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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3. 11. 14:21

Robert Tignor, et.al. 2011. Worlds Together, Worlds Apart. Vol 2. From 1000 CE to the Present. 3rd ed. W.W. Norton. 481 pages.

이 책은 미국 대학의 세계사 교과서이다. 이 책은 다른 세계사 서술과 달리 유럽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다. 서구 유럽은 물론, 이슬람, 인도, 아시아, 중남미, 등을 고른 비중으로 다룬다. 서구의 역사 전개를 자세히 알기 어려운 반면, 동시대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지역과 문명권 사이에 어떤 상호 작용과 교류가 있었는지 이해하게 해준다. 매 찹터에서 여성과 소수집단의 역할을 비중있게 다루는 점 또한 특징적이다. 미국에서 쟁점이 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ectness 원칙을 잘 따른 책이다.  세계사의 전개에서 이슬람의 역할을 크게 보며, 중국과 함께 일본을 비중있게 다룬 점이 눈에 띤다. 한국 전쟁을 제외하면, 한국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세계의 전개를 균형있게 볼 수 있도록 하며, 세계 전지역의 다양한 역사들을 망라식으로 지루하게 서술하지 않는 점을 살만하다.

이 책의 단점이라면, 이 책만 읽어서는 서구가 이끈 근대의 탄생과 전개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기존에 서구 중심의 역사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있어야만 이 책에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전세계적 맥락에서 근대의 전개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 혁명, 산업 혁명, 등 근대를 만든 주요 계기를, 불과 한두페이지로 기술하는 것은 좀 심한 것 같다.

2023. 9. 2. 22:32

Diego Olstein. 2021. A Brief History of Now: The Past and Present of Global Power. Palgrave Mcmillan. 354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19세기 영국의 제국주의에서부터 시작해 근래까지, 미국의 패권과 이에 대항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분석적으로 서술한다. 각 시기별로 각 세력 집단을 유형화하여 설명한다.

영국은 18세기 말 이래 산업혁명으로, 19세기 중반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대내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와 산업화가 결합했으며, 대외적으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를 밀어붙였다. 독일과 미국은 영국의 압력에 맞서 보호무역 정책을 강력히 실시하면서, 19세기 후반 후발 산업화와 민주주의 확대에 성공하면서, 20세기에 들어 영국에 대항하는 강국으로 올라섰다. 반면, 러시아, 오스만 터키, 중국 등, 자국의 신민을 권위적으로 억압하는 전통적인 제국들은, 영국이나 독일과 같이 산업화를 통해 군사력을 높이고 싶었으나, 국민의 참여를 높일 경우 권력자들이 권력을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개혁이 좌절되고 강국으로 올라서는데 실패하였다.

독일은 후발 산업화를 통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였으나 그에 걸맞게 식민지를 확보하지 못하여 불만을 가지고, 결국 1914~18년, 1939~45년에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두차례의 전쟁을 계기로 영국, 프랑스, 독일의 국력은 소진되고 식민지를 잃은 반면, 미국은 영국을 대체하는 새로운 강국으로 떠올랐다. 러시아는 일차대전 중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공산주의 이념을 추종하는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영국과 미국이 대표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미국은 영국과 달리, 식민지를 직접 지배하는 제국주의를 지향하지 않았다. 대신 압도적 군사력과 세계 곳곳에 군사기지를 구축하여 정치군사적으로 세계 국가들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엄청난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차대전후 유럽의 복구를 지원하고, 무역과 투자, 다국적 기업 등을 통해 세계 경제를 실질적으로 지배했으며, 미국의 대중문화와 미국인의 꿈 이념을 통해 세계인의 의식을 사로잡는 등, 세계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였다.

제이차대전 이후 서구의 제국주의으로부터 독립한 식민지 국가들은 민족자결 원칙을 기반으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적 국가주의가 결합된 체제를 채택하였으며, 미국과 소련의 패권에 추종하를 거부하고 비동맹의 제삼세계를 지향하였다. 중남미,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가나 등이 이러한 나라들이다. 이들은 보호주의 장벽을 높이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려고 하였으나 산업화와 민주주의에 실패하였으며, 정치적 혼란을 겪으면서 민주주의 형식을 갖춘 권위주의 체제를 지속해오고 있다. 이들 제삼세계 국가들은 1990년대의 세계화에 편승하여 원자재를 수출하면서 경제적으로 힘겹게 버텨나가고 있다.

