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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4. 3. 05:21

할렘을 대표하는 두 흑인 운동가의 대조적인 생애


  

(7-1-3) 두보이스, 1918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귀인상이다흑인 최초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며 흑인 운동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7-1-4) 마커스 가비, 1924짙은 고동색 피부두터운 입술뭉툭한 코투박한 복장전혀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나 그의 연설에 흑인들이 열광했다그는 흑인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줄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1920년대 할렘 르네상스는 흑인의 문예 부흥이 중심이지만 흑인의 지위를 높이는 사회 운동에서도 큰 자취를 남겼다. 그 당시 할렘을 중심으로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두 흑인 운동가, 두보이스(W.E.B. Du Bois)와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의 활동은 이후 흑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이며 그들의 운동 방식 또한 그들의 성격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이들의 생애와 흑인 운동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면 자못 흥미롭다.

두보이스는 1868년 보스턴에 엘리트 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쪽 가계는 노예제 시절 매우 예외적이었던 자유 흑인이다. 조상이 미국의 독립 전쟁에 참가해 자유를 획득했다. 그의 아버지 쪽 가계는 프랑스인과 흑인의 혼혈로 아이티에서 대지주였다. 두보이스는 지식인 부모 밑에서 어릴 때부터 고급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한때 대학 교수를 했으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백인 사회의 위선과 불의를 고발하고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일에 매진했다. 그는 글뿐만 아니라 흑인 중류층을 중심으로 1909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를 만들었다.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등 사회 과학 전반에 걸쳐 그가 논의하지 않은 주제가 없을  만큼 지적인 활동 범위가 넓었다. 그는 흑인의 시민권 획득과 자결, 자조를 강조했는데 대체로 자유, 평등, 인권 등 유럽의 가치에 입각해 흑인의 지위 향상을 도모한 지식인이다. 그의 글과 활동은 이후 흑인 운동의 주류를 형성해 1950년대 민권 운동으로 연결되었으며, 그가 만든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는 흑인 사회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말년에 공산주의를 찬양하다 FBI의 조사를 받았으며 해외에 출국한 뒤 입국이 거절되어 196193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가나에서 사망했다.

   마커스 가비는 지식인 두보이스와 달리 선동가이고 풍운아다. 그는 1887년 카리브 해에 있는 자메이카의 소도시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었으며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다. 중남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쇄공으로 일했고, 한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대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흑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사에서 일했으며,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유명한 연설자의 코너라고 이름 붙여진 연단에서 수시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후 자메이카로 돌아와서는 세계 흑인 향상 협회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백인의 억압 때문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흑인이 아프리카에 있는 흑인과 단결해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의 발상이 엉뚱하지 않은가?

   그는 미국에 건너가 전국을 돌면서 흑인에게 연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조직의 미국 지부를 만들어 미국 흑인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사회 운동을 추진했다. 할렘을 근거로 흑인을 위한 신문을 발간했으며, 흑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산업을 건설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의 흑인을 아프리카 서안에 위치한 라이베리아라에 단체로 이주하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의 흑인이 아프리카로 모두 건너가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웅대한 계획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그곳에 단체로 건너갈 선박을 구입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가 역설한, 아프리카로 단체 이주하는 계획에 실제 동조한 흑인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조직에 400만 명이나 가입했으며 그가 연설하는 곳마다 흑인으로 넘쳐흐를 정도로 호응은 대단했다. 그는 천부적인 연설가였다. 마커스 가비가 불러일으킨 흑인 사회의 열광은 엄청났으므로 미국 정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FBI는 그를 감시하고 사소한 구실로 그들 잡아들였다. 미국 정부는 그의 계획이 사기라고 발표하고 3년간 수감한 후 자메이카로 강제 추방했다. 미국에서 추방된 후 그는 자메이카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의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다 1940년 영국 런던에서 사망했다.

   마커스 가비가 미국에서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다. 감옥에 갇힌 기간을 제외하면 불과 7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자취 는 이후 오래 지속되었다. 1960년대 말콤 엑스가 주도한 흑인 분리주의 운동으로 이어지며,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으로 대표되는 흑인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찾는 흑인 정체성 운동과, 흑인 민족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로 이어진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마커스 가비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가나의 국기는 마커스 가비가 조직한 세계 흑인 향상 협회의 깃발 문양을 빌려왔으며, 그가 제안한 아프리카인의 단결은 아프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frica)’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말콤 엑스가 흑인의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그의 부모가 마커스 가비가 조직한 세계 흑인 향상 협회의 회원으로 열렬히 활동하던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놀랍다. 말콤 엑스는 할렘에서 활동하면서 분명히 마커스 가비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다.

