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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21. 16:41

 

Carles Boix. 2015. Political Order and Inequality: Their Foundations and Their Consequences for Human Welfar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6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국가가 생겨난 기원 및, 국가와 불평등과 경제성장의 관계에 관해 이론적 논의와 함께, 인류학, 역사학, 기타 다양한 데이타를 이용해 수리적으로 검증한다.

수렵채취 단계나 낮은 기술 수준의 농업 사회에서는, 사람들이나 집단들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평등했다. 그들은 집단 구성원들 간에 불평등이 발생할 요소를 서로 감시하면서 억제하였으므로, 국가라는 제삼의 권위 기구 없이도 당사자들 서로간 개인적 상호작용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질서를 유지했다. 이러한 사회는 특정인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억제했으므로, 성장이 없이 정체된 상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생산력의 범위 내에서 인구를 제한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존의 한계 수준 근처에서 가난하게 생활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잉여 생산물이 출현하면서, 사람들은 생산자와 탈취자의 두 부류로 나누어졌다. 생산자는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이며, 탈취자는 생산자가 생산한 것을 탈취해 생활하는 사람이다. 생산자는 탈취자에게 자신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빼앗기는 대신 안전과 질서를 얻는다. 탈취자는 우월한 무력을 바탕으로 생산자를 지배하고 그들로부터 잉여 생산물을 탈취해간다. 역사상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탈취자들이 세운 군주제 monarchy 를 택하고 있다.

고대의 아테네나, 근대 이전 북이탈리아의 도시 국가에서는 예외적으로 공화정 republic이 존재하였다. 도시국가에서는 생산자들이 자신의 방어를 직접 담당하거나, 용병을 구입하여 방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구조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오래가지 못했다. 북이탈리아 도시국가의 공화정은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규모가 큰 이웃 나라의 탈취자에 의해 함락되었으며, 용병을 고용한 경우 무력을 보유한 용병이 반역을 일으키지 못하게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용병 출신의 무력 집단에 의해 전복되었다. 근대 이전에는 규모가 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 사이에 원활하게 이익을 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공화정이 출현할 수 없었다.

무력 기술 수준에 따라 생산자와 탈취자의 관계가 변화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전에는 무력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아 특별히 무력 수준이 우월한 사람이나 집단이 없었으므로 탈취자가 출현하지 않았다. 청동기 무기와 이후 말의 출현으로 무력 기술 수준이 크게 높아지면서, 무장을 하는 데 많은 비용이 소요되어, 이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탈취자로 군림하면서, 다수의 비무장 생산자를 지배하는 국가가 생겨났다. 13세기에 총포가 도입된 이후, 기마 무사의 무력적 우위가 사라지면서 귀족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대신 비싼 총포를 구입할 자본을 조달하는 능력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게 되었다. 상업과 금융업이 발달한 영국과 네덜란드,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대규모 은을 수입한 스페인, 풍부한 농업 생산력을 바탕으로 큰 규모의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절대왕정의 프랑스가 강국으로 올라섰다. 

생산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들 간 및 지역 사이에 생산성의 차이 때문에 불평등이 커진다. 새로운 기술 발전에 의한 생산성 증대는 기존의 탈취자 집단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기존의 지배집단이 새로운 생산기술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예외적으로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기존의 탈취자 집단이 상공업 자본가로 탈바꿈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의 이익을 신흥 부르주아지와 공유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주와 상공업 계층은 의회를 통해 왕권을 견제하면서, 해군력을 증강하고 상업을 확장시켰으며, 식민지를 확장하면서 새로운 기술 발전의 이익을 공유하였다.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달하였다. 도시로 인구가 모이면, 도시인들 사이에 분업과 전문화 수준이 높아지고, 이는 기술 발전을 촉진한다.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이유는, 유럽 지역이 작은 국가들로 쪼개져 있었고, 서로간 경쟁이 치열했기 때문이다. 각 나라의 군주는 자신의 나라에 인구가 늘고, 도시가 발달하고, 군사기술과 자본 규모가 높아져서, 이웃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에 올라서기를 원했다. 도시의 상공인들은 농촌 사람들보다 소득이 높으며, 세금을 부담하고 총을 들고 전쟁에 직접 나가는 국민으로서, 왕과 지배층에 대한 발언권이 높아져서, 결국 공화제로 이전되었으며, 과거 산업혁명 이전보다 소득 분포가 평준화되었다. 요컨대, 산업혁명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며, 국가의 출현 및 불평등 수준 역시 생산 기술 및 군사기술의 수준과 연관된다.

