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McNeill. 1982.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s, and Society since AD. 1000.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8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기 1,000년대 이래 무력과 전쟁 기술이 세계 역사의 전개에서 차지한 역할을 상세히 서술한다.
농업을 통해 자급자족의 수준을 넘어선 잉여가 생산되면서,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도시 인구와 정치 집단이 출현하였다.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댓가로 보호금을 갈취하는 시스템(protection racket)이 등장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 드리닥칠지 모르는 폭력 집단에 의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당하는 것보다는, 세금이라는 형태의 안정된 갈취를 당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라는 조직된 폭력 집단의 지배를 수용하였다. 폭력집단의 입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위험을 수반하며 불확실한 규모의 수입을 얻는 비조직적 약탈보다는, 조직적 폭력을 기반으로 안정된 지배 체제를 통해 생산자를 착취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적은 위험으로 더 많은 수입을 가능케 하기에 국가체제를 수용하였다. 즉 폭력을 기반으로 한 안정된 지배체제인 국가는 어느 다른 폭력 집단보다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에게 더 많은 소득과 안정을 제공한다.
전 역사를 통틀어 사회 체제를 크게 두 범주, 즉 중앙의 계획과 위계적 명령을 통해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이 운용되는 명령체제(command system)와, 다수의 개인이 참여하여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시장기구에 의해 경제 사회활동이 운용되는 시장체제(market system)로 구분할 수 있다. 공산주의, 중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프랑스의 절대왕정, 독일과 일본의 나찌/군부의 통제 등이 명령체제에 속하며, 자본주의, 개인주의적 시장 경쟁, 영국의 자유주의, 등이 시장체제에 속한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과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명령체제가 지배하는 반면, 시장체제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작은 규모로 전개되고,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독특한 체제이다.
중국은 1500년경까지 생산성이나 군사력에서 서구를 크게 앞섰다. 중국에는 일찌감치 중앙집권 체제가 자리잡았다. 외부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내부에서도 지역간 경쟁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무인 세력은 관료나 문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다. 중국의 유교이념은 인문을 숭상하고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반면, 무력이나 상공업은 천시하였다. 중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무력 집단과 상공인이 연결되지 않았다. 상인은 독자적 권력을 갖지 못해 관료에 의해 재산을 뺏길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이익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번성시킴으로서 부를 늘이기보다는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무인들 역시 상인과 결탁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 권력을 장악하기보다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요컨대 중국의 유교문화권에서는 무기와 전쟁 기술이 발전할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며, 그 결과 무력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서구에서는 1200년경 북이탈리아의 소규모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무기와 전쟁기술을 발전시키는 움직임이 펼쳐졌다. 도시국가는 주위의 폭력집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용병을 고용하였고, 상인이 내는 세금으로 이 비용을 충당하였다.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화약은 서구에서 총포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서구유럽에서 왕이 봉건 제후를 제압하면서 무력 동원의 규모를 키웠으며, 왕들 간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1,400년경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의 무력 각축장은 지중해로부터 대서양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이 무력 수준에서 강국으로 올라섰으며 ,유럽 무대에서는 물론 전세계의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서구 열강들이 유럽 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나날이 향상된 반면, 중국, 아메리카, 중동, 인도 등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무력의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으므로, 전쟁에서 유럽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1,400년대 후반 대양을 통한 서구의 확장이 본격화되었을 때, 비서구 지역 사람들은 이들의 침략에 맞서 참혹하게 패배하였으며, 결국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서구 열강들 사이의 경쟁은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을 제압하고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해전에서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차례로 제압하였다. 영국은 시장체제를 발전시켜 금융가를 통해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던 반면, 스페인과 프랑스는 명령체제의 경직성과 비효율 때문에 전비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높은 비용을 수반했다.
