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c Hobsbawm. 1962. The Age of Revolution: 1789-1848. Vintage. 308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789년 프랑스 혁명에서 1848년 유럽 혁명까지 약 50년간을 대상으로, 유럽 세계를 지배하던 구체제가 무너지고 근대 체제가 들어서는 과정을 서술한다.
구체제의 특징을 요약하자면, 왕,귀족,사제가 지배층을 형성하며 인구의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며 봉건제의 구속에 묶여 있다. 종교의 영향이 일상 전반을 지배한다. 봉건제 장원을 중심으로한 자급자족 경제이며, 상공업과 도시의 발달은 미약하다. 이러한 구체제는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심각한 균열을 보인다. 16세기 대항해시대 이래 상업이 발달하고, 18세기말 산업혁명이 불붙으면서 상공인의 부와 영향력이 커지고, 농민들이 농촌을 이탈하여 도시가 발달하고,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가 본격적으로 확대되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이러한 사회경제적 변화의 산물로, 부르쥬아라 칭하는 상공인 계층이 구체제를 뒤집어 엎은 사건이다. 직접적 원인으로는, 1756년의 7년 전쟁 결과 재정파탄에 처하고, 조세징수인의 가혹한 수탈과 흉작이 겹치면서, 농민 폭동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배경으로 하여, 부르쥬아가 중심이 된 의회에서 왕,귀족,사제의 권한을 제한하는 결정을 내렸으며, 입헌군주국을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프랑스를 둘러싼 주변국들이 프랑스를 공격하여 구체제를 복구하려 하고, 왕당파와 개혁파 사이에 내전이 격화되면서, 혁명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1792년 혁명 주도세력은 반대자를 엄격히 처벌하는 공포정치에 들어가고, 왕을 단두대에서 처벌하고 공화정을 수립한다. 나폴레옹 장군은 프랑스를 위협하는 주변 국가를 차례로 격퇴하고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하면서 영웅으로 숭앙되고, 결국 1799년 공화정을 버리고 황제에 등극한다. 나폴레옹 군대는 유럽 대륙을 거의 석권했으나,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하여 크게 패하고, 주변국가들에 의해 폐위되었다. 이들은 1814년 외국에 도피했던 왕을 다시 세웠으며, 1815년 귀양지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이 최종적으로 쫒겨남으로서 프랑스 혁명은 막을 내린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왕권신수설에 바탕을 둔 절대 왕정 monarchy 은 유럽 역사에서 사실상 막을 내린다. 나폴레옹이 점령한 지역 곳곳에서 공화정이 시도되었으며, 왕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전통적 믿음 대신,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특히 프랑스 혁명 정부가 외세의 위협에 대항하여 일반 민중으로부터 병사를 모집하여, 이들이 나라를 지키는 전쟁을 치르면서 굳어졌다. 나폴레옹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프랑스군은 애국심에 가득찬 민중의 군대였던 반면, 다른 나라의 군대는 귀족과 용병으로 이루어졌서 열심히 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왕과 귀족들은 일반 민중을 무장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나폴레옹은 업적에 따른 보상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한 반면, 귀족과 용병으로 이루어진 전통 군대는 열심히 싸울 동기가 약했다.
1814년 비엔나 회의 Congress of Vienna 를 계기로 나폴레옹이 점령한 지역에 국경이 새로 그어지고, 외면적으로는 구체제가 각 지역에 다시 돌아왔다. 그러나 일반 민중은 구체제를 더이상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1830년과 1848년에 유럽 전 지역에서 구체제에 저항하고 공화정을 추구하는 폭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폭동들은 결국 진압되었으나, 이후 구체제로 다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왕과 지배층의 권리를 제한하는 입헌 군주정으로 변화하고, 봉건 질서의 불합리한 구속을 폐지하고, 중산층의 권리를 확대하는 개혁이 속속 이루어졌다.
프랑스 혁명은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 nationalism을 고취시켰다. 구체제에서 왕과 귀족은 일반 민중과 유리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군이 진출하여 왕의 권위를 무너뜨리면서, 각 지역에서는 언어와 종교를 중심으로 '민족' nation 이라는 정체성이 뚜렸해지고, 민족 국가를 세우려는 시도가 중산층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프랑스 혁명군을 본따 유럽 전지역에서 지역의 일반 민중을 징집하여 민족 군대를 만드는 제도가 도입되면서, 민족 국가의 개념은 공고해졌다.
