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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19. 23:56

Richard V. Reeves. 2017. Dream Hoarders: How the American upper middle class is leaving everyone else in the dust, why that is a problem, and what to do about it. Brookings Institute Press. 156 pages.

저자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로 미국사회의 불평등의 핵심은 상위 20%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흔히 중상층(upper middle class)이라 칭하는데, 소득분포에서 상위 5분의 1을 차지하는 사람들이다. 최상위 1%가 부를 가장 많이 독점하고 있지만, 이들 못지않게 그 바로 아래 19% 역시 지난 수십년간 미국 경제에서 소득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이들 중상층은 업적주의(meritocracy)를 지위획득의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 이들은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직과 관리직에 종사하며, 안정적인 결혼생활을 하며, 자녀의 양육과 교육에 엄청나게 투자하며, 성실하게 일하며, 자신을 잘 통제하며, 건강한 생활을 하고 오래살며,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현재의 지위에 올라선 사람들이다. 부부 모두 대학 졸업자로 맞벌이를 하며,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며, 가구소득 110,000 달러이상이다. 이들은 미국 사회의 여론 주도층으로, 사회 각분야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1980년대 이래 상위 20%의 사람들과 이들 밑에 있는 80%의 사람들 사이에 소득 및 생활 양식에서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으며, 두 집단 사이에 세대간 사회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다. 최상위 1%의 사람과 바로 밑에 19%의 사람들 사이에는 교류가 활발하다. 최상위 1%의 사람은 바로 밑 19%의 사람들 중 운좋은 사람들이 올라서며, 서로 간에 들고 나는 사례가 많다. 반면 상위 20%와 그 밑에 80% 사이에는 들고 나는 사례가 적다.

상위 20% 사람의 지위 획득은 업적주의에 근거한다. 즉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시장에서 경쟁을 통하여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문제는 경쟁에서 승리자가 되는 자질을 만들어내는 기회가 상위 20%에 의해 독점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능력과 노력에 따라 공정하게 경쟁하여 자원과 지위를 배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보지만, 시장경쟁에서 높이 사는 자질을 획득하는 기회는 공정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고 중상층에 의해 독점되어 있으므로 이 것을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에서 높이 사는 자질은 좋은 대학교와 대학원의 졸업장이다. 중상층은 자신의 자녀를 좋은 대학교에 보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자녀에게 양질의 양육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이의 건강을 위해 부모가 신경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잠자리에 들때 동화책을 읽어주기, 숙제를 봐주기, 자녀에게 다양한 경험을 시키도록 박물관, 현장 학습,여행에 데려다니기, 좋은 유치원과 초중등학교에 보내기, 학교의 학부모 모임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기, 과외 활동에 엄청난 정성과 비용을 지불하기,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개인 교습, 진학 코치 서비스, 캠퍼스 방문, 등에 투자하기 등등. 이렇게 부모가 자녀의 질 높은 교육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시간과 돈과 노력을 투자한 덕분에 자녀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중상층 자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갈 무렵에 부모의 인맥으로 좋은 인턴 자리를 구하여 취업 전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다. 반면 이들 밑에 있는 80%의 부모들은 자녀의 교육에 크게 투자할 능력도 시간도 재력도 되지 않으므로, 그들의 자녀는 좋지 않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전문대 혹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동시장에 나온다. 중상층의 자녀 교육 방식은 부모로서 옳바른 일을 하는 것이므로, 이들의 자녀가 부모의 노력으로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80% 부모들이 상위 20%의 부모들만큼 못하는 것을 외부의 도움으로 보충하여, 그들의 자녀가 상위의 자녀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식경제 Knowledge Economy 에서는 좋은 교육을 받고 고급 기술을 획득하는 것, 구체적으로 우수한 대학의 졸업장은 좋은 직장을 얻고 높은 소득을 얻는데 매우 중요하다. 좋은 교육을 받은 남녀는 서로를 찾아 결혼하는 동류결혼의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좋은 교육을 받은 중상류와 그렇지 않은 80%의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벌어지며 세대간 지위의 세습이 공고해진다.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을 다니는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길로 자녀를 이끄는 반면, 그렇지 않은 부모는 자녀를 좋은 대학으로 이끌지 못한다. 따라서 좋은 대학이 지원자의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고 해도, 즉 meritocracy의 원칙으로 공정 경쟁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 해도, 결국 중상층 부모의 자녀들을 선택적으로 선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떻게 상위 20%가 지위를 독점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들이 지위를 획득하는 기회를 배타적으로 자신들에게만 제한하는 사회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보다 효율적인 피임 방식을 확산시킴으로서 원치않는 임신을 막아야 한다. 원치 않는 임신에서 낳은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임신에서 나은 아이에 비해 삶의 기회가 열악하다. 중상류층은 임신과 출산을 계획적으로 조절하는 반면, 밑에 층은 원치않는 임신에서 나은 아이가 많다. 미국 전체 임신의 60%는 원치 않는 임신인데, 다수가 하위층에 몰려 있다. 계획에 없이 원치 않는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교육을 중단하고 직업활동에 지장을 받으며 빈곤에 빠질 위험이 높아진다. 정부가 나서서 청소년들에게 효율적인 피임을 교육하고 효과적 피임 수단을 보급하는 노력을 하여야 한다. 둘째, 부모교육을 위해 가정 방문 사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간호사가 방문하여 임신출산 및 어린 아이 양육에 조언을 하는 것은 중하층 부모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준다.

셋째, 열악한 환경의 아동이 다니는 학교에 우수한 교사를 배치해야 한다. 현재는 반대로 중상층 자녀의 학교에 우수한 교사가 배치된 반면, 열악한 아동의 학교에는 열악한 교사가 배치되어 있다. 교사는 아동의 학업 성취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현재의 상황은 교육 불평등을 악화시키는데 기여한다. 정부의 재정으로 열악한 지역에 우수한 교사의 배치를 지원해야 한다. 넷째, 대학교의 재정을 공정하게 조달해야 한다. 현재 부모가 자녀의 대학 학자금을 미리 저축하는 것에 대해 세금면제 혜택을 주는데, 이는 상위 20%에게 혜택이 집중되어 있다. 부유한 집 자녀의 학자금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제도는 중단해야 한다. 대학생의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은 80% 계층의 자녀에게 과도하게 몰려 있다. 자녀의 졸업후 소득 수준에 따라 학자금 상환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중하층 자녀에게 지워지는 지나친 대학교 등록금 빚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 

