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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에 해당되는 글 6건
2023. 2. 21. 15:46

William McNeill. 1982.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s, and Society since AD. 1000.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8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기 1,000년대 이래 무력과 전쟁 기술이 세계 역사의 전개에서 차지한 역할을 상세히 서술한다.

농업을 통해 자급자족의 수준을 넘어선 잉여가 생산되면서,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도시 인구와 정치 집단이 출현하였다.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댓가로 보호금을 갈취하는 시스템(protection racket)이 등장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 드리닥칠지 모르는 폭력 집단에 의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당하는 것보다는, 세금이라는 형태의 안정된 갈취를 당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라는 조직된 폭력 집단의 지배를 수용하였다. 폭력집단의 입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위험을 수반하며 불확실한 규모의 수입을 얻는 비조직적 약탈보다는, 조직적 폭력을 기반으로 안정된 지배 체제를 통해 생산자를 착취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적은 위험으로 더 많은 수입을 가능케 하기에 국가체제를 수용하였다. 즉 폭력을 기반으로 한 안정된 지배체제인 국가는 어느 다른 폭력 집단보다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에게 더 많은 소득과 안정을 제공한다.

전 역사를 통틀어 사회 체제를 크게 두 범주, 즉 중앙의 계획과 위계적 명령을 통해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이 운용되는 명령체제(command system)와, 다수의 개인이 참여하여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시장기구에 의해 경제 사회활동이 운용되는 시장체제(market system)로 구분할 수 있다. 공산주의,  중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프랑스의 절대왕정, 독일과 일본의 나찌/군부의 통제 등이 명령체제에 속하며, 자본주의,  개인주의적 시장 경쟁, 영국의 자유주의, 등이 시장체제에 속한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과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명령체제가 지배하는 반면, 시장체제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작은 규모로 전개되고,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독특한 체제이다.

중국은 1500년경까지 생산성이나 군사력에서 서구를 크게 앞섰다. 중국에는 일찌감치 중앙집권 체제가 자리잡았다. 외부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내부에서도 지역간 경쟁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무인 세력은 관료나 문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다. 중국의 유교이념은 인문을 숭상하고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반면, 무력이나 상공업은 천시하였다. 중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무력 집단과 상공인이 연결되지 않았다. 상인은 독자적 권력을 갖지 못해 관료에 의해 재산을 뺏길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이익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번성시킴으로서 부를 늘이기보다는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무인들 역시 상인과 결탁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 권력을 장악하기보다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요컨대 중국의 유교문화권에서는 무기와 전쟁 기술이 발전할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며, 그 결과 무력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서구에서는 1200년경 북이탈리아의 소규모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무기와 전쟁기술을 발전시키는 움직임이 펼쳐졌다. 도시국가는 주위의 폭력집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용병을 고용하였고, 상인이 내는 세금으로 이 비용을 충당하였다.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화약은 서구에서 총포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서구유럽에서 왕이 봉건 제후를 제압하면서 무력 동원의 규모를 키웠으며, 왕들 간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1,400년경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의 무력 각축장은 지중해로부터 대서양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이 무력 수준에서 강국으로 올라섰으며 ,유럽 무대에서는 물론 전세계의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서구 열강들이 유럽 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나날이 향상된 반면, 중국, 아메리카, 중동, 인도 등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무력의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으므로, 전쟁에서 유럽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1,400년대 후반 대양을 통한 서구의 확장이 본격화되었을 때, 비서구 지역 사람들은 이들의 침략에 맞서 참혹하게 패배하였으며, 결국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서구 열강들 사이의 경쟁은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을 제압하고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해전에서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차례로 제압하였다. 영국은 시장체제를 발전시켜 금융가를 통해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던 반면, 스페인과 프랑스는 명령체제의 경직성과 비효율 때문에 전비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높은 비용을 수반했다.

서구에서는 13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부터 무력과 상공업이 서로 연결되어 상승적으로 발전하는 전통이 뿌리내렸다. 무력 집단은 상공인의 부를 이용하여 무력을 확장하였고, 상공인은 무력 집단의 힘을 등에 업고 상공업 활동을 확대하였다. 국가의 무력이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해외에서는 폭력을 동원한 약탈과 상업적 거래의 경계가 모호하였다. 국가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해적 내지 무역상의 활동을 묵인하거나 장려하였다. 서구의 식민지 쟁탈 경쟁은 국가의 무력과 상업적 이익이 결탁하여 전개한 프로젝트였다.

