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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사과나무'에 해당되는 글 51건
2020. 1. 10. 21:44

Matt Ridley. 1993. The Red Queen: Sex and the evolution of human nature. Harper. 349 pages.

생물학의 연구 성과를 토대로 인간의 성(sexuality)의 진화를 설명한 대중 과학서. 동화에 나오는 Red Queen의 비유를 사용하여 진화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이는 창과 방패의 비유와 유사하다. 종의 경쟁에서 한쪽이 앞서려고 변화하면 그에 맞추어 상대도 변화하여 따라맞추는 과정이 계속이어지는 과정이 진화이다.

생물계에서 암컷과 수컷간 선택하고 선택되기 위한 경쟁은 양쪽 모두를 변화시킨다. 성적인 선택(sexual selection) 경쟁에서 같은 성의 경쟁자들보다 조금이라도 우위에 올라서게 하는 형질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반면 불리한 형질은 후손을 남기지 못하기 때문에 후손에게 이어지지 못한다. 생물의 많은 형질은 오랜 세월 동안 성적인 선택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종의 상대 성에게 선택되기 위한 경쟁은 물리적인 생존을 위한 경쟁(natural selection)과 일치하지 않는다. 예컨대 숫공작의 아름다운 날개는 암공작에게 선택되기 위한 경쟁이 낳은 산물이지만, 이것은 수컷의 물리적 생존 확율을 낮추는 요소이다.

대부분의 생물은 왜 무성생식이 아니라 암컷과 수컷으로 구분된 유성생식을 하여 후손을 만들까? 유성생식이 가져오는 유전자의 다양성 덕분에 병원균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다. 무성생식은 후손을 빠르게 증식시키는 이점은 있지만 부모와 자손의 유전자가 동일하다는 약점이 있다. 반면 유성생식은 암컷과 수컷이 교배를 해야만 후손을 만들기 때문에, 적절한 섹스 상대를 찾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단점은 있지만 후손에게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된다.무성 생식으로 부모와 그 후손이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면, 만일 이 생물체의 면역력을 뚫는 병원균 유전자가 나타날때 피해를 면할 수없다. 반면 유성생식으로 후손에게 유전자의 다양성이 확보되면, 병원균의 돌연변이로 후손 모두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적다.

 어떤 생물체가 일부일처에서 난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짝짓기 행태 중 어느 것을 택하는가는, 군집해 사는지 혹은 각자 떨어져 사는지, 후손의 양육에 수컷이 간여하는지 혹은 암컷이 전적으로 혼자 담당하는지에 달려 있다. 모든 생물체는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군집해 살면 엄격한 일부일처는 어려우며 여러 상대와 섹스를 하여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행태가 자리잡는다. 후손을 양육하는 일을 암컷이 전적으로 담당하면, 암컷은 여러 수컷과 섹스를 하는 것보다 적은 수의 강한 수컷을 골라 섹스를 하는 것이 유리한 반면, 수컷은 가능한한 여러 암컷과 섹스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 인간은 일부일처를 기본으로 하며, 보조적으로 결혼 관계 밖의 상대와 바람을 핀다. 인간의 오랜 양육기간 때문에 여성은 자신과 자녀의 부양을 책임질 남자가 필요하며, 남성 역시 상대 여성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지 않고 오랫 동안 자신과 함께 하는 것이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게 남기는데 유리하다. 남자는 기본적으로 일처 다부의 성향을 지니며, 여자는 일부일처의 성향을 지닌다.

남성은 여성에게서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찾고, 여성은 남성에게서 부와 지위를 찾는다. 여성의 육체적 미는 건강한 후손을 만드는데 중요하기 때문이며, 남성의 부와 지위는 오랜 기간 동안 자녀를 양육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의 역할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심리적 특성의 차이를 낳는다. 남성은 공격적이고 공간감각이나 수리력이 높은 반면, 여성은 남을 잘 이해하고 교류하는 사회성과 언어능력이 앞선다. 남성은 낯선 여자와도 섹스를 쉽게 할 수있지만, 여성은 다양한 남성과 섹스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인간이 생물계에서 독보적으로 두뇌가 크고 지력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보다 배우자를 선택하고 선택받는 게임에서 인간관계를 읽는 기술이 고도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생물의 생존의 목적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손에 퍼뜨리는 것이므로, 인간의 가장 대표적인 형질인 지력은 가장 우수한 배우자를 차지하는 게임에서 승리자가 되려는 노력이 만들어낸 것이다.

동물계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의 성질을 유추해내는 작업은 복잡하다. 실험을 통해 입증하기보다는 논리적으로 유추한 가설에 대해 반박에 반박을 거듭하기에 논리를 쫒아가기가 버겁다. 이 작가의 스타일은 많은 사례와 논쟁을 계속하여 소개하고, 서술을 맛깔나게 하기 위해 이중부정과 이중 비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과학적 사실을 직설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재미있게 서술하려고 이야기를 굴곡지게 하는 약점은 있지만, 흥미로운 주제와 관련된 상반된 논쟁을 모두 검토하는 부지런함은 살만하다. 인간의 성과 관련되 생각할 수있는 모든 주제를 건드린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동물의 행태에 관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인간의 성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2020. 1. 7. 15:05

Abhijit V. Banerjee and Esther Duflo. 2019. Good Economics for Hard Times. Public Affairs. 326 pages.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저자가 오늘날 세계의 주요 문제들에 대해 경제학의 해결책을 체계적이며 비판적으로 정리한 책. 이민, 무역, 차별과 빈곤, 성장, 환경, 불평등, 정책적 개입, 복지 등 각 영역의 주요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논쟁을 검토하면서, 무엇이 문제의 핵심이고 어떤 대응이 가장 효과적일지 논의한다.

이민자는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가? 그렇지 않다. 이민자들이 맡는 일자리는 기존 노동자들이 맡기를 꺼려한다. 이민자들이 맡는 일과 그들의 소비 덕분에 기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이민자는 모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다. 이민자는 경제에 활력을 주며 혁신을 촉진한다. 이민자들이 경제적으로 플러스 요인임에도 사람들이 이민자의 유입을 반대하는 것은 비경제적 비합리적인 이유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과 흡사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정이 안 좋은 경우 국외자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린다. 미국의 중하층 백인의 사정이 안좋기에 이들이 주로 이민자를 배격하며, 덕분에 트럼프와 같은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이 당선되었다. 이민자는 미국 경제가 안좋거나 일을 찾을 가능성이 적으면 스스로 오지 않으므로, 과도하게 이민을 제한하는 것은 미국 경제에 해를 입히는 조치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 가설은 무역에 종사하는 쌍방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 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무역의 혜택은 모두에게 고루가지 않는다. 각국 내에서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중국과 무역이 늘면서 교육수준이 낮은 미국의 생산직 노동자는 패자가 되었다. 실질 임금이 하락하며, 일자리를 잃고 실업과 좌절 속에서 기대수명이 줄었다. 반면 교육수준이 높은 근로자들은 높은 부가가치의 산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소득이 증가하였다. 지난 사십년간 최고위 1%의 사람들이 성장의 과실의 대부분을 가져갔다. 이들은 주로 금융분야에 종사하거나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자이다. 무역으로 얻은 이익의 일부는 무역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도록 활용해야 한다. 생산성이 높은 분야로 이전할수 있도록 직업훈련, 실업수당, 이사 지원, 직업 알선 등,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에 훨씬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그들이 보람을 느낄 수있는 일자리로 이전하도록 지원을 장기적이고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 나이가 많은 근로자들은 자신이 일생 종사한 직업과 일생 살던 곳을 떠나 직업 훈련을 통해 새로운 직업과 장소로 이전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 이들을 계속 고용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식으로 이들이 노동시장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경쟁 원리를 따를 때 차별은 저절로 해소된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합리적인 이익 계산만을 좆아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의 선호가 감정적 비경제적 요인에 의해 좌우되는 비중이 적지 않다. 미국이나 인도의 소수자 우대 정책은 소수자가 시장에서 처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장치로 효과적이다. 정부의 개입에 의해 사람들의 선호를 공정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아 갈 수 있다.

