믿음이나 감정이 이성적인 사고를 방해한다.

인간은 즉시 혹은 단시간 내에 쾌락을 주는 것에 과도하게 중요성을 부여하는 반면,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오는 것에는 중요성을 덜 둔다. 나중에 후회할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당장의 쾌락의 유혹을 거부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은 오늘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성향을 타고 났다. 불이익이 돌아올 것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일을 미룬다. 심한 우울증에 빠지거나, 과도한 염려와 초조함, 제어하기 힘든 분노 등과 같이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에 빠지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인간 심리에 내재한 다양한 결함은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클루지'로 해석해야 한다. 오랜 인간의 원시 생존 시기 동안 진화된 뇌가, 생존 상황이 전혀 다른 현대 사회에는 맞지 않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된다. 이러한 인간 심리의 결함을 최소화하는 몇가지 방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다양한 여러 대안을 생각해 볼 것, 기존에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질문해 볼 것,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하여 인과관계인 것은 아님을 명심할 것, 자신의 생각이 충동과 감정에 의해 덜 좌우되도록 상황을 조정할 것(즉 피곤하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하지 말 것, 중요한 사안은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볼 것), 이익과 비용을 대비하여 생각하는 습관을 키울 것, 자기 자신으로부터 거리를 두어, 만일 제삼자라면 어떻게 할지, 미래의 나는 오늘의 나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등을 염두에 둘 것, 합리적으로 생각하도록 수시로 자신을 일깨울 것, 등.

이 책은 인간의 비합리적, 감정에 휘둘려 생각하는 성향에 대해 쓴 다른 심리학 책들과 유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요컨대, 인간이 비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인간 본능의 핵심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심리적 결함에 덜 빠지려면, 심리적 결함의 힘이 자신에게 항시 작용하고 있음을 의식하고, 자기 통제 훈련을 통해 생각의 근력을 기르고, 경험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생각의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적은 상황으로 자신을 조정해야 한다.

2023. 1. 28. 13:06

William H. McNeill. 1977. Plagues and Peoples. Anchor Books. 2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전염병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역사 전개에 따라 서술한다. 저자는 서구,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전지구적인 사람과 물자의 교환에 강조점을 두고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전염병의 역사는 이러한 역사 접근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전염병에 대한 자료는 미진하므로, 많은 경우 상황 정보를 종합하여 추론한다.

전염병은 인간과 접촉이 잦아지면 '문명화'(civilized)의 과정을 겪는다. 특정 전염병에 처음으로 노출된 인구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는다. 한 마을 전체가 몰살하거나, 백명 중 한두 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에 치명적인 병원체는 대상 인구를 소진한 다음에는 계속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에게 덜 심한 피해를 입히는 변종으로 대치된다. 한편 이러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노출된 인구는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면역력이 없는 다음 세대로 대체되기 전까지 같은 전염병으로 다시 크게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이렇게 병원균과 인간 상호간에 적응(adaptation)이 진행되면,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태어난 면역력이 없는 아동들에게만 치명적인 병으로 안정화(stabilized)된다. 특정 전염병은 대체로 3~4세대의 주기, 즉 약 100년을 주기로 하여 다시 찾아와 큰 피해를 입힌다. 3~4 세대가 지나면 특정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염병은 대부분의 성인에게 다시 큰 피해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이 16세기까지 모든 인류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경험이었다.

인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전염병 즉 생물체에 기생하면서 숙주와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인 '미세한 기생충'(microparacitism),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인간에 기생하면서 그들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인간들인 '큰 기생충'(macroparacitism)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 역사가 전개되었다. 큰 기생충의 적응 방식은 미세한 기생충의 적응 방식과 유사하다. 큰 기생충인 지배자들은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폭력을 바탕으로 전쟁, 약탈, 세금, 지대, 등의 방식으로 빼앗는다. 이웃 나라를 정복한 지배자들은 초기에는 생산자들이 생존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게 수탈하여 생산자들의 생산 기반을 몰락 시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이 계속 생산을 할 수 있을만큼 남겨두고 수탈을 하며, 지배자와 생산자간 안정된 공생관계가 자리잡는다. 큰 기생충이 생산자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면, 생산자들의 영양 상태가 악화되고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여져 전염병의 피해가 커진다. 전염병이 몰아닥쳐 생산자들의 생산 능력이 떨어졌는데도, 큰 기생충이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탈을 계속할 경우, 그 사회는 붕괴하게 된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을 적정 수준으로 착취하여 둘 간의 관계가 안정화된다.

