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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살구나무'에 해당되는 글 50건
2022. 7. 19. 17:46

Oliver Sacks. 1998(1970). The Man who mistook his wife for a hat and other clinical tales. Touchstone. 233 pages.

저자는 정신의학자이며 작가로 유명세를 거둔 사람이며, 이 책은 두뇌가 손상된 환자를 보는 그의 정신의학 임상 경험 중에서 특이한 사례들을 짧은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한다. 크게 네 범주로 구분하여 사례들을 서술한다. 첫째는 정상적인 정신 능력이 결여된 사례이며, 둘째는 정신 능력이 지나친 사례이며, 셋째는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는 사례이며, 넷째는 지극히 단순화된 세계에서 사는 사례이다.

첫째, 정상적인 정신 능력이 결여된 경우를 보면,  한 측면에서 보면 결핍으로 인한 장애에 불과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기이한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추상적인 패턴 인식은 가능하지만 대상에 대한 구체적 종합적 인식이 결여된 경우, 모자를 잡는 대신 아내의 머리통을 잡는다. 과거 상당기간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여, 수십년전 마지막 기억이 남아있던 그때로 현재를 인식한다. 자신의 몸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여, 자신의 다리나 팔을 자신의 것이 아닌 객체로 인식한다. 평형 감각을 상실하여 주위의 세계가 계속 출렁이는 느낌을 갖는다.

둘째, 정상적인 정신능력이 과잉인 사례는 낭만적으로 묘사된다. 투렛(Tourette) 증후군이라고 이름 붙여진, 과잉 에너지 과잉 감정으로 넘쳐나는 환자, 70이 넘었는데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절실한 감정을 주체못하는 환자, 자신이 누구인지가 순간순간 바뀌면서 쉴새없이 이야기를 하는 환자, 주위에 있는 다수 사람들을 모방하는 행위를 쉴 새 없이 하는 환자. 이들은 자신의 장애 때문에 고통받고 있기는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감정에 대해 긍정적인 눈길을 보낸다.

셋째, 정신적으로 변화를 겪는 사례들은 양가적인 관점에서 서술한다. 과거 어릴 때의 일을 놀랄만큼 또렷이 기억해내는 환자, 주위의 세계에 대한 감각이 매우 예민해져 정상인은 상상할 수없을 정도로 섬세하게 구체적으로 주위 세상을 파악하는 환자, 과거 자신이 살인했던 기억이 구체적 행동의 세밀한 부분까지 생생히 생각나서 괴로워하는 환자, 종교적 이미지를 꿈에서 생생하게 보고 그림으로 재현해낸 수녀 등의 사례가 소개된다. 이들은 이러한 과잉 감정이 약물에 의해 진정되고 사라졌을 때 한편으로 아쉬워한다.

넷째, 단순화된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로 자폐증(autism) 환자이다. 이들은 세상과 단절된 정신적 섬에서 살기 때문에, 주위 세상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을 결여하고 있다. 반면 자신의 세계 안에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여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자연과 완전히 합일을 이루는 경험을 하는 환자, 음악적 감수성이 놀라운 환자, 수에 대한 특이한 능력을 가진 환자, 그림으로 대상을 소화하는 뛰어난 표현력을 가진 환자, 등이 소개된다. 자폐증 환자 모두가 초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세상의 잡음으로부터 단절되어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몰입하여 살아가는 자폐아의 특성이 이를 가능케 한다.

저자는 자신의 임상 경험을 소재로 흥미있는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서술은 과학적이기보다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인 성향을 보인다. 어디까지가 경험과학적 보고이고 어디까지가 문학적 서술인지 헷깔린다. 그의 서술에서 사실과 허구를 명확히 구별하기 어렵다. 신비한 미적 느낌이 나도록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쓴다는 인상이 들었다.

 

2022. 7. 15. 12:56

Frans de Waal. 2019. Mama's Last Hug: animal emotions and what they tell us about ourselves. Norton. 278 pages.

저자는 침팬치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감정을 인간의 감정과 비교하면서 근본적으로 둘은 서로 같다는 점을 밝힌다.

감정(emotion)이란 상황에 맞게 적절한 행동을 유도하는,진화과정을 통해서 발달된 장치이다. 동물은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에 부딛치면 두려움을 느낀다. 이 감정은 동물이 특정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두려움을 느끼는 동물은 특정 상황에 대응하는 효과적인 행동을 취한다. 감정은 인지 능력보다 특정 상황을 더 효율적으로 평가한다.

저자는 어떤 상황에 처해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감정(emotion)과, 이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느낌(feeling)을 분석적으로 구분한다. 감정이란 언어적 표현 이전의 것이다.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특정 상황에 대해 유사하게 반응한다면, 인간과 동물은 유사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추론하는 것이 옳다. 인간은 자신의 내적인 상태를 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을 느끼는 반면, 동물은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정이라는 내적인 상태가 없다거나 인간과 다르다는 주장은 틀리다.