빈곤은 물리적인 절대적인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하고, 삶의 권태로부터 벗어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보통 사람과 다르지 않다. 빈곤자의 인간적인 욕구를 무시하고 그들을 물리적으로만 구제하려는 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미국의 경제성장은 1970년대 중반 이래 둔화되었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는 제조업을 개발도상국에 넘기고 금융과 서비스업 분야로 중심을 이동하였다. 중국의 경제는 1979년 개방이래 근래까지 매년 10% 이상씩 성장하였지만, 선진국을 따라잡는 거리가 좁혀질수록 성장율은 둔화될 것이다. 생산성을 증대하는 길은 기술 발전도 있지만, 기존의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재배치하는 것도 그못지 않게 중요하다. 비합리적인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효율적인 방식으로 자본과 노동을 배치하지 않는다. 개발도상국일수록 자원의 비효율적인 배치가 생산성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자동화가 확대되면서 일자리가 줄지 여부는 확실치 않다. 기술 발달은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낸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여하간 자동화에 밀려 일자리를 잃는 사람을 생산적인 다른 지역의 다른 일자리로 이전시키도록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펴야 한다.

온난화의 영향은 모든 나라에 동일하지 않다. 서늘한 지역에 사는 선진국 사람보다 더운 지역에 사는 개발도상국 사람에게 피해는 훨씬 크다. 선진국 사람들이 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하였고 현재도 그러한데, 피해는 주로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중국, 인도와 같은 나라는 이산화탄소 규제를 반대해 왔지만, 이 나라에서 대기 오염이 심각해 지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에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탄소세와 같은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차대전 후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모든 계층에 성장의 과실이 돌아갔지만, 1980년대 이후의 성장은 과실이 최상위의 사람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과 영국에서 심한 반면, 유럽 대륙 국가들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미국의 부자들은 정치를 포섭하여 자신들의 축재가 계속되도록 정책을 유도하였다. 최상위 소득자에게 축재가 계속되는 것을 막기위해 최고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한다. 현재 미국은 30%의 최고 세율을 정하고 있는데, 이를 1970년대 처럼 70%로 하면 엄청난 소득을 거두려는 압력이 사라질 것이다. 또한 1~2%의 부유세를 거둔다면, 재산의 증식분을 재투자함으로서 세금을 회피하는 현재의 문제점이 해결될 것이다. 부자들은 돈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므로 세금을 더 많이 낸다고 하여 지금보다 덜 열심히 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불평등이 확대되면 사회적 불만과 갈등이 고조되므로, 부자들의 힘으로 불평등이 확대되는 지금의 추세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다. 그대로 방치하면 부자들에게 불행한 방식으로 사정이 돌아갈 것이다. 

미국인은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지만,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성격의 문제에 대해 정부의 개입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 정부에게 자원의 분배를 맡기면 부패와 비효율을 염려하지만, 민간의 자원 분배의 기능에도 비효율이 많다. 정부는 절대적인 악이고 시장은 절대적인 선이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무역과 기술 발달으로 경제 환경이 변하면서 발생하는 자원의 비효율적 배치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효율적으로 재배치되도록 도와야 한다.

복지 지원은 수혜자의 의존성을 높인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복지 지원 여부에 관계없이 실업자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가난한 사람의 이성과 의지를 불신하여 그들의 의사결정권을 뺏는 방식으로 설계된 복지 지원은 비효율적이다. 가난사람들이 자신의 욕구들 가장 잘 알기에 현금 지원을 가장 잘 처리할 수있다.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는 가난한 나라에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효과가 없다. 선진국에서 실업자는 물리적 생존이 아니라 인간적 자존심을 가져다주는 '일'을 원한다. 비용이 더 많이 들지라도 그들에게 의미있는 일을 가져다 주는 방향으로 복지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그들이 아동 돌보기, 노인 및 병약자 돌보기와 같은 공공서비스를 맡도록 제안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인간적인 보람을 주는 노동이며, 고도의 장기적 기술 훈련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기계가 대신할 수 없으며, 수요가 증가하는 서비스이다. 

결론으로, 사람들의 경제 행위는 합리적 이익추구 모델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나이가 많이 든 실업자에게 직업훈련을 통해 새로운 직업과 새로운 지역으로 이전하도록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가난한 사람에게 생존에 필요한 물리적 욕구만을 충족하도록 지원하는 방식 역시 효과적이지 않다. 그들의 인간적인 측면, 자존심, 삶의 의미와 보람 등을 고려한 경제적 조치만이 효과를 발휘한다.

이 책은 근래에 논쟁이 되는 대부분의 문제를 건드린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들이 어떤 방안을 제시하는지 체계적으로 섭렵할 수 있다. 저자가 미국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인도인과 프랑스인- 미국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적 관점, 특히 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 선진국의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엄청난 리서치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대단한 책이다. 그들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그들의 목소리로 하는 강의를 듣는 듯하며,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 헌신하는 사람의 사명감과 열정이 느껴지며, 기존 경제학자의 주장을 비교하고 비판하는 데에서 학자로서 그들의 솔직함과 겸손이 느껴진다.

2020. 1. 4. 15:15

Dava Sobel. 1995. Longitude: The tru story of lone genius who solved the greatest scientific problem of his time. Bloomsbury. 175 pages (pocket edition).

대중 과학서를 저술하는 작가가 기존의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하여 흥미있게 풀어낸 책. 17세기 초까지 뭍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서 경도를 아는 것은 불가능했다. 항해하는 방향과 거리를 기록하여 이를 바탕으로 경도를 추측하였는데, 이 방법은 험한 바다에서는 신뢰할 수 없다. 배의 위치를 모르기 때문에 사고가 흔히 발생하며 많은 사람이 죽었다. 16세기 대항해 시대에 경도를 측정하는 문제는 그 시대에 긴급히 풀어야 할 과제였다. 18세기 초반 영국 국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에게 현재 가치로 2만 파운드, 한화로 140억원 상당의 상금을 걸었다. 그시대에 유럽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모두 이 문제를 푸는데 매달렸다.

천체를 관찰하여 현재의 위치를 알아내는 방법이 가장 유력한 해법으로 제시되었다. 목성의 위성들이 목성을 회전하는 주기를 관측하거나, 달과 태양 및 다른 별과의 거리를 관측하여 현재의 위치를 측정하는 일에 그 당시에 유명한 과학자들이 매달렸다. 이 방법은 어느 정도 오차를 가지고 근접한 측정 결과를 산출하였다. 그러나 이 방법은 별자리를 측정하는 데 노력을 많이 요하며, 복잡한 계산을 필요로 하며, 계절과 시간과 위치에 따라 복잡한 보정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실용성이 떨어진다.

