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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9. 22:00

Yuval Noah Harari. 2018. 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 Speigel & Grau. 323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가 당면한 현실을 진단하고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은 크게 다섯 개 부분, 21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에서는 정보기술과 바이오 기술의 발전이 어떤 문제를 낳는지 설명한다. 많은 인간들의 쓸모없어지며 (irrelevant),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데이타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에서 큰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제2,3부에서는 현재의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해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대면관계는 쇠퇴하고 온라인에 매몰된 사회, 편협한 민족주의의 발흥, 근본주의 신자들의 폐쇄적인 태도, 이민자의 문제, 테러리즘, 전쟁의 위험성, 배타적 국수주의, 세속주의 등이 논의된다. 4부에서는 철학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삶을 검토한다. 인간의 무지, 미래 세계에 정의를 판별하기 어려워짐, 거짓 뉴스, 공상과학 영화에 비친 미래, 등이 논의된다. 5부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인간이 만든 추상적인 이야기의 함정, 명상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된 경험, 등이 논의된다.

저자는 그의 첫번째 책 Sapiens 로 엄청난 유명인이 되었으며, 미래 사회를 논의한 Homo Deus 책에서 기술발달로 인간이데이터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을 그렸다. 이 책은 그가 그동안 여러 군데 쓴 에세이를 모아 놓은 것인데, 앞서 두 책에서 서술한 것들이 곳곳에서 반복되며, 별로 새로운 내용은 없다.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상황에 대해 앞의 책들보다 많이 서술한다. 앞의 두 책에서 보지 못한 서술이라고 하면 제 20장 meaning 이 유일한 데, 삶의 의미를 찾는 문제에 대하여 그의 서술의 요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삶이란 이야기가 아니며 있는 그대로 보라'고 하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바로 전 책이 2년전에 나와서, 새로운 생각을 전개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인 것 같다. 마지막까지 기대를 품고 읽었으나 실망으로 끝났다.

2023. 5. 28. 18:08

Yuval Noah Harari. 2017. Homo Deus: A Brief History of Tomorrow. Harper. 402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자 사회철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인류의 장기적 미래 모습을 예측한다.

인간은 과학기술 덕분에 기아, 질병, 전쟁을 이제 거의 정복하였다. 인간의 다음 도전은 죽지 않고 오래도록 살고, 더 높은 행복을 누리며, 세상에 대한 통제력이 높아져 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를 조금씩 조금씩 변형하여 더 오래살고, 더 똑똑하고, 감정을 더 잘 통제하는 존재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미래에, 현재의 인간은 마치 현재 동물이 그러한 것 처럼, 미래의 인간에 의해 도태되거나, 아니면 그들에게 길들여져 착취당하는 처지에 놓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초인류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있는 사람들부터 바뀌게 될 것이다. 문제는, 생물학적 능력의 격차가 사람들사이에 벌어지면, 이는 지금까지 사회경제적 격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차를 좁히는 것이 어려워질 것이다.  마치 과거에 일반인과 노예의 격차와 같은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

인류는 과거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이전했다. 이제 인간의 경험, 인간의 행복이 모든 결정에 궁극적인 기준이 되었다. 인간중심주의 Humanism 는,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단일한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러 경험의 복합체인데, 이 복합체는 합리적이며 일관된 특성의 것이 아니어서,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할 때의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은 핵심이 되는 자아를 전제로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자아는 허구라는 사실이다.

생물학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유전자, 즉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생물체는 유전자가 핵심이며, 생명활동이란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확산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인간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다른 동물의 데이터 처리능력보다 더 높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동물보다 데이터 처리 능력이 더 높기에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여 그들을 지배하고 멸종시켰다. 인간의 감정이란 인간의 지적 능력과 마찬가지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한 고도의 데이터 처리 장치에 다름이 아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이나 감정이 모두 데이터 처리장치라면, 데이터 처리 능력이 고도화되면 될수록 더 좋다 라는 논리적 추론으로 귀결된다.

컴퓨터가 발전하여 이제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 능력이 인간의 수준을 능가하게 되었다. 지적 문제를 푸는 분야에서 인간은 조만간 컴퓨터를 당해낼 수 없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정도로 많고 복잡한 데이터 처리를 하게 되었다. 조만간 인간은 인공지능에게 자신의 결정을 맡길 것이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특정 개인에 대한 정보를 더 정확히 분석하여 그를 더 잘 알고 그의 사정에 더 적절한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데이터를 더 잘 처리하고 문제를 풀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소수의 고급 데이터 처리능력을 갖추고, 인공지능을 디자인하는 고도로 복잡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그러한 능력을 갖지 못한 대부분은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통사람들의 지적 능력에 기반한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민주주의 또한 부적절해 질 것이다. 인공지능이 상황을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면, 일반 사람이 투표하여 선거로 결정짓는 방식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국가는 일반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이 더 잘 전쟁을 치룰 수 있게 된다면, 전쟁에 일반인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국가가 일반인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즉 대다수의 일반인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에 국가가 그들의 복리를 살펴야 할 필요성도 없어질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세상을 데이터가 지배하는 세상 Dataism이라고 명명한다.