말로 표현할 수있는 감정의 종류는 많지 않다. 그러나 감정이란 본질적으로 복합적인 것으로서, 몇 가지로 단순히 구분할 수 없다. 예컨대 두려움(fear)과 걱정(anxious)이 복합된 미묘하게 다양한 감정이 존재한다. 생리적 변화로 볼 때 유사한 반응을, 상황에 따라 두려움 혹은 걱정으로 구분하여 지칭하지만, 실제는 그렇게 거친 범주로 재단되지 않는다. 고통, 두려움, 걱정과 같은 기본적 감정만이 아니라, 공감, 혐오, 수치심, 죄의식, 등 복잡한 감정들 또한 동물은 인간과 다름없이 가지고 있다. 분노, 공정함, 복수의 감정, 좌절감, 우울, 등도 동물에게서 관찰된다.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동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윤리적 문제와 얽혀있다. 사람들은 동물이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싶어한다. 고통을 느끼는 동물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현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육식을 하는 것은 생물적 조건이기 때문에 어쩔 수없지만, 어떻게 동물을 취급하는지를 투명하게 모두가 알도록 하는 것이 동물 윤리문제에 대한 해결책이다. 우리가 납득할만한 수준으로 동물의 감정을 받아들이면 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잔인하게 취급할 때 이를 보이지 않도록 하는데, 인간이 다른 인간의 상황을 투명하게 알도록 한다면, 인간은 타인에게 그렇게 잔인하게 할 수 없다. 동물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저자는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인간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고 한다. 침팬지는 권력, 지위, 섹스를 추구하는 동물이다. 인간을 그러한 관점에서 들여다본다고 하여 인간이 더 사악하게 보이지는 않음을, 침팬지에 대한 그의 관찰에서 읽을 수 있다. 그의 글을 따라가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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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12. 12:20

Randolf Nesse. 2019. Good Reasons for Bad Feelings: Insight from the frontier of evolutionary psychiatry. Dutton. 269 pages.

저자는 정신의학자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 슬픔, 걱정, 죄책감, 약물 중독, 정신분열 등의 부정적 감정과 정신병의 원인을 진화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리의 몸/마음이 병에 취약한 것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다음 여섯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리 몸이 현대의 생활방식에 맞지 않기 때문(mismatch), 병원균이 우리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infection), 자연의 선택과정으로 만들어지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constraints), 우리 몸의 모든 요소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trade-offs),  자연의 선택과정은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손을 최대로 번식시키는 쪽으로 맞추어져 있기때문(reproduction), 고통과 걱정과 같은 부정적 감정은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데 유용하기 때문(defensive responses).

우울과 같은 부정적 감정 자체가 생존에 유리한 기능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생존에 유리한 특성의 부작용으로 부정적 감정이 발현하는 경우도 있다. 우울한 감정은 자신의 현실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나, 어떻게 해도 도달하기 힘든 현실에 맞닥뜨릴 때 나타나는데, 이는 더이상의 무모한 투자를 중단하게 만드는 적응 기제이다. 동물의 감정이란, 진화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기제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위험에 신속히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에 빨리 죽는다.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좌절하고 우울에 빠져 움츠러들고 행동을 멈추는데,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기회가 보이면 에너지가 솟아 오르며 다시 행동에 착수한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계속 에너지를 투입하는 사람은 진화의 과정에서 퇴화했다. 어느 정도 하다가 아무래도 효과가 나지 않으면 부정적 감정이 점점 커지는데, 이는 진화적으로 적응한 결과이다.

많은 사람들은 왜 애시당초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추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도달하기 힘든 목표를 원하는 "희망" 이라는 감정은 인간을 발달시키는 원동력이다. 높은 목표를 희망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에 자족하여 사는 성질을 가진 인간은, 비록 희망이 많은 경우 꺽이더라도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성질을 가진 인간과의 생존경쟁에서 패하여 도퇴했을 것이다. 요컨대,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겪는 우울이란 감정은, 생존경쟁에 유리한 능력, 즉 높은 목표를 희망하고 이를 향해 노력하는 능력의 부작용이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의 근원을 욕망에 두고, 욕망을 버리면 번뇌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진화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합당한 주장이 아니다. 욕망이 없는 동물은 오래전에 생존경쟁에서 도퇴되었을 것이다. 즉 사람들이 도달하기 힘든 것을 원하고 좌절과 우울을 맛보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러한 경험을 하지 않는 인간은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더라도 항시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원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모두 적든 많든 좌절과 우울을 맛보며 살 수 밖에 없다.

슬픔이나 후회란, 미래에 유사한 상황에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이다. 슬픔을 느끼고 후회를 할 수록 내가 어떤 부분에서 잘못했는지, 왜 그런 결과가 빚어졌는지를 반추하게 되고, 이러한 반추를 통해 얻어진 교훈은 미래에 생존능력을 높인다.

진화의 과정은 숙주의 건강과 행복을 높이는데 목표를 두지 않고, 후손을 최대한 많이 번식시키는데 목표를 둔다. 후손 번식과 숙주의 건강/행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불확실한 위험에 대해 지나치게 반응하는 결과인데, 이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숙주의 행복을 감소시킨다. 반대로 지나치게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은 불확실한 위험에 무모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만일 불확실한 위험이 만에 하나 진짜 위험일 경우 돌이킬 수 없이 큰 낭패를 당하게 되어, 진화의 과정에서 결국 도퇴된다.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과 같은 신경 질환은 인간의 복잡한 두뇌 활동의 부작용일 수 있다. 인간의 두뇌는 복잡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능력은 잘못될 위험성 또한 높다. 인간의 두뇌 능력이 덜 고도화되어 있다면 신경 질환에 걸릴 위험도 덜하겠지만, 이는 숙주의 생존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같은 이유로 하여, 인간의 면역능력은 매우 우수하여 외부로부터의 병원균을 공격하고 자신의 몸을 방어하는데 효율적이지만, 또한 때때로 자신의 몸에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인간의 몸/정신은 생존 능력과 이러한 능력에 부수되는 위험성 사이에 미묘한 균형을 잡고 있는데, 이 균형이 조금이라도 어그러지면 병이 된다.