   마커스 가비는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적인 정책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그가 제시한, 전 세계 흑인이 단결해 하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목표나 미국의 흑인이 아프리카로 돌아가 그들만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운 꿈이다. 반면 두보이스는 흑인 엘리트로서 백인 사회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흑인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적인 활동을 많이 했다. 흑인들은 누구를 더 기억할까? 물론 실제 미친 영향력으로 보면 두보이스가 훨씬 크지만, 흑인에게 꿈을 가져다 준 사람으로 마커스 가비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  지 않다. 마커스 가비의 부름에 흑인들은 열렬히 응답했다. 그가 활동하던 때에 할렘의 흑인들 사이에서 불러일으킨 열광은 물론이고 현재도 흑인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컨대 힙합의 노랫말 가사에서 마커스 가비의 이름을 만난다. 마커스 가비는 실행자이기보다는 종교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전설적인 선지자로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유사한 시기 할렘에서 활동한 이 두 인권 운동가는 외모에서부터 활동 성향까지 뚜렷이 대조적이다. 두보이스는 유럽인의 윤곽과 짙은 갈색 피부에 지적 풍미를 풍기는 세련된 엘리트의 모습이다. 반면 마커스 가비는 짙은 고동색의 피부에 아프리카 흑인의 두터운 입술과 뭉툭한 코를 지닌, 세련과는 거리가 먼 비서구적인 모습이다. 마커스 가비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열적인 연설가이기는 했지만 논리 정연한 주장을 폈던 것 같지는 않다. 두보이스의 글은 지금도 대학에서 광범위하게 읽히고 있으나 마커스 가비의 연설은 글로 출판된 것이 없다.

   마커스 가비는 조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가 만든 조직은 두보이스가 만든 조직에 비해 이상은 높지만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 한 일은 별로 없다. FBI가 그를 조사해 사기죄로 감옥에 집어넣었을 때, 그가 한 약속에 비해 실제 진척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기를 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상적인 약속을 실행에 옮기려 했으나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약속을 믿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가 사기를 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두보이스는 백인을 능가하는 지력을 이용해 백인에게나 흑인에게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했다. 반면 마커스 가비는 흑인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줄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마커스 가비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수의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흑인의 감정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백인 식민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억눌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흑인에게 흑인도 고유한 가치를 가진 존귀한 존재이고 아프리카의 뿌리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을 가져다주었다. 흑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후세 사람은 그들의 삶의 방식만큼이나 다르게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두보이스는 흑인 연구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학자로서, 하버드 대학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있다. 그 연구소에는 그의 지적 활동과 관련된 유물이 보존돼 있다. 반면 마커스 가비의 자취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할렘의 공원이 전부다. 그가 활동했던 할렘의 사무소나 집은 헐린 지 오래이며, 그의 유물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는 흑인 민중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2014. 6. 29. 15:55

앨리스 아일랜드와 인디언 박물관

_유럽 이민자의 꿈과 인디언의 슬픈 자취

(2-3-2a, 2-3-2b) 엘리스 아일랜드 입국 심사장의 과거와 현재. 1904년에 찍은 이 사진 속의 입국 심사장은 가축 출하장을 연상시킨다. 미국의 백인 3분의 1의 선조가 이곳을 통해서 들어왔다. 텅 빈 입국 심사장 홀에 서면 백 년 전 이곳에서 웅성대던 탄식과 환성이 환청처럼 들릴 것 같다.


   엘리스 아일랜드는 자유의 여신상과 한 짝이다. 엘리스 아일랜드는 자유의 여신상 옆에 있는 조그만 섬으로 1892년에서 1954년까지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입국 심사를 받던 곳이다. 1924년 이민법이 개정되어 미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이 실질적으로 중단되기 이전까지 이곳은 유럽 특히 남유럽과 동유럽으로부터 오는 이민자로 붐볐다. 1,200만 명의 이민자들이 이곳을 통과했다. 현재 미국 시민의 3분의 1은 그들의 선조가 이곳을 통과해서 미국에 입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당시는 미국에 들어오는 이민에 제한이 없어 자신이 원하면 언제든지 미국에 갈 수 있었던 시절이다. 미국에 먼저 건너 온 사람들은 친척이나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민을 권유했다. 한마을 사람 전부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경우도 있고, 일가친척이 순차적으로 모두 이민을 가기도 했다. 이민자는 독특한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친숙한 곳을 버리고 낯선 곳을 선택한 사람이다. 이민자는 자신의 모국에서 극도로 가난하지도 또 부자도 아닌 중간층의 사람이다. 자신이 사는 사회에서 중상류층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거나 반대로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은 미국으로 떠날 심리적인 용기 또는 물질적 수단이 없다. 이민자들은 출신 국가는 서로 달랐지만 상대적으로 젊고 모험심이 강한 동질적인 성격의 사람들이었다.