이 책은 저자의 주장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검증한 학술서이다. 19세기 이전의 불평등 수준을 키의 분포로 측정하였으며, 생산기술의 발달 지표로 매우 다양한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수리 모델을 설명하는 부분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으나, 전세계의 역사적 사례를 시대를 관통하면서 인용하며, 다양한 가용 자료를 이용해 기존의 논의를 뛰어 넘는 독창적인 주장을 한다. 대단한 비교 연구이다.

2021. 8. 29. 17:46

Charles Tilly. 1990.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Blackwell. 227 pages.

저자는 역사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서기 990년 부터 1990년까지 유럽의 역사를 훑으면서 유럽의 국가들이 탄생된 과정을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유럽의 국가(state)들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였다.

"전쟁은 왜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전쟁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wars work) 라고 답한다.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의 것을 빼앗아 이익을 취하고, 다른 나라의 위협을 격퇴하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에 두고 착취할 수있다. 한 나라가 어떤 이유로건 약해지거나 변화가 있으면, 이웃 나라가 침략하였으며, 국가간의 제휴관계를 통해 집단적으로 전쟁에 간여하였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래 유럽은 많은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었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전쟁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 일상적인 것이었다.

전쟁을 하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 물자, 무기, 기술, 조직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는 유럽의 왕들의 가장 주요한 일상 관심사였다. 왕은 전쟁 자원의 조달을 둘러싸고 영토 내에 자원을 가진 세력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었다. 국가 형성의 길은 지역의 상황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진다.

영토내에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가 있는 네덜란드나 베니스 등에서는, 대규모 자본을 소유한 도시의 상공인 세력이 왕과의 협상을 주도한다. 왕에게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상공인 세력은 왕과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 갖는다. 도시의 상공인 세력은 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국가들의 전쟁은 상공인 세력의 대외적 이익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목적에 기여한다. 상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국가가 전쟁 자원을 조달하는데 별도의 큰 인력과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조직은 대외적인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이 국가에서는 상공인으로부터 조달한 돈으로 해외로부터 용병을 고용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는 17세기에 조그만 나라였던 네덜란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상업망을 구축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대지주가 지역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는 왕의 통제로부터 독립된 존재였다. 왕은 명목적인 통치자일 뿐, 지역의 농민에 대한 실질적 지배는 대지주 권력자가 행사하였다. 왕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로부터 얻어 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강압(coercion)을 행사했다. 왕의 강압은 지나치게 착취된 농민의 반발을 등에 업은 대지주의 반란을 종종 불러일으켰다. 왕의 권력은 언제라도 대지주 권력자들에 의해 찬탈될 위협에 놓여 있어 불안정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많은 전쟁 자원을 빠른 시일내에 조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 나라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전쟁 자원조달을 하는 국가에 비해 국제 경쟁에서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영토 내에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가 있고,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광범위한 지역과, 지역의 농민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지주 권력자가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 왕은 한편으로 도시의 대자본가 상공인 집단과 타협을 통해 전쟁 자원을 조달하며, 다른 한편으로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에 대한 강압을 통해 그들을 제어하였다. 이 나라들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권력이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를 건너뛰어 농민들에게 직접 미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왕의 권력이 농민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조직이 커졌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왕의 전쟁 자원조달 노력이 도시의 자본가나 지역의 농민들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섰을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은 농민과 노동자들의 착취에 대한 반발을 등에 업고 전문직 집단이 주도하여 왕의 지나친 전쟁자원 조달에 반기를 든 것이다. 혁명의 주도세력과 나폴레온 정부는 중간 매개자를 거치지 않고 노동자와 농민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국가의 전쟁 자원을 조달하는 길을 택했다. 주위 유럽 국가의 공격에 맞서 프랑스의 농민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에서 국가에 세금을 납부했으며 전쟁에 병사로서 참가했다. 혁명 주도세력은 지역 권력자들의 반발을 꺽고 국민을 직접 통치하는 국가 조직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하여, 국가가 국민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국민이 국가의 통치에 직접 간여하는 '국민국가'(national state) 가 탄생한 것이다. 국민국가는, 도시의 대자본가 상공인과의 타협을 통해 전쟁자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나, 지역의 대지주 실력자에 대한 강압을 통해 전쟁자원을 조달하는 모델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신속하게 전쟁에 소요되는 대규모의 인력과 자원을 조달할 수 있었으므로, 국제 전쟁에서 다른 모델의 국가를 모두 패퇴시켰다. 나폴레온의 유럽 정복을 거치면서 국민국가 모델은 전 유럽 국가들에 전파되었으며, 국제경쟁 속에서 이 모델만이 유일한 국가의 전형으로 살아 남았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유혈 혁명을 거치지 않고 국민국가 모델로 이전하였다. 대의제를 통해 대자본가와 상업화된 대지주에게 국가의 권력을 점진적으로 이양하면서, 그들의 동의를 거쳐 전쟁 자원을 효과적으로 조달하였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상공업이 발달하였으므로, 네덜란드와 비슷하게 대자본가와의 타협을 통해 대규모의 전쟁자원을 효과적으로 조달하였다. 프랑스가 영국에 패한 주원인은 영국이 프랑스보다 전쟁자원을 훨씬 효과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신의 국민으로부터 전쟁자원을 조달하려면, 국민의 다양한 요구에 응해야 한다.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입헌 민주주의가 확대되었으며, 국가의 전쟁에 필요한 군사와 재정의 기능 이외에, 치안, 복지, 교육, 노동, 경제 개발, 교통, 주택 등 다양한 기능이 국민의 요구에 응해 더해졌다. 급기야 20세기에 들어 국가의 주요 기능이 복지를 제공하는 데 맞추어진 복지국가가 출현하였다.

