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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나무/살구나무'에 해당되는 글 50건
2022. 11. 11. 18:00

최병삼,김창욱,조원영. 2014. 플랫폼, 경영을 바꾸다. 삼성경제연구소. 321쪽.

저자는 경제 및 경영 전공의 연구자들이며, 이 책은 경영학적 관점에서 플랫폼의 경영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플랫폼이란 무엇인지 먼저 설명한 후, 플랫폼의 발굴, 도입, 성장, 강화, 수확의 각 단계마다 극복해야 할 도전을 성공한 플랫폼의 사례들을 통해 서술한다.

플랫폼은 원래 '반복 활동을 하는 공간이나 구조물'을 의미하며, 비즈니스세계, 특히 제조업에서는 '다양한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기본 골격'을 의미한다.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 공통적이고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기반 모듈', 혹은 ' 다양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사용하는 토대'로 정의할 수 있다. 

기존의 사업에서 공통적 구조나 자산을 찾아 이를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사례로 UPS를 제시하고, 인터넷 확산이라는 기회를 포착하여 다양한 품목, 낮은 가격, 빠른 배송이라는 가치를 실현한 사례로 아마존을 제시한다.

통신사가 장악하던 시장에서 독자적 플랫폼을 구축하여 성공한 예로 애플을 제시하며, 애플의 아이튠이라는 강한 플랫폼이 있는 온라인 음악 시장에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무기로 진출하여 성공한 사례로 Spotify 를 제시한다. 플랫폼 설계는 자체적으로 하되, 플랫폼 제공은 외부 참여자에게 개방하여 대규모 참여를 유도한 사례로 TEDx 를 제시한다.

승자가 불확실한 시장에서 수익화보다 고객 가치 제고를 통해 네크워크를 극대화한 사례로 페이스북을 제시하며, 네트워크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임계치에 도달할 때까지 가치있는 것을 플랫폼이 직접 공급한 사례로 유튜브를, 외부 자원과의 조건부 계약의 사례로 신용카드를 이용한 온라인 결제 시스템인 스퀘어를 소개한다.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품질이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참여자를 선별한 사례로 Teaching for America 를 제시하며, 유튜브는 회원들이 스스로 저질 및 불법 동영상을 걸러내는 자율 정화시스템을 도입했다.

이용자에게 돈을 지불하도록 하기 위해 freemium 전략을 구사하는 사례로 에버노트를 제시하며, 이용자의 특성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정하는 사례로 클럽을 제시한다.

이 책은 사례를 중심으로 하여 경영학적인 개념을 알기쉽게 설명한 것이 강점이다. 매우 다양한 사례를 사용하므로서 플랫폼의 다양한 측면에 눈뜨도록 하는 전략도 효과적이다. 이 책이 그렇게 많이 팔린데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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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dy Pross. 2012. What is Life? : How Chemistry becomes bi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199 pages.

저자는 화학자이며, 이 책은 생명체의 특성과 근원을 설명한다. 생명체는 화학적 반응의 집합으로, 에너지를 소비하여 자기복제를 통해 영속성을 유지한다. 다윈이 주장하는 진화의 과정은, 물질이 자기복제 반응의 성공율을 높이기위한 복잡화(complexification)과정의 일부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명체는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함에 비해, 무생명체 즉 물질에게 '목적'이란 의미가 없다. 어떻게 목적이 없는 물질이, 목적지향적인 존재로 바꾸어질 수 있었을까? 생명체의 목적은 자기복제이다. 자기와 닮은 또 다른 존재를 만드는 것이 생명체의 궁극적 목적이다. 

생명체란 불안정한 존재이다. 열역학제2법칙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에너지가 낮은 수준을 향하여, 질서가 흩뜨러지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생명체란 무질서의 세계에서 고유의 패턴, 즉 질서를 유지하는 존재이며, 주위의 에너지 수준과 격차를 계속 유지하는 존재이다. 이는 마치 새가 계속 날개짓을 하면서 중력을 거스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이다. 생명체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소비하는 대사작용(metabolism)을 통해 자기복제를 계속함으로서 이러한 불안정 상태를 계속 유지한다. 개별 생명체는 열역학제2법칙에 따라 질서가 흩뜨러지고 주위와의 에너지 격차가 사라지는 과정, 즉 죽는 과정(decay and die)을 밟지만 자기복제를 통해 집단으로서의 생명체의 존재를 유지한다.

개체로서는 죽지만, 집단(population)으로서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이를 저자는 '동적인 안정성' (dynamic kinetic stability)이라고 지칭하면서, 샘물의 비유를 든다. 샘물을 구성하는 물은 계속 바뀌지만 샘물의 존재는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세포, 기관, 개체의 각 단위에서 개체로서는 죽지만 집단으로서는 존재를 유지한다. 예컨대 우리의 피부는 계속 죽고 동시에 새로 생성되는 과정을 지속하면서 피부의 안정된 상태를 유지한다. 생명체의 동적인 안정성이 유지되는 이유는, 생명체의 자기복제가 지수적으로 증식(exponential growth)하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가 복제되기 때문에, 개체들은 계속 사멸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체의 존재는 유지된다.

