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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감나무'에 해당되는 글 41건
2020. 7. 2. 13:04

Claudia Goldin and Lawrence F. Katz. 2008.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353 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들로, 이 책은 미국에서 지난 백년간 교육 수준의 향상과 기술 발전의 관계를 수리적으로 분석한 학술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저자는 "왜 백년전에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교육의 향상을 선도하는 나라였는데, 근래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산업국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19세기말 20세기 초반, 2차대전후 1970년대 초반까지, 1970년대 중반이후 21세기 초까지, 지난 백년간을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 미국인의 교육 수준과 교육 제도의 변화를 검토한다.

미국은 20세기초반까지 선진산업국들 중에서 교육수준이 독보적으로 높은 나라였다. 19세기초부터 공립 초등교육이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말에는 공립 중등교육 운동이 벌어지면서 전국적으로 무상 중등학교가 확대되었다. 2차대전 무렵에는 중등학교를 나오는 것이 당연시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물론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흑인에게는 2차대전 무렵까지도 중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유럽의 나라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중등학교는 소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으며, 공립 중등학교는 드물었다. 

미국에서 공교육이 일찍이 확대된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는 지역자치의 전통이다. 공립학교는 지역의 주민들이 갹출한 재원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웃 지역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지역들간 경쟁을 유발시켰다. 내가 사는 지역에 양호한 교육 환경이 만들어 지면 그 지역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에 좋은 공립 학교를 세우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는 유럽에서 공교육이 중앙집권적으로 구축된 것과 명확히 대조된다.

둘째는 평등을 추구하며 패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미국의 공교육의 원칙이다. 미국은 모든 주민들에게 지역의 공립학교에 무상으로 접근할 수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뒤쳐지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공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열어 두았다. 이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12~4세 무렵에 국가 자격시험을 치루어,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달라지도록 중등교육 과정에 차등을 둔 제도와 뚜렷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엘리뜨에게만 고급 중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여하며, 나머지 사람에게는 중하위의 직업에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교육을 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중등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이 양질의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은 미국을 본받아 무상 공립 중등교육을 확대하였으며, 질 높은 중등교육을 선별적으로만 제공하던 제도를 많이 완화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 중등교육의 학력은 노동시장에서 크게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중등교육을 이수하려고 하였다. 20세기 중반에는 대다수가 중등교육을 받게 되면서 중등교육의 이점은 줄어들었다. 대신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큰 보상을 가져왔으므로,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고등교육 즉, 대학 교육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대학간 자유경쟁의 결과 대학 교육의 질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은 미국보다 뒤쳐져 공립 중등교육이 보급되었으며, 이어서 고등교육이 확대되는 과정을 근래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에 들어 국민의 교육수준이 확대되던 장기 추세가 중단되었다. 고등교육의 이수는 80% 무렵에서 좀처럼 더이상 높아지지 않으며, 4년제 대학의 졸업율은 한때 70%까지 높아졌다가 60%초반대로 후퇴하였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노동시장에서 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노동시장에서 큰 불이익을 받음에도 일부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4년제 대학을 중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미국의 기술 수준은 19세기 후반 이래 꾸준히 높아졌다. 과학과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노동시장에서 인적자본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상승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에 비해 중등교육 이수자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중등교육을 졸업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누릴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컴퓨터와 생산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은 크게 높아졌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이러한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높은 임금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기술수준의 상승하면서 고급 인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에 비해 대학교 졸업자의 증가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고급 인력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급 인력의 임금이 크게 높아졌다. 대학원을 졸업하여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의 공급이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하므로 이들은 매우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누린다.

저자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때문에 임금의 격차가 크게 나게 되었음을 분석적으로 입증한다. 4년대 대학의 졸업자가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더라면 이들의 임금 프리미엄이 지금과 같이 높지 않을 것이므로, 소득 불평등도도 지금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결과, 낮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하거나 혹은 이민자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낮은 기술수준을 가진 근로자의 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한 반면, 높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세계화로 효능이 더 커졌기 때문에 더 높은 보상을 누리게 되었다.

왜 미국인은 유럽인에 비해 중등교육의 탈락율이 높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가? 4년제 대학 중퇴자가 많은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채 대학에 들어온 사람이 많기 때문이며, 둘째는 대학의 등록금이 매우 비싸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유는 중등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중등교육이 부실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주민의 소득과 인종에 따른 거주지 분리 현상이 교육의 지역자치 원칙과 만날 때, 가난하고 흑인이 사는 지역의 학교의 질은 매우 열악하게 된다. 둘째는 선생의 보수가 낮아 인재가 지원하지 않으며, 교사 노동조합이 능력이 부실한 교사의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셋째, 가난한 흑인과 미혼모 가정 배경의 아이는 어릴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교육과정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불이익을 누적해간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은 학교의 문제도 있지만, 빈곤 문제, 인종문제가 중첩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빈곤과 인종문제가 유럽의 선진산업국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유럽과 달리 어느 수준에서 향상을 멈추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결국 사회를 개선해야만 미국인의 교육 수준 향상도 이루어질 수있다. 과학 기술 수준은 계속 발전하고,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수준은 높아지는 데, 미국 사회가 이러한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소득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확대될 것이다.  

저자들은 책의 말미에 '미국이 과거에는 세계에서 교육수준의 향상을 선두에서 이끄는 나라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주저앉게 되었냐고' 탄식하며 분발을 촉구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교육수준의 정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국외자의 눈으로 볼 때, 미국이 과거에는 잘 나갔지만 앞으로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에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없다.

이책은 과학기술의 향상이 교육 수준의 정체와 만나면서 임금 격차가 커졌다는 것을 수리적 입증한 학술서이다. 막상 저자가 책 서두에 제기한 왜 미국인의 교육수준의 향상이 중단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별도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해 그들이 제시하는 처방은, 기존에 많이 언급된 것을 마지막 장에서 간단히 정리하는 데 그친다.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2020. 6. 17. 17:54

David P.Barash. 2003. The Survival Game: How game theory explains the biology of cooperation and competition. Henry Holt & Co. 277 pages.

저자는 워싱턴 주립대 심리학과의 진화 생물학자로, 게임 이론을 설명하면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계에서 협력과 경쟁이 전개되는 원리를 이론적으로 및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인간을 포함한 생물체의 삶은 게임의 연속이다. 제한된 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경쟁, 배우자를 구하는 경쟁이 대표적이다. 2 x 2 매트릭스를 사용하면 개임에 참여한 참가자 개개인의 선택지의 조합에 따라 각각의 참가자에게 이익과 손실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있다.

첫번째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로 게임 이론에서 가장 바탕이 된다. 이 게임에 참여한 죄수 각자의 입장에서 볼 때 둘다 죄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협력(cooperate)하는 것보다 상대를 밀고하는 배반(defect) 할 때 각자에게 돌아가는 이익이 더 크다. 이 게임에서 개인 각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은 상대를 배반하는 것이다. 문제는 둘다 개인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으로 선택할 때 두 사람 모두 최악의 보상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상대에게 호구(sucker)가 되지 않기 위해 사람들은 대체로 상대를 배반하는 선택을 한다. 상대의 배반을 의심하기 때문에, 협력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협력을 선택하지 못한다. 독일과 연합국 간에 일차대전이 일어나게 된 상황이 이에 해당한다. 상대에게 나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거나, 혹은 상대와 앞으로도 게임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서만 사람들은 협력을 선택한다.

정치학자 악셀로드는 상대가 도발하지 않는 한 항시 협력하면서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tit-for-tat) 상대의 배반에 배반으로 맞받아치는 전략이 가장 손해를 적게 보는 전략이라는 것을 입증했다. 상대의 배반에 협력으로 대응하거나 혹은 상대의 협력에 배반으로 대응하는 것은 이보다 열등한 전략이다. 상대의 배반을 응징하지 않으면 상대가 계속 도발을 감행하게 부축이며, 상대의 협력에 배반으로 대응하면 일시적으로는 나에게 이익이나 그 관계가 지속되지 않으므로 결국 손해이다.