미국의 패권에 포함된 서구 국가들은 1930년대 대공황속에서 케인즈의 경제정책을 따라 국가의 역할을 확대하였으며, 이차대전 이후 고도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후 미국은 정보통신기술과 운송기술의 발달과 함께 산업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이 높아지고 성장을 지속하였다. 제조업은 해외로 이전하고, 국내에서는 금융, 서비스, 리서치 등에 주력하는 국제분업 세계화의 선두에 올라섰다. 그 결과 부의 집중과 불평등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소련은 중앙집중 경제와 권위주의 체제의 비효율이 갈수록 악화되었으며, 1980년대에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1980년대 후반, 폴란드, 헝가리, 동독, 등에서 소련의 장악에서 벗어나 민주화 시도가 진행되어 결국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으며, 1991년 소련이 해체되었다. 동구권은 서유럽에 편입되었으며, 러시아는 1990년대의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결국 민족주의와 권위주의가 결합된 약화된 강국으로 복귀하였다.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권이 수립된 이후 모택동 치하에서 큰 혼란을 겪었다. 이후 1978년 등소평이 집권하여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지난 사십년간 고도 성장을 통해 미국 다음의 강국으로 올라섰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미국과 선진산업국에서 1980년대 이래 구조조정으로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한 것과 절묘하게 맞물려 성공할 수 있었다.

1980년대 이래 신자유주의 정책과 국제분업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선진 산업국에서는 불평등이 높아지고 성장에서 소외된 집단의 불만이 커졌다.  그 결과 민족주의와 반세계화의 목소리가 높아져 트럼프와 같은 극우 정치인이 등장하고, 세계에 대한 미국의 지배력은 약화되었다. 1960~70년대의 베트남 전쟁의 실패, 2003년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쓴 이라크 침공, 아프간 전쟁의 실패 등으로 미국의 정치 군사력에 대한 세계의 존경은 사라졌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비중이 줄었으며, 미국의 이념과 문화의 매력 또한 빛바래게 되었다.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면서 각 나라들은 각자 도생의 민족주의적 성향이 높아지고 세계 질서는 다극체제로 이행하였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 industrial revolution 이래 세계는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20세기 후반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정보혁명 information revolution 에 접어들었으며, 근래에 한단계 더 높아진 인공지능 혁명 Artificial Intelligence Revolution 으로 들어가고 있다.  인간의 지적인 분야를 기계가 맡게 되면서 인류의 삶의 방식은 앞으로 크게 바뀔 것이다.

저자는 미국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며, 아마도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추측되는데, 중남미의 변화에 깊이있는 이해를 보인다. 미국과 서유럽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세계의 다른 나라들, 특히 제삼세계의 입장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드문 역사 서술이다. 후반부에서는 분석의 정치성이 떨어지지만, 전반적으로 세계의 흐름에 대해 높은 통찰력을 제시한다.

2023. 5. 6. 22:34

William McNeill. 1991(1963). 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 University of Chicago Press. 80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대표작으로서 고대에서부터 1950년경까지 세계 문명의 전개를 설명한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를 포함한 중동지역이 인류의 문명을 대표한 500 BC 경까지, 이후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이 유라시아대륙의 곳곳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농업 혹은 상업을 기반으로 한 문명들(헬레니즘, 인도, 중국, 이슬람 제국)을 위협한 시기인 서기 1500년까지, 전세계에 대한 서구의 압도적 지배로 요약되는 1500년 이후 현재까지, 이렇게 인류 역사를 세개의 시기로 구분을 한다. 그는 세계의 문명권이 고대부터 서로 영향을끼치며 전개되어 왔다는 점, 1500년 총포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라시아 대륙의 발전은 중앙아시아 유목 민족의 전개에 의해 크게 좌우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류의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기원전 3,000년 경에 이곳에서 농경이 처음 시작되고 도시가 출현하였으며, 부족의 규모를 넘어선 큰 규모의 정치체가 등장하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이후 변방으로 확대되어, 기원전 1700년경에는 이집트, 소아시아, 크레테, 이란으로 확대되었으며, 이후 인도, 그리스, 중국 문명이 기원전 500년경까지 세워졌다. 중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과는 독립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인도와 그리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영향을 받아 세워졌다.

