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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5. 2. 20:29

나카무로 마키코, 쓰가와 유스케, 윤지나 옮김. 2018. 원인과 결과의 경제학. 리더스북. 193쪽.

저자는 교육 정책학자와 보건 정책학자이며, 이 책은 인과추론의 논리를 적절한 사례와 그림을 통해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

두 변수사이에 상관관계가 인과관계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연히 두변수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아닌지, 제3의 교란 변수가 개입되어 있지는 않은지, 역 방향으로 인과의 화살이 가지는 않는지 확인해야 한다. 에비던스의 수준이 높은 순으로 방법론을 나열하면, 복수의 랜덤화된 연구들에 대한 메타 분석, 랜덤화 통제 비교, 자연실험과 준실험, 회귀분석의 순이다.

빅 데이터 분석은 무수히 많은 유관변수를 찾아내서 종속변수 값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어, 이를 새로운 사례에 적용하는 방법론이다. 이 방법은 변수들 사이에 인과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원인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 분석방법을 이 책에서는 부정적으로 보는데, 과연 그런지 약간 의심이 간다. 예컨대 오백개의 변수를 통해 종속변수를 예측하는 빅데이터 분석 모델은, 인과모델과 달리 우연의 일치나 랜덤화 통제의 오류가 많은 변수들과의 관계들 속에서 상쇄되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빅데이터 분석 모델은 인과추론 방식과는 다른 방식이면서, 그 나름 타당성이 있는 것 같다.

자연실험, 이중차분법, 조작변수법, 회귀불연속 설계, 매칭법, 등 실제 연구에 많이 쓰는 인과 추리 모델을 명료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해설했다. 또한 이러한 방법론이 적용된 실제의 연구들을 통해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에 통계와 인과추론을 가르쳤던 경험이 떠올랐다. 이 책을 사용했더라면 훨씬 쉽게 가르쳤을텐데 하고 생각했다. 인과추론과 관련된 논의를 실제적이고 간단명료하게 정말 잘 정리했다. 책을 잡자마자 단숨에 읽고, 감탄했다. 사회과학 리서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번역을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책의 후반부에서 눈에 띄었다. 

2022. 4. 30. 18:30

최현석. 2017.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 서해문집. 739쪽.

저자는 의사이며, 이 책은 인간 신체의 구성부분을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종합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이에 더하여 신체 부분의 용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며, 동의보감의 한학 지식을 덧붙여 소개한다.

인간의 몸의 구성 부분과 기능에 따라 신경, 감각, 피부, 호흡, 순환, 혈액, 면역, 소화, 내분비, 생식, 비뇨, 근골격으로 장을 나누어 설명한다. 총 246개의 항목에 대해 설명한다. 각 부분에 대해 용어의 어원을 먼저 해설하고, 다음으로 해부학적 지식, 생리학적 지식, 병리학적 지식의 순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때때로 사회문화적 지식도 추가로 덧붙인다. 의학 지식의 발전, 다른 동물과 비교한 진화론적 설명, 발생학적 설명, 일반인의 상식과 과학적 지식의 비교, 건강을 위한 의사로서의 조언, 등 다양한 설명을 덧붙였다.  오랫동안 의사 생활을 통해 환자를 접하면서 얻은, 사람들의 사는 방식에 대한 감, 인체에 대한 감, 의학적 치료에 대한 감이 행간에 배어 있다. 의학이 알고 있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지적한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인데, 정말 대단한 책이다. 저자의 지식의 폭은 물론, 이 책을 쓰기 위해 기울인 엄청난 노력과 정성이 느껴진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몸에 대해 눈이 떠지는 느낌이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한국인 저자가 쓴 책 중, 이 책보다 더 좋은 책이 생각나지 않을 지경이다.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2022. 4. 18. 14:26

베아트리스 퐁타넬. (심영아 옮김). 2010.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  이봄. 239 쪽.