두번째의 게임은 '사회적 딜레마'(social dilemmas)로,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나의 상대가 집단인 경우이다. 경제학에서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참여자 개개인에게는 이익이나 집단 전체로는 손해인 경우로, 공공재가 대표적 사례이다. 자신은 기여하지 않고 이익만 챙기려 하는 행위(free riding)를 어떻게 제한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 문제는 정부와 같은 권력이 참여자의 이기적 행위를 규제하고, 집단의 규범과 가치를 참여자에게 사회화를 시킴으로서 부분적으로 해결된다.  

세번째 게임은 '치킨 게임'(game of chicken)으로, 게임 참여자 모두 배반하면 파멸로 귀결되는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는 한쪽만 배반할 경우의 벌칙(sucker)이 둘다 배반할 경우의 벌칙보다 큰 반면, 치킨 게임에서는 둘 다 배반할 경우의 벌칙이 한쪽만 배반할 경우의 벌칙보다 크다. 일반적으로 끝까지 버티거나 혹은, 상대에게 내가 끝까지 버틸거라는 믿음을 주면 승리를 잡을 수있다.  1960년대에 미국과 소련이 대치했던 쿠바사태가 그에 해당한다.

인간의 세계보다 동물의 세계에서 게임 이론이 더 정확히 작동한다. 게임 이론으로 계산된 이익을 보는 쪽은 진화의 과정에서 더 많이 번식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게임 이론에서 계산된 이익을 보는 방향으로 반드시 행동하지는 않는다. 한편 동물은 반드시 한 방향으로 선택하기보다는, 조건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선택을 바꾸어 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어떤 때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게임이론이 설명할 수 있다. 예컨대 숫컷이 한 배우자에게 충실하냐 혹은 바람둥이 성향을 보이느냐 여부, 상대에게 공격적일지 혹은 유순하게 물러설지 여부는, 상대가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선택적으로 결정된다. 게임 참가자에게 생존의 이익을 가장 많이 가져다 주는 행위 조합을 선택하는데, 게임 이론은 이 조합을 정확히 계산해 낼 수 있다.

인간은 게임이론이 예측하는 대로 이익을 최대화하는 행위를 선택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는 합리적으로 이익을 계산해내는 것이 매우 복잡하여 어느 정도의 이익에서 만족하기 때문이거나, 혹은 합리적인 이익 이외에 감정적인 동기가 인간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냉혹하게 이익을 철저히 추구하는 합리성은 개인에게는 득이될지 모르나, 집단 전체에게는 득이 되지 않을 수있다. 인간은 정말 자신에게 중요한 사안에 관해서는 합리적으로 이익을 따져 결정하기보다, 직관과 감정이 명령하는 바를 따른다. 인간의 두뇌는 극단적 합리성을 추구하도록 진화된 것이 아니라,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정도로만 합리성을 발휘하도록 진화해 왔다. 저자는 인간이 어느 정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본다. 어느 정도의 합리성과 어느 정도의 비합리성이 조합된 것이 인간이고, 이것이 동물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동물은 자신의 선택의 합리성을 의식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매우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존재이다.

이 책은 게임 이론과 진화 생물학의 전문 지식에 저자의 박학다식한 지식이 결합된 교양서이다. 저자는 문학, 철학, 정치, 역사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를 동원하여 게임 이론을 설명한다. 물론 저자의 주영역인 동물의 행태에 관한 사례를 가장 많이 제시한다. 게임이론과 진화론을 적용하여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려고 하는 흥미로운 책이다.

그러나 동물의 세계에서는 게임 이론이 정확히 적용되나 인간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저자의 주장에 의심이 간다. 개별 인간의 선택을 보면 게임 이론이 정확히 적용되지 않을지 모르나, 결과로 놓고 보면 인간의 세계도 결국 게임 이론의 합리적 선택과 진화에 따라 전개된 결과가 현재 우리의 삶이 아닐까? 인간의 감정이란 합리적 선택이 고도로 축약된 장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렇다면 인간이 때로는 합리적 계산 대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즉 피해를 최소화하는 대신 생존 가능성을 최대화(minimax)하는 행위일 수 있다. 인간의 사례에 게임이론을 적용할 때, 개별 행위자의 단기적 이익의 계산을 넘어서서 좀더 넒은 시간 단위와 넒은 범위에서 손익을 계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진화의 결과 자의식과 감정을 가진 복잡한 존재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생물계에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게임 이론과 진화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것을 위반하려 한 존재는 현재 지구상에 살아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2020. 6. 5. 11:17

Michael Marmot. 2015. The Health Gap: the challenge of an unequal world. Bloomsbury Publishing. 346 pqges.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저자가 사람들 사이에 건강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설명하며, 이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한다. 책의 첫 문장을 자신이 과거 수련의 시절에 의료 현장에서 부딛친 근본적인 의문에서 시작한다. '우리 의사들은 병원에 온 사람들을 치료하고 나서, 그 병을 유발한 그 환경으로 다시 되돌려 보낸다. 그들이 사는 환경이 그러한 병을 만든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한다면, 의학적 치료라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집이 없는 내원 환자의 병을 치료한 다음, 그를 다시 집이 없는 떠돌이 삶의 환경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이러한 의문은 그의 주위 의사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였으며, 결국 그가 공중보건학으로 전공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혹은 건강하지 못한 원인에 대응하는 것에서 멈추어서는 안되며, 이러한 원인을 유발한 원인, 즉 원인의 원인 'causes of the causes of illness'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 의사들은 여러 조언을 한다. 영양이 균형된 식사를 하고, 야채를 많이 먹고, 담배를 끊고 술을 삼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잘 자고, 과로를 하지 말고,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사회관계를 폭넓게 원만하게 유지하고, 등등. 이러한 사항을 지키지 못할 때 우리의 몸은 탈이 난다. 즉 이러한 것들이 건강/불건강의 원인이다. 한 사회의 건강 수준은 의료 시설의 수준이 아니라, 건강을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의료적 치료는 사람들이 병에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는 것인데,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 사람들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결정 요인이다.

즉 건강의 요인을 결정하는 요인은 사회적 조건이다. 빈곤, 불평등, 일, 삶에 대한 통제력이 건강을 만들어내는 주요 사회적 결정요인이다(social determinants of health). 이러한 사회적 조건이 긍정적일 때에만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사회적 조건이 부정적이라면 건강한 삶을 가능케 하는 원인 요소들이 부정적으로 기여한다. 따라서 건강한 삶을 추구하려면, 각 개인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한다.

그는 영국의 공무원의 건강 수준을 연구한 결과, 사람들이 관료조직의 위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건강이 비례적으로 분포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상급자일수록 그의 하급자보다 건강이 조금이라도 더 좋다. 위계 내에서의 위치와 건강 수준 간의 이러한 관계는, 위계의 최상위에서부터 최하위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관찰된다. 이러한 현상은 일에 대한 통제력의 차이에 기인한다. 하급자는 상급자보다 일의 통제력이 덜하므로, 이는 스트레스를 더 많이 유발하고,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준다.

건강과 사회적 조건 사이의 관계 역시 유사하게 분포되어 있다. 사회적 조건이 조금이라도 좋을 수록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다. 따라서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건강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만을 위한 사안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조건은 인간의 생애 주기 전 과정에 펼쳐져 있다. 엄마의 뱃속에서, 유아기에, 학교에 다니면서, 일의 현장에서, 노년기에, 이 각각의 인생 주기에서 어떤 사회적 조건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 그는 객관적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한다. 