   엘리스 아일랜드를 거쳐 미국으로 온 사람들은 희망과 불안이 교차한 상태였다. 오랜 항해 끝에 이곳 입국 심사장에서 심사를 받고 이 섬을 떠났다. 이 섬에서 평균 두세 시간 정도 체류했는데, 그 시간은 그들에게 일생 잊을 수 없는 긴장과 초조의 시간이었다. 입국자의 2%는 입국이 거부되었다. 이들은 같은 건물에 있는 임시 수용소에 일시적으로 수용되거나 바로 출국 조치되었다. 질병이 가장 큰 사유였으며 범죄 경력자나 불온한 사상을 지닌 사람도 거부되었다. 현재 엘리스 아일랜드의 입국 심사장 건물을 찾으면 입국 심사가 이루어졌던 텅 빈 큰 홀이 가운데 있고 주위로 입국자의 소지품을 전시한 공간이 있다. 백 년 전의 일이지만 이곳에서 입국을 거절당한 사람의 절망을 떠올린다.

   필자에게도 기억에 남는 입국 심사 경험이 있다. 샌프란시스코인지 뉴욕인지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했을 때였다. 국제공항의 입국 심사장에서 별도의 방으로 따로 불려가 한참을 기다리다가 심문을 받았다. 꿀릴 것이 없어서 그리 불안하지는 않았지만, 저 멀리 사무실 한편에 아마도 입국을 거부당한 것으로 짐작되는 일군의 사람들이 경찰의 감시 하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은 미국에 가는 것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지만 일이십 년 전만 해도 광화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비자 면접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 초조와 긴장이 흘렀던 것을 기억한다. 거의 반나절 동안 대사관 담벼락을 따라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비자 면접관의 고압적인 질문 몇 마디에 조마조마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이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힐끗 쳐다보고 서류를 보면서 몇 마디를 툭툭 던지는 것에 굴욕적인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 비자 발급을 거부당하는 일은 아주 흔했다. 미혼 여자라고 거부당하고, 나이가 많다고 거부당하고, 직업이 분명치 않다고 거부당하고, 미국 방문 사유가 불분명하다고 거부당하고, 뚜렷한 이유도 모른 채 거부당하고……. 지금도 미국 공항에서 입국 심사관 앞에 서면 문득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국의 병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2-3-3) 맨해튼 남단 배터리파크에 있는 인디언 박물관 전경. 조각상 속의 인디언은 그리스 여신의 뒤에 숨어 있다. 건물의 대부분이 텅 비어 있는 이상한 박물관이었다. 인디언은 나에게 역사의 실체가 무엇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었다.

 

   맨해튼의 남단 자유의 여신상으로 가는 페리가 출발하는 바로 옆에 인디안 박물관이 있다.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의 분관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세관 건물로 쓰였다. 웅장한 석조의 조각상과 대리석 외관에 비해 전시물은 신통치 않아 특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한쪽에는 인디언의 역사와 유물을 전시해 놓고 다른 쪽에는 인디안 출신 예술가의 현대 작품을 전시하는데 건물 크기에 비해 실제 전시에 사용하는 공간은 크지 않다. 많은 공간은 그냥 텅 비어 있어 막막한 느낌이 든다. 뉴욕에서 인디언의 자취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유럽으로부터 이민자들이 밀려오는 곳의 바로 옆에 인디안 박물관을 세운 것은 아이러니이다. 인디언은 바로 이들 유럽 이민자들 때문에 멸망했기 때문이다. 병균을 가져왔고, 그들의 땅을 탐내서 그들을 죽이고 몰아냈다. 미국에 대해 잘 모르던 시절 인디언은 왜 서부에서만 사는지 궁금했다. 백인이 만든 서부의 신화에 속아 넘어가서 인디언은 원래부터 서부의 야생에서만 사는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사실인즉 인디언은 북미 대륙 전체에 걸쳐서 살았다. 특히 동부와 남부에 기후가 온화하고 땅이 비옥한 곳, 즉 현재 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주로 살았다. 그러나 유럽인이 동부에 정착하면서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살던 인디언은 죽거나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쫓겨났다. 현재 미국의 동부에서는 인디언을 볼 수 없다. 백인들은 침략자의 종교인 기독교와 서구인의 관습을 받아들인 인디언 부족마저도 서부로 쫒아냈다. 인디언들과 체결한 조약은 번번이 폐기되었고, 인디언은 사람이 살기 부적합한 서부의 황량한 건조지대로 내몰렸다. 흑인은 노예로 부려먹지만 인디언은 반항을 해 쓸모가 없다고 하며 아예 제거하려 했던 잔인한 사람들이다. 일전에 서부의 인디언 보호 구역을 방문했을 때 도로 포장도 안 된 진흙길로 연결된 부실한 집에서 비참하게 사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 아팠던 적이 있다.

