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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에 해당되는 글 4건
2021. 9. 20. 10:33

Frans de Waal. 2007(1982). Chimpanzee politics: Power and Sex among Apes. John Hopkins University Press. 215 pages.

저자는 동물행동학자(ethologist)이며, 이 책은 네덜란드의 침팬지 동물원에서 3년간 관찰하고 분석한 결과를 서술한 것이다. 저자는 침팬지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전개되는 사회 활동을 권력 갈등이라는 주제에 촛점을 맞추어 서술한다. 침팬지들 사이에 벌어지는 행위를 연구자는 전지적 관점에서 관찰하고 서술한다. 침팬지들 사이의 권력 추구 행위는 인간의 가식이 벗겨진 상태에서 전개됨으로 훨씬 적나라하게 벌어진다.

이야기는 침팬지 집단의 최고 연장자 수컷인 예로인(Yeroen)이 위계서열의 정상을 차지한 상태에서부터 시작하여, 부상하는 도전자인 류이트(Luit)에게 권좌를 빼앗긴다.  그러나 류이트의 권력은 몇 달 지나지 않아 혈기 왕성한 젊은 도전자인 니키(Nikki)에게 권좌를 내주게 된다. 니키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 예로인의 협력이 필수적이었으므로, 그의 권력은 불안정하다. 예로인은 니키와 류이트 간의 갈등을 교묘히 이용하여, 자신이 니키보다 명예와 섹스를 더 많이 차지하는 노회한 정치를 구사한다. 침팬지들은 평소에 서로 마주칠 때마다 지위 위계에 따라 굴종과 과시를 교환하는 의례를 수행하는데, 권력 관계에 변화의 조짐은 이러한 굴종의 의례의 변화에서부터 서서히 나타난다. 예로인의 권력이 류이트에게 넘어가서, 굴종 인사를 하는 측이 류이트로부터 예로인으로 완전히 바뀌는데 거의 반년이 소요되었다. 

침팬지 집단은 성인 수컷 4명, 성인 암컷 10여명, 청소년과 아이들 여러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지위는 연령, 권력의 연합 관계(coalition), 물리적인 힘, 지혜와 성격, 등에 의해 결정된다. 힘이 가장 센 침팬지가 반드시 위계 서열에 가장 위에 서는 것은 아니다. 수컷은 권력과 지위를 추구하는 성향을 보이는 반면, 암컷은 집단의 화목을 추구하고 자신과 자신의 아이의 이익을 우선하는 행동을 한다. 예컨대 권좌를 차지한 수컷은 자신의 개인적 선호나 사소한 이익을 넘어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행동하는 반면, 암컷은 개인적 선호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암컷들 사이에도 지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컷들 만큼 지위 추구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으며, 지위 갈등의 빈도가 훨씬 덜하다.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은 개인의 물리적 힘과 함께 집단의 다른 구성원의 지지에 의존한다. 암컷들은 특정 수컷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데 중요한 지지 세력이다. 권력의 찬탈을 도모하는 수컷은, 암컷들을 더 많이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공을 많이 들인다. 권좌에 있는 수컷은 항시 다수의 암컷의 지지를 유지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예로인은 니키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존재인데, 젊고 거칠어서 암컷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니키보다 암컷들로 부터 더 많은 지지를 획득한다. 

약자들 사이에 연합을 통해 강자의 권력을 견제하는 행위는 항시 관찰된다. 예로인이 권좌에 있을 때, 류이트와 니키가 연합했으며, 류이트가 권좌를 차지했을 때 예로인이 니키와 연합했으며, 니키가 권좌에 있을 때 예로인은 공식적으로는 니키와 연합하고 때때로는 류이트와 연합하는 방식으로 양 쪽을 번갈아 이용함으로서 자신의 영향력을 최대로 했다. 또한 니키와 류이트는 예로인에게 이용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섹스를 할 때만은 서로에게 간섭하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서, 예로인을 견제하였다.   