다섯째, 배타적인 토지 용도 제한 규정(exclusionary zoning)을 완화해야 한다. 중상층 사람들은 자신이 사는 동네에 자신과 유사한 소득의 사람들만 살도록 하기 위해 일정규모 이상의 단독주택만 허용하는 토지 용도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미국의 공립학교는 거주지에 따라 배정하는 방식이므로, 배타적 토지 용도제한 규정은 계층이 다른 집 자녀는 중상층 자녀와 같은 학교에 다닐 수 없다. 그 결과 중상층 자녀의 학교에 배타적으로 혜택이 집중되며, 이러한 학교 졸업생이 좋은 대학에 가는 길을 독점하고 있다. 중상층 거주지의 배타적 토지용도제한 규정을 풀어 복합주택을 지을 수있도록 하여, 다양한 계층이 한 동네에 섞여 살도록 하여, 좋은 학교의 혜택이 다양한 계층 자녀에게 고루 미치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우수한 대학교에서 이 학교를 졸업한 부모나 큰 돈을 기부한 사람의 자녀에게 입학에 특전을 주는 불공정한 입학제도(legacy admission)를 금지해야 한다. 이들 대학에 대한 세제혜택을 끊고 불공정 입학제도를 법으로 금하는 등의 수단으로 명백히 불공정한 세대간 지위세습을 막아야 한다. 일곱째, 인턴십 제도를 개방해야 한다. 중상층 부모의 인맥으로 그들의 자녀가 좋은 인턴십 기회를 독점하는 것은 명백히 불공정하다. 정부의 재정으로 무급 인턴을 지원하는 제도와 인턴 선발을 공정히 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여덟째, 중상층에게 몰려 있는 다양한 세제 혜택을 줄이거나 폐지함으로서 증대된 세수로, 중상층에게 집중된 기회를 다른 계층에게 개방하는 제도의 운영을 위한 재정을 조달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 방안은 모두 정치적 결정과 정부의 개입을 요하는데, 중상층이 여론을 주도하고 정부와 민간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핵심 세력이므로, 자신들에게 손해가 나는 제도를 스스로 도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저자는 중상층이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자각함으로서, 중상층의 삶의 신조인 공정성에 호소하여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도록 움직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중상층이 자신의 자녀들의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를 스스로 도입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그보다는 불평등이 확대되고 계층 이동이 줄어들면서 아랫 집단의 불만이 높아져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지고, 경제가 효율성과 활력을 잃고, 외국과의 경쟁에서 패하고, 결국 중상층의 기득권 구조가 부서지는 시나리오가 역사적으로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 책은 미국의 현실을 명쾌하게 분석하고 솔직하게 핵심을 지적한 통찰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다만 이런 류의 책이 그렇듯, 문제를 진단하는 것은 뛰어나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에는 흐릿한 결함을 공유한다.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도 파국을 예상하고 싶지는 않을테지만.

 

2020. 3. 18. 17:52

Steven Hill. 2015. Raw Deal: How the uber economy and runaway capitalism are screwing American workers. St. Martin's Press. 26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로 미국에서 근래에 Uber, Airbnb, TaskRabbit, 등과 같은 공유경제 사례가 늘면서 임시직 일자리가 증가하는 현상을 상세히 기술한다. 우버나 태스크래빗의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된다. 이들의 조세 분류 범주를 인용해 이들이 지배하는 경제를 1099 Economy라고 칭한다. 우버의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되지만 사실상 우버의 지시를 받고 일하는 임시직 노동자이다.

중계 플랫폼에 의지해 일하는 노동자는 일반 직장의 정규직 근로자가 누리는 일자리의 안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낮은 임금을 받는다. 이에 더하여 의료보험, 사회보장보험, 실업보험과 같은 비임금 혜택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회사는 불안정 노동과 저임금 덕분에 엄청난 이익을 거둔다. 이는 노동자를 착취하여 누리는 정당하지 못한 이익이다. 플랫폼 회사는 노동자를 착취할 뿐만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는 동종 업계의 회사와 불공정 경쟁을 한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전통적 회사의 서비스와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주장하는 '파괴적 창조 creative destruction'은 타당하지 않다. 

TaskRabbit은 일을 제공하는 사람과 필요로 하는 사람을 중계하는 플랫폼인데, 일을 제공하는 사람 사이에 일의 단가를 낮추는 경쟁을 촉발시킨다. 일을 하는 시간만 포함될 뿐, 일의 장소로 이동하는 시간이나 일과 일 사이에 비는 시간은 보상이 되지 않기에 매우 불안정하고 낮은 보상을 준다. 결국 노동자의 기술이나 서비스의 질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가정부, 청소부 등의 일만이 이러한 플랫폼에서 살아 남는다. 이러한 일을 중계하는 플랫폼은 전통적인 일자리 중계업소와 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며 중개의 효율성도 크게 높지 않다.

공유경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장밋빛 전망은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 현재까지 공유경제는 대단한 효율의 혁신을 가져오지 못했으며, 플랫폼 노동자는 과거의 전통적 노동자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 공유경제의 미덕으로 칭송되는 자유, 독립성, 신뢰, 환경친화적, 등의 수식어는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 프리랜서 노동자가 늘어나는 현실은 긍정적인 부분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일반 회사에서 일을 외주로 돌림으로서 비용을 줄이고 해고를 용이하게 하는 관행이 확산되고 있다. 과거에 회사에 정규직으로 고용된 직원이 하던 일을 외주 회사에 고용된 사원이 파견 형식으로 맡아서 한다. 이들에게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은 찾아볼 수 없으며, 노동의 높은 질을 기대하기 어렵다. 과거에 노동자를 회사의 소중한 구성원으로 보던 시각으로부터, 쉽게 갈아치울 수 있는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으로 변하였다. 

임시직, 비정규직 노동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자본과 경영에 대항해 노동자의 협상력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힘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노동자의 집단행동의 가장 큰 무기는 스트라이크인데, 개발도상국으로 공장과 일자리가 속속 이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는 곧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경영자에 대항해 노동자의 몫을 지킬 수단이 없기에, 부는 점점 더 경영자와 자본가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전체 생산에서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줄고 있으며, 소득 불평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반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소득의 몫이 줄고 소득불평등이 높아진다면, 결국 1920년대의 대공황과 마찬가지로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경제가 파탄날 것이다. 물건을 만들어도 이를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이 착취적 노동관행이 기술 발달에 힘입어 더욱 심화되어 모든 노동이 유연화된다면, 이를 Economic singularity라고 칭하는데,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자는 물론 자본가에게도 큰 해를 미칠 것이다.

저자는 노동의 유연화 자체를 반대하기 보다, 유연한 노동에 대해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도록 하는 사회 제도을 제안한다.플랫폼 노동자나 임시직, 비정규직 일자리는 한개의 회사에 고용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규직 고용에 따라오는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의료보험, 사회보장비용, 실업보험, 유급병가, 유급휴가 등을 모두 합치면 임금의 3분의 1에 달한다. 미국에서 이러한 비임금 혜택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가 부담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노동자를 고용하는 회사로부터 분리하여 별도의 기금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노동자 개인별 '개인보장계정 Individual Security Account' 를 만들어서 플랫폼 회사나 임시직을 고용하는 회사가 임금에 더하여 이 계정에 추가적으로 기여를 하도록 의무화한다. 그러면 플랫폼이나 임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 시간에 비례하여 정규직 노동자와 동일한 수준의 비임금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개인보장계정을 모아서 관리하는 단체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하에 둔다. 이렇게 한다면 현재와 같이 비임금 혜택을 지불하지 않고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점은 사라질 것이기에, 임시직 노동은 줄어들 것이다. 추가적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유연 노동이 필요한 회사만이 임시직을 고용하는 관행이 정착할 것이다.