영국은 유럽을 뒤흔든 20년간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유일한 지역이다. 나폴레옹군이 영국 해군에 일찌감치 패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비교하여 프랑스는 중산층의 세력이 약했으며, 농민을 도시 노동자로 바꾸는 과정이 프랑스 혁명 때문에 더디게 전개되었으며, 7년 전쟁을 계기로 식민지 쟁탈전에서 프랑스는 영국에 패하여 많은 식민지를 잃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19세기에 들어 프랑스는 영국과 달리 산업혁명이 빠르게 전개되지 못했다. 반면 영국은 19세기에 전세계를 식민지로 호령하고, 산업혁명에서 유럽 대륙 국가보다 크게 앞서면서, 엄청난 부와 군사력을 호령하는 제국이 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은 정치 군사 영역에서 주로 전개되었지만, 사회구조, 예술, 종교, 과학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예술 분야에서는, 18세기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한 고전주의에 더하여, 프랑스 혁명 시기에 낭만주의가 출현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기존의 권위나 합리성에 대항하여, 인간의 감정과 자유로운 표현을 중시하는 낭만주의는, 전통의 구속을 벗어버리는 혁명 정신을 반영한다. 프랑스 혁명은 기독교의 영향이 약화되던 18세기 계몽주의의 시대흐름을 가속화시켰다. 기독교 교회는 구체제를 뒷받침하는 세력이었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군은 교회의 세력을 허물어 뜨리는 역할을 하였다.
요약 하자면,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주권의 새로운 체제가 성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힘은 19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서,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와 기술 발달, 입헌군주제와 남성 모두에게 투표권의 확대로 귀결된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을 중심으로 근대가 출현하는 과정을 분석한 고전이다. 역사책이라고는 하지만, 역사적 사건 서술이 거의 없고, 사회과학적 원인과 결과를 분석적으로 논의하기 때문에, 역사 사건에 대한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한다. 계급 갈등을 중심으로 사회변화를 파악하는 사회학적 접근을 한다. 공산주의자 답게, 구체제, 자본주의, 부르쥬아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노동자 농민에 대한 긍정적인 편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중부정과 삽입구가 많고, 생각의 전개에 따라 문장을 계속 확장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읽기가 매우 힘들다. 그럼에도 역사의 흐름에 대해 통찰력을 주는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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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Tignor, et.al. 2011. Worlds Together, Worlds Apart. Vol 2. From 1000 CE to the Present. 3rd ed. W.W. Norton. 481 pages.
이 책은 미국 대학의 세계사 교과서이다. 이 책은 다른 세계사 서술과 달리 유럽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서구 유럽은 물론, 이슬람, 인도, 아시아, 중남미, 등을 고른 비중으로 다룬다. 서구의 역사 전개를 자세히 알기 어려운 반면, 동시대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지역과 문명권 사이에 어떤 상호 작용과 교류가 있었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매 찹터에서 여성과 소수집단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루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미국에서 쟁점이 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ectness 원칙을 잘 따른 책이다. 세계사의 전개에서 이슬람의 역할을 크게 보며, 중국과 함께 일본을 비중있게 다룬 점이 눈에 띤다. 한국 전쟁을 제외하면, 한국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세계의 전개를 균형있게 볼 수 있도록 하며, 세계 전지역의 다양한 역사들을 망라식으로 지루하게 서술하지 않는 점을 살만하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이 책만 읽어서는 서구가 이끈 근대의 탄생과 전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기존에 서구 중심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어야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세계적 맥락에서 근대의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산업 혁명, 등 근대를 만든 주요 계기를, 불과 한두페이지로 기술하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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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저자는 중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기존 역사학계의 유럽중심주의를 배격한다. 1800년대초 유럽이 산업혁명에 진입할 때까지 중국과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했다. 기술 수준, 생산성, 산업과 교역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인도는 유럽을 능가했다. 그당시 유럽은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낙후한 지역이었다. 유럽이 1500년대에 대항해의 시대를 열게 된 계기는 그당시 선진 지역인 중국에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헝가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간 교역이 활발했는데, 14세기에 중동 지역에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통로가 막혀버려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졌다. 유럽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중국의 선진 문물과 교역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첨단을 달리던 나라로 유럽으로 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중국은 유럽 나라들과 달리 바다를 통한 외부와 교역이나 정복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외부와의 관계는 내륙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제한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은을 확보하였다. 이는 중국이 명나라 시대에 화폐제도를 지폐에서 은으로 바꾼 것과 맞물려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은 유럽을 거쳐 대량으로 중국에 흘러들어갔다. 유럽은 중국에 은을 지불하고 비단, 도자기, 차 등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은의 유입이 줄어든 반면, 유럽인의 중국 문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생산품 중 중국에 수출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여 거둔 돈으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아편 무역은 중국의 반발에 부딛쳤으며, 결국 1840-50년대에 두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은 중국을 굴복시켰다.