국가의 핵심 기능은 국제 경쟁 체제에서 전쟁 수행에 있으며,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국가의 기능이 변화하여 왔다는 저자의 분석은 명쾌하다. 유럽의 지난 천년간의 역사를 꿰뚫으면서 설명을 하기에 논의가 복잡하다. 정말 대단한 연구 성과이다. 

 

 

 

 

 

2021. 7. 18. 12:26

Ian Morris. 2013. War! What is it good for?: Conflict and the progress of civilization from primates to robots. Farrar, Straus and Giroux. 393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의 역사 전반을 훑으면서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는데 필수적인 것이었다는 명제를 주장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공격성과 폭력성을 지닌 동물이다. 수렵채취 단계에서 폭력으로 사망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20%에 달한다. 사람들은 문제와 어려움에 봉착하면 쉽게 폭력적 수단에 의지했으며, 집단들 사이에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갈등은 끝없는 공격과 보복을 낳았다. 농경을 하면서부터 행위 방식에 변화가 나타났다. 농경으로 인구 밀도가 늘고 이동의 제한에 부닥치면서, 과거 작은 집단 간 폭력적 갈등은 규모가 큰 사회 간 전쟁으로 발전했다. 전쟁에서 상대 집단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의 집단이 상대보다 더 부강하고 규율이 더 잘 잡혀 있어야 한다. 중앙집권적 국가 권력의 사회 통제의 효율성이 높아지면서, 사회 내에서의 사적인 폭력은 엄격히 제한되었으며, 그 결과 폭력의 빈도는 현저하게 줄었다.