서구에서는 13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부터 무력과 상공업이 서로 연결되어 상승적으로 발전하는 전통이 뿌리내렸다. 무력 집단은 상공인의 부를 이용하여 무력을 확장하였고, 상공인은 무력 집단의 힘을 등에 업고 상공업 활동을 확대하였다. 국가의 무력이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해외에서는 폭력을 동원한 약탈과 상업적 거래의 경계가 모호하였다. 국가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해적 내지 무역상의 활동을 묵인하거나 장려하였다. 서구의 식민지 쟁탈 경쟁은 국가의 무력과 상업적 이익이 결탁하여 전개한 프로젝트였다.
전쟁을 치르려면 거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력집단은 상공인과 어떤 형태로건 연결을 맺지 않고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서구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무기 기술이 경쟁적으로 발전하였으므로, 상공인의 우수한 무기 제조능력은 국가의 무력 경쟁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무력집단과 상공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 모두, 기계적 우수성을 다투는 첨단 무기 개발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었다. 무기 기술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신무기를 개발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더 많은 연구자가 관여해야 하고, 더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은, 20세기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에서 최고조에 달하였다. 소위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가 완벽하게 형성된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군은 군대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평민을 대거 징집하여 전쟁에 투입하였으며, 전투 능력과 업적을 기준으로 군의 위계를 조직하였다. 징집된 평민들은 혁명으로 탄생한 모국의 사활을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함께 전쟁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두어 국민적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나폴레옹이 이끈 전쟁에 헌신적으로 임하였다. 그때까지 유럽의 지배자들은 평민들의 반역을 우려해 자국민보다 외국인 용병을 선호하였으며, 사회의 상층 계급이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군의 지위권을 차지하는 관행을 유지하였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러한 전통적 군대를 전쟁에서 완전히 제압하므로서 새로운 군의 개념을 서유럽에 확산시켰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군의 무기체계와 전쟁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증기기관 덕분에 운송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전쟁의 폭과 규모는, 과거 말과 마차에 의존할 때보다 훨씬 더 넓고 커졌다. 과거에는 전쟁을 치를 때 식량과 군수물자의 조달이 가장 큰 제약요인이었는데, 19세기 증기기관 철도와 20세기초 자동차는 이러한 제약을 완화시켰다. 군의 대규모 조달 물량은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새로운 기술이 생산에 적용될 초기에는 상업적 성공이 불확실한데, 군은 상업적 이해타산을 넘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생산품의 수요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계속된 전쟁은 인구 폭증의 압력으로 초래되는 사회불안을 피하는 효과적 방편으로 작용하였다. 18세기 유럽의 인구 폭증은 기존의 농업 생산성을 넘어서는 규모였는데, 19세기 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수백만의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으며, 잉여 인력의 상당수를 전장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20세기에 벌어진 제1,2차 세계 대전 역시 19세기의 인구 폭증 문제에 대해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거꾸로, 인구 폭증으로 인하여 사회불안 요소가 커지고, 이것이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인과관계를 추리할 수도 있다. 유럽, 특히 스페인, 영국은 자국의 잉여 인구를 식민지에 수출함으로서 인구 폭증의 문제를 해결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도 해외 혹은 시베리아로의 이민을 통해 인구 폭증 문제를 해결하였다. 반면 프랑스는 일찌감치 19세기 초에 출생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인구폭증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전쟁은 기존의 관행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기득권 집단이 기존의 관행을 고집하다가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상대국이 실행하는 새로운 패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전쟁이 빈발하면서 서유럽 국가들 서로간에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보다 효율적인 새로운 관행을 경쟁적으로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효율적인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고집하다가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산업혁명 초기에 기존의 장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였는데, 19세기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소위 '미국식 생산방식(American Production system)'이라 일컬어지던 기계를 이용한 표준화된 대량생산 방식을 무기 생산에 도입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전쟁이후 민간물품의 생산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또한 전국의 농촌 벽지로부터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과거 전통사회의 관습을 버리고 도시적 합리적 행위 규범을 따르게 되었다.