전쟁을 치르려면 거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력집단은 상공인과 어떤 형태로건 연결을 맺지 않고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서구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무기 기술이 경쟁적으로 발전하였으므로, 상공인의 우수한 무기 제조능력은 국가의 무력 경쟁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무력집단과 상공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 모두, 기계적 우수성을 다투는 첨단 무기 개발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었다. 무기 기술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신무기를 개발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더 많은 연구자가 관여해야 하고, 더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은, 20세기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에서  최고조에 달하였다.  소위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가 완벽하게 형성된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군은 군대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평민을 대거 징집하여 전쟁에 투입하였으며, 전투 능력과 업적을 기준으로 군의 위계를 조직하였다. 징집된 평민들은 혁명으로 탄생한 모국의 사활을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함께 전쟁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두어 국민적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나폴레옹이 이끈 전쟁에 헌신적으로 임하였다. 그때까지 유럽의 지배자들은 평민들의 반역을 우려해 자국민보다 외국인 용병을 선호하였으며,  사회의 상층 계급이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군의 지위권을 차지하는 관행을 유지하였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러한 전통적 군대를 전쟁에서 완전히 제압하므로서 새로운 군의 개념을 서유럽에 확산시켰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군의 무기체계와 전쟁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증기기관 덕분에 운송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전쟁의 폭과 규모는, 과거 말과 마차에 의존할 때보다 훨씬 더 넓고 커졌다. 과거에는 전쟁을 치를 때 식량과 군수물자의 조달이 가장 큰 제약요인이었는데, 19세기 증기기관 철도와 20세기초 자동차는 이러한 제약을 완화시켰다. 군의 대규모 조달 물량은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새로운 기술이 생산에 적용될 초기에는 상업적 성공이 불확실한데, 군은 상업적 이해타산을 넘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생산품의 수요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계속된 전쟁은 인구 폭증의 압력으로 초래되는 사회불안을 피하는 효과적 방편으로 작용하였다. 18세기 유럽의 인구 폭증은 기존의 농업 생산성을 넘어서는 규모였는데, 19세기 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수백만의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으며, 잉여 인력의 상당수를 전장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20세기에 벌어진 제1,2차 세계 대전 역시 19세기의 인구 폭증 문제에 대해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거꾸로, 인구 폭증으로 인하여 사회불안 요소가 커지고, 이것이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인과관계를 추리할 수도 있다. 유럽, 특히 스페인, 영국은 자국의 잉여 인구를 식민지에 수출함으로서 인구 폭증의 문제를 해결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도 해외 혹은 시베리아로의 이민을 통해 인구 폭증 문제를 해결하였다. 반면 프랑스는 일찌감치 19세기 초에 출생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인구폭증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전쟁은 기존의 관행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기득권 집단이 기존의 관행을 고집하다가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상대국이 실행하는 새로운 패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전쟁이 빈발하면서 서유럽 국가들 서로간에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보다 효율적인 새로운 관행을 경쟁적으로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효율적인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고집하다가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산업혁명 초기에 기존의 장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였는데, 19세기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소위 '미국식 생산방식(American Production system)'이라 일컬어지던 기계를 이용한 표준화된 대량생산 방식을 무기 생산에 도입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전쟁이후 민간물품의 생산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또한 전국의 농촌 벽지로부터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과거 전통사회의 관습을 버리고 도시적 합리적 행위 규범을 따르게 되었다. 

군과 민간 활동은 서로 영향을 교환하였다. 예컨대, 19세기 이래 서구 유럽에서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대규모의 인원과 물자의 생산과 배치를 담당하는 사람을 민간 대기업의 경영자 중에서 구했다. 대규모 전쟁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인원과 물자를 조달하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합리적인 경영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전후 민간의 대기업 경영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동양과 비교해 유럽에서 무력이 크게 발전한 것은 여러 지역으로 차단된 지형적 원인과 함께, 농경이 아니라 유목을 생업으로 한 것에서도 부분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목은 생명 살상을 일상적으로 하며, 특히 겨울이 다가오면 많은 가축을 일시에 죽이는 관행이 지배하였다. 중국의 논농사와 달리 유목은 좁은 지역에서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으므로, 인구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전쟁이 서구에서 더 자주 벌어졌다. 중국의 논농사는 중앙집권의 권력이 농사에 필수적인 치수를 관리하였으며, 농사꾼은 자신의 땅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중앙의 권력에 순종하였다. 동양의 집단주의적 가치나, 무력과 상공업을 경시하고 권위주의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는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반면 수시로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중앙의 권력에 쉽게 반항하며, 서로간 생존을 위한 무력 투쟁도 불사함으로, 서구에서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강조되고 집단간 무력 경쟁의 릴레이가 전개된 것이다.

저자는 전쟁과 무력 활동을 도외시한 역사 서술은 피상적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시작에서부터 집단적인 무력 행사는 인간 사회의 핵심을 차지한다. 무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경쟁하는지는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며, 전쟁의 승패 위험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세계의 역사와 사회의 전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2023. 1. 22. 13:52

박창식. 2017. 언론의 언어 왜곡, 숨은 의도와 기법. 커뮤니케이션북스. 109쪽.

저자는 한겨레신문사 기자이며, 이 책은 저자가 몸담은 한겨례말글연구소의 세미나에서 전개된 논의를 바탕으로 하여 한국의 언론사들이 정치권력과 관련하여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는지 설명한다.