과거 소집단 사이의 폭력적 갈등이 빈번했을 때는, 상대를 공격하여 이길 경우, 보복을 예방하기 위하여 상대 집단 사람들을 모두 죽이는 것이 안전한 방책이었다. 반면 국가가 폭력을 통제하는 단계에서는, 다른 국가와 전쟁에서 이기면 상대의 반발을 무마하는 수준에서 폭력을 그치고, 대신 상대 국가의 구성원을 자신의 사회 안으로 포용하여 더 큰 국가로 만드는 것이 미래의 전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안전한 방책이다. 그 결과 로마의 제국주의 시대에 폭력으로 죽은 사람은 전체 인구의 1~2%로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전쟁을 통해 더 강력한 국가와 군주 Leviathan 가 출현하면서 폭력은 감소하고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중앙아시아로부터 온 기마민족의 공격으로 로마가 멸망하면서 강력한 국가의 통제는 허물어졌다. 기마민족은 농경사회의 지배자와 달리 기본적으로 정주하여 사회를 통제하는 권력이 아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상대를 포용하고 더 큰 부강한 나라로 성장하는 길을 걷기 보다는, 상대를 정복하여 파괴하고는 물러나거나 혹은 얕은 수준의 통치만을 하는 지배자가 되었다. 이들은 정주하는 권력이 아니므로 피지배자를 자신의 일부로 포용하여 그들의 안위과 부를 높임으로서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전쟁의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피지배자를 자신들의 일부로 포용하지 않고 타자로서 착취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기마민족의 전쟁은 상대를 파괴하는 것에서 더 발전하지 않는 '비생산적 전쟁'이다. 유럽은 다시 작은 집단으로 쪼개졌으며 이들 사이에 갈등과 폭력의 빈도는 높아졌다. 중세 시대에 유럽은 로마 제국주의 시대보다 폭력의 수준이 훨씬 높다. 유럽이 다시 상대를 포용하는 '생산적 전쟁'의 길로 들어선 것은 총기가 보급되고 기마 공격이 무력화되면서부터이다. 총기가 보급되면서 전쟁의 비용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훈육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높은 전쟁 비용을 조달하고 잘 훈련된 군대를 확보하기 위해 사적 폭력을 억제하고 사회를 잘 다스려야 할 필요성 역시 증가하였다.

서구가 세계를 제패하게 된 것은 항해와 무기 제조 기술이 발달하고, 군대의 훈육과 조직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서구 유럽은 지형 조건상 작은 나라로 쪼개져 있으면서 서로 간에 잦은 갈등과 경쟁을 해야 했다. 그 결과 유럽은 단일 체제의 중국이나 인도와 달리 상호간 모방하면서 경쟁적 발달을 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이 축적되면서 아시아와의 격차를 넓혔다. 서구의 제국주의시대 정복 초기에는 폭력이 많이 사용되었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는 종주국과 식민지 모두에서 질서를 높이고 폭력을 줄이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18세기 중반 영국이 프랑스와 패권전쟁에서 승리하고, 산업혁명으로 부와 기술을 높이면서, 영국은 세계에 대해 개방정책을 강요하였다. 각 나라들은 각자 자신이 잘하는 것을 생산하여 서로 교역하므로서 모두의 부를 높였다. 이러한 개방정책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영국에게 매우 큰 부와 번영을 안겨주었다. 영국은 강력한 군사력으로 자유 항해와 교역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계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문제는 이러한 개방정책을 통해 영국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후발 산업국인 미국과 독일도 빠르게 성장하여, 19세기 후반 무렵에 미국은 산업 생산에서 영국을 따라잡았으며 20세기 초에 이르면 독일도 영국을 위협할만큼 크게 성장했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자신들의 성장한 국력에 비해 자신들이 차지한 식민지가 보잘 것 없음에 불만이 커졌으며, 결국 1914년과 1938년 영국과 프랑스를 상대로 두차례나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을 통해 국력을 소진한 영국 대신, 미국이 세계 경찰의 위치에 올라서서 개방 정책을 이어갔다. 1989년 소련이 몰락함으로서 미국은 마침내 유일한 세계 경찰의 위치에 올라섰다.

미국의 안전 보장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개방정책은 미국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었지만, 과거에 그랬듯이 다른 후발국가들에게도 빠른 추격 성장의 기회를 제공했다. 중국은 미국의 개방정책과 세계 경찰의 역할덕분에 빠르게 국력을 높였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두 차례의 전쟁을 거쳤듯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전쟁이 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생산성을 높여간다면, 가까운 미래에 중국에 추월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저자는 궁극적으로는 미국이 중국에 추월당할 것으로 예측한다. 과거와 달리 핵무기의 확산으로 앞으로 전면전은 전쟁 당사자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기기 때문에 전면 전쟁이 발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미소간 군비축소의 결과 현존하는 핵무기는 수천만명을 죽이는 정도에 불과하며, 미사일을 요격하는 기술의 발전 등으로 핵무기의 피해를 선제적으로 줄일 수있는 방법이 계속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핵무기의 엄청난 위험 때문에 앞으로 전쟁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엄청난 피해를 입기는 하겠지만 여전히 인구의 상당 비율은 핵무기를 사용하는 전면 전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므로 전쟁의 위험은 상존한다.