   19세기 초반에 선출된 잭슨 대통령은 미국의 영웅으로 숭앙받는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서부 변방에서 나온 서민 출신의 대통령이다. 그는 인디언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토벌 전투를 지휘해 얻은 명성으로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인디언 토벌 전투에 참여한 장군들은 죽은 인디언만이 착한 인디언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맨해튼 남단의 인디언 박물관을 방문하면 인디언의 슬픈 자취 바로 옆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보인다. 역사는 승리자의 편이며 패배자에게는 참으로 냉혹하다. 인디언을 생각하면 미국이 부르짖는 인권이나 정의라는 것에 대한 공허함이 밀려온다.

 

 

2013. 1. 5. 20:09

  지난 여름에 출간된 책 "뉴욕사람들" (한울출판사, 2012)의 원고를 나누어서 실는다. 출판사와 계약할 때 온라인 판권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출판사의 허락없이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계약위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온라인 책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고, 이곳에 실는 원고의 모습은 출판된 책 처럼 아름답지는 않으므로 같은 원고이지만 동일한 것은 아니다. 상업적으로 돈을 벌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므로 관심있는 독자에게 읽을 기회를 주는 것이 판권을 보호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머리말과 목차이다. 


<머리말>


처음 외국 여행을 떠나면 사람들은 유명한 관광지를 돌기 바쁘다. 그런 단계가 지나면 이제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의 문화를 음미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문명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 여행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다. 필자의 여행 스타일은 익숙하지 않은 곳에 홀로 떠돌면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람들의 사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이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과 같이 엄청난 자연의 장관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그렇지만 사람만큼 재미있는 것은 없다.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양식은 아기자기하고, 어디에 가든 내가 사는 방식과 흡사하면서도 다른 면을 발견한다. 다른 문화를 접하면 우리 자신에 대한 자각도 높아지기 마련인데, 뉴욕은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특이한 곳이기에 더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 책은 뉴욕을 모델로 미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관찰한 글이다. 뉴욕 맨해튼을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들을 묘사하고, 뉴욕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들은 어떤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이야기한다. 덧붙여 그들이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이 문화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뉴욕에서 필자와 유사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 책은 관광 안내서는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가고, 무엇을 먹고 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 책에서는 뉴욕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비교하고 뉴욕의 관광지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뉴욕, 그리고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까지를 도모한다. 필자가 학교에서 연구하고 강의한 미국학 관련 지식이 곳곳에 깔려있기는 하지만 현학적 논의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이 책을 여가 시간에 재미있게 읽는 가운데 미국인과 미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좋겠다.

오랜 과정을 거쳐 책이 만들어졌다. 이 책의 아이디어는 2010년 교육부의 교육역량강화사업의 일환으로 새로운 교육 테마를 발굴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학습개발원의 성경준 원장님께 감사한다. 연구 과정에서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의 김지환, 박주연, 한상민이 자료 조사를 도와주었으며, 뉴욕 현지에서는 박지영, 조남목이 도움을 주었다. 필자는 과거에 뉴욕에 살았지만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여러 번 뉴욕을 방문했다. 맨해튼 섬을 동서남북으로 걸어서 답사한 것만도 여러 번이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원고를 다듬어 출판하기까지 긴 길을 가야 했다. 한울의 신희진씨는 필자의 어색한 문구를 모두 고쳐주었다. 이 책의 출판을 위해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연구비 지원을 받았음을 밝힌다


<목차>

 

머리말

 

1. 뉴욕의 화려한 부활

1. 우리가 뉴욕이라고 부르는 곳

2.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 1, 뉴욕

3. 뉴욕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뉴욕시는 네덜란드 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2. 뉴욕 문화 상징의 메카

1. 타임즈 스퀘어, 세계의 교차로

그랜드 캐년과는 또 다른 이유로 타임즈 스퀘어를 찾는다

2. 뉴욕의 대표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_전 세계 보물들의 총 집합소 구겐하임 미술관과 현대미술 미술관_현대미술의 색채와 서양인의 공공 관념