저자는 진화론적 관점을 인간의 병리현상에 적용한 의학자로 유명하다. 이 책은 일상적인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나, 상당히 학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많은 연구들을 인용하면서 논의를 세세하게 전개하기 때문에, 일일이 내용을 이해하면서 읽어내리는데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했다. 읽다보니 얼마 읽지 않아 내가 두번째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음에도 끝까지 다시 읽었다. 두번을 읽어 이해도가 처음보다 더 높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여하간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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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6. 18:33

Robert Dahl. 1998. On Democracy. Yale University Press. 188 pages.

저자는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현실적인 필요 조건을 설명한다. 전반부에서는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왜 민주주의가 다른 정치체제보다 나은지 설명하며, 후반부에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존립하는데 기여하는 조건에 대해 논의한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정치적 평등(political equality)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민주주의의 이러한 조건은 왕정, 독재, 전제정치 등 다른 정치체제와 뚜렷이 구별되는 핵심 원리이다. 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정치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민주주의 정치체제도 이러한 이상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시민들이 정치적으로 평등하기 위해서는 다음 다섯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효과적 참여, 평등한 투표,  정치 사정에 대한 이해, 의제를 통제할 수 있는 권한, 성인 모두를 포괄함, 등이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정치적 평등이 실현될 수 없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다른 어느 정치체제보다 나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권력의 독단적 횡포를 피함,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함, 자유/ 자기 결정권/ 도덕적 자율을 보장함, 인간 개발, 개인의 이익을 보호함, 평화와 물질적 번영을 가능케 함. 이러한 이유들은 이론적 결론이면서, 동시에 경험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대규모 집단에서 민주주의 정치가 가능하려면 다음의 제도적 장치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선출직 공무원, 자유롭고, 공정하며, 자주 치러지는 선거, 의사표현의 자유, 집권자가 아닌 다른 대안적 정보 출처가 존재함, 결사의 자유, 시민 모두를 포괄하는 시민권, 등이 그것이다.  현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이 제도적 장치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제도적 장치 중 어느 하나라도 결핍할 경우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이러한 민주주의 제도를 가능케 하는 현실적 조건은 다음과 같다. 선출직 공무원이 군과 경찰을 통제할 것,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지지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을 것,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외세의 압력이 없을 것, 시장경제 자본주의, 분절적인 하위문화가 강력하게 존재하지 않을 것, 등이다.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러한 조건들 모두가 어느 정도 충족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가 출현하기 어려우며, 설사 출현했다고 해도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서구에서도 이 조건을 모두 만족시킨 나라는 20세기에 들어서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요컨대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인류 역사를 통털어 매우 드문 특이한 현상이다.

어느 나라나 외부 혹은 내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위기 상황에 때때로 봉착하는데, 앞의 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하면 위기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경험을 한다. 선출직 공무원이 군과 경찰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 위기 상황에서 군사 쿠데타로 이전하기 쉬우며,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지 않으면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의 독단적 효율성이라는 유혹에 쉽게 빠지며,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외세의 압력이 크면 외세의 간섭 때문에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존립하기 어렵다. 자본주의는 경제적 자원 배분이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 모두에게 분산되어 있는 반면, 공산주의는 중앙에서 자원을 통제하여 배분하는데, 공산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지도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원을 전횡할 위험이 크다. 그러나 방임적 자본주의는 독점과 지나친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문제점을 낳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정치적 평등 이념에 해가 된다. 따라서 현존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는 모두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제어하기 위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수정 자본주의를 택하였다. 대부분의 나라는 인종, 민족, 종교, 계급 등에 따라 분절적인 하위문화로 쪼개져 있는데, 하위문화 간 차이가 크고 대립이 심각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다. 미국과 같이 이질적인 집단을 주류 문화로 완전히 동화시키는 정책을 수행하거나, 아니면, 이질적 집단들 사이에 협의를 통해 정치자원을 배분하는 제도를 만들어 민주주의 정치를 수행하는 스위스나 벨기에와 같은 드문 예도 있다.

21세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의 민주화일 것이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필연적으로 이들의 정치적 참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질 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플라톤이 주장한 "현자의 정치(guardianship politics)"를 채택하고 있는데, 이는 절대권력의 부패 위험, 견제의 결핍, 정당성의 결여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취약하다. 근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절대권력은 민주주의보다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 국민을 고난에 빠뜨린 경우가 많다. 민주주의 체제는 다중의 지혜가 결집되는 의사결정 장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절대권력자 한사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정치체제보다 위험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적으며,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므로, 독재 체제는 민주주의 체제보다 효율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책은 저자가 일생 동안 연구한 주제인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관한 연구결과를 정리한 글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민주주의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가 지금 이책을 썼다면,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의 위기나, 중국의 괄목할 경제성장과 독재가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논의하며 저자의 통찰력을 제시했을텐데, 아쉽다.

2022. 7. 4. 21:11

Frans De Waal. 2005. Our Inner Ape: A leading primatologist explains why we are who we are. Riverhead Books. 250 pages.

저자는 유인원을 연구하는 학자이며, 이 책은 유인원 연구를 통해 발견한 사실을 인간의 특성과 비교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유인원은 침팬지와 보노보인데, 둘은 서로 매우 다른 특성을 보인다. 침팬지는 엄격한 위계사회를 이루며, 힘이 세고 폭력적이며, 수컷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반면 보노보는 위계가 엄격하지 않으며, 폭력을 거의 행사하지 않고 평화적이며, 암컷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침팬지는 하위자가 상위자와 마주칠 때 반드시 존경을 표시해야 하는데, 상위자는 자신의 지위를 확인하기 위하여 하위자들을 순회하면서 매일 위계를 확인시킨다.  침팬지들은 엄격한 위계 사회에서 살아가느라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반면, 보노보는 스트레스 수준이 낮은 삶을 살기에 침팬지보다 오래 산다. 침팬지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지위를 쟁취하는 사회이기에 침팬지 수컷들 사이에 지위 다툼이 빈번하며 지위변동이 심하다. 반면, 보노보는 엄마의 지위에 따라 자식의 지위가 좌우되기에 보노보 수컷들 사이에 지위 다툼이 적고 지위 변동이 심하지 않다.