사회가 간여할 때, 구체적으로는 국가의 복지 개입이 클 때, 한 사회에서 건강 격차는 크게 줄어든다. 북구의 복지국가에서 건강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간의 건강 격차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이 시장의 비중이 큰 사회에서 건강 격차보다 훨씬 작다. 그는 책 전체를 통해 북구의 사회민주주의, 즉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체제를 옹호한다. 사회적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즉 교육과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건강의 불이익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회에서 크게 좁혀진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어떻게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몇가지 실질적 처방을 제시한다. 첫번째는 사회적 약자의 권능을 높이는 (empowerment) 것이다. 사회적 약자들이 조직화하여 강자들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주민들의 자발적 조직화, 직장에서 강력한 노동조합, 일반 시민들의 조직화를 지지한다. 둘째는 건강이 사회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는 객관적 증거를 널리 알려서 일반인과 의사결정자들로 하여금 변화를 추구하게끔 설득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사회운동을 제창한다. 그 자신 국제기구 WHO를 통해 각 나라와 지역사회의 의사결정자들을 설득하는데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사회적 조건을 개선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성과를 볼 때 미래를 긍정적으로 전망한다. 지난 수십년 사이에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건강 수준이 향상되었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서 긍정적 방향의 변화를 목격했기때문이다. 그는 모든 사람이 건강해지는 것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돈은 필요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님은 미국의 경우를 보면 명백하다.

이 책은 그의 이전 책 "Status Syndrome" 보다 좀더 실천 지향적이다. 그의 말은 설득력이 있고, 행간에서 그의 열정이 전달된다. 그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사회운동가이다. 그의 논의는 결국 사회적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를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에 대해, 그는 마지막 몇개 장에서 전세계의 성공 사례를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가장 부정적 사례인데, 그의 지적은 막연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미국은 가장 부자 나라지만, 가장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이다. 

2020. 5. 29. 21:40

 

Paul Seabright. 2010. The Company of Strangers: a natural history of economic lif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0. 315 pages.

프랑스의 정치경제학자인 저자는 인간의 경제생활을 인간의 본능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인간은 가장 공격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과거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르는 사람(strangers)을 마주쳤을 때, 상대에게 친절하게 손을 내밀기보다는 상대를 위협하고 공격한다. 그런 인간이 어떻게 서로에게 의지하는 경제 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의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기에 진화를 통해 서로 협력하는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이 선택되었다. 어떻게 좁은 범위의 가족과 친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타집단의 사람에 대해, 두려워하고 피하거나 공격하기보다 서로 다가가 평화롭게 접촉을 유지하고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상대에게 받은 호의를 되값으려 하는 인간의 본능에 있다. 인간은 거래의 본능이 있는데, 유사한 가치의 것을 교환하므로서 서로에게 모두 이익을 가져온다. 인간은 다시 만날 가능성이 희박한 상대에게도 받은 것에 상응하는 것을 되주려는 성향을 보인다. 즉 인간의 호혜적 교환은 계산의 결과이기보다는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다.

이방인을 공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손을 내밀어 서로 거래하는 관계로 발전시킨 것은, 한편은 이러한 성향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선택된 결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등한 거래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를 정착시킨 덕분이다. 시장기구와 사유재산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거래 당사자가 계약을 존중하지 못하면 국가의 권력을 동원해 계약을 강제하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안정적인 거래관계를 위해서 필수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깨어지기 쉽기 때문에 항시 세심히 관리해야 한다. 안정적인 거래를 위협하는 요인을 방치하면, 금방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위협하고,  공격하고 지배하려하는 인간의 본능이 고개를 든다. 

한편 상대가 나의 호의를 이용하기만 하고 상응하는 것을 나에게 제공하지 않으면 그러한 행위를 처벌하려는 강력한 본능을 발전시켰다. 거래의 공정성은 인간의 유전자에 깊숙이 박힌 본능이다. 바로 이러한 본능이 서로가 잘하는 것을 각자 수행하면서, 각자가 생산한 것을 서로 교환함으로서 모두가 이익을 더하게 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

각자는 각자의 이익을 위하여 최선을 다할 때, 분업을 통해 서로 의존하는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분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유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저자는 이를 터널 비젼, 즉 자신의 좁은 이익만을 돌보는 방식인데, 놀라운 것은 모든 사람이 터널 비젼을 가지고 살고 있음에도 전체의 이익이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전체의 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의 선을 위해 일할 때 부의 총량이 높아진다는 사실은 바로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이 주장하는 바이다. 이는 전체의 선을 위해 중앙집중적으로 계획하는 공산주의 체제보다 개인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결정하는 분권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더 효율적인 이유이다. 명령과 복종에 의해, 혹은 이념에 추종하기 때문에 맺어진 정치적 관계보다는, 상호의 이익을 가져오는 상업적인 거래관계, 모두가 시장 가격의 신호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관계가 더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분업의 효율은 다른 한편으로, 분업에 참여하는 구성 부분간에 조율이 어그러질 때 문제를 발생시킨다. 경제 불황은 바로 이 분업이 어그러진 결과이다. 2008년에 금융위기를 발생시킨 주체는,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한 은행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넘어 빚을 내어 집을 산 개인들이다. 위험한 투자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이것이 매우 위험한 행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자신에게는 그 위험이 실현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에서 폭탄 돌리기를 한 것이다. 

개인 각자의 결정으로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을 도모하는 것, 즉 긍정적인 외부효과가 나타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존재한다. 개인은 국가의 조정을 통해 이러한 집합적인 일에 참여함으로서 개인 각자가 할 수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의 이익을 누리게 된다. 즉 공공재를 생산해내는 것이다. 농업을 시작하면서 관개사업을 하는 것이나,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하여 군대와 성벽을 쌓는 것이 그것이다.

국가간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호혜적인 거래관계이다. 거래관계의 당사자 국가 간에 규모의 차이가 클 때, 그들간의 관계는 실용적인 대등한 거래관계로부터, 권력을 추구하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로 변질하는 경우가 많다. 제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이면서 다른 나라와 호혜적인 거래관계를 맺으려고 하였는 데, 이는 자유주의 이념에 따른 것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이익에 이것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미국은 자유주의 이념을 계속 지키는 것이 자신의 이익에 도움이 될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근래에 미국이 자국이익 우선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보통의 나라들 사이에 맺어지는 자연적인 관계로 복귀하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이방인을 두려워하고 공격하던 본능을 극복하고 서로 거래를 하고 분업을 하면서 의존하는 경제관계로 발전시킨 것을 '위대한 실험'(Great Experiment)이라고 한다. 인간은 여전히 낯선 사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좁은 집단 범위에만 이익을 나누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족주의(tribalism)적 성향이 강하기에 이러한 위대한 실험은 깨어질 위험성이 높다. 우리 가족, 우리 친족, 우리 지역, 우리 동창, 우리 나라, 우리 민족, 우리 인종에 우선권을 주고 외부인에게 차별적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인류 문명의 성과는 이러한 본능을 자제하고 낮선 사람과 함께 일하고 낮선 사람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려고 한 결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은 취약하며, 실제로 무너지는 경우를 인류 역사에서 무수히 많이 본다. 인간은 앞으로 진화해야 할 길이 멀다.

이 책은 경제 철학이다. 경험과학적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인간의 사회적 삶의 방식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술하고 설명한다. 프랑스 학자의 책 답게 주절이 주절이 말이 많다. 잡다하게 관계된 논의를 모두 망라한 에세이들을 모아 놓았다. 자신의 주장을 명료히 하면서 직설적으로 쓰는 영미권의 학술 풍토와는 많이 다르다. 이를 모두 읽어내느라고 고생했다. 저자의 설명이 장황하여 따라가다보면 지치기에, 과연 이러한 서술방식이 효과적인지 의심스럽다. 프랑스의 사회과학은 생각이 자유분방하고 통찰력을 준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영미권의 그것에 비해 각광을 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0. 5. 6. 09:58

Nicholar Christakis and James Fowler. 2009. Connected: How your friend's friends' friends affect everything you feel, think, and do. Little Brown. 305 pages.

