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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감나무'에 해당되는 글 41건
2020. 11. 14. 20:12

 

James C, Scott. 2020(1998).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357 pages.

저자는 예일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추진한 대대적 개혁 사업이 왜 모두 실패로 끝났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과 계획 조림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은 말끔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공존하며, 가뭄, 홍수, 화재, 병충해 등의 외부적 충격에 강하다. 반면 계획 조림을 한 숲은 외양은 깨끗하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하여 지속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의 성장이 정체되고 병충해의 공격으로 완전히 전멸하기도 하므로, 이러한 계획 조림 숲을 계속 유지하려면 인위적으로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자연상태의 숲을 밀어내고 그자리에 단일한 종의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숲을 조성하는 이유는, 외부인이 그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쉽게 파악하고(legibility), 통제하기 위함이다. 자연상태의 숲은 목재를 생산한다는 상업적 목적에서 보면 부적합하기 때문에 상업적 목적의 계산이 가능한 단일 종의 숲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가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개혁 사례로, 17세기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 이후 농장 집단화 사업,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행정수도 건설, 탄자니아의 독립 이후 추진된 농촌 집단 정주촌 건설 사업을 분석된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은 전통적인 복잡한 토지 사용 관행을 무시하고 소유여부라는 단일 척도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였다. 인간의 합리적인 계획으로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는 근대화(mordernism)이념으로 무장하고, 전통적 공동체와 농업 방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자리에 완전히 계획된 집단 농장과 도시를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작업은 주민의 실제 토지 사용관행을 반영하지 못했기에, 서류상의 소유관계와 실제의 사용관계가 유리된 결과를 낳았다. 소련의 집단 농장과 탄자니아의 농촌 집단 정주촌 사업은 농업 생산성이 추락하여 농민이 먹을 것 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브라질리아는 주민간 인간관계가 메마르고, 활력이 없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도시가 되었다.

실패한 이유를 검토하기 앞서 왜 이러한 무모한 시도를 했을까 생각해 보자. 전통적 농촌 마을과 전통적 생산방식은 오랫동안의 인간관계와 삶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외부자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며, 외부자가 전통적 생산방식을 이해하고 통제하기는 힘들다. 전쟁이나 정치적 투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 집단은 기존의 전통 관계를 파괴하여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비록 이러한 무자비한 정책이 생산성의 저하를 낳는다 해도, 세금을 더 거두고 잠재적 반발 세력을 무력화하기 때문에 엘리트 집단에게는 득이 된다. 반면 외부의 엘리트로부터 통제 당하는 주민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준다.

중앙의 일관된 계획에 따른 실험, 소위 '사회적 공학'(social engineering)이 실패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 관계와 삶의 방식을 몇개의 원칙으로 단순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은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축적해온 지혜를 반영한다. 이러한 현장의 지혜를 무시할 때 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중앙 관료의 지시에 따라 일을 추진하면 주민은 강압에 못이겨 수동적으로 따를지 몰라도 일은 제대로 될리가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창의(innitiative)와 오랜 시행착오로 축적된 실용적 지혜(practical know-how)를 무시한다면 생산성을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일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소련의 집단 농장이나, 브라질리아나, 탄자니아의 집단 정착촌이 그나마 오랜 시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정부의 공식적 지시와 원칙을 어기고 비공식적으로 생존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전통적 농법을 폐하고 과학적 영농 방식으로 자연을 개조하려는 시도들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한다. 전통적 농법은 여러 작물을 섞어서 재배하고 윤작을 하는 데, 이는 상업적인 생산의 관점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과학 영농이라 하여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써서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은 처음에는 생산성이 있는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추락한다. 전통적 농법은 지역의 구체적 사정에 맞추어 적응된 방식이며 오랫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효율적으로 판명된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단순히 실험실에서만 성공한 표준화된 과학적 영농방식을 다양한 현지 사정에 일괄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농법은 자연의 실험장에서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선택된 종자와 재배 기술인 반면, 과학적 영농은 먼저 특정 종자와 재배 방식을 실험실에서 개발하고 자연을 실험실의 상황으로 개조하여 적용하는 방식이다. 자본을 많이 투입하고 자연 환경을 실험실의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미국 중서부나 유럽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방식이 성공할 수없다.

복잡한 현상을 소수의 몇개 변수로 단순화하여 파악하는 것은 과학적 인식의 기본이다. 소수의 몇개의 변수로 단순화해야만 자연 현상에 대한 통제와 조작이 가능하다. 관심의 촛점이 되는 소수의 변수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요인들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 과학적 실험이다. 인류는 이러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 왔다. 사회 현상은 자연 현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수의 영향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힘들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관해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다. 특정 지역, 특정 집단, 특정 인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데, 소수의 원칙을 적용하여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저자는 소수의 사례들에 관해 흥미롭게 서술하며, 이론적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저자의 설명이 실패한 사례들에는 잘 적용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상 큰 변화를 가져온 사례에도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추진한 시도는 원래 의도한 대로의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기득이권의 구조를 파괴하고 변화를 위한 장을 마련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원래의 실험이 실패한 바탕 위에 원래보다 덜 과격하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또 다른 실험이 전개되거나, 최소한, 실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회가 전개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며, 사회의 기득이권 구조는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변화란 어찌보면 무모한 실험의 연속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져 온 것이다. 학술적으로 단단한 연구에 바탕을 둔 흥미로운 책이다.