이미 인공 지능은 여러 분야에서 인간과의 경쟁에서 우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반면 인간은 인공지능이 어떻게 데이터를 처리하여 이러한 능력을 발휘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판단을 대치하는 분야는 빠르게 확대될 것이다.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신뢰되는 사회가 도래할 것은 확실하다. 자본주의의 시장기구보다, 민주주의의 선거보다 인공지능의 데이터 분석 결과에 기반한 결정이 더 효율적인 사회는 현재의 사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문제는 무엇을 위한 효율인가 라는 점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높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 즉 제레미 벤담의 최대의 행복이 지금까지 효율성을 판단하는 기준이었다. 인간은 물질적인 만족만으로는 살 수 없다. 결정의 주체가 되고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라는 느낌, 즉 보람, 의미를 찾는 존재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결정을 대리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데이터 처리능력이 사회에 쓸모가 없다면,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야 할 의미나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삶은, 현재 동물 농장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영위하는 닭이나 돼지의 삶과 다름이 없다.

사실 현재 우리의 삶도 삶의 의미를 크게 느끼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의 삶인데, 삶의 결정이 모두 인공지능에 의해 뺏기게 된다면, 그런 '혹시나' 하는 자기기만적인 감정 조차도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정말 암울한 삶이다. 인간의 삶이 알고보면 동물 농장에 닭이나 돼지와 다름이 없다고 지적한다면.   유발 하라리는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식견에 감탄하며 읽었다.

2021. 9. 18. 10:55

Valcrav Smil. 2021. Grand Transitions: How the modern world was made. Oxford University Press. 296 pages.

저자는 생태학자이며, 이책은 세계가 물질문명의 측면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포괄적으로 서술한다.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의 다섯 분야에서 변화를 서술한다. 

서구사회는 인구 감소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인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인구가 주로 증가할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는 가난한 나라로부터, 인구가 감소하는 부자 나라로의 인구 이동은 앞으로 필연적이다. 부자 나라는 노령화로 인해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무엇보다 노령 인구를 돌볼 사람이 필요한데, 자체로는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은 1960년대의 그린 혁명을 거치며 비약적으로 늘어, 이제 식량의 절대량에서 지구의 인구를 먹여살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선진 산업국에서 육식 소비가 많고 폐기되는 식량이  절반에 달하는 현재의 상황이 지구 전체로 확대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생활 수준과 생활 방식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식량의 고기 전환 효율이 낮은 소고기의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전환 효율이 높은 닭고기의 소비와 콩 단백질을 이용한 인조고기의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류의 주요 에너지 원은 유기체의 근육의 힘에서 벗어나, 나무, 석탄, 석유, 가스, 전기로 이전해 왔다. 한때 원자력이 미래 에너지의 주종이 되리라는 예견은 어긋났다. 현재 태양광이나 풍력 등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지만, 석탄과 석유에 대한 의존은 앞으로도 오랫 동안 지속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주 에너지의 전환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체 에너지원이 주가 되는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특정 에너지를 이념적으로 옹호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핵에너지, 태양광과 풍력, 뿐만 아니라 석탄, 석유, 가스, 전기에서 기술 혁신을 꾸준히 추진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선진국의 경제 성장율은 점차 둔화되고 있지만, 성장율이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것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앞으로 성장이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중국을 비롯하여, 뒤이어 인도의 경제성장은 꾸준히 지속되면서 선진국과 격차를 좁힐 것이다.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는 불투명하다.

