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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에 해당되는 글 2건
2023. 1. 12. 17:41

Howard Zinn. 1999.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492-present. Harper perennial. 688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모든 역사책은 강자,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나, 이 책은 약자, 억눌린자, 없는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백인 정복자가 아닌 인디언의 입장에서, 백인이 아닌 흑인의 입장에서, 부자가 아닌 빈자의 입장에서,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의 입장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미국인이 아닌 제삼세계 사람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를 서술한다.

약자를 억압하고, 회유하고, 굴복시키고, 말살하기 위해, 강자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약속을 태연하게 어기고, 상대를 착취하고, 폭력으로 위협하고, 반항하는 사람은 고문하고, 신체를 훼손시키고, 죽였다. 약자는 강자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고, 짓밟히고, 때때로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반항하였다. 그러한 반항은 단기적으로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으며 더 큰 억압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항이 거듭되면서, 크게 보면, 조금씩 처지가 개선되는데 기여하였다. 약자의 이익과 권리는, 강자에 대한 그들의 저항을 통해서만, 강자로부터 조금씩 양보를 받아냄으로서 진전되었다. 약자의 인간적인 삶의 권리는 결코 위로부터 시혜적으로 주어지 않았다. 피를 흘리는 투쟁을 통해 뺏어낸 것이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의 제도권은 모조리 가진자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오로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기여해 왔다. 미국의 양당 정치권은 약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일반 사람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칙은 허울에 불과하다. 국민의 대표 중에 가지지 않은 자는 없으며, 이들은 가진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가진자를 위해 일한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일반인의 이익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인의 정치권에 대한 소외는 매우 심하다.

미국의 군사 외교 정책은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미국 정치인들이 외교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을 언급할 때, 이는 미국 일반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의미한다. 미국은 제삼세계의 독재자를 지지하는 대신, 그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독립적인 지도자를 배제하는 데 열을 올린다. 제삼세계 국민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미국 자본의 이익에 순종하지 않으며, 그들 국민의 이익을 미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에, 미국은 갖은 수단을 써서 이들을 제거하려 한다. 중남미와 중동은 미국 자본의 이익이 크게 걸린 곳이기에,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노골적이다. 칠레와 니카라과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CIA의 공작으로 만든 쿠데타로 뒤집어 엎었으며, 파나마에서는 운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조종하는 반군을 동원해 콜럼비아로부터 독립 정부를 세웠다. 중동에서는 미국의 석유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란, 이라크 등의 독재자를 지원하거나, 미국군을 동원하여 반대세력을 굴복시켰다.

이 책은 읽기 쉽게 쓰였으며, 곳곳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하기 때문에 서술에 힘이 있다. 역사란 지배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술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뼈져리게 느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약자의 좌절과 분노에 공감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 돌아가는 원리,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비록 달팽이의 걸음으로나마 약자의 지위가 나아져왔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오랫 동안 책장에서 먼지를 먹으면서 언제나 저 책을 읽게 될까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손에 잡으니 단숨에 읽었다. 대단한 책이다. 그가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제대로 커버했다면 정말 도움이 될텐데,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아쉽다.

2020. 4. 2. 10:24

박홍규, 박지원. 2019.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무리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사이드웨이. 461쪽.

이 책은 영남대 법학과 교수를 은퇴하고 농촌에서 지내는 박홍규와 작가 박지원간에 대담을 정리한 것으로 박홍규의 삶과 생각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한다. 박홍규는 노동법 분야에서 비주류의 목소리를 낸 참여형 학자이며, 엄청난 독서가로 그 자신 사상, 전기,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100권에 가까운 교양서를 저술하고 서양의 고전을 번역한 지식인이다.

그의 엄청난 독서 습관은 중학교때 부모와 떨어져 대구에서 혼자 살며 중고 책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저자는 아버지가 경북 지방의 보수적인 전통을 고수하면서 자식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에 일생 반발하였다. 주변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전통에 반항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 패거리 문화, 권위주의 문화에서 이단아로 살기로 작정을 하고 이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의 일상은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채워진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잡다하게 읽는 독서 습관은 그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말해 준다. 독서는 기존의 권위와 위선에 의문을 제기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교과서만 달달 외우고, 시험에 치이고, 세속적 안정과 출세의 길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아웃사이더로 독서를 많이 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 고호를 존경한다.

그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하였다.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유의 개성을 만들어야만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기존 사회의 구조와 인간관계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각자가 자신의 영역을 갖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각자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개인주의 사회를 이상으로 여긴다. 남을 의식하는 사회, 체면 문화를 거부하며, 연줄을 찾아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한국 사회의 관행을 경멸한다. 힘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자기들끼리만 잘먹고 잘살자는 소아적 집단주의는 도덕적 타락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 문화에 바탕을 둔 것인데, 가족의 범위를 넘어 시야를 넓혀야 한다. 부모가 잘못하면 고발을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분노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차별, 중앙과 지방의 차별, 엘리트와 보통사람의 차별, 남성과 여성의 차별. 우리 사회에서 사회 개혁을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 또한 자신들만의 패거리를 만들어 이익을 독차지하려 하고, 언행이 불일치 하는 삶을 사는 것에 분노한다. 우리 학계의 배타성과 위선에 학을 띠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권위주의 사회의 폭력성의 피해자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강압과 폭력을 참아야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보다 배경이 좋고 성공했다는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하대를 참야야 했다. 지방 대학을 나오고 지방대 교수로 사는데서 오는 열등감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마음의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하바드 대학에 머물 때 서구와 비서구 주변부의 차별을 통감하여 이후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였다. 우리나라가 서구의 지성에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양서 고전 번역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사회를 바꾸려면 각자가 자신부터, 주변에 구체적인 것부터 바르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은퇴 이후에도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다. 마지막 장에서 그의 아내가 대담에 참여한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여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며, 노력을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부인을 배려한다거나 집안일을 돕는데에는 무관심하다. 그도 한국의 남성의 일원인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띤 것은 대담자의 풍부한 교양과 인터뷰 대상에 대한 엄청난 사전 연구이다. 딱딱한 주제를 논할 때에도 글이 부드럽다. 모국어로 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서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인문학적 접근의 한계를 느낀다. 박홍규라는 사람은 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패거리 문화를 거부하고, 고독한 지식인, 이단아로 살기를 선택했을까. 그의 엄청난 집착을 행간에서 읽으며, 잠재의식 속에 내재한 권위에 대한  반발과 자기 식으로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낀다. 그럼에도 그가 인정하듯 그의 한계는 어쩔 수 없기에, 다 읽고 난 후 쓸쓸한 느낌이 든다.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하기에 더 그러하리라. 제목을 잘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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