군과 민간 활동은 서로 영향을 교환하였다. 예컨대, 19세기 이래 서구 유럽에서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대규모의 인원과 물자의 생산과 배치를 담당하는 사람을 민간 대기업의 경영자 중에서 구했다. 대규모 전쟁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인원과 물자를 조달하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합리적인 경영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전후 민간의 대기업 경영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동양과 비교해 유럽에서 무력이 크게 발전한 것은 여러 지역으로 차단된 지형적 원인과 함께, 농경이 아니라 유목을 생업으로 한 것에서도 부분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목은 생명 살상을 일상적으로 하며, 특히 겨울이 다가오면 많은 가축을 일시에 죽이는 관행이 지배하였다. 중국의 논농사와 달리 유목은 좁은 지역에서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으므로, 인구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전쟁이 서구에서 더 자주 벌어졌다. 중국의 논농사는 중앙집권의 권력이 농사에 필수적인 치수를 관리하였으며, 농사꾼은 자신의 땅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중앙의 권력에 순종하였다. 동양의 집단주의적 가치나, 무력과 상공업을 경시하고 권위주의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는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반면 수시로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중앙의 권력에 쉽게 반항하며, 서로간 생존을 위한 무력 투쟁도 불사함으로, 서구에서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강조되고 집단간 무력 경쟁의 릴레이가 전개된 것이다.
저자는 전쟁과 무력 활동을 도외시한 역사 서술은 피상적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시작에서부터 집단적인 무력 행사는 인간 사회의 핵심을 차지한다. 무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경쟁하는지는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며, 전쟁의 승패 위험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세계의 역사와 사회의 전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과일나무 > 살구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 본성의 문제를 이해하고 이용하기 (0) | 2023.03.02 |
---|---|
경제학자들은 정부 정책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을까 (0) | 2023.02.27 |
구글의 인사관리 정책 (0) | 2023.02.15 |
가장 현실적인 도덕율을 찾아서 (0) | 2023.02.12 |
아우슈비츠 수용소 탈출기 (0) | 2023.02.02 |
Kevin Kelly. 2010. What Technology Wants: Technology is a living force that can expand our individual potential - if we listen to what it wants. Penguin books. 359 pages.
저자는 Wired 잡지의 창간인이며 작가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술은 자체의 발전 동력과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많은 예를 들면서 역설한다. 특정 기술은 기술 생태계의 일원이며, 기술 생태계는 생명체와 유사하게 진화의 과정을 밟으며 발전한다.
기술 생태계의 관점에서 볼 때, 특정 기술이 출현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는 지금까지 거의 모든 기술은 독립적으로 수행한 두 명 이상의 발명가가 유사한 시점에 특정 기술을 발명하였다는 사실에서 입증된다. 예컨대 진화론은 다윈이외에 왈라스라는 사람에 의해 동시에 발표되었으며, 에디슨의 전구는 수십명의 발명가가 거의 동시에 유사한 발명을 하였다. 특정 기술은 이전의 여러 연관된 기술을 조합하여 새로 만들어지는데, 이를 거꾸로 보면, 여러 연관 기술이 존재하면 이를 조합한 다음 단계의 기술이 만들어지는 것은 필연이라는 말이다.
어떤 기술이건 항시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에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다. 기술은 긍정적 이점이 부정적인 해악보다 조금이라도 더 크기 때문에 출현한 것이다. 기술이 없는, 혹은 새로운 기술을 부정하는 반문명주의자들도 있지만, 크게보면 기술은 인간에게 더 많은 선택과 풍요를 가져 왔다. 인간은 기술의 발달을 거역할 수없다. 기술은 자체의 발전 동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새로운 기술을 사회적으로 금지하는 조치는 성공한 적이 없다. 따라서 인류는 기술 발달을 거부하기보다는, 인간에게 보다 이로운 방향으로 발달의 방향을 잘 유도하여야 한다.
기술의 발전 방향은, 더욱 복잡해지고, 더욱 다양해지고, 더욱 전문적이되고, 더욱 넓게 보급되고, 인간의 자유와 상호 의존도를 높이고, 더욱 아름답게 되는 방향이다. 특정 기술이 동반하는 문제는 새로운 기술로 풀어야 한다. 그런데 특정 기술이 어떤 문제를 가져올지는 그 기술이 적용되어 보아야만 알 수있다. 왜냐하면 특정기술이 어떻게 쓰일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리 예측할 수없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여 이를 금하는 태도는, 혁신과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이다. 기술의 발전 과정은 무한히 계속되면서 인간의 삶의 수준을 높일 것이다.