과학자들은 유기물질로부터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RNA)를 합성해내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자기 복제를 하는 개별적인 존재가 자기복제를 계속한다는 것은 열역학제2 법칙, 즉 질서는 무질서의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원리에 어긋나는 것인데, 어떻게 자기복제를 계속 할 수 있게 되었을까?  과학자들은 자기복제를 하는 서로 다른 두개의 존재가 합쳐져 서로의 복제를 촉진하는 존재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기 복제를 하는 물질 간에도 더 잘 자기복제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간에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자기 복제를 하는 과정에서 변이(mutation)가 나타나고, 변이된 것 중에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더 잘 하는 존재가 나타나게 됬으며, 이후에는 진화적인 경쟁과 선택의 과정이 반복되면서 점점 더 자기복제를 잘하는 복잡한 존재 (complexification)로 발전하게 되었다. 복잡화는 자기복제의 수월성을 향하여, 즉 다른 자기복제 존재보다 더 복제를 잘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외부 환경의 다양한 틈새(nitche)를 자기복제의 효율을 높이는데 이용하면서 자기복제 종의 다양화가 이루어졌다. 

생명체가 목적지향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슬러 동적인 안정성을 유지하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모든 물질은 안정성(stability)를 향하여 진행한다. 무생물체는 열역학 제2법칙의 원리에 따라 에너지 수위가 낮고 무질서한 안정성으로 진행한다. 반면 생명체는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르는 동적인 안정성을 유지한다. 왜 생명체는 자기복제를 하려고 하는가? 자기복제를 하지 않으면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무생명의 물질로 돌아가게 된다. 더 잘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 존재를 압도하는 물리적인 상황을 두고, 우리는 생명체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일 뿐이다.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박테리아의 세계에서도 더 잘 자기복제하는 존재가 그렇지 않은 존재를 압도하는데, 이러한 객관적 현상을 두고 우리는 박테리아는 복제를 더 잘하기 위해 활동한다, 즉 목적 지향적으로 움직인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저자는 '무생명체, 즉 물질에서 생명체가 어떻게 출현하였는가' 라는 근본적이 문제에 대한 지금까지의 과학적 탐구 과정을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한다. 생명체는 화학 반응의 집합이며, 생명체의 출현과 이후 발전 과정 역시 화학 반응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체란 자기복제 반응의 집합이며, 집합으로서 자기복제할 때 자기복제가 더 잘 되는 것, 즉 복잡화(complexification)의 과정은  화학 실험으로 증명되었음으로, 생물학과 화학을 잇는, 즉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잇는 연결 고리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한다.  불분명한 점은, 복잡화의 과정 중에,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더 잘하는 존재가 나타나게 됬다고 하는데, 이점에 대한 설명이 미흡하다.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받아들여 자기복제를 한다는 것은, 즉 생명활동의 핵심인 대사작용을 의미하는데, 어떻게 비생명체인 물질이 대사작용을 하는 존재로 바뀌게 되었는가하는 문제가 생명체 출현의 핵심이 아닌가?  자기복제를 하는 존재는 화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었지만, 대사작용을 하는 존재는 아직까지 화학적으로 합성해내지 못했다.  여하간 대단한 책이다. 읽으면서 어려운 주제를 쉽게 설명하는 저자의 능력에 감탄을 거듭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찬찬히 읽었다. 훗날 다시한번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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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0. 19. 21:48

Carl Zimmer. 2021. A Planet of Virus. 3rd e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32 pages.

저자는 과학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바이러스에 관한 다채로운 짧은 글들을 모아 놓았다. 바이러스는 유전자만을 가지고 있을 뿐, 대사활동을 할 수 없다. 혼자서는 에너지를 소모해 일을 하지도, 외부 환경에 반응하지도, 번식하지도 못한다. 숙주의 세포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증식한다. 숙주의 세포 밖에 나와 있는 상태에서는 생명체라기보다는 단순히 유기물에 가깝다. 최초로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한 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에서부터 시작하여, 인플루엔자, 라이노바이러스, 파필로마 바이러스, HIV, 코로나 바이러스의 일종인 SARS, MERS, COVID-19 등과 Small pox 가 논의된다. 

바이러스는 워낙 크기가 작기 때문에 19세기 후반까지 존재가 밝혀지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정밀한 현미경이 발명된 이후에야 바이러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개 수는 수십개에 불과하며, 유전자 복제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제어하는 기제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복제과정에서 많은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 지구상 바이러스의 종류는 수백만개에 달하며, 지상은 물론 바다 속에도 매우 많이 존재한다. 바이러스의 대부분은 박테리아에 기생한다. 바이러스가 박테리아의 세포에 침투하여 증식한 후, 세포를 파괴하고 나와 다른 박테리아에 침투하는 방식으로 확산한다. 바이러스는 지구상 박테리아의 폭발적 증식을 제어하는 유용한 역할을 한다.