의사와 정치학자인 저자들은 인간 관계망 연구의 전문가로서, 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 관계망의 성격과 이것이 인간사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계망을 선택하고 만들어간다. 사람들은 관계망을 타고 영향을 주고 받는데, 친구의 친구의 친구, 즉 세 단계의 관계에게까지 영향이 미친다. 왜 그 사람이 그렇게 하는지 이해하려면, 그사람의 개인적 속성보다 그사람이 맺고 있는 관계망을 파악하는 것이 더 유용하다. 인간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위한다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인간의 감정은 관계망을 타고 퍼져 나간다. 행복한 감정은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의 친구에게까지 행복하게 한다. 불안이나 공포와 같은 부정적 감정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간 사이에 감정의 전파는 진화의 산물이다. 주위 사람과 감정을 공유할 때 생존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속성의 사람들과 함께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속성을 강화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이 가장 크지만, 친구 사이에도 행위양식, 규범, 가치관 등 인간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사람들의 삶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 기준에 따르기 보다, 관계망 속에 위치한 상대와의 비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삶의 의미 역시 관계망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관계망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 남편은 아내에게 물질적인 안락을 제공하며, 부인은 남편에게 정서적 육체적 친밀을 제공한다. 남자는 결혼하면 생존율이 크게 높아지고 아내가 죽으면 생존율이 크게 하락하지만, 여자는 결혼하거나 남편이 먼저 죽어도 생존율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성병, 비만, 흡연, 자살은 관계망을 타고 퍼져간다. 사회적 감염(social contagion)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문제의 당사자에게 집중하는 치료 모델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당사자를 둘러싼 관계망 속의 사람들에게까지 치료 행위가 가해져야 한다.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개입할 때, 이들이 당사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있다. 이때 관계망의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망이 고리형 모형일 때는 선형 모형일 때와 관계망에 개입하는 방식이 달라야 한다. 여러 사람을 연결하는 관계망의 중심에 있는 사람에게 개입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관계망을 통해 영향이 퍼져나가는 데에는 '소원한 관계'(weak ties)가 '밀접한 관계'(strong tie)보다 더 중요하다. 사람들은 유사한 속성과 유사한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폐쇄된 구조의 친밀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반면 서로 다른 속성과 경험의 사람들 사이에 소원한 관계를 형성하므로, 소원한 관계를 통해 보다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정보에 접근할 수있다. 일자리를 찾고 배우자를 찾는 등, 넒은 정보망을 동원하는 것이 효과적인 일에서는 약한 관계가 친밀한 관계보다 더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친구의 친구를 통해 배우자를 찾는다. 모르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는 방식으로 배우자를 찾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관계망은 자산이다. 인맥은 경제활동에 매우 유용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의 생산에도 인맥이 크게 작용한다.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무하마드 유누수의 그라민 뱅크는 관계망을 담보로 하여 소액을 대출해주는 제도로 성공했다. 사람들은 관계망의 압력 때문에 대출금을 값는 것을 게을리 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왜 투표를 하는지는 정치학의 난제이다. 경제학의 합리적 행위자 모델로는 투표 행위를 설명할 수없다. 저자는 사람들이 투표하는 이유가 관계망의 작용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자신과 관계를 맺는 사람이 투표를 하기 때문에 자신도 투표를 한다. 투표 행위의 영향은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게까지 미치므로 이러한 범위의 사람을 모두 합하면 천명이 넘는다. 따라서 투표 행위 자체나 어느 후보자를 지지하는가는 단순히 한 사람의 행위나 결정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망에 포함된 사람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다. 한사람을 설득하여 투표를 하게 하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도록 한다면, 이는 한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천명이 넘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에게 까지 영향을 미치는 개입이다. 미국에서 자원봉사 선거 운동원이 해당 구역의 집을 일일이 방문하여 투표를 독려하고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실제로 효과가 크다. 오바마의 선거에서 SNS를 활용하여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주위의 사람들을 접촉하고 설득한 것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치인들의 경우에도 관계망이 넓고 다양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 

각자 개인의 이익만을 취하는 사람이 모인 집단보다 이타적인 사람과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 섞여 있는 집단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 서로 협력하는 하는 성향은 인간의 유전자에 심어져 있는데, 집단의 이익을 배반하는 성향 또한 유전자에 심어져 있다. 쌍동이 연구에 따르면 협력하는 성향은 유전적인 속성이다. 개인이 홀로는 할 수없는 일을 인간은 협동을 통해서 해냈다. 이것이 문명 발전의 역사이다. 인간은 서로 관계를 맺고 이 관계망을 이용하여 개체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과 동물의 차이이다. 언어는 인간의 관계망 형성에 핵심적인 도구이다. 저자는 인간을 초관계망 유기체로 설명한다. 

인터넷과 통신기기의 발달로 인간의 연결 효율은 크게 높아졌다. 정보의 전달과 영향의 확산이 통신과 인터넷을 타고 과거에는 가능하지 않던 범위로 넓게 퍼져나간다. 그러나 정보통신기기를 통한 연결은 오프라인 연결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지 인간의 대면적 관계망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보기기를 통해서는 사람의 감정이 전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과학이 지금까지 경제학이나 심리학에서 처럼 개인의 속성에 주목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methodological individualism)나, 아니면 맑시즘이나 사회학에서 처럼 개인이 속한 집단의 속성으로 개인을 규정하는 '방법론적 전체주의'(methodological holism)를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휴대전화나 전자 기기를 통해서 인간의 관계망을 파악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 졌다. 그가 속한 관계망을 파악한다면 그가 왜 그렇게 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사람들의 행위를 개선하려고 할 때 관계망의 고리를 찾아서 개입한다면, 비용 대비 보다 더 효과적으로 변화를 이끌 수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회과학의 패러다임과 방법론이 열릴 수 있다.

저자는 관계망을 연구한 전문 학자이기에 설명이 충실하며 조직적이다. 관계망 속에서 사람들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사람들의 행위를 설명하는 요인을 찾기 위해 그들의 관계망을 뒤져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저자는 실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러한 접근이 타당함을 실증한다. 문제는 저자도 거듭 언급하듯 사람들의 관계망을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개인의 속성을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개인에게 아무리 물어보아도, 관계망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익명화를 통해 개인 정보를 보호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연결된 데이터를 확보할 수있다면 사회과학의 설명력은 크게 높아질 것이다. 관계망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회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것이 될 수있다. 필요가 있는 곳에 행위가 있으므로, 미래에 이러한 데이터가 산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책은 관계망이라는 주제에 충실한 흥미로운 책이다.  

2020. 4. 17. 18:04

Brad Stone. 2013. The Everything Store: Jeff Bezos and the Age of Amazon. Back Bay Books.

블룸버그 비즈니스에서 기자 생활을 한 저자가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를 중심으로 하여 아마존의 성장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  아마존은 인터넷 브라우저가 일반에게 보급된 해인 1994년에 창업했다. 베조스는 뉴욕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다가 인터넷의 가능성에 눈뜨게 되고 인터넷 망을 통한 비즈니스를 하기로 결심하고 회사를 그만둔다. 온라인으로 판매할 아이템을 찾다 서적을 취급하기로 결정한다. 서적은 중간도매상이 있어 제조업자를 일일이 상대할 필요가 없고, 표준화된 아이템이므로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구매하는데 거부감이 적으며, 오프라인 책방이 갖지 못한 온라인숍만의 장점인 long-tail item 즉 소수만이 찾는 아이템도 제공할 수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의 예상은 적중하여 시애틀의 집 차고에서 시작한 비즈니스는 감당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제프 베조스는 어렸을 때 매우 똑똑하여 영재교육을 받았으며 엄청난 성취동기와 추진력을 가진 아이로 성장한다. 이러한 성격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생부는 덴마크계 이민자로 그가 아기일 때 그의 어머니와 헤어진후 다시는 만나지 않았으며, 그의 양부는 쿠바계 이민자로 베이조스에게 잘 대해주었다. 그는 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텍사스의 소도시에서 성장하여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고 뉴욕의 금융계에서 일하게 된다.