인류의 평화에 대한 희망이 과학 발전에서 나올 수있다. 인류는 공격적 폭력성을 문화적 장치를 통해 통제해왔으며, 그 결과 근래로 올 수록 폭력이 줄어들었다. 앞으로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이 계속되면, 사람들 사이에 의식의 연결이 확대되면서 궁극적으로 컴퓨터와 인류 모두가 결합한 단일체 Singularity 가 출현할 수 있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나와 우리의 외연이 계속 확장되다가 결국 모두가 하나가 되는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기 이전에, 인류는 과학 기술을 더 많이 활용하여 유리한 집단과 과학 기술이 낙후된 집단간에 불평등이 확대될 수있다. 전자는 월등한 능력을 동원하여 후자를 복속시키고 착취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아마도 이러한 예측이 보다 가까운 미래의 모습일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역사적 지식을 버무려 비교적 가볍게 서술한 책이다.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나 새로운 주장은 없으며, 인류 역사 관통하는 상식을 제공한다. 인간의 본성은 갈등, 공격, 폭력이며, 강력한 국가와 군주의 출현으로 이러한 본성을 제어한다는 토마스 홉스의 명제를 재확인한다. 전쟁 때문에 강력한 국가와 군주가 출현하여 개인과 집단간 소소한 폭력을 제어한 결과 오늘날과 같이 폭력 행사가 드문 평화로운 사회가 됬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강력한 국가와 군주, 세계의 경찰의 필요성이다. 만일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는 국가의 힘이 약화된다면 다시 혼돈의 상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즉 평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폭력적 존재가 버티고 있어야 한다.

 

     

 

 

2021. 3. 7. 21:24

Robert Bates. 2010. Prosperty and Violence: the political economy of development. Norton. 98 pages.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를 연구한 인류학자이다. 국가는 기본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인데, 국가의 폭력이 서구의 역사에서는 제어될 수 있었던 반면,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에서는 제어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한다. 국가의 폭력이 제어될 때 경제 발전이 가능한 반면, 그렇지 못할 때 빈곤과 비참이 지속된다.

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에는 가족과 친족이 폭력을 행사하는 단위였다. 가족과 친족의 구성원이 폭력을 당했을 때 사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복수하고 이는 다시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 평화는 잠정적 과도기적 현상으로, 때때로 폭력이 분출되는 사이클을 보인다. 마치 화산이 분출과 휴지를 반복하는 사이클을 그리듯이.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유재산권이 언제라도 침탈당할 수 있으므로, 사람들은 자본을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여 생산성을 높이려 하지 않으므로 경제발전이 이루어질 수없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새로운 재배 기술이나 새로운 종자을 시도하려하지 않으며, 상업작물을 재배하는 것을 꺼린다. 왜냐하면 조금 더 높은 생산성을 바라면서 새로운 종자나 재배 기술을 시도했다가 만일 실패하면 생존의 위기에 봉착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검증된 생산성은 낮지만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상업작물을 재배했다가 시장 상황이 악화되어 가격이 폭락하면 생존의 위협에 처하므로 돈은 안되지만 자급자족할 수있는 생산성이 낮은 전통적 농업을 고집한다.

아프리카 부족사회에서 친족이란 예기치 못하는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적 성격을 지닌다. 작황이 나쁘거나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친족과 부족은 의지할 수 있는 언턱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처는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 없는 친족과 부족 구성원을 위해 나의 노동을 바치고 폭력의 행사에 동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친족과 부족을 단위로 폭력의 행사가 이루어지는 전통 사회는 외면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실상은 평화롭지 않으며 구성원에게 높은 비용을 요구한다.

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친족과 부족의 범위를 넘어서는 단위인 국가에 폭력의 행사를 위임하는 관행이 출현했다. 국가의 지배자가 중앙에서 폭력을 독점하는 대신에 구성원간 사적인 폭력을 제한함으로서 평화를 가져올 수있다. 지역 엘리뜨에게 사적인 폭력 수단을 포기하는 댓가로 지역의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나누어 준다거나, 국가의 고위직을 부여하여 국가나 지역의 통치에 동참하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사적인 폭력을 중앙으로 집중시켰다.