인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즉 기원전 500년경에 이르러,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지역이 주요 전염병에 접촉한 경험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중동에 기원한 고대 문명과, 중국, 인도 문명 사이에 드물지만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때때로 이루어지면서, 통일되고 문명화된 전염병의 풀이 형성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로 인구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인구 증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안정 상태가 1,200년대까지 이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전염병이 사건의 전개에 미친 영향을 과소 평가하는데, 이는 전염병의 출몰이 예기치 못한 사건이며,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 예컨대, 서구에서 아테네의 몰락, 페르시아의 패배, 로마제국의 붕괴, 중세 봉건제의 발달, 등에서 전염병의 발흥이 사건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요인이다. 또한 황하강 유역에서 시작된 중국문명이 1300년대까지 양쯔강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인도 북부의 세력이 인도 중부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한 것 역시, 아열대 지역의 높은 전염병 위험이 서늘한 지역에서 시작된 문명의 남하를 막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지역은 전염병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낮으며, 생산력이 높지 못하여 큰 규모의 비생산인구를 부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몰살을 당하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이념과 권위 체계에 대한 신뢰를 거둔다. 대신 이러한 혼란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구하는 데, 기독교, 불교, 유교는 사람들의 고통을 토양으로 성장하였다. 세속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람,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기독교는 이를 하나님의 심판, 인간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설명하였으며, 죽은 다음 천국에 간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의 허무를 달래 주었다. 불교는 이러한 고통과 혼란에 대하여, 세속적 욕망에서 물러날 것과, 죽은 다음 다시 환생한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위무하였다. 유교는 가족의 유대를 강조하여 조상에서 자신 그리고 후손으로 이어지는 연결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잊게 하였으며, 중앙집권 체제에서 가족의 확대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관료적 의례와 절차를 믿음의 일부로 만들었다.

1300년대에 흑사병이 유럽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흑사병은 쥐를 매개로 하여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이다. 이 병원균은 히말라야 북단에 원천을 두고 있었는데, 1200년대 중반 몽고 제국이 이 지역에 정벌을 갔다 돌아오면서 병원균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이 징기스칸의 서방 정벌을 따라서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을 넘어 터키와 헝가리까지 진출했으며, 마침내 1300년대 초에 서유럽을 휩쓸었다. 몽고의 서방 정벌이 헝가리에서 멈추게 된 이유 역시 몽고 정벌군이 흑사병으로 크게 피해를 입어 후퇴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흑사병은 선박을 통해 이탈리아 북부에 유입되어 유럽 전체에 퍼졌다. 서유럽에서는 초기에 큰 피해를 입은 뒤, 이후 다시 흑사병이 몰려왔을 때 격리와 검역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피해를 점차 줄여 나갔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도입하지 않아 1700년대까지도 흑사병의 출몰로 큰 피해를 입었다.