언어는 말 자체의 의미와 함께 사회에서의 권력관계를 함축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나 기관은 언어 조작과 통제를 통해 권력을 행사하며, 이는 사람들이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릇되게 사고하도록 한다. 보수 언론은 권력의 편에서 언어의 조작과 통제에 가담하며, 진보 언론은 권력의 언어 조작 압력을 거부하려 한다. 근래 한국에서는 정치 권력 못지 않게, 대자본의 힘이 세기 때문에, 언론은 자본가의 눈치를 보며 언어 구사에 몸을 사린다.

언어를 통해 대중의 인식을 통제하는 다양한 방식이 소개된다. 완곡어 사용, 프레임 설정, 의도적인 방향의 은유, 선정적 측면만 선택적으로 부각하기, 등이 권력자의 편에서 흔히 사용된다면, 진보 측면에서는 정치적 올바름, 정치적 사과 등이 사용된다. 그외, 이념적 색채가 담긴 용어, 피동형 문체, 등도 권력자의 편에서 자주 사용한다.

이 책은 저자의 정치부 기자 경력이 곳곳에 잘 뭍어나 있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사례를 사용하며, 읽기 쉽게 쓰였다.

2022. 7. 25. 19:09

James Scott. 2017. Against the Grain: A deep hostory of the early states. Yale University Press. 256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예로하여 국가가 생성된 과정을 설명한다. 국가는 인류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게 되면서 생겨났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란 국민들을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깡패짓(protection racket)과 비슷하다.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해야만 이러한 깡패짓이 가능하다. 수시로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나 화전민 등이나, 곡물을 재배하지 않고 주변에 다양한 자원으로부터 수렵채취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산간지역 혹은 소택지와 같이 외부의 세력이 쉽게 지배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국가가 출현하지 않았다. 역사는 국가의 틀에서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였으므로, 국가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지한 '야만인'(barbarian)으로 비하하고, 자신들을 문명화된 사람,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삶의 질 면에서 보면, 국가의 틀 내에서 사는 사람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야만인의 삶이 훨씬 양호하다.

인류는 신석시 시대 이래 오랫동안 수렵채취의 생활을 이어왔다. 농경생활이 시작된 것은 서기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이다. 이곳은 매년 규칙적으로 강물이 범람하여 비옥한 농경지를 만들었기에, 큰 노력없이 곡물을 파종하고 수확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 중국의 양쯔강 하구, 인도의 인더스강 하구, 북미의 미시시피강 하구, 등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처음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이 특정 시점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채취와 농경을 함께 하면서 생활했다. 수렵채취는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통해 영양을 균형있게 섭취할 수 있으며, 하나의 식량 자원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자원으로 보완할 수 있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버티는 힘이 강하며, 노동 강도가 높지 않으며, 인구밀도가 낮으므로 역병으로 죽을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생존방식이다. 반면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치며 사는 농부의 삶은, 단일 작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덕으로 인한 생존위협에 항시 노출되어 있으며, 집중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며, 전적으로 곡물에 의존한 섭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건강에 해로우며, 사람들 및 사람과 가축의 밀집 거주로 인해 역병이 자주 돌아 쉬 죽는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인간이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인구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요컨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동하며 수렵채취를 하는 사람들의 삶보다 열악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수렵채취를 포기하고 한곳에 정착해 곡물을 재배하는 쪽으로 바꾸었을까? 인류는 한 시점에 수렵채취로부터 전업 농업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렵채취을 하고 또 일부는 농업을 부업으로 하면서 살아갔다. 다만 소수의 특별한 환경의 지역에서만 전업농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메소포타미아, 나일강 하구, 황하강 하구 등이 바로 그런 특별한 지역이다. 그러면 왜 그 소수의 지역에서 전업농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생겼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가지 가능성을 지적한다. 기후와 환경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주변 지역에서 수렵채취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졌거나 아니면, 국가의 폭력이 바로 이들을 그곳에서 그렇게 살도록 가두어 놓았다. 사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국가의 멸망이 빈번했기 때문에, 곡물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수렵채취로 되돌아가고 또 이들이 곡물 농업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하는 식으로, 두 종류의 사람들 간에 경계가 확실하게 그어져 있지는 않았다.