침팬지들은 연대를 통해 권력을 유지한다. 최강자에 대항해 다음 강자들은 서로 연대하여 최강자의 권력을 견제한다. 가장 강한 놈이 홀로 힘을 행사하면서 오랫동안 지배자로 군림하기는 어렵다. 연대를 통해 뒷받침된 권력이 아니면, 다른 수컷들이 서로 연대하여 지배자를 힘으로 누르기 때문이다. 최고 지위에 오른 침팬지는 많은 암컷과 교미하면서 자신의 후손을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는 수년이상 그 자리를 유지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다른 침팬지들이 호시탐탐 도전하지 때문이다. 권력의 교체기에는 침팬지 사회에 긴장이 흐르며, 새로운 권력자가 완전히 평정하고 나면 다시 평화가  찾아오고 긴장이 사라진다. 침팬지 암컷은 침팬지 수컷과 달리 서로 힘을 합하여 수컷의 폭력에 대항한다. 수컷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가장 힘센자가 최고의 지위에 오르나, 암컷 침팬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연장자가 최고의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암컷들 사이에서는 수컷의 경우와 달리 권력의 행사가 두드러지지 않다.

보노보는 관계를 원활히 하는 수단으로 섹스를 활용한다. 수컷과 수컷간, 암컷과 수컷간, 암컷과 암컷간 성적 자극을 교환하면서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한다. 화해의 수단으로, 긴장을 풀 목적으로, 화합의 목적에서 서로 성적 자극활동을 자주 한다. 성별 구분 없이, 연령의 차이에 관계 없이 사회활동의 일부로 성적 교환을 한다. 다만 성인이 된 자녀와 부모간, 형제간에는 상호간 성적 자극활동을 하지 않는다. 침팬지 사회에서 수컷과 암컷 사이의 섹스는 교환관계이다. 암컷은 수컷에게 섹스를 허락하는 대신 수컷으로부터 물질적 보상을 받는다.

침팬지와 보노보 모두 암컷과 수컷이 여러 상대와 섹스 하기 때문에,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이는 일반적으로 동물의 세계에서 보이는, 수컷이 새로이 암컷을 차지하면 이전에 태어난 아이를 모두 죽이는 영아살해 관행을 예방하는 기능을 한다. 인간 세계에서 의붓아버지가 의붓 아들을 학대하는 것과 유사하다. 인간은 일부일처 제도를 통해 이러한 영아살해 관행를 예방할 수 있었다.

침팬지들은 자신의 영역을 집단적으로 지키고, 이웃한 타집단을 공격하여 영토를 빼앗는 행위를 일삼는다. 타집단의 구성원을 비하하고 적대시하는 '부족주의'는 침팬지와 인간 모두에게 공통이다. 침팬지 집단의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자주 발생하지만, 집단 전체의 안정을 위해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제어하고 타협하는 관행이 잘 발달되어 있다. 상위의 암컷이 수컷들 사이에 갈등을 중간에서 조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침팬지들에게 상호주의(reciprocity)의 개념은 잘 각인되어 있다. 침팬지들도 서로 공감(empathy)한다. 상호주의와 공감 능력은 도덕적 감정의 바탕이다. 침팬지와 인간이 상대에게 친절을 배푸는 것은 상대로부터 나중에 보상을 받으리라는 막연한 기대, 및 막연한 미래의 상황에 상대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려는 의도로부터 비롯되었다. 상대가 특정 상황에서 어떤 느낌을 느끼는지, 상대가 어떤 의도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등 '상대의 마음을 읽는' (theory of mind) 능력을 침팬지는 인간 못지 않게 가지고 있다. 상대의 생각을 짐작하고, 상대의 체험을 간접적으로 자신도 함께 하는 능력은 집단 생활에서 필수적이다. 집단생활을 하는 침팬지와 인간은 이러한 능력을 놀랄만큼 공유한다. 침팬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공정성(fairness)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공정하지 않은 분배에는 분노하고 참여를 거부한다.

인간은 폭력적인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보노보를 보면 평화를 사랑하는 것 역시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폭력적이거나 화합을 추구한다.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은 포용하고 서로 화합하는 반면, 타집단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비하하며 잔인한 폭력 행사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은 양극 모두를 자신의 본성으로 가지고 있다.

저자는 수십년 동안 네덜란드의 동물원에서 침팬지를 관찰하며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여 유명해졌다. 구체적인 사례를 적절히 언급하면서 유려하게 글을 쓰며, 인간에 대한 통찰력 또한 뛰어나다. 인간에게는 가식으로 가려져 있는 것을 침팬지는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침팬지 연구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깊이한다고 주장한다. 두번 읽을 만한 흥미로운 책이다.

2022. 6. 29. 18:15

김용환. 2017. 모두를 위한 서양음악사 2. 가람기획. 433쪽.

저자는 음악사를 전공한 음악학 교수이며, 이 책은 1730년대 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서양음악의 발전 과정을 시대와 주제 구분을 결합하여 서술한다.