2020. 11. 3. 21:55

Deirdre McCloskey. 2010. Bourgeois Dignity: Why Economics can't expla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50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로, 이 책은 어떤 요인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낳고 이후 200년간 16배 이상의 실질 소득 상승을 이끌었는지 설명하는 저자의 삼부작 중 두번째 책이다. 저자는 부르주와(bourgeois), 즉 상공업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 태도, 윤리, 아이디어, 담화의 변화가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온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동원하는 물질주의적 인과론을 배격한다. 물질적 조건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제에 적용한 파괴적 혁신이 비약적 발전의 사이클을 돌게 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공업(business)을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했다. 과거 동서양의 모든 사회는 지주, 귀족, 관료, 무인, 문필가, 예술인을 숭상한 반면, 물건을 만들고 팔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용적 목적에 활용하여 돈을 벌며, 기존의 방법을 개혁하여 효율을 높이는 상공인들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경원시하였다. 이러한 구질서에서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여 비즈니스에서 부를 축적하면 어떻게든 이를 벗어나 지주, 관료, 귀족 계층으로 올라서려고 할 뿐, 더 좋은 방법을 고안하여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유럽의 봉건체제에서 지주 계층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것이나, 중국의 유교 질서, 인도의 카스트제도, 이슬람 세계에서 상공업을 천시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상공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dignity)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자유(Liberty)를 갖게 됨으로서,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파괴적 혁신(distruptive innovation), 파괴적 창조(distruptive creation)을 계속해 나갔으며, 그 결과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 일반인이 상공업을 비하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로 변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6세기 계몽주의(Enlighment),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종교혁명(Reformation), 인쇄술의 발전, 17세기에 부르주아로 구성된 의회가 왕을 견제하게 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도시의 발전, 무역의 발전, 등 여러 요인이 오랜 시간 동안 중첩되어 작용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점차로 비즈니스를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하였으며, 이것이 영국으로 바로 이전되었다.

저자는 기존에 경제학자들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의 원인으로 주장한 것들을 각개격파 방식으로 반박하면서 왜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한다. 40여개 장에 걸쳐 기존의 주장을 반박하는 학술 논쟁을 계속 전개한다.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이 축적되어 산업혁명이 출현하고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투자를 더 많이 한다고 하여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노예제, 식민지, 제삼세계의 착취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의 착취로 부터 얻은 이익 덕분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와 제삼세계의 착취는 그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그로부터 얻은 이익은 대단치 않으며 결코 비약적 생산성 증가를 이끌 수없다. 지리적 이점이나 풍부한 자연자원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을 이끌지도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경제적 탐욕의 동기나 절제와 합리적인 생활태도, 막스베버가 주장하는 개신교 윤리 또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원인이 아니다. 무역의 증대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끌지 않았으며, 노벨경제학자 올리버 노스가 주장하듯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 및 법에 따른 지배(rule of law)와 같이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부정과 부패를 막는 합리적 제도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이러한 요인들이 과거 로마제국, 중국, 인도, 이슬람세계에서 한때 존재했으나 산업혁명과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끌지 않았던 사실에서 입증된다. 

저자는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경제발전은 오로지 파괴적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방식을 개혁한 사람들(tinkerer)은 이윤동기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신 자체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았으며, 이는 상공인의 자긍심(dignity)과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있는 환경(liberty)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반인들이 비즈니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사회가 이들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괴적 혁신은 만들어질 수없으며,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은 인류 사회에 도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상공인을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비즈니스를 장사꾼과 공돌이가 하는 것이라고 천시하면서 인문학, 예술을 숭상한다. 그들은 돈버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기보다는 학자나 관료가 되거나 비영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고상하게 생각한다. 동서양의 지식인들은 시장의 효율성에 맡기기보다는 중앙에서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 큰 선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체제가 비효율로 인해 붕괴했음에도 여전히 시장보다 규제를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선호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비즈니스를 통제하려 한다. 근래에 사회주의가 붕괴한 자리에 환경주의(environmentalism)가 들어서 규제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부를 창출하고, 가난을 척결하고,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시장과 파괴적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답이다. 섯불리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규제 정책이나 비영리 활동은 오히려 정체와 후퇴를 낳을 뿐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무능한 결과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난 200년 동안 엄청난 부의 창출과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인문학이나 관료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파괴적 창조를 지속한 상공업, 비즈니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경제역사학자로서 학술적으로 뛰어나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특이한 지식인이다. 그는 시장 규제에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의 입장에서 기존의 학계와 지성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이 책은 그의 박식한 배경을 종횡무진 발휘하여 기존의 연구들을 샅샅이 꿰뚫으면서 비판하기에 논의를 제대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학술적으로 엄격하면서 탈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나온 돈키호테식의 솔직함은 기존의 권위적인 사고의 틀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2020. 9. 7. 18:05

Claude S. Fischer. 2014. Lurching toward happiness in America. MIT Press. 129 pages.

저자는 저명한 미국의 사회학자로, 이 책은 그가 Boston Review 라는 지성지에 쓴 글을 모은 것이다. 현재의 미국 사회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소재를 열개의 글에서 다루고 있다. 각각의 글이 묻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미국인의 행복도에 변화가 있는가, 온라인을 통한 이성 소개는 바람직한가, 인터넷이 사람들을 과거보다 더 외롭게 만들었나, 미국인은 왜 유럽사람들보다 더 오랜 시간 일을 하는가, 극심한 빈곤의 원인은 무엇인가, 미국인은 왜 지역 자치에 집착하는가, UNDP의 인간개발지수를 통해 미국인의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서 문제점은 무엇인가, 성공이란 환경과 운의 결과인가 아니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인가,  소득 불평등이 나쁜 이유는 심리적 스트레스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현재 미국 사회와 사회변화에 관한 질문에 답한다.

글의 바탕에 흐르는 전반적 기조는 미국 사회는 유럽과 다르며, 문제의 인식이나 접근 방식또한 다르다는 점이다. 사회 제도이나 삶의 질로 비교할 때, 저자는 미국 사회가 북유럽 사회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의 부유함은 풍요로운 자연과 이민자의 유입이 궁극적인 원인이며, 공공 영역이 작은 미국의 자본주의 모델은 명암이 뚜렷하다. 학자가 자신의 전문지식을 배경으로 잡지에 쓴 글답게 비논쟁적이며 평이하다. 뚜렷한 주장을 제시하지 않으며 논의의 심도가 깊지 않다.

2020. 9. 1. 21:18

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저자는 중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기존 역사학계의 유럽중심주의를 배격한다. 1800년대초 유럽이 산업혁명에 진입할 때까지 중국과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했다. 기술 수준, 생산성, 산업과 교역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인도는 유럽을 능가했다. 그당시 유럽은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낙후한 지역이었다. 유럽이 1500년대에 대항해의 시대를 열게 된 계기는 그당시 선진 지역인 중국에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헝가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간 교역이 활발했는데, 14세기에 중동 지역에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통로가 막혀버려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졌다. 유럽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중국의 선진 문물과 교역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첨단을 달리던 나라로 유럽으로 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중국은 유럽 나라들과 달리 바다를 통한 외부와 교역이나 정복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외부와의 관계는 내륙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제한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은을 확보하였다. 이는 중국이 명나라 시대에 화폐제도를 지폐에서 은으로 바꾼 것과 맞물려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은 유럽을 거쳐 대량으로 중국에 흘러들어갔다. 유럽은 중국에 은을 지불하고 비단, 도자기, 차 등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은의 유입이 줄어든 반면, 유럽인의 중국 문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생산품 중 중국에 수출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여 거둔 돈으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아편 무역은 중국의 반발에 부딛쳤으며, 결국 1840-50년대에 두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은 중국을 굴복시켰다.