섹스의 권리는 권력 위계와 동전의 양면이다. 수컷 사이에 권력 위계에 따라 섹스의 빈도가 비례적으로 분포한다. 니키보다 예로인이 섹스를 많이 한다는 것은, 공식적 지위와는 별개로 실질적 영향력에서 예로인이 니키를 앞섬을 의미한다. 아이러니는, 예로인이 세명의 수컷 중 섹스빈도가 가장 높지만 그는 성불구이므로 자녀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예로인을 포함한 침팬지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므로 본능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수컷에게 섹스를 허용할 것인가 여부는 암컷이 결정한다. 암컷은 수컷보다 체구가 작고 약하지만 수컷이 암컷을 섹스하도록 강제하지는 않는다. 암컷의 의지를 거슬러 수컷이 강제로 섹스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물다. 수컷은 그들 사이에 권력 갈등 때문에 암컷의 감정에 거슬리는 행위를 꺼려한다. 수컷이 암컷과 아이들을 심하게 공격하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수컷은 그들 사이에서와 달리 암컷을 심하게 공격하지 않으며, 공격하더라도 송곳니가 아닌 앞니만을 사용하므로 상처가 깊지 않다.

침팬지들 사이에는 행위 규범이 존재한다. 수컷은 암컷이나 아이를 괴롭히지 않는다. 수컷들 사이의 싸움에서도 다리나 팔을 공격하는 정도이지, 머리나 어깨와 같이 치명적 해를 입히는 공격은 하지 않는다. 침팬지들은 행위의 결과를 예상하여 전략을 짜고, 자신의 의도를 감추는 기만 행위를 구사하는데 능하다. 평소에 도움을 주고받는 계산적 행위를 통해 신뢰관계를 구축한 뒤, 필요할 때에 도움을 요청한다. 침팬지들은 수컷은 물론 암컷도 개개인의 성격에 차이가 크다. 섹스를 거부하고 동료 암컷보다 수컷과 주로 어울리는 수컷같은 암컷이 있는가 하면, 영향력이 크고 지혜를 발휘하는 노련한 암컷이 있다. 일생동안 한결같은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유대가 있는가 하면, 상황에 따라 수시로 편을 바꾸는 약한 유대도 있으며, 외톨이 암컷도 있다. 수컷들 사이의 관계는 항시 긴장이 바닥에 깔려 있다. 언제건 수컷들 사이에 연합이 바뀌면서 권력의 위계가 바뀔 위험이 있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 책이 포괄하는 관찰 기간 이후에 침팬지 집단에 새로운 권력 교체가 발생했다고 간단히 언급한다. 그 동안 거의 무시당했던 젊은 수컷인 댄디가 예로인의 도움으로 니키로부터 권좌를 찬탈한 것이다. 그 결과의 충격으로 니키는 물에 뛰어 들었고 심장마비로 죽었다. 예로인으로부터 권좌를 찬탈했던 류이트는 니키와 예로인의 공격으로 잔인하게 살해당했었다. 예로인은 노회한 정치가 답게, 시일이 흐른뒤 늙어서 자연사했다.

저자는 침팬지의 사회활동을 서술하면서, 인간들 사이의 행위와 대비하여 흥미롭게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일부를 인용하기도 한다. 침팬지들의 사회를 들여다보면서 인간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된다. 저자의 촛점이 뚜렷한 서술 능력이 설득력을 높인다. 저자는 이 책으로 일약 스타가 되었으며, 심지어 미국의 국회의원들 사이에 필독서로 추천되었다. 책이 처음 나온지 40년이나 되었는데, 수십 판을 거듭하면서 유명세를 지속하고 있다.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다.

2021. 5. 24. 08:01

Richard Haass. 2020. The World: A Brief instroduction. Penguin Press. 313 pages.

저자는 과거 미국 정부의 외교정책기획에 참여하였으며 현재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기관을 이끄는 전문가이다. 이 책은 국제문제에 관한 기본 상식을 배양하는 목적으로 쓰여진 개론서이다. 17세기 중반 웨스트팔렌 조약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세계 주요 지역의 개관, 국제적 쟁점 주제의 개요, 국제 질서의 프레임 이라는 네개 범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1989년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이 단독으로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으나 미국의 주도적 힘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화되었다. 세계는 유럽, 소련, 중국, 인도 등으로 구성된 다자간 세계 질서 multilateralism 로 이행하고 있다. 세계 지역 중에서 아시아의 중요성이 점차 부상하고 있다.

세계의 평화는 각국의 민주화 정도, 경제적 상호의존의 정도, 국제 관계를 조정하는 기관의 힘, 국제적 규범의 힘에 좌우된다. 이 네개의 요인 어느 것도 현재 상대로 보건대 평화를 보증하지는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70년간이나 평화를 지속해 왔지만, 앞으로 비평화로 이행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이 언제라도 비화되어 비평화상태에 빠질 수있다. 세계는 현재 무질서 chaos 의 상태이다. 