바이러스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단순한 준생명체이다. 바이러스가 유전자를 서로 섞거나, 혹은 숙주의 유전자와 자신의 것을 섞어 숙주의 유전자의 일부로 되기도 한다. 인간의 유전자 중 일부는 과거에 인간의 몸속에 침투한 바이러스의 유전자이다. 바이러스는 동물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으며 종류도 매우 다양하다. 때때로 동물세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몸속에서 살 수있게 되고, 인간에게 해를끼치기도 한다. 바이러스는 종류가 많고 돌연변이를 많이 일으키기 때문에, 20세기초에 인플루앤자 바이러스나 근래에 HIV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앞으로도 인간의 몸속에 침투하여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언제냐가 문제일 뿐.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모기와 같이 바이러스를 옮기는 동물의 활동이 늘어나기 때문에, 앞으로 새로운 바이러스 질병이 창궐할 가능성은 과거 어느때보다 크다.

과거에 인플루엔자나 사스와 같은 바이러스 질병이 한동안 창궐하다 사라졌는데, 어디에서 바이러스 병원균이 유래했는지 알기도 어렵지만, 왜 사라졌는지도 알지 못한다.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적합치 않은 환경이 조성되면서 사라졌으리라고 추측할 뿐이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같은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로는 치료할 수 없다. 다만 바이러스를 죽이는 바이러스가 존재하고, 이를 통해 바이러스 질병을 치료하는 방식이 유망해 보인다. 바이러스가 우리몸에 침투하여 증식하려 하면 우리몸이 항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대응할 수 있다. 천연두 백신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바이러스의 종류가 많고 돌연변이를 자주하기 때문에, 특정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백신을 통해 우리몸에 항체를 형성하게 한다고 해도, 돌연변이한 다른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듣지 않기 때문에, 바이러스에 대해 근본적인 방어는 불가능하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근래에 과학자들은 유전자 조작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천연두 바이러스를 유기물에서부터 합성해낸 사례나, 유전자 조작 방식으로  COVID-19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해 낸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에 병원균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만들어낸 백신과 달리 유전자 조작 방식으로 만든 백신은 바이러스 병원균의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합성해 내어 우리 몸에 주입시켜서 항체를 형성하도록 하는 새로운 기술이다. 인류가 바이러스라는 유전자 정보를 가진 준생명체를 합성해내는데 성공하므로서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지식을 일반 독자가 알기 쉽게 풀어서 쓰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 글이 읽기 편하게 쓰여졌고 독자의 흥미를 계속 붙잡아 두는 긴장이 유지되기 때문에, 읽는 내내 재밌었다. 책이 너무 얇고, 각 주제에 대해 논의가 깊어지려고 하는 지점에서 글을 멈추고 다른 주제로 옮아가는 것이 성에 차지 않지만, 저자가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는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를 구별하게 된 것만으로도 시간을 쏟은 보람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상 생명체의 세계에서 주역은 인간이 아니라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저자의 다른 책도 찾아서 읽어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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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Hill, Terry McCreary, and Doris Kalb. 2013. Chemistry for Changing Times. 13th ed. Pearson. 706 pages.

저자는 화학자들이며, 이 책은 인문계 학생들을 위해 쓴 화학 대학교재이다. 총 22개 장에 걸쳐,  원자구조에서부터 시작하여, 화학 결합, 화학 계산, 물질의 상태, 산과 염기, 산화물, 유기화학, 폴리머, 핵화학, 지구화학, 공기, 물, 에너지, 생화학, 음식, 약품, 건강, 농업 화학, 집안 주변의 화학물, 독성학 등에 대해 설명한다. 비과학 전공자를 위한 책이므로, 수식과 계산은 최소화하고, 대신 서술을 많이하여 잘 읽혀진다.

오래전부터 화학에 흥미가 있었으나, 화학을 제대로 다루는 교양서를 찾을 수없었다. 화학 원리와 응용에 대해 제대로 서술한 책을 읽으려면 대학 교재를 읽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한달에 걸쳐서 천천히 읽었다. 처음에 화학의 원리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부터 유기화학까지는 체계적으로 써서 이해가 쉽고 흥미롭게 읽었으나, 뒤로가면서, 특히 생화학에서부터는 다양한 많은 사실을 망라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어 읽어내리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면서, 화학이 설명하는 세상은 신기하고 흥미로웠으며, 화학 원리와 지식을 하나 하나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했다면 이후의 삶이 흥미있게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큰 성과를 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읽는 내내 들었다. 가지 않은 길이기에 더욱 풀이 우거지고 파랗게 보였는지 모른다. 하는 일이 즐거우면 열정이 샘솟고, 열정적으로 일하면 좋은 성과를 내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성취는 다시 흥미와 열정을 낳는  식으로 선순환을 그리며 살고 싶은데, 지금까지 나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어느 정도 열심히 했고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일이 즐겁고 그래서 열정이 솟았다고 말할 수 없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겁게 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

수학과 과학에 소질이 있던 학생이 고등학교때 인문계를 선택하여 그 길을 걸은 결과이다. 앞으로 남은 생은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고, 성과와 인정을 받고, 열정적으로 보람을 느끼며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자리에서 보람있는 삶을 살았노라고 자족하고 싶다.