그리스 문명은 서쪽으로는 로마제국과 서유럽으로, 동쪽으로는 소아시아의 헬레니즘으로 확장되었다. 인도문명은 동남아시아로 확장되었으며 중국에 영향을 미쳤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은 철기문화를 일찌기 발전시키고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멸망시켰으며, 이란 아프간 지역으로 남하하면서 인도 문명을 위협하였다. 중앙아시아를 장악한 유목민족들은 중동과 중국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통해 문명간 교류를 활성화하였다. 이들은 서쪽으로는 동유럽 지역으로, 동쪽으로는 중국을 수시로 침범하면서 기존 사회의 변화를 촉발시켰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작된 이슬람 문명은 동으로는 이란과 인도 지역으로, 서로는 이집트와 북아프리카로 확장하였다.

1500년까지 서유럽은 문명의 변방지대에서 낙후되었었다. 그러나 이후 항해 및 총포 기술과 함께 체계적으로 군사를 조련하는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다른 모든 지역을 압도하는 전쟁 능력을 획득하였다. 서유럽이 중국, 인도와 비교하여 이렇게 크게 발전한데는, 여러 작은 정치체들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전쟁 능력을 함양한 것, 지주층과 비교하여 상공인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던 점이 큰 이유이다. 서유럽의 이러한 전통은 중세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부터 발전되었다. 반면, 중국은 지주세력이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하여 상공인의 발전을 억눌렀다. 또한 상대적으로 안정된 중앙 집권체제가 계속 유지되면서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의 힘이 매우 강했으며, 다수의 정치체들간 경쟁을 통한 변화의 역동성이 부족하였다.

중앙아시아의 광대한 초원지역에 사는 유목민족은 주변의 농경민족보다 군사적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에 수시로 주변의 문명들을 위협하였다. 서쪽으로는 헝가리까지 진출하였으며, 이들의 압박으로 역시 유목민족이던 고트족이나 게르만족이 서유럽으로 밀려나 정착하였다. 유럽인은 고대부터 군사적 경쟁을 통해 성장하였으므로, 호전적인 문화가 바탕에 깔려있다. 유목민족들은 남으로는 북인도로 진출하여 인도 유러피안어족의  인도문명을 세웠다. 이들은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국의 원나라, 청나라, 금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의 문화에 흡수되는 길을 택했다.

중동지역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시작해, 이후 헬레니즘을 수용하고, 이슬람 문명을 발전시키면서, 오랜동안 주변의 다른 문명권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후계자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을 거듭하였으며, 노예를 기반으로 군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들의 거듭된 반란으로 국력이 쇠하였으며, 신정 정치가 계속되면서 변화를 거부하여, 외부의 위협에 대응한 내부의 개혁을 추진하지 못하였다.