이책은 서양의 회화를 통해 옛날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들여다본 사회사이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그림과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람들의 가장 내밀한 공간인 집을 구석구석 해부하여, 그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침실, 난방, 부엌, 실내장식, 물, 조명, 창, 여러 방들, 식당, 욕실, 살롱과 거실, 수납, 살림이라는 제목 하에, 18세기 근대화 이전의 모습과 이후를 대비하면서 흥미롭게 서술한다. 18세기까지 일반 사람들의 삶은 생존의 한계에서 힘들게 살아갔다. 추위를 피하기 위해 식구들 모두가 불기가 있는 거실에 모여 잠을 자고, 일년에 두세번 목욕을 했으며, 방에는 가구랄 것이 거의 없었으며, 두세개의 조그만 궤짝에 가진 것 모두를 넣어 두었으며, 한두벌의 옷으로 생활했다.  20세기의 물질적 풍요와 너무도 대비된다. 이 책을 읽으면 물질적 삶의 핵심인 의식주 중 '주'에 대해 확실히 이해하게 된다.

그림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역자의 번역이 좋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길지 않은 글을 읽는 것도 즐거웠다. 읽는 즐거움이 새록 새록 솓아나는 책이라, 일을 하면서 쉬는 시간에 나에게 상을 주는 기분으로 읽었다. 아끼면서 조금씩 읽었는데, 마지막 장을 읽고 나서는 무척 아쉬웠다.

2022. 4. 4. 17:26

Paul Bloom. 2010. How Pleasure Works: the new science of why we like what we like. WW Norton. 221 pages.

저자는 발달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근원을 진화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어떤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천성적인 본질주의자(essentialist)이다. 본질주의란 사물에는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은 본질이 존재하며, 사람들은 이러한 본질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사물을 접하고 인식한다. 이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피상적 외면에 따라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과 반대된다. 어떤 대상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즐거움은 이 대상의 본질과 연관되어 있다. 진품 그림, 유명인사가 직접 접촉한 물건, 현장 공연, 등이 모조 그림이나 복사품보다 더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이것이 대상의 본질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질주의적 인식은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 상황에 따라 달리 변하는 것을 각각 다른 것으로 인식한다면,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 사람들이 특정 음식을 선호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우리의 맛 감각이란 대상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영향받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영양학적 이유 이외에,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일수록 더 맛있게 느낀다. 인조고기보다 천연 고기를 더 맛있게 느끼며, 코카콜라가 익명의 콜라보다 더 맛있으며, 천연 환경에서 채취했다고 믿는 생수가 수도물보다 더 맛있다.

섹스가 즐거운 이유는 종의 번식을 위한 필요에서 발달한 감각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은 다른 방식으로 섹스를 접한다. 여성은 남성보다 짝을 찾는데 훨씬 까다로우며, 소수의 배우자의 헌신을 구한다. 남성은 여성의 성적인 외도에 분개하고 질투하는 반면, 여성은 남성이 자신에게 쏟을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쏟는 위험 때문에 질투한다. 따라서 여성은 배우자가 자신에게 쏟을 자원을 다른 사람에게 크게 이전하지만 않는다면 남성의 성적인 외도에 대해 감정적 분노를 덜 느끼는 반면, 남성은 여성이 다른 남성과 성적으로 결합한다는 오로지 그 사실 때문에 참지 못한다. 섹스 상대의 과거의 성적 전력은 성적 매력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데, 이것 역시 자신의 유전자를 번식시키려는 진화적 욕구이다.  

사람들이 이야기에 끌리는 이유는, 그것이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관계 맺기와 연관되어 있기때문이다. 이야기에 담긴 인간관계의 복잡한 양상에 대한 지식은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필수적 기술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직접 경험으로 습득하려면 희생과 위험이 클 것이지만, 이야기 혹은 허구를 통해 이를 큰 비용 없이 습득할 수있다. 즉 이야기에 대한 인간의 본원적 흥미는 생존 본능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해피 엔딩만 아니라 슬픈이야기나 폭력적 이야기에 흥미가 동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남의 고통과 비극은 나의 즐거움이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맞는다. 그러나 실제 벌어지는 현실로서 남의 고통이 지나칠 경우, 공감이 작용하여 관찰자에게도 고통을 준다. 그러나 허구는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는 사람들이 이야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허구는 실제 일어나는 일이 아니므로 아무리 고통스런 사건이 벌어져도 공감의 강도가 낮다.

이책은 저자의 연구결과와 엄청난 독서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솜씨좋게 버무려 놓은 책이다. 논의가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지만, 그런대로 읽을만하다.

2022. 3. 13. 21:43

Sheena Iyengar. 2010. The Art of Choosing. Twelve. 277 pages.

