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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에 해당되는 글 3건
2021. 8. 17. 22:36

Joseph Stiglitz. 2019. People, power, and profits: progressive capitalism for an age of discontent. 247 pages.

저자는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미국의 문제를 진단하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한다. 미국은 극심한 불평등과 금권정치로 국민의 다수가 소외되어 있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교육수준이 낮은 노동계층의 삶이 어려워진 반면, 정치경제 엘리뜨들은 이들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무관심하여,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 선동 정치인의 출현을 맞이했다. 저자는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며,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사회운동으로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자고 제안한다.

1980년대 이래 중류층의 소득은 정체된 반면, 상위 1%부자의 소득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서비스와 지식 중심의 경제가 도래하면서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이들은 절망과 좌절 속에 마약과 진통제를 탐닉하면서 건강이 악화되고 수명이 줄어들기까지 했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상위층으로의 소득 집중은 갈수록 더 심해지고, 대기업들이 경쟁 기업을 합병하면서 산업집중이 높아져 독과점 자본주의가 출현하였다. 자본가와 대기업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매수하여 경쟁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고, 이것이 다시 독과점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독과점이 심해지면 경쟁을 제한하고 혁신을 저해하여, 경제는 활력을 잃고, 경제성장은 둔화된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이래 공화당이 집권하면서 세금을 축소하고, 규제를 철폐하고, 정부의 권한을 지속적으로 약화시켰다. 시장의 실패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정부가 쪼그라들었기에 독과점이 심해진 것이다. 세금과 복지지출을 통한 정부의 소득재분배 기능이 무력화되었기에 불평등은 악화일로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의 책임이 금융기관에 있는데, 이들의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 행태의 실패를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주고도 책임을 묻지 않았다. 금융기관은 생산적인 방향으로 돈을 흐르게 하는 원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비생산적 투기를 통해 불로소득(rent)을 거두는 행위에 몰두함으로서 경제의 불안정을 높이고 악순환을 부추긴다. 공화당이 주도한 대법원에서 무제한하게 정치헌금 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1인 1표의 민주주의는 폐기되고 대신 1달러 1표의 금권주의 정치가 판치고 있다. 금권주의 정치는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익집단의 영향을 확대시켜 게임의 규칙을 자본가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치에서 보통사람의 목소리는 소외되고 이들의 좌절은 깊어졌다. 이러한 절망적 환경에서 트럼프라는 대중영합주의 선동 정치인이 등장한 것이다.

첫번째 과제는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자본의 과도한 영향력을 통제해야 한다. 정치 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선거 비용과 정치 헌금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정치인과 고위관료가 퇴직후 유관기관으로 취업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 현재 미국인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데, 이러한 감정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이 중심이 되어 정치를 개혁하는 사회운동을 추진해야 한다.

두번째 과제는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기회를 공평하게 만드는 것이다. 세계화로 일자리를 잃게된 사람들이 새로운 좋은 일자리로 전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고용보험을 강화하고, 기술훈련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도록 하고, 양육지원을 하고, 노후한 사회기간시설을 재건해야 한다.  현재의 역진적 조세 체계를 공평하게 바로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부자와 기업들이 세금을 회피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헛점을 바로잡아야 한다.

세번째 과제는 모든 사람에게 고상한 수준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공영 의료보험을 강화하고, 은퇴후 연금을 정부가 맡아서 관리하며, 정부가 보유한 개인 소득에 대한 자료를 활용해 모기지 제도을 저비용에 안정적으로 운용하여 자신이 사는 집을 소유하려는 보통사람들의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 교육의 질을 높여 세대간 계층이 세습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공립학교 교사의 보수를 높이고, 학생 1인당 재정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공립학교 지원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모든 개혁을 하려면 정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미국은 19세기 말과 1920년대에 두차례나 기업의 독과점이 심하고 불평등이 매우 높아 위기를 맞이했으나, 시민들이 주도한 진보주의 운동(Progressive movement)과 뉴딜정책을 통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다. 저자는 또다시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으로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문제 분석은 그동안 많이 나왔던 이야기를 정리해 놓은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건인데, 저자는 현재의 제도권 정치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으므로, 각성한 시민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을 통해 차근차근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점진적 무혈 혁명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 현실적 제안은 아니다.