3. 관광지 순례

자유의 여신상_자유의 여신상이 표현하는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앨리스 아일랜드와 인디언 박물관_유럽 이민자의 꿈과 인디언의 슬픈 자취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_디즈니랜드에도 급행 티켓이 있다지만 록펠러 플라자_신이 낸 기업인, 록펠러 브루클린 다리_다리 위로 코끼리 행렬이 지나간 이유 유니온 스퀘어_광장에서 해바라기하는 사람들과 파머스 마켓

4. 뉴욕의 교회

세인트 패트릭 성당_억압당한 아일랜드 이민자의 꿈 세인트 존 더 디바인 성당_백년이 넘어서도 미완성인 교회 리버사이드 교회_화석화된 백인 교회 대 살아 있는 흑인 교회 그랜트 장군의 묘_미국 '시민 종교(Civic Religion)'의 지부

 

 3. 로어 맨해튼

1. 그라운드 제로, 911 세계무역센터의 폐허

그라운드 제로와 오바마 대통령

2. 월 스트리트와 유엔 본부

월 스트리트_화려한 만큼이나 위험한, 위험을 사고파는 곳유엔 본부_맨해튼 구석에서 괄시받는 서자

3. 이스트 빌리지, 오리지널 이민자 동네

이스트 빌리지에서 다양성의 매력을 발견하다

 

 4. 뉴욕의 터줏대감

1. 리틀 이탈리, 리틀 이탈리에는 이탈리아 인이 살지 않는다?

콜럼버스 데이 퍼레이드 참관기

2. 유태인의 딜레마, 성공했기에 사라지는 민족

내가 만난 유태인

3. 차이나타운, ‘황색 위협(Yellow Peril)’-인종 차별의 소산

군침 도는 먹거리 천지, 맨해튼 차이나타운 답사기

 

 5. 보보스 문화의 매력

1. 그리니치 빌리지, 맨해튼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보낸 한여름

2. 첼시와 미트패킹, 뉴욕 경제와 함께 부활한 새로운 매력의 발산지

옛 것을 재활용해 성공한 세 가지 사례

3. 센트럴 파크, 도심 한가운데 구현한 완벽한 인공 자연

생활 속의 자연, 센트럴 파크의 진가를 맛보다

 

6. 뉴욕의 상류층 대 소시민

1. 어퍼 이스트사이드, 소위 부자이며 유명한사람들의 동네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사는 부자들의 삶을 엿보다

2. 미드타운 이스트와 어퍼 웨스트사이드, 뉴욕 소시민의 생활

어퍼 웨스트사이 대 어퍼 이스트사이드

맨해튼 보통 사람들의 생활

3. 엘리트 대학 대 서민 대학

컬럼비아 대학교_전 세계 엘리트들의 치열한 경연장, 아이비리그 명문 사립대 뉴욕대_맨해튼 도심 속 낭만적인 대학 생활 뉴욕시립대_오고 싶어 하는 모든 학생들을 받아주는 대학 뉴스쿨_진보적이고 실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대학

 

7. 흑인 문화의 고향

1. 할렘, 흑인 사회 문화의 중심지

할렘을 대표하는 두 흑인 운동가의 대조적인 생애

할렘을 걷다

2. 흑인 교회, 정신적 구원과 실질적 뒷받침이 함께 하는 곳

아비시니안 침례교회 방문기

3. 배드포드-스타이브샌트, 흑인만의 세상

할렘보다 진짜 흑인 문화가 숨 쉬는 곳, 배드스타이

  

8. 뉴욕의 마이너리티

1. 코리아타운, 한국 이민자들의 풍경

2. 이스트 할렘, 푸에르토리코인의 근거지

이스트 할렘 사람들의 사는 모습

3. 인도 사람들, 백인인가 아시아인인가?

4. 퀸즈, 세계 모든 나라 이민자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

퀸즈로 가는 전철 풍경

 

 

2012. 10. 5. 11:41

근래에 어느 곳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편집자가 내 글을 난도질 하여 최종 원고는 초고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 버렸다. 다음은 내가 처음에 쓴 초고이다. 