천체를 관측하는 방법 이외에 시계를 이용하여 위치를 측정하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지구는 360도에 24시간으로 구성되므로, 1시간의 차이는 15도의 차이에 해당한다. 기준 지점의 시간과 현재 위치의 시간을 비교하여 차이를 구하면 위도를 알 수 있다. 현재 위치의 시간을 아는 것은 비교적 쉽다. 지구 어디에서나 해가 정남에 위치하는 때, 혹은 해가 수평선으로부터 가장 높은 지점에 도달한 때가 정오이다. 기준 지점에서 맞춘 시계를 계속 가지고 다니면 기준 지점의 현재 시간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당시의 시계는 정확도가 높지 않았으며, 진자를 이용한 시계는 계속 흔들리는 배위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이다.

존 해리슨이라는 무명의 기술자는 1730년에 태엽이 풀리면서 작동하는 시계를 처음으로 발명하였다. 그러나 시계를 이용하여 경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그당시 학계를 지배하던 사람들이 천체를 관측하는 방법을 선호했기 때문에 정당한 계측 방법으로 인정되기까지 수십년을 기다려야 했다. 정부의 경도 측정 위원회를 장악한 사람들은 해리슨의 시계를 검증하는 것을 방해하고 새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해리슨은 이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계속 개량을 거듭하여 그의 아들대에 이르러 마침내 정당하고 실용적인 측정방법으로 인정되고 상금을 받았다.

이 책에서 존 해리슨은 무명의 배경 출신으로서 자신의 기지와 불굴의 의지로 홀로 권력과 맞서 싸워 승리하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가벼운 읽을 거리다.

2020. 1. 3. 17:17

Victor W.Hwang and Greg Horowitt. 2012. The Rainforest: the secret to building the next Silicon Valley. Regenwald. 282 pages.

벤쳐 캐피탈리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와 밴쳐 업계를 분석한 책. 저자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천연림(rainforest)와 같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구성원이 기존의 관행에 얽매지 않고 서로 자유로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 받다보면 우연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것이 창출되는데, 이는 마치 천연림에서 잡초가 자라나는 것과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이것이 사업으로 성사되기까지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협력해야만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이들 사이에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용이하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서로 소통과 협력을 쉽게 하도록 할지가 관건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좁은 범위의 집단 내에서만 소통을 하며 집단을 건너서는 적대적이다. 지역, 인간관계망, 문화, 언어, 불신 등에 의해 제한된 사회적 장벽은 집단간 접촉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를 높이기 때문에 생산적 소통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주체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유용한 자원을 교환할 때,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증명하듯이, 교환에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 있다. 집단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사람 혹은 핵심적인 기관이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밴쳐 자본가, 컨설팅 회사나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변호사 등이 이런 위치에 있다. 다른 하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으며,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여 조합하고 적용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잘 축적되어 있으므로 구성원들이 서로 쉽게 관계 맺우며 도움을 주고 받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합리적 경제 원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는 도정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고 무모할만치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합리적 동기보다는 비합리적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이들은 성공의 확률이 지극히 적음에도 무모하리만치 열심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비합리적인 동기는 다음과 같다. 경쟁의 스릴, 남을 돕는다는 이타적 정신, 모험에 대한 갈망, 새로운 발견과 창조의 즐거움, 미래 세대에 대한 염려,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희망, 등이 그것이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관계하는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다. 기존의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꿈을 꿀 것,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귀기울일 것, 상대를 신뢰하고 신뢰받을 것, 실험하고 또 함께 실험을 반복할 것, 모두에게 공정하고 상대를 이용해먹지 않을 것,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끈질기게 지속할 것,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제공할 것, 등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지배하는 규율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생태계를 새로이 구축할 것인가인데, 소수의 핵심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규율에 따라 실천을 한다면 점차로 이러한 규율과 문화가 확산되면서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생태계는 외부로부터 전체적으로 주입될 수 없다. 구성원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행위양식을 직접 실천하는 가운데 그들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먼저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행위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이를 배우고, 이러한 행위와 배움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면, 이를 따라 롤모델이 형성되고, 신뢰가 통하는 집단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단순히 자본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려면 생사를 좌우하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일반 투자가가 투자 수익만을 보고 이러한 과정에 자본을 참여하기는 어렵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사업이 성숙해가는 과정의 단계마다 그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조언과 도움을 제공하여 성공의 확률을 함께 높여 나가야만, 그의 투자가 결실을 거둘 수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이 초기단계의 투자를 가능케 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돈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성사시키는 일이다.

왜 미국의 서부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가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와 세운 나라이며, 서부는 미국 내에서도 동부의 기득권과 전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기회와 모험을 찾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서부에서는 그가 어떤 배경을 가진 누구인지(who you are)가 중요치 않다. 대신 그가 무엇을 하는가(what you do)가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미국의 서부는 세계에서 집단 종족주의(tribalism)가 가장 약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다양한 자원의 사람이 모여들고, 서로간에 자유로이 소통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우연이 개입되면서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지기 쉽다. 

이 책을 읽으면 밴쳐 사업에 깊숙이 간여한 사람이 풍기는 열정이 느껴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 참여한 사람 모두는 이러한 열정과 순수함이 없다면 밴쳐 사업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열정은 전염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열정의 씨앗이 퍼져 뿌리를 내리면 그 주변으로 조금씩 새로운 실리콘 밸리가 만들어질 수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시장의 원리만으로 안되고, 정부의 지원만으로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찾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기에, 어디에서건 실리콘 밸리가 조성될 수는 있다. 새로운 것에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나 지역이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책은 체계적인 분석서라기보다 실천가의 견해를 피력한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그리 복잡하지 않으며, 비유를 많이 들어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이론은 쉽지만 실제 그것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2019. 12. 30. 18:49

Elliot Liebow. 2003(1967). Tally's Corner: A Study of Negro Streetcorner Men. Rowman & Littlefield. 166 pages.

사회인류학자인 저자가 흑인 남자들의 삶에 대해 일년 반 동안 참여관찰한 결과를 기록한 책.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으로 출간된 것으로, 참여관찰 방법론 분야의 고전으로 지목되며, 나온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가난한 흑인의 삶에 대해 언급할 때 종종 인용되는 놀라운 책이다. 워싱턴시의 흑인 슬럼가 길모퉁이에 정기적으로 매일 모이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일의 세계, 부모와 자식관계, 남편과 아내관계, 연인 관계, 친구 관계를 시시콜콜 묘사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덧붙여 해석을 내린다.