저자는 과거에 반문명적인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러한 우회 과정을 거쳐 결국 기술 낙관론, 기술 결정론으로 회귀하였다. 개인적인 일화와 독서를 망라하면서, 별반 새로운 아이디어 없이 장황하게 서술하여, 읽어내리기 참 힘들었다. 결국 마지막 한두장에 이르러서는 저자의 장광설에 인내력이 고갈하였다.
'과일나무 > 호두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음악 산업의 경제적 분석 (0) | 2021.10.08 |
---|---|
인생의 마지막 역시 불평등하다 (0) | 2021.09.30 |
질병에서 인간과 동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0) | 2021.09.26 |
왜 어떤 경우에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싸울까 (0) | 2021.09.22 |
침팬지 정치학 (0) | 2021.09.20 |
James Bessen. 2015. Learning by Doing: the Real connection between innovation, wages, and wealth. Yale University Press. 227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새로운 기술이 어떻게 개발되는지, 근래에 왜 임금격차가 확대되는지,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도입해야 할지에 관해 서술한다.
새로운 기술은 소수의 엘리트 발명가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 기술을 적용해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험 속에 체화된 실용적 기술을 통해 발전한다. 기술 혁신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없는 시행착오와 개량을 통해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이루어진다. 처음 아이디어를 만든 발명가를 칭송하지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제 쓸모가 있는 기술로 구체화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점진적 개량 노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노동자들이 현장 경험을 통해 익힌 (on-the-job) 실용 기술들이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기계나 기술이라도 제대로 성능을 내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영국이 개발한 면직 기계를 일본과 중국에 수출했을 때, 영국의 기술자가 함께 따라왔음에도, 이 기계를 활용한 생산성에서 일본과 중국은 영국의 수준에 훨씬 못미쳤다. 일반 노동자들이 보유한 실용 기술은 엔지니어의 추상적 기술 못지 않게 생산성을 내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특정 분야에서 기술의 변화가 빠르며 아직 표준화가 되지 않은 초기 발전단계에는, 노동자들이 실용적 현장 기술을 배우는 것을 꺼린다. 이 단계에는 보편적 아이디어를 보유한 엔지니어의 역할이 중요하다. 반면 기술이 성숙하여 표준화가 된 단계에서는 노동자들이 구체적인 관련 기술을 배워 생산성 향상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기에 임금도 올라간다. 즉 기술이 아직 유동적인 단계에서는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엘리뜨 엔지니어에 머물 뿐 일반 노동자들에게까지 미치지 못한다. 1980년대 이래 정보통신기술은 아직 표준화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관련 기술이 일반 노동자들에게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그 결과 일반 노동자와 엘리뜨 엔지니어 간의 소득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현재 미국의 노동시장은 현장에 필요한 실용적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많으나 이러한 중간 수준의 기술을 갖춘 노동자가 크게 부족한 상황이다.
신기술로 인한 소득 불평등 확대를 줄이려면, 일반 노동자들이 신기술과 관련된 구체적 실용 기술을 익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전문대학의 기술 교육을 적극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국민의 4년제 대학교육을 장려하고, 대학의 고급 연구활동에 재정을 일방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방향이 잘 못 되었다.
새로운 기술 개발을 촉진하려면 기술의 공유를 장려해야 한다. 성숙한 단계에 도달한 기술은 지적재산권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유동적인 초기 단계의 기술에 대해 특허를 남발할 경우, 기술 개발을 방해하게 된다. 특허권을 엄격히 보호하는 정책은 표준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에게 유리하기에, 지금까지 미국의 특허 정책은 특허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발전해 왔는데, 이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start-up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이다. 표준화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불확실한 기술의 경우, 특허권으로 보호하지 않아도 모방을 통해 이익을 거두기 어려운 반면, 서로 모방하면서 기술을 향상시키는 상승 효과가 더 크다.