뉴욕은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 중 1위로 지목된다. 왜 세계 사람들은 뉴욕을 찾을까? 지금 뉴욕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과거에도 항시 그러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 미국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뉴욕은 사람들이 떠나고 빈곤과 범죄가 판치는 무서운 곳이었다. 그 당시 센트럴 파크는 대낮에도 걸어 다니기가 꺼려졌다. 1990년대에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면서 뉴욕은 부활하였다. 인구가 늘고 유명 연예인과 부자가 뉴욕에 산다는 소문이 퍼지고 기업이 뉴욕으로 모여들었다. 이제 뉴욕은 모든 미국인이 한번쯤 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렇다고 뉴욕의 생활이 다른 곳보다 풍족하고 편하기 때문은 아니다. 뉴욕의 집값은 미국에서 가장 비싸기에 모두들 조그만 아파트에서 옹색하게 산다. 뉴욕의 주차비는 엄청나기에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해서 출퇴근한다. 미국의 상징인 무한한 풍요와 소비지상주의는 뉴욕 사람의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뉴욕의 매력은 ‘다양성’에 있다. 뉴욕은 예전부터 미국으로 이민자가 들어오는 관문이었다. 이들은 미국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뉴욕에 자신들만의 민족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19세기에 미국에 온 독일인, 아일랜드인, 이탈리아인, 유태인, 등 유럽의 이민자들이 집단적으로 살던 곳은 지금도 자취를 남기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뉴욕으로 몰려왔다. 중국인, 인도인, 중남미인, 한국인, 베트남인, 러시아인, 중동인, 아프리카인, 등등. 뉴욕에서 만나기 힘든 나라 사람은 아마 북한이 유일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세계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그것도 각각 적지 않은 수가 한 도시에 모여들어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그들은 고유의 언어와 음식과 관습을 가지고 왔다. 성서에 나오는 바벨은 사람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 되어 혼란에 빠졌다고 하는데, 뉴욕은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함 덕분에 융성하고 있다. 다양성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삶의 활력을 제공한다.

뉴욕의 삶은 지루할 겨를이 없다.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을 매일 접하는 것은 때로는 혼란스럽지만 신선한 경험이다. 피부 색깔은 물론, 얼굴 표정, 옷 입는 스타일, 치장하는 방식, 등 외모에서 차이가 난다. 서로 알게 되면, 행동거지나 예의범절, 가족 관계,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지, 어제 본 티브이 드라마, 생각하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나와 약간 다르다는 것을 발견한다. 길에서, 전철에서, 직장에서, 식당에서, 공원에서, 슈퍼에서, 집주위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때때로 문득 느낀다.

아시아 사람은 예의가 바르고 성실하며, 흑인은 정이 많으며, 인도 사람은 계산이 빠르며, 동유럽 사람은 무뚝뚝하고 속을 알 수 없으며, 베트남 사람은 영리하며, 중남미 사람은 열심히 살지만 기분파다. 뉴욕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뉴욕의 음식 문화는 다양하다. 미국의 고유 음식이라고 하면 햄버거와 스테이크 정도일 텐데, 뉴욕에서는 특색 있는 요리를 싼 가격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길모퉁이 피자집은 정통 이탈리아식 피자를 화덕에 구워서 내놓으며, 그 옆 인도 음식점에는 인도 사람이 만드는 특이한 향의 카레 요리가 미각을 자극하며, 그 옆 중국 음식점에는 중국말을 하는 주방장이 만드는 중국 요리가 가지 수를 셀 수없이 많으며, 그 옆 멕시코 음식점에는 타코 요리가 싸고 맛있으며, 그 옆 타이 음식점에는 일전에 태국 여행에서 맛보았던 타이 요리를 타이 여인이 친절하게 서빙하며,... 무궁무진하다. 이들 음식점의 주요 요리만 돌아가며 먹어도 한 달 내내 같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된다. 이 모두가 그 나라 사람들이 고유의 재료로 만드는 ‘정통’ 요리이다.

뉴욕에는 볼거리가 넘쳐난다. 박물관과 미술관이 대체 몇 개인지 셀 수 없이 많다.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이 있다. 인류 문명의 궤적을 보여주는 권위 있는 박물관, 자연사 박물관, 고전 미술 중심의 미술관, 최근의 작품을 전시하는 현대 미술관, 유태인 대학살 박물관, 중남미 문화 박물관, 소방 박물관, 금융 박물관, 디자인 박물관, 등등. 박물관과 미술관이 인류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아이디어를 집약해서 보여준다면, 뉴욕의 수많은 갤러리와 부티크는 아름다움이 요즈음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생생하게 말해준다.