저자는 국제문제 전문가 답게 세계의 미래를 그리 낙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각 주제를 다루는 매 장의 후반에 자신의 견해를 간략히 서술하는데, 문제의 해결은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는 말을 빼 놓지 않는다. 과거의 역사를 보건대 현재의 세계는 언제라도 전쟁으로 치닫을 수있다고 진단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평화를 향하여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갈등의 소지에 대해 서로 머리를 맡대고 타협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국의 내정 문제가 정돈되지 않는 현 상황에서 미국의 지도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반면, 미국을 대체하여 세계를 이끌 지도적인 나라의 출현은 현재로서는 요원하기 때문에 세계의 미래를 낙관할 수없다. 이 책은 평이한 글로 쓰여진 개론서이다.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주제들을 모두 균형있게 다루려 했으므로, 특정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은 찾아볼 수없다.

 

2021. 4. 21. 17:12

Daron Acemoglu and James Robinson. 2006.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Cambridge. 379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정치학자이다. 이 책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않는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는지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다. 전반은 저자가 제시하는 이론에 관해 개념적으로 설명을 하고, 중반 이후는 수리모델을 적용해서 이 이론을 검증한다. 

정치는 집단간에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는 장으로서, 부를 가진 소수의 엘리트 집단과 가난한 다수의 대중들 간의 투쟁이 정치과정의 핵심이다. 비민주적 정치체제는 엘리트의 부를 지키는 데 기여하며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부의 몫은 적은 반면, 반대로 민주적 정치체제는 다수의 대중에게 부가 재분배되는 정책을 구사하므로 엘리트의 이익에 반하나 대중에게는 이익이 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서면 재분배 정책을 채택하기 때문에 소득의 불평등 수준은 완화된다. 엘리트가 대중의 위협이 없는 데도 자발적으로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대중사이에 밀고 당기는 관계로부터 민주주의가 출현하는데, 저자는 이를 게임 이론을 적용하여 이론화한다. 다수의 대중으로부터의 참정권 요구, 부를 나누라는 요구가 커지면 엘리트들은 이러한 요구를 물리적으로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 요구에 굴복하여 참정권을 확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매우 큰 데, 엘리트들이 무리하게 힘으로 억압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게 되며, 이 경우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타협하는 결정을 한 경우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엘리트들은 일시적으로 당근책을 제시하지만, 민중은 일시적 당근을 넘어서 미래에도 자신들에게 계속 유리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의사결정 제도를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대중이 엘리트로부터 미래의 분배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로 이행하거나, 혹은 이행하지 않는 유형을 네가지로 단순화한다. 첫째는 영국의 모델이다. 영국은 17세기에 명예혁명을 통해 귀족과 지주로 구성된 의회가 왕권을 견제하는데서부터 시작해, 19세기에 들어 수 차례의 정치 개혁으로 참정권을 점차 확대하여, 1870년대에는 남성 모두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는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엘리트가 참정권 확대를 양보하는 이유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셀 때 이를 물리적으로 억압하여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중의 요구에 타협하는 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영국은 상공인 계층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물리적 억압의 비용이 더 들게 된 반면, 참정권을 확대한다고 해도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해 엘리트가 떠앉아야 하는 비용이 적어지게 되었다. 엘리트가 토지에만 부를 의존하면, 대중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면서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상공업이 확대되어 엘리트의 부가 무역, 상공업, 인적자본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면, 대중의 억압이 초래하는 물리적 혼란의 비용이 매우 크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역과 상공업의 비중이 클 경우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부의 재분배 조치로 인한 희생은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훨씬 적다. 상공업의 부는 토지의 부보다 해외로 부를 이전하거나 조세를 회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로 양보하는 것을 쉽게 허락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민중의 요구가 특히 19세기에 거세졌을까? 이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등으로 민중의 정치 의식이 높아졌으며, 산업화, 도시화로 민중의 조직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이 주인 경제에서는 민중이 농촌에 흩어져 있어 조직화하기 어렵기에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약할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들어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간계층의 존재는 다수의 민중과 소수의 엘리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절충하는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중간계층이 성장하면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공고화되기 유리한 조건이 조성된다.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먼저 중간계층을 포섭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약화시킨다. 다음 단계에서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다시 높아지면 참정권을 조금 더 허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경로를 밟는다.