유럽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럽 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기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차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노선을 밟았다.  유럽에 정복된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은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천연자원과 원자료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였다. 비유럽 지역의 식민지화는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부흥하게 만들고, 식민지의 기존 산업을 몰락시켜 가난하게 만드는 양극화의 길을 열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영국 중부지방에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인접해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 덕분에 수증기의 힘을 이용해 석탄을 채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 건설, 섬유 산업의 기계화로 이어졌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환경 조건의 한계에 가로막혀 경제 발전과 인구 성장이 제한되었는데, 산업 혁명은 이러한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인구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도의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소비하였는데,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대신 면화 원재료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가공하여 국내 소비와 수출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과거에 융성하던 인도의 면화 산업을 몰락시켰다.

1800년대초까지 유럽을 앞서있던 중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 뒤쳐지면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와 이를 뛰어 넘어 성장하는 사회간의 간격은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에 개방적인 자본주의로 전환하여 본격적으로 경제발전에 착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구와의 격차를 좁혀왔다. 인도와 기타 개발도상국들 역시 20세기 후반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하고 산업화하면서 서구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저자는 유럽이 중국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한 것이 유럽 문화의 내재적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근접해 매장되 있는 것, 유럽 대륙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군사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유럽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우월한 군사기술을 활용하여 전세계에 식민지를 정복하게 된 것, 등이 산업혁명과 이후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인데, 이들은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유럽이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보다 특별히 더 합리적이라거나, 유럽이 중국보다 과학기술이 더 우수하거나, 상공업이 더 활발한 문화였던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우수한 과학 기술 덕택에 스팀 엔진을 개발하고 섬유 산업의 기계화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의 학자이면서 중국과 아시아의 편에서 세계 역사의 전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 서구의 발전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이 맞을 것이다. 세상의 일은 많은 부분 우연적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재적인 우수함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원인을 거술러 올라가면 자연 조건의 차이나 우연한 상황의 조합이 만들어 낸 것이다.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근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인종주의를 용인하지 않는한 모든 인간사는 우연한 외부 환경과 인간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서구가 중국과 아시아보다 앞선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여하하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경로 의존적(path-dependent)이기 때문에, 일단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게 되면 그 이후의 길이 달라진다. 물론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이 미국을 앞섰지만, 두차례에 걸쳐 유럽인들이 그들끼리 벌인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되면서, 미국이 유럽을 앞서는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지게 됬듯이, 미국의 제도적 비효율과 내부 갈등 때문에 국력이 약해지는 대신, 중국이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미국을 따라잡고 서구를 다시 앞서게 되는 역사의 경로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일인당 소득은 1만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6만불에 달하므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해도 먼 미래의 일이다. 중국의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발전의 속도가 떨어지고 내부 갈등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이 책은 대학교의 교재로 집필된 듯하다. 세계 역사 전반을 빠른 속도로 훑으면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독특한 시각이 눈에 띠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치밀한 증거를 인용한 논의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개별 지역이나 국가에 촛점을 두기보다 지구 전체적으로 근대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2020. 8. 23. 18:17

Walter Scheidel.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27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로 역사학계의 핵심 화두인, "서구는 왜 중국보다 앞서게 되었는가"에 대해 인과론적인 답을 제시한다. 서구가 중국을 앞서게 된 사실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발견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사후적 설명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과학적 비교 연구 방법을 차용한다. 서구가 중국과 다른 길을 가는데 어떤 요인이 핵심이었는지 찾기 위해, 만일 특정 요인의 값이 실재와 달랐다면, 다시 말하면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일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본다. 한편으로 추론의 방법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례를 비교함으로서 그 요인의 인과적 중요성을 평가한다. 기본적으로는 유럽과 중국을 비교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비교의 목적으로 중동과 남아시아의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서구에서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다른 제국이 다시는 들어서지 못한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연이어 지배하였는데, 바로 이 점이 서구와 중국의 역사를 다르게 만든 핵심 요인이다. 강력한 중앙 권력이 지배하는 제국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안정과 질서를 추구한다. 제국에서는 기존 체제와 기득이권에 도전하는 파괴적 발전(creative destruction)이 전개되기 어렵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 서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지고, 각 국가 내에서도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다원적 체제가 들어섰다. 이러한 다원적 체제에서는 국가와 세력들이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가운데, 실력과 효율을 중시하고, 서로를 모방하고 개량하는 발전의 동력이 계속 작동하였다. 

로마 제국이 서기 450년 경에 멸망한 후 동로마에는 비잔틴 제국이 들어선 반면, 서로마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주권국가로 나누어졌다. 이 나라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합종연횡하면서, 한 나라가 전체를 장악하는 제국이 다시 만들어지지 못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중세 봉건 시대에는 각 나라 내에서 왕과 영주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며, 교회와 세속 정치가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중세 후반에 들어 도시가 세력을 키웠고, 왕과 귀족에 대항해 상공인들이 세력을 키웠다. 서유럽은 왕, 귀족, 성직자, 상공인 사이에 권력이 분점되고,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나누어지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교가 나누어지는 등, 다원적 경쟁체제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간, 세력과 세력간 전쟁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경쟁은 발전을 만들어 낸 동력이 되었다. 여러 국가들이 서로 경쟁했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반대 세력은 다른 국가로 피신하여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다. 다른 경쟁 국가로 넘어가는 선택지가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국가의 지배자도 반대 세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전지역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제국이 계속 지배했기 때문에, 유럽의 다원주의 체제가  만든 발전의 동력을 갖지 못했다. 지배 세력을 위협할 새로운 세력이나 아이디어는 초기에 싹을 잘라버리는 정치 문화가 자리잡았다. 유교 사상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체계를 정당화하고 사람들을 이에 순응하도록 설득한다. 상공업은 기존의 위계 체계를 넘어서 부와 세력을 만들어낼 위험성을 지니므로 일찍부터 억압하였다. 반면 농업은 사람들이 토지에 붙박여 있고, 혁신적인 발전이 일어날 수 없어서 기존의 지배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농업을 우대하였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는 서구와 같이 다양한 세력간에 경쟁체제가 조성되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제국이 계속 지배하면서 발전을 질식시켰다.