도심의 빈곤지역에 사는 흑인 남성은 일의 세계에서 실패하고 사회의 생존 경쟁에서 낙오한 루저(loser)이다.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중학교를 다녔다 해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며, 변변한 기술이 없는데다 흑인이기 때문에 일생 안정된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다. 접시닦이, 청소부, 건설 막노동자, 등 걸리는 대로 일을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일을 찾지 않는다. 그들을 고용하는 사람에게 그들이 하찮은 존재이듯이, 그들에게도 일이란 별볼일 없는 것이다. 그들은 책임이 따르는 일을 해본 적이 없으며, 툇짜 맞고 패배한 경험을 숫하게 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했다. 기분에 따라 일을 그만두며, 돈이 긴급히 필요하면 아무 일이나 걸리는 대로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고되고, 보수가 작고,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며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고, 불안정한 것이기에, 그들에게도 그러한 일이란 짧게 급한 돈을 쥐는 용도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한 일을 마음을 바쳐 성실하게 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은 현재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삶을 산다. 다가올 내일이 별 볼일 없으리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당장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제까지 나가던 일도 중단하며, 돈이 생기면 술이나 도박으로 써버린다. 그들은 자기 절제를 하고 저축을 하면 지금까지와 다른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의 부모의 삶을 통해, 또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에는 기대할만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 숫한 실망과 수치와 패배와 버려짐을 거치면서 무엇하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할 수없는 수동적인 삶이 엮여진 것이다.

흑인 남성은 그들의 자녀와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자녀는 대체로 엄마와 같이 살며 그들과 같이 살지 않는다. 그들이 가족의 생계부양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인과 자녀를 버리는 것과 부인이 그들을 내쫒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맞는지 구별할 수 없다. 그들의 자녀의 엄마는 때때로 자녀를 데리고 그들을 방문하여 돈을 타가지만, 여러해 동안 자녀를 전혀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흑인 남성과 자녀간의 관계는 흑인 남성과 자녀의 엄마와의 관계에 좌우된다. 흑인 남성이 자녀의 엄마와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만 자녀와의 관계가 지속된다. 그들의 삶에서 자녀란 그리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다. 남자로서 씨를 뿌린 결과 자녀가 태어났지만, 그들은 자녀의 양육에 간여하지 않기에 자녀또한 그들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정서적 유대가 없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아버지와는 사실상 남남이 된다.  그들이 비정한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자녀의 양육을 재정적으로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부자간의 관계를 포기한 것이다.

흑인 남성들또한 중류층과 마찬가지로 결혼의 책임과 의무를 소중히 여긴다. 살림을 차리는 관계와 결혼을 한 사이는 그들의 세계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그들은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지고 싶어하며, 그들의 여자친구 또한 그러한 관계를 꿈꾼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결혼을 해도 얼마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이 가장으로서 제대로 밥을 벌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은 갈등의 연속이며 그러한 긴장을 오래 지탱해 낼 수 없다. 

그들과 여자친구의 관계는 일시적 성적 대상에서부터 완전히 마음을 준 연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여자친구는 성적 욕구 충족의 대상이며 그들로부터 돈을 갈취 당하는 피해자이다. 그러나 연인관계와 착취 관계의 경계는 모호하다. 그들은 남성은 본래 한 여성에 만족할 수없는 동물적 존재라고 자신의 무책임한 여성 편력을 변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특정 여성에 대한 애착이 단순히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 위한 것은 아님을 그들의 대화 속에서 드러낸다. 그들은 생계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돈이 항시 부족하고 수시로 위기에 봉착하기때문에, 그들의 여성과의 관계는 안정적일 수 없다. 잘 지내는 듯하다가 어느날 심각하게 싸우고 헤어지며, 한동안 안보다가 다시 만나 같이 산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남성은 감정적 욕구를 채우는 대상이며, 힘들 때 의지할 보호막이며 , 때로는 자신을 착취하는 존재이다. 그들의 삶에서 남녀 관계는 항시 불안정하면서 의존적이고, 서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히면서도, 삶의 무의미함을 이겨내는 수단이다.

흑인 남성들 사이에 친구 관계는 가까운 듯하지만 피상적이며 느슨하다. 그들은 의형제를 맺은 사이에서도 돈문제나 여자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헤어지며, 서로 과거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가까운 친구간에는 서로의 여자친구를 건드리지 않은 불문율이 있으며, 서로 어려우면 도움을 주고 받지만, 진짜 어려울 때에는 자신의 문제를 각자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가진 자원이 빈약하기 때문에 서로 돕는데 한계가 있고, 수시로 어려움과 위기에 봉착하기에 그들의 관계는 수시로 변하며 잠정적이다. 그럼에도 서로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매일 길모퉁이에 모여 잡담을 하고 시간을 보내며 감정적으로 의지한다. 그들은 밖에 사회에서 버림받은 쓰라림과 수치심을 마음 속에 품은 채, 서로 잡담을 하고 장난을 치면서 자존심에 난 상처를 위로한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빈곤의 문화'(culture of poverty) 이론을 반박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중류층과는 다른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주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는 그들의 불안정한 환경과 빈약한 자원 때문이다. 그들도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책임있게 일 하고 싶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삶이란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어렵게 자라나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주위에 의지할 사람이나, 길을 이끌어 줄 사람이나, 닮을만한 롤모델이 없으며, 가진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은 흑인 남성이기에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배척되며,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살려 해도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건설현장의 막노동을 하려 해도, 수입이 좋고 안정된 일은 노조에 가입해야 하며,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곳은 보수가 낮거나 불안정하거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힘든 곳 뿐이다.

책의 부록에서 저자가 어떻게 현지 참여관찰을 하게 됬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워싱턴 빈민가에서 잡화점을 하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흑인들의 삶에 친숙했다. 저자가 이 연구를 위해 흑인 빈민지역으로 걸어들어간 첫날 거리에서 벌어진 조그만 사건을 구경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길 모퉁이에 모여 이야기 하는 흑인의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고, 그들의 어려움에 우연히 도움을 주는 계기를 가지고, 이러한 일이 수주 동안 쌓이면서 그들의 가까운 친구로 받아들여진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나는 대로 길 모퉁이 모임에 참여하고, 잡담을 하고 술을 함께 마시고, 그들의 집에 찾아가고, 함께 놀러가고, 이런 생활을 일년 반 동안 했다. 길모퉁이의 흑인들은 저자가 백인 대학졸업자로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자원을 이용하기도 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의 삶에 감정적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1990년대 중반 저자가 암으로 죽을 때까지 이들과 연락을 지속했다고 한다. 

놀라운 책이다. 객관적 시각에서 그들의 삶을 서술한 기록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에 대해 따뜻한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문학 작품이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그리는 사람들의 삶이 머리 속에 그려지며, 저자의 해석에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만, 그들의 삶의 표면 밑을 흐르는 슬픔과 소외감을 감지한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등한 눈높이에서 그렇게 따뜻한 이해심을 갖기란 힘들다. 저자의 공감능력이 부럽다. 이 글을 읽으면서 흑인 남성의 삶에 동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고, 나도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을 수 있다.

2019. 12. 27. 12:58

Daniel Markovits. 2019.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Penguin Press. 286 pages.

하바드 법대 교수인 저자가 미국 사회에서 지난 수십년간 진행된 성과중심주의적 사회 체제로 변화하는 경향을 비판한 사회비평서. 1980년대 이래 미국 사회는 뛰어난 성과를 내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엄청난 보상을 몰아주는 방향으로 개편되고 있다. 최상층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하였지만, 중류층의 소득은 정체되거나 감소하였다. 소득 불평등은 급속히 높아졌으며, 상위 5~10%와 나머지 90% 사이에 사회적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이는 이차대전 이래 1970년대까지 상층은 물론 중류층과 하층의 소득도 꾸준히 향상되고 다수에게 안정된 일자리가 보장되던 시절과 대조된다.