인류의 발전은 환경 악화와 함께 했다. 인간 때문에 많은 종이 사라졌으며, 기후 변화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속가능 성장을 언급하고 있으나, 개발도상국에게는 성장이 최우선과제이며 환경에 대한 고려는 뒷전이다. 환경 파괴로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저자는 인류의 적응력을 신뢰한다. 환경 문제가 악화하면, 인류는 그에 맞추어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기술 개발은 물론, 규제와 탄소세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파국을 막으려 할 것이다. 어느 선을 넘어서면 되돌릴 수 없기에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의 발전과 경제 성장은 자연과 생태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성장이 기울기가 가팔라지는 궤적을 앞으로도 계속하여, 궁극적으로 인류와 자연이 합일하는 "단일체(Singularity)"의 상태에 도달하리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는 물질적 존재이며 물질적 제약 속에서 생존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변화도 물질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물질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극단적인 낭비를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책은 엄청난 양의 통계 수치를 인용하며 서술하여 읽어 나가기 힘들다. 통계 책자를 읽는 느낌이다. 이렇게 책을 쓰기도 힘들텐데. 저자의 인내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계속되는 숫자와 밋밋한 서술은 독자의 호기심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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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2. 12:07

  이코노미스트지의 핵 에너지 특집호는 “실패한 꿈”이라는 머리기사로 시작한다. 핵 에너지는 인류의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있는 묘한 존재다. 화석 에너지는 조만간 고갈될 것임을 모두 알기에 대체 에너지를 찾으려 노력한다. 태양광, 풍력, 조력, 지열 에너지 등 환경론자가 선호하는 대안은 현재까지는 화석 에너지의 대체 수단으로 한계가 있다. 기술 수준이 낮아 비용이 많이 들거니와 무엇보다 산발적으로 소량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방식은 현재의 산업 구조와 잘 맞지 않는다. 현재의 산업구조는 집중하여 대량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체제가 잡혀있다. 반면 핵 에너지는 화석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집중적인 방식으로 대량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으며 원료 확보가 용이하고 생산비가 저렴하다. 안전 문제만 아니라면 핵 에너지는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가장 이상적인 수단이다.


  핵 에너지는 이상적인 에너지원이기에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 우주의 엄청난 에너지는 모두 핵 에너지이지만, 그 규모가 엄청나기에 인간에게 피해를 줄 위험성이 현재까지는 이익을 상쇄하고 있다. 핵 에너지 개발이 핵폭탄 개발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인류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원을 관리할 기술과 사회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핵 에너지관련 기술 발전이 느린 것은 이유가 있다. 핵 에너지를 연구한다고 하면 바로 핵폭탄을 연상하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저지된다. 소수의 나라의 허가받은 기관이 아닌한 함부로 핵에너지를 연구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수 없다. 사실 무서운 것일수록 피하기보다 그것을 잘 다루어 유용하도록 만든 것이 인류 발전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와 아이디어가 결집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핵에너지 개발은 그러한 발전의 과정이 원천적으로 막혀있다.
 
  사실 핵 에너지의 문제는 기술 못지않게 사회적인 문제이다. 아무리 무서운 것이라도 관리를 잘 하면 어느 정도는 쓸만하며, 휘험 요소를 모두 숙지하고 사회가 합리적으로 공평하게 분배한다면 핵 에너지 개발에 찬성할 사람은 훨씬 많을 것이다.  핵 에너지 개발의 과정에서 피해를 누가 분담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대부분의 사회는 이를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에너지의 혜택은 힘 있는 사람이 누리면서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떠않는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기에 핵 에너지는 사회 갈등의 씨앗인 것이다. 북구의 나라들과 같이 이익과 위험을 사회전체가 합의에 따라 공동 분담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핵 에너지는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나는 솔직히 서구 환경론자의 주장에 그리 동조하지 않는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자신들은 편안하게 살고 많이 소비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위선적인 태도이다. 자신의 소비를 줄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를 나누어준다면 지구의 환경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미래의 에너지원인 핵 에너지를 포기하는 대신 환경친화적인 방식을 채택하려고 한다면 지금과 같이 풍요롭게 사는 서구인의 삶의 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대양열이나 풍력을 주 에너지원으로 한다면, 그러한 설비 자재를 생산하는 데 훨씬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하며 온 산천은 태양광 집열판과 풍력 프로펠라로 뒤덮일 것이다.

  "Small is Beautiful"이라는 철학을 정말 신봉하는가?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이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한다. 좀 더 잘 살고 싶고 좀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 사실 일인당 소득이 4만불을 넘는 선진국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지금보다 조금 덜 풍요롭게 살아도 괜찮다. 그러나 세계 70억 인구 중 90%이상은 1만불도 안되는 소득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 어느 정도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핵에너지의 엄청난 매력에 등을 돌릴 수 없는 이유이다. 이들을 서구인 수준으로 생활하도록 하려면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기술과 사회체제로는 불장난에 가까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핵에너지 개발에 좀더 투자해야 한다. 중국이 핵에너지에 몰입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엄청난 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주기 위해 아무리 위험이 크더라도 핵 에너지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핵 에너지 개발의 피해는 주로 힘없는 사람이 떠않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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