미국의 20세기 주요 기술의 개발과정을 보면, 정부의 군사 용도의 기술 개발이 민간에 확산되는 과정을 거쳤다. TV, 컴퓨터, 인터넷, GPS, AI, 등 대부분의 핵심 기술은 군사용도의 기술 성과를 민간에서 받아 개량하면서 이루어졌다. 정부가 군사용도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면서 참여 기관과 연구자들 사이에 기술 공유를 적극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연구의 효율이 매우 높았다. 개별 기업은 자신의 연구 과정과 성과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관련 연구자 공동체의 집단적 협력을 기대할 수없다. 근래에 미국의 군사 목적의 연구는 배타적 비밀주의를 엄격히 강요하기 때문에 과거와 같이 높은 연구 효율과 민간 확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이 유럽보다 기술 개발이 활발한 것은, 기술과 기술자에 대한 사회전반의 우호적 분위기와 함께, 기술 기득권자를 보호하는 정도가 유럽보다 덜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에 관심을 가지고 기술 개량에 참여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루어 진다. 기술 개발은 소수의 엘리뜨 엔지니어가 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 일에 참여하면서 배우고 개량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기술은 발전한다.
이책은 저자의 과거 기업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이 실제 어떻게 쓰이고 개발되는지 이야기 한다. 학자가 쓴 글과 달리 이론적 논의보다는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신 기술 개발이라는 것이 실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기 어렵다. 저자는 실제 적용하면서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기술이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한다. 기술발전에 관한 기존의 이야기는 대체로 신화일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기술 개발은 엘리뜨 이론가나 골방의 발명가의 업적만으로는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평이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과일나무 > 모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돈은 어떻게 정치를 지배하나 (0) | 2021.07.30 |
---|---|
노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0) | 2021.07.25 |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필요악인가? (0) | 2021.07.18 |
혁신의 정치학 (0) | 2021.07.06 |
어떻게 실리콘 밸리는 기술 개발의 선두를 차지하게 되었나 (0) | 2021.07.01 |
Joel Mokyr. 2002. The Gifts of Athena: Historical orgins of the knowledge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97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이다. 이 책은 이론적 지식이 서구의 산업혁명과 이후의 경제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연구한 학술서이다. 이론적 지식과 실용적 기술의 관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하는데 기여한 지식의 역할, 공장제 생산의 발전, 보건 지식이 19세기 말 여성의 가사노동에 미친 영향, 기술 혁신에 대한 정치사회적 반발, 경제 성장에 기여하는 지식과 제도, 등을 각 장에서 독립적으로 다룬다.
서구 유럽 그 중에서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성공한 원인은 새로운 기술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지식이 따랐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왜 작동하는지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뒤따르지 않으면, 그 기술은 연관 분야의 기술 개발로 확산되지 않으며, 관련 업계나 일반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어렵다. 새로운 기술이 나타나면 항시 이에 대한 반발이 있는데, 이론적 이해가 없는 새로운 기술은 이러한 반발을 극복하고 확장되기 어렵다. 중국이나 이슬람과 달리 유럽에서 새로운 기술이 계속 연이어 발전할 수있었던 것은 수학, 물리학, 화학 등의 자연과학 지식이 기술 개발과 앞서거나 뒷서거니 하며 발전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은 개발 못지 않게 접근이 얼마나 용이한지가 관건이다. 서구 유럽은 새로운 지식에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기술과 지식은 책으로 정리되어 광범위하게 유통되었으며, 기술자와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모임과 협회가 무수히 많아서 서로 밀접히 소통하였다. 18~19세기에 기술과 지식을 요약한 백과사전이 많이 발간되고 유통되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식에 대해서는 비밀주의보다 자신의 발견을 공개하여 명예를 얻는 관행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다. 기술의 특허제도는 새로운 기술을 널리 확산시키는데 기여했다.