1500년경 이후 서구 문명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이후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으로 이어지는 세계 확장의 길에 접어든다. 1400년경 부터 서유럽은 점차 기독교의 지배에서 풀려나,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세속적인 합리주의가 세를 더하였다. 이는 1700년대에 계몽주의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은 국민의 힘을 키우고 민족국가를 형성시킨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170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생산력을 크게 향상시켰으며 급속한 인구증가로 이어졌다. 결국 1800년대 중반쯤 세계 모든 지역은 서구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한편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들은 유라시아대륙에 비해 3,000년 정도 문명의 발전이 낙후되어, 1500년경 서구와 만났을 때 아직 철기문화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무엇보다 유라시아대륙의 질병에 취약하여 쉽게 무너졌다. 서구의 위협에 대응해 자신의 선조로부터 계승한 문화의 무력함에 절망한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서구의 문화를 급속히 수용하였으며, 자신의 전통 문화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저자의 역사관은 두가지 점에서 독특하다. 첫째, 세계는 서로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 어느 지역에서 좋은 아이디어나 발전이 전개되면, 이것은 얼마 안되어 주변지역에 모방되고, 이러한 과정이 빠른 속도로 전지구를 돌며 영향을 미친다. 둘째, 서구가 앞서기 전인 1500년 무렵까지 유목민족의 뛰어난 군사적 능력이 세계사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총포의 발명으로 유목민족의 파괴력이 무력해진 후에도 여전히, 군사적 능력은 역사의 전개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서구가 세계를 제패한 것은 우월한 군사력 덕분이다.  현재 세계는 서구의 문명권에서 살고 있으며, 앞으로 이를 대체할 어떤 다른 문명이 등장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인류의 과학기술 문명이 계속 발전하면, 아마도 미래에 인류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현재의 인류를 대체하는 새로운 인류가 등장할 수도 있다.

저자는 역사의 전개를 거시적으로 접근하면서 말로 많이 설명한다. 다양한 사회와 제도, 지역, 시간을 종행무진으로 비교하면서 엄청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지금까지 학교에서 공부한 역사는 서유럽에 국한된 역사이며, 통찰력과는 거리가 먼 단순 학습이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인간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높이는 데에 역사 공부의 목적을 둔다면, 이 책은 정말 최상의 교재이다. 감탄을 거듭하면서 800쪽의 책을 읽었다. 여러번 읽을만한 책이다. 다만 20세기의 역사나, 동아시아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는 아쉬움이 있다. 

2023. 2. 21. 15:46

William McNeill. 1982. The Pursuit of Power: Technology, Armed Forces, and Society since AD. 1000.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38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기 1,000년대 이래 무력과 전쟁 기술이 세계 역사의 전개에서 차지한 역할을 상세히 서술한다.

농업을 통해 자급자족의 수준을 넘어선 잉여가 생산되면서,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도시 인구와 정치 집단이 출현하였다. 폭력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댓가로 보호금을 갈취하는 시스템(protection racket)이 등장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 드리닥칠지 모르는 폭력 집단에 의해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당하는 것보다는, 세금이라는 형태의 안정된 갈취를 당하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라는 조직된 폭력 집단의 지배를 수용하였다. 폭력집단의 입장에서도, 예기치 못한 위험을 수반하며 불확실한 규모의 수입을 얻는 비조직적 약탈보다는, 조직적 폭력을 기반으로 안정된 지배 체제를 통해 생산자를 착취하는 편이 상대적으로 적은 위험으로 더 많은 수입을 가능케 하기에 국가체제를 수용하였다. 즉 폭력을 기반으로 한 안정된 지배체제인 국가는 어느 다른 폭력 집단보다 착취자와 피착취자 모두에게 더 많은 소득과 안정을 제공한다.

전 역사를 통틀어 사회 체제를 크게 두 범주, 즉 중앙의 계획과 위계적 명령을 통해 모든 경제 사회 활동이 운용되는 명령체제(command system)와, 다수의 개인이 참여하여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시장기구에 의해 경제 사회활동이 운용되는 시장체제(market system)로 구분할 수 있다. 공산주의,  중국의 관료적 권위주의, 프랑스의 절대왕정, 독일과 일본의 나찌/군부의 통제 등이 명령체제에 속하며, 자본주의,  개인주의적 시장 경쟁, 영국의 자유주의, 등이 시장체제에 속한다. 인류 역사에서 대부분의 기간과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명령체제가 지배하는 반면, 시장체제는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 작은 규모로 전개되고,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발전한 독특한 체제이다.