2022. 8. 31. 17:13

Douglass North.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40 pages.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수행한 연구의 요점을 정리한 책이다. 그의 연구의 출발점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사를 연구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선택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보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완전경쟁을 한다는 신고적 경제학 모델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시장이라는 차단된 공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공식적 제도와 비공식적 규범의 틀 내에서 경제활동을 한다. 제도란 incentive system에 다름이 아니다. 경제활동에서 핵심적인 제도는 소유권을 둘러싼 제도이다. 계약, 소유권,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가 공식적으로 마련되어 있고, 정치권력과 정부가 이를 성실히 준수하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낮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 반면,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부실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높으, 사람들은 생산적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높은 경제에서는 경제 참여자들 사이에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문화의 수준이 낮고, 전문화가 안되면 기술 개발이 힘들며, 생산 규모가 커지지 않는다. 개별 생산 규모가 작으면,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규모의 경제의 이익을 거둘 수 없다.

경제 발전은 경로의존적(path-dependent)이다. 과거의 제도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변화는 느리게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혁명처럼보이는 경우도, 혁명적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실제 일이 이행되는 과정을 보면 과거의 제도가 여전히 살아서 작용하고 있다. 제도와 규범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

북미와 남미가 다른 경제발전 경로를 밟게 된 것은, 이들의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과 스페인/포르투갈의 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가 왕권을 견제하게 되었고,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가 의회를 통해 제한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고 계약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거래비용이 낮아졌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금융시장이 발달하게 되었고, 영국이 전비를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었기에 프랑스를 이기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 소유권을 보장하는 제도는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었기에, 이는 산업혁명과 기업 활동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반면, 스페인/포르투갈에서는 왕권과 그를 보좌하는 중앙정부의 관료가 지배하는 제도 환경이 지속되었다.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는 수시로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낳았으며, 그 결과 생산적 경제활동보다는 권력에 기생하는 이익추구(rent-seeking) 행위가 지배하였으며, 결국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다. 중남미의 식민지가 모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과거 종주국의 제도를 물려받아, 권력자와 관료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허용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와, 생산적 활동이 장려되지 않는 제도 환경을 정착시켰다. 반면 북미는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앙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어 내고, 소유권과 계약의 이행을 공식적으로 강제하는 제도가 정착하고,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면서, 이민자의 유입, 서부로의 진출, 생산적인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제도를 수입해도, 이것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한다. 제도는 여러 다양한 요소가 그물망처럼 엮여 있기 때문에, 특정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연관된 제도들이 함께 제대로 이행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규가 존재하지만 권력자와 관료가 개인의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하고,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부실하다면, 사람들 사이에 거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저자는 경제발전의 요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든다. 제도와 기술이 그것이다. 제도와 기술은 서로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왔다. 소유권이 잘 보장될 때 개인의 창의와 기술 발전이 활성화되며, 기술이 발전하면 계약의 이행과 소유권 보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생의 연구를 종합하여 요약한 글이므로 매우 압축적이라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의 주장은 이제 사회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이 책은 그의 이론을 전반적 훑으며 통찰력을 얻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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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30. 17:43

Nolan Gasser. 2019. Why you like it: the science and culture of musical taste. Flatiron books. 645 pages.

저자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작곡하는 음악가이며, 인터넷 라디오 "판도라"에서 Musical Genome Project 를 수행한 경험을 배경으로 이 책을 썼다. 사람들의 음악적 취향의 결정 요인을 음악 내적인 요인과 음악 외적인 요인의 양쪽에서 분석한다. 음악 내적 요인을 설명하기 위해 음악 이론을 멜로디, 화음, 리듬, 형식, 소리 라는 다섯가지 측면에서 검토한다. 음악 외적 요인으로는 진화론적 배경, 소리의 물리적 성질, 생물학적 배경, 문화적 배경, 사회적 성격, 심리적 배경, 음악의 효과를 검토한다.

음악은 언어와 함께 진화의 과정에서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주었다. 의사소통, 집단화합 등에서 원시시대부터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었기에, 음악은 인류와 역사를 같이한다. 

멜로디와 화음이 우리 귀에 좋게 들리는 것은 소리 파장의 규칙적인 중첩 현상 때문이다. 소리 파장이 중첩되지 않는 음을 들으면 귀에 거슬린다. 따라서 음악이란 궁극적으로는 소리의 물리적 속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양에서는 7음계, 장조, 단조 음계가 발달한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의 다른 지역에는 이와는 다른 음계가 발달하였다.

