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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수용'에 해당되는 글 1건
2021. 1. 14. 21:04

Calestous Juma. 2016. Innovation and its enemies: Why people resist new technologies. Oxford University Press. 316 pages.

저자는 기술 확산과 국제개발을 연구한 학자로서, 이 책은 왜 혁신적 기술이 사회의 반대에 부딛치게 되는지, 그러한 반대를 극복하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사회의 반대를 이긴 다양한 혁신 사례를 소개한다. 커피, 활자 인쇄술, 마가린, 농업 기계화, 교류 전기, 기계식 냉장고, 녹음 기술, 유전자 조작 작물, 유전자 변형 연어, 등의 사례가 각각 별도의 장으로 논의된다. 

커피는 16세기에 이디오피아에서 중동을 거쳐 17세기에 유럽에 전파되었다. 아랍에서는 사람들이 커피 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치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위정자들이 위협을 느껴 커피 하우스를 탄압하였다. 유럽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 전통 음료인 포도주와 맥주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에 위협을 느껴 커피를 반대하였다. 이들이 커피를 반대하면서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건강, 문화적 정체성, 국가 안보의 위협 등이었지만, 이들이 말하지 않은 진짜 이유는 정치적 혹은 경제적 이유였다.

활자 인쇄술은 중국에서 아랍 세계로 일찍이 전파되었지만 아랍의 위정자, 특히 성직자들은 활자 인쇄술로 코란을 인쇄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활자 인쇄술이 아랍을 거쳐 유럽에 전파되어 성경이 대대적으로 보급되고 종교혁명과 과학발전으로 이어져 유럽이 앞서나가는 것에 위협을 느낀 다음에야 아랍의 위정자들은 활자 인쇄술을 적용하여 일반 서적을 인쇄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마가린은 1870년경 네덜란드에서 개발되었지만, 낙농산업의 격렬한 반대에 부딛쳐 보급이 늦었다. 낙농업자들은 마가린을 '가짜 버터'라고 지칭하고 건강에 안좋은 열등한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퍼뜨리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하여 마가린의 보급을 막았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 중 물자 부족이 심각해졌을 마가린의 보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마가린은 버터보다 열등한 것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낙농국가들은 다양한 규제를 동원하여 마가린의 생산과 수입을 막고 있다.

19세기 말까지 농업은 대부분 사람, 말, 당나귀의 힘에 의존하였다. 트랙터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고장이 잦고 효율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에 동물을 이용하는 것보다 생산성이 낮았다. 말이나 당나귀와 관련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트랙터의 도입에 큰 위협을 느껴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은 트랙터가 궁극적으로 동물을 대체할 것이라고 예상했으므로, 트랙터의 도입을 전적으로 반대하기보다, 말과 당나귀를 이용하는 전통적인 농사의 문화적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트랙터와 동물을 병행하는 쪽으로 여론을 몰고 갔다. 트랙터의 기술이 발전하고 효율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결국 농사에 동물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만, 대신 여가의 목적으로 말을 이용하는 산업이 나타났다.

19세기 중반 전기가 발명되었을 때 에디슨은 직류전기를 사용한 전등을 보급하여 큰 명성을 거두었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가 발명한 교류 전기가 직류 전기보다 더 효율적임이 밝혀지면서, 에디슨은 자신이 투자한 직류전기 중심의 체제가 앞으로 교류전기로 대체될 것임을 직감하였다. 에디슨은 자신이 투자한 자본이 회수될 때까지 교류 전기가 보급되는 것을 저지하는 전략을 구사하였다. 교류전기를 사형을 집행하는 전기의자와 연관시켜, 교류전기는 인체에 치명적이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교류냐 직류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기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전기 안전의 관건임이 비교실험을 통해 알려지게 되고, 전기를 활용한 이기들이 연이어 등장하면서 교류 전기가 직류 전기를 대체하였다.

20세기 초에 기계식 전기 냉장고가 처음 출현하였을 때 이전의 얼음 산업은 큰 위기를 맞이하였다.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여 보관해 두었다 여름에 내다 파는 얼음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기계식 냉장고의 냉매로 쓰는 암모니아 가스가 쉽게 폭발되는 성질때문에 위험하다는 점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여 한동안 기계식 냉장고의 보급을 막았다. 그러나 기계식 냉장고의 기술이 향상되어 폭발 사건이 줄어들고, 소형화되어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가축을 도축하는 곳과 정육을 소비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제가 없고 야채 또한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냉장 운송하여 소비자 가격을 크게 낮추게 되면서 기계식 냉장고는 급속히 보급되었다.