기후가 온화하고 매년 비옥한 농토가 만들어 지는 지역에서 곡물 재배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곡물 재배는 사람들 사이에 부의 편차를 크게 벌리며, 지위의 차이가 큰 사회를 만든다. 농사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이들은 국가의 지배집단이 되어 생산자를 착취하면서 살아간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 먹고사는 범위를 넘어 추가적으로 노동을 투입하여 과잉생산을 하는 이유는, 국가의 지배집단이 그들이 생산한 것의 상당부분을 강압적으로 뺏어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대에 농업 생산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므로, 비생산 인구를 많이 부양할 수 없으며, 낮은 농업 생산성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가 생존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예기치 못한 변화 때문에 농사 작황이 나쁘면 그 희생을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와 지배집단은 노예 혹은 거주의 자유가 없는 농노를 통해, 생산자들을 한곳에 붙박혀 도망치지 못하고 힘든 일을 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고대는 물론 중세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농업 국가의 부의 원천은 땅 못지 않게 노동력에 있다. 국가의 지배자들은 서로 전쟁을 벌여 땅과 노동력을 탈취하였다. 고대 국가에서 노예제는 보편적인데,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노예상들을 통해 노예를 사고 팔았다. 농노와 노예의 삶의 수준은 열악했으므로, 출생율이 낮고 사망율이 높아 인구 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사람들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인간과 가축이 근접해 사는 농업사회에는 역병이 자주 발생하여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곡물을 재배할 환경이 양호하며, 국가의 지배자들의 착취를 피해 도망치기 어려운 평야지역에서만 국가가 출현하였다. 반면 산간이나 소택지나, 전적으로 곡물 재배에 의존하지 않고 수렵채취로 살 수 있는 지역이나, 곡물을 재배한다고 해도 수년에 한번씩 이동하는 화전민에게는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았다. 곡물을 재배하는 평야지역에서도 농작물 작황이 극도로 나쁜 경우, 국가의 권력이 미지지 않는 주변지역으로 도망치는 사람이 많았다. 국가의 권력은 한곳에 붙박이로 곡물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행사된 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상업, 공업, 어업, 임산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왜냐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이동하고 생산과정과 생산물에 대해 외부인이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워, 이들을 착취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배집단은 이들을 항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시아의 농업사회에서 농업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했던 배경에는, 바로 국가의 지배집단이 이들의 활동을 장악하기 힘든 점이 암묵적으로 작용했다.

소수의 곡물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초기의 국가는 취약하여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곳에서 매년 동일한 소수의 곡물을 재배하는 농업 방식은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여 생산성이 높지 않으며 생산량의 진폭이 심하였다. 기본적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생산성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황이 특히 좋지 않은 경우, 세금과 부역으로 착취를 당하고 농민들의 삶이 더 열악해져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해가 갈수록 삶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농민들이 도망치고, 반란이 일어나고, 이웃나라와 전쟁에 패해 파괴되면서 국가는 멸망한다.

국가가 멸망한다고 하여, 그곳에 살던 사람들까지 모두 일시에 죽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배집단의 착취를 피해 주변 지역으로 도망쳐 화전을 일구고 수렵채취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승리한 국가이 지배집단 밑에서 노예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자신의 국가에서 농노로 일하나, 승리한 국가에서 노예로 일하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문화가 유사한 이웃나라의 노예가 되면 조만간 그 나라의 하층 계급의 일원이 된다. 이후 새로이 노예가 유입되면서, 계층의 사다리에서 한단계 상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역사는 국가의 기록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을 문명화된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은 무지한 야만인으로 비하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변의 다양한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농업에 기반한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생산되는 산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둘간에는 상호의존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는 구리, 아연, 등의 광산물, 모피와 가죽, 목재, 기타 산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생산하여 국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곡물과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변방에 위치하며 이들을 이어주는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동력이 좋고 무예에 능하기 때문에 국가 내에 사는 사람들을 수시로 위협하는 존재였다. 중국의 변방에 위치한 흉노족, 위구르족, 만주족, 몽고족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의 힘이 강할 때에는 이들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지만, 국가의 힘이 약할 때에 국가의 영역 밖에 위치한 사람들은 수시로 국가를 침범하고 멸망시키기도 하였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같은 강력한 권력 기구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 내에 지위의 격차가 크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삶이 자유롭고 분방하다. 그러나 변방인들의 삶이 반드시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 또한 그들 사이에 전쟁을 벌여 노예를 포획하여 국가에 팔며, 그들 자신이 국가의 용병으로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서기 1500년경까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구에도 상당한 규모였다. 이후 국가의 권력이 커지면서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쪼그라져, 결국 서구에서는 사라졌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적 연구의 결과이며, 동시에 저자의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는 글이다. 저자는 국가를 지배집단이 폭력을 독점하며 생산자를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도구로 본다. 전형적인 막시스트의 관점이다. 무정부주를 신봉하는 저자의 설명이, 한편으로는 맞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다. 세계는 국가를 통해 거대한 집단적 노력을 투입하여 기술발전, 풍요, 평화를 거두었다, 최소한 서구 선진산업사회에서는. 국가가 없다면 이러한 위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힘이 약한 나라에서는 극심한 빈곤이 횡횡하며, 빈부의 차이가 크며, 폭력이 난무하며,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일찍 죽는다. 물론 서구의 국가에서도 집단 노력의 산물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고 있지는 않다. 계층 차이는 매우 크며, 국가는 지배집단의 이익을 중하층의 이익보다 더 보호한다. 여하간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2022. 7. 4. 21:11

Frans De Waal. 2005. Our Inner Ape: A leading primatologist explains why we are who we are. Riverhead Books. 250 pages.