뉴욕에서는 거의 매일 어디에선가 큰 전시회가 열리고 다양한 주제의 행사가 펼쳐진다. 요즈음 한창 진행되고 있는 뉴욕 패션 주간의 행사는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뉴욕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이 벌이는 민족 축제는 뉴욕 생활에 활기를 더한다. 이들은 맨해튼의 번화가에서 화려한 퍼레이드를 벌인다. 남녀노소가 함께 행진을 하면서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고 구경꾼에게 손을 흔든다.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는 동네 전체에 만국기가 휘날리고, 흥겨운 음악이 거리에 넘치고, 노점 좌판에서는 민족 고유의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가게에서는 왕창 세일을 하고, 사람들은 곳곳에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들이 서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이방인인 나도 왠지 즐거워진다.

타임 스퀘어는 뉴욕 도심에 있는 교차로 광장인데 가장 뉴욕다운 곳이다. 화려한 광고 전광판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집채만 한 전광판은 폭탄을 퍼붓듯 정신없이 이미지를 쏟아 낸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독수리가 날다가, 란제리만 입은 여인이 요염한 포즈로 내려다보다가, 갑자기 일렬로 건장한 젊은이들이 행진한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촌사람이 명동에 처음 온 것 같은 표정으로 인파에 떠밀려 간다. 껴안고 키스를 하는 사람들, 광장 계단에 걸터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 움직이는 관광버스 지붕에서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구경하며 에너지를 느끼고 즐거워한다.

뉴욕이 1990년대에 부흥하게 된 것은 미국이 지식경제로 이전하면서이다. 지식을 다루고 지식을 생산하는 전문직이 경제를 주도하면서 다양성은 각광을 받는다. ‘창의적 계급’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아이디어가 삶의 핵심이다. 이들에게 단조로움이란 쥐약이다. 이들은 다양성을 접하면서 활력을 얻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산한다. 뉴욕의 지역신문인 뉴욕 타임즈가 전국적으로 지식인들이 구독하는 신문이 된 것은 당연하다. 뉴욕은 아이디어 산출의 중심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미국적인 삶이라고 하면 교외에 잔디밭이 있고 주차장이 넒은 집에 살면서, 주말에는 거대한 쇼핑몰에서 시간을 보내고, 풍족하게 소비하는 생활을 떠올린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은 편할지는 모르지만 단조롭고 지루하다. 교외는 호기심을 질식시키는 공간이다. 반면 뉴욕의 거리는 항시 사람으로 북적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하고 새로운 자극을 받는 곳이다. 뉴욕의 다양성을 탐내는 사람은 젊은이만은 아니다.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거리에서 한가하게 거니는 노인을 흔히 마주친다.

물론 뉴욕의 삶은 자극이 많기에 때로는 피곤하다. 한국 사람은 이런 삶에 익숙할 것이다. 그런데 서울과 다른 점은 뉴욕에는 사람의 다양성과 그것이 빚어내는 다양한 문화가 있다. 바로 그것이 뉴욕을 활기차고 호기심 넘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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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8. 14. 12:15

  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최근에 "뉴욕사람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문화에 대한 흥미를 배경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 작품이다. 그동안 주로 학술적 글쓰기만을 하다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교양서를 썼다. 출간된 책을 받아 보니 글보다도 내가 똑딱이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가 매우 아름답게 구현되어 뿌듯했다. 사실 이 책은 2년전에 구상하여 작년 봄에 탈고한 것인데, 출판사를 찾고 제작하는 데만 일년 이상이 걸렸다. 우리나라의 고급 교양서 시장이 열악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였다. 근래에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새 책을 구상하고 있는데 과연 햇볕을 볼 수있을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이 문화에 대한 흥미와 지적인 호기심을 잘 결합한 교양서를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을 이 책을 내면서 발견하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만든 책 소개이다. 출판사와의 계약 때문에 본문은 실지 못하지만, 전에 출간한 책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한참 지나 상업적인 가치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다.  


    

이 책은 뉴욕을 모델로 미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관찰한 글이다. 뉴욕 맨해튼을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들을 묘사하고, 뉴욕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들은 어떤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이야기한다. 덧붙여 그들이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이 책은 관광 안내서는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가고, 무엇을 먹고 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 책에서는 뉴욕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비교하고 뉴욕의 관광지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뉴욕, 그리고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까지를 도모한다. 미국학자인 저자가 학교에서 연구하고 강의한 미국학 관련 지식이 곳곳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현학적 논의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미국 문화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뉴욕에 대해 이 책의 저자와 유사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저자는 과거에 뉴욕에 살았지만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여러 번 뉴욕을 방문했다. 맨해튼 섬을 동서남북으로 걸어서 답사한 것만도 여러 번이다. 저자가 꼼꼼히 기록하고 사진으로 찍어 전하는 뉴욕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1장 ‘뉴욕의 화려한 부활’에서는 뉴욕은 어떤 곳이며 그곳으로 몰리는 세계의 인파들은 어떤 부류인지에 대해 개괄했다. 2장 ‘문화 상징의 메카’에서는 뉴욕의 주요 여행지 및 명물들, 교회와 박물관, 대학교 등에 대해 다루었다. 3장 ‘로어 맨해튼’에서는 월가와 유엔 본부가 위치한 남부 지역을 통해 뉴욕의 경제·정치적 풍광을 조망했다. 4장 ‘뉴욕의 터줏대감’에서는 흔히 인종 집합소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민족인 이탈리아 인, 유대 인, 중국인 들의 생활상과 위상을 다루었다. 

