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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2. 31. 13:39

2020. 12.9. 작성.

LA night view, from pinterest.co.uk, YocalFM Presenter

 

나는 한때 미국에서 살았고 여러 도시를 방문했지만, 로스앤젤레스(LA)는 좀처럼 갈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그곳에 사는 가까운 친지를 방문하여 수일간 머물렀다. 오래전 이민 간 친지를 머나먼 이국 타향에서 만났을 때 반갑고 울컥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녀는 내가 어릴 때 함께 살며 나를 무척 귀여워해 줬다. LA 코리아타운을 돌아다니며 허름한 건물에 한글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보고, 한국의 거리와 흡사함에 익숙한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삶의 고단함을 읽었다.

또 다른 미국의 중심, 로스앤젤레스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에서 뉴욕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LA 행정구역상의 인구는 사백만이 채 못 되지만, LA 생활권까지 포함하면 천삼백만 명에 달하는 거대 도시이다. LA는 도시가 주변으로 무계획적으로 팽창한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면 도심에 몇 개의 고층빌딩을 제외하고는 낮은 건물들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져 있다. LA 주변을 감싸고 고속도로가 스파게티처럼 얽혀 있으며 통근시간에 교통 체증이 심하기로 미국에서도 손꼽힌다. 그 덕분에 한때 LA는 대기오염이 건강을 위협할 정도로 심한 도시로 명성이 높았다.

근래에 샌프란시스코의 실리콘 밸리가 뜨면서 약간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LA는 서부에서 산업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꾸준히 성장하는 서부의 중심 도시이다. LA에는 제조업에서 엔터테인먼트와 금융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이 왕성하다. 뉴욕, 보스턴, 워싱턴 DC와 같은 동부의 도시들이 미국 역사의 중심에 있다면, 로스앤젤레스는 그러한 정통적 미국의 정반대를 상징한다. 영국의 식민지에 뿌리를 두고 유럽에서 온 백인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미국의 전통은 LA와 거리가 멀다.

현재 LA에서 백인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도 못 된다. 중남미계 이민자가 전체의 절반을 차지하며, 나머지를 아시아계와 흑인이 각각 10%씩 나누어 갖고 있다. 2040년이 되면 백인이 미국 전체 인구의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LA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소수인종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이 되었다. 사실 LA에 중남미계 이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하다. 캘리포니아는 미국이 1848년에 멕시코와 전쟁을 벌여 빼앗은 땅이다. 1980년대에 멕시코에서 이민자가 쏟아져 들어올 때까지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은 사람들이 수시로 왕래했다. 멕시코인들은 미국에서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 넘어와 일하다 일이 뜸해지면 본국으로 돌아가 가족과 함께 지내는 생활을 오랫동안 반복해왔다. 그러다 1980년대에 국경 관리가 엄격해 지면서 한번 미국으로 넘어온 멕시코인들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LA와 같이 국경에 가까운 도시에 모여 살게 되었다.

로스앤젤레스의 특이한 발전

동부 사람들이 보기에 로스앤젤레스는 허황한 꿈에 부푼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도시이다. 1849년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사금이 발견되면서 미국 동부에서는 물론 유럽과 아시아에서까지 일확천금을 좇아 모여들었다. LA는 바로 이 금 채굴자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제조하고 조달하는 산업이 붐을 이루면서 성장했다. 사실 골드러시 때 금을 채굴하여 돈을 번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대주면서 돈을 번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하는데, 청바지를 제조하는 리바이스가 대표적 사례이며,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가 골드러시 덕분에 발전했다. 19세기 후반 LA 인근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한때 천 개가 넘는 석유 채굴 봉이 있었으며 미국에서 소비하는 석유의 상당 부분을 LA 유전에서 조달했다. 지금도 LA의 북서쪽 다저 스타디움 근처에서 석유 채굴 펌프가 가동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LA20세기 들어 지금까지 세 번의 계기를 통해 크게 변화했다. 처음은 20세기 초반으로 LA가 연중 항시 햇빛이 비치고 따뜻한 기후에 매력을 느낀 동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이다. 1885년에 동부와 LA를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 산타페 노선이 완성되면서 이것을 타고 동부 사람들이 LA로 대거 이주하였다. 이들은 그때까지 조그만 항구도시에 불과했던 LA에 부동산 개발 바람을 일으키며 큰돈을 벌었다. 뉴욕에 본부를 두었던 영화산업이 LA로 건너와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건설하였으며, LA에서 멀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에 도박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건설한 것도 그 무렵이다.