중국은 1500년경까지 생산성이나 군사력에서 서구를 크게 앞섰다. 중국에는 일찌감치 중앙집권 체제가 자리잡았다. 외부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고 내부에서도 지역간 경쟁이 심하지 않았으므로, 무인 세력은 관료나 문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다. 중국의 유교이념은 인문을 숭상하고 윗사람에 대한 충성을 강조한 반면, 무력이나 상공업은 천시하였다. 중국에서는 서구와 달리 무력 집단과 상공인이 연결되지 않았다. 상인은 독자적 권력을 갖지 못해 관료에 의해 재산을 뺏길 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었으므로, 이익을 재투자하여 사업을 번성시킴으로서 부를 늘이기보다는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무인들 역시 상인과 결탁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워 권력을 장악하기보다 관료로 갈아타려고 노력하였다. 요컨대 중국의 유교문화권에서는 무기와 전쟁 기술이 발전할 토대가 형성되지 않았며, 그 결과 무력의 발전은 정체되었다.

서구에서는 1200년경 북이탈리아의 소규모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무기와 전쟁기술을 발전시키는 움직임이 펼쳐졌다. 도시국가는 주위의 폭력집단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용병을 고용하였고, 상인이 내는 세금으로 이 비용을 충당하였다. 중국으로부터 유래된 화약은 서구에서 총포의 발전으로 이어졌으며, 서구유럽에서 왕이 봉건 제후를 제압하면서 무력 동원의 규모를 키웠으며, 왕들 간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1,400년경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의 무력 각축장은 지중해로부터 대서양 연안으로 이동하였다. 스페인, 프랑스, 영국이 무력 수준에서 강국으로 올라섰으며 ,유럽 무대에서는 물론 전세계의 식민지 쟁탈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경쟁하였다.

서구 열강들이 유럽 무대에서 서로 경쟁하는 가운데 무기와 전쟁 기술 수준이 나날이 향상된 반면, 중국, 아메리카, 중동, 인도 등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무력의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으므로, 전쟁에서 유럽의 적수가 되지 못하였다. 1,400년대 후반 대양을 통한 서구의 확장이 본격화되었을 때, 비서구 지역 사람들은 이들의 침략에 맞서 참혹하게 패배하였으며, 결국 서구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서구 열강들 사이의 경쟁은 영국이 프랑스와 스페인을 제압하고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높은 비용을 수반하는 해전에서 영국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차례로 제압하였다. 영국은 시장체제를 발전시켜 금융가를 통해 전쟁에 필요한 비용을 저렴하고 효율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던 반면, 스페인과 프랑스는 명령체제의 경직성과 비효율 때문에 전비 조달이 원활하지 않았으며 높은 비용을 수반했다.

서구에서는 13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에서부터 무력과 상공업이 서로 연결되어 상승적으로 발전하는 전통이 뿌리내렸다. 무력 집단은 상공인의 부를 이용하여 무력을 확장하였고, 상공인은 무력 집단의 힘을 등에 업고 상공업 활동을 확대하였다. 국가의 무력이 확실하게 장악하지 못한 해외에서는 폭력을 동원한 약탈과 상업적 거래의 경계가 모호하였다. 국가는 의도적으로 이러한 해적 내지 무역상의 활동을 묵인하거나 장려하였다. 서구의 식민지 쟁탈 경쟁은 국가의 무력과 상업적 이익이 결탁하여 전개한 프로젝트였다.