저자는 유럽과 같이 노동자를 보호하는 다양한 사회보장 체계가 미국에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급 병가, 유급 출산 휴가, 유급 휴가, 양육시설, 등의 복지제도뿐 아니라 직업 훈련, 취업 알선과 같은 적극적인 노동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높이는 것이 보다 인간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고,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

이 책은 상세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해서 현장의 상황이 잘 드러나 있다. 플랫폼 노동이나 임시직 파견 노동과 같이 노동자의 상황이 열악해지는 반면 자본과 경영의 힘은 강해지는 근래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러한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선진국 노동자의 일자리가 열악해지는 것은 개발도상국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선진국 노동자에게는 불행한 일일지 모르나, 그 덕분에 한국과 중국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얻었고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을 가져왔다. 회사에 대한 노동자의 충성이 필요하지 않고 플랫폼 노동과 임시직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은, 기술 발달 덕에 노동자의 노동의 질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과거와 달리 낮은 기술수준으로 후한 보상을 주는 일자리는 사라지고, 이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득세하고 정치가 불안정해졌다. 불평등이 높아지면 결국 파국을 맞을테고, 이후에 어느 정도 재정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제삼세계의 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화를 거꾸로 하지 않는한, 선진국 중하층 노동자의 상황은 앞으로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이나 임시적 비정규직 노동이 증가하는 것은 결국 이들 선진국 중하층 노동자의 보상의 수준을 낮추어 개발도상국 노동자와 격차를 줄이는 것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내에서만 본다면 노동자의 착취와 불공정한 배분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개발도상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본다면 반드시 불공정이 확대된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2020. 3. 12. 16:14

Rachel Sherman. 2017. Uneasy Street: the anxieties of affluenc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37 pages.

저자는 사회학자로 심층 인터뷰를 통해 부유한 사람들의 생활과 생각을 읽는 연구를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부유한 생활에 대해 불편한 감정(anxiety)을 안고 산다는 것이 그녀의 결론이다. 그녀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뉴욕시에살며 년소득이 최소 5억이 넘고 재산이 수십에서 수백억에 이르는 상위 1%이내에 드는 사람이다.

부유한 사람들은 어디에 관심의 지향을 두고 있는지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뉘는데, 자신보다 상위에 있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생활 방식이 특별하지 않으며 보통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자신의 생활이 더 부자인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점을 의식하면서 이를 마음에 걸려한다. 반면 자신보다 하위에 있는 사람들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와 생활이 중류층과 크게 다르다는 점을 의식한다. 이들은 자신이 부유하다는 것을 의식하며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에 감사한다. 후자는 주로 중류층 배경으로부터 상승한 경우에 많다. 두 집단 모두 자신의 엄청난 부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부를 드러내거나 이를 암시하는 어떤 상황도 회피하려 한다. 그 결과 이들은 자신과 계급적으로 이질적인 사람이 자신이 고용한 사람이 아닌한,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자신의 부가 정당하다는 것을 자신과 상대에게 설득하는데 노력을 많이 들인다. 미국은 평등주의 가치관이 뿌리 깊고, 근래에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므로, 자신의 부와 삶의 방식에 대해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의 부와 생활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부모로 부터 부를 물려받은 경우, 이러한 이유가 통하지 않지만 여전히 자신은 열심히 바쁘게 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소비생활이 '보통'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족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데 돈을 쓴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많이쓰기는 하지만, 여전히 삶에 꼭 필요한 것을 사는 데 쓴다고 상대와 자신을 설득한다. 물론 그들이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만.

부자들은 자신이 운이 좋았으며 혜택받은 삶을 산다는 것을 항시 의식한다. 주위에 보통 사람들의 감정을 거슬리지 않도록 하는 데 주의를 기울인다. 부가 티나게 보이지 않도록 하며, 시기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피하며, 일하는 사람을 대등하게 대접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가능성은 적지만, 자신의 부가 없어질 수 있고, 높은 보수를 받는 직장을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고 있다.

부자들은 자신의 자녀가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하면서, 자신들의 생활이 특별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싶어한다. 자신의 자녀가 보통 사람들의 삶에 관해 알도록 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부자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 보내고 부자 자제들의 동질적인 그룹에서 성장시킨다. 부가 가져오는 이점이 자녀의 성장과 사회 진출에 플러스가 되도록 하는데 노력한다.

부자들은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주도적으로 밥을 사려 하며, 대다수가 자원봉사나 자선단체 활동을 한다. 그러나 사회의 불평등이나 사회악을 고치는 데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의 돕는 활동은 그들의 삶에서 주변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다. 그들의 남을 돕는 활동은 대체로 자신들에게 간접적으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자원봉사를 한다거나, 자신이 졸업한 학교나 지인이 참여하는 단체에 기부하는 식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는 정책에 반대한다.  

부자 가정의 여성들은 자신의 부유한 생활이 배우자의 돈에 의지한다는 것을 의식하며 산다. 그녀의 남편은 부인의 소비생활을 통제하며, 그녀의 집안을 챙기는 일은 남편에게 대단하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 부인은 자신의 개인적인 용도의 소비는 남편에게 감추거나 낮추어 말한다. 부인이 자신의 물려받은 유산으로 부자 생활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직업 소득이 남편보다 높은 경우에만 부인은 자신의 소비 생활에 대해 남편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이 책은 부자들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있는 좋은 기회이다. 인터뷰 자료를 많이 인용하기에 반복적인 부분이 많아 읽다보면 지루하다. 부자집 가정의 부인을 주로 인터뷰 했기에, 실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 가장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 반쪽짜리 연구이다. 부자집 가정의 부인은 이들의 가정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이므로, 부가 수반하는 권력을 부수적으로만 누리고 있다. 부자들이 말로 드러내는 생각과 실제의 행위에 차이가 클 것이라는 점을 짐작케 한다. 부자들은 자신의 엄청난 부에 불편해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키는 데 열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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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3. 11. 09:34

David Sloan Wilson. 2007. Evolution for Everyone: How Darwin's theory can change the way we think about our lives. Bantam Dell. 349 pages.