흑사병은 기존의 권위와 이념 체계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중세 시대에 굳건했던 정통 기독교의 조직과 교리 대신에, 신비주의와 내면의 성찰을 강조하는 믿음이 활개쳤으며, 기존의 기독교 교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1500년대의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흑사병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이 무력한 것을 체감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헌신이 약화되었다. 이는 1500년대에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난 르네상스와 과학기술의 발달을 낳았다. 흑사병에 대한 대응 조치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중앙집권이 확대된 반면 교회와 지역 영주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흑사병은 1300년 무렵에 중국으로부터 화약이 도입되고, 이후 총과 대포가 발명되면서 봉건 영주와 기사의 세력이 약화된 것과 더불어 중세를 붕괴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흑사병은 서유럽 전체에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는 중세의 생산과 사회관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한편 이 시기 중국에서는 몽고제국의 후손인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섰으며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는데, 이러한 변화 역시 몽고 지역에서 흑사병의 피해가 심각하여 지배력을 계속 행사하기 어려웠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1400년대 후반에 유럽은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었다. 유럽인들은 대서양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였으며, 바다를 통해 아시아에 진출하였다. 유럽 세력이 대양을 넘어 확장하게 된 원인은, 1300년대 이래 거듭된 흑사병의 위협을 이겨내고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대에 중국의 명나라는 해외로의 진출을 억제하고 중국 대륙 내로 한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지배하였으므로, 지배권의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펼쳤다. 반면 유럽은 중세의 봉건체제를 벗어나 중앙집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작은 나라로 쪼개졌으며, 이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아메리카인들은 유라시아의 전염병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었으므로,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마치 유럽인이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흑사병에 처음 노출되었을 때처럼. 외부에서 온 전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반면, 이러한 병원균에 면역력을 가진 침략자들은 거의 피해가 없는 것을 보고, 전염병으로부터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생활하거나, 지금까지 자신의 사회의 믿음과 권위 체계를 부정하고 침략자의 지배와 이념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1600년대 이후 유럽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웬만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전염병이 돈다고 해도 때 방역과 격리 등의 방법으로 전과 같이 큰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수입한 감자, 옥수수, 알파파 등의 생산성이 매우 높으므로 인구 전반의 영양 수준이 높아졌으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인이 이동하면서 유럽의 인구 압력이 낮아진 것, 등이 인구 증가의 원인이다. 1700년대에 들어 경험주의의 과학적 접근이 의료 분야에 확대되면서 병원균의 확산을 억제하는 실증적인 방법이 개발 보급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홍역을 예방하는 예방 접종이 그것이다. 또한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를 개선하는 조치들이 속속 전개되었다. 1800년대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병원균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전염병은 마침내 인류가 실체를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대상이 되었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럽의 도시들은 주변 농촌지역보다 사망율이 높지 않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전까지 도시인의 수명은 농촌 사람들보다 낮았으므로, 계속하여 주변 지역으로부터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어야만 도시가 유지되었다. 1800년대에 서유럽의 위생과 의료 지식이 전세계의 유럽인이 진출한 지역에 보급되면서, 한 지역의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전염병에 노출되어 몰살당하는 현상은 사라졌다.

이 책은 거의 반세기전에 집필되었음에도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서유럽에 국한된 시야를 세계로 확대시키고, 지배자와 정치 분야에 집중된 전통적 역사 서술을 넘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아우르고 사회전반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안목을 제공한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2023. 1. 23. 17:10

홍완식. 2021. 소재, 인류와 만나다: 인간이 찾아내고 만들어온 모든 소재 이야기. 삼성경제연구소. 360쪽.

저자는 소재공학과 교수이며, 이 책은 인류가 발견 혹은 발명한 소재를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간략하게 소개한다. 돌, 금속, 청동기, 도자기, 콘크리트와 유리, 비료와 폭약, 철강, 섬유와 수지, 플라스틱의 순으로 설명한다.

각 소재에 관해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발견 혹은 발명되었으며,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이용되는지, 등을 설명한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화학적 조성을 포함해 체계적인 설명을 시도하나, 뒤로 갈수록 단편적인 에피소드가 주를 이룬다. 저자가 이 분야의 연구자이므로, 각 소재에 대해 과학적인 배경 지식이 제시된다. 그러나 수시로 단편적이고 직접적으로 연관이 없는 군더더기 인용이 많이 붙어 있어, 잡다한 상식을 넓히는 수준에서 만족해야 하는게 아쉽다. 단편적인 사항을 망라하는 책은 다 읽고나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저자의 전문지식을 담아 각 소재에 대해 체계적으로 일반인이 알기 쉽게 정리해 설명했다면 과학분야에 좋은 책이 되었을텐데. 물론 그러러면 이 책을 쓰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만.

2023. 1. 22. 13:52

박창식. 2017. 언론의 언어 왜곡, 숨은 의도와 기법. 커뮤니케이션북스. 109쪽.

저자는 한겨레신문사 기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몸담은 한겨례말글연구소의 세미나에서 전개된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언론사들이 정치권력과 관련하여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는지 설명한다.

언어는 말 자체의 의미와 함께 사회에서의 권력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은 언어 조작과 통제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며, 이는 사람들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릇되게 사고하도록 한다. 보수 언론은 권력의 편에서 언어의 조작과 통제에 가담하며, 진보 언론은 권력의 언어 조작 압력을 거부하려 한다. 근래 한국에서는 정치 권력 못지 않게, 대자본의 힘이 세기 때문에, 언론은 자본가의 눈치를 보며 언어 구사에 몸을 사린다.