미국인이 아닌 제삼자의 눈으로 볼 때, 미국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미국은 예외적인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문제가 갈수록 악화하고, 혼란이 자주 찾아오고, 경쟁국에 추월당하면서 삶이 어려워지고, 풍부한 자원 덕분에 그럭저럭 지내는 이류국가로 전락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미래 예측이다. 부자는 삼대는 간다 했으니, 앞으로도 한동안 미국은 겉으로는 화려하게 보일 것이나, 안으로 썩어가는 방향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외국에 추월당하면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돌리면서,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복국가에서 출발한 미국은 현재도 매우 호전적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혹은 저자의 진단이나 나의 인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미국이 그렇게 문제가 많다면 다른 선진산업국에 뒤져야 하는데, 미국은 여러 지표에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좋은 기록을 보인다. 미국은 기술, 비즈니스, 문화에서 혁신을 가장 많이 만들어 내며, 생산성이 지속적으로 향상되며, 거의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있으며, 부를 가장 많이 창출하며, 선진국 중에서도 경제성장율이 가장 높으며, 인구 노령화를 걱정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며, 전세계로부터 똑똑한 사람을 많이 받아들인다. 소득 불평등이 두드러지고, 아동 빈곤율이 높고, 범죄와 살인율이 높고, 형무소에 갖힌 사람의 비율이 매우 높고, 금권정치가 심한 것도 또한 사실이다.  요컨대 미국은 좋은 점 뿐만 아니라 나쁜 점에서도 두드러진다. 이런 나라가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미성숙의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건지 헷깔린다. 인간도 미성숙 단계에는 에너지가 넘치고 화려하지만, 반면 지나친 실수가 많고 결함도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국가와 사회에 미성숙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앞으로 100년쯤 후에야 어느 해석이 옳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2020. 7. 2. 13:04

Claudia Goldin and Lawrence F. Katz. 2008. The Race between Education and Technology. Harvard University Press. 353 pages.

저자는 저명한 경제학자들로, 이 책은 미국에서 지난 백년간 교육 수준의 향상과 기술 발전의 관계를 수리적으로 분석한 학술서이다. 책의 첫머리에 저자는 "왜 백년전에는 미국이 세계적으로 교육의 향상을 선도하는 나라였는데, 근래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다른 선진산업국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19세기말 20세기 초반, 2차대전후 1970년대 초반까지, 1970년대 중반이후 21세기 초까지, 지난 백년간을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 미국인의 교육 수준과 교육 제도의 변화를 검토한다.

미국은 20세기초반까지 선진산업국들 중에서 교육수준이 독보적으로 높은 나라였다. 19세기초부터 공립 초등교육이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19세기말에는 공립 중등교육 운동이 벌어지면서 전국적으로 무상 중등학교가 확대되었다. 2차대전 무렵에는 중등학교를 나오는 것이 당연시되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는 물론 백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흑인에게는 2차대전 무렵까지도 중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유럽의 나라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중등학교는 소수 상류층의 전유물이었으며, 공립 중등학교는 드물었다. 

미국에서 공교육이 일찍이 확대된데에는 몇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첫째는 지역자치의 전통이다. 공립학교는 지역의 주민들이 갹출한 재원을 바탕으로 지역주민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는 이웃 지역에 뒤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지역들간 경쟁을 유발시켰다. 내가 사는 지역에 양호한 교육 환경이 만들어 지면 그 지역의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의 지역에 좋은 공립 학교를 세우는데 적극적이었다. 이는 유럽에서 공교육이 중앙집권적으로 구축된 것과 명확히 대조된다.