첫번째로, 헨델,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고전주의 시대(1730~1830)를 서술하고, 둘째로 슈베르트, 쇼팽, 슈만, 베를리오즈, 리스트, 브람스, 브루크너를 조명한 낭만주의 시대(1830~1889)를 서술하고, 세번째로 로시니, 도니제티, 벨리니, 베르디, 푸치니의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노, 비제, 생상스의 프랑스 오페라, 독일의 바그너로 대표되는 음악극을 서술한다(1789~1890). 넷째로 18세기 중후반 유럽의 각 나라에서 발흥한 민족주의 음악(1840~1943)을 서술한다. 이 시기에 스칸디나비아의 그리그, 시벨리우스, 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체코의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헝가리의 바르토크, 스페인의 그라나도스, 영국의 본 윌리엄스, 미국의 아이브스 등의 음악을 설명한다. 마지막 다섯째로 20세기 음악의 다양한 경향을 서술한다. 인상주의의 드뷔시와 라벨, 말러와 슈트라우스, 12음계를 사용한 스트라빈스키, 라흐마니노프, 윤이상 등 20세기 전반과 중반에 활동한 음악가들이 소개된다. 

1600년대까지의 음악이 교회와 궁정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1700년대 이후에는 교회와 궁정을 벗어나 일반 중산층을 대상으로 음악 활동이 전개된다. 음악가가 교회와 궁정에 의해 고용된 시절에는 음악에 제한이 많았으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음악이 독립 활동으로 전개되면서 다양한 혁신이 이루어진다. 음악이 교회에 종속되어 있을 때에는 이탈리아가 음악의 중심이었으며, 궁정으로 음악이 확장되었을 때에는 프랑스가 이탈리아와 함께 유럽 음악의 중심이었다. 1700년대 이후 음악이 중산층 대상으로 확장되면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음악 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2차대전 이후 유럽의 음악가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미국에서도 음악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1700년대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와 기악이 성악을  능가하는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는 교향악이 발전하고,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이 발전하고,  피아노 전문 음악이 발전하고, 시적인 해석을 강조하는 예술가곡(leid)이 나타나고, 순회연주자(비르투오소)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말과 음악이 번갈아 나오는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달리 악극 전체에 음악이 이어지는 음악극이 출현하였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각 지역의 고유한 민족 정서를 반영한 민족주의 음악이 각 지역에서 나타났다. 20세기 중반에 들어 전통적 음악의 조성의 제한을 뛰어넘어  온음과 반음을 대등하게 취급하는  12음계를 사용한 음악이나, 비음악적 소리를 포함하는 실험, 우연적 요소를 사용한 음악 등,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책은 음악 사전의 요약본 같다. 각 음악가와 개별 작품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끝없이 계속되기에, 읽으면서 음악의 분석적 깊이나 내용의 체계를 잡기 어렵다. 개별 음악가와 개별 작품을 설명하는 것과는 별도로, 이론과 흐름을 체계적 서술하는 부분이 덧붙여지면 좋겠다.

2022. 6. 28. 22:27

박을미. 2011. 모두를 위한 서양음악사 1: 서양음악사 100 장면으로 편하게 읽기. 가람기획. 265쪽.

저자는 중세음악을 전공한 음악학 교수이며, 이 책은 고대에서부터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바로크 시대까지 서양음악의 발전과정을 주요 주제별로 요약하여 설명한다. 서양 음악은 이 시기 동안 교회 음악으로부터 세속 음악으로 중심을 이동하고, 성악에서부터 기악이 독립된 영역을 구축하게 되며, 단성 음악으로부터 다성 음악으로 음악의 구조가 복잡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교회 음악의 시기에는 음악이 종교적 목적에 기여하는 보조적인 위치에 머물러야 했기에 제한이 많았으나, 세속 음악으로 이동하면서 음악이 감정을 표현하고 여흥을 즐기는 수단이 되면서 다양한 양식의 음악이 발달하였다.

그리스 시대에 음악은 수학과 함께 과학의 영역으로 취급되었다. 음악은 인간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며 주술적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리스 시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단편적 기록을 넘어서서 사실상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중세시대(450~1450)에 음악은 교회에서 수도사들에 의해, 그레고리안 성가와 같이 성악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025년 무렵 이탈리아의 귀도 다레초라는 수도사가 그때까지 전해오던 기보법을 개량하면서, "툿(도)레미파솔라"라는 계명을 성가곡의 가사로부터 차용하여 만들었으며, 이후 17세기에 들어 '시'가 추가되었다. 이무렵 오선지에 음을 기록하는 방법도 정착하였다. 이때에는 음의 높이만을 표기할 뿐 음의 길이(음가)를 기록하지는 않았다. 9세기까지는 전적으로 단성 음악이었으나, 1,000년경에 두개 이상의 성부를 가진 다성 음악이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병행 성부에 한정되었으나, 점차 선율과 리듬이 독립된 성부가 출현하였다. 중세시대 후반에 들어 조금씩 교회로부터 벗어난 세속적 음악이 유랑악사(민스트럴)나 방랑시인에 의해 이루어졌다. 교회는 이러한 세속 음악을 저지하려고 하였으나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중세시기에는 음악이 종교적 교화를 위해 존재했는데, 복잡한 음악 구조나 다양한 악기는 이러한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권장되지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1450~1600)에 그리스로마의 유산을 새로 발견하면서 인문학과 과학이 급격히 발전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음악은 중세의 것을 계승해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밟았다. 1450년경 금속인쇄술의 발명 이후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면서 음악 악보의 인쇄를 통해 음악의 빠른 확산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까지는 기악보다는 성악이 중심이었지만, 다성 음악의 구조가 복잡해졌다. 또한 다양한 악기들이 성악과 함께 연주되었다. 중세와 다른 점은 교회이외에 왕, 귀족, 부유한 상공인들이 음악가를 후원하면서 세속음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의 도시들을 중심으로 음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바로크 시대(1600~1750)에는 음악의 감정적 효과를 인정하여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바로크 시대의 미술이나 건축은 중세 시대의 경건이나 르네상스시대의 절제에서 벗어나 전반적으로 화려함을 강조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는 음악에도 반영되었다. 이시기 음악은 교회의 범위를 본격적으로 벗어나 발전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크게 발달했다. 교회의 성악에서도 화려한 선율을 특징으로 하는 오라토리오와 칸타타가 등장하였다. 이시기까지 음악인은 대부분 남성이었으며, 다성 음악의 고음부는 거세되어 변성기를 겪지 않는 남성 가수(카스트라토)가 맡았다. 카스트라토는 교회 밖에서는 물론 교회에서까지 널리 활동하였는데, 나폴레옹 황제가 이러한 관행을 금하여 프랑스에서는 일찌기 사라졌으나, 이탈리아에서는 20세기초까지 활동하였다. 1500년대 중반부터 바이올린이 사용되기 시작하여, 1700년대 이탈리아에서 바이올린 제작과 연주법이 크게 발전하여 현재까지 큰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이 제작된 것도 1700년대 중반 무렵이다. 이 시대에 들어 기악 음악은 성악으로부터 독립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으며, 본격적인 기악 음악인 소나타가 발전하였다. 바로크 음악은 음악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에서 최절정을 이루었다.