저자는 사회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어떻게 선택하는지에 관해 이론적 검토와 함께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미국인에게 '선택'은 항시 긍정적으로 인식되지만, 많은 선택지나 개인이 하는 선택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복리를 더 높이지는 않는다는 점을 역설한다.

인생을 보는 세가지 세계관이 있다. 첫째, 인생이란 운명에 의해 미리 결정되는 것, 둘째, 인생이란 우연에 따라 전개되는 것, 셋째, 인생이란 자신의 선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인생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세상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세계로 인식한다. 미국인은 바로 이러한 세계관에 경도해 있다. 미국인의 꿈(American Dream) 이념은 누구라도 노력하면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제시한다. 이러한 믿음은 현실과 반드시 부합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열심히 노력하고 선택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이익을 위한 스스로의 선택을 최우선으로 여기지만,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이 개인을 위해서 대신 선택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본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을 때 힘이나고 만족도가 높지만,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자신이 중시하고 신뢰하는 집단 구성원이 자신을 대신하여 선택하는 경우에 오히려 힘을 얻는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고유성을 강조하여 타인과 다른 자신만의 선택에 집착하는 반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과 조화를 이루는 공통의 선택을 바람직하게 여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특정 개인이 튀는 선택을 부정적으로 본다. 

개인주의 문화에서 남과 다른 개개인의 선택에 집착하지만, 그렇다고 남과 크게 다른 선택을 바람직스럽게 보지는 않는다. 남과 대체로 동조하지만 사소하게 다른 그런 차이를 개인의 고유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한다. 사실 개인은 주위의 타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는 선택은 피상적이다. 미국의 상업광고에서는 바로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둘러싼 선택을 강조하며, 미국인은 어릴 때부터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구별하도록 훈련받는다. 자본주의 경제는 사소한 차이를 보이는 물품을 소비자들이 계속 구입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통해 굴러간다. 사소한 차이를 둘러싼 소비자의 선택에 대해, 기업의 이윤을 위해 사람들의 의식을 조작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상징적 차이를 통해 사람들의 개성을 표현하도록 돕는다고 볼 수도 있다.  패션이나 유행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대략 일곱가지 이상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무지개의 일곱가지 색, 한 옥타브의 일곱가지 음계, 등등, 신화나 인간사에서 일곱이라는 숫자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선택지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선택지 간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선택이 힘들어지며 선택을 기피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선택의 다양성이 매우 큰 경우, 선택의 다양성이 제한된 경우보다 오히려 열등한 결과를 낳는다.

개인이 선택권을 행사하는 것이 항시 당사자의 복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전문적 식견이 요구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전문가에게 선택을 위임하는 것이 더 낫다. 또한 당사자가 적극적으로 선택하려하지 않는 경우, 상황을 잘 아는 타인이 그를 위해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 미국에서는 당사자 개인이 직접 선택하는 것을 최고로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예컨대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의 생명을 중단시킬 위험이 있는 결정의 경우, 미국에서는 개인에게 결정하도록 요구하는 반면, 프랑스에서는 의사가 결정을 내리는 데, 프랑스 사람이 미국 사람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개인이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충분히 하지 않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저축을 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개인에게 저축 여부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평가는 타인이 그 사람에 대해 평가한 것보다 항시 더 긍정적이다. 사람들은 특정 상황에서 자신이 왜 그렇게 선택하는지에 대해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선택을 항시 긍정적으로 합리화할 수있다. 반면 타인은 그 사람 만큼 자세한 사정을 알고 있지 못하기에, 그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긍정적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은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고집센 사람이라고 평가한다거나, 자신은 자신이 일관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들 충동적이라고 평가한다거나, 자신은 관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를 냉혹하다고 생각한다. 주위 사람들의 평가를 냉정히 검토하여 자신을 고쳐나가면, 자신의 선택과 주위 사람들의 평가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많은 경우 선택은 어렵다. 선택이 어려운 경우, 가능한 선택지와 각 선택지에 대해 예상되는 결과를 써놓고 냉정하게 비교하여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권한다. 선택의 기술은 훈련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  '선택 일기'를 매일 쓸 것을 권장한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크고 작은 선택에 대해서, 가능한 선택지와 각 선택지에 대해 예상되는 결과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결정했는지를 매일 기록한 다음, 일이 어느 정도 전개되고 난 후 뒤돌아 자신의 과거의 선택의 잘잘못을 평가하는 작업을 반복한다면, 선택의 기술을 높일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쓴 고급 교양서이다. 놀라운 점은 저자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이다. 저자의 강연을 유투브로 찾아 들어 보니, 처음 소개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참가자 누구도 특별히 언급하지 않는다. 장애인을 대하는 가장 좋은 길은, 장애를 배려하여 특별하게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과 다름없이 대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장애인으로 콜럼비아대학교 교수가 되고, 이 책에 나오는 많은 실험과 연구를 하기위해 일반인의 몇 배의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 점을 생각했다. 흥미있는 책이다.