왜 유럽은 로마의 멸망 이후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진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연 조건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다. 두가지 차이를 지적한다. 첫째, 서유럽에서는 산, 강, 바다가 장애물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독립적 정치체제가 들어설 수 있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황허와 양자강 사이에 대평원이 단일 정치체제를 가능케하였다. 둘째,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차이가 있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카르파티아나 알프스와 같은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몽고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 인접해 있다. 대평원의 기마민족은 유목을 생계로 하면서 때때로 주변의 농경민족을 침탈하여 필요한 것을 조달하였다. 이들은 기동성과 전투력이 뛰어나기에, 이들에 인접한 지역은 이들의 침탈에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 권력을 만들어 냈다. 반면 유럽에서는 몽고나 터키족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의 침입이 헝가리에서 멈추었다.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의 기마민족의 침탈로 부터 안전한 환경에 놓여 있었기에, 잘게 쪼개지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저자는 로마가 멸망한 시점을 첫번째 역사 분기점 (First Great Divergence), 16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 대탐험, 합리적 세계관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중첩되면서 이후 비약적으로 앞서나가게 된 사건을 두번째 역사 분기점(Second Great Divergence)라고 칭한다. 첫번째 역사 분기점 사건이 발생한 것이 두번째 역사 분기점을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제국이 유럽 전역에 공통의 문화적 토양을 제공해 줌으로서, 이후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공통의 기초 위에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한 후 또다른 제국이 들어섰다면 중국과 유사한 길을 가게 됬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저자는 책의 맨 마지막 문구에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 간에 갈등과 경쟁은 끊임없는 전쟁을 낳았고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유럽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과 기득 이권은 외부로부터의 경쟁과 위협 없이는 변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3년전에 역사적으로 불평등의 추이를 분석한 Great Leveler 라는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을 썼다. 불과 3년만에 또다시 대단한 작품을 썼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이책을 통해 역사는 경쟁과 전쟁을 통해 전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는 농경민이 주축이 되었다고 배웠는데, 저자는 북방 유목민을 중국 역사를 추동시킨 핵심으로 제시한다. 책의 후반 4부에서 지금까지 나온 이론들을 정리하여 서구가 앞서나가게 된 과정을 문화, 제도, 해외 식민지, 지식과 가치관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다. 대단한 책이다.  

2020. 7. 31. 21:58

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저자는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다. 이 책은 사회가 폭력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전문 학술서이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폭력을 내포한다.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폭력을 제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폭력을 자연상태로 상정하고, 사람들이 강력한 군주에게 통제를 맡김으로서 질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치학의 이론이 국가를 단일체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국가란 단일체아니라 엘리트 간에 연합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경제적 및 정치적 자원에 대하여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함으로서 특권 혹은 이권을 만들어 낸다. '자연상태의 국가'(the natural state)에서 엘리트들은 각자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는 만큼 이 특권을 나누어 가진다. 특권을 나누어 가지는 연합이 바로 질서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 체제에서 폭력의 동원 능력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중세 봉건 시대에 귀족들이 각자 군사력을 보유하며, 왕을 정점으로 한 이들의 연합이 바로 국가였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가 핵심에 있고,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엘리트의 연합을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자연 상태의 국가에서 엘리트는 각자 세력의 규모에 따라서 특권을 나누어 갖는다. 엘리트간 세력 배분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추어 특권의 배분도 바뀌어야 한다. 만일 이 둘이 어긋날 경우 갈등이 폭발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까지 투쟁이 지속된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었을 때에는 지주계층이 통치 엘리트의 근간이었는데, 상업 및 산업자본가가 성장하면서 이들 새로운 엘리트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특권 지위를 요구했을 때, 기존 엘리트와 신흥 엘리트 간에 갈등과 투쟁이 벌어졌다. 질서, 즉 폭력이 없는 상태란, 엘리트간 폭력 행사 능력과 이권간에 균형이 맞아 엘리트 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 체제에 동참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엘리트 간에는 상호간 견제와 감시를 통해 폭력의 행사를 통제한다. 