이 책은 음악사 교과서의 요약본 같은 성격이다. 연대순에 따라 음악의 발전이 서술되며, 음악가과 음악에 관한 많은 사실을 언급하여 읽기가 쉽지 않다. 음악학자의 저술 답게 서양음악의 발전을 음악의 원리와 형식의 발전에 촛점을 맞추어 다루고 있다. 서양 음악은 앞사람의 업적위에 뒤에 사람이 추가하면서 점차적으로 발전해 온 영역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닫게 된다. 임의적으로 시대구분을 하기는 하지만, 과학이나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음악은 특별한 혁신이나 비약 없이 연속된 전개라는 인상을 받았다.

2022. 6. 26. 12:33

Robert Dahl. 2005(1961). Who Governs? Democracy and Power in an American City. 2nd ed. Yale Univ. Press. 325 pages.

저자는 다원주의 정치이론의 대가이며, 이 책은 정치학의 고전으로 지칭되는 책이다. 저자는 예일 대학교가 있는 미국의 뉴헤이븐이란 인구 십만 정도의 작은 도시에서 1950년대에 벌어진 정치 활동을 통해서 권력의 작동 메카니즘을 살핀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자원은 여러 집단에 흩어져 있고, 다양한 영역에 존재하는 위계의 상위를 특정인이 독점하지 않는다. 통치 영역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서로 다르다. 정치적 의사결정은 여러 세력간 타협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다원주의 (pluralism) 이론은, 소수의 내적으로 통일된 집단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파워엘리트 (power elite) 이론과 대치된다.

민주주의의 국민 주권의 원칙은 다수가 자신을 스스로 통치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원칙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기는 어렵다. 실제로는 위계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주로 참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는 반면, 다수의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적으며 투표하는 행위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자원을 정치에 거의 투자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다수의 견해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작동방식은, 소수의 지배집단이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결정하고 움직이는 독재체제와 대비된다. 

뉴헤이븐 사회는 18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영국계 초기 정착자들의 후손인 소수의 귀족들에게 모든 지위와 영향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들은 고등교육을 받고, 많은 재산을 소유했으며, 사회적 상위 지위를 독점했다. 정치 권력 또한 그들의 손에 있었다. 그러나 1830년대에 세금 납부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백인 남성들에게 투표권이 확대되고, 상공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신흥 계급이 등장하면서 정치적 자원이 상이한 집단들에 흩어졌다. 이 신흥계급은 다수의 지지를 바탕으로 하여, 과거에 권력을 장악했던 소수의 귀족 세력을 주변으로 밀어냈다. 19세기 중반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이 밀려오고, 19세기말 20세기 초반에는 이탈리아인과 유태인들이 대거 이주해 오면서 민족집단의 세력이 주요 정치 자원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들어 먼저 아일랜드계가 다음으로 이탈리아계와 유태인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정치 자원으로서 민족집단의 중요성은 줄어들었다. 반면 정치 영역에 따라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서로 상이한 권력의 다원화 현상이 나타났다.

저자는 그당시 뉴헤이븐 시 정치에서 핵심적인 세가지 영역에서 전개된 의사결정과 영향력의 행사 과정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첫번째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각각 시장 선거에서 당을 대표하는 후보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다. 둘째는 뉴헤이븐 시의 재개발 사업과 관련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이다. 셋째는 뉴헤이븐 시의 교육 분야의 의사결정 과정, 구체적으로는 시의 공립 고등학교 두개를 폐쇄하고 한개의 새로운 학교를 설립하는 과정이다.

시장 선거에서 후보자 공천을 하는 과정에는 중간 계층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중간 계층 출신의 하급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주요 의사결정에 반영된다. 이들 하급 지도자들은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고, 대부분 전문직이 아닌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며, 소득도 높지 않지만, 적극적인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의 의견을 대변하기에 무시할 수 없는 존재이다. 민족집단의 세력은 과거만큼은 아니지면 여전히 큰 영향력을 쥐고 있다. 선거의 영역에서는 다수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소수에 불과한 과거의 귀족 집단은 이 영역에서 거의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시간이 흘러 이민자 집단의 다수가 아일랜드계로부터 이탈리아계로 이동하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이탈리아계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들어 이탈리아계가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하면서 이탈리아계의 응집된 세력은 분열되었으며, 그와 함께 민족 집단의 영향력은 약화되었다. 