기술과 지식의 관계에 따라 산업혁명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첫번째는 1770년에서 1850년까지로 이 시기에는 기술자의 시행착오가 기술 개발을 주도하던 시기이다. 1860년에서 1910년까지는 이론적 지식과 실용적 기술이 밀접히 서로 연관되어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이다. 1910년대 이후에는 이론적 지식이 선도하여 실용적 기술 개발을 견인한 시기이다. 근래로 올수록 이론적 지식이 기술 개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진다. 예컨대 핵 기술이나 화학물의 개발은 이론적 지식 없이 기술자의 시행착오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산업 혁명이 공장제 생산을 발달시킨 원인 중에는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폭과 깊이가 깊어진 것도 있다. 생산에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높아진 것, 노동자와 노동의 질을 관리해야 할 필요성, 규모의 경제, 등을 대표적인 공장제 생산의 원인으로 든다. 이에 더하여, 개인이나 가정과 같은 소규모 생산단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생산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의 양이 증가했을 때 공장제 생산은 필연적이다. 대규모 공장에서는 기술과 지식의 분업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한다.
19세기 중반에 들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현저히 떨어지며 대부분이 전업주부가 되었다. 이는 이 시기에 보건 지식이 발전하면서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 활동에 관심이 높아진 것이 원인이다. 병원균에 대한 지식이 보급되면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을 과도할 정도로 강조하였기에, 여성들이 가사 노동에 전념하게 된 것이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병의 기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질병의 위험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가정에서 청결과 위생에 대한 집착이 완화되었고, 기혼 여성들이 경제활동 참여를 늘리게 되었다.
혁신에 대한 사회적 반발은 어느 사회에나 일반적 현상이다. 혁신은 기존 기술과 체제에 바탕을 둔 기득이권을 뒤집어 엎기 때문이다. 혁신으로 인해 이익을 얻는 사람들은 시간적 사회적으로 넓게 퍼져 있어 조직화가 어려운 반면, 혁신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은 소수에게 집중해 있으므로 이들은 혁신에 반발하여 조직적으로 저항한다. 혁신의 수용이 시장에 맡겨지는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해결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영국의 산업혁명 시기에 정부가 혁신의 편에서 반발을 진압하는데 앞장섰으며, 지주계급도 혁신의 이익을 나누어가질 수 있었기에 사회적으로 혁신이 빠르게 수용될 수 있었다.
어느 나라도 혁신의 선두에 오래 있을 수없다. 기존의 기술과 체제를 새로운 혁신이 대체하면 새로운 기득권 집단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이후의 혁신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기술발전의 동력이 약화된 이유는, 산업혁명에 일찌기 성공하면서 19세기 후반의 기술발전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가 사회적으로 지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구 사회 전체로 볼 때 혁신의 동력이 꺼지지 않고 계속 지속되었다. 서구 사회는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으므로, 한 나라에서 혁신이 거부되면 경쟁하는 이웃 나라에서 혁신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혁신의 동력이 독일과 미국으로 이전하였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생산성을 높여야 하고, 이는 기술혁신으로만 가능하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거나 아니면 다른 나라에서 발전한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제도적 문화적 환경을 키워야 한다. 다양성을 허용하며, 개방적이며, 혁신에 대한 사회적 보상 장치가 마련되며, 기술혁신으로 발생하는 패자를 포용하는 사회보장 제도 등이 그것이다. 새로운 기술이란 다양한 것의 재조합 recombination 을 통해 탄생하기 때문에, 다양성과 개방성이 중요하다.
이 책은 단일 주제로 관통하지만 엄청나게 다양한 사례들을 인용하기에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장을 좀더 잘게 구분하여 논의를 정리한다면 독자에게 훨씬 친절했을텐데. 여하간 내용이 풍부한 대단한 책이다.
'과일나무 > 모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들의 일상에 숨겨진 진실한 동기를 찾아서 (0) | 2021.03.27 |
---|---|
국가의 폭력을 어떻게 제어할 수있나 (0) | 2021.03.07 |
선진국 경제의 장기 예측 (0) | 2021.02.26 |
왜 경제성장이 중요한가 (0) | 2021.02.24 |
기술 발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0) | 2021.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