자연 상태의 국가, 즉 '자원에 대한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하는 질서'(limited acess order)에서는 모든 관계와 거래가 개인적(personal)이다. 각 사람의 능력과 특성과 변덕에 따라 관계와 거래가 좌우된다. 특정인이 죽거나 변화가 있을 경우, 그와 관계된 모든 거래는 무효화되거나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서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다. 경제적 이권은 정치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이며, 정치적인 지위는 경제적 이권을 수반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정치적 지위와 독립된 경제 활동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행위란 이권, 특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를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세개로 구분할 수있다. 가장 취약한 국가에서는 엘리트에게 특권이 배분되는 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모든 엘리트의 특권은 개인적 관계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특정 엘리트가 죽거나 변화가 생기면 엘리트들 사이에 특권의 재조정을 향한 갈등이 발생하므로, 매우 취약한 질서이다. 둘째는 기본적인 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조직이 형성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제도와 조직이란 여전히 특권을 차지하는 개인에 궁극적으로 좌우되므로 불안정하다. 세번째는 성숙한 단계로, 국가의 통치 조직이나 경제활동의 조직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조직에의 접근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에 대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open acess order)는 19세기 중반에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이 질서는 '법에 의한 지배',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제도의 영속성', '누구에게나 개방된 익명적인 거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누구를 아는지, 출신 배경이 어떠한지, 성, 인종, 민족, 종교 등과 상관없이 능력과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직 자원에 접근할 수있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지위와 자원이 배분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법을 만드는 데, 즉 정치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있다. 폭력은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어 관리되며, 폭력을 통제하는 사람은 선거와 의회 등 정치과정을 통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폭력을 통제하는 기구와 그 기구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분리되어 있다. 그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임기가 끝나면 물러난다. 이 질서에서 국가의 역할은 소극적인 폭력의 통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자원에 접근할 수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미친다. 보통 교육, 사회보장제도, 공정한 시장의 관리 등이 그것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자원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하므로 경제성장율이 높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크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있는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진 사람과 조직이 경쟁을 통해 선발되기때문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을 통해 발전할 수있다. 반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는 기존에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개인의 역량에 따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한되며, 위기에 대한 대응과 함께 엘리트들 사이에 세력의 재조정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훨씬 안정되며, 실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지위를 차지한 사람과 조직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이들에 도전하는 것이 상시적인 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야당이, 경제에서는 경쟁 기업이 항시 감시하고 경쟁하므로, 특권이나 이권이 생겨난다고 해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로 어떻게 이전할 수 있을까? 자연 상태의 국가의 엘리트가 '법에 의한 지배'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적 지배나 특정 개인에 좌우되어 조직이 운영되는 것보다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된다. '법에 의한 지배'를 허용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 자신을 구속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들 간에 관계가 안정적일 때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밀고당기기를 하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 서로간에 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있다. 개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는 조직을 통해 정치와 경제적 거래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이견을 조정하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는 상황에서만 엘리트들은 개인과 독립된 조직을 인정한다. 폭력 행사력 즉, 군사력이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지 않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을 때, 엘리트들은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성향을 내려놓는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유롭게 조직을 만들 수있고, 엘리트들과 그들의 조직간에 경쟁에서 패한다고 하여도, 폭력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완전히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에만 엘리트들은 그러한 경쟁에 참여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급격하게 일시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도를 높여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사회가 반드시 이러한 발전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회는 자연상태의 국가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단계 내에서도 제도화의 정도가 다양하고 퇴행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 놓고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자신에게 폭력이 행사될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반대를 할 수 있는 제도와 믿음을 정착시키는 일은 형식적인 선거나 의회의 존재만으로 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상태의 국가에서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질서를 설명하는 예로 중세시대 영국의 토지소유제도를 분석하며, 자연상태의 국가 중에서도 성숙한 제도화의 단계에 도달한 영국이 그렇지 못한 프랑스에 비해 전쟁을 위한 동원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기에 영국이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개방된 질서'가 '접근이 제한된 질서'보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서구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이론과 분석을 제시한다. 기존의 정치학의 이론을 뛰어 넘어 눈을 확 뜨게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여러번 읽으며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2020. 7. 28. 21:56

김봉중. 2006. 카우보이들의 외교사. 푸른역사. 447쪽.

저자는 미국사를 전공한 학자로, 1776년 미국의 건국에서 2001년 9.11 사태까지 미국 외교의 역사를 서술한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와싱턴은 퇴임하면서, 미국이 유럽의 정치사에 간여하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한다. 이후 미국의 고립, 중립주의 정책은 미국 외교의 기본 원칙이 되었다.

미국의 고립주의 외교는 유럽의 정치사에 대해서만 적용되었을 뿐, 아메리카 대륙에 대해서까지 미국이 간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1823년 먼로 대통령은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의 일에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선언, 먼로 독트린을 발표한다.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의 앞마당이니 유럽 열강들이 탐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19세기는 미국이 서부로 개척하는데 몰두하였으므로 유럽 열강과 달리 해외에 식민지를 구축하는 데 열을 올리지 않았다. 그래도 1846년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미국의 남서부를 빼앗고,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통해, 쿠바,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을 빼앗았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팽창과 힘의 외교를 주장한 대표적인 대통령이다. 그는 중남미 국가들이 질서와 안정을 보이지 않으면 미국이 개입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한편 학자 출신 대통령인 우드로우 윌슨은 이상주의 외교를 추구했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 공개적이며 규범에 따른 국제관계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제 연맹을 제창했다. 그러나 그 역시 미국의 이익이 간여된 곳, 예컨대 멕시코나 동아시아에서는 실리를 추구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망한 후, 미국은 더이상 고립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트루만 대통령은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기 위해 그리스와 터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내용의 트루만 독트린을 발표했다. 반공을 기치로 하여, 공산주의의 위협이 있는 곳은 어디라도 미국이 출동하여 막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미국의 반공 히스테리에 기인한 개입 정책은 제삼세계의 독재정권들을 지지하여 원성을 샀으며,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비참한 패배로 파국을 맞았다. 1990년 소련의 몰락으로 냉전 체제가 종식되고, 공산주의의 확장을 막는 미국의 역할은 사라졌으나, 2001년 9.11 테러가 벌어지면서 미국은 다시 국제문제로 끌려들어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저자는 미국의 외교사를 전공한 학자로서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주제를 다루는 여유를 보인다. 논의에 심도가 있고, 관련된 주요 학술 논쟁을 비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한다. 미국 외교의 원칙과 관련한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논쟁에 대해, 저자는 양비론을 편다. 미국의 외교 정책은 국민 여론의 향방에 따라 움직여 왔음으로, 어느 대통령의 외교 정책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이상주의나 현실주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면서, 이상주의 외교도 현실주의 외교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미국의 자유, 인권, 민주주의를 기치로 하는 이상주의 외교는 미국의 국익에 기여하기 때문에 그러했던 것이었지, 미국의 국익에 맞지 않는 대상이나 맞지 않는 시기에는 그런 외교를 펴지 않았다.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는 전략 역시 힘의 정치이다. 오래 전에 이책을 읽었고 문득 생각이 나서 다시 읽었는데, 역시 잘 쓴 책이다.

2020. 7. 25. 12:30

Henry Kissinger. 2014. World Order. Penguin books. 374 pages.