서적 온라인 사업을 시작한 이래 취급하는 물량이 급속도로 늘면서 베조스는 물론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은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 일해야 했다. 베이조스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사람을 선별하여 고용하는 데 많은 정성을 쏟지만, 베이조스의 무서운 추진력과 경쟁적인 성격 때문에 중도에 그만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베조스의 집중력, 추진력, 판단력에 감복하고 사업의 성장 속도에 도취하여 유능한 사람들이 계속 모여든다.

서적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사업은 월마트와 같은 소매 유통업과 달리 고객 개개인의 여러 주문을 조합하여 배송해야 하는 특이한 사업모델이다. 마치 부품을 조립하여 완성품을 만드는 일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고객의 주문에 대응하여 도매상에 주문하고 이것을 받아서 고객에게 배송하는 단순 중개업으로 출발하였지만, 취급 물량이 늘면서 자신의 재고를 두고 판매하는 사업으로 발전하였다. 문제는 책의 가지수가 많고 연말에 주문이 일시에 몰리기 때문에 고객 개개인의 주문을 제한된 시간 내에 소화하는 것이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이다. 네바다에 건립한 거대한 배송창고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주문을 예측하여 재고를 관리하고 배송 업무를 효율화하는데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

서적에서 CD와 DVD 로 사업을 확장하였으며, 이어서 장난감, 가전제품, 신발, 의류 등으로 차례차례 취급하는 상품 범주을 넓혀 나간다. 아마존이 온라인 쇼핑계에 진입한 다른 경쟁자를 물릴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물류 배송의 효율성과 추천 시스템을 들 수있다. 고객이 일년에 70불만 내면 배송을 무료로 해주는 프라임 시스템은 충성 고객을 늘리는 엄청난 성공을 불러온다. 소비자에게 업계 최저의 가격을 보장하는 가격제도 역시 경쟁자를 물리치는 강력한 무기로 작용한다. 아마존 회사 내부에서 컴퓨터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축한 웹 서비스 시스템은 일반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컴퓨터 기능을 임대하여 사용하는 아마존 웹서비스 AWS로 발전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애플의 아이파드와 아이튠을 이용한 음악스트리밍 시장을 벤치 마킹하여, 아마존의 킨들로 디지탈 서적을 판매하는 사업 역시 출판사와 저자의 엄청난 반발을 물리치고 성공한다. 아마존이 상대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 분야는 음악 스트리밍 사업에서 애플을 따라가지 못한 것과 비디오 스트리밍 사업에서 넷플릭스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식료품 유통사업은 아마존이 근래에 진출한 분야로 월마트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마존의 온라인 유통채널은 기존에 오프라인으로 존재하던 분야에 새로이 진입하여 시장을 빼앗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오프라인 책방이 망했으며, CD와 DVD 매장이 사라졌으며, 장난감 전문점이 사라졌다. 대규모 물량을 앞세워 업계 최저가 보장 정책을 밀어 붙이면서 중간 도매상이나 소규모 매장은 설자리를 잃었다. 아마존은 극도로 내부 비용을 절감하는 정책을 펴고, 마진을 최소로 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비효율적인 요소를 철저하게 도려내는 노력을 지속함으로서 경쟁자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다. 이러한 정책은 냉혹하게 경쟁자를 몰아내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으나, 소비자에게 편익이 집중되도록 하여 소비자의 만족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아마존의 소비자 중심주의는 온라인 시장 규모를 키웠으며 매출을 급속도로 증가시킴으로서, 비록 창업이래 한해도 수익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투자자의 각광을 받아 큰 어려움 없이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베조스가 사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사업 중 하나인 마켓플레이스 프로그램은 그의 냉정한 효율 지상주의를 반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아마존이 재고를 비축하면서 판매하는 아이템에 더하여 외부 사업자가 아마존의 플랫폼에서 자신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다. 아마존은 플랫폼 중계료로 매출의 7퍼센트 정도를 뗀다. 주로는 중고 서적이나 물품이 새로운 상품과 함께 판매 목록에 나란히 제시되어 고객으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아마존이 업계 최저 가격제 정책을 추진하므로 아마존이 재고를 비축하여 판매하는 것과 동일한 신품을 외부 사업자가 판매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때로 아마존이 제시하는 가격보다 외부 사업자가 제시하는 가격이 더 낮은 경우가 발생하면, 아마존의 구매 담당자는 이 가격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 프로그램은 아마존이 재고를 비축하지 않은 많은 다양한 상품들을 외부 사업자가 취급하므로서 아마존이 고객에게 제시하는 상품의 다양성을 크게 높인다. 아마존은 외부사업자가 취급하는 상품의 소비자 호응도를 관찰하다가 잘 팔리는 아이템이 나타나면 재고를 비축하여 직접 판매한다. 외부 사업자는 아마존의 플랫폼의 이점을 이용하여 쉽게 장사를 수 있지만, 잘 팔리게 되면 자신들의 아이디어와 상품 개발 능력을 빼앗기게 된다.

제프 베조스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효율을 높임으로서,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안주하여 기득권을 누리던 시장 지배자를 뒤흔들고 파괴하는 것은 선이라는 철학으로 자신과 종업원을 설득한다. 이러한 신념하에 경쟁자를 무자비하게 몰아붙여 결국 항복하게 하는 전략은 많은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변화에 대한 개방성과 철저하고 냉혹하고 영민한 판단이 전에는 없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업계 최고의 위치를 만들어 낸 것이다. 온라인 쇼핑, 클라우드컴퓨팅 서비스, 디지털 북 시장은 제프 베조스가 만든 것이다. 이것에 대한 오리지널 아이디어는 그가 만든 것이 아니지만, 이것을 실제 사업으로 성사시키고 소비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있도록 한 것은 그의 공적이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기존에 있던 아이디어를 모아서 스마트폰을 만들고 사업으로 성공시켰듯이.

그는 인터넷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혜안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에 앞서서 사업을 밀어붙였기 때문에 그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엄청난 추진력과 냉정한 판단에 부응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고 말한다. 아마존이란 직장은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베조스는 잘 못하는 부하에게는 단도직입적으로 철저하게 몰아붙이는 성미였다. 직원의 성과를 수치로 냉정하게 평가하여 하위 성과자를 내보내는 인사관리 시스템은 직원을 항시 불안한 긴장속에 있도록 한다. 창조적 파괴를 하는 선구자에게는 사람들과의 화합보다는 일을 추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프 베이조스와 스티브잡스의 유사점을 발견한다.

이 책은 저자의 엄청난 조사작업이 뒷받침 되어 만들어졌기에 내용이 풍부하다. 사업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상세히 묘사하고 군더더기 수식도 덧붙이기에 장황한 면도 있다. 그럼에도 아마존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면서 부닥치는 문제와 도전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제프 베조스와 아마존을 경쟁자를 무자비하게 절벽으로 몰아붙이는 괴물로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파괴적 혁신 creative innovation 을 하는 진정한 시대의 개척자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런 사람들이 성공할 수있기에 미국이 강한 것이리라. 한국이나 유럽에서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생을 주문받고, 파괴적 혁신을 중단하라는 기존 업계의 정치적 압력에 시달리다 결국 시들었을 것이다. 아마존은 출판계의 반발을 무시하고 작가가 온라인을 통해 직접 출판하는 시장을 열었다. 비록 사업으로는 아직까지 크게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연 것이다. 