전쟁을 치르려면 거대한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력집단은 상공인과 어떤 형태로건 연결을 맺지 않고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서구에서는 국가들 사이에 무기 기술이 경쟁적으로 발전하였으므로, 상공인의 우수한 무기 제조능력은 국가의 무력 경쟁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무력집단과 상공인간의 밀접한 관계는,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 모두, 기계적 우수성을 다투는 첨단 무기 개발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화되었다. 무기 기술이 갈수록 복잡해지면서, 신무기를 개발하려면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더 많은 연구자가 관여해야 하고, 더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진행해야 하는 상황은, 20세기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에서  최고조에 달하였다.  소위 '군산복합체'(military industrial complex)가 완벽하게 형성된 것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탄생한 프랑스 군은 군대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 나폴레옹은 프랑스의 평민을 대거 징집하여 전쟁에 투입하였으며, 전투 능력과 업적을 기준으로 군의 위계를 조직하였다. 징집된 평민들은 혁명으로 탄생한 모국의 사활을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함께 전쟁에서 뛰어난 업적을 거두어 국민적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강력한 동기를 가지고 나폴레옹이 이끈 전쟁에 헌신적으로 임하였다. 그때까지 유럽의 지배자들은 평민들의 반역을 우려해 자국민보다 외국인 용병을 선호하였으며,  사회의 상층 계급이 개인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군의 지위권을 차지하는 관행을 유지하였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이러한 전통적 군대를 전쟁에서 완전히 제압하므로서 새로운 군의 개념을 서유럽에 확산시켰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군의 무기체계와 전쟁 방식을 크게 변화시켰다. 증기기관 덕분에 운송의 제약이 사라지면서 전쟁의 폭과 규모는, 과거 말과 마차에 의존할 때보다 훨씬 더 넓고 커졌다. 과거에는 전쟁을 치를 때 식량과 군수물자의 조달이 가장 큰 제약요인이었는데, 19세기 증기기관 철도와 20세기초 자동차는 이러한 제약을 완화시켰다. 군의 대규모 조달 물량은 산업혁명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새로운 기술이 생산에 적용될 초기에는 상업적 성공이 불확실한데, 군은 상업적 이해타산을 넘어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생산품의 수요를 보장해 주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계속된 전쟁은 인구 폭증의 압력으로 초래되는 사회불안을 피하는 효과적 방편으로 작용하였다. 18세기 유럽의 인구 폭증은 기존의 농업 생산성을 넘어서는 규모였는데, 19세기 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수백만의 젊은이에게 일자리를 제공하였으며, 잉여 인력의 상당수를 전장에서 사라지게 하였다. 20세기에 벌어진 제1,2차 세계 대전 역시 19세기의 인구 폭증 문제에 대해 동일한 효과를 가져왔다. 거꾸로, 인구 폭증으로 인하여 사회불안 요소가 커지고, 이것이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인과관계를 추리할 수도 있다. 유럽, 특히 스페인, 영국은 자국의 잉여 인구를 식민지에 수출함으로서 인구 폭증의 문제를 해결했으며, 이후 이탈리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도 해외 혹은 시베리아로의 이민을 통해 인구 폭증 문제를 해결하였다. 반면 프랑스는 일찌감치 19세기 초에 출생율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에 인구폭증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전쟁은 기존의 관행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패턴을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기득권 집단이 기존의 관행을 고집하다가 전쟁에서 패하게 되면,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상대국이 실행하는 새로운 패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전쟁이 빈발하면서 서유럽 국가들 서로간에 기존의 관행을 버리고 보다 효율적인 새로운 관행을 경쟁적으로 수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비효율적인 낡은 관행과 기득권을 고집하다가는 이웃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할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산업혁명 초기에 기존의 장인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생산방식을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였는데, 19세기초 유럽을 휩쓴 전쟁은 소위 '미국식 생산방식(American Production system)'이라 일컬어지던 기계를 이용한 표준화된 대량생산 방식을 무기 생산에 도입하게 만들었으며, 이는 전쟁이후 민간물품의 생산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또한 전국의 농촌 벽지로부터 전쟁에 동원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후 과거 전통사회의 관습을 버리고 도시적 합리적 행위 규범을 따르게 되었다. 

군과 민간 활동은 서로 영향을 교환하였다. 예컨대, 19세기 이래 서구 유럽에서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대규모의 인원과 물자의 생산과 배치를 담당하는 사람을 민간 대기업의 경영자 중에서 구했다. 대규모 전쟁을 위해 엄청난 규모의 인원과 물자를 조달하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합리적인 경영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전후 민간의 대기업 경영에 폭넓게 적용되었다.