영국은 민주주의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을 밟았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민주주의의 틀을 조작하여 계속 유지하면서 민중의 재분배 요구에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판을 뒤집어 업는 것보다 엘리트들이 부담해야 하는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두번째 유형은 중남미 모델이다. 이 모델은 일단 형식적 민주주의가 들어서기는 하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등은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독재의 길을 걸어 오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형식적 민주주의를 만들기는 했으나, 쿠데타로 엎어지고, 다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1980년대말까지 반복해왔다. 대농장 소유에 의존하는 중남미의 엘리트들은 대중의 분배 압력에 못이겨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허용했다가, 이러한 민주 정부의 혼란으로 쿠데타가 발생하여 군부가 집권하면, 민주정부때 도입했던 재분배 정책이 취소되면서 엘리트의 이익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다시 민주주의의 압력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거듭하였다. 중남미는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면 엘리트들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매우 크다.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혁명으로 비화될 위험도 크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동의하기는 하나,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것에는 한사코 소극적이다. 민주주의 정부가 혼란에 빠져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엘리트들은 쉽게 이들을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 및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계기는 모두 경제적 위기 상태에 빠질 때 발생한다. 외부적 요인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격게 되면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세져서 엘리트가 양보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일단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어도 경제적 혼란에 처할 경우 이 정부는 군부 쿠데타에 쉽게 허물어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는 민중의 분배와 정의의 요구보다는 질서와 경제 안정을 우선시 하기에, 이들은 엘리트와 쉽게 결탁하며 기득권 집단에 유리한 정책으로 선회한다.

세번째 모델은 국민들이 참정권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비민주주의 체제로 싱가포르가 이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부의 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하며 정부가 능력에 따라 움직이도록 투명하게 개방되어 있다. 국민은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데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현재의 부의 분배와 삶의 수준에 어느 정도 만족하므로 엘리트의 독점적 권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요구함으로서 엘리트와 충돌하여 피해가 발생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의 보상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현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으므로 언제라도 민주주의 요구가 커질 수 있고,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주의 체제로 양보하는 것의 희생 역시 크지 않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싱가포르에는 국민의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네번째 모델은 민주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차단된 경우로, 인종차별이 철폐되기 이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에 해당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과 유색인사이에 부와 이념의 격차가 매우 크므로, 백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색인의 요구를 억압하려 하였다. 유색인들의 참정권 요구는 백인의 노골적인 폭력에 부딛쳐 좌절되었다. 북미 대륙에서는 인디안 원주민들이 질병과 살육으로 오래전에 제거된 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흑인 원주민들이 제거되지 않고 백인 지배자의 착취 대상으로 복속되어 20세기까지도 이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남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20세기 중반 이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가 다원화되고,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백인 권위주의 정권에 가해지는 내외의 압력은 점차 높아졌다. 경제 다원화에 따라 흑인들의 소득이 점차 상승하면서 백인과 흑인간에 불평등의 정도도 완화되었다. 1980년대 이래 백인들은 흑인들에 대한 억압의 고삐를 점차 늦추면서 흑인들과의 공생관계를 모색하였다. 넬슨 만델라라는 흑인 지도자가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백인과 권력을 분점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면서, 마침내 1990년대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중간층이 얇으며 소득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어려운 취약한 상태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민중들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 세계화가 확대되면서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한 엘리트의 희생이 감소한 것, 국제적 압력의 확대와 전염효과 등을 들 수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하던 아르헨티나, 칠레, 콜럼비아 등에서도 앞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의 다변화, 대중의 소득과 교육 수준 상승 등의 요인이 중남미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배링턴 무어가 "민주주의와 독재의 사회적 기원"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이행을 사회계급 사이의 구조적 관계로 설명함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제적 기원"이라는 유사한 책 제목을 달고 경제적 이해의 갈등 관계로 민주주의의 이행 여부를 설명한다. 두개의 논의는 모두 경제결정론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무어는 사회학자답게 보다 사회구조적인 배경에 설명의 촛점을 맞추는 반면, 이 책은 경제적 결정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정치학의 행위자 모델을 접목하는 설명을 한다. 경제 이외의 요인, 예컨대 인종이나 민족 등에 따른 정치적 갈등도 깊이 들여다 보면 경제적 이익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므로 경제결정론적인 설명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장으로 보는 접근 역시 독특하다. 모든 정치과정은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전개된다는 시각이다. 