언어를 통해 대중의 인식을 통제하는 다양한 방식이 소개된다. 완곡어 사용, 프레임 설정, 의도적인 방향의 은유, 선정적 측면만 선택적으로 부각하기, 등이 권력자의 편에서 흔히 사용된다면, 진보 측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사과 등이 사용된다. 그외, 이념적 색채가 담긴 용어, 피동형 문체, 등도 권력자의 편에서 자주 사용한다.

이 책은 저자의 정치부 기자 경력이 곳곳에 잘 뭍어나 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례를 사용하며, 읽기 쉽게 쓰였다.

2023. 1. 20. 16:02

Daniel Kahneman, Oliver Sibony, and Cass Sunstein. 2021. Noise: A Flaw in Human Judgement. Little, Brwon Spark. 395 pages.

저자는 심리학 및 행동경제학자들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평가하고 판단할 때 저지르는 오류에는 어떤 것이 있고, 왜 생기며,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 심리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여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통계학적 논리가 논의의 바탕에 깔려 있다.

판사가 범죄자에게 부과하는 형량, 보험 감정사가 보험 대상에 대해 산정하는 보험료,  기업의 채용 인터뷰에서 지원자에 대해 매기는 평정 점수, 환자의 병에 대한 의사의 진단, 기업의 미래 매출 예측, 종업원의 업무 성과 평가, 등 거의 모든 평가와 판단 행위에서 평가자에 따른 평정 결과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는 일반적인 평가뿐 아니라, 관련 분야의 전문지식을 요하는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의 불일치가 심하다. 저자는 참 값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소음'(noise)이라고 칭한다. 사람들이 참 값에 근접한 평가를 할수록, 즉 노이즈를 줄일수록 효율과 공정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 내지는 평가자들 사이에 불일치를 줄이는 것은 실질적이며 중요한 과제이다. 

노이즈의 구성 요소를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동일한 대상에 대해 여러 평가자들의 평균값이 참 값에서 멀어진 것은 '편견'(biase)에 해당하는데, 사람들은 평가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주로 이것에 관심을 기울인다. 노이즈는 편견과는 별개로, 평가자들의 값이 서로 간에 벌어진 정도이다. 노이즈는 평가자 각각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평균적인 성향인 level noise와, 이와는 별도로 특정 성격의 사례에 다르게 반응하는 pattern noise로 나눌 수 있다. 이 두가지 이외에도, 일관된 패턴이 없이 그때 그때의 평가 환경에 따라 다르게 평가하는 occasion noise 가 있다. 

노이즈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평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 대신, 그보다 쉬운 다른 문제로 대치하여 평정하려는 심리적 성향, 평정하는 기준이 되는 잣대가 사람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 평정자 개인의 과거 경험이나 가치관에 기인한 특이한 평가, 등등.

노이즈를 줄이는 여러 방법을 소개한다. 평가자의 지능이 높고, 관련 전문성이 높을수록 노이즈는 작다. 여러 평가자들이 독립되게 평가하도록 하여 이들의 평가 결과를 평균하면, 개별 평가자의 평가 결과보다 노이즈가 작다. 이는 "군중의 지혜"(wisdom of the crowd)라는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평가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정보를 배제함으로서 사전적인 편견을 줄이면 노이즈가 줄어든다. 평가 대상을 구성하는 영역을 분석적으로 구분하여, 각 영역에 대해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이들을 종합하는 식으로 단계적으로 접근한다면, 평가 대상에 대하여 뭉뚱그려서 직관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노이즈를 줄일 수 있다. 평가 척도의 각 값에 대해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사례를 제시하여, 평가자들이 평가 척도의 각 값에 해당하는 사례와 평가 대상을 비교하는 방식으로 평가하도록 한다면, 평가자에 따른 척도의 주관성 문제를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평가 대상들 사이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평가 대상들에 대해 절대적 수준 점수를 부여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이는 사람들이 절대적인 수준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반면, 사례 비교를 통한 상대적인 평가는 비교적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가 대상이 7개를 넘어서면, 인간의 마음이 한꺼번에 다룰 수 있는 복잡성의 범위를 넘어선다. 따라서 많은 수의 대상에 대해 일목에 전체를 비교하기보다, 단계적으로 접근하여, 먼저 몇개의 큰 그룹으로 나누어 순위를 매기고, 각 그룹 내에서 다시 구성원들 사이에 순위를 매기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   