2020. 4. 7. 18:10

Paul Collier. 2007. The Bottom Billion: Why the poorest countries are failing and what can be done about it. Oxford University Press. 195 page.

저자는 과거에 월드뱅크에서 극빈국 개발 연구를 지휘한 경제학자로 이 분야에 세계적 권위자이다. 극빈국은 무엇이 문제이고, 이들을 돕기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전세계 60억 인구중 최하위 10억은 그 위에 50억의 개발도상국들이 점차 발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정체되거나 빈곤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들 대부분은 아프리카의 사하라 사막 이남에 산다.

그들은 네가지 덧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다. 갈등의 덧, 자연자원의 덧, 내륙에 갖힌 덧, 나쁜 정부와 정책의 덧이 그것이다. 그들이 내전에 빠지는 주요 원인은 빈곤, 더딘 성장, 자연자원에 의존하는 것이다. 극빈국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첫번째 이유는 내전이다. 내전은 이전에 이룬 경제 성과를 무위로 만들며, 엄청난 경제적 비용을 초래한다. 내전으로 치안이 불안하면 국민들이나 해외 투자가들이나 경제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극빈국 사람들은 정부의 지시에 따라 사는 것보다 반군에 가담하는 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반정부군에 가담한다. 어떻게 하던 별로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나라에게 석유나 광물자원은 저주이다. 이것으로부터 나오는 돈을 둘러싸고 갈등이 벌어지며, 이 돈은 반군의 자금원 역할을 한다. 자연자원으로부터 손쉽게 외화를 벌 수있으므로,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광물자원은 물론 커피와 같은 환금 작물에 의존하는 경제는 국제 시세의 변동이 크기 때문에 안정된 경제 정책을 펴기 어렵다. 자연자원에 의존하는 나라에서는 민주주의가 성장하기 힘들다. 자연자원으로부터 나오는 돈을 부정한 방법을 동원하여 축적한 정치인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제압하고 권력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한편 내륙에 갖힌 나라는 가까운 바다로 나가기 위해 인접국에 의존해야 한다. 이들은 인접국의 사정에 종속되며, 독립적인 경제 정책을 펴기 어렵다. 나쁜 정부에는 권력자 개인 혹은 그가 속한 집단의 축재를 국가의 발전에 우선하는 나쁜 정치가 지배한다. 그들은 공정하고 효율적인 정책을 반대하며, 현재 그대로 비효율적이지만 자신들에게만 이익이 돌아오는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

극빈국은 세계화의 혜택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가진 것은 저임금 비숙련 노동력뿐인데, 이를 이용한 경제 발전은 인도나 중국이 이미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체 시장이 작고 정부와 치안이 불안정하기에 국제자본이 이들을 거들떠 보지 않는다. 나쁜 정치와 정책이 횡횡하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국외로 탈출하고, 남아 있는 사람은 무능하거나 나쁜 사람들 뿐이다. 그들은 세계화에 편승해서는 그들 위에 개발도상국을 따라갈 수 없기에 '버스를 놓쳤다(missing the boat).'

이들을 돕는 방법에 네가지가 있다. 국제 원조, 군사적 개입, 국제 규준, 무역 정책이 그것이다. 국제원조를 둘러싸고 양분된 주장이 대립한다. 원조를 더 해야 한다는 주장과 원조는 소용이 없다는 주장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원조를 해야 효과를 거둘 수있다. 내전이 종결된 직후에는 기존의 이권 세력이 약화된 상태이므로 개혁을 하기 좋은 시점이다. 이 시점에 10년간 원조를 보장하여 안정적이고 집중적으로 경제 개발을 지원한다면 그들을 덧에서 벗어나게 할 수있다. 현금 지원만이 아니라 기술 인력을 병행하여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기득 이권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 원조를 하는 것은 그들의 배만 불려주기에 돈 낭비이다. 개선 약속을 조건으로 원조를 제공할 것이 아니라 개선 결과를 평가하여 그에 따라 원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군사적 개입은 선진국이 꺼리지만, 극빈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 특히 내전이 종결된 시점에 선진국이 군사 개입을 하여 치안을 보장하면 비용은 적게 들면서 효과가 크다. 극빈국의 군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 부터 강탈하는 도구(extortion racket)로 기능할 뿐이다.

극빈국의 경제성장을 돕는 것을 목표로 하여 국제 규준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선진국의 법규부터 정비해야 한다. 극빈국 독재자들이 부정하게 축재한 돈을 은밀히 보관해 주는 선진국의 금융 관행을 철폐해야 한다. 극빈국의 자연자원 개발 계약을 뇌물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따내는 것을 용인하는 선진국의 규범을 바꾸어야 한다. 근래에 선거를 통한 형식적인 민주주의를 도입한 극빈국이 늘어나고 있으나, 권력의 견제 장치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아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선거 민주주의는 자신을 지지하는 집단에게만 의존하는 후견인 민주주의(patronage democracy)로 빠지는데, 이는 갈등을 격화시키는 원인이다. 극빈국의 사정에 맞도록 권력의 견제장치를 제도화한 규준을 만들어,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극빈국의 경제성장은 그들 위에 개발도상국이 걸은 길인 저임금 제조업과 무역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개발도상국보다 훨씬 열악하므로, 국제무역에서 이들에게 이점을 주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중국이나 인도보다 이들이 수출한 제품에 관세를 낮게 매기는 방식이다. 또한 극빈국 자체의 무역장벽을 낮추어 비효율적인 국내 산업이 경쟁에 노출되도록 함으로서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제무역에서 비교우위의 산업이 성장할 수있다. 현재와 같은 높은 보호무역의 장벽이 지속된다면, 그들 나라의 비효율적인 산업은 지속될 것이며, 이것에 이익을 보는 소수의 사람들에 붙잡혀서 다수의 국민이 빈곤의 덧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첫머리에, 지구촌에 극빈국이 존재하는 것은 모두의 문제로, 극빈이 없는 세상은 공공재(public goods)라고 말한다. 극빈은 무질서와 혼란을 낳으며, 이것은 이들 나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테러나 난민과 같이 이웃나라에 문제를 확산시킨다. 혜택은 모두가 보지만 누구도 나서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구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극빈국 사정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오랜 전문적인 경험이 뒷받침된 탄탄한 책이다. 극빈국이 대부분 아프리카 대륙에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의 문제에 별반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한국이 부유해지면서 점차 눈을 돌려야 할 대상이다.

2020. 4. 2. 10:24

박홍규, 박지원. 2019. 내내 읽다가 늙었습니다: 무리짓지 않는 삶의 아름다움. 사이드웨이. 461쪽.

이 책은 영남대 법학과 교수를 은퇴하고 농촌에서 지내는 박홍규와 작가 박지원간에 대담을 정리한 것으로 박홍규의 삶과 생각의 이모저모를 이야기한다. 박홍규는 노동법 분야에서 비주류의 목소리를 낸 참여형 학자이며, 엄청난 독서가로 그 자신 사상, 전기, 예술 등 다양한 주제로 100권에 가까운 교양서를 저술하고 서양의 고전을 번역한 지식인이다.

그의 엄청난 독서 습관은 중학교때 부모와 떨어져 대구에서 혼자 살며 중고 책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것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저자는 아버지가 경북 지방의 보수적인 전통을 고수하면서 자식에게 자신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에 일생 반발하였다. 주변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전통에 반항하면서 자신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는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 패거리 문화, 권위주의 문화에서 이단아로 살기로 작정을 하고 이를 실천한 사람이다. 

그의 일상은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채워진다. 다양한 주제의 책을 잡다하게 읽는 독서 습관은 그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말해 준다. 독서는 기존의 권위와 위선에 의문을 제기하고 독립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교과서만 달달 외우고, 시험에 치이고, 세속적 안정과 출세의 길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한다. 아웃사이더로 독서를 많이 하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 고호를 존경한다.