저자는 유인원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 책은 유인원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을 인간의 특성과 비교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침팬지와 보노보인데, 둘은 서로 매우 다른 특성을 보인다. 침팬지는 엄격한 위계사회를 이루며, 힘이 세고 폭력적이며, 수컷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반면 보노보는 위계가 엄격하지 않으며, 폭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고 평화적이며,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침팬지는 하위자가 상위자와 마주칠 때 반드시 존경을 표시해야 하는데, 상위자는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위자들을 순회하면서 매일 위계를 확인시킨다.  침팬지들은 엄격한 위계 사회에서 살아가느라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반면, 보노보는 스트레스 수준이 낮은 삶을 살기에 침팬지보다 오래 산다. 침팬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를 쟁취하는 사회이기에 침팬지 수컷들 사이에 지위 다툼이 빈번하며 지위변동이 심하다. 반면, 보노보는 엄마의 지위에 따라 자식의 지위가 좌우되기에 보노보 수컷들 사이에 지위 다툼이 적고 지위 변동이 심하지 않다.

침팬지들은 연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 최강자에 대항해 다음 강자들은 서로 연대하여 최강자의 권력을 견제한다. 가장 강한 놈이 홀로 힘을 행사하면서 오랫동안 지배자로 군림하기는 어렵다. 연대를 통해 뒷받침된 권력이 아니면, 다른 수컷들이 서로 연대하여 지배자를 힘으로 누르기 때문이다. 최고 지위에 오른 침팬지는 많은 암컷과 교미하면서 자신의 후손을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는 수년이상 그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다른 침팬지들이 호시탐탐 도전하지 때문이다. 권력의 교체기에는 침팬지 사회에 긴장이 흐르며, 새로운 권력자가 완전히 평정하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긴장이 사라진다. 침팬지 암컷은 침팬지 수컷과 달리 서로 힘을 합하여 수컷의 폭력에 대항한다. 수컷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가장 힘센자가 최고의 지위에 오르나, 암컷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연장자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암컷들 사이에서는 수컷의 경우와 달리 권력의 행사가 두드러지지 않다.

보노보는 관계를 원활히 하는 수단으로 섹스를 활용한다. 수컷과 수컷간, 암컷과 수컷간, 암컷과 암컷간 성적 자극을 교환하면서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한다. 화해의 수단으로, 긴장을 풀 목적으로, 화합의 목적에서 서로 성적 자극활동을 자주 한다. 성별 구분 없이, 연령의 차이에 관계 없이 사회활동의 일부로 성적 교환을 한다. 다만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간, 형제간에는 상호간 성적 자극활동을 하지 않는다. 침팬지 사회에서 수컷과 암컷 사이의 섹스는 교환관계이다. 암컷은 수컷에게 섹스를 허락하는 대신 수컷으로부터 물질적 보상을 받는다.

침팬지와 보노보 모두 암컷과 수컷이 여러 상대와 섹스 하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세계에서 보이는, 수컷이 새로이 암컷을 차지하면 이전에 태어난 아이를 모두 죽이는 영아살해 관행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 세계에서 의붓아버지가 의붓 아들을 학대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은 일부일처 제도를 통해 이러한 영아살해 관행를 예방할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자신의 영역을 집단적으로 지키고, 이웃한 타집단을 공격하여 영토를 빼앗는 행위를 일삼는다. 타집단의 구성원을 비하하고 적대시하는 '부족주의'는 침팬지와 인간 모두에게 공통이다. 침팬지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자주 발생하지만, 집단 전체의 안정을 위해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제어하고 타협하는 관행이 잘 발달되어 있다. 상위의 암컷이 수컷들 사이에 갈등을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침팬지들에게 상호주의(reciprocity)의 개념은 잘 각인되어 있다. 침팬지들도 서로 공감(empathy)한다. 상호주의와 공감 능력은 도덕적 감정의 바탕이다. 침팬지와 인간이 상대에게 친절을 배푸는 것은 상대로부터 나중에 보상을 받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및 막연한 미래의 상황에 상대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려는 의도로부터 비롯되었다. 상대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상대가 어떤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등 '상대의 마음을 읽는' (theory of mind) 능력을 침팬지는 인간 못지 않게 가지고 있다. 상대의 생각을 짐작하고, 상대의 체험을 간접적으로 자신도 함께 하는 능력은 집단 생활에서 필수적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침팬지와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놀랄만큼 공유한다. 침팬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정성(fairness)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공정하지 않은 분배에는 분노하고 참여를 거부한다.

인간은 폭력적인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보노보를 보면 평화를 사랑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폭력적이거나 화합을 추구한다.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은 포용하고 서로 화합하는 반면, 타집단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하하며 잔인한 폭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은 양극 모두를 자신의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

저자는 수십년 동안 네덜란드의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관찰하며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구체적인 사례를 적절히 언급하면서 유려하게 글을 쓰며, 인간에 대한 통찰력 또한 뛰어나다. 인간에게는 가식으로 가려져 있는 것을 침팬지는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침팬지 연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깊이한다고 주장한다. 두번 읽을 만한 흥미로운 책이다.