정치학 교수로 였으며 미국의 국무부 장관을 지낸 저자가 서구의 외교사를 서술한다. 유럽의 국가들은 17세기 초반 삼십년 전쟁으로 피폐해진 다음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으로 국제관계의 규범을 만들었다. 이후 서구 국가들 사이의 관계에서 지금까지도 통용되고 있는 웨스트팔리아 체제를 요약면 다음과 같다. 웨스트팔리아 체제는 종교와 세속 정치를 구분한다. 각 나라는 서로의 국가 주권을 존중하고, 서로를 대등하게 대우하며, 기존의 국경을 인정하고, 서로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유럽의 국가들은 서로간 합종 연횡을 통해 세력 균형을 유지하면서 각 나라의 주권을 존중하는 이 체제가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였다. 이 체제가 훼손되었을 때 전쟁이 일어났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사이에 유지되던 세력 균형이 통일 독일의 부상으로 깨지면서 1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웨스트팔리아 체제는 서구에서 오랫동안 국가들간에 관계를 조율하는 유효한 장치였다. 어떤 제도가 국가들의 상위에 군림하여 전체의 질서를 관리하는 방식, 즉 세계의 경찰이 존재하지 않는 한, 국가들 간 세력 균형을 통해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것 이외에 평화를 유지하는 길은 없다. 이 체제를 따르면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국가의 힘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전체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제의 적과 손을 맞잡고 새로 부상하는 나라를 견제해야 한다. 이 체제에서는 미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어떠한 이념이나 이상이 없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도 없다. 오로지 서로간에 냉정한 힘의 평가와, 각자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국가들 사이에 '현실주의 정치'(Realpolitik), '힘의 정치'(Power politics)만이 있을 뿐이다. 

한편,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는 이슬람교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가 자리잡았다. 이슬람 지역은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합일되어 있다. 이슬람교는 세계를 이분법, 즉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과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지역으로 구분한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지역은 앞으로 정복을 통해 이슬람교를 믿도록 해야 한다.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은 하나의 원리로 통치되므로 지역간 구분이 중요치 않다. 오스만 터키 제국은 동서로는 스페인에서 북아프리카를 거쳐 아프가니스탄까지, 남북으로는 이집트에서 이란과 터키를 거쳐 발칸반도까지 거대한 단일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 대제국에는 유럽에서와 달리 국가간 상호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다이나믹이 없었으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제도와 경제가 정체되고 낙후하였다. 결국 제1차 세계대전 후 여러 지역으로 쪼개져 유럽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중국은 세계를 천황의 지배하에 있는 단일 세계로 인식한다. 유교는 이 세계를 지탱하는 이념이다. 이 세계의 중심에 중국이 있고, 변방에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군신관계를 맺은 나라들이 있다. 중국이 볼 때 변방의 나라들은 모두가 중국 문명보다 못한 오랑캐들이다. 중국은 세계 최고의 문화와 제도를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므로, 주변국이나 이방과 관계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주변국 중 중국을 침략한 나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중국에 동화되었다. 예컨대 몽고는 중국을 침략하여 원나라를 세웠으며 만주족은 청나라를 세웠다. 서구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웨스트팔리아 체제라는 수평적 질서가 지배했음에 비해, 아시아 나라들 사이에서는 중국을 가장 정점으로 하는 수직적 위계질서가 자리잡았다. 17세기에 서구의 나라들이 중국에 문호 개방을 요구했을 때, 중국은 이들을 오랑캐로 취급하고, 중국의 체제에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하여 쇄국정책을 고수하였다. 결국 강제로 문호가 개방되고, 서구의 문물을 일찌감치 수입하여 발전한 일본에 국토가 유린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은 20세기초 제 1차 대전에 참전하기 직전까지 유럽에 대해 고립주의 혹은 중립주의 외교 정책을 취하였다. 유럽의 열강들과 대양으로 구분되어 있고, 19세기말까지 서부를 개척하는 일에 몰두했으므로, 유럽의 국가들과 달리 국가의 안위를 위해 이웃 나라와의 관계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의 이익이 직접적으로 걸린 경우 힘을 행사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19세기 초 유럽 나라들에게 아메리카 대륙에 간여하지 말라는 먼로 독트린을 선언했으며, 19세기 말 테오도르 루즈벨트 대통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이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으면 미국이 개입하여 바로잡을 수있다고 선언하였다. 이웃 나라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남서부를 빼앗았으며, 하와이를 점령했고,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필리핀, 푸에르토리코, 쿠바 등을 미국의 식민지 내지 준식민지로 만들었다.

미국은 이념으로 뭉친 나라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의 조상으로부터 국가의 정통성을 이끌어낼 수 없다. 미국은 유럽의 봉건 질서를 부정하면서 만들어진 나라이다. 유럽의 전통적인 신분제도나 종교의 지배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건국 이념으로 건립되었다. 국가간의 관계에도 이러한 미국의 이념을 전파하려 한다. 미국은 유럽의 현실주의 정치를 따르려 하지 않는다. 국가들 간 관계에서 개별 국가의 이익을 넘어서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있다고 믿는다.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존중하고 대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나라의 주권은 존중하지만, 그렇지 않은 나라는 대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이념은 인류가 모두 지켜야 할 보편적 원칙이라고 굳게 믿으므로, 궁극적으로 모든 나라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승국이 된 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의 이상주의를 국제관계의 규범으로 만들려 했다.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이 그것인데, 이 기구는 미국의 의회에서 조차 인준되지 못하였고, 무엇보다 국제 규범을 위반하였을 때 이를 강제할 조치가 없었으므로 국제 평화를 지키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제 2차 대전으로 유럽이 몰락한 후, 미국은 자신의 뜻대로 세계 질서를 만들고 강제할 수 있는, 세계 경찰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 UN, IMF, World Bank 등이 그 산물이다. 냉전체제에서 소련과 경쟁을 벌이면서 미국은 미국의 이념을 전파하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의 확장을 견제하기 위하여 현실주의 정치, 공작정치를 병행하였다. 제삼 세계에서 국민을 탄압하는 독재자를 옹호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쿠데타로 전복시키고, 반군을 부추겨 콜럼비아로부터 파나마 운하를 빼앗아내고, 자주 민족적 독립을 저지하는 베트남 전쟁을 벌였다. 2차 대전후 미국의 국제관계는 공도 많지만 과실도 많다. 미국 덕분에 유럽과 일본이 다시 부상하였고,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었다. 반면 미국의 간섭 때문에 중남미와 중동은 계속 정정이 불안하고 발전이 지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

키신저는 21세기에 미국은 전환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한다. 과거와 같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기에는 힘에 부치지만, 그렇다고 미국을 대신해 국제 질서를 주도해 나아갈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은 여전히 마지 못해 세계의 여러 문제에 간여하지만, 점차 개입의 범위를 줄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단일 유럽이나 중국이 부상하면서 다자간의 관계, 즉 오랫동안 서구의 국제관계를 지배한 웨스트팔리아 체제가 다시 자리잡을 것이다.