19세기 말 소리를 녹음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과거 음악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 녹음이 가능하지 않던 시절에 사람들은 연주회에 가거나 행사장에 악사를 초청하여 음악을 즐기는 것이 관행이었는데, 레코드가 보급되면서 생음악에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다. 레코드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자주 음악을 즐기게 되었다. 레코드는 음악의 내용도 바꾸어 놓았다. 과거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중심이고 가수의 노래는 부수적인 것이었는데, 레코드가 보급되면서 가수의 노래가 전면에 나서고 악기 연주는 배경으로 물러났다. 레코드의 보급 덕분에 스타 가수가 출현하게 되었다. 음악 활동에 종사하던 사람들은 협회를 조직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했으나 대부분은 실직을 하였다. 이후 음악 종사자 조직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음악의 저작권이 설정되고, 방송국에서 음악을 틀때마다 로열티를 받는 등으로 음악 저작권에 보상을 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1985년 벨기에에서 자연의 박테리아에 존재하는 해충을 죽이는 독소 유전자(Bt)를 식물의 유전자에 이식시키는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 유전자 조작 기술을 옥수수, 목화, 감자, 쌀, 콩, 알파파 등에 적용하여 해충의 피해를 크게 줄이며 농업 생산성을 혁기적으로 높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개발될 당시 환경 위험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져 있던 때라 환경운동 단체의 반대가 심했다.  과학적 실험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씨앗으로 자라난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아무런 증거가 없었으나, 반대론자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위험이 앞으로 새로이 밝혀질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 반대하였다. 유전자 조작을 반대하는 쪽에서 유전자 조작 식물이 위험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작 식물을 개발한 쪽에서 이것이 위험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전자 조작 기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유전자 조작 작물을 괴물 식품(Frankenstein food) 등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덮어씌우면서 환경 운동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유전자 조작 식물을 반대한 이유는 그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이유때문이 아니라, 그 식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인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이유때문인데, 이는 식품의 위해성을 판정할 때 생산과정이 아니라 생산된 결과물에 대해 평가를 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유전자 조작 식물을 반대한 숨겨진 이유는 이 기술을 개발한 대기업, 특히 몬산토가 이 식물의 재배에 대해 독점적 권리를 보유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조작 식물의 재배가 허용되어 농업 생산성이 크게 높아졌으나, 유럽에서는 유전자 조작 기술을 금지했고 미국으로부터 유전자 조작 식물로 만들어진 식품의 수입도 막았다. 표면적으로는 인체에 위해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으나, 숨은 이유는 유럽이 미국 대기업의 기술독점에 종속되는 것을 염려해서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아프리카의 국가들도 유전자 조작 식물의 재배를 금지했는데, 이는 아프리카가 유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조작 식물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과학적 증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 WTO는 유전자 조작 식품에 대한 수입규제를 부당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현재까지 사람이 직접 섭취하지 않는 목화나 목초에는 유전자 조작 기술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으나, 곡물의 재배에서는 미국 이외에 이를 허용한 국가가 많지 않다.

1990년대 중반 미국 매사츠세츠주의 한 회사에서 연어의 유전자를 변형하여 사료를 적게 먹으면서 절반의 생육기간에 두 배 이상 크기로 키우는 기술을 개발했다. 지난 이십여년 동안 미국 의회에서 청문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이 식품의 위해성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였으며 현재까지 시판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유전자를 조작하여 식물의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는 식물을 변형시키는 문제인 반면, 연어의 유전자를 변형하는 것은 동물을 변형시키는 문제임으로 사람들이 인식하는 위험도는 훨씬 크다. 유전자 조작 기술의 경우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와는 별도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작업에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

사람들이 혁신적인 기술에 반발하는 것에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를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는다. 많은 경우 경제적 이유가 기술 도입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인데, 이러한 심층적 이유를 무시하고 단순히 설득을 하여 합의를 도출하려는 노력은 시간만 허비할 뿐 성공하기 어렵다. 기술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고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할지, 그들을 어떻게 다른 일자리로 옮아가도록 할지에 대한 고민과 구체적 노력이 함께 할 때에만 '창조적 파괴' creative distruction 기술은 사회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이 책은 주제는 흥미로우나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과 문체가 매우 건조하고 형식적이어서 읽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마치 보고서를 읽는 듯하며, 정책 교훈을 도출하는 부분에서는 지루하기까지 하다. 특별히 어려운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읽어내려가는게 힘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혁신적 기술을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가장 쟁점적인 대상인 핵 기술이 논의에서 완전히 빠진 것이 아쉽다. 유전자 조작 식물에 대한 논의는 저자의 전문 분야라 그런지 내용이 알차고 저자의 깊은 이해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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