2021. 9. 20. 10:33

Frans de Waal. 2007(1982). 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215 pages.

저자는 동물행동학자(ethologist)이며, 이 책은 네덜란드의 침팬지 동물원에서 3년간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를 서술한 것이다. 저자는 침팬지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전개되는 사회 활동을 권력 갈등이라는 주제에 촛점을 맞추어 서술한다. 침팬지들 사이에 벌어지는 행위를 연구자는 전지적 관점에서 관찰하고 서술한다. 침팬지들 사이의 권력 추구 행위는 인간의 가식이 벗겨진 상태에서 전개됨으로 훨씬 적나라하게 벌어진다.

이야기는 침팬지 집단의 최고 연장자 수컷인 예로인(Yeroen)이 위계서열의 정상을 차지한 상태에서부터 시작하여, 부상하는 도전자인 류이트(Luit)에게 권좌를 빼앗긴다.  그러나 류이트의 권력은 몇 달 지나지 않아 혈기 왕성한 젊은 도전자인 니키(Nikki)에게 권좌를 내주게 된다. 니키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예로인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으므로, 그의 권력은 불안정하다. 예로인은 니키와 류이트 간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이 니키보다 명예와 섹스를 더 많이 차지하는 노회한 정치를 구사한다. 침팬지들은 평소에 서로 마주칠 때마다 지위 위계에 따라 굴종과 과시를 교환하는 의례를 수행하는데, 권력 관계에 변화의 조짐은 이러한 굴종의 의례의 변화에서부터 서서히 나타난다. 예로인의 권력이 류이트에게 넘어가서, 굴종 인사를 하는 측이 류이트로부터 예로인으로 완전히 바뀌는데 거의 반년이 소요되었다. 

침팬지 집단은 성인 수컷 4명, 성인 암컷 10여명, 청소년과 아이들 여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지위는 연령, 권력의 연합 관계(coalition), 물리적인 힘, 지혜와 성격, 등에 의해 결정된다. 힘이 가장 센 침팬지가 반드시 위계 서열에 가장 위에 서는 것은 아니다. 수컷은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는 성향을 보이는 반면, 암컷은 집단의 화목을 추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아이의 이익을 우선하는 행동을 한다. 예컨대 권좌를 차지한 수컷은 자신의 개인적 선호나 사소한 이익을 넘어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는 반면, 암컷은 개인적 선호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암컷들 사이에도 지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컷들 만큼 지위 추구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며, 지위 갈등의 빈도가 훨씬 덜하다.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물리적 힘과 함께 집단의 다른 구성원의 지지에 의존한다. 암컷들은 특정 수컷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지지 세력이다. 권력의 찬탈을 도모하는 수컷은, 암컷들을 더 많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공을 많이 들인다. 권좌에 있는 수컷은 항시 다수의 암컷의 지지를 유지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예로인은 니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존재인데, 젊고 거칠어서 암컷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니키보다 암컷들로 부터 더 많은 지지를 획득한다. 

약자들 사이에 연합을 통해 강자의 권력을 견제하는 행위는 항시 관찰된다. 예로인이 권좌에 있을 때, 류이트와 니키가 연합했으며, 류이트가 권좌를 차지했을 때 예로인이 니키와 연합했으며, 니키가 권좌에 있을 때 예로인은 공식적으로는 니키와 연합하고 때때로는 류이트와 연합하는 방식으로 양 쪽을 번갈아 이용함으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로 했다. 또한 니키와 류이트는 예로인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섹스를 할 때만은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서, 예로인을 견제하였다.   

섹스의 권리는 권력 위계와 동전의 양면이다. 수컷 사이에 권력 위계에 따라 섹스의 빈도가 비례적으로 분포한다. 니키보다 예로인이 섹스를 많이 한다는 것은, 공식적 지위와는 별개로 실질적 영향력에서 예로인이 니키를 앞섬을 의미한다. 아이러니는, 예로인이 세명의 수컷 중 섹스빈도가 가장 높지만 그는 성불구이므로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로인을 포함한 침팬지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므로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수컷에게 섹스를 허용할 것인가 여부는 암컷이 결정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체구가 작고 약하지만 수컷이 암컷을 섹스하도록 강제하지는 않는다. 암컷의 의지를 거슬러 수컷이 강제로 섹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수컷은 그들 사이에 권력 갈등 때문에 암컷의 감정에 거슬리는 행위를 꺼려한다. 수컷이 암컷과 아이들을 심하게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수컷은 그들 사이에서와 달리 암컷을 심하게 공격하지 않으며, 공격하더라도 송곳니가 아닌 앞니만을 사용하므로 상처가 깊지 않다.