저자는 생물학자로 진화론을 적용하여 생물계만이 아니라 인간사의 다양한 현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진화론은 주어진 환경에서 생존에 가장 도움이 되는 형질이 선택적으로 후세에 전해져 생물이 변화한다는 이론이다. 환경이 바뀌면 바뀐 환경에 부적합한 형질은 도태되고, 대신 환경에 적합한 형질이 선택된다. 선진국 사람이 비만과 성인병으로 고생하는 것은 인간의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과거에 생존에 유리한 형질을 버리고 새로운 형질로 바꾸지 못한 결과이다. 인간이 똑똑하다고 하지만 진화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인간의 호불호의 감정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진화의 과정은 엄청나게 정교한 생존 전략을 만들어 낸다. 놀라운 특이한 능력이나 정교한 생존전략은 생물체가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복잡한 두뇌와 높은 학습능력 또한 인간의 의식적으로 구사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 특정 동물은 특정 환경에서 생존에 유리하도록 고도로 특화된 기술을 탄생시킨다. 지구의 역사를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서 수많은 생물체는 생존 경쟁에 승리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인간의 경우에도 현생 인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토태시켰다.

진화의 과정을 통해 개별 생물체가 집단으로 뭉쳐서 단일 개체로 움직인 결과 생존 경쟁에서 유리한 지위를 획득하였다. 인간을 포함한 복잡한 유기체는 이러한 집단화의 산물이다. 집단화가 한단계 더 진전된 경우가 개미나 말벌과 같은 사회적 동물이다. 개체를 넘어서 집단화하여 살아가는 사회적 생물은 덜 집단화한 생물보다 훨씬 생존에 유리하기에, 이러한 사회적 생물이 지구상 전체 동물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다. 사회적 동물은 집단내에서 유전자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생존 활동을 전개하며, 개체들 사이에 분업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

인간 세계는 이러한 집단화가 새로운 단계로 진행된 것이다. 인간은 문화라 부르는 삶의 기술을 세대간 학습을 통해 전승한다. 문화는 인간에게 개체의 능력을 뛰어 넘어 엄청난 능력을 가져다 주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다. 오랜 학습과정을 거친 후에만 정상적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른 사회적 동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의 집단화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경쟁에서 인간이 우위를 차지하게 된 이유이다.

인간의 집단화에서 문제는 어떻게 집단 구성원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냐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률과 종교는 바로 이러한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종교는 집단을 개인보다 우위에 두도록 하며, 집단의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한다. 인간의 미적 감수성이나 도덕률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을 긍정적으로 규정하며 생존에 위협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규정한다. 인간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때 삶의 보람을 느끼며, 의미있는 삶을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집단의 대의에 헌신하고자 하는 인간의 감정은 진화의 산물이다.

저자는 대학에서 진화론을 생물계와 인간사에 적용하는 것을 주제로 강의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책에서도 다양한 인간 현상에 대해 진화론을 적용하여 설명하는데, 생물체의 진화를 설명할 때에 비해 서술이 장황하고 논리가 허술하다. 후반부에는 저자의 개인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며, 맨 마지막 장은 본인의 성장과정을 썼다. 노력하며 살아왔지만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교수의 이야기이다. 나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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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ne Leighton and Edward Lopez. 2013. Madmen, intellectuals, and academic scribblers. Stanford University Press. 19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로서 새로운 정치경제 이론이 세상을 바꾼다고 역설한다. 1980년대에 농구 경기에서 30초내에 슛을 해야 하는 규칙을 도입하여 프로농구 산업이 살아나게 된 사례를 예를 들어, 새로운 제도가 새로운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것이 효율적인 결과를 만들어 낸다. 새로운 제도는 아이디어에 뿌리를 두는데, 아이디어는 학자의 머리에서 나오거나, 혹은 일반인의 생활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저자는 책전체를 통해 세가지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첫째, 민주주의는 왜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어 내는가? 둘째, 왜 실패한 정책은 사회적으로 낭비적이고 더 좋은 대안이 존재함에도 폐지되지 않고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가? 셋째, 왜 어떤 낭비적인 정책은 폐지되는가? 이 세가지 질문에 답하려면 정치경제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야 하기에 이 책의 전반부는 서구의 정치 사상과 경제 이론의 역사를 훑는데 할애한다.

민주주의가 낭비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정책을 만들고 이를 오랫 동안 유지하는 이유를 경제학의 공공선택 이론(public choice theory)에서 찾는다. 정부의 정책은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 참여자들간에 거래로 형성된다. 공공의 자원은 이익 집단 간에 거래에 의해 배분된다. 정치인과 정부 정책은 결집된 이익(focused interest)을 가진 소수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는 반면, 분산된 다수의 소비자의 이익은 무시한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부가 다수의 시민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만들고 오랫동안 유지하는 이유이다. 

어떤 낭비적 정책이 폐지되려면 대안적인 정책을 뒷받침할 새로운 아이디어가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지식인들의 활동을 통해 점차 확산되고 사회적 환경이 뒷받침되면, 대안적인 정책으로 구체화되며 낭비적 정책을 대체한다. 그 단적인 예로 로크의 천부인권론과 몽테스퀴에의 견제와 균형 이론이 미국의 민주주의 헌법을 낳았으며,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이 대공황 시기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낳았으며, 맑스의 유물론적 계급투쟁이론이 러시아와 중국의 공산주의 체제를 낳았으며, 하이에크의 개인의 자유와 시장을 최고로 두는 이론이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정책의 밑바탕을 제공하였다.

근래에 미국에서 아이디어가 제도를 바꾼 구체적 사례를 네가지 제시한다. 첫번째 사례는 1990년대 중반에 도입된 주파수 경매제도이다. 이전까지 통신 주파수는 정부 위원회의 재량적 판단에 의해 소수의 업체에게 할당되었다. 경제학자 로날드 코스는 1950년대 이래 줄기차게 주파수는 토지와 마찬가지로 시장원리에 의해 배분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이론적으로 설명했으나, 1990년대까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신 제도가 이익집단에 의해 포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이동통신이라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고, 정부의 재정적자가 커지면서, 결국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업자에게 주파수를 경매하는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두번째 사례는 1980년대 초반에 전개된 항공산업 자유화이다. 그때까지 항공 요금이나 취항 노선은 정부에 의해 엄격히 관리되었으며 신규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러한 지나친 규제는 항공 안전을 보장한다는 구실로 지속되었다. 경제학계는 1960년대 이래 항공 산업을 시장원리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였으나, 기존 항공업계의 이익에 가로막혀 변화가 어려웠다. 1970년대에 오일쇼크로 경제 전반에 인플레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시험을 할 기회가 열렸다. 소수의 노선에 대해 제한적으로 가격할인 경쟁이 붙었으며, 경제위기의 와중에 와싱턴 정치계에서 완전히 국외자였던 카터 대통령이 취임하고 항공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장에 개혁 성향의 경제학자가 임명되었다. 개혁의 바람을 몰고 온 젊은 정치인인 에드워드 케네디가 의회에서 개혁 논의를 주도하면서 마침내 1982년에 항공산업은 완전 자유화되었다.