그는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하였다. 주위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고유의 개성을 만들어야만 인간으로서 가치있는 삶을 사는 것이다. 기존 사회의 구조와 인간관계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한다. 각자가 자신의 영역을 갖고, 자신의 삶에 충실하며, 각자 자신의 삶에 책임지는 개인주의 사회를 이상으로 여긴다. 남을 의식하는 사회, 체면 문화를 거부하며, 연줄을 찾아 자기들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한국 사회의 관행을 경멸한다. 힘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자기들끼리만 잘먹고 잘살자는 소아적 집단주의는 도덕적 타락이다. 이는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 문화에 바탕을 둔 것인데, 가족의 범위를 넘어 시야를 넓혀야 한다. 부모가 잘못하면 고발을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는 사회의 불평등 구조에 대해 마음속으로부터 분노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가진자와 못가진 자의 차별, 중앙과 지방의 차별, 엘리트와 보통사람의 차별, 남성과 여성의 차별. 우리 사회에서 사회 개혁을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 또한 자신들만의 패거리를 만들어 이익을 독차지하려 하고, 언행이 불일치 하는 삶을 사는 것에 분노한다. 우리 학계의 배타성과 위선에 학을 띠었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권위주의 사회의 폭력성의 피해자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가부장적 강압과 폭력을 참아야 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자신보다 배경이 좋고 성공했다는 사람들로부터 무시와 하대를 참야야 했다. 지방 대학을 나오고 지방대 교수로 사는데서 오는 열등감을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마음의 부담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하바드 대학에 머물 때 서구와 비서구 주변부의 차별을 통감하여 이후 오리엔탈리즘을 번역하였다. 우리나라가 서구의 지성에 뒤쳐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양서 고전 번역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사회를 바꾸려면 각자가 자신부터, 주변에 구체적인 것부터 바르게 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은퇴 이후에도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다. 마지막 장에서 그의 아내가 대담에 참여한다. 그녀는 남편이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여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집이 대단하며, 노력을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부인을 배려한다거나 집안일을 돕는데에는 무관심하다. 그도 한국의 남성의 일원인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띤 것은 대담자의 풍부한 교양과 인터뷰 대상에 대한 엄청난 사전 연구이다. 딱딱한 주제를 논할 때에도 글이 부드럽다. 모국어로 쓴 책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그의 생각에서 사회문제에 대해 사회과학적 접근이 아니라 인문학적 접근의 한계를 느낀다. 박홍규라는 사람은 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고, 패거리 문화를 거부하고, 고독한 지식인, 이단아로 살기를 선택했을까. 그의 엄청난 집착을 행간에서 읽으며, 잠재의식 속에 내재한 권위에 대한  반발과 자기 식으로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느낀다. 그럼에도 그가 인정하듯 그의 한계는 어쩔 수 없기에, 다 읽고 난 후 쓸쓸한 느낌이 든다. 나의 모습을 보는 듯 하기에 더 그러하리라. 제목을 잘 뽑았다.  

2020. 3. 28. 12:51

Gerd Gigerenzer. 2014. Risk Savvy: how to make good decisions. Penguin Books. 261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독일의 막스플랭크의 연구소장이다. 인간은 리스크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판단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연구해 왔다. 이 책은 그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완벽히 확실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일을 그르친다. 그보다는 상식과 직관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대략의 어림짐작(rule of thumb)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결정이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문제가 복잡하여 선택지가 많을 수록, 그에 대한 데이터가 많지 않을수록 대략의 어림짐작 방법이 최적화 방법보다 좋다. 반면 비교적 확실한 상황이며, 선택지의 수가 작고, 그에 대해 축적된 데이터가 많을 수록 복잡한 모델을 세워서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방법이 효과를 발휘한다.

리스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선택지들과 각각의 선택지가 발생할 확률이 알려진 리스크(known risk)가 하나로 이는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나 카지노의 슬롯머신이 대표적 예이다. 가능한 선택지를 모르며, 각각의 선택지가 발생할 확률을 알지 못하는 리스크(unknown risk)가 다른 하나이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사건은 대체로 후자에 속한다. 주가가 추락할 확률, 지진이 날 확률, 사고가 날 확률, 사업이 망할 확률, 전염병이 창궐할 확률 등이다. 탈레브의 책에서 'trukey risk' 라는 용어를 빌려온다. 주인이 그가 키우는 칠면조에게 먹이를 주는 날이 늘수록 칠면조가 인식하기에 다음 날에도 그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다음날에 그가 잡아 먹히는 사건이 일어날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사건의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 한번 일어날 사건의 확률을 알려진 확률로 오인하여 판단을 그르친다. 물론 개별 사건의 확률은 알지 못하나 개별 사건이 속한 집단의 확율은 파악하는 경우는 많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용인하면서,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고, 그것으로 부터 배워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줄이도록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다음번에 문제를 덜 발생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반면 문제가 발생할 때 문제의 원인을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문제 발생자의 책임을 추궁하는데 치중한다면, 다음번에 문제의 발생 위험을 줄일 수없다. 여러 상황 조건이 맞아 떨어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문제 발생자의 행위는 여러 요인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많은 경우 배경조건이 문제를 발생시킨 진정한 원인이며, 문제 발생자의 행위는 문제의 사건과 거짓 관계 spurious relationship를 맺고 있으므로, 문제 발생자를 문책하는 것이 다음번에 문제 발생의 위험을 낮추지 못한다. 

전자의 사례로 비행기의 사고를 줄이는 노력을, 후자의 사례로 의료 사고를 든다. 비행기 사고의 경우 철저하게 원인을 검토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문제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개선한 결과 사고의 위험이 놀랄만큼 줄어들었다. 반면 의료 사고는 감추는데 급급하여 사고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개선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의료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방어적 과잉 치료 관행을 부추기며, 가장 최선의 치료 방법이 아니라 의사에게 책임을 추궁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차선의, 혹은 환자에게 해롭기까지 한 치료 방법이 선택된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위험 요인을 두려워하고 피하도록 조건지워졌다. 이는 현대과학문명에서 실제 매우 작은 위험 상황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는 비효율적 의사결정을 낳았다. 그 결과 비행기 사고나 테러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경악하여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미디어는 이러한 사람들의 과도한 경계 성향을 부채질함으로서 돈을 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불확실한 리스크를 통제할 수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주식 투자가 그것으로, 특정 주식의 오르내림은 예측이 불가능한 리스크이다. 가장 합리적 투자는 n 분의 1 씩 나누어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불확실하고, 선택지가 많고, 과거 데이터가 충분치 않은 대표적 사례이므로 가급적 단순한 접근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복잡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직관(gut feeling)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의사결정법이다. 전문가의 직관은 수치화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을 무의식 속에서 복합적으로 반영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장래의 배우자를 고를 때나 구매를 할 때, 모든 선택지를 다 탐구해본다음 최고의 것을 선택하는 방식, 즉 최적화 방법(maximize)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는 머리속에서 대략의 수준을 정해두고 그에 근접한 사례가 나타나면 더이상의 검색을 중단하고 선택을 내리는 것, 즉 웬만큼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good enough)이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다.

저자는 의료계 위험에 전문가로 이 주제에 많은 논의를 할애한다. 의료 테스트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 그 질병에 걸렸을 확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예컨대 유방암 검사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 유방암에 걸렸을 확율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베이즈의 조건부 확율을 이해하는 의료인은 많지 않다.