이 책은 키신저의 경륜이 배어 있는 책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그러나 노년에 써서 그런지 분석의 예리함보다는 주마간산 식으로 전반적인 흐름을 해설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서구의 역사를 서술하는 부분은 그래도 깊이가 있지만, 아시아에 대한 서술은 피상적이다. 추상적인 개념을 주어로 하는 문장을 구사하기에 말하는 내용이 바로 다가오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저자의 명성만큼 그렇게 좋은 책은 아닌 것 같다.

2020. 7. 14. 16:09

Paul Kennedy. 198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Vintage. 540 pages.

저자는 역사학자로, 1500년경부터 서구에서 강대국이 차례로 흥했다 쇠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스페인 제국, 네덜란드 제국,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대영제국이 20세기 초까지 그 길을 밟았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소련이 그길을 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례에서 '경제력이 궁극적으로 군사력을 좌우하며 강대국의 힘의 배경이다'라는 명제를 주장한다. 두번째의 명제는, 한 나라의 국력이란 상대적인 비교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그의 적의 군사력과 비교를 통해서만 강약을 가름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체제의 강점과 약점 역시 그와 대비되는 다른 나라의 강점과 약점과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강대국이 될 수록 전세계 곳곳에 담당해야 할 안보의 부담이 늘어난다. 강대국은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경제력이 정상적으로 감당할 수있는 정도를 넘어서 더 큰 군사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자원의 많은 부분을 군사력 유지에 써야 하는데, 이는 생산적 투자에 써야할 부분이나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써야 할 부분의 희생을 수반한다. 생산적 투자에 자원을 덜 투입하면 경제 성장이 늦추어지며,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쓰는데 자원을 덜 투입하면 국민의 불만이 높아진다.

강대국의 밑에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과 비교하여 군사력보다 생산적 투자에 더 많은 자원을 할애 하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라들 중 강대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나타난다. 그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고, 기존의 강대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극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교체는 결코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이 서구를 앞섰으나, 이후 서구가 앞서나가며 다른 문명을 복속시킨다. 가깝게는 유럽의 정치문화에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유럽은 다양한 정치 집단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경쟁은 제도와 기술의 혁신, 경제 발전과 군사력의 성장을 낳았다. 반면 중국, 인도, 이슬람 지역에서는 강력한 단일 정치집단이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문화를 뿌리내렸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기득이권 집단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기존 질서에 위험 요소가 될 어떠한 것이라도 초기에 싹을 자르는 조치를 취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명나라 시기에 해외무역을 금지하면서 큰 배를 모두 없애고 새로 건조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들 수있다.

유럽이 동양과 달리 다양한 정치 집단이 공존할 수있었던 것은, 산악과 바다와 강, 다양한 기후의 자연 환경이 단일 정치체제의 출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륙과 바다로 떨어져 있으며, 이탈리아와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는 산악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중상주의 정책에서 보듯이 경제력에서 서로 경쟁하며,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 대륙으로 확산된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과 기술에서 서로 경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는 서구의 강대국들이 흥하고 쇠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영제국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여, 1760년대에 7년전쟁을 통해 스페인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의 지배적인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합리적인 제도를 갖추지 못했으며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전통적인 체제가 지배하였다. 이들 나라의 군사력은 컸지만 경제력이나 제도의 효율성에서 영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전세계의 산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축적하였고, 전세계에 식민지를 축적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이 다른 나라로 확대되면서 영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영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고, 노동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영국의 상대적인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경제성장의 속도는 느려졌다. 반면 독일은 새로운 기술 혁신이 계속이루어지고, 통일을 통해 국토가 확장되면서 경제력이 크게 성장하였다. 국제질서에서의 기존의 지위가 독일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되었기에 독일은 1차대전을 일으켰으며, 결국 2차 대전까지 치르고 나서야 독일의 도전은 중단된다.

한편 미국은 새로운 기술과 경형 혁신이 계속 이루어 지고,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가용 자원의 절대 규모가 늘어났으며 19세기말에는 경제력에서 영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제 1, 2차 대전을 통해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였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폐허가 된 반면,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전쟁을 통해 더 증가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으로 올라섰다. 소련은 두차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쟁 후에도 상당한 국력을 남길 수있었으며 거대한 국토 덕분에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2차대전이 종결된 시점에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은 최고에 도달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군사적인 우위가 최고점에 있었다. 이후 유럽의 선진산업국과 일본은 전전의 경제력을 회복했으며, 놀라운 속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1970년대 초반에는 서구유럽 전체로 볼 때 미국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복지확대와 베트남전쟁 때문에 재정적자가 누적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 마침내 유럽과 일본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보다 수입이 증가했으며 무역적자가 누적되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강대국으로서 전세계에 군사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은 줄어들지 않으므로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되면서 서구와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으며, 경제력 대비 군사적 부담의 면에서 미국보다 더 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볼 때, 세계 질서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다섯개의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체제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강대국의 지위는 조금씩 쇠퇴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속도나 영토로 볼 때 앞으로 대단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지만, 미국이나 소련과 경쟁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유럽의 통합이 진전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문제는 여러 나라들간 이견을 조율하는 비효율 때문에 아무리해도 미국 만큼의 강대국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대단한 경제력을 쌓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상황이 변하면 이러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여 대단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소련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대단한 군사력을 비축하고 있고 엄청난 영토 덕분에 앞으로도 강대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세계의 질서는 국력이 충돌하는 무정부상태의 혼돈이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국제정치의 역학을 잘 이해할 수있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특히 1차 대전을 전후한 국제정치 역학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들 간에 상대적 관계를 통해 상황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능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떻게 유럽의 정치경제가 지난 오백년간 전개되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도 인정하듯 유럽과 미국이외의 지역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 오백년 동안 세계의 정치경제는 서구가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할 수밖에 없지만. 1991년에 일어난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소련 체제의 어려움을 잘 파악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오랜 정체를 겪은 현 시점에서 국제 정세는 1980년대 초반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책은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2020. 7. 7. 18:20

Jeffry A. Frieden. 2006. Global Capitalism: Its fall and rise in the twentieth century. W.W. Norton. 476 pages.