5장 ‘보보스 문화의 매력’에 1980년대 상업적 부르주아와 1960년대 보헤미안의 가치를 합성한 보보스 계층, 소위 ‘문화 감각이 넘치는 엘리트’들의 삶의 터전과 매력적인 생활상을 담았다. 6장 ‘뉴욕의 상류층 대 소시민’에서는 뉴욕에서도 경제적 격차가 뚜렷한 지역들을 다루었으며, 7장 ‘흑인 문화의 고향’에서는 흑인 삶의 터전인 할렘과 베드퍼드-스타이브샌트를 기반으로 흑인의 생활상과 위상을 다루었다. 8장 ‘뉴욕의 마이너리티’에 뉴욕의 소수 민족인 한국인, 인도인 등 다양한 이민자들의 삶의 터전과 생활상을 담았다.





<목차>


뉴욕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01_뉴욕의 화려한 부활 
1. 우리가 뉴욕이라고 부르는 곳
2.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 1위, 뉴욕
3. 뉴욕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뉴욕 시는 네덜란드 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02_문화 상징의 메카 
1. 타임스 스퀘어, 세계의 교차로 
▶ 그랜드캐니언과는 또 다른 이유로 타임스 스퀘어를 찾는다
2. 뉴욕의 미술관 
3. 관광지 순례 
4. 뉴욕의 교회 

03_로어 맨해튼 
1. 그라운드 제로, 9?11 세계무역센터의 폐허 
▶ 그라운드 제로와 오바마 대통령
2. 월가와 유엔 본부 
3. 이스트 빌리지, 오리지널 이민자 동네 
▶ 이스트 빌리지에서 다양성의 매력을 발견하다

04_뉴욕의 터줏대감 
1. 리틀 이탈리아, 리틀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인이 살지 않는다? 
▶ 콜럼버스 데이 퍼레이드 참관기
2. 유대 인의 딜레마, 성공했기에 사라지는 민족 
▶ 내가 만난 유대 인 
3. 차이나타운, ‘황색 위협’-인종 차별의 소산 
▶ 군침 도는 먹거리 천지, 맨해튼 차이나타운 답사기

05_보보스 문화의 매력 
1. 그리니치빌리지, 맨해튼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동네
▶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보낸 한여름
2. 첼시와 미트패킹, 뉴욕 경제와 함께 부활한 새로운 매력의 발산지 
▶ 옛날 것을 재활용해 성공한 세 가지 사례 
3. 센트럴 파크, 도심 한가운데 구현한 완벽한 인공 자연 
▶ 생활 속의 자연, 센트럴 파크

06_상류층 대 소시민 
1. 어퍼 이스트사이드, 소위 ‘부자이며 유명한’ 사람들의 동네
▶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사는 부자들의 삶을 엿보다
2. 미드타운 이스트와 어퍼 웨스트사이드 
▶ 어퍼 웨스트사이 대 어퍼 이스트사이드 
▶ 맨해튼 보통 사람들의 생활
3. 엘리트 대학 대 서민 대학 

07_흑인 문화의 고향 
1. 할렘, 흑인 사회 문화의 중심지 
▶ 할렘을 대표하는 두 흑인 운동가의 대조적인 생애 
▶ 할렘을 걷다
2. 흑인 교회, 정신적 구원과 실질적 뒷받침이 함께하는 곳 
▶ 아비시니안 침례교회 방문기
3. 베드퍼드-스타이브샌트, 흑인만의 세상 
▶ 할렘보다 더 진짜 흑인 문화가 숨 쉬는 곳

08_뉴욕의 마이너리티
1. 코리아타운, 한국 이민자들의 풍경 
2. 동부 할렘, 푸에르토리코 인의 근거지 
▶ 동부 할렘 사람들의 사는 모습
3. 인도 사람들, 백인인가 아시아 인인가?
4. 퀸스, 세계 모든 나라 이민자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
▶ 퀸스로 가는 전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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