세번째 사례는 1996년 빌클린턴 대통령 시기에 이루어진 복지 개혁이다. 빈곤자를 구제하는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시대에 사회보장 시스템을 낳았고, 1960년대 존슨 정부 시절에 빈곤과의 전쟁이라는 구호하에 다양한 복지 제도를 도입하였다.  1990년대 들어 미혼모의 문제가 커지고, 기존의 복지제도가 복지에 의존성을 높인다는 주장이 높아지면서, 결국 복지 수혜자의 복지 혜택 수급년한을 제한하고 구직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복지제도가 개혁되었다. 이는 정부의 복지제도가 '사회가 도와줄 가치가 있는 빈곤자' (deserving poor)를 선별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관철된 경우이다. 

네번째 사례는 2008년의 금융위기이다. 자신 소유의 집에서 산다는 것은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으로 오래전부터 미국 문화에 이상화되었다. 정부가 사람들의 자가 소유를 권장하는 정책에 착수한 것은 1930년대부터 이며, 이차대전 이후에 더욱 강화되었다. 1990년대에 들어 정부의 자가소유 권장 정책은 보다 구체화되어, 정부가 모기지(장기 주택저당 대부)를 지원하는 기관을 설립하였고, 금융기관이 사회약자와 소수자에 대해 모기지를 제공한 실적을 금융기관 평가의 기준으로 삼게까지 됬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향에 부응하여 금융기관은 신용이 부실한 가구에 모기지를 남발하였으며, 신용평가회사는 부실한 모기지에 근거한 채권을 우량등급으로 평가하였다. 결국 소득이 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너도 나도 집을 사는 붐이 일면서 주택가격의 거품이 형성되었다. 2008년 갑자기 거품이 꺼지면서 금융기관은 엄청난 부실채권으로 파산의 위기에 처하여 정부가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을 구제하기에 이르렀다. 자가소유라는 아이디어가 낭비적인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어 내고, 이에따라 사람들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여 엄청난 사회적 낭비를 만들어 낸 대표적 사례이다. 

좋은 아이디어가 좋은 제도를 낳고, 이것이 좋은 인센티브 시스템을 만들면서 사회가 선순환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조건이 맞을 때에만 좋은 아이디어는 좋은 제도로 구체화된다. 이때 적절한 조건이란, 집단간의 이익 구조에 균열이 생길 때이다. 아이디어와 사회 조건 중 어느 쪽이 변화를 위해 더 중요할까? 어느 쪽이 항시 옳다고 일괄적으로 주장할 수없다. 사안에 따라 아이디어가 더 중요한 경우가 있고, 혹은 사회조건이 더 중요할 때가 있다. 사실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서 사회가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보다는, 좋은 아이디어가 기득권자가 버티고 있는 사회조건에 가로막혀 제도변화로 이끌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예컨대 우버가 대표하는 공유경제의 도입과 기존 택시업자간 갈등은 좋은 아이디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는 사회조건 때문에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경제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하여 기존의 정치사상과 경제이론을 모두 검토하겠다는데, 황당한 발상이다. 수많은 사상가와 이론가의 주장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면서 요약해 놓아서, 별로 통찰력을 제공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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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Surowiecki. 2004. The Wisdom of Crowds. Anchor Books. 282 pages.

저자는 잡지 뉴욕커의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하였다. 지역 축제에 말의 체중을 알아맞추는 게임에서 군중의 추측을 평균한 값이 참값에 놀랄만큼 근접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군중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의 판단보다 더 낫다는 주장을 편다.

군중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의 판단보다 나으려면 몇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군중의 지적 배경이 다양해야 한다(diversity).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소유한 사람들이 지혜를 합칠 때, 소수의 전문가보다 더 풍부한 정보 자원을 동원할 수있기에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둘째, 군중의 사고과정이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independence).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모아도 소수의 자원밖에는 활용할 수없다. 집단 토론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편견은 증폭되므로,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면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보다 더 극단에 치우칠 수있다. 권위적 위계 때문에, 집단토론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원활하게 의견을 소통하지 않고, 상위자의 의견이 좌중을 압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집단 구성원의 사고 과정이 독립적이지 않다면 군중의 지혜는 작동하지 않은다.

셋째, 집단의 의견을 수렴할 수있는 유효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aggregation). 집단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수렴되지 못한다면 집단의 지혜는 발현될 수없다. 산술적인 평균 이외에 집단의 의견을 수렴하는 다양한 사회 장치가 있다. 시장기구가 대표적이며, 민주주의의 투표 제도, 구글의 서치알고리즘, 스포츠나 경마의 베팅 사이트, 등이다. 저자는 의사결정시장(decision market)을 유용한 의견 수렴장치로 제시한다. 주요 선택지에 대해 참가자의 선택이 상대 가격으로 표시되는 제도이다. 참가자들의 결정을 반영하는 선택지의 가격은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관련 주제에 전문가나 혹은 회사의 구성원이 참가자로 등록하여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가격 기구가 만들어진다면 개개 전문가나 조직 구성원의 다양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있다. 단적인 예로, 일반인이 참여하는 의사결정시장을 통해 선거 결과를 예측했을 때, 전문가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군중의 의사결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 정보의 쏠림(information cascades)이 발생할 수있다. 최초 결정자의 의견을 뒤에 사람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타인을 모방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뒤에 사람들은 앞에 사람들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극단적인 예가 주식시장의 거품현상이다. 

군중의 지혜를 모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때로는 군중이 서로의 행위를 조정하지 못하여 실패 혹은 비효율을 만들기도 한다. 교통 혼잡, 주식시장의 거품이 단적인 예이다. 

과학 활동은 다수의 협동으로 이루어진다. 즉 다수가 서로 경쟁하면서 지식을 얻는 일에 매진하는 가운데 과학이 발전한다. 근래로 올수록 단독으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지금까지 쌓아 올려진 탑 위에 새로운 무엇을 추가하는 과정이 과학 발전이다.