침팬지들 사이에는 행위 규범이 존재한다. 수컷은 암컷이나 아이를 괴롭히지 않는다. 수컷들 사이의 싸움에서도 다리나 팔을 공격하는 정도이지, 머리나 어깨와 같이 치명적 해를 입히는 공격은 하지 않는다. 침팬지들은 행위의 결과를 예상하여 전략을 짜고, 자신의 의도를 감추는 기만 행위를 구사하는데 능하다. 평소에 도움을 주고받는 계산적 행위를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한 뒤, 필요할 때에 도움을 요청한다. 침팬지들은 수컷은 물론 암컷도 개개인의 성격에 차이가 크다. 섹스를 거부하고 동료 암컷보다 수컷과 주로 어울리는 수컷같은 암컷이 있는가 하면, 영향력이 크고 지혜를 발휘하는 노련한 암컷이 있다. 일생동안 한결같은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유대가 있는가 하면, 상황에 따라 수시로 편을 바꾸는 약한 유대도 있으며, 외톨이 암컷도 있다. 수컷들 사이의 관계는 항시 긴장이 바닥에 깔려 있다. 언제건 수컷들 사이에 연합이 바뀌면서 권력의 위계가 바뀔 위험이 있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책이 포괄하는 관찰 기간 이후에 침팬지 집단에 새로운 권력 교체가 발생했다고 간단히 언급한다. 그 동안 거의 무시당했던 젊은 수컷인 댄디가 예로인의 도움으로 니키로부터 권좌를 찬탈한 것이다. 그 결과의 충격으로 니키는 물에 뛰어 들었고 심장마비로 죽었다. 예로인으로부터 권좌를 찬탈했던 류이트는 니키와 예로인의 공격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었다. 예로인은 노회한 정치가 답게, 시일이 흐른뒤 늙어서 자연사했다.

저자는 침팬지의 사회활동을 서술하면서, 인간들 사이의 행위와 대비하여 흥미롭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한다. 침팬지들의 사회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저자의 촛점이 뚜렷한 서술 능력이 설득력을 높인다. 저자는 이 책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으며, 심지어 미국의 국회의원들 사이에 필독서로 추천되었다. 책이 처음 나온지 40년이나 되었는데, 수십 판을 거듭하면서 유명세를 지속하고 있다.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21. 7. 30. 11:18

Jeffrey Winters. 2011. Oligarch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5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부와 권력의 관계를 규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제시하고, 과거와 현재의 여러 사례를 통해 그의 이론을 검증한다. 권력의 궁극적 원천은 부(wealth)이며, 권력의 핵심은 부를 지키는 것이다. 소득과 재산 분포의 상위로 갈 수록 부의 집중도는 비약적으로 높아지는데, 전인구의 1%의 100분의 1도 안되는 소수의 부자들에게 자신의 부를 지키는 문제는 분포 상에서 그들 아래에 있는 일반 부자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거대 부자들에게 부를 둘러싼 갈등은 잠재적 및 현재적 폭력을 수반한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이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이는 자신들의 부를 지키는데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부와 권력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네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거부들 사이에 폭력적 투쟁이 지배하는 유형이다. 거부들에게 자신의 부에 가장 큰 위협은 다른 거부들이다. 이들은 사적인 폭력 수단을 보유하면서, 자신의 부를 지키고 다른 거부들의 부를 빼았는다. 이는 역사상 가장 흔히 존재하는 권력의 유형이다. 아프리카의 추장에서부터, 고대사회의 군벌, 중세시대의 영주,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간 지역의 파벌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사례를 찾을 수있다. 거부들은 자신의 부를 사용하여 폭력 수단을 고용한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보통사람을 착취하는 데 폭력을 사용함은 물론, 다른 거부들의 위협을 물리치기위해 개인적으로 보유하는 폭력 수단은 필수이다. 돈이 없으면 자신을 위해 일하는 폭력 수단을 고용할 수없으며, 폭력이 없으면 생산자를 착취해 부를 축적할 수 없다. 부와, 폭력과, 권력은 등치의 관계이다.  

두번째 유형은 거부들이 집단적으로 권력을 공유하는 유형이다. 거부들은 각자 개인 소유의 폭력 수단을 보유하지만, 공동으로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서 질서를 유지한다. 이탈리아의 마피아 사이에 결성된 협의체,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정부, 중세 이탈리아의 베니스와 시에나와 같은 도시 국가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유형에서는 공동 정부에 참여하는 특정한 거부가 위임된 권력의 정도를 넘어서 다른 거부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올라설 위험성이 항시 존재한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위임된 권력의 과다를 제한하는 다양한 장치를 만들어 놓고, 특정 거부가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상호견제한다.  그럼에도 로마에서 시저가 공동 정부의 권력을 독점하여 황제가 되었다. 거부들 사이에 공동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협약이 깨어지면, 폭력적 투쟁의 유형으로 쉽게 회귀한다.

