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alee Saxenian. 1994. Regional advantage: Culture and competition in Silicon Valley and Route 128. Harvard University Press. 168 pages.
저자는 도시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보스턴의 Route 128 지역과 실리콘 밸리를 비교하면서, 왜 전자 기술의 발달은 보스턴 지역에서 시작했으나 실리콘 밸리에 따라잡히게 되었는지, 왜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기술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보스턴 주변 지역은 뛰어난 산업 입지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미국의 산업혁명이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우수한 대학과, 높은 인구 밀도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를 인근에 둔 덕분에,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이 지역은 기술과 산업의 중심이었다. 특히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정부의 대규모 방위산업 수요에 부응하여 전자기기, 항공기, 미사일, 등 첨단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지역의 기업들은 방위산업 예산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면서, 신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보스턴 지역에서는 연방정부의 대규모 발주에 의존하는 기술 대기업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기술 대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내부에서 조달하는 수직적 계열화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기업들 서로간에 연관이 적은 독립적 단위로 존재하였다. 이 대기업들은 기술 개발이나 부품 조달을 모두 내부에서 하였으며, 위계적 조직과 비밀주의가 팽배한 관료적 경영 행태를 보였다.
실리콘 밸리 지역은 2차 대전 이전까지 특별한 기술 기업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샌프랜시스코 지역에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이 지역은 활력을 얻게 된다. 실리콘 밸리가 기술 개발의 메카로 뜬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다. 하나는 보스턴 지역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대학의 전자공학 교수로 부임한 Frederick Terman 이 서부지역에 기술 개발의 동력을 불어넣기해 산학협력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시도한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인근 산업체와 학교 연구실이 밀접히 협력하는 것을 장려하였으며, 교수와 학생의 연구결과물의 사업화를 지원하였다. 기업체 엔지니어가 대학의 강의를 듣게 함으로서, 기업이 최신 기술을 학교로부터 전수 받고, 학교가 산업 현장의 감각을 획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휴렛팩카드, 선 마이크로시스템, 등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이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생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그들은 졸업해서도 기업활동에서 서로 유대를 지속했으며, 경영이나 기술적 문제에 관해 서로 주고받고 대학과 연계를 유지하는 고리가 되었다.
둘째는 직접회로의 기술이 1950년대에 개발되었는데, 스탠포드를 나오고 동부의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William Shockley가 실리콘 밸리에 직접회로 칩을 생산하는 기업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8명이 이 기업에서 나와 Fairchild Semiconductor 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이 기업은 이후 무수히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기업들을 파생시켰다. 대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업적 중심의 문화, 휴랫패커드의 수평적 경영, 쇼클리의 권위를 배격하는 경영, 일하던 기업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이 창업하는 많은 사례 등이 실리콘 밸리의 수평적이고,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중시하고, 정보가 자유롭게 교환되고, 업적 중심의 경쟁을 우선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소속 기업에 대한 충성보다 동료 기술집단에 대한 충성이 더 컸다.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고, 그에 따라 기업 활동도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신뢰가 조직에 대한 신뢰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배경이 없이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출발하여 크게 성공하고, 사업에 실패해도 크게 오명이 붙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해 창업을 힘들지 않게 택하였다. 지역에 지원 공급망의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창업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핵심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인근에서 모두 경영 지원, 기술 지원, 부품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컴퓨터관련 기술이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했으며 조금만 방심하면 기술이 낙후되어 퇴출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계속 확대되는 플러스 섬 plus sum의 환경이므로, 기술 비밀주의나 비용이 많이 드는 법정 다툼을 하기보다는 약간의 보상을 받으면서 서로에게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역 내에서 엔지니어와 물자의 잦은 이동을 통해 기술이 금방 상대 기업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비밀주의가 통하기 어려웠다. 가격 경쟁보다는 높은 품질과 기술적 우위가 우선적인 고려 사항이었으며, 지역내 인력과 물자의 이동을 통해 전반적으로 기술수준이 높아지고, 향상된 기술의 수익을 모두가 누리는 분위기였다.