음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된다. 12세 무렵이면 자신이 속한 문화에서 통용되는 음악에 두뇌가 굳어지며, 이후 다른 문화의 음악을 들으면 자신이 친숙한 음악과는 다르다는 차이를 느낀다. 따라서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취향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은 사람들이 나고 자란 문화이다. 자신의 문화에서 규정하는 음악 규칙과 다른 음악을 들으면, 생소한 느낌이 들고, 긴장하게 되고, 기억하기 어려우며, 쉽게 좋아지지 않는다.

음악은 자신의 집단 정체성의 일부이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음악적 취향은 계급 배경을 반영한다고 지적하였다. 문화적 취향의 차이는 계급을 구분하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음악은 사람들이 어울리고 동일시하는 집단, 즉 하위문화를 형성한다. 고급문화와 저급문화의 구분이 대표적 예이다.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 좋아하는 음악에 차이가 있다. 내면 지향형 성격의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음악적으로 복잡하며 세련된 음악, 예컨대 재즈나 클래식을 좋아하는 반면, 외부 지향형 성격의 사람들은 격정적이지만 음악적으로 복잡하지 않은 음악, 예컨대 록, 컨트리 등을 좋아한다. 자신이 특정 음악에 많이 노출될수록 그 음악을 좋아하게 된다. 친숙함이 좋아함을 낳는다. 개인적 성격 이외에 맥락에 따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차이가 있다. 아침에 운동할 때, 저녁 식사시간에, 잠자리에 들면서, 등 맥락에 따라 그에 맞는 음악이 있다. 동일한 성격의 사람들도 맥락에 따라 다른 음악을 찾는다.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일곱개의 음악 '취향 모델'(genotype)을 설정하고, 각 취향 모델에 속하는 네 개의 곡을 예로 하여 개별 모델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팝(Pop), 록(Rock), 재즈(Jazz), 힙합(Hip Hop), 엘렉트로닉 춤곡(Electronica, EDM), 비서구음악(World Music), 클래식(Classical)이 그것이다. 각 취향 모델의 역사와 음악적 속성을 전반적으로 서술하는 부분은 비전공자도 읽을만 하나, 개별 음악을 분석하는 부분은 상당히 전문적이라서 비전공자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은 사실상 두개의 책이 합쳐진 것이다. 음악 내적 요인을 설명하는 부분은 전문적이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반면, 음악 외적 요인을 설명하는 부분은 음악 전공자가 아니라도 무리없이 읽어내릴 수 있다. 음악에 대해 사실상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커버하고 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빽빽하게 집어넣어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책을 대강이라도 읽고 나서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음 분명하다.

2022. 8. 19. 19:56

Desmond Morris. 1999(1967). The Naked Ape: A Zoologist's Study of the Human Animal. Delta Book. 241 pages.

저자는 침팬지의 행태를 연구한 동물학자이며, 이 책은 동물의 일원으로서 인간을 객관적으로 관찰한다. 인간은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의 중간 쯤의 행태를 보이며, 침팬지와 매우 흡사하다. 성, 성장, 탐구 활동, 싸움, 먹이활동, 안락을 추구하는 행위, 다른 동물과의 관계 등, 장을 달리하며 서술한다. 인간의 성에 관한 서술이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자세하며, 다른 주제는 상대적으로 간략히 다룬다.

인간은 높은 지력을 지니고 이성적으로 처신하는 듯 하지만, 사실 다른 동물과 다름 없이 동물적 본능에 의해 지배되어 살아간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집단적으로 노력을 투입하여 일을 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태는 집단 생활이 원만하게 돌아가도록 맞추어져 있다. 예컨대 인간 사회에서 일부일처제가 기본인 이유는, 이러한 남녀의 짝짓기 행태가 다른 어느 방식보다 집단적으로 노력을 투입하여 살아가는 방식에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쓰여진 책답게, 인구의 폭발적 증가 문제를 곳곳에서 언급한다. 인류는 최고의 포식자가 되어 다른 동물을 모두 제압하고 빠르게 증가해 왔다.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동물 세계에서 밀도가 높을 때 발생하는 부정적 현상들이 인간 사회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높기는 하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많은 생물이 멸종되었듯 인간도 앞으로 멸종될 가능성이 있다. 인구 폭증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이 책은 진화적 관점에서 인간 행태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고전으로 취급된다. 동물과 인간을 객관적으로 비교하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한다. 이 책이 나온 후에 많은 연구 성과가 쌓였지만, 저자의 솔직하며 냉정한 서술은 여전히 읽는 재미를 준다.

2022. 8. 12. 19:38

Frank Snowden. 2019. Epidemics and Society: from the Black Death to the Present. Yale University Press. 505 pages.