저자는 하버드의 정치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지난 백년간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팽창과 수축을 거듭한 과정을 기술한 경제사 책이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왜 지난 백년간 세계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겪었는지 경제적, 정치적 원인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변화에 내재된 문제를 진단한다.

이야기는 19세기말 20세기 초반 서구에서 무역과 금융의 자유 이동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상당한 정도에 도달했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국가간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은 각 나라들이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에 전문화함으로서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높이며 부의 빠른 증가를 가능케 했다. 금본위제 덕분에 환율이 안정되고 국제간 자본이동이 활발해졌으며, 운송수단의 발달로 국제간 교역이 크게 증가하였다. 가장 먼저 산업화되었고 금융이 발달한 영국의 주도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시장의 통합이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장통합은 각 나라에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유발했다. 또한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미국과 독일은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 쳐서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을 추구하는 영국과 보호무역 주의를 추구하는 독일간에 세력 싸움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 나라들은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했으며, 미국이 특히 그러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유럽의 금융 위기를 불러왔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전세계로 퍼졌다. 대공황 이후 서구는 전쟁 전의 시장 통합을 버리고 각자 도생을 추구하며 각국이 고립된 경제 체제로 후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로 IMF와 IBRD(World Bank)를 설립하면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서구 세계에 점차 확대되었다. 미국은 시장 개방을 주도하면서 GATT를 통해 국제적으로 무역 장벽을 낮추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국제 무역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2차 대전 이후의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 노력은 미국은 물론 서구 세계 전반에 큰 번영을 가져왔다. 자본의 효율성을 쫒아 국제 자본 이동이 활발해 졌으며, 국제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세계 시장에 참여한 모든 나라들에게 전문화의 이익이 높아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서구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미국 시장에서 미국 산업을 위협하였으며, 미국 정부는 확대된 복지지출과 베트남 전쟁의 전비 때문에 적자 재정에 빠져들었다. 이에 더하여 1973년 중동 산유국의 자원민족주의가 폭발하고 원유 가격이 폭등했을 때, 전세계 자본주의 전체에 불황의 골이 깊어 졌다.

미국은 1980년대의 구조조정으로 비효율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경제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1990년대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 덕분에 생산성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 역시 미국보다는 정도는 덜하지만 구조조정을 겪었으며 이후 생산성의 향상을 기록하였다.  미국은 노동자의 세력이 약하여 사회보장 수준이 낮은 덕분에 경제 구조조정 이후 열악한 질의 일자리나마 높은 고용율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노동자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와중에도 높은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해야 했으며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하였다. 그 결과 유럽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실업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댓가를 치뤘다.

1980년대의 구조조정에 이어 1990년대의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과 운송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전에 볼수 없었던 정도로 세계경제가 통합되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 자본투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전세계적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라 불리는 국제 분업 생산 체계는 생산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규모와 심도는 20세기 초의 국제화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러한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혜택은 선진 산업국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도 넓게 미쳤다.

1970년대까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의 국가들과 인도는 국제 경제 체계에 연결되지 않고 각국이 자립적으로 발전하는 길을 추구했었다. 국제 경제에 종속되는 것은 이익보다 손해가 크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수입과 수출을 최소화하는 대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국제경제에 의존하지 않는 발전 전략을 택하였다. 한국에서도 한때 '민족주의 경제론'이라 하여 이러한 발전 전략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국제경제에 연결되지 않는 고립적 산업화 노력은 자본부족, 기술부족으로 벽에 부딛쳤으며, 경제 불황에 정치적 불안이 중첩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소련을 필두로 공산주의 국가들 역시 중앙집중 계획 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된 결과 결국 1990년에 붕괴되고, 이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경제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세계는 선진 산업국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즉 국제적 자본과 국제 무역에 크게 의존하여 경제를 운용하는 모델로 수렴하였다.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 자본과 선진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며 비효율을 제거하고 경쟁력을 가진 부문에 특화하게 함으로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갖는다. 반면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적 기준에 미달하는 부문, 국제 경쟁력을 갖지 못한 부문을 도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연결된 댓가는 냉혹하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은 국내의 경제 참여자의 복지를 위하는 것과 상충될 수있다. 국내 경제가 침체되면 정부는 이자율을 낮추고 돈을 풀고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하는데, 이렇게 하면 해외 자본이 이탈할 위험이 커진다. 정부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을 인위적으로 지원한다면, 국제 자본은 이 나라를 버리고 해외에 더 효율적인 곳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들은 선진국의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자본가에 대항하는 협상력이 떨어지고, 임금이 하락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반면 국제적 분업 생산 전략을 고도로 구사하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높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생산성 향상과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수익을 독차지 하면서 높은 임금을 구가했다. 자본의 국제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자본을 가진 사람이나 금융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익은 크게 높아졌다. 그 결과 선진국의 소득 불평등은 크게 높아졌다. 누진적 세금과 사회보장 제도를 통한 완충 기능이 약한 미국은 불평등 정도가 유럽보다 훨씬 심하다. 

국제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역시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국제 경제와 연결된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중 중산층이 늘어난는 반면, 농촌이나 전근대적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산업화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낙후되었다. 도시와 농촌간, 근대적 산업 노동자와 전근대적 부문의 노동자간의 격차는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인이다.

21세기에 들어 다시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후퇴하는 징후를 보인다. 선진국에서 세계화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서구의 각국은 비관세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자본 이동을 제한하고, 이민자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질 수록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낮아 세계화에 낙오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며, 이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중국의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미국인 중 중국의 부상을 반대하고 세계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 산업국에서 세계화가 경제의 규모를 키우고 경제 효율성 증대의 혜택이 구성원 다수에게 돌아가는 한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반면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세계화의 혜택을 다수가 배제된 채 소수가 독점하고, 소득 수준이 정체되거나 악화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세계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는 크게 힘을 받을 것이다. 자본의 이동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쏠림 현상의 부작용으로 불황에 빠질 위험은 과거보다 더 커졌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저자는 20세기 경제사를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잘 정리하였다. 저자는 특히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아,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변화에서 금융의 측면에 많은 논의를 할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서 금본위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 벌어진 일이 많지만, 이책은 20세기 말까지만 커버하고 있어 아쉽다. 다시 읽을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