두 번째 발전의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찾아왔다. 미국이 일본과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LA는 군수물자를 생산하고 조달하는 근거지로 크게 성장했다. 그때까지 미국의 산업 시설은 모두 동부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군수물자를 생산하여 서해안까지 운반하여 전쟁을 치르는 것은 비효율적이었기에 LA에 군수 공장을 대규모로 건설한 것이다. LA에는 군함과 전투기와 무기를 생산하는 첨단 공장이 많이 들어섰는데, 이후 첨단 방위산업이 LA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게 되었다.

세 번째 변화는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하면서다. 그 이전까지 서유럽 출신의 이민자만 받던 이민 제한을 폐지하고, 세계의 모든 나라에 동등하게 이민의 문호를 개방하였다. 이 법이 발효되고 얼마 지나자 매년 수백만 명의 이민자들이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쏟아져 들어왔다. 1960년대에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기존의 인종차별적 이민정책을 폐지하고 인종과 무관하게 이민자를 받아들였을 때,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그렇게 많은 이민자가 몰려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970년경에는 제2차대전의 폐허를 딛고 유럽이 이미 발전하였기에 미국으로 건너오는 이민자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새로운 이민자들의 도시

1970년대이래 멕시코와 인접한 남서부와 서해안 도시에는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들어온 이민자들이 넘쳐났다. 급기야 1990년대에는 미국의 저명한 학자들이 미국 정신의 몰락”, “미국의 정체성의 위기등을 들먹이며 반이민 정서를 부추겼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유럽과의 연결을 중시했으며 대서양 연안의 동부 도시들이 유럽과 연결의 중심에 있었는데, 20세기 후반에 들어 아시아와 태평양의 중요성이 주목받으면서 태평양 연안의 도시들이 새로이 부상한 것이다.

LA는 근래에도 중남미와 아시아로부터 이민자가 계속 유입하면서 성장하고 있지만, 이 도시는 태생적으로 발전에 한계를 안고 있다. 물이 부족한 것이다. LA에서 내륙 쪽으로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산맥이 보이며 그 너머는 막막한 사막이다. 원래 LA를 관통하는 강이 있었지만, 점차 수량이 감소하여 지금은 복개된 하수 하천에 불과하다. LA시는 북동쪽 네바다주 인근으로부터 매우 먼 거리를 잇는 수로관을 통해 식수를 공급받고 있다. 근래에는 물 사용을 통제하여 잔디에 물을 주는 것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미국의 태평양 시대의 중심인 LA는 백인이 아닌 중남미와 아시아 이민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정치의 가장 기층조직인 지역 교육위원회 위원에서부터 시장과 연방 하원의원에 이르기까지 선출직에서는 중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물론 LA에서도 정부와 대기업의 고위직은 여전히 백인이 다수이지만. 뉴욕이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교역하는 화물 운송 덕분에 성장했다면, LA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하는 덕분에 성장했다. LA 사람들과 LA 경제의 활력은 아시아에서 온다.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경제위기 때 LA 또한 크게 타격을 받았다.

LA도 미국의 일부이므로 미국 사회의 고질적 문제인 인종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1992LA 폭동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운전자를 백인 경찰 여럿이 심하게 구타하는 장면이 미디어를 통해 퍼지고 이들 백인 경찰이 법정에서 무죄 방면되면서 폭동이 촉발되었다. 이 폭동에서 유독 한국계 이민자의 사업장만 골라서 파괴 약탈당한 것은 한국계 이민자들에게는 억울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흑인을 억압하고 착취한 것은 백인인데 왜 죄 없는 한국계 이민자들이 당해야 하냐고. 세상은 그런 것이다. 한국계 이민자와 흑인은 미국 사회에서 둘 다 약자이지만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 반면 한국계 이민자와 중남미계는 사이가 좋다. LA 코리아타운에는 한인보다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훨씬 더 많이 살며, 한국계 사업장에는 항시 중남미계 사람들이 일하며, 한국계와 중남미계는 서로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이 많다.

나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LA의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도 미국인인가 하는 질문을 한다. 물론 그들은 법적으로는 엄연히 미국인이지만, 백인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 2세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묻는다.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인들은 미국 주류 사회의 움직임보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이 많다. 그들은 미국에 살면서도 미국인으로서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LA는 미국의 서부 개척의 신화가 지금도 진행 중인 곳이다.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서 건너온 이방인이 다수를 차지하며, 미국의 전통과는 단절된 새로운 역사를 쓰는 곳이다. LA에서는 대를 이으며 사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LA에서 이민자들이 접하는 환경은 그들의 과거와 너무도 다르다. LA에서 오늘을 힘들게 살아가는 이민자들은 현재의 역경을 이기면 그들의 자녀들이 성공하여 미국의 주류로 살 것이라는 꿈을 꾼다. 미래의 꿈을 꾸며 열심히 매진하는 인생은 어떻든 의미 있지 않은가. 로스앤젤레스에 한인타운을 거닐며 그런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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