동양과 비교해 유럽에서 무력이 크게 발전한 것은 여러 지역으로 차단된 지형적 원인과 함께, 농경이 아니라 유목을 생업으로 한 것에서도 부분적으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목은 생명 살상을 일상적으로 하며, 특히 겨울이 다가오면 많은 가축을 일시에 죽이는 관행이 지배하였다. 중국의 논농사와 달리 유목은 좁은 지역에서 많은 인구를 먹여살릴 수 없으므로, 인구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오는 전쟁이 서구에서 더 자주 벌어졌다. 중국의 논농사는 중앙집권의 권력이 농사에 필수적인 치수를 관리하였으며, 농사꾼은 자신의 땅을 떠날 수 없기 때문에 중앙의 권력에 순종하였다. 동양의 집단주의적 가치나, 무력과 상공업을 경시하고 권위주의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하는 유교는 이러한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반면 수시로 이동하는 유목민들은 중앙의 권력에 쉽게 반항하며, 서로간 생존을 위한 무력 투쟁도 불사함으로, 서구에서는 개인주의적 가치가 강조되고 집단간 무력 경쟁의 릴레이가 전개된 것이다.

저자는 전쟁과 무력 활동을 도외시한 역사 서술은 피상적이라고 주장한다. 인류의 시작에서부터 집단적인 무력 행사는 인간 사회의 핵심을 차지한다. 무력을 어떻게 관리하고 경쟁하는지는 전쟁의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치며, 전쟁의 승패 위험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책이다. 세계의 역사와 사회의 전개를 새로운 시각에서 보게 만든다.

 

2020. 9. 1. 21:18

Robert B. Marks. 2015.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A Global and environtal narrative from the fifteenth To the twenty first century. 3rd ed. Roman & Littlefiels. 218 pages.

저자는 중국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기존 역사학계의 유럽중심주의를 배격한다. 1800년대초 유럽이 산업혁명에 진입할 때까지 중국과 아시아가 세계를 주도했다. 기술 수준, 생산성, 산업과 교역 규모 등 모든 면에서 중국과 인도는 유럽을 능가했다. 그당시 유럽은 세계의 변방에 위치한 낙후한 지역이었다. 유럽이 1500년대에 대항해의 시대를 열게 된 계기는 그당시 선진 지역인 중국에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였다. 13세기에 몽골 제국이 중앙아시아에서 중동, 헝가리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동서간 교역이 활발했는데, 14세기에 중동 지역에 이슬람 제국이 들어서면서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통로가 막혀버려 중국으로 가는 새로운 길을 찾을 필요가 절실해졌다. 유럽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으려고 그렇게 노력한 이유는 중국의 선진 문물과 교역하려는 욕구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첨단을 달리던 나라로 유럽으로 부터 얻을 것이 별로 없었다. 중국은 유럽 나라들과 달리 바다를 통한 외부와 교역이나 정복에 힘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외부와의 관계는 내륙에 유목민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제한되었다.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은을 확보하였다. 이는 중국이 명나라 시대에 화폐제도를 지폐에서 은으로 바꾼 것과 맞물려서, 아메리카 대륙의 은은 유럽을 거쳐 대량으로 중국에 흘러들어갔다. 유럽은 중국에 은을 지불하고 비단, 도자기, 차 등의 선진문물을 수입하였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은의 유입이 줄어든 반면, 유럽인의 중국 문물에 대한 욕구는 줄어들지 않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생산품 중 중국에 수출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영국은 인도에서 아편을 재배하여 중국으로 수출하여 거둔 돈으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아편 무역은 중국의 반발에 부딛쳤으며, 결국 1840-50년대에 두차례의 아편전쟁을 거치면서 영국은 중국을 굴복시켰다.