현장에 가까운 사람들이 현실을 더 잘아는 반면, 위계의 상위로 올라갈 수록 현실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밑으로부터 의견이 수렴되는 것이 위로부터 밑으로 지시를 하는 방식보다 낫다.  위로부터 밑으로 지시를 하는 방식으로 조직이 움직이는 것은 현실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CEO가 엄청난 보수를 받는 것은 그의 결정이 회사의 문제를 푸는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주의가 전문가에 의한 지배보다 낫다. 전문가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보다 낫다는 그의 주장은 서구 사회의 기본 가치에 반하는 주장이므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지도자와 영웅을 추켜세우는 역사관을 주입받으며, 전문가가 보통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보통사람 다수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나 지도자보다 낫다는 그의 주장은 반지성적, 반권위적으로 들린다. 저자는 후기에서,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수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졌으므로, 군중의 지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그의 예언은 맞지 않았다. 두가지 이유때문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전문가와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을 훼손하는 의사결정 방식을 좋아하지 않기때문이다. 군중의 지혜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현재와 같이 전문가와 지도자가 후한 보상을 받는 체제의 정당성은 뿌리에서부터 흔들릴 것이다. 둘째는 문제가 복잡해 질수록 일반 사람들은 내용을 전혀 모르기에 전문가를 동원해야 할 경우가 늘어난다. 전혀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리 잘 수렴해도 전문가를 당해낼 수 없다. 물론 많은 의사결정 사안은 일반사람들이 전혀 내용을 모르기때문에 전문가나 지도자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정부에서 국민 참여 토론회를 통해서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답을 도출하려는 것이 반드시 옳은 방식인지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서술이 장황해지는 결점이 있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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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 Rodrik. 2018. Straight Talk on Trade: Idea for Sane World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74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그가 근래에 쓴 몇개의 글을 모아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수년전에 Globalization Paradox의 논지와 연결되는데,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며 그러한 문제에 대응하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한다. 

세계화는 승자와 패자를 낳는다. 교육수준과 기술 수준이 높은 사람은 세계화로 큰 이익을 얻지만,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은 피해를 본다. 세계화는 불평등을 높인다. 이러한 세계화가 초래한 문제에 대한 반발로 근래에 서구사회에서 대중영합주의 정치가 득세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조짐을 보인다.

이러한 세계화의 부작용을 막으려면 각 국가 고유의 제도와 독립성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세계 경제가 연결되어야 한다. 각 나라의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와 경제 구조가 온존될 때에만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운영될 수있다. 현재와 같이 세계화의 패배자들을 배제하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세계화가 전개된다면, 정치적인 혼란과 세계화의 후퇴를 피할 수 없다.

세계화 낙관론자들은 앞으로 국가의 경계가 사라지리라고 예상하지만, 국가의 역할은 강건하며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국가 내에서 이루어지며, 사람들의 어려움에 국가가 대응하며, 국가가 제도를 만들고 관리한다. 민주주의는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맞추어 제도를 만들 것을 요구하므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한, 국가의 주권을 국외의 기구에 완전히 위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 유일한 예외는 유럽 연합인데, 그곳에서도 국가가 주요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며 각 국가가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다. 

세계화,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 이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 셋 중에 두개만 조합할 수있으며, 나머지 하나는 희생되어야 한다. 이 세가지가 모두 동시에 만족될 수없는 이유는, 각 국가는 그 나라의 지리와 역사를 통해 그 나라 고유의 선호와 제도가 구축되어 있기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인은 북유럽 국가의 높은 세금, 높은 평등, 높은 복지를 선호하지 않으며, 반대로 북유럽 사람은 미국의 높은 불평등, 높은 위험부담을 선호하지 않는다.

세계화와 민주주의가 조합된다면, 즉 구성원의 요구에 답하면서 세계적으로 단일체제를 이루려고 한다면, 각 국가 고유의 선호와 각 국가의 주권은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각 국가는 그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정치 경제를 운영하므로 세계적인 단일 체제는 허용될 수 없다. 세계화와 국가의 주권이 결합된다면, 즉 각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세계적 단일체제를 구축한다면, 각 국가의 구성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는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 유럽연합은 어느 정도 경제 단일체제를 이루기는 했으나 그에 걸맞게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덜컹 거리며 위기에 취약하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의 가난한 나라들이 동아시아의 경제발전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동아시아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을 높여나갔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제조업이 성장하기 전에 서비스업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제조업은 생산성 향상이 빠르나, 서비스업은 생산성 향상이 더디다. 생산성 향상이 없다면 사람들의 소득이 높아지지 못하므로 가난에서 탈피할 수 없다. 선진국에서 자동화로 제조업의 노동수요가 감소한데다, 중국이라는 거대 제조업 국가가 버티고 있기때문에, 아프리카와 같은 가난한 나라들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으로 경제 성장을 이루기가 어렵다.

경제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방식이 채택되지 않는 이유, 경제발전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이유는 정치적 안정, 특히 기득권 집단의 이익을 지키는 것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보다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적 기득권 집단의 이익에 위협이 되지 않으면서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경제발전 전략을 채택한 예가 많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영국의 산업화 과정, 독일의 지주계층이 산업화에 뛰어든 것 등이 대표적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적절한 전략과 환경이 마련된다면 정치와 충돌하지 않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기득이권 구조가 경제발전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는 경제발전을 이끈다. 예컨대 중국에서 제한된 지역을 수출자유지역으로 설정하고 이곳에서 시장경제가 운용되도록 한 것이 경제발전의 동력이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이나 중류층이 자신의 계급 이익에 반대되는 정책을 지지하는 이유는, 지배집단이 정체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조작하기 때문이다. 계급 정치(class politics)가 지배한다면 각 계급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투표를 할 것이지만,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지배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시하는 정체성, 즉 인종 민족, 종교, 지역 등에 따라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주창하는 정치인도 지지한다. 부자들은 사람들의 정체성을 환기시킴으로서 경제적 불이익을 잊도록 하는 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한다. 

선진국에서 세계화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세계화의 피해를 보상하는 방식의 정책은 미국에서 지지 받지 못했다. 1980년에 레이건 대통령은 산업전환보상법의 예산을 삭감하여 무력화시켰다.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직장을 잃고 소득이 낮아진 사람들에게 기술훈련을 시키고 보상을 주는 방법은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에 기여했으나, 그곳에서도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부상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대안은 각 나라가 자신의 규제와 제도 환경을 보호하도록 하면서, 공정무역을 하는 방식으로 세계화를 조정하는 길이다. 개발도상국에서도 선진국에서와 유사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면서 생산하도록 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간에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기본권을 존중하고, 유아노동이나 착취적 노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기본 규칙을 모두 준수한다면, 선진국 사람들도 자신의 일이 개발도상국으로 옮아가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이 배제되지 않도록, 즉 포용적 경제 성장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세계화의 패자에게 갈곳이 없도록 하는 현재의 방식은 위험하다. 좌파는 이들을 포용할 수있는 대안적 경제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결국 이들의 분노를 이용한 대중영합주의적 민족주의적 우파의 목소리만 높아졌다. 이는 세계화를 좌초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다.

세계화와 경제성장의 다양한 쟁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각 국가가 자신의 제도적 주권을 유지하면서 세계화를 조절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타당성이 있다. 세계화에서 패배자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국가가 경제성장을 조정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대등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하도록 하여 공정하게 경쟁한다면 선진국 사람의 분노가 가라앉을 것이라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빈곤한 나라에 선진국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당장 빵이 없는 사람들에게 사회적 보호는 뒷전일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그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설사 공정무역을 한다고 해도, 선진국에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의 일자리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에게로 이전한다면 그들이 여전히 분노하지 않을까? 같은 나라에서 기술 발전으로 자신의 비효율적인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사람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처럼, 공정경쟁으로 자신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그의 주장은 틀리다.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건 경쟁력이 떨어져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그러한 현실에 좌절하고 분노할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처지에 떨어지지 않도록 기술 수준을 높이거나, 그것이 안된다면 사회적 지원을 후하게 해주어 분노를 완화시키는 것만이 그들을 달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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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9. 12:35

Len Fisher. 2008. Rock, Paper, Scissors: Game theory in everyday life. Basic Books. 199 pages.