저자는 의료사를 전공한 역사가이며, 이 책은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 주요 전염병을 전반적으로 검토한다. 서구유럽과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하며, 흑사병, 홍역, 황열병, 이질과 장티프스, 콜레라, 폐결핵, 말라리아, 소아마비, 에이즈, 사스와 에볼라에 이르기까지 장을 달리하며 다룬다.

서구의 의료는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와 로마의 갈렌에서부터 비롯한다. 그들은 인간의 질병을 신이나 악마의 행위로 보지 않고 자연현상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병이란 인간의 성질을 구성하는 네가지 요소가 불균형 상태에 빠진 결과라고 주장했다. 해로운 기운을 제거하는 개입을 통해 병을 치유할 수 있는데, 사혈하는 방법을 주로 많이 썼다. 이러한 의료 철학은 19세기 중반까지  서구 의학계를 지배하였다. 19세기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세균의 존재가 확인되고, 자연발생적으로 세균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감염에 의해 세균이 전파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야 비로서, 오랫동안 서구를 지배한 의학이론은 세력을 잃게 되었다.

흑사병은 유럽 사회를 오랫동안 여러번 휩쓸었다. 1200년대 초의 흑사병이 제일 심하기는 했지만, 1700년대에 이탈리아에서 마지막으로 휩쓸고 지나갈 때까지, 서구 사회는 흑사병을 때때로 경험하였다. 흑사병의 발생했을 때 그 지역을 집단적으로 격리하는 방법이 유일한 방어책이었다. 흑사병을 매개하는 쥐를 잡는 운동을 전사회적으로 벌인것이 약간의 퇴치 효과가 있기는 했으나, 흑사병이 서구에서 사라진 원인은 확실치 않다. 덜 심한 증상을 보이는 흑사병은 여전히 개발도상국에서 종종 발병한다.  

홍역은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하였으며, 매우 보편적인 전염병이다. 한때 유럽에서 전 성인 인구의 5분의 1이 홍역에 걸릴 정도로 흔한 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죽거나 곰보가 되었기 때문에, 19세기 초반까지 곰보는 주위에서 흔히 볼 수있었다. 19세기 초반 제너의 종두법이 보급되면서 점차 잡히기 시작했다.

황열병, 이질, 장티프스는 나폴레옹의 몰락과 밀접히 연관된다. 서인도제도의 프랑스 식민지인 아이티에서 노예 반란이 일어났을 때, 나폴레옹이 파견한 군대가 황열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패퇴하였다. 나폴레옹은 아메리카 대륙에 교두보를 잃게 되어, 그당시 북미에 프랑스 거대한 식민지 영토였던 루이지아나를 그당시 신생국이던 미국에게 매각하는 방식으로 철수 하였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정벌에 나섰을 때, 이질과 장티프스로 많은 병사를 잃고 추위에 시달리다 결국 러시아 전선에서 크게 패배하였다. 전염병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일익을 담당한 것이다.

19세기 프랑스에서는 파리의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전염병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일었으며, 영국에서는 위생 상태를 높이는 사회적 운동이 크게 벌어졌다. 거주지 주변의 오염물에서 질병이 시작된다는 새로운 이론이 힘을 받으면서, 상하수도를 설치하고, 수세식 화장실을 도입하고, 거리의 오물과 물웅덩이를 제거하는 등으로 전사회적으로 위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벌인 결과 전염병 발생이 크게 줄었다. 위생을 높이는 사회운동은 유럽 대륙과 미국으로 퍼져나가 1차대전때까지 활발하게 이어졌다. 서구에서 전염병이 줄어들고 수명이 늘어난 데에는 의료적 처치보다는 위생 상태가 개선된 덕이 훨씬 크다. 소득이 높아지고, 영양상태가 개선되고, 교육수준이 높아진 등 사회적 요인이 19세기 중반 이래 사람들의 건강 수준을 꾸준히 향상시켰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에서 발원한 전염병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열악한 생활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였다. 흑사병, 홍역 등 이전에 주요 전염병이 대체로 계급을 불문하고 전반적으로 발병한 반면, 콜레라는 가난한 사람이 사는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가난한 지역에서 콜레라가 주로 발병한 반면, 부유한 이웃 지역에서는 콜레라가 발병하지 않은 것을 예로 하여, 콜레라의 퇴치는 빈곤자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으로만 가능함을 보여준다. 선진 산업국에서는 이제 콜레라가 퇴치되었지만, 빈곤이 만연한 지역, 즉 남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여전히 콜레라가 때때로 창궐한다. 

폐결핵은 19세기 중반 병원균이 확인되기 이전까지는 유전적인 체질에 기인한 질병으로 여겨졌다. 폐결핵은 매우 서서히 진행되고 유명 지식인들도 종종 걸렸으므로, 낭만적인 이미지가 따라다녔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래 폐결핵도 다른 전염병과 다를 것 없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붙여지면서, 폐결핵을 퇴치하는 사회적 운동이 벌어졌다. 맑은 공기를 쐬면서 요양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가 지배하면서 요양원이 많이 세워졌다. 그러나 2차대전 이후 항생제가 발견될 때까지, 자연 치유를 제외하고 폐결핵에 걸려 낫는 신뢰할만한 방법은 없었다.