둘째는 평등을 추구하며 패자에게도 기회를 주는 미국의 공교육의 원칙이다. 미국은 모든 주민들에게 지역의 공립학교에 무상으로 접근할 수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또한 교육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뒤쳐지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공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열어 두았다. 이는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12~4세 무렵에 국가 자격시험을 치루어,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인생의 진로가 달라지도록 중등교육 과정에 차등을 둔 제도와 뚜렷이 다르다. 유럽에서는 엘리뜨에게만 고급 중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부여하며, 나머지 사람에게는 중하위의 직업에 진출할 수 있는 직업교육을 시켰다. 반면, 미국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중등교육의 마지막 단계까지 동일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므로, 보다 많은 사람이 양질의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유럽은 미국을 본받아 무상 공립 중등교육을 확대하였으며, 질 높은 중등교육을 선별적으로만 제공하던 제도를 많이 완화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 중등교육의 학력은 노동시장에서 크게 보상을 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중등교육을 이수하려고 하였다. 20세기 중반에는 대다수가 중등교육을 받게 되면서 중등교육의 이점은 줄어들었다. 대신 고등교육을 이수하는 것이 큰 보상을 가져왔으므로, 20세기 중반에 미국의 고등교육 즉, 대학 교육은 정부의 재정 지원에 힘입어 급속히 확대되었으며, 대학간 자유경쟁의 결과 대학 교육의 질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은 미국보다 뒤쳐져 공립 중등교육이 보급되었으며, 이어서 고등교육이 확대되는 과정을 근래까지도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중반에 들어 국민의 교육수준이 확대되던 장기 추세가 중단되었다. 고등교육의 이수는 80% 무렵에서 좀처럼 더이상 높아지지 않으며, 4년제 대학의 졸업율은 한때 70%까지 높아졌다가 60%초반대로 후퇴하였다. 4년제 대학 졸업자는 노동시장에서 큰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노동시장에서 큰 불이익을 받음에도 일부 사람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4년제 대학을 중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편, 미국의 기술 수준은 19세기 후반 이래 꾸준히 높아졌다. 과학과 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노동시장에서 인적자본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상승하였다. 20세기 초반까지는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에 비해 중등교육 이수자의 수가 적었기 때문에, 중등교육을 졸업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누릴 수 있었다. 20세기 후반 들어 컴퓨터와 생산서비스 산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기술 수준은 크게 높아졌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이러한 노동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높은 임금을 누리고 있다. 문제는 기술수준의 상승하면서 고급 인력에 대한 요구가 높아진 것에 비해 대학교 졸업자의 증가 속도가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고급 인력의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급 인력의 임금이 크게 높아졌다. 대학원을 졸업하여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소유한 사람들의 공급이 노동시장의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하므로 이들은 매우 높은 임금 프리미엄을 누린다.

저자는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때문에 임금의 격차가 크게 나게 되었음을 분석적으로 입증한다. 4년대 대학의 졸업자가 1970년대 중반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였더라면 이들의 임금 프리미엄이 지금과 같이 높지 않을 것이므로, 소득 불평등도도 지금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더하여 20세기 후반 세계화의 결과, 낮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하거나 혹은 이민자로 채워지고 있기 때문에, 낮은 기술수준을 가진 근로자의 임금은 정체하거나 하락한 반면, 높은 기술수준의 일자리는 세계화로 효능이 더 커졌기 때문에 더 높은 보상을 누리게 되었다.

왜 미국인은 유럽인에 비해 중등교육의 탈락율이 높으며,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이 높은가? 4년제 대학 중퇴자가 많은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는,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채 대학에 들어온 사람이 많기 때문이며, 둘째는 대학의 등록금이 매우 비싸서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대학교육을 받을 준비가 되지 않은 이유는 중등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중등교육이 부실한 이유는 다양하다. 첫째는 주민의 소득과 인종에 따른 거주지 분리 현상이 교육의 지역자치 원칙과 만날 때, 가난하고 흑인이 사는 지역의 학교의 질은 매우 열악하게 된다. 둘째는 선생의 보수가 낮아 인재가 지원하지 않으며, 교사 노동조합이 능력이 부실한 교사의 처벌을 어렵게 만든다. 셋째, 가난한 흑인과 미혼모 가정 배경의 아이는 어릴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여 교육과정의 초기단계에서부터 불이익을 누적해간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일부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낮은 것은 학교의 문제도 있지만, 빈곤 문제, 인종문제가 중첩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빈곤과 인종문제가 유럽의 선진산업국보다 더 심각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교육수준이 유럽과 달리 어느 수준에서 향상을 멈추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결국 사회를 개선해야만 미국인의 교육 수준 향상도 이루어질 수있다. 과학 기술 수준은 계속 발전하고, 노동시장에서 요구하는 인재의 수준은 높아지는 데, 미국 사회가 이러한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면, 앞으로 소득 불평등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 확대될 것이다.  