의사는 자기 방어(self-defence), 의료 통계수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innumeracy), 환자의 이익보다는 의사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conflicts of interest), 이 세가지 원인 때문에 과잉진료를 하며, 환자에게 테스트 결과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정기 검진보다는 실제 증상이 있을 때 진료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유방암 검사와 전립선암 검사를 예를 들자면, 테스트를 하면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양성 반응의 사례에서 활성 암인 경우는 매우 적다. 많은 사람은 비활성 암을 가지고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테스트를 하여 양성으로 나타나면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에 들어가는 데, 이는 필요치 않은 과잉 치료에 속하며 해롭기까지 하다. 증상이 없는데 테스트 결과 양성이어서 항암치료나 수술을 받은 사람이나, 혹은 테스트를 받지 않고 비활성 암을 가지고 살다 죽은 사람이나 죽는 연령은 거의 비슷하다. 테스트를 하여 양성이 나온 환자를 수술하여 5년동안의 생존율이 높다는 사실을 들어 정기적 테스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의 일부만을 호도하는 것이다. 의료계는 테스트 및 후속의 적극적 치료를 통해 돈을 벌기 때문에 정기적 검진을 강조하는데, 이는 conflicts of interest에 속한다.

정기적 테스트를 하여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암을 예방하는 방법이 아니다. 증상이 없다면, 암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혹은 조기에 발견하지 않거나간에 암으로 죽는 연령은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암은 해로운 행위 요인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흡연, 음주, 비만, 운동안함, 패스트 푸드와 설탕물 탄산음료, 육류지방과 소금의 과도한 섭취, 등의 요인을 개선하는 것이 암을 예방하는 진정한 방법이지 정기적 검사는 암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위험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부터 위험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건강 위험, 금융 위험, 디지털 위험에 대해 어렸을 때 정확한 지식을 교육받고 바른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육을 통해 통계적 사고 방식을 습득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 대략의 어림짐작을 하는 방법을 훈련하고, 작은 위험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패닉하지 않도록 심리적 훈련을 하는 것이 지혜롭게 위험에 대응하는 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적인 연구 결과를 일반인을 위해 풀어서 쓴 것이므로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많고 깊이가 있다. 확율을 계산하는 부분에서는 서술을 따라가기 어려운 곳도 있다. 지적인 면에서나 실용적인 면에서나 좋은 책이다.

2020. 3. 22. 12:22

Steven Johnson. 2014. How We got to now: six innovations that made the modern world. Riverhead Books. 255 pages.

저자는 대중과학 작가로 이 책은 미국의 PBS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후속으로 저술한 책이다. 식물이 생식을 하기위해 아름답고 달콤한 꽂으로 곤충을 유인하고 그에 맞추어 곤충은 꽂의 꿀을 잘 빨아먹도록 진화했다. 벌새는 공중에 멈춤 비행을 하면서 꽂의 꿀을 빨아 먹도록 날개 구조를 진화시켰다. 저자는 서두에 이 예를 제시하면서, 한 발명은 그에 맞는 다른 발명을 이끌고, 이것이 다시 다른 발명을 이끌면서 결국 처음 발명 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가져온다고 이야기한다.

유리(glass)는 이집트 시대에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르네상스시대에 렌즈의 발명으로 이어졌고, 이는 안경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15세기에 구텐베르크의 활자 발명으로 출판물 가격이 현저히 낮아지면서, 많은 사람이 글을 읽게 되고, 돋보기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늘었다. 렌즈는 망원경의 발명으로 천문학 발달을 가져왔으며, 현미경의 발명으로 병원균의 존재를 확인하게 되어, 의학의 발전과 건강 수준의 향상을 이끌었다. 한편 유리는 거울의 발명으로 이어졌는데, 거울은 사람들이 자신을 인식하는 사고방식을 조장하였고 개인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유리는 근래에 광섬유의 발명으로 이어지고, 이는 반도체의 인쇄기판의 재료가 되었고 인터넷이 보급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근래로 올수록 유리의 실리콘은 탄소, 수소, 산소 못지 않게 인류의 문명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추위(cold)는 겨울에 어름을 저장했다 여름에 사용하는 산업을 20세기 초까지 번창시켰다.  인조로 냉기를 만드는 발명은 19세기 말에 태동하여 20세기 중반에 냉장고의 발명을 낳았고, 이어 에어컨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에어컨은 미국 남부로 인구가 이동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는 미국의 정치지형을 변화시켰다. 

소리(sound)를 기록하는 아이디어는 19세기에 구체화되어 에디슨의 축음기로 이어졌다. 소리를 전기 신호로 변환하여 전송하는 아이디어는 전화의 발명을 가져왔다. 한편 소리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여 기록하는 아이디어는 이차대전 중에 전화 통화를 암호화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이후 CD, DVD, streaming service 로 진화하였다. 한편 진공관을 통해 소리를 증폭하는 발명은 히틀러의 나찌 운동과 마틴루터킹이 주도하는 민권 혁명에 기여했다. 소리를 물속에서 전송하는 아이디어는 소나(sonar)의 발명을 이끌었다.

청결(clean)을 높여 인구가 밀집한 도시에서 전염병의 발생을 줄이는 것은 19세기 하수도와 상수도의 발전으로 가능해졌다. 19세기 후반 비누의 보급과 자주 씻으므로서 개인 위생을 높인다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확산되었다. 20세기 초반 수도물을 클로라인으로 소독하는 발명을 통해 전염병이 현저하게 줄었다.

시간(time)을 측정하는 일은 르네상스 시대에 시계의 발명으로 가능해졌다. 시계는 시간을 절약하고 삶의 리듬을 시계에 맞추는 사회 관습을 낳았다. 시계는 시간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time discipline) 현대 생활을 나았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시간에 따라서 보수를 받게 되었다. 19세기 중반 미국에 대륙간 철도가 개통되면서 지역간 시간을 통일시켜야 할 필요가 높아졌으며, 이는 전세계적으로 영국의 그리니치를 중심으로 한 표준 시간대(GMT)를 설정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빛(light)은 오랫동안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어 인간의 생활을 제한하였다. 인공 조명을 찾는 인간의 노력은 19세기 말까지 고래 잡이 산업을 활성화시켰으며, 19세기 말 전등의 발명을 가져왔다. 전등은 40년 이상 유럽과 미국의 여러 발명가들이 조금씩 아이디어를 개량시켜서 만든 것이지 에디슨이 발명한 것이 아니다. 전등이 발명되기 전까지 인류는 해가 지면서부터 해가 뜰 때까지 긴 시간을 잤다. 그러나 밤 동안 쭉 수면한 것이 아니라, 밤을 둘로 나누어 첫 잠을 자고 중간에 깨서 집안에서 활동하다 다시 두번째 잠을 자는 습관을 가졌다. 20세기 초에 발명된 마그네슘을 태워서 일시에 밝게 만드는 플래시 라이트는 뉴욕 빈민가의 비참한 생활을 사진에 담을 수 있게 하여 빈곤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냈다. 이는 20세기 초반 미국의 진보주의 운동의 흐름 속에서 빈곤관련 개혁을 촉발시켰다. 네온의 붉은 색 빛은 네온 사인을 발명시켰으며, 레이저 빛은 20세기 중반 바코드 스캔의 발명을 거쳐 유통업의 혁명을 가져왔다.  

한가지 발명은 그와 연관된 가능한 발명의 공간(the space of possibility)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새로이 가능한 발명의 공간 내에서 조만간 후속 발명이 이어지며, 이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아간다. 한가지 발명은 단독 연구자의 고독한 작업결과가 아니라, 연관된 네트워크의 고리의 일부이다. 새로운 발명은 다양한 성격의 아이디어가 만나고 조합되면서 태어난다. 때때로 시대의 한계를 뛰어 넘는 사람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는 기존의 지식 영역의 주변에 위치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넘보는 사람이다.

이 책은 과학관련 이야기 거리를 모아놓은 흥미 위주의 책이다. 글이 쉽게 읽힌다는 장점은 있으나, 피상적 내용의 한계가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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