문제는 국가의 지배자가 폭력을 중앙에 집중하여 독점적으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큰 군대가 필요한데, 이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높은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이다. 지배자는 자신의 영지에서 나오는 소득에 더하여 지주와 상공인에게 세금을 징수하여 이 비용을 충당하려 하는데, 지주에 대한 세금은 지역 엘리트와의 관계 때문에 고율로 착취하기 어렵다.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징수하기도 어려운데, 왜냐하면 상공인에게 높은 세금을 요구하면 그들은 자신의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이 딜레마를 가장 먼저 해결한 나라이다. 왕이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지주와 상공인에게 위임하는 대신에, 그들로부터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 낸 것이다. 영국의 의회는 국가의 재정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짐으로, 왕이 함부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돈을 쓰는 것을 제어한다. 왕의 행위를 의회가 통제하기 때문에 국민의 사유재산권은 왕의 침탈로 부터 보호된다.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가 보호된다는 보장이 있기에, 영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먼저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영국은 이웃나라와의 군사적 경쟁에 필요한 군비를 민간 자본으로부터 장기 저리로 조달할 수 있었다.

제 3세계의 개발도상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힘이 빠진 것을 기화로 독립을 얻었다. 이들 나라에서 폭력은 부족의 휘하에 장악되어 있으며, 국가가 폭력을 중앙에서 독점하지 못하기 때문에, 부족들 사이에 폭력을 주고 받는 악순환이 지속되었다. 이들 나라의 지배자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한 군대를 유지하고 지역 엘리트를 제어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국민으로부터 조달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의 원조 자금과 이권으로 융통한다. 이들은 유럽과 달리 지배자가 자신의 통치권한의 일부를 국민의 대표나 지역 엘리트에게 위임하는 댓가로 재정적 협조를 이끌어내지 않으므로, 국민과 지역 엘리트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며 일방적 권위주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지배자가 언제 자신의 재산과 노력의 성과를 뺏을지 알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하여 노력을 투입하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컨대 개발도상국의 발전에 도움이 되라고 주는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개발도상국에게 독이 되는 것이다. 정치 민주화나 경제개발은 국가의 지배자가 국민에게 자신의 통치 권한을 위임하고, 지배자의 뜻에 따른 자의적 폭력을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을 때에만 가능한데, 선진국의 경제원조는 바로 이러한 제도가 발전할 수있는 기반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프리카 사회의 현재의 정치경제 상황과 선진국의 정치경제의 역사를 대비함으로서, 국가의 정치경제에 대한 통찰력을 제시한다. 국가는 폭력을 행사하는 기구이며, 통치자의 자의적 폭력을 대의 기구를 통해 제어하는 것이 경제성장의 열쇄라는 점을 강조한다. 물론 국가의 폭력으로부터 사유재산이 보호된다고 해도, 왜 어떤 나라에서는 기술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더 활발한지에 대해서는 답을 주지 않지만, 경제성장에 필요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을 확인시켜준다. 평이하게 이야기를 술술 풀어 쓴 것 같지만 많은 자료를 소화하여 만들어 낸 좋은 에세이이다.

2020. 7. 31. 21:58

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저자는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다. 이 책은 사회가 폭력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전문 학술서이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폭력을 내포한다.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폭력을 제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폭력을 자연상태로 상정하고, 사람들이 강력한 군주에게 통제를 맡김으로서 질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치학의 이론이 국가를 단일체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국가란 단일체아니라 엘리트 간에 연합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경제적 및 정치적 자원에 대하여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함으로서 특권 혹은 이권을 만들어 낸다. '자연상태의 국가'(the natural state)에서 엘리트들은 각자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는 만큼 이 특권을 나누어 가진다. 특권을 나누어 가지는 연합이 바로 질서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 체제에서 폭력의 동원 능력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중세 봉건 시대에 귀족들이 각자 군사력을 보유하며, 왕을 정점으로 한 이들의 연합이 바로 국가였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가 핵심에 있고,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엘리트의 연합을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자연 상태의 국가에서 엘리트는 각자 세력의 규모에 따라서 특권을 나누어 갖는다. 엘리트간 세력 배분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추어 특권의 배분도 바뀌어야 한다. 만일 이 둘이 어긋날 경우 갈등이 폭발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까지 투쟁이 지속된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었을 때에는 지주계층이 통치 엘리트의 근간이었는데, 상업 및 산업자본가가 성장하면서 이들 새로운 엘리트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특권 지위를 요구했을 때, 기존 엘리트와 신흥 엘리트 간에 갈등과 투쟁이 벌어졌다. 질서, 즉 폭력이 없는 상태란, 엘리트간 폭력 행사 능력과 이권간에 균형이 맞아 엘리트 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 체제에 동참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엘리트 간에는 상호간 견제와 감시를 통해 폭력의 행사를 통제한다. 