저자들은 책의 말미에 '미국이 과거에는 세계에서 교육수준의 향상을 선두에서 이끄는 나라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주저앉게 되었냐고' 탄식하며 분발을 촉구한다. 그러나 미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교육수준의 정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국외자의 눈으로 볼 때, 미국이 과거에는 잘 나갔지만 앞으로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그에 환호하는 지지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없다.

이책은 과학기술의 향상이 교육 수준의 정체와 만나면서 임금 격차가 커졌다는 것을 수리적 입증한 학술서이다. 막상 저자가 책 서두에 제기한 왜 미국인의 교육수준의 향상이 중단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별도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이 질문에 대해 그들이 제시하는 처방은, 기존에 많이 언급된 것을 마지막 장에서 간단히 정리하는 데 그친다.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해 참신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2020. 1. 7. 15:05

Abhijit V. Banerjee and Esther Duflo. 2019. 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Public Affairs. 326 pages.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자가 오늘날 세계의 주요 문제들에 대해 경제학의 해결책을 체계적이며 비판적으로 정리한 책. 이민, 무역, 차별과 빈곤, 성장, 환경, 불평등, 정책적 개입, 복지 등 각 영역의 주요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논쟁을 검토하면서, 무엇이 문제의 핵심이고 어떤 대응이 가장 효과적일지 논의한다.

이민자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민자들이 맡는 일자리는 기존 노동자들이 맡기를 꺼려한다. 이민자들이 맡는 일과 그들의 소비 덕분에 기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민자는 모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이민자는 경제에 활력을 주며 혁신을 촉진한다. 이민자들이 경제적으로 플러스 요인임에도 사람들이 이민자의 유입을 반대하는 것은 비경제적 비합리적인 이유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흡사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정이 안 좋은 경우 국외자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미국의 중하층 백인의 사정이 안좋기에 이들이 주로 이민자를 배격하며, 덕분에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당선되었다. 이민자는 미국 경제가 안좋거나 일을 찾을 가능성이 적으면 스스로 오지 않으므로, 과도하게 이민을 제한하는 것은 미국 경제에 해를 입히는 조치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 가설은 무역에 종사하는 쌍방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무역의 혜택은 모두에게 고루가지 않는다. 각국 내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중국과 무역이 늘면서 교육수준이 낮은 미국의 생산직 노동자는 패자가 되었다. 실질 임금이 하락하며, 일자리를 잃고 실업과 좌절 속에서 기대수명이 줄었다. 반면 교육수준이 높은 근로자들은 높은 부가가치의 산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소득이 증가하였다. 지난 사십년간 최고위 1%의 사람들이 성장의 과실의 대부분을 가져갔다. 이들은 주로 금융분야에 종사하거나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자이다. 무역으로 얻은 이익의 일부는 무역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도록 활용해야 한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이전할수 있도록 직업훈련, 실업수당, 이사 지원, 직업 알선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에 훨씬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그들이 보람을 느낄 수있는 일자리로 이전하도록 지원을 장기적이고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근로자들은 자신이 일생 종사한 직업과 일생 살던 곳을 떠나 직업 훈련을 통해 새로운 직업과 장소로 이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이들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이들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경쟁 원리를 따를 때 차별은 저절로 해소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합리적인 이익 계산만을 좆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선호가 감정적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비중이 적지 않다. 미국이나 인도의 소수자 우대 정책은 소수자가 시장에서 처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장치로 효과적이다. 정부의 개입에 의해 사람들의 선호를 공정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아 갈 수 있다.