근래에 엄청난 소득을 누리는 엘리트는 1950년대까지의 상층과 성격이 다르다. 그들은 교육 수준이 매우 높으며, 고도의 기술을 갖추고, 엄청나게 열심히 일하고 엄격히 자기 통제를 한다. 그들은 일의 세계에서 높은 생산성을 창출해낸다. 미국의 고급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최고의 직장에서 일하며 미국의 기술혁신과 세계화와 경제성장을 선두에서 이끈다. 금융, 법, 의료, 연구개발, 대기업의 경영에 종사하며,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다 주고 본인이 가져가는 성과도 엄청나다. 대학을 졸업하고 초봉 연2~3억이 보통이며, 월스트리트에서는 성과급 보너스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을 챙긴다.

이렇게 높은 성과를 올리는 엘리트 계층에 진입하려면 무서울만큼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한국의 입시 경쟁을 방불할 정도로 이들은 유아시절에서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고 천문학적 비용을 교육에 퍼붓는다. 직장에 들어가서도 이들은 자신의 소질이나 흥미는 무시한 채 일주에 50~80시간을 일한다.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대단하여 인간적이지 못한 삶을 산다. 이들은 일을 덜 하고 싶지만, 이들의 직장은 여유롭게 일을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엄청난 경쟁속에서 높은 생산성을 요구하기 때문에 노예나 다름없이 일을 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낙오되는 두가지 선택밖에 허용되지 않는다.

엘리트와는 대조적으로 중류층은 소득이 정체되며 불안정한 직장에서 과거보다 일을 덜 한다. 엘리트 계층이 높은 기술을 구사하여 엄청나게 일하는 그늘에서 중류층은 단순 반복적인 일에 종사한다. 주요한 결정은 모두 엘리트 계층이 독차지 하기 때문에 중류층은 일에서 소외되며 해고와 채용이 용이한 조직의 부품으로 전락한다. 엘리트 계층이 높은 성과를 거두며 결정을 독차지 하는 반면, 중류층은 지시된 일을 하는 지위로 전락한 것은 정보기술의 발전에 힘입었다. 정보기술의 도움을 받아 엘리트들은 중간관리층을 거치지 않고 조직의 구석구석을 통제하며, 세계화 덕분에 이들의 고급 기술은 전세계 사업장에서 몇배나 많은 생산성으로 증폭된다.

엘리트 계층은 각자가 보유한 기술과 각자가 올린 성과로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고 보상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들의 엘리트 지위는 세대간에 세습되는 경향이 있다. 과거 귀족 계층이 자식에게 재산을 직접 물려주는 방식으로 지위를 세습했다면, 요즘의 엘리트 계층은 엄청난 비용을 투입한 최고급 교육을 통해 높은 인적 자산을 축적하도록 해 고급 직업과 높은 지위를 획득하도록 하여 엘리트 지위를 세습한다. 태어나서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엘리트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데 들이는 비용을 부모가 죽을 때 물려주는 유산 가치로 환산하면 8 ~16 백만달라, 한화로 90억 ~ 180억에 달한다. 요즘의 엘리트 부모가 고급 교육을 통해 자녀에게 엘리트 지위를 세습하는데 들이는 비용은 과거 귀족 계층이 자녀에게 물려준 재산 가치보다 결코 적지 않다.

저자는 책의 후반에서 성과주의는 과거에 귀족주의와 마찬가지로 신화라고 비판한다. 과거에 귀족이 선천적인 우수성을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면, 성과주의 사회의 엘리트는 뛰어난 능력과 높은 생산성을 정당성의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귀족의 선천적인 우수성이 거짓이듯이, 엘리트의 뛰어난 능력과 높은 생산성 또한 거짓이다. 요즈음 엘리트의 뛰어난 능력은 그들의 부모의 엄청난 교육 투자가 만들어 낸 결과물에 불과하며, 그들의 높은 생산성은 높은 기술을 가진 사람만이 높은 생산성을 산출하도록 일의 세계를 조직하였기 때문이다. 중류층의 평범한 기술이 쓸모 없어지도록 일을 조직하지 않았다면, 엘리트의 기술 독점과 높은 생산성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과주의 체제가 문제가 많다면 이를 어떻게 불식시킬것인가? 소수의 엘리트를 만들어내는 사립학교를 규제해야 한다. 엘리트 학교들이 일정 비율 이상 중하층 출신의 자녀를 입학시키도록 규제하고, 소수 엘리트만 다니는 학교가 누리는 비영리 세금 감면 혜택을 중단해야 하며, 엘리트 학교의 등록금을 면세 조치하는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 높은 기술을 가진 엘리트에게 결정과 보상이 집중되도록 되어 있는 일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의료계에서는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의 영역을 넓히며, 의사가 아닌 간호사의 권한을 넓혀야 한다. 금융계에서는 복잡한 금융 상품이나 고위험 상품의 개발을 규제하여 보통 기술의 종사자가 담당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법조계에서는 변호사의 업무를 포괄적으로 법무 종사원에게 개방하여 법률 행위의 성과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구조 자체를 허물어뜨려야 한다. 기술 개발 분야에서는 아무런 제안이 없다.

이 책은 성과주의의 폐해에 대하여서는 길게 서술하지만, 그렇다면 성과주의의 대안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짧게만 언급한다. 그가 제시한 대안들은 성과주의를 무력화시킬만큼 효과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하간 높은 기술과 능력이 성장과 풍요를 낳은 것은 사실이지 않는가? 스티브 잡스의 기술이 오늘의 스마트폰 문화를 만들었듯이 말이다. 80대 20의 사회에 대한 대안으로 80에 해당되는 사람들에게 20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보상을 지급한다면 인센티브 체계의 붕괴로 자본주의가 지속되지 못하고 기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결국 공산주의의 말로를 똑같이 경험할 것이다.

저자는 소수의 엘리트가 그들이 누리는 높은 보상에 합당한 성과를 낸다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대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일반 사원의 200배 이상의 성과를 내는지 의심스럽다. 금융기관의 딜러가 일반 사무직의 500배 이상의 성과, 혹은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잘나가는 변호사가 일반 사원의 500배의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는가? 그렇게 높은 보상이 과연 그의 높은 능력이 만들어낸 생산성의 반영인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즉 그가 그렇게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며, 그의 높은 생산성은 그가 홀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능력이 떨어지거나 혹은 부모가 그만큼 교육에 투자하지 않았던 직원이 상당히 기여하여 함께 만들어 낸 것이라면, 왜 대기업의 최고경영자, 금융기관의 딜러, 전문의, 대형 법률회사의 변호사가 그렇게 높은 보상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의사가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은 의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적거나, 의사로 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부족하거나, 의사가 특별히 더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이 아니다. 의사 직업에 진입하는 진입 장벽이 높이 쳐져 있으며, 의사의 서비스 가격을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통해 높은 수준으로 규제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바드 법대를 졸업한 사람이 초봉으로 수억을 받는 것은 하바드 법대를 나오면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하바드 법대라는 좁은 문이 졸업자에게 부여하는 독점적 시장가격 때문이다. 하바드 법대는 이러한 독점적 시장 가격을 관리하기 위해 학생수를 늘리기 보다 등록금을 높이고 기부금을 많이 받는 방식으로 독점의 프리미엄을 관리한다. 