반면, 보스턴 지역의 대기업은 모든 기술과 생산을 회사 내에서 소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가 느렸다. 시작은 앞섰으나 시간이 갈수록 신기술 개발 속도에서 실리콘 밸리에 뒤쳐지게 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보스턴의 기업들은 기술 개발 부문을 실리콘 밸리로 이전하여 첨단의 기술 개발 속도에 따라갈려고 하였으나, 최종적 의사결정이 여전히 동부의 대기업 관료의 손에 있었으므로 서부의 민첩하게 움직이는 기술 기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예컨대 1960년대에 DEC 는 중형 컴퓨터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했는데, 퍼스널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으로 넘어가는 기술 변화의 흐름에 뒤쳐져 1990년대에 결국 망했다.
실리콘 밸리가 보스턴을 따라잡고 1970년대 이래 미국의 전자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을 한 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메모리 칩이 대량생산의 범용제품이 되면서 실리콘 밸리의 반도체 생산 기업들이 일본의 경쟁에 밀리게 되었다. 대규모의 설비를 투자하여 비용 감축과 효율성을 높이는 대량 생산방식에서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일본의 후발주자에게 패했다. 결국 1990년대 들어 메모리 칩 생산을 포기하고 프로세서 칩에 집중하였으며, 소규모의 주문생산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이 집적된 칩을 디자인 하고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실리콘 밸리는 기술개발의 동력을 회복하였다.
저자는 동부의 보수적이며 폐쇄적 대기업 문화와 서부의 엔지니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변화에 민첩한 창업가 문화를 잘 대비하고 있다. 기술 변화가 매우 빠른 반도체와 컴퓨터 분야에서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 기업 네트워크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관계자 인터뷰, 지역 신문기사, 통계 자료를 조합하여 훌륭한 분석을 제시하였다.
'과일나무 > 모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은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필요악인가? (0) | 2021.07.18 |
---|---|
혁신의 정치학 (0) | 2021.07.06 |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는 비결 (0) | 2021.06.29 |
진화론으로 인간사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0) | 2021.06.27 |
유전자 번식을 위해 성 전략을 구사하는 동물 (0) | 2021.06.13 |
Brad Stone. 2017. The Upstarts: Uber, Airbnb, and the battle for the new silicon valley. Back Bay Books. 347 pages.
저자는 블룸버그 뉴스의 기자로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기존 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떻게 성장했을까에 관해 서술한다. 택시와 숙박업계는 규제가 심하고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이다. 이 두 회사는 '공유경제'(sharing economy)의 대표적 성공사례이다. 자신의 차를 남고 공유하는 것과 집에 비는 방을 관광객에게 제공한다는 유사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2010년을 전후한 시기에 사업을 시작하여 크게 성공했다. 모르는 사람을 자신의 차에 태우거나 집에 묵게하는 것은 이들의 사업이 성공하기 전에는 낯선 아이디어였다.
우버Uber와 리프트Lyft는 2008년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GPS 위치추적이 가능해지면서 사업의 가능성이 열렸다. 차를 함께 사용하는 것, 스마트폰으로 차를 부르는 것, 지도 상에서 위치를 추적하는 것 등의 기술과 아이디어는 이미 다른 회사들이 개발하였다. 우버는 샌프랜시스코에서 기사 딸린 고급 승용차(리무진)를 스마트폰으로 부르는(우버 블랙이라고 후에 이름붙임) 사업을 2010년에 출범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제법 크게 성공하였다. 리프트의 전신인 짐라이드Zimride 는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카풀링을 중개하는 서비스를 2008년에 시작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플랫폼을 통해서 일반인이 자신의 승용차로 고객을 운송하는 서비스는 리프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먼저 시작하였으며, 우버가 바로 뒤이어 뛰어들었다.