2022. 3. 7. 17:49

Matthew O. Jackson. 2019. The Human Network: How your social position determines your power, beliefs, and behaviors. Vintage Books. 240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이며, 관계망 분석과 게임이론의 전문가이다. 이 책은 인간 관계망(human network)의 특성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사람들의 행위 및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서술한다.

인간 관계망의 그림은 유형을 보인다. 내가 관계를 맺는 사람의 수(degree of centrality)가 많을 수록 나는 관계망의 중심에 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 못지 않게, 내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나의 친구의 친구는 나와의 관계의 강도는 떨어지지만, 나의 관계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나로부터 멀어질수록 낮은 비중을 두어 내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합산한 수치(eigenvector centrality)가 높을 수록 나의 영향력은 높아진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친구가 자신보다 친구를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friendship paradox). 이는 친구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관계망에서 더 많이 대표(represented or exposed)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다. 관계망에서 최고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같은 맥락에서, 파티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 즉 관계망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질병, 유행이 퍼져나가는 데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관계를 맺는 사람들 다수가 선호하는 의견을 따르는 성향이 있는데, 관계망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을 주변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시킨다. 관계망 내에 속한 사람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거듭되면서 중심 인물의 특정 의견이 물결처럼 퍼져 나가서 결국 관계망에 속한 모든 사람을 감염시킨다.

관계망은 금융 위기가 퍼져나가는 양상에도 적용된다. 많은 금융기관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대형 은행은 그것에 문제가 발생할 때, 금융 시스템 전체로 문제를 확산시키기 때문에, 2008년의 금융위기 때에 정부가 나서서 대형 은행의 부실을 대신 떠안음으로서 금융기관 관계망 전체로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막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성격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관계 맺는 성향이 있다(homophily). 사람들의 류류상종 성향은 인종, 계급, 종교 간에 거주지와 사회관계망의 분리를 만들어 냈다. 서로 분리된 사회 관계망 사이에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며, 합의에 도달하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사회적으로 성공하는지에 관한 유용한 정보로부터 단절되어 있으므로 가난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일자리에 대한 정보망도 두 집단 사이에 단절되어 있다. 좋은 일자리에 대한 정보는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접근가능하다. 대학을 진학한 사람들을 가진 중류층 이상의 관계망과 대학 진학 경험이 없는 사람들로 가득찬 가난한 사람들의 관계망은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다. 이것이 세대간 계층이동을 어렵게 하고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요인이다. 빈곤 타파를 위해, 물질적 지원 못지 않게, 그들의 부족한 정보를 도와주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공부를 잘하게 되는지, 대학은 어떻게 갈 수있는지, 대학에 가기위해 마련된 사회적 지원 등에 대한 정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중류층은 부모와 주변으로부터 이러한 정보를 쉽게 접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관계망 속에서는 이러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이 다수의 의견에 따르고 다수의 행태를 모방하는 성향은, 의사결정에서 눈덩이 효과를 만들어 낸다. 첫 한두 사람은 독립적으로 판단하지만, 세번째 사람부터는 앞사람의 선호를 하나의 유용한 정보로 받아들이므로서 의사결정이 한쪽으로 쏠리는(herding) 효과를 만들어 낸다. 여론, 유행, 대중문화의 전파에서 영향력 있는 소수의 사람(influencer)의 선호가 그를 관찰하고 모방하는 다수를 휩쓰는 현상이 흔히 발생한다. 