평가 대상을 그와 유사한 범주의 한 예로 간주하여 범주 전체의 평균을 기본(base)으로 하고, 평가 대상에 대한 직관적인 평가 값을 다른 한극점으로 하여, 두 극점 사이에서 평가 대상이 그가 속한 범주 평균에서 벗어나는 정도에 따라 비례적으로 조정하는 방법을 적용하면 훨씬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사건은 평균으로 수렴한다는(regress to the mean) 원칙을 응용한 것이다. 

기계적으로 규칙을 정하여 그에 따라 평가하거나 알고리즘을 적용하여 자동 평가하는 것이, 평가자 개인에게 재량을 크게 부여한 평가보다 노이즈가 훨씬 작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신의 재량이 줄어드는 것에 심하게 저항하기 때문에, 기계적인 평가를 도입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한 사람들은 평가의 정확성이 떨어지더라도, 기계나 규칙에 따른 자동 평가보다는 인간이 평가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평가의 정확성이 떨어지면 그에 따른 효율성 손실도 커지기 때문에, 규칙의 엄격성과 인간적 재량 사이에 어느 정도어데 타협점을 찾아 한다.

이 책은 저자의 이전 책인 Think, fast and slow 와 마찬가지로, 체계적인 연구 결과에 기반한 정보로 꽉꽉채운 제법 전문적인 책이다. 통계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기에 저자의 설명을 이해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저자의 번득이는 지적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규칙과 알고리즘을 통해 노이즈를 줄이는 것이 가능함에도, 전문가들이 판단의 재량권이 줄어듦과 함께 권위가 줄어들 것을 염려하여, 갖은 이유를 대면서 규칙과 알고리즘의 도입을 반대한다는 비판이 통렬하다.

과거 기계화와 자동화가 진행되면서 노동의 기술수준이 떨어지는 "deskilling" 현상이, 앞으로 전문직 분야에도 확대되리라 예상한다. 과거에 장인(craftman)이 준기술직 (semi-skilled)에 의해 대체되었듯이, 전문직 또한 준기술직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의료 분야에서 영상 판독이나 시험결과 판단이 의사로부터 컴퓨터와 준기술직 사람에게로 넘어가고, 세무사의 일이 세무 소프트웨어에 의해 대치되고 있듯이, 앞으로 판사와 변호사의 일이 법규와 판례를 해석하고 종합하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어느 정도 대치되는 날이 올 것이다.   

2023. 1. 16. 12:34

한혜경. 2022. 기꺼이 오십, 나를 배워야 할 시간: 오래된 나와 화해하는 자기 역사 쓰기의 즐거움. 297쪽.

저자는 사회복지를 교수를 하다 은퇴하여 노년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이다. 이 책은 저자가 진행한 '자기 역사 쓰기' 강좌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어떤 것이며, 어떤 효과를 낳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사람들에게 50세는 성취와 실패, 기쁨과 실망의 경험이 축적되어, 세상과 자기 자신에 대해 웬만큼 알게 되는 나이이다. 수명이 늘어 이제 30년 이상을 더 살아야 하기에, 은퇴를 앞두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숨어 있던 외곡과 자신을 힘들게 만든 요인을 발견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과 상처가 일생동안 자신을 따라다녔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아픈 기억을 자신에게 드러내는 자각의 과정을 통해, 더 이상 이것에 지배되지 않는 마음의 힘을 얻는다.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는 과정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자신을 부정하던 관성에서 벗어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삶의 고유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찾으려고 하게 된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던 관성에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더 이상 늦기 전에 해보려고 시도하게 된다. 회사 일에 매몰된 인간에서 벗어나, 직업이나 직장과는 별도로 진정한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사회복지와 심리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삶과 나이듦에 대해 잘 해석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생의 고개를 넘어 내리막을 바라보면서, 지나온 삶에 대한 회의와 함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문을 품게 되는데,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처럼 자신의 지나온 삶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면 좋겠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엮어낸 저자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 글을 읽으면 누구라도 그렇게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길 것이다.