유럽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술을 발전시키고, 유럽 국가들 간 치열한 경쟁을 통해 무기 제조 기술을 발전시키면서, 점차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는 노선을 밟았다.  유럽에 정복된 아메리카,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들은 유럽의 산업화 과정에서 천연자원과 원자료를 공급하고 완제품을 수입하여 소비하는 시장의 역할을 하였다. 비유럽 지역의 식민지화는 유럽이 산업화를 통해 부흥하게 만들고, 식민지의 기존 산업을 몰락시켜 가난하게 만드는 양극화의 길을 열었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영국 중부지방에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인접해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 덕분에 수증기의 힘을 이용해 석탄을 채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증기 기관차를 이용한 철도 건설, 섬유 산업의 기계화로 이어졌다. 과거 인류의 역사는 환경 조건의 한계에 가로막혀 경제 발전과 인구 성장이 제한되었는데, 산업 혁명은 이러한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는 수단을 제공함으로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인구 성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도의 면직물을 대량으로 수입하여 소비하였는데, 인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인도의 면직물 수입을 금지하는 대신 면화 원재료를 수입하고 국내에서 가공하여 국내 소비와 수출을 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이는 과거에 융성하던 인도의 면화 산업을 몰락시켰다.

1800년대초까지 유럽을 앞서있던 중국은 산업혁명으로 유럽에 뒤쳐지면서 격차가 점점 더 벌어졌다. 환경 조건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고 정체된 사회와 이를 뛰어 넘어 성장하는 사회간의 간격은 기술 수준이 발전하면서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은 1980년대에 개방적인 자본주의로 전환하여 본격적으로 경제발전에 착수하면서 빠른 속도로 서구와의 격차를 좁혀왔다. 인도와 기타 개발도상국들 역시 20세기 후반 식민지 상태로부터 독립하고 산업화하면서 서구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저자는 유럽이 중국보다 먼저 산업혁명에 착수한 것이 유럽 문화의 내재적 우수함 때문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철광석과 양질의 석탄이 근접해 매장되 있는 것, 유럽 대륙이 여러 국가로 쪼개져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군사 기술이 발달하게 된 것, 유럽이 중국으로 가는 길을 찾다가 우연히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우월한 군사기술을 활용하여 전세계에 식민지를 정복하게 된 것, 등이 산업혁명과 이후 경제 발전의 근본적인 원인인데, 이들은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유럽이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중국보다 특별히 더 합리적이라거나, 유럽이 중국보다 과학기술이 더 우수하거나, 상공업이 더 활발한 문화였던 것은 아니다. 합리적인 사고나 우수한 과학 기술 덕택에 스팀 엔진을 개발하고 섬유 산업의 기계화를 이룬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서구의 학자이면서 중국과 아시아의 편에서 세계 역사의 전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을 가졌다. 서구의 발전이 우연의 산물이라는 그의 주장이 맞을 것이다. 세상의 일은 많은 부분 우연적 조건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내재적인 우수함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원인을 거술러 올라가면 자연 조건의 차이나 우연한 상황의 조합이 만들어 낸 것이다.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근본적으로 우수하다는 인종주의를 용인하지 않는한 모든 인간사는 우연한 외부 환경과 인간 사이에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서구가 중국과 아시아보다 앞선 것은 근본적인 원인이 여하하건 부정할 수 없다. 역사는 경로 의존적(path-dependent)이기 때문에, 일단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게 되면 그 이후의 길이 달라진다. 물론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이 미국을 앞섰지만, 두차례에 걸쳐 유럽인들이 그들끼리 벌인 전쟁을 통해 폐허가 되면서, 미국이 유럽을 앞서는 새로운 경로가 만들어지게 됬듯이, 미국의 제도적 비효율과 내부 갈등 때문에 국력이 약해지는 대신, 중국이 꾸준히 노력하여 결국 미국을 따라잡고 서구를 다시 앞서게 되는 역사의 경로에 들어설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일인당 소득은 1만불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6만불에 달하므로,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것은 가능하다고 해도 먼 미래의 일이다. 중국의 소득이 높아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발전의 속도가 떨어지고 내부 갈등이 커질 것이기 때문에 중국의 미래를 예단할 수 없다.   

이 책은 대학교의 교재로 집필된 듯하다. 세계 역사 전반을 빠른 속도로 훑으면서, 기존 연구를 바탕으로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는 데 주력한다.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에 놓는 독특한 시각이 눈에 띠지만, 저자의 주장에 대해 치밀한 증거를 인용한 논의가 제시되지는 않는다. 개별 지역이나 국가에 촛점을 두기보다 지구 전체적으로 근대 세계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눈에 조망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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