유럽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럽 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기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차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노선을 밟았다. 유럽에 정복된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은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천연자원과 원자료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였다. 비유럽 지역의 식민지화는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부흥하게 만들고, 식민지의 기존 산업을 몰락시켜 가난하게 만드는 양극화의 길을 열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영국 중부지방에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인접해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 덕분에 수증기의 힘을 이용해 석탄을 채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 건설, 섬유 산업의 기계화로 이어졌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환경 조건의 한계에 가로막혀 경제 발전과 인구 성장이 제한되었는데, 산업 혁명은 이러한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인구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도의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소비하였는데,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대신 면화 원재료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가공하여 국내 소비와 수출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과거에 융성하던 인도의 면화 산업을 몰락시켰다.
1800년대초까지 유럽을 앞서있던 중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 뒤쳐지면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와 이를 뛰어 넘어 성장하는 사회간의 간격은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에 개방적인 자본주의로 전환하여 본격적으로 경제발전에 착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구와의 격차를 좁혀왔다. 인도와 기타 개발도상국들 역시 20세기 후반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하고 산업화하면서 서구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저자는 유럽이 중국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한 것이 유럽 문화의 내재적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근접해 매장되 있는 것, 유럽 대륙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군사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유럽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우월한 군사기술을 활용하여 전세계에 식민지를 정복하게 된 것, 등이 산업혁명과 이후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인데, 이들은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유럽이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보다 특별히 더 합리적이라거나, 유럽이 중국보다 과학기술이 더 우수하거나, 상공업이 더 활발한 문화였던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우수한 과학 기술 덕택에 스팀 엔진을 개발하고 섬유 산업의 기계화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의 학자이면서 중국과 아시아의 편에서 세계 역사의 전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 서구의 발전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이 맞을 것이다. 세상의 일은 많은 부분 우연적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재적인 우수함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원인을 거술러 올라가면 자연 조건의 차이나 우연한 상황의 조합이 만들어 낸 것이다.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근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인종주의를 용인하지 않는한 모든 인간사는 우연한 외부 환경과 인간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서구가 중국과 아시아보다 앞선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여하하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경로 의존적(path-dependent)이기 때문에, 일단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게 되면 그 이후의 길이 달라진다. 물론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이 미국을 앞섰지만, 두차례에 걸쳐 유럽인들이 그들끼리 벌인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되면서, 미국이 유럽을 앞서는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지게 됬듯이, 미국의 제도적 비효율과 내부 갈등 때문에 국력이 약해지는 대신, 중국이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미국을 따라잡고 서구를 다시 앞서게 되는 역사의 경로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일인당 소득은 1만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6만불에 달하므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해도 먼 미래의 일이다. 중국의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발전의 속도가 떨어지고 내부 갈등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이 책은 대학교의 교재로 집필된 듯하다. 세계 역사 전반을 빠른 속도로 훑으면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독특한 시각이 눈에 띠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치밀한 증거를 인용한 논의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개별 지역이나 국가에 촛점을 두기보다 지구 전체적으로 근대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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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ter Scheidel.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27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로 역사학계의 핵심 화두인, "서구는 왜 중국보다 앞서게 되었는가"에 대해 인과론적인 답을 제시한다. 서구가 중국을 앞서게 된 사실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발견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사후적 설명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과학적 비교 연구 방법을 차용한다. 서구가 중국과 다른 길을 가는데 어떤 요인이 핵심이었는지 찾기 위해, 만일 특정 요인의 값이 실재와 달랐다면, 다시 말하면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일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본다. 한편으로 추론의 방법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례를 비교함으로서 그 요인의 인과적 중요성을 평가한다. 기본적으로는 유럽과 중국을 비교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비교의 목적으로 중동과 남아시아의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서구에서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다른 제국이 다시는 들어서지 못한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연이어 지배하였는데, 바로 이 점이 서구와 중국의 역사를 다르게 만든 핵심 요인이다. 강력한 중앙 권력이 지배하는 제국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안정과 질서를 추구한다. 제국에서는 기존 체제와 기득이권에 도전하는 파괴적 발전(creative destruction)이 전개되기 어렵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 서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지고, 각 국가 내에서도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다원적 체제가 들어섰다. 이러한 다원적 체제에서는 국가와 세력들이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가운데, 실력과 효율을 중시하고, 서로를 모방하고 개량하는 발전의 동력이 계속 작동하였다.