인터넷과 정보기술은 정보의 전달 효율을 높였지만, 그 못지 않게, 유사한 의견의 사람들의 군집을 형성케하는(clustering) 효과를 가져왔다. 인터넷과 social media는 사람들을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의견에만 접하도록 돕고, 거짓 정보를 쉽게 퍼뜨릴 수 있게 함으로서, 미국의 정치가 양극화하는 데 일조하였다. 

관계망 분석은 개인이나 조직을 넘어서서 국가간에도 적용된다. 근래에 들어 국가들 사이에 무역 관계가 밀접해 지면서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서로간 상호 작용을 자주하고 서로 간 걸린 것이 많을수록, 관계의 깊이는 깊으며 쉽게 끊어버릴 수 없게 된다.

이 책은 저자의 연구 경험을 쉬운 말로 풀어 놓은 책이다. 많은 이야기가 상식적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체계적으로 서술한 점에서 생각을 돕는다.

2022. 3. 3. 16:52

Siddhartha Mukherjee. 2010. The Emperor of all maladies: A Biography of Cancer. Scribner. 470 pages.

저자는 암전문의학자이며, 이 책은 인류가 암을 치료하기 위해 노력한 역정을 서술한다. 암을 둘러싼 과학적 연구와 의학지식의 발전 과정을 비전문가가 이해할 수 있도록 연구자의 입장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한다.

암은 서기 2500년전 이집트의 기록에도 나올만큼 인류와 함께 한 병이다. 근래에 인간의 수명이 크게 연장되면서 사망원인의 선두를 달리게 되었다. 암은 나이가 들면서, 특히 55세 이후에 주로 발병하기 때문이다. 1800년대 전반까지 암에 대한 치료법은 사실상 전무하였다.

암에 대한 치료의 시작은 종양을 떼어내는 수술적 방법에서부터 시작한다. 19세기 중반 마취가 도입되기 이전, 19세기 후반 세균의 존재가 확인되기 전부터 종양을 외과적 수술로 제거하는 치료가 이루어졌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수술로 제거하는 부위를 확대하여 암이 주변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하였으나 암의 재발을 막지 못했다.

19세기 후반 방사능이 발견되고, 방사선에 노출될 때 암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방사선으로 신체 내부의 종양을 들여다보는 방법이 보급되었다. 강력한 방사선에 종양을 노출시켜 태워 없애는 방사선 치료가 시행되었다.

20세기 중반에는 독성물질로 암세포를 죽이는 화학 요법이 확대되었다. 미국에서 1950년대 무렵부터 암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암을 치료하는 기적의 약을 찾으려는 노력이 전사회적으로 벌어졌다. 국립 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가 설립되고, 암 연구를 위한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원을 뒷받침하는 법이 제정되고, 암을 퇴치하려는 사회운동이 전면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암세포를 죽이는 다양한 독성물질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곧 한계에 부딛쳤다. 암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가 없었기 때문에, 암 치료법을 찾는 것은 상대를 알지 못하면서 공격하는 것이었다. 독성물질은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분하지 못했으므로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도 무차별하게 함께 죽였다. 독성을 강화해서 암세포를 박멸하려는 노력은, 살아남은 암세포가 타기관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1970년대에 화학요법이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으나, 이러한 방법으로 암을 치료하거나 암환자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는 미미하였다.

화학 요법의 효과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암을 예방하는 노력에 관심이 높아졌다. 인류의 질병 퇴치 역사는 병에 걸린 사람을 고치는 것보다는 위생환경의 개선이나 백신 등으로 병에 걸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을 통해서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암 치료에도 적용하려는 노력이 전개되었다. 암을 유발하는 요인에 대한 발견이 이어졌다. 굴뚝 청소부의 음낭에서 암이 많이 발생하고, 석면을 다루는 노동자에게서 암이 많이 발생하고,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에게서 간암이 많이 발생하고, 위장내의 바이러스가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속속 발혀졌다. 특히 흡연자에게서 폐암이 압도적으로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역학조사를 통해 확인되면서 담배회사와의 법정 싸움이 벌어졌다. 담배회사들은 1980년대에 들어서야 결국 담배가 암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였으며, 이후 흡연을 경고하고 줄이려는 사회적 노력이 벌어졌다. 유방 및 자궁 경부의 정기검사를 통해 유방암과 자궁암을 예방하는 노력은, 55세 이후의 고령층에게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980년대 무렵부터 서서히 암의 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어졌다. 암은 돌연변이한 유전자가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암 유전자는 일반 세포의 두가지 기능, 즉 세포의 증식을 촉진하는 기능과 세포의 증식을 제어하는 기능의 양쪽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다. 암 유전자는 세포 증식을 무한히 계속하며, 세포 증식의 통제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세포가 무한히 증식하여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다. 또한 암 유전자와 그것의 작동 방식은 단일한 유형이 아니라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오랜 기간동안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누적된 결과, 마침내 암으로 발전하게 된다. 암은 수년 동안의 변이가 아니라 수십년간의 변이가 축적된 결과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몸속 어딘가에 암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품고 있다.