일반인이 자신의 승용차로 고객을 운송하도록 하는 플랫폼 사업을 이들이 시작하자 지역 택시 업계의 반발이 엄청났으며, 택시 업계의 반발에 부응해 정부 또한 이들의 사업을 금지하려 하였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시장과 규제기관장이 파괴적 기술혁신에 대해 호의적이고 기존 택시업계의 보수적 변화 거부 태도에 부정적이었던 덕분에, 결국 우버의 사업은 기존의 택시와는 다른 업종으로 정의되면서 'Transportation networking companies' 라는 새로운 범주로 허가를 획득하였다.
우버의 공유 운송 플랫폼 사업이 다른 도시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 같이 쉬운 합법화의 길을 걷지는 않았다. 뉴욕시에서는 드블라시오 시장이 택시 업계에 대해 동정적이었으며, 시의 규제기관이 우버의 법을 무시하는 공격적 행태에 부정적이어서 마지못해 제한적으로만 허가를 내주었다. 이러한 허가를 얻기위해 우버는 시민들의 정치적 압력을 동원하였다.
에어비앤비의 사업 역시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호텔 허가 없이 숙박업을 하는 것에 대해 호텔 업계는 물론 지역 주민의 반발 또한 매우 컸다. 에어비앤비의 사업이 확대되면서 이 플랫폼을 악용해 본격적으로 숙박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들에 대해 주민의 반발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에어비앤비 역시 순수한 동기에서 자신의 집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압력을 행사한 덕분에 제한적이나마 합법화가 이루어졌다.
두 회사 모두 인터넷 덕분에 유휴 자산과 노동력을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빌려주는 공유 중개 플랫폼이 기술적, 경제적으로 가능하게 되면서 성공하였다. 공유 플랫폼을 통해 부업의 기회를 얻고, 이를 통해 편리하고 저렴한 서비스를 누리게 된 소비자가 늘면서 지금까지 관련 산업을 지배하던 규제의 틀을 깨는 것이 가능했다. 기존 산업은 높은 규제의 틀 속에서 높은 진입장벽을 치고 있었으므로,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이러한 체제를 완전히 무시하는 서비스를 선보였을 때, 기존 업자들은 불공정 거래라고 반발하고, 안전을 구실삼아 격렬하게 반대했다. 정치권은 처음에는 업자의 편이 었지만, 시민의 요구가 높아졌 때 변화를 수용하는 쪽으로 움직였다.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가져온 서비스가 기존 업자의 서비스보다 편리하고 저렴했기에 결국 그들에게 유리하게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이 책은 실리콘 밸리 업계를 오랫동안 취재한 기자의 경험이 밴 심층 탐사기사의 성격이다. 중요한 맥락을 놓치지 않고 잘 취재했으며, 이야기의 흐름을 무리없이 전개하였다. 회사의 성장을 피상적으로 잡다하게 기술하기보다는, 이들의 사업이 어떻게 기존 업계의 규제를 극복했을까라는 특정 주제에 촛점을 맞추었기에 더 흥미있다. 그러나 분석적이기보다는 사건과 인터뷰 중심의 서술이라,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드는 '왜 그렇게 되었을까'하는 의문에 대해 심층적 설명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기업관련 책으로 이만하면 매우 잘 썼다.
'과일나무 > 사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과나무 목록 (0) | 2020.12.20 |
---|---|
주문형 서비스 (on-demand service)의 노동 문제 (0) | 2020.02.10 |
생각의 규칙 (0) | 2020.02.05 |
우울증은 왜 생기나 (0) | 2020.02.02 |
공유경제란? (0) | 2020.01.29 |
Victor W.Hwang and Greg Horowitt. 2012. The Rainforest: the secret to building the next Silicon Valley. Regenwald. 282 pages.