로마 제국이 서기 450년 경에 멸망한 후 동로마에는 비잔틴 제국이 들어선 반면, 서로마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주권국가로 나누어졌다. 이 나라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합종연횡하면서, 한 나라가 전체를 장악하는 제국이 다시 만들어지지 못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중세 봉건 시대에는 각 나라 내에서 왕과 영주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며, 교회와 세속 정치가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중세 후반에 들어 도시가 세력을 키웠고, 왕과 귀족에 대항해 상공인들이 세력을 키웠다. 서유럽은 왕, 귀족, 성직자, 상공인 사이에 권력이 분점되고,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나누어지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교가 나누어지는 등, 다원적 경쟁체제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간, 세력과 세력간 전쟁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경쟁은 발전을 만들어 낸 동력이 되었다. 여러 국가들이 서로 경쟁했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반대 세력은 다른 국가로 피신하여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다. 다른 경쟁 국가로 넘어가는 선택지가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국가의 지배자도 반대 세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전지역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제국이 계속 지배했기 때문에, 유럽의 다원주의 체제가 만든 발전의 동력을 갖지 못했다. 지배 세력을 위협할 새로운 세력이나 아이디어는 초기에 싹을 잘라버리는 정치 문화가 자리잡았다. 유교 사상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체계를 정당화하고 사람들을 이에 순응하도록 설득한다. 상공업은 기존의 위계 체계를 넘어서 부와 세력을 만들어낼 위험성을 지니므로 일찍부터 억압하였다. 반면 농업은 사람들이 토지에 붙박여 있고, 혁신적인 발전이 일어날 수 없어서 기존의 지배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농업을 우대하였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는 서구와 같이 다양한 세력간에 경쟁체제가 조성되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제국이 계속 지배하면서 발전을 질식시켰다.
왜 유럽은 로마의 멸망 이후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진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연 조건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다. 두가지 차이를 지적한다. 첫째, 서유럽에서는 산, 강, 바다가 장애물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독립적 정치체제가 들어설 수 있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황허와 양자강 사이에 대평원이 단일 정치체제를 가능케하였다. 둘째,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차이가 있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카르파티아나 알프스와 같은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몽고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 인접해 있다. 대평원의 기마민족은 유목을 생계로 하면서 때때로 주변의 농경민족을 침탈하여 필요한 것을 조달하였다. 이들은 기동성과 전투력이 뛰어나기에, 이들에 인접한 지역은 이들의 침탈에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 권력을 만들어 냈다. 반면 유럽에서는 몽고나 터키족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의 침입이 헝가리에서 멈추었다.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의 기마민족의 침탈로 부터 안전한 환경에 놓여 있었기에, 잘게 쪼개지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저자는 로마가 멸망한 시점을 첫번째 역사 분기점 (First Great Divergence), 16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 대탐험, 합리적 세계관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중첩되면서 이후 비약적으로 앞서나가게 된 사건을 두번째 역사 분기점(Second Great Divergence)라고 칭한다. 첫번째 역사 분기점 사건이 발생한 것이 두번째 역사 분기점을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제국이 유럽 전역에 공통의 문화적 토양을 제공해 줌으로서, 이후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공통의 기초 위에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한 후 또다른 제국이 들어섰다면 중국과 유사한 길을 가게 됬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저자는 책의 맨 마지막 문구에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 간에 갈등과 경쟁은 끊임없는 전쟁을 낳았고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유럽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과 기득 이권은 외부로부터의 경쟁과 위협 없이는 변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3년전에 역사적으로 불평등의 추이를 분석한 Great Leveler 라는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을 썼다. 불과 3년만에 또다시 대단한 작품을 썼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이책을 통해 역사는 경쟁과 전쟁을 통해 전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는 농경민이 주축이 되었다고 배웠는데, 저자는 북방 유목민을 중국 역사를 추동시킨 핵심으로 제시한다. 책의 후반 4부에서 지금까지 나온 이론들을 정리하여 서구가 앞서나가게 된 과정을 문화, 제도, 해외 식민지, 지식과 가치관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다. 대단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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