이 책에서 엘리트들이 성과주의의 쳇바퀴에서 노예처럼 일하며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그의 주장 역시 의심스럽다. 그들은 그 생활을 선택했고 혜택을 누리고 있지 않는가. 만일 그게 그렇게 지옥같은 생활이라면 왜 그들의 자녀에게 그러한 지위를 물려주려고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겠는가? 저자는 성과주의의 폐해에 대하여 책의 대부분을 할애하여 반복적으로 서술한다. 예일대 법대를 졸업하고 하버드 법대 교수인 자신의 삶이 빡빡하다는 데에 대해 궁시렁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성과주의 이념을 대체할 것이 현재로는 보이지 않는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과가 만들어지고 이에 따라 보상한다는 원칙은 민주주의와 가장 잘 맞는다. 그 대안은 추첨에 따라 지위와 보상을 나누어준다는 것일터인데, 아직 사람들은 이러한 대안을 선택할만큰 성과주의의 부작용에 진저리를 내고 있지 않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양질의 교육 기회를 더 넒은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경쟁의 기회를 확대하여 성과주의의 혜택이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성과주의 자체는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능력과 노력에 따라 보상 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 않는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연공서열이나 성과급을 반대하는 주장은 바로 성과주의를 피하고 싶어하는 기득권자들의 억지이다. 성과주의가 가장 공정한 원칙이라는 것이 시대의 소리며, 시간이 갈수록 성과주의가 더 확산될 것이다.

2019. 12. 22. 20:28

Sonia Sotomayor. 2013. My Beloved World. Vintage Books. 385 pages.

미국의 연방 대법관인 저자가 자신의 성장과정을 이야기 한 자서전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 히스패닉으로는 최초로 연방 대법관에 임명된 저자가 자신이 어떻게 성장하여 오늘의 자리에 이르게 됬는지 이야기한다. 뒤에 오는 사람에게 꿈을 주기 위한 목적에서, 어떻게 나라는 사람이 만들어지고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솔직히 기술한다고 서문에서 쓴다.

첫번째 장면은 8살에 당뇨병 진단을 받고 인슐린 주사를 스스로에게 놓는 소동에서부터 시작한다. 선천성 소아 당뇨라는 드문 병으로 몸 속에서 인슐린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녀는 일생동안 매일 그날분의 인슐린 주사를 스스로에게 놓는 행위를  하루를 시작하는 첫번째 일로 한다. 이는 그녀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일찍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항시 함께 하기에, 인생의 순간들을 최대한 살아야 한다는 강박적 의식을 갖게 되며, 주위의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를 챙기는 독립성을 일찍부터 체득한다.

그녀는 뉴욕 브롱스의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대가족 환경에서 성장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릴 때 알콜중독으로 죽고, 어머니와 할머니가 그녀의 삶의 기둥이며 일생 정신적 지주가 된다.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인간의 온정을 배우며, 독립적인 어머니에게서 강인함을 물려받는다. 그녀의 어머니는 푸에르토리코에서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언니의 보호로 성장했다. 이차대전 때 여성 군사활동단에 자원하여 뉴욕에 발을 디디고, 이후 간호조무사로 취직하여 홀로 두자녀를 키우며 일생 일을 놓지 않았다. 저자가 초등학교 때인가 남편이 죽은 후 뒤늦게 대학을 다니며 간호사 자격을 땄다. 홀로 자녀를 키우며 먹고 살기 위해서는 간호조무사의 수입으로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간호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이를 실현한 강인한 여성이다.

저자가 법조인이 되겠다는 꿈의 시작은 어릴 때 티브이에서 페리메이슨 변호사가 나오는 탐정 드라마에 혹해서였다. 미래에 정의를 구현하는 법조인을 꿈꾸었다. 고등학교 때 교내 탐정 동아리 활동으로 한 논쟁적 토론 연습에서 두각을 보였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푸에르토리코인의 법적 권리를 옹호하는 단체에 열성 멤버로 참여하며, 법학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모두들 돈 잘버는 법률회사에 들어갈 때, 그녀는 특이하게도 검사로 법의 최전선에서 좌충우돌하는 경력을 택했다. 판사가 되기 위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상행위 분야와 민사 사건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뉴욕의 조그만 법률회사에 들어갔고, 마침내 뉴욕주 상원의원 모이니핸의 지명을 받아 뉴욕의 연방 판사가 되었다. 그녀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일생 꿈인 판사가 되는 길을 어렸을 때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며 한걸음씩 다져간 것이다. 중간에 만난 사람들을 모두 그녀의 판사로 가는 길을 응원하는 우군으로 만들어서, 연방 판사로, 이후 대법관으로 지명되는데 힘이 되어주었다.

그녀는 여장부의 기질을 타고 났다.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럽게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을 좋아했다. 책의 여러곳에서 몇번이나, 그녀는 자신이 주위의 사람으로부터, 또 새로운 환경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쉬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신보다 더 똑똑한 사람을 만나기도 했고, 자신의 배경을 넘어서는 새로운 환경과 도전에 여러번 처하였지만, 그녀는 한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파고들어 이해하려고 하는 강인함을 보였다. 새로운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무언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새로 만나는 사람과 환경으로부터 배움으로서 자신을 한단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귀기울여 듣고 상대의 입장에 서볼 수있는 능력은 그녀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 그녀는 이러한 자질을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주변 사람들에게 보인 포용력과 이해심으로부터 물려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시절 동아리의 토론 활동에서 익혔다고 말한다. 

그녀는 자신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단계씩 성공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잘사는 사람들의 삶을 엿볼 기회를 가졌을 때, 한편은 자신의 성장 배경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세련된 생활에 흥미있어 했지만, 다른 한편 그녀는 자신이 중류층의 물질적 안락함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명감과 남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녀가 자신의 삶을 성실성(integrity), 공정성(fairness), 남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라는 기본 가치에 따라 살도록 하는 바탕이 되었다. 그녀는 원칙주의자이기 보다는 상황에 맞게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실용주의자이다. 

그녀는 브롱스의 가난한 동네의 고등학교에서 프린스턴 대학의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예일대 법학대학원에 들어가고 이후 공직으로 진출하는데에서, 히스패닉계 소수자로서 선구자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민권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소수자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 program)의 수혜자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여 자신의 자질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았으며, 이는 그녀가 한단계 올라가서 좀 지나면 두각을 보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녀는 학부를 최우수 학생의 영예를 안고 졸업하며, 검사로 빠른 시일에 두각을 보이며, 삼십대에 연방법원판사가 되고, 마침내 미국의 권력 서열의 정점인 연방대법권으로 지명되는 놀라운 성과로 나타난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만난 아일랜드계 남학생과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한다. 그녀의 남편은 뉴욕대를 졸업하고 프린스턴대 대학원에 들어와 함께 지냈으며 의사가 되었다. 소토마이어가 검사로 일하며 일에 전적으로 몰두하고, 주말부부 생활을 하면서 감정이 소원해져 결국 이혼에 이르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누구의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독립성의 소유자라는 것에 소외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녀가 자신보다 잘나가고 강인한 것에 위축된 것이다. 소토마이어는 서로에게 의지하는 존재이기보다 각자 자신의 길을 꾿꾿이 가면서 함께 사는 부부관계를 기대한다고 말하며 그녀의 남편과 생각을 달리한다. 그녀가 당뇨병 때문에 아이를 낳기 힘들다는 것도 부부관계에 틈을 만들었을 것이다. 자신의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의식이 그녀를 남에게 감정적 틈을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즐기지만, 책의 후반부에서 자신은 자신의 감정을 자신이 오로지 보듬고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성질을 고쳐야 한다고 고백하며, 이를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녀의 성공 요인은 강인성, 끊임없는 노력, 주위로부터 항시 배우려고 하는 겸허함이다. 그녀의 할머니의 사랑이 일생 그녀에게 보이지 않는 보호막으로 작용한다. 자신의 성장과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서 독자에게 어떻게 오늘날의 내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 남의 일생을 엿본다는 호기심과,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사회적 신체적 약자가 엄청난 장애를 극복하고 승리한다는 인간승리의 이야기이다. 일생동안 매일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선천적 장애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 사람이다.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문장이 좋고 적절한 어휘를 구사하여 읽는 것 자체가 즐겁다. 이야기가 다음에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하여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마력이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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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2. 17. 16:16

Branko Milanovic. 2019. Capitalism, Alone: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 Belknap Press. 235 pages.