정당의 소수 지도자들이 사실상 공천을 결정하는데, 왜 그 과정에서 다수의 하위지도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다음 네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민주적 절차는 소수 지도자들의 결정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둘째, 민주적 절차는 하위 지도자들의 충성을 불러 일으킨다. 셋째, 민주적 절차는 갈등을 질서있게 조정하도록 해준다. 넷째, 새로운 사회적 세력들이 부상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실상 소수가 의사결정을 하지만, 다수의 참여를 유도하는 민주적 절차들이 단순히 겉치장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뉴헤이븐 시의 재개발의 의사결정에는 재력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재개발은 이들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며, 재개발이라는 경제 사업에서 이들의 전문성이 발휘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1930년대 이래 중상층이 점차 교외로 이전하고 뉴헤이븐 시가  쇠락하면서 재개발의 필요성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였지만, 주민 간 이해 조정의 어려움 때문에 오랫동안 재개발이 미루어졌다. 1950년대 후반에 선출된 시장이 주요 이해 관계자들을 모두 위원회로 끌어들여 이해를 조정하고 반발을 무마하면서 재개발 사업이 실현될 수 있었다. 시장이 재개발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심에 있지만, 다양한 경제 분야의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하거나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뉴헤이븐 시의 교육 분야의 의사결정에는 교육감, 교사 노조, 예일대 교수 등 교육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로 참여하였다. 뉴헤이븐 시의 상류층은 그들의 자제를 사립학교에 보내기 때문에 공교육의 개혁과 관련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렵다. 폐쇄하는 공립학교 부지를 예일대에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새로운 공립학교를 건립하는 사업에 대해 비판이 적지 않았으나, 학부모들이 새로운 공립학교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으며, 시장의 주도로 만들어진 위원회를 통해 교육분야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함으로서 그들의 반말을 무마할 수 있었다.

위의 세 영역의 어디에서도 일반 대중은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정당의 중간지도자들, 재개발 위원회의 대표들, 교육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반영되었다. 이 사람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이유는 물론 자신의 이익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다수의 의견이 여과되어 반영된다. 만일 이들이 다수의 의견에 배치되는 의사결정을 한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패하고 직책을 잃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생업이 바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정치활동에 참여할 자원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의 의견이 무시되지는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의 주권은 선거를 통해 실현된다. 다수의 시민들의 정치 참여도는 매우 낮지만 이들은 숫자가 많기 때문에 이들의 적은 참여라도 많이 모이면, 높은 수준의 정치 참여를 하는 소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즉 다수의 의견은 소수의 의사결정에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정치 활동을 더 열심히 할까. 그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과 관련될 때 정치 활동에 참여하며, 교육, 소득, 직업 등 사회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사람들이 주로 정치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같은 사회경제적 수준에서도 일부 사람 다른 사람보다 정치 활동에 더 열심히 참여하는데, 이는 성격의 차이 때문인 것 같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기본적으로 힘든데(abrasive and exhausting), 일부 사람들은 많은 사람을 만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소질이 있으며, 이런 사람들이 정치 활동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으며, 그럴 심리적, 물질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저자는 다원주의 정치 이론이 실제 정치의 장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는 3년 동안의 조사와 가용한 모든 자료를 동원하여, 주요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파헤친다. 구체적인 사례를 설명하기에 많은 사람이 등장하며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실제 정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드문 연구이다. 70년 전에 미국의 조그만 도시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여전히 흥미있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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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6. 6. 22:02

Daniell Schacter. 2001. The Seven Sins of Memory: How the mind forgets and remember. Houghton Mifflin Co. 206 pages.

저자는 심리학자로 기억 연구의 전문가이며, 이 책은 그의 전문 분야를 일반 독자를 위해 풀어 쓴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다음 일곱가지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쉽게 잊어버리는 것(transience),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absent-mindedness), 기억이 막혀 회상하지 못하는 것(blocking), 잘못 기억해내는 것(misattribution), 암시에 의해 영향받는 것(suggestibility), 외곡되게 기억하는 것(bias),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 (persistence). 각각의 문제의 증상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왜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그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논의한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억의 대상과 연관된 사항을 함께 기억속에 저장하면 이 문제를 조금은 약화시킬 수있다. 그러나 시간이 멀어질수록 기억이 흐릿해지는 것은, 진화적 적응의 결과이다. 일이 발생한 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그것이 우리의 생존에 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주의를 게을리하여 기억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의 한정된 기억 자원 (momory resourse)을 효율적으로 쓰는 장치의 일부이다. 일상에서 익숙한 일이나 익숙한 환경에서 인간은 자동항법 모드로 일을 수행하면서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기 때문에, 그 일과 관련된 구체적 사안을 나중에 기억해 내기 어렵다. 동시에 여러 일에 관여할 경우, 덜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기억 자원을 덜 사용하므로 나중에 그 일을 기억해 내기 힘들다. 

사람의 이름이나 기타 고유명사를 떠올리기 힘든 이유는 그것이 다른 지식들과 연결고리가 적기 때문이다. 어릴때의 학대나 강간과 같이 큰 정신적 충격을 준 사건을 나중에 기억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감정적 자기방어 장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인이 되어 기억해냈다고 주장하는 어릴 때의 성적 폭력은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은 어떤 일이나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것들을 기억에 저장하기보다, 그것의 요점만을 일반화하여 저장한다. 인간은 패턴을 인식하는 동물이다. 대상의 일반화된 패턴을 파악하고, 패턴으로 기억에 저장한다. 따라서 나중에 그 일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질문받았을 때, 잘못 기억해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증인이 범인을 잘못 지목하는 경우는 흔하다.