벤쳐 캐피탈리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와 밴쳐 업계를 분석한 책. 저자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천연림(rainforest)와 같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구성원이 기존의 관행에 얽매지 않고 서로 자유로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 받다보면 우연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것이 창출되는데, 이는 마치 천연림에서 잡초가 자라나는 것과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이것이 사업으로 성사되기까지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협력해야만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이들 사이에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용이하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서로 소통과 협력을 쉽게 하도록 할지가 관건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좁은 범위의 집단 내에서만 소통을 하며 집단을 건너서는 적대적이다. 지역, 인간관계망, 문화, 언어, 불신 등에 의해 제한된 사회적 장벽은 집단간 접촉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를 높이기 때문에 생산적 소통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주체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유용한 자원을 교환할 때,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증명하듯이, 교환에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 있다. 집단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사람 혹은 핵심적인 기관이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밴쳐 자본가, 컨설팅 회사나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변호사 등이 이런 위치에 있다. 다른 하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으며,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여 조합하고 적용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잘 축적되어 있으므로 구성원들이 서로 쉽게 관계 맺우며 도움을 주고 받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합리적 경제 원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는 도정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고 무모할만치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합리적 동기보다는 비합리적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이들은 성공의 확률이 지극히 적음에도 무모하리만치 열심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비합리적인 동기는 다음과 같다. 경쟁의 스릴, 남을 돕는다는 이타적 정신, 모험에 대한 갈망, 새로운 발견과 창조의 즐거움, 미래 세대에 대한 염려,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희망, 등이 그것이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관계하는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다. 기존의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꿈을 꿀 것,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귀기울일 것, 상대를 신뢰하고 신뢰받을 것, 실험하고 또 함께 실험을 반복할 것, 모두에게 공정하고 상대를 이용해먹지 않을 것,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끈질기게 지속할 것,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제공할 것, 등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지배하는 규율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생태계를 새로이 구축할 것인가인데, 소수의 핵심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규율에 따라 실천을 한다면 점차로 이러한 규율과 문화가 확산되면서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생태계는 외부로부터 전체적으로 주입될 수 없다. 구성원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행위양식을 직접 실천하는 가운데 그들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먼저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행위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이를 배우고, 이러한 행위와 배움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면, 이를 따라 롤모델이 형성되고, 신뢰가 통하는 집단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단순히 자본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려면 생사를 좌우하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일반 투자가가 투자 수익만을 보고 이러한 과정에 자본을 참여하기는 어렵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사업이 성숙해가는 과정의 단계마다 그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조언과 도움을 제공하여 성공의 확률을 함께 높여 나가야만, 그의 투자가 결실을 거둘 수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이 초기단계의 투자를 가능케 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돈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성사시키는 일이다.
왜 미국의 서부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가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와 세운 나라이며, 서부는 미국 내에서도 동부의 기득권과 전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기회와 모험을 찾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서부에서는 그가 어떤 배경을 가진 누구인지(who you are)가 중요치 않다. 대신 그가 무엇을 하는가(what you do)가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미국의 서부는 세계에서 집단 종족주의(tribalism)가 가장 약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다양한 자원의 사람이 모여들고, 서로간에 자유로이 소통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우연이 개입되면서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지기 쉽다.
이 책을 읽으면 밴쳐 사업에 깊숙이 간여한 사람이 풍기는 열정이 느껴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 참여한 사람 모두는 이러한 열정과 순수함이 없다면 밴쳐 사업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열정은 전염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열정의 씨앗이 퍼져 뿌리를 내리면 그 주변으로 조금씩 새로운 실리콘 밸리가 만들어질 수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시장의 원리만으로 안되고, 정부의 지원만으로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찾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기에, 어디에서건 실리콘 밸리가 조성될 수는 있다. 새로운 것에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나 지역이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책은 체계적인 분석서라기보다 실천가의 견해를 피력한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그리 복잡하지 않으며, 비유를 많이 들어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이론은 쉽지만 실제 그것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과일나무 > 사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문제에 대한 경제학자의 조언 (0) | 2020.01.07 |
---|---|
대양에서 경도를 측정하는 법 (0) | 2020.01.04 |
길모퉁이 남자들 (0) | 2019.12.30 |
성과주의의 함정 (0) | 2019.12.27 |
사람은 어떻게 빚어지나 -소니아 소토마이어 연방 대법관 자서전 (0) | 2019.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