자연 상태의 국가, 즉 '자원에 대한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하는 질서'(limited acess order)에서는 모든 관계와 거래가 개인적(personal)이다. 각 사람의 능력과 특성과 변덕에 따라 관계와 거래가 좌우된다. 특정인이 죽거나 변화가 있을 경우, 그와 관계된 모든 거래는 무효화되거나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서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다. 경제적 이권은 정치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이며, 정치적인 지위는 경제적 이권을 수반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정치적 지위와 독립된 경제 활동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행위란 이권, 특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를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세개로 구분할 수있다. 가장 취약한 국가에서는 엘리트에게 특권이 배분되는 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모든 엘리트의 특권은 개인적 관계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특정 엘리트가 죽거나 변화가 생기면 엘리트들 사이에 특권의 재조정을 향한 갈등이 발생하므로, 매우 취약한 질서이다. 둘째는 기본적인 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조직이 형성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제도와 조직이란 여전히 특권을 차지하는 개인에 궁극적으로 좌우되므로 불안정하다. 세번째는 성숙한 단계로, 국가의 통치 조직이나 경제활동의 조직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조직에의 접근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에 대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open acess order)는 19세기 중반에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이 질서는 '법에 의한 지배',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제도의 영속성', '누구에게나 개방된 익명적인 거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누구를 아는지, 출신 배경이 어떠한지, 성, 인종, 민족, 종교 등과 상관없이 능력과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직 자원에 접근할 수있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지위와 자원이 배분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법을 만드는 데, 즉 정치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있다. 폭력은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어 관리되며, 폭력을 통제하는 사람은 선거와 의회 등 정치과정을 통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폭력을 통제하는 기구와 그 기구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분리되어 있다. 그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임기가 끝나면 물러난다. 이 질서에서 국가의 역할은 소극적인 폭력의 통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자원에 접근할 수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미친다. 보통 교육, 사회보장제도, 공정한 시장의 관리 등이 그것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자원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하므로 경제성장율이 높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크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있는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진 사람과 조직이 경쟁을 통해 선발되기때문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을 통해 발전할 수있다. 반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는 기존에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개인의 역량에 따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한되며, 위기에 대한 대응과 함께 엘리트들 사이에 세력의 재조정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훨씬 안정되며, 실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지위를 차지한 사람과 조직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이들에 도전하는 것이 상시적인 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야당이, 경제에서는 경쟁 기업이 항시 감시하고 경쟁하므로, 특권이나 이권이 생겨난다고 해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로 어떻게 이전할 수 있을까? 자연 상태의 국가의 엘리트가 '법에 의한 지배'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적 지배나 특정 개인에 좌우되어 조직이 운영되는 것보다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된다. '법에 의한 지배'를 허용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 자신을 구속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들 간에 관계가 안정적일 때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밀고당기기를 하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 서로간에 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있다. 개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는 조직을 통해 정치와 경제적 거래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이견을 조정하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는 상황에서만 엘리트들은 개인과 독립된 조직을 인정한다. 폭력 행사력 즉, 군사력이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지 않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을 때, 엘리트들은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성향을 내려놓는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유롭게 조직을 만들 수있고, 엘리트들과 그들의 조직간에 경쟁에서 패한다고 하여도, 폭력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완전히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에만 엘리트들은 그러한 경쟁에 참여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급격하게 일시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도를 높여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사회가 반드시 이러한 발전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회는 자연상태의 국가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단계 내에서도 제도화의 정도가 다양하고 퇴행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 놓고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자신에게 폭력이 행사될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반대를 할 수 있는 제도와 믿음을 정착시키는 일은 형식적인 선거나 의회의 존재만으로 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상태의 국가에서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질서를 설명하는 예로 중세시대 영국의 토지소유제도를 분석하며, 자연상태의 국가 중에서도 성숙한 제도화의 단계에 도달한 영국이 그렇지 못한 프랑스에 비해 전쟁을 위한 동원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기에 영국이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개방된 질서'가 '접근이 제한된 질서'보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서구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이론과 분석을 제시한다. 기존의 정치학의 이론을 뛰어 넘어 눈을 확 뜨게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여러번 읽으며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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