소득 불평등 문제의 전문가인 저자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문제점과 미래를 조망한 책이다.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공산주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으며, 자본주의 체제만이 유일한 대안으로 남았다. 저자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크게 두 범주로 구분한다. 하나는 서구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며, 다른 하나는 중국과 기타 권위주의 국가들에서 보이는 정치적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는 사적으로 소유하는 생산수단에 의해 대부분의 생산이 이루어지며, 자본은 형식적으로 자유로운 임금노동자를 고용하혀 생산하며, 시장기구라는 분권화된 장치에 의해 생산과 소비가 조정되는 경제체제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투자 결정은 사기업 혹은 개인 사업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다시 세개의 유형으로 구분되는데, 고전적 자본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social-democratic capitalism), 자유주의적 성과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가 그것이다. 고전적 자본주의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서구를 지배하던 자본주의로, 총생산에서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이 매우 크며, 자본가는 소득의 대부분을 자본의 이식에서부터 얻으며, 자본가의 지위가 세대간 세습되던 체제이다. 한편 사회민주주의적 자본주의는 20세기 후반 서구의 복지국가 모델로, 고율의 세금을 통해 복지와 소득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여 소득 집중도가 덜하고, 총생산에서 노동 소득의 몫이 제법 크며, 세대간 계급이동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체제이다. 

자유주의적 성과주의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고급 기술 전문가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이 체제에서 고급 전문가는 노동 소득도 높지만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 소득을 누린다. 세대간 자본이전 못지 않게 고급 교육을 통한 능력의 이전으로 지위를 계승한다. 고전적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폐쇄된 자본가/전문가 집단 내에서만 결혼하고 지위를 독점한다. 이 체제에서 자본가/전문가들은 돈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포섭하여 자신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고 계속 유지되도록 정치적 통제를 행사한다. 이 체제는 미국에서 가장 뚜렷하며, 서구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발견된다.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는 시장 기구의 자원배분 역할을 기본적으로 허용하지만, 정부의 유능한 관료들이 주도하여 경제를 중앙집중적으로 통제하며, 정치가 자본에 복속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하며, 법에 의한 공정한 지배보다는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이권을 차등적으로 나누어준다. 중앙의 유능한 관료에 의해 신속하게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므로 경제가 성숙하기 이전 단계에는 높은 경영 효율을 보인다. 재량적으로 법을 적용하므로 부패를 피할 수없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기술과 창의가 필요한 단계에서는 중앙집중식 경영이 효율적이지 않다. 이 체제는 국민의 요구에 반응하는 정치 과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경제성장의 성과를 통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만일 이 체제에서 경제 성장이 부진할 경우 정권의 정당성을 상실하여 정치적으로 혼란해질 수 있다.  이 체제는 중국에서 가장 뚜렷한데, 과거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가 이러한 단계를 거쳤으며, 전세계 개발도상국의 권위주의 정권에서도 흔히 보인다.

1980년대 이래 세계화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 및,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제삼세계에 도입되면서 global value chaine 즉 국제분업 생산 체제가 들어섰다. 국제분업 생산체제는 제삼세계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용과 소득을 가져다주면서 세계의 빈곤과 국제적 소득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1차대전 전에도 국제적인 생산분업이 전개되었는데, 그때에는 제국주의의 총칼로 식민지에 진출한 선진국 자본을 보호하였다. 제국주의적 국제분업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기보다 그들을 착취하는 형태로 이루어졌으므로, 그당시 세계화는 식민지의 빈곤이나 국제적 불평등 수준을 완화시키지 못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업적주의적 자본주의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는다. 엘리트가 경제와 정치를 독점하면서 소득 불평등이 높아지고 일반 대중의 불만이 높아지며, 대중의 정치적 소외와 고용 불안정은 근래에 서구 세계 전반에 대중영합주의 정치인의 등장을 낳았다. 이러한 체제는 20세기 초반 식민지의 이권을 둘러싸고 서구 유럽 국가들간에 전쟁이 일어났듯이 앞으로 선진 국가들간에 자본의 이익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갈등 나아가 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과거 두차례의 전쟁을 통해 유럽이 몰락하고 미국으로 지배권이 넘어갔듯이, 앞으로 핵전쟁이 일어 난다면 서구의 지배가 종식하고 현재의 개발도상국이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보다 크게 나을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국민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 비민주적 체제이지만, 국민을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부유하게 만드는 일에서 효율성을 발휘한다면, 사실상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서 엘리트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현 상황보다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볼 수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본주의가 재량적으로 법을 집행하기에 부패가 상존하지만,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보듯이 부패를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시장기구와 중앙 관료의 통제가 병존하는 체제에서는 부패란 재량적인 자원의 배분 행위에 수반되는 요소이다.

후반부에는 세계화의 미래, 사회의 개인화(atomization), 상품화(commodification), 자동화와 고용, 보편 소득(universal income)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데, 논의가 깊지 않다.

저자가 수년전에 내 놓은 책인 global inequality 는 세계의 불평등 수준을 측정하면서 불평등의 변화상과 미래를 근거와 함께 흥미롭게 보여주었으나, 이 책은 그에 비해 설익은 논의를 전개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며,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지적하지만 내재적인 한계 때문에 미래의 대안이 되기 어렵다. 그가 제시한 정치적 자본주의 유형은 개념이 불분명하며 그리 새롭지 않다. 그럼에도 단편적이지만 흥미로운 정치경제학적 통찰력을 곳곳에서 찾는 재미가 있다.

 

2019. 12. 14. 21:09

Carl Sagan. 1980. Cosmos. Ballantine Books. (2013, trade paperback edition). 365 pages.

천문물리학자 칼 사강의 동명의 TV 도큐멘터리와 함께 만들어진 대중 과학서.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에라토스테네스가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는 과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음으로 지구에서 인간이 출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우주에 대한 인간의 지식의 발전 과정을 이야기한다. 프톨레미,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톤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가 뒤따른다. 다음으로 달,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태양계의 주요 혹성과 보이저 2 우주 탐사선이 발견한 것을 차례로 이야기한다.