일부 종류의 암에 대해 특정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일부 종류의 유방암 세포, 일부 종류의 혈액암 세포에 대해서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독성물질이 개발되면서, 과거에 무차별적인 독성물질의 부작용을 제거한 화학요법이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일부 암세포의 유전자와 결합하여 그 유전자의 세포 증식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약물도 개발되었다. 화학 요법과 방사선 치료를 결합하고, 암의 유전자 활성화를 막는 약물까지 더해지면서 암 치료의 성공율은 높아졌다. 특히 혈우병과 유방암 치료에서 성공이 두드러졌다.

암 세포로 돌연변이할 가능성이 높은 유전인자에 대한 발견도 이어졌다. 특정 유전자를 보유한 가족의 여성들에게서 유방 암 발병 확율이 높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러한 여성들은 사전적으로 유방을 제거하거나 아니면 암 유전자의 활성화를 막는 약물을 사전에 복용하는 조치가 권장되었다.

암에 대한 치료가 근래에 빠르게 발전하기는 하지만, 암을 완전히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암은 정상 세포의 분열과정에서 발생하는 변이이므로, 인간이 정상적인 생명활동을 하는 한 돌연변이의 암세포가 출현할 가능성이 항존한다. 암 세포를 치료하려는 다양한 노력은 그에 맞추어 돌연변이를 통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새로운 암 세포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암 세포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암 세포의 변이에 맞추어 지속적으로 새로운 치료 방법을 개발하면서 정상적인 생명 활동을 연장하는 것이 최선의 암 치료이다.   

이 책은 과학적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잘 그리고 있다. 기존의 이론에 대한 의문과 도전이 왜, 어떻게 전개되며, 우연적인 사건이 의문을 푸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끈질긴 추적이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 혹은 좌절을 맛보는지, 등등이 차근히 서술된다. 1980년대까지 암의 작용기전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 없이 깜깜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물량공세로 사방을 두드리면서 치료방법을 찾지만, 결국 미미한 성과만을 거둔채 좌절을 맛본 과정이 인상적이다. 암은 1980년대까지 효과가 있는 치료 방법이 없이 사실상 걸리면 죽는 병이 었다. 현재에도 췌장암이나 방광암 등은 치료방법이 없이 사실상 죽는 병으로 남아 있다. 저자는 책의 맨 끝에서, 암의 작동 방식에 대해서 여전히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암은 어떻게 전이되며, 왜 정상세포과 달리 세포 증식이 무한히 일어나는지, 그결과 수십년이 넘은 암세포가, 숙주는 오래 전에 사망했는데, 실험실 유리관에서 여전히 증식을 계속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한다. 복잡한 과학적 논리와 의학적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함에도, 400쪽이 넘는 분량을 흥미진진하게 단번에 읽었다. 이렇게 긴 책을 질리지 않고 읽기는 쉽지 않은데, 저자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솜씨가 대단히 훌륭하다. 풀리쳐 상을 받은 작품답다.

2022. 2. 23. 17:49

Richard Wrangham. 2019. The Goodness Paradox: the strange relationship between virtue and violence in human evolution. Vintage. 284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며, 인간이 온순해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계획적 폭력성은 상존한다고 주장한다. 개나 고양이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하도록 길들여진 반면, 인간은 외적인 개입 없이 스스로 온순해지는 과정을 밟아 왔다(self-domestication hypothesis).