세번째 유형은 특정한 한명의 거부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면서 나머지 거부들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유형이다. 절대 권력자는 본인 자신이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국가 권력을 동원하여  거부들 사이에 갈등을 조정하고, 보통사람들에 대한 그들의 착취를 관리한다. 거부들은 절대 권력자가 자신의 부를 보호해주는 대신에 부분적으로 개인 소유의 폭력 수단을 포기한다. 절대 권력자는 국가의 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부를 늘리는 한편으로, 국가의 권력에 따른 이권을 다른 거부들에게 적절히 나누어주면서 개인적으로 그들의 충성을 관리한다. 외형적으로는 법에 의한 지배의 형태를 갖추고 있으나, 부를 축적하는 영역에서는 법이 아니라 절대 권력자의 개인적 재량이 기본 원칙이다. 절대 권력자와의 친소관계 및 절대 권력자의 개인적 선호에 맞추어 모든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진다. 보통사람들은 법에 의한 지배를 받으나, 거부들은 법의 범위 밖에 있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의 치하에서 절대권력을 중앙에 완전히 집중시켰으며, 일반 거부들은 절대권력자에 대항할 수있는 개인적 폭력 수단을 소유하지 않고 권력자의 재량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반면 필리핀은 독재자 마르코스의 치하에서 일반 거부들이 개인적 폭력 수단을 부분적으로 소유하면서 독재자를 비판하고 위협하는 존재였다.

네번째 유형은 법에 의한 지배가 뿌리내린 입헌 민주주의 정치이다. 거부들은 법에 의해 부를 완전하게 보호받는 대신에 사적인 권력을 완전히 포기한다. 거부들은 다른 거부들로부터 자신의 부를 강압적으로 빼앗길 위험은 사라졌으나, 대신 일반 민중으로부터 부를 나누어 달라는 거센 요구나 국가로부터 고율의 세금을 통해 부를 빼앗길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거부들은 자신의 부를 보호하는 일을 전적으로 하는 전문가를 많이 고용하여 법의 구멍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돈을 사용하여 정치인을 매수함으로서 법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외곡시킨다. 미국의 세법이 매우 복잡하여 빠져나갈 구멍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들의 영향 때문이다. 그 결과 미국의 거부들의 실효 세율은 일반 노동자의 세율보다 훨씬 낮으며, 근래에는 상속세를 완전히 폐기하였다.

민주주의는 보통사람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했지만, 부의 집중을 제어하지는 못했다. 거부들은 돈의 힘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선거에서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후보의 범위와 정강을 제한함으로서 국민의 선택을 무력화시킨다. 분배의 평등을 요구하는 보통사람들의 시민 운동은 거부들이 돈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적으로 일하는 전문가나 정치인들에 필적할 수 없다. 일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활동을 소홀히 하면서 오랫동안 공동의 이념적 대의를 위해 발벗고 뛰기 힘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시민의 정치 참여를 높이기는 했지만, 거부들의 부를 지키는 노력을 제한하는 데에는 무력할 수 밖에 없다.

싱가포르는 경제활동에 관한 한 법에 의한 지배를 확립했지만, 정치적 자유의 영역에서는 독재를 유지하는 특이한 예이다. 싱가포르의 부의 집중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심하며, 거부의 부는 법에 의해 잘 보호되고 있다. 그러나 법에 의한 지배라는 원칙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적 참여가 부의 권력 독점과는 별개의 영역이라는 또 다른 증거이다. 

이 책은 새로운 권력 이론을 제시하는 학술서이다. 과거 엘리트 이론이 부의 소유에 관계 없이 소수에게 정치적 권력의 집중에 촛점을 맞추었는데, 그는 엘리트 이론은 권력의 원천의 중요성에 관해 소홀했다고 비판한다. 권력의 핵심은 부의 소유와 부를 지키는 것을 둘러싼 갈등이기 때문에, 이것을 간과한다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부가 수반되지 않은 권력은 직위에서 벗어나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지므로, 부의 소유를 둘러싼 권력과는 관심이나 행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한 권력의 추동력은 물리적 부에 있다. 소득과 재산 분포 상위 0.01%에 속하는 사람들이 과거나 현재나 정치 권력의 핵심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나머지 99%의 사람들은 거부에게 착취되거나 혹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앞잡이에 불과하다. 

거부의 권력도 변화한다. 사회적, 경제적 위기로 거부의 부가 타격을 받으며, 세대를 거치면서 부의 부침이 있다. 거부의 구성과 권력이 변화한다는 것은 이러한 구조에 때때로 균열이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위기가 지나고 나면 일부 거부들의 부는 소실되고 새로운 부가 축적되면서 기존의 거부 집단에 순환이 일어난다. 일반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만 거부들은 법 위에 있고, 법을 집행하는 기관은 이들과 타협한다. 권력의 핵심을 물리적 부로 보는 그의 이론은 역사와 정치를 보는 신선한 아이디어이다. 거부의 부를 위협하는 위기를 단순히 외생변수로만 치부하고, 근대 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부정하는 물질결정론 materialism 이 반드시 옳은 것 같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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