빈곤은 물리적인 절대적인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고, 삶의 권태로부터 벗어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빈곤자의 인간적인 욕구를 무시하고 그들을 물리적으로만 구제하려는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미국의 경제성장은 1970년대 중반 이래 둔화되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제조업을 개발도상국에 넘기고 금융과 서비스업 분야로 중심을 이동하였다. 중국의 경제는 1979년 개방이래 근래까지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였지만, 선진국을 따라잡는 거리가 좁혀질수록 성장율은 둔화될 것이다. 생산성을 증대하는 길은 기술 발전도 있지만, 기존의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것도 그못지 않게 중요하다. 비합리적인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효율적인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을 배치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일수록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치가 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일자리가 줄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기술 발달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낸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여하간 자동화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 사람을 생산적인 다른 지역의 다른 일자리로 이전시키도록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펴야 한다.

온난화의 영향은 모든 나라에 동일하지 않다. 서늘한 지역에 사는 선진국 사람보다 더운 지역에 사는 개발도상국 사람에게 피해는 훨씬 크다. 선진국 사람들이 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하였고 현재도 그러한데, 피해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는 이산화탄소 규제를 반대해 왔지만, 이 나라에서 대기 오염이 심각해 지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에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탄소세와 같은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차대전 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모든 계층에 성장의 과실이 돌아갔지만, 1980년대 이후의 성장은 과실이 최상위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영국에서 심한 반면, 유럽 대륙 국가들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미국의 부자들은 정치를 포섭하여 자신들의 축재가 계속되도록 정책을 유도하였다. 최상위 소득자에게 축재가 계속되는 것을 막기위해 최고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한다. 현재 미국은 30%의 최고 세율을 정하고 있는데, 이를 1970년대 처럼 70%로 하면 엄청난 소득을 거두려는 압력이 사라질 것이다. 또한 1~2%의 부유세를 거둔다면, 재산의 증식분을 재투자함으로서 세금을 회피하는 현재의 문제점이 해결될 것이다. 부자들은 돈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므로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하여 지금보다 덜 열심히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평등이 확대되면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고조되므로, 부자들의 힘으로 불평등이 확대되는 지금의 추세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그대로 방치하면 부자들에게 불행한 방식으로 사정이 돌아갈 것이다. 

미국인은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지만,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성격의 문제에 대해 정부의 개입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정부에게 자원의 분배를 맡기면 부패와 비효율을 염려하지만, 민간의 자원 분배의 기능에도 비효율이 많다. 정부는 절대적인 악이고 시장은 절대적인 선이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무역과 기술 발달으로 경제 환경이 변하면서 발생하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치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효율적으로 재배치되도록 도와야 한다.

복지 지원은 수혜자의 의존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복지 지원 여부에 관계없이 실업자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가난한 사람의 이성과 의지를 불신하여 그들의 의사결정권을 뺏는 방식으로 설계된 복지 지원은 비효율적이다. 가난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들 가장 잘 알기에 현금 지원을 가장 잘 처리할 수있다.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효과가 없다. 선진국에서 실업자는 물리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적 자존심을 가져다주는 '일'을 원한다. 비용이 더 많이 들지라도 그들에게 의미있는 일을 가져다 주는 방향으로 복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그들이 아동 돌보기, 노인 및 병약자 돌보기와 같은 공공서비스를 맡도록 제안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인간적인 보람을 주는 노동이며, 고도의 장기적 기술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기계가 대신할 수 없으며, 수요가 증가하는 서비스이다. 

결론으로, 사람들의 경제 행위는 합리적 이익추구 모델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나이가 많이 든 실업자에게 직업훈련을 통해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지역으로 이전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가난한 사람에게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욕구만을 충족하도록 지원하는 방식 역시 효과적이지 않다.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 자존심, 삶의 의미와 보람 등을 고려한 경제적 조치만이 효과를 발휘한다.

이 책은 근래에 논쟁이 되는 대부분의 문제를 건드린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어떤 방안을 제시하는지 체계적으로 섭렵할 수 있다. 저자가 미국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인과 프랑스인- 미국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적 관점, 특히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선진국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엄청난 리서치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대단한 책이다. 그들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그들의 목소리로 하는 강의를 듣는 듯하며,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 헌신하는 사람의 사명감과 열정이 느껴지며, 기존 경제학자의 주장을 비교하고 비판하는 데에서 학자로서 그들의 솔직함과 겸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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