저자는 대중 과학 저술가로 게임이론을 통해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의 근본적 딜레마를 설명하고 해결 방법을 모색한다. 내가 선한 행위를 한다고 하여 상대도 반드시 선한 행위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모두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여 악한 행위를 한다면 사회의 질서는 무너질 것이다.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하는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지만, 집단 내에서 다른 사람들은 협동을 할 때 내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면 나에게는 남보다 이익이 더 많이 돌아간다.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게임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는 일곱 가지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첫째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 둘 다 죄를 고백하지 않고 버티면 둘 다 이익을 보지만, 어느 한쪽은 버티고 다른 한 쪽은 고백을 하면 고백을 한쪽은 이익을 보지만 버틴쪽은 손해를 보는 상황. 둘째는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commons). 공동소유하는 것에서 각자가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면 공유지는 망하게 됨. 셋째는 무임승차자(free rider). 나는 기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노력한 댓가를 향유함. 넷째는 치킨(chicken). 둘다 양보하지 않고 버티면 모두 망하지만 어느 누구도 먼저 양보하려 하지 않음. 다섯째는 자원자의 딜레마(volunteer's dilemma). 누군가 희생하면 전체가 이익을 보지만 아무도 스스로 희생하려 하지 않음. 여섯째는 양성의 갈등(the battle of the sexes). 각자가 선호가 다른 데 어느 한쪽도 자신의 선호를 상대를 위해 포기하려 하지 않음. 일곱째는 사슴사냥(stag hunt). 공동으로 사슴을 샤냥하는 데 어느 한 사람이라도 자기 앞에 지나가는 토끼를 잡는데 눈이 팔리면 자신은 이익을 보지만 다른 모두는 사슴 사냥에 실패하는 상황. 

이 모든 딜레마는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하는 문제를 낳는다. 단 한번으로 끝나는 관계라면 일탈자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 남보다 먼저 일탈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고 끝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관계는 한번으로 끝나는 관계가 아니며 다양한 통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질서를 따르도록 하는 사회적 압력이 일탈을 막는 장치이다. 집단에서 규범을 어기는 사람은 왕따를 당하거나, 평판을 잃거나, 벌을 받는다. 사람들은 어릴 때 사회화 과정을 통해 규범을 지키도록 내면화된다. 규범을 어기면 외부로부터의 제제 이전에, 스스로 마음이 불편해진다.

인간은 공정성(fairness)을 지키려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났다. 자신에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공정한 관계를 선호하며, 불공정하게 이익을 보는 사람을 처벌하는 데에서 쾌감을 느낀다. 공정성을 추구하는 욕구는 동물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욕구는 공정성을 유지하는 집단이 그렇지 못한 집단보다 생존의 가능성이 더 높기때문에 선택된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진화는 개인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볼 때 공정성을 유지하는 집단 속에서도 항시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일탈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두 사람사이에 가장 공정한 분배 방식은, 한 사람이 나누고 다른 사람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I cut and You choose). 여러 사람이라면 나눈 사람이 가장 나중에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혹은 각자 자신은 선호하지만 다른 사람은 선호하지 않는 것을 먼저 챙기도록 한 다음, 공동으로 선호하는 것을 번갈아가며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관계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될 때, 협동을 만들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tit for tat), 즉 상대가 나에게 대하는 대로 상대에게 값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긍정적 보상이나 부정적 처벌 모두에 적용한다.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거 철학자와 현자들이 모두 권한 방식이다. 이 방식이 모두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이 방식의 문제는 만일 실수나 우연한 상황때문에 한쪽이 이탈을 했을 때 그 이후 보복이 계속이어지며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이익을 볼 때는 현재의 행위를 지속하지만 손해를 보면 지금까지와 반대로 행위하는 것이다(stay if you win, shift if you lose). 이러면 만일 상대가 이탈했을 때 나도 이탈하여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지만 상대가 만일 또 이탈한다면 내가 협조를 하는 선순환을 시작할 수 있다.  

저자는 게임이론을 주변의 예를 통해 상식적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게임이론이라는 부제에 맞게 저자가 드는 예가 대체로 저자의 개인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것들이다. 그것도 나름 가치는 있지만 설득력이 크지 못하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보다 다양한 예들을 게임이론을 이용해 설명한다면 사회를 이해하는데 보다 풍부한 통찰력을 주었을텐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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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2. 26. 21:03

W. Brian Arthur. 2009. The Nature of Technology: What it is and How it evolves. Free Press. 216 pages.

저자는 기술과 경제의 관계를 연구한 경제학자로 기술은 무엇인지 어떻게 기술이 발전하는지 설명한다. 기술은 인간의 필요에 부응하는 수단으로서, 자연 현상을 인간의 필요에 맞도록 조작하는 방법과 그러도록 만들어진 장치를 통칭한다. 기술은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단순한 기술들은 조합을 거듭하면서 복잡한 기술로 거듭난다. 기술은 자연현상, 예컨대 물리적 인력, 유체현상, 광학현상, 자기현상, 전자현상, 화학현상 등을 당면 목적에 맞게끔 끌어다 쓴다. 만일 자연현상이 다른 세계로 가면, 우리가 만들어낸 기술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복잡한 기술은 모듈(module)이라 부르는 기술 뭉치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모듈은 다시 조금더 단순한 구성 모듈로 구성되며, 이러한 과정은 거듭된다(recursive). 저자는 전투기의 제트엔진을 예로 들어 이것이 어떻게 모듈로 구성되는지 설명한다. 

기존의 기술이 안은 문제를 해결하는, 혹은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 기술은 발전한다. 때로는 기존의 기술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프로펠라 비행기에서 제트 비행기로 바뀌는 과정은 기존의 것의 문제를 개선하는 식으로 탄생되지 않았다. 자연 현상을 새로이 가져다 쓰는 원리를 생각해 내면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진다. 이 경우에도 새로운 원리는 다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된 원리를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용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발전한다. 기존에 가용한 기술이나 원리가 많을 수록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왜냐하면 가용한 기술들이 많으면 새로이 조합하는 경우의 수가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전문가는 기존의 기술과 원리에 통달한 상태에서, 새로운 문제를 풀 방법을 궁리하면서 기존의 것을 선택적으로 가져다가 새로이 조합한다.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쳐서 문제를 해결하는 조합을 만들어 내면, 이러한 새로운 조합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개선하는 후속 과정을 통해 기술이 정교화된다.