 

2023. 1. 15. 12:57

이즈미 마사토 (김윤수 옮김). 2014. 부자의 그릇: 돈을 다루는 능력을 키우는 법. 다산 북스. 223쪽.

저자는 경제금융 교육 전문가이며, 이 책은 저자의 과거 경험을 소재로 쓴 우화를 통해 어떻게 돈을 관리해야 하나에 관해 교훈을 제시한다. 돈은 사람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돈의 힘에 휘둘려서 기존에 생각하던 방식이나 기존에 소중히 여겼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망쳐버리기까지 한다.

돈은 삶에서 꼭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혼란하게 하고 감정에 휘말리게 한다. 이 책의 우화에 등장하는 화자는 자신의 과거 사업 실패 경험을 이야기 한다. 그는 주먹밥 판매 사업을 시작하였을 초기에 매출이 급상승하여 흥분한다. 새로 개발한 제품이 엄청나게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자신의 재무와 관리 능력의 범위를 넘어 여러개의 매장을 빚을 내어 서둘러 확장한다. 그러나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신제품에 대한 평판은 썰물처럼 빠져버리고, 결국 빚에 몰려서 사업의 핵심 기여자들과 결별하고, 가족에게 소홀하여 이혼 당하고, 길거리에 나앉는다.  열심히 했지만 자신의 능력에 대한 판단을 그르쳐 실패한 것이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수준으로 서서히 사업을 키워 나갔다면 성공했을텐데, 일시적으로 돈이 벌리는데 흥분하여 신중함과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잃은 것이다.

사람들이 돈을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돈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있다. 돈을 관리하는 능력, 부자의 그릇을 키울 때,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돈을 맡기고, 부자가 될 수 있다. 돈은 결국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돈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하지만, 돈에 지배당하지 않고 돈과 공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 책은 돈을 버는 특별한 비결을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 빠질 수 있는 위험 중 하나를 예로 제시할 뿐이다. 좋은 아이디어와 운이 결합하면 돈을 벌 수 있지만, 짧은 시일내 큰 돈을 벌겠다는 성급함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에, 부자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돈관리 능력 범위 내에서 서서히 부를 쌓아 나가고, 그러면서 자신의 능력이 길러지는 만큼 돈도 함께 벌리게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의 능력과 운이 닿는 만큼 돈이 들어온다는 메시지는 별로 특별하지 않다.

 

2023. 1. 13. 15:48

자청. 2022. 역행자: 돈, 시간, 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웅진 지식하우스. 289쪽.

저자는 온라인 상담사업, 유투버, 온라인 마케팅 사업으로 성공하였으며, 이 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본능과 자아가 지시하는 길을 따라 습관적으로 살아가는데, 그러면 성공할 수 없다. 본능을 거스르고, 지금까지 살면서 구축된 자아를 버려야만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저자는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사는 사람을 순행자로, 본능을 거스르며 사는 사람을 역행자라고 지칭한다. 인생은 게임과 같은 것인데, 게임을 잘 하려면 게임의 규칙과 이기는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하려고 하는 분야에 관해 집중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면,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다. 다음 일곱가지의 길을 순차적으로 수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첫째, 자의식 해체. 사람들은 강고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이 자아는 변화나 새로운 정보에 대해 부정으로 일관하고, 외면하며, 자신의 상태를 합리화하는 데 능하다. 성공하는 첫번째 길은, 이러한 강고한 자아를 해체하는 일이다. 자신은 어리석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틀리다는 것을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의 경험이나 새로운 정보에 마음을 열고 배우려고 다가가게 된다.

둘째, 정체성 만들기. 자신이 되고 싶어하는 상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나간다. 이를 위해 관련된 서적을 열심히 읽고, 자신의 환경을 그러한 새로운 상에 맞게끔 바꾸어 가면서, 자신에게 변화의 압력을 가한다. 남들의 성공 수기를 열심히 읽으면 일종의 세뇌 작용이 일면서, 그러한 새로운 모델로 자신을 몰아가게 된다.

셋째, 유전자 오작동 극복. 인간의 뇌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면서 새로운 것, 변화를 거부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이러한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주위 사람의 눈을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극복해야 한다. 