이 책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이론에 대해 개념적 설명을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수리 모델을 제시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들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통찰력이 크며 감탄할만하다. 수리모델이 얼마나 타당하고 유용한지는 까막눈인 필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명쾌하다.

2020. 7. 31. 21:58

Douglas C. North, John Joseph Wallis, and Barry R. Weingast. 2009(2013). Violence and Social Orders: A Conceptual Framework for Interpreting Recorded Human Histo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82.

저자는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다. 이 책은 사회가 폭력을 통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방식을 이론적으로 설명한 전문 학술서이다.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폭력을 내포한다.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폭력을 제한하고 질서를 유지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회과학의 핵심적인 질문이다. 토마스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한 폭력을 자연상태로 상정하고, 사람들이 강력한 군주에게 통제를 맡김으로서 질서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치학의 이론이 국가를 단일체로 보는 오류를 범하는데, 사실 대부분의 국가란 단일체아니라 엘리트 간에 연합체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경제적 및 정치적 자원에 대하여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함으로서 특권 혹은 이권을 만들어 낸다. '자연상태의 국가'(the natural state)에서 엘리트들은 각자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는 만큼 이 특권을 나누어 가진다. 특권을 나누어 가지는 연합이 바로 질서를 유지하는 기제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 체제에서 폭력의 동원 능력은 중앙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어 있다. 중세 봉건 시대에 귀족들이 각자 군사력을 보유하며, 왕을 정점으로 한 이들의 연합이 바로 국가였다. 민주주의가 제도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도 마찬가지이다. 폭력을 동원할 수 있는 엘리트가 핵심에 있고, 이러한 체제를 유지하는데 기여하는 정치, 경제, 종교, 교육 엘리트의 연합을 통해 질서가 유지된다.

자연 상태의 국가에서 엘리트는 각자 세력의 규모에 따라서 특권을 나누어 갖는다. 엘리트간 세력 배분에 변화가 생기면 그에 맞추어 특권의 배분도 바뀌어야 한다. 만일 이 둘이 어긋날 경우 갈등이 폭발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 때까지 투쟁이 지속된다. 토지가 부의 원천이었을 때에는 지주계층이 통치 엘리트의 근간이었는데, 상업 및 산업자본가가 성장하면서 이들 새로운 엘리트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특권 지위를 요구했을 때, 기존 엘리트와 신흥 엘리트 간에 갈등과 투쟁이 벌어졌다. 질서, 즉 폭력이 없는 상태란, 엘리트간 폭력 행사 능력과 이권간에 균형이 맞아 엘리트 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 체제에 동참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엘리트 간에는 상호간 견제와 감시를 통해 폭력의 행사를 통제한다. 