기술이 정교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늘어나지만, 기존의 기술로는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부닫쳤을 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기술이 나타난다. 이렇게 새로운 기술로 바뀌는 과정은 토마스쿤의 패러다임의 변화와 비슷하다.

기술은 기술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발전의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기술이 정형화되기 이전 단계에서는 잡다한 장인적인 지식이 많은데, 이는 이 기술에 통달한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 속에 체화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당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서로 경험과 지식을 교환하고 공유하는데, 이러한 전문가 사이에 교환과 공유는 가용 기술을 조합하여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 내는 효율성을 높인다. 다른 지역에서보다 실리콘 밸리에서 기술의 발전이 빠른 이유이다.

중요한 기술은 그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하고 삶의 방식을 조직하는 경제를 낳는다. 19세기가 스팀 엔진의 시기였으며, 20세기는 내연기관과 전기의 시기, 1980년대 이후는 컴퓨터의 시기이다. 근래에는 인터넷과 컴퓨터가 결합하면서 정보산업의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 시대 전반을 관통하는 기술은 해당 기술이 도입되는 초기에는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생산과 생활에 적용될지 알 수없다.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은 생물체의 진화와 유사하다. 적자생존이라는 원칙이 기술의 선택에도 적용된다. 기술은 경로의존적으로 복잡성을 더하면서 진화한다. 먼 미래에 어떤 기술이 나타날지 미리 알 수 없다. 생물체의 진화와 다른 점은 생물체의 진화는 서로 다른 종간에 유전자의 조합이 이루어지기 매우 어려우나, 기술의 진화는 다양한 기술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기술로 탄생한다는 점이다. 

어떤 기술이건 항시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며, 이를 문제를 푸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기술이 발전한다. 외적인 충격에 의해서가 아니라 기술 자체가 새로운 기술을 낳는 것이다.  물론 인간이 제시하는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색하면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기술이, 새로이 발생하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모색하는 과정을 아직은 인간의 개입 없이는 못하지만, 어떤 기술이나 해결해야 할 새로운 문제를 안고 있으므로 기술은 정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다. 과거에 간단한 기술밖에 없을 때에는 조합할 수있는 가용 기술이 많지 않았으므로 기술의 변화 속도가 느렸지만, 가용 기술의 가짓수가 많아 조합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 요즈음, 기술 변화의 속도는 무척 빠르며 앞으로 더욱 빨라질 것이다.

이 책은 기술의 변화에 대해 풍부한 예를 곁들여 이론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저자의 강연에 근거하여 책을 썼으므로 글이 술술 넘어간다. 기술 발전과 관련하여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

2020. 2. 25. 12:46

Nassim Nicholas Taleb. 2018. Skin in the Game: Hidden asymmetries in daily life. Random House. 236 pages.

저자는 유가증권 딜러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험의 속성을 세상사에 적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에 간여하는 사람이 그 일의 결과, 즉 성패의 위험을 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자신의 일의 결과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때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며, 자신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하며, 사회 정의가 바로 서게 된다. 반면 일의 결과를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 일의 결과가 만들어내는 이익은 자신이 챙기지만 손해는 다른 사람이 지게 하는 그런 구조는 현실을 외곡하고 결국 망하게 되는 길이다.

금융가, 학자, 저널리스트, 분석가, 정책 입안자들은 말로만 일을 할뿐 그 일이 초래하는 실제의 위험을 지지 않거나, 이익만을 선택적으로 챙기고 손실은 남에게 떠넘기기 때문에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지식인은 현상을 복잡하게 설명함으로서 먹고사는 무리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료 지식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가가 중요한데, 지식인들은 복잡하게 보여야만 마치 중요한 것을 하는 듯이 보여서 먹고살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외곡하는 일에 공모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헬스장에서 근육의 힘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복잡한 기구를 잔뜩 들여 놓지만 막상 바벨은 없다. 가장 단순한 바벨이 근육의 힘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헬스장에 있는 복잡한 기구는 특정 결함이 있는 사람에게 특정 부위를 재활시키는 목적의 것이다.

그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근육의 힘을 단련시키는데 바벨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지적은 맞지만, 복잡한 기구는 근육의 힘을 단련시키는 목적만은 아니다. 단순한 반복과 권태를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에 대응한 수단이다.  전문가가 복잡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은 '냉혹한 사실'(brute fact)을 원하지 않는다. 설사 복잡한 설명이 맞지 않더라도 냉혹한 사실의 냉혹함을 감추어주는 이야기꾼의 복잡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과 실패의 쓴맛을 잊고 위무받는다. randomness 의 냉혹함을 똑바로 바라보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왜 나에게 이런일이?'(why me?)라는 질문은 정확한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위무를 원하는 것이다. 전문가와 종교인이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부응해 위무를 제공한다.

지식인보다는 상인, 사업가, 장인이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 상인, 사업가, 장인은 일의 실패 위험을 본인이 지며 실제 가치있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반면, 지식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위험을 지지 않으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에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말이나 생각보다는 행위와 결과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무엇을 하는지, 세상이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은 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전문가가 어떻게 진단하는지가 아니라, 세상이 작동한 결과에 주목해야만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있다.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것만이 합리적인 것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탈락하기 때문이다. 생존의 시험만이 일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세월의 시험을 통과한 할머니의 지혜가 사회과학자의 분석 결과보다 더 값지다.

평균으로 계산한 위험의 확률은, 드물지만 한번 닥치면 큰 피해를 주는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일상의 위험 중 후자의 것이 많은데,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직관적으로 알기에 피한다. 이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의 성향으로 나타나는 데, 이러한 인식의 편향성(bias)은 생존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 진화의 결과 이런 성향을 가진 생물만 살아남았다.

저자는 간접 경험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데, 인간의 지식의 발전은 사람들의 직접경험이 간접경험으로 축적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과학이나 기술의 세계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위대한 발견과 지식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 시대보다 오늘날 사회에 대한 이해가 더 높으며, 덜 폭력적이며, 비참이 덜 하고, 더 잘살게 되지 않았는가? 물론 말로 먹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적처럼 필요없이 현상을 복잡하게 외곡하며,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비겁자라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지식 행위 전반을 부정하는 저자의 반지성주의에는 동의할 수없다.

이 책은 잠언집의 성격이다. 권력자와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위선에 대해 도전하며, 냉소적인 에피소드와 경구적인 발언으로 채워져 있다. 그가 쓴 기존의 책의 메시지를 반복한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가치있지만, 책 전체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별 상상력없이 반복한다. 그는 겸손하고 독자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라틴어와 수사를 계속 나열하는 것은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는 저자 자신이 권위를 탐하는 행위이다. 그가 조금더 친절하고 겸손했다면, 사람들이 그의 지혜에 눈을 떠서 덜 어리석게 살아갈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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