눈을 태양계 밖으로 돌려 우리가 속한 은하계와 은하계를 넘어선 다른 은하계들, 그리고 우주의 생성과 전체 모습을 설명한다. 작은 수소 입자들이 인력이 작용하여 뭉치는데서부터 출발하여 핵 융합이 일어나 별이 되고, 궁극적으로 핵융합의 원료를 다 소진한 다음 수퍼노바의 단계에 이르러 폭발이 일어나 죽을 때까지 별의 일생을 설명한다. 우주 공간에는 수소와 헬륨이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핵융합으로 이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별의 내부에서 만들어지고, 이것이 폭발하면서 우주 공간에 수소와 헬륨보다 무거운 원소들이 떠다니게 되었다. 지구와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이러한 별의 재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인력이 작용하여 뭉쳐지는 별의 무게가 태양보다 훨씬 클 경우 별이 폭발하여 우주 공간에 흩어지는 대신 함몰하여 블랙홀이 된다. 지구는 별의 일생에서 중년기를 지나고 있으며, 다른 별들을 통해 지구의 미래를 예상해 본다.

지구 이외의 별에서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지구에서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망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근래로 오면서 폭력이 줄어들고 다른 문화에 대한 관용이 높아지는 경향은 핵전쟁을 통한 멸망의 가능성을 낮추는 긍정적 신호이다. 우리에게는 오래전 파충류 조상으로 물려받은 감정에 충실하며 공격 본능이 내재하며, 이성적인 사고의 영역은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것이라 우리의 삶을 장악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인간은 우주의 변두리 구석에서 사는 미미한 존재이며, 인간 문명의 탄생과 사멸은 우주의 전 과정에서 볼 때 짧은 시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우주가 그렇게 엄청나지만 지구에서 작용하는 물리적 원리를 통해 우주 전체가 움직인다. 저자는 과학적인 사실만이 아니라 문학적인 표현이나 이야기를 지어내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할애한다. 저자의 일생의 작업이 녹아있는 작품이다.  포괄하는 내용이 워낙 방대하고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중후반으로 가면서 피로감이 든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사정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기에 현실 적합성을 찾는데 어려움을 느꼈다.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인간의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서사이다.

2019. 12. 7. 10:57

Zbigniew Brzezinski. 2012. Strategic Vision: America and the Crisis of Global Power. Basic Books. 202 pages.

카터 대통령의 안보 보좌관을 지낸 저자가 미국과 국제질서의 변화에 대해 조망한 책이다. 크게 세 부문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세계사의 흐름을 요약하면서 서구 유럽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것을 지적하며, 둘째 1990년 냉전체제가 끝난 이래 미국의 세계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미국이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하며, 셋째 미국이 세계를 이끌던 권좌에서 물러나면 앞으로 국제 질서가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한다.

서유럽은 16세기 이래 기술 발전, 산업혁명, 세계 정복의 길을 밟으며 세계를 주도하는 주체가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두차례의 전쟁으로 함몰하였으며 미국에게 권좌를 이양하고 물러났다. 현재 서유럽은 국내의 복지에 주력하며 인구 노령화로 힘이 빠진 상태이다. 서유럽 국가들은 EU라는 연합체를 결성했지만 서로 간에 격차와 이견을 좁히지 못하여 일관된 정치 세력이 되지 못하며 일을 추진할 동력을 갖고 있지 않다. 저자는 현재의 서유럽을 도전에 대응하고 변화를 주도할 역동성이 결핍된 맥빠진 존재로 인식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편 세계는 20세기 후반에 들어 세계화와 통신기술 미디어의 발달로 물자와 정보와 사람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로 발전하였다. 과거와 달리 고립된 국가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난 일이나 상황은 세계의 다른 나라에 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 세계 각국의 국민들은 정치적 의식이 높아지며, 자국 정치의 모순에 반발하는 빈도가 커졌다. 제삼세계에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이들 나라의 권위적인 정치체제는 지속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은 이상주의와 물질적 풍요가 절묘하게 결합하며 크게 성공하였다. 미국은 20세기 중반 이래 유럽을 포함해 세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부강한 국가로 부상했다. 이차대전 이래 유럽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국제 질서를 관리하는 세계의 경찰로 군림했으며, 1991년 공산주의 소련이 붕괴하면서 냉전의 승리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미국은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도전 속에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였다. 내적인 문제를 잘 해결하고, 외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한다면 미국의 지도적 위치, 미국의 매력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미국의 내적인 문제로는 국가 채무의 증가, 소득 불평등의 확대, 물질주의와 소비지상주의, 탐욕적인 투기에 매몰된 금융시스템,  정치의 극한대립을 든다. 외적인 변화로는 중국과 아시아의 부상, 러시아의 사회적 퇴행과 군사외교적 공격성을 든다. 저자는 미국의 미래에 대해 희망섞인 발언을 하지만, 본인도 미국이 그리 잘 대응할 것이라고 자신하는 것 같지 않다.

미국이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자신의 국제적 지위 하락에 대해 반발하게 될 것이다. 중국의 부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며,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미국과 양강 구도를 형성할 것이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하는 환경에 잘 대응하면서 자신의 역할을 조정해 가야 한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을 계속 맡는 것이 미국이나 중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 부상하는 중국을 적으로 인식한다면 세계 질서는 약화될 것이며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인도는 인구는 많지만 사회경제적으로 중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으므로, 당분간 세계 질서의 주도자가 되기는 어렵다. 러시아는 내적으로 사회경제적 문제가 큰 것을 외부로 투사하면서, 세계 특히 서유럽에 큰 위협이다.

미국이 세계 질서를 관리하는 역할을 방기한다면 이후 전개될 상황은 무정부 상태, 혼돈 상황이 올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각 지역의 맹주가 이웃나라를 호령하고 굴복시키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아시아 권에서는 중국과 인도가 그러한 맹주가 될 것이며,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호시탐탐 동유럽과 중앙아시아를 위협하며 복속시키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서유럽은 자신의 안위만을 챙기며 몇개의 강국이 서로 분열된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이 주변 나라를 호령하고, 남미에서는 브라질이 부분적으로 맹주가 될 것이다. 그러한 세계 질서는 결코 평화롭지 않으며, 보호무역주의가 지배하면서 세계 경제도 퇴행하는 상태를 맞을 것이다.

아시아는 문화와 민족이 서로 크게 다르기 때문에 유럽과 같은 경제나 안보 단일체가 되기 어렵다. 아시아의 위상이 커지면서 구성원 간 갈등의 소지도 커진다. 중국과 인도, 중국과 일본, 중국과 타이완, 남한과 북한,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 갈등이 악화될 위험성이 크다. 미국은 아시아권 내의 갈등에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 중도적 위치에서 갈등이 악화되지 않도록 조정하고, 중국의 전횡을 견제하는 균형자로 처신해야 한다. 근래에 미국이 인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 책이 나온지 십년도 안됬지만 미국의 정세는 그가 부정적으로 예측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도날드 트럼프와 미국 인들은 그가 그래서는 안된다고 경고한 바로 그런 것을 하고 있다. 내부의 문제는 계속 악화되며, 미국이 중국을 노골적으로 적대시하는 태도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이러한 미래는 불안정하고 경제적으로 후퇴하는 세계가 될 것이다. 다분히 미국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 시각이다. 중국의 시각에서는 세계의 변화를 다르게 볼 것이다. 미국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미국의 힘이 약화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미국의 의식있는 지식인의 시각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세계의 변화를 해석하고 예측하는 데에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책의 초반부에서 보이는 그의 역사를 읽는 지혜를 감안한다면, 그의 예측에서 살만한 부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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