자연 상태의 국가, 즉 '자원에 대한 제한된 접근만을 허락하는 질서'(limited acess order)에서는 모든 관계와 거래가 개인적(personal)이다. 각 사람의 능력과 특성과 변덕에 따라 관계와 거래가 좌우된다. 특정인이 죽거나 변화가 있을 경우, 그와 관계된 모든 거래는 무효화되거나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이러한 질서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몸이다. 경제적 이권은 정치적 지위를 뒷받침하는 수단이며, 정치적인 지위는 경제적 이권을 수반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정치적 지위와 독립된 경제 활동이란 있을 수 없다. 정치행위란 이권, 특권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자연 상태의 국가를 제도화의 정도에 따라 세개로 구분할 수있다. 가장 취약한 국가에서는 엘리트에게 특권이 배분되는 데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다. 모든 엘리트의 특권은 개인적 관계에 따라 임의로 결정된다. 이러한 질서에서는 특정 엘리트가 죽거나 변화가 생기면 엘리트들 사이에 특권의 재조정을 향한 갈등이 발생하므로, 매우 취약한 질서이다. 둘째는 기본적인 제도, 어느 정도 안정된 조직이 형성된 상태이다. 그러나 그 제도와 조직이란 여전히 특권을 차지하는 개인에 궁극적으로 좌우되므로 불안정하다. 세번째는 성숙한 단계로, 국가의 통치 조직이나 경제활동의 조직만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다양한 조직이 형성되어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러한 조직에의 접근이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에 대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open acess order)는 19세기 중반에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현하였다. 이 질서는 '법에 의한 지배',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존재하는 '제도의 영속성', '누구에게나 개방된 익명적인 거래' 등을 특징으로 한다. 누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누구를 아는지, 출신 배경이 어떠한지, 성, 인종, 민족, 종교 등과 상관없이 능력과 자격이 되는 사람은 누구라도 조직 자원에 접근할 수있다.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투명하게 지위와 자원이 배분된다.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법을 만드는 데, 즉 정치과정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있다. 폭력은 국가에 의하여 독점되어 관리되며, 폭력을 통제하는 사람은 선거와 의회 등 정치과정을 통해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폭력을 통제하는 기구와 그 기구에서 역할을 맡은 사람은 분리되어 있다. 그 사람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임기가 끝나면 물러난다. 이 질서에서 국가의 역할은 소극적인 폭력의 통제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구성원 모두가 자원에 접근할 수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미친다. 보통 교육, 사회보장제도, 공정한 시장의 관리 등이 그것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자원을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하므로 경제성장율이 높으며, 위기에 대한 대응 능력이 크다.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 문제를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있는 아이디어와 능력을 가진 사람과 조직이 경쟁을 통해 선발되기때문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을 통해 발전할 수있다. 반면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는 기존에 특권을 누리는 엘리트 개인의 역량에 따라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제한되며, 위기에 대한 대응과 함께 엘리트들 사이에 세력의 재조정이 진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다.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는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보다 훨씬 안정되며, 실제 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낮다. 지위를 차지한 사람과 조직과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어 있고, 이들에 도전하는 것이 상시적인 기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는 야당이, 경제에서는 경쟁 기업이 항시 감시하고 경쟁하므로, 특권이나 이권이 생겨난다고 해도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제한된 접근만을 허용하는 질서'에서 '개방된 접근을 허용하는 질서'로 어떻게 이전할 수 있을까? 자연 상태의 국가의 엘리트가 '법에 의한 지배'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과 독립되어 영속적으로 존재하는 조직'을 인정하는 것이 개인적 지배나 특정 개인에 좌우되어 조직이 운영되는 것보다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생겨나게 된다. '법에 의한 지배'를 허용한다는 것은 법에 의해 자신을 구속하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엘리트들 간에 관계가 안정적일 때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밀고당기기를 하는 것보다, 예측 가능한 규칙을 만들어 서로간에 이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될 수있다. 개인으로부터 독립되어 존재하는 조직을 통해 정치와 경제적 거래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이견을 조정하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해내는 상황에서만 엘리트들은 개인과 독립된 조직을 인정한다. 폭력 행사력 즉, 군사력이 엘리트들에게 분산되지 않고 중앙에 집중되어 있을 때, 엘리트들은 폭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려는 성향을 내려놓는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자유롭게 조직을 만들 수있고, 엘리트들과 그들의 조직간에 경쟁에서 패한다고 하여도, 폭력의 위험을 느끼지 않고 완전히 게임에서 배제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될 때에만 엘리트들은 그러한 경쟁에 참여한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은 급격하게 일시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정도를 높여 발전해 가는 과정이다. 모든 사회가 반드시 이러한 발전과정을 밟는 것은 아니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회는 자연상태의 국가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 단계 내에서도 제도화의 정도가 다양하고 퇴행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엘리트들이 자신의 특권을 내려 놓고 공정한 경쟁의 룰에 따르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자신에게 폭력이 행사될 위험을 느끼지 않으면서 반대를 할 수 있는 제도와 믿음을 정착시키는 일은 형식적인 선거나 의회의 존재만으로 되지 않는다. 

저자는 자연상태의 국가에서 자원에 대한 접근이 제한된 질서를 설명하는 예로 중세시대 영국의 토지소유제도를 분석하며, 자연상태의 국가 중에서도 성숙한 제도화의 단계에 도달한 영국이 그렇지 못한 프랑스에 비해 전쟁을 위한 동원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기에 영국이 프랑스를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자원에 대한 접근이 개방된 질서'가 '접근이 제한된 질서'보다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기에 서구가 세계의 다른 지역을 제압할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은 매우 독창적인 이론과 분석을 제시한다. 기존의 정치학의 이론을 뛰어 넘어 눈을 확 뜨게 하는 통찰력을 제공한다. 사회과학의 핵심 질문에 대해 가장 설득력있는 설명을 제시한다. 여러번 읽으며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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