동물의 폭력성은 두가지 종류로 구분된다. 첫째는 상대의 도발에 대해 즉흥적으로 반응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이다(reactive violence). 대부분의 폭력적 행동은 이 범주에 속한다. 둘째는 상대의 명시적 도발이 없는 상태에서 미리 계획을 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경우이다(proactive violence). 전자가 감정적 흥분 상태에서 하는 행동이라면, 후자는 냉정한 손익, 승패의 계산 하에 하는 행동이다. 계획적 공격을 하는 경우는 침팬지나 늑대 등 소수 고등 동물에게만 관찰된다.

개나 가축을 길들인 과정은, 인간이 개입하여 온순한 후손을 계속 선별하여 온순한 유전자를 가진 후손만을 증식시킨 결과이다. 신석기 시대에 현생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래 인간은 꾸준히 온순해졌다, 즉 폭력적 성향이 감소하였다. 이러한 진화의 과정은, 소규모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즉 집단의 규범을 크게 위반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집단 내에서 두드러지게 폭력적인 사람을 제거함으로서 집단 구성원들간에 협동이 보다원활해진다.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협동이 원활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생존력이 높기 때문에 진화의 수레바퀴가 그러한 방향으로 굴러간 것이다.

소규모 집단 내에서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일탈자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덜 힘센 구성원들 사이에 일탈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모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언어가 발달한 인간들 사이에서만 이러한 정밀한 소통과 집단 행동이 가능하다. 인간을 제외한 동물 세계에서 폭력적인 일탈자를 계획적으로 제거하는 관행이 발달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역사상 존재하는 수렵 채취사회를 관찰해 보면 지위의 불평등도가 낮으며 평등주의 이념을 강력히 옹호하는데, 이는 바로 진화의 결과이다.

인간의 도덕성이란, 집단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심리적 성향이다. 공정함을 추구하는 심리, 자신에게 손해가 가더라도 집단의 규율을 위배하는 사람을 벌 주고 싶어하는 심리, 등이 진화를 통해 형성되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침팬지에게서는 이러한 심리적 성향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도덕적 성향은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며, 동시에 그러한 심리를 가진 개인에게도 이익이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도덕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배제되지 않으려는 욕구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자신이 속한 집단으로부터 포용되고 인정받는 것은 자신의 생존 및 후손의 번영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가하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집단 규범에 위배하는 구성원을 제거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공격하는 경우이다. 동물은 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만 미리 계획하여 폭력적 공격을 감행한다. 상대에 비해 압도적 전력을 동원하거나, 혹은 불시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방식으로 공격하여 승리를 거둔다. 상대와 전력이 대등하거나 상대가 나의 공격을 예상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격을 감행한다면 나에게 피해가 클 것이기에 결코 공격하지 않는다. 인류가 이웃 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것은 동물들의 폭력적 공격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인류 사회의 가파른 위계구조와 군사 조직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요컨대, 인류의 진화 과정은, 즉흥적 폭력 행사를 지속적으로 줄여왔으나, 그와 함께 계획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을 동반하였다.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의 폭력 독점과 법치의 결과, 감정적 격발이 초래하는 즉흥적 폭력 행사는 현저히 줄었다. 반면 국가간 충돌에 대규모의 폭력을 동원하는 것은 여전하다. 인간이 과거에 비해 덜 폭력적이라고 단순히 말하기 힘든 이유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최고로 생각하고 타집단을 낮추어 보는 부족주의(tribalism),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가 근래에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므로 인간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이 책은 저자의 self-domestication 가설을 옹호하는데 전적으로 몰두한다. 무수히 많은 인류학적 서지 사례와 동물행동학의 사례들을 인용하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설명하여 읽기가 힘들었다. 절반 정도의 분량으로 했다면 좋은 책이 되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2022. 2. 17. 13:31

Daniel Gilbert. 2006. Stumbling on Happiness. Vintage books. 263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이 책은 인간이 저지르는 심리적 오류들을 설명하면서,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인간의 심리적 속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감정이란 주관적이다. 동일한 물건이나 상황에 대해 사람에 따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느낀다. 특정 물체나 상황 자체에 행복감이 내재되어 있지는 않다.