말라리아는 더운 기후에서 모기에 의해 전염되는 질병인데, 2차대전 이후 미국이 살충제롤 대량으로 살포하여 모기를 박멸하는 운동을 통해 말라리아를 퇴치하려 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전개된 곳으로, 이탈리아의 사르디니아 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살충제의 대량 살포만으로 말라리아를 퇴치하려는 노력은 실패하였다. 살충제 살포와 함께 예방적으로 키니네를 취약 인구가 집중적으로 복용하고,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주거환경과 영양상태가 개선되는 등의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침네 사르디니아 섬에서 말라리아가 완전히 퇴치되었다. 사르디니아의 퇴치 사례는 전세계의 열대지방에서 지금도 말라리아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는 현실에 한가닥 희망을 제시한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글이 건조해지고 내용의 정제가 덜 된 보고서를 읽는 느낌이 든다. 전염병에 대해 전반적으로 알 수 있으나, 분석의 깊이가 얕고, 잡다하게 많은 사실을 망라하는 방식으로 서술하여 읽는 재미가 덜하다. 예일대학교의 개방대학 강의안에 기초해 만든 책이기 때문에 그런것 같다. 서구의 전통 의학을 지배한 히포크라테스와 갈렌의 의료 이론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우리나라의 한의학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험과 관찰에 의지하여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전을 장려하기보다, 고전과 정통 이론을 고수하고 이것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배격하는 방식은, 마치 동의보감을 여전히 금과옥조로 인용하는 한의학의 태도와 흡사하다. 

2022. 7. 27. 17:21

Edward Wilson. 2004(1978). On Human Nature. Harvard University Press. 209 pages.

저자는 개미 연구로 유명한 생물학자이며, 이 책에서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 기반 위에 있으며, 인간의 삶을 연구하는 사회과학은 인간의 본성, 즉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제시한다.

인간의 본성은 생물학적 진화과정을 통해 형성되었다. 생존과 자손번식에 도움이 되는 속성이 선택되어 오늘날 인간의 본성이 되었다. 인간의 사회 활동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사회적 실험은 실패했다. 대표적인 예로, 자녀를 부모와 떼어내 공동으로 양육하는 공동체 운동이나, 남녀간의 가족 형성 원칙을 부정하는 집단적 공동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네가지 인간의 속성에 관해 이야기한다. 첫째는 공격성(agression) 이며, 둘째는 섹스이며, 셋째는 이타주의(altruism) 이며, 넷째는 종교이다. 공격성에 대해 말하자면, 인간은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속한 집단(내집단)과 속하지 않은 집단(외집단)을 구분하고, 외집단에 대해 적대적이다. 이러한 속성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확산하는 목적에 기여한다. 내집단의 가장 작은 단위는 가족이며, 이 범위는 맥락에 따라 넓혀진다. 인종, 민족, 성별, 종교, 지역, 계급 등 사람들이 인간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사람들 사이에 교류가 늘면서 다른 기준의 중요성은 줄어드는 반면, 사회경제적 지위의 중요성은 남아있다.

둘째 섹스. 섹스는 가장 기본적으로는 후손을 번식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인간에게는 남녀간 결합을 형성하고 밀접한 관계를 유지시키는 목적이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인간이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오랜 시간동안 부와 모의 헌신적인 투자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여자는 발정기가 따로 없고, 항시 섹스가 가능하며, 일부일처의 가족이 기본으로 자리잡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남성은 자신의 여자의 섹스를 독점하는 대신, 자신의 유전자를 지닌 자녀를 키우는 데 헌신하는 거래를 한다. 남성은 기본적으로 적극적이고 모험적인 반면, 여성은 인간관계에 민감하고 수동적인 이유 또한 남성과 여성의 성적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이타주의. 인간의 이타적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잇는 생물적 본성과 연결된 이기적 행위이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자신과 유전자를 일부 공유하는 친족이나 집단의 복리가 높아진다면, 결국 자신의 유전자가 후대로 이어지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넷째, 종교. 전통적 종교의 교리의 일부는 생물학적 본성에 위배되거나, 현대 도시 산업사회의 삶에 맞지 않는 부분을 담고 있다. 종교가 만드는 집단 헌신은 집단의 복리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중세시대에 마녀 사냥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안전핀 역할을 했다. 동성애를 금하는 종교의 가르침은 동성애가 인간을 포함한 동물세계에서 보편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을 부정한다. 동성애의 진화론적 존재 이유가 명확치 않지만, 동성애가 동성애자가 포함된 집단의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러한 유전자가 이어지고 있다. 전통 종교가 남성 우위의 이념을 주장하는데, 이는 과거 수렵채취 시절에 맞는 생존방식이지만, 현대 산업사회의 생활과는 맞지 않는다. 