사람들이 과거의 일을 기억해 내는 것은 암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범인을 심문하는 사람의 암시에 의해 증인이나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과거 일에 대한 기억이 변형되는 경우는 흔하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과거 기억은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처음에는 모호했던 기억이, 질문자의 반복된 암시에 의해 확실한 기억으로 변형된다.

과거의 일이나 대상을 잘못 회상해내는 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의 결과이다. 현재의 사정에 따라 과거의 사정에 대한 기억을 외곡시켜 과거와 현재의 일관성을 추구한다. 일의 결과를 보고 처음부터 그러리라고 생각했다고 믿거나, 그렇게 일이 전개된 것은 필연적이라고 사후에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항시 해석한다.  부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보다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해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는 것은 심리적 자원을 절약하기 위한 방편이다.

과거의 일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은 그 일에 감정적으로 크게 관여했기 때문이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일이나 상황에 대해 감정적으로 크게 흥분하게 되고, 그 일이나 상황이 기억에 깊이 각인되어 잊혀지지 않는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적응의 결과이다. 기억해 내고 싶지 않은 것을 마음 속에 억누를수록 문제가 더 커진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글이나 말로 대면하면 할 수록 그것에 대한 감정이 무디어지고, 그것의 괴로움이 점차 옅어지게 된다.

이상 일곱가지 기억의 약점은 동시에 강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기억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을 보이지 않는 정신질환자의 경우, 일상의 삶을 살아가는데 심각한 문제를 보인다. 이러한 기억의 약점은 인간의 진화적 적응의 직접적 결과이거나 혹은 부산물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분야를 쉽게 풀어쓴 것으로, 수많은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일상에서 흔히 벌어지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이론적 논의를 전개한다.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지만, 때때로 머리털을 세는 세밀한 작업을 쫒다가 길을 잃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2022. 5. 22. 22:24

Albert-Laszlo Barabasi. 2014(2002). Linked: How everything is connected to everything else and what it means for business, science, and everyday life. Basic Books. 238 pages.

저자는 물리학에 배경을 둔 Network Science 학자이며, 이 책은 네트워크의 속성과, 실제 세계에서 네트워크가 적용된 사례를 설명한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노드(node)와 링크(link)로 구성된 네트워크는 어떤 모습일까? 학자들은 노드가 연결되는 방식은 랜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가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의 World Wide Web에 존재하는 웹페이지들이 하이퍼링크를 통해 연결된 모습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생각은 틀리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터넷의 네트워크는 허브(hubs) 들의 위계체계로 되어 있다. 몇개의 웹페이지에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웹페이지들로부터 링크가 집중된 반면 다른 페이지와 링크가 거의 걸려있지 않은 것에 이르기까지, 웹페이지의 링크의 빈도는 연속적인 위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많은 수의 웹페이지와 연결된 노드를 허브(hub)라 하며, 허브는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러한 속성의 네트워크를 전문용어로 scale-free networks 라고 한다.

만일 노드가 연결되는 방식이 랜덤하다면, 링크의 빈도 분포는 정규분포 곡선을 따를 것이다. 즉 대부분의 노드는 비슷한 수의 링크를 가지고 있고, 소수의 노드들만 아주 많거나 혹은 아주 적은 링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에서 링크의 빈도분포는 지수분포(power law)를 따른다. 소수의 노드는 엄청나게 많은 링크를 가진 반면 대부분의 노드는 매우 소수의 링크만을 가지고 있다.

왜 세상의 많은 네트워크는 허브의 위계체계라는 속성을 지닐까? 그는 네트워크가 두가지 원칙을 따르면, 이러한 속성의 네트워크가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짐을 증명했다. 첫째 원칙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노드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하나씩 덧붙여져 성장하며, 두번째 원칙은 이렇게 새로이 출현하는 노드가 기존의 노드들 중에 가장 링크가 많이 걸린 것에 새로운 링크를 건다는 원칙이다. 기존의 노드들 중에 링크가 가장 많이 걸린 것이 네트워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새로 출현한 노드가 이것에 링크를 걸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노드와 링크를 하나씩 더해 나가는 실험을 하면,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가 출현한다. 이를 복잡계(complexity), 즉 몇가지의 단순한 원칙이 자기 반복적으로 적용되면서 복잡성이 높아지는 체계라고 한다.

그가 이러한 네트워크의 원칙을 발견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인터넷 세계뿐 아니라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네트워크들이 이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항공노선의 망, 과학세계에서 학자들 사이의 인용의 망, 공동 영화출연을 통해 헐리우드 배우들이 서로 연결된 망, 사람들 사이에 친소관계의 망, 전염병이나 유행이 확산되는 망, 등은 모두 이러한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이다. 물론 모든 네트워크가 허브의 위계체계를 가진 네트워크는 아니다. 예컨대 미국의 대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망을 보면,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망의 링크가 지수분포를 보이지 않는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는 매우 강하다. 웬만큼 많은 수의 노드들에 문제가 발생해도 다른 노드들 사이에 연결을 유지한다. 반면, 허브들만 골라서 체계적으로 공격을 한다면, 이러한 네트워크들도 파괴될 수 있다. 네트워크의 이러한 속성을 알면, 조직의 운영이나 여론과 유행의 전파 등 여러 경우에 효과적으로 네트워크를 통제할 수있다. 소수의 허브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면 네트워크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지도를 파악하고 접근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사이에 문제해결 능력의 차이는 크다.

이책은 저자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쓴 책이다. 월드와이드웹을 분석하여 네트워크의 특성을 발견한 그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책 후반에 이러한 네트워크의 속성이 다른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되는 것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약간 피상적이다. 아무래도 자신의 전문분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네트워크와 복잡계에 흥미를 갖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