인간의 기억은 과거에 발생한 일에 대해 요점만을 저장한다. 과거의 일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요점을 제외한 많은 부분을 채워넣어야 한다. 축적된 경험과 지식에 의지한 추론으로 세밀한 부분을 채워 넣는다.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한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다. 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바탕으로, 과거에 자신이 느낀 감정을 외곡하여 기억해 낸다. 이는 미래를 상상하는 경우에도 동일하다. 미래에 만일 내가 이러저러한 것을 하면 어떻게 느낄지를 상상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느끼는 감정에 의해 외곡되어진다.  그런데 미래에 내가 실제 그러한 것을 했다면 느낄 나의 감정은 미리 상상하는 느낌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지금과 그 미래 사이에 다양한 일이 벌어지면서, 지금 내가 상상한 일들이 미래에는 지금 내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 그러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합리화하는 성향이 있다. 미리 상상할 때에는,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불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러한 상황에 닥치게 되면 긍정적인 이유를 찾아내서 합리화한다. 타인이 볼 때 불행해 보이는 상황에 처한 사람이 오히려 행복하게 느끼는 이유이다. 세상의 일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서 다르게 다가올 수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일에 대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측면만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내가 미래에 어떻게 느낄지를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이 느끼는 느낌을 참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은 타인과 다른 사람이므로 다르게 느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사람은 느끼는 감정에서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내가 꿈꾸는 상황을 현재 실현한 사람들은 내가 상상하듯이 그렇게 큰 행복을 느끼면서 살지는 않는다. 따라서 내가 꿈꾸는 상황을 앞으로 실현한다고 해도 그리 크게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은 고된 일이며 상대적으로 볼 때 큰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자식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자식을 낳고 기른다. 연구에 따르면 어느 정도 이상의 부는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부를 이룬 후에도 계속해서 열심히 참고 일한다. 왜냐하면 더 많은 부가 더 큰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된 믿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진화의 과정에서 사멸했기 때문에,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은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뿐이다. 

요컨대, 인간은 행복이라는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리는 존재이다. 그곳에 도달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만큼의 행복은 찾아오지 않는다. 행복감이란 주관적 감정이므로 물건이나 상황 그 자체에 행복이 있지 않다. 따라서 그러한 물건을 획득하고 상황에 도달한다고 해도 달리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신기루를 쫒아서 열심히 달려가는 것이외에 대안은 무엇인가? 현재의 상황에서 행복을 발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현재에 만족하고 행복해한다면 열심히 계속 달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번성할 수 없다. 인간의 욕구과 사회의 필요가 어긋나기 때문에, 사회는 인간에게 그릇된 믿음을 심어주었다. 인간은 그러한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살도록 프로그램된 존재이다.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인상과 달리 행복에 관한 책이라기보다, 인식, 감정, 기억, 상상에 관한 심리학의 연구결과를 설명한 책이다. 많은 연구 결과를 설명하기 때문에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도록 읽으면서 여러번 되새겨보아야 했다.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때때로 쉽지 않지만, 나름 통찰력이 있고 읽는 재미가 있다.

 

2022. 2. 13. 22:37

김은국 (도정일 역). 2010. 순교자. 문학동네. 311쪽.

저자는 재미 소설가이며, 이 책은 1964년에 미국에서 발간된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목사를 중심 등장인물로 하여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다. 무의미한 세계에서 어떻게 의미를 찾으면서 살 것인가? 사람들은 무의미한 고통의 연속을 어떻게 참아내며 살아가는가? 종교는 사람들에게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준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는 살아 갈 수 없기 때문에, 허위, 환상이라고 할지라도 희망과 의미를 붙잡으려고 발버둥 친다.

핵심 등장인물인 신 목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고통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여 지도자로서 신망을 얻지만, 막상 본인 자신은 삶의 궁극적 의미는 없다는 '비밀'을 품고 힘들게 살아간다. 이러한 비밀을 견딜 수있는 사람은 많지 않기에, 그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쪽으로, -설사 그것이 거짓이라고 해도-,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천한다. 그를 움직이는 힘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책임이다. 그러나 본인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음을 화자에게 고백한다.

자신을 넘어선 타인들의 삶과 희망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목사 이외에 의사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대단한 용기를 가진 위인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그들 역시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분노하고 회의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그들이 살아가는 동력은 타인을 위해서 헌신하는 데에서 나온다.

소설의 맨 마지막에 화자는 부산의 난민촌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목사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처음으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삶이란 의미 있는지 여부를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답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긴박한 진행, 수월한 문체, 삶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지적이며 논리적인 추구, 등은 마치 외국 작품 같은 인상을 준다. 책을 손에 잡자마자 끝까지 단숨에 다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