넷째, 뇌 자동화. 운동을 통해 근육을 향상시키듯, 뇌의 기능도 훈련을 통해 최적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세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하나는 2년 동안 매일 책을 두시간씩 읽고 글을 쓰는 훈련을 한다. 저자가 이를 실천해 보니 생각의 발전, 뇌의 효율성이 엄청나게 향상되었다고 강조한다. 두번째는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적당한 일에 착수한다. 복리로 이자가 불어나듯이 조금씩이라도 매일 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엄청난 결과를 낳는다. 세번째는, 뇌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다양한 시도를 한다.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지금까지 안가본 길을 걸어보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여 뇌가 활발히 작용하도록 한다.

다섯째, 본능을 거스르며 사는 역행자의 지식을 체득한다. 자기 것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데, 이를 극복하고 남에게 베푸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남에게 후하게 줄 때에만, 그 사람이 나에게도 베풀기 때문이다.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확율에 따라 베팅한다. 성공확율이 높은 쪽으로 꾸준히 의사결정을 해나가면 결국 성공하게 된다. 설사 단기적으로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다음번에는 더 업그레이드 된 접근을 하게 된다. 하나의 깊은 능력보다는, 각각의 분야에 대해 깊지는 않지만 다양한 여러 능력을 조합했을 때, 새로운 아이디어와 독보적 능력이 만들어진다. 하나의 깊은 능력은 천부적 재능과 오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에 범인은 접근할 수 없지만, 여러 능력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길러 조합하는 방식은 보통사람에게도 가능한 성공의 길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기른다. 이 능력은 독서를 통해 동서고금의 지혜를 많이 접하므로서 길러질 수 있다. 먼저 안되는 이유를 댈 것이 아니라 일단 실행을 해본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아가 발전해야만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이 됬건 일단 실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섯째, 경제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 루트는 다음과 같다. 돈을 버는 근본 원리는,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고,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는데 있다. 돈을 벌려면, 사람들이 어떤 것에 불편해 하고,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내야 한다. 일상에서 불편한 것, 힘들게 만드는 것에 항시 관심을 열어놓면 사업 아이템이 보인다. 저자는 이별로 괴로워 하는 사람을 온라인으로 상담하고, 마케팅으로 고민하는 사업가들에게 마케팅을 도와주고, 인생의 오작동을 바로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돈을 벌었다. 돈을 크게 벌려면 자신의 노동만으로 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자신이 축적한 자산, 예컨대, 부동산, 주식, 책, 유튜브 강좌, 등이 자신이 자는 시간에도 계속 일을 하여 돈을 벌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업이건 성공하려면, 무턱대고 뛰어 들어서는 안되며, 관련 책을 열심히 읽고, 관련 유튜브를 시청하고, 관련 오프라인 강연을 쫒아다니는 등으로, 그 길을 터득해야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저자는 주말 오후 한가한 시간에 변화를 위한 새로운 시도에 자신을 투자할 것을 권유한다.

일곱째, 역행자의 쳇바퀴. 인생은 새로운 도전을 항시 요구한다. 한 단계의 성공에 도달하면 한단계 더 높은 성공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본능을 거슬러서 사는 역행자의 인생은 결국 도전과 성장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성장, 성공의 단계가 높아지게 된다. 역행자의 길을 가지 않고 본능이 지시하는 대로 살아간다면, 시시포스의 굴레에서 헤메며 불행하게 살게 된다. 성장하는 방법을 모르거나, 성장이 멈추게 되면, 열등감이 쌓이며 주위에 성장하는 사람을 시기하고 헐뜯는 불행한 인생으로 빠지게 된다. 돈은 인생의 목표는 아니지만, 인생을 자유롭게 해주는 데 꼭 필요한 것이다. 돈이 있으면 자신이 원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글 솜씨가 대단한 사람이다. 논리의 흐름이 부드럽고, 곳곳에서 적절한 사례를 구사하면서 읽기 쉽게 썼다. 저자의 꿈이 크게 성공한 작가라고 하는데, 이 정도로 재미있게 설득력 있는 글을 썼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성공에 대한 그의 조언도 어느 정도는 타당한 것 같다. 그의 글에서 배울 점이 많으며,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