인간의 생물적 속성을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체계적으로 알게 된다면, 인간 사회와 문화의 가용 범위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생물적 속성에 대한 체계적 지식은 인간에게 더 나은 사회와 문화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아이디어를 제공할 것이다. 근래에 인간 도덕의 생물학적 배경을 탐구하는 활동이 대표적 예이다.

이 책은 저자의 과학적 연구 활동을 바탕으로 인간 사회와 인문학에 확장해 자신의 생각을 제시한 글이다. 1970년대 중반에 쓰여져서 제시하는 사례나 핵심 논의가 약간 낡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후 동물행동학 연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인간의 행동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러나 저자가 주장하듯이 생물학적 지식에 기반해 인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고 설계하려면 가야할 길이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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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25. 19:09

James Scott. 2017. Against the Grain: A deep hostory of the early states. Yale University Press. 256 pages.

저자는 인류학자이자 정치학자이며, 이 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예로하여 국가가 생성된 과정을 설명한다. 국가는 인류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게 되면서 생겨났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란 국민들을 보호해주는 명목으로 금품을 갈취하는 깡패짓(protection racket)과 비슷하다.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해야만 이러한 깡패짓이 가능하다. 수시로 이동하면서 살아가는 유목민이나 화전민 등이나, 곡물을 재배하지 않고 주변에 다양한 자원으로부터 수렵채취를 통해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산간지역 혹은 소택지와 같이 외부의 세력이 쉽게 지배하기 어려운 곳에서는 국가가 출현하지 않았다. 역사는 국가의 틀에서 사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였으므로, 국가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지한 '야만인'(barbarian)으로 비하하고, 자신들을 문명화된 사람, 역사 발전의 주역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실제 삶의 질 면에서 보면, 국가의 틀 내에서 사는 사람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야만인의 삶이 훨씬 양호하다.

인류는 신석시 시대 이래 오랫동안 수렵채취의 생활을 이어왔다. 농경생활이 시작된 것은 서기전 4,000년 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이다. 이곳은 매년 규칙적으로 강물이 범람하여 비옥한 농경지를 만들었기에, 큰 노력없이 곡물을 파종하고 수확할 수 있었다. 이집트의 나일강 하구, 중국의 양쯔강 하구, 인도의 인더스강 하구, 북미의 미시시피강 하구, 등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처음 농경이 시작되었다. 농경이 특정 시점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수렵채취와 농경을 함께 하면서 생활했다. 수렵채취는 다양한 먹거리 자원을 통해 영양을 균형있게 섭취할 수 있으며, 하나의 식량 자원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자원으로 보완할 수 있어 예상치 못한 위험에 버티는 힘이 강하며, 노동 강도가 높지 않으며, 인구밀도가 낮으므로 역병으로 죽을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매우 효율적인 생존방식이다. 반면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치며 사는 농부의 삶은, 단일 작물에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덕으로 인한 생존위협에 항시 노출되어 있으며, 집중적으로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며, 전적으로 곡물에 의존한 섭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해 건강에 해로우며, 사람들 및 사람과 가축의 밀집 거주로 인해 역병이 자주 돌아 쉬 죽는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인간이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고 나서도 오랫동안 인구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요컨대 한곳에 정착하여 곡물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이동하며 수렵채취를 하는 사람들의 삶보다 열악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수렵채취를 포기하고 한곳에 정착해 곡물을 재배하는 쪽으로 바꾸었을까? 인류는 한 시점에 수렵채취로부터 전업 농업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렵채취을 하고 또 일부는 농업을 부업으로 하면서 살아갔다. 다만 소수의 특별한 환경의 지역에서만 전업농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메소포타미아, 나일강 하구, 황하강 하구 등이 바로 그런 특별한 지역이다. 그러면 왜 그 소수의 지역에서 전업농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생겼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두가지 가능성을 지적한다. 기후와 환경 변화 등의 이유로 인해 주변 지역에서 수렵채취로 생활하는 것이 어려워졌거나 아니면, 국가의 폭력이 바로 이들을 그곳에서 그렇게 살도록 가두어 놓았다. 사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국가의 멸망이 빈번했기 때문에, 곡물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수렵채취로 되돌아가고 또 이들이 곡물 농업을 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하는 식으로, 두 종류의 사람들 간에 경계가 확실하게 그어져 있지는 않았다.

기후가 온화하고 매년 비옥한 농토가 만들어 지는 지역에서 곡물 재배의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높다. 곡물 재배는 사람들 사이에 부의 편차를 크게 벌리며, 지위의 차이가 큰 사회를 만든다. 농사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이들은 국가의 지배집단이 되어 생산자를 착취하면서 살아간다. 농사짓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 먹고사는 범위를 넘어 추가적으로 노동을 투입하여 과잉생산을 하는 이유는, 국가의 지배집단이 그들이 생산한 것의 상당부분을 강압적으로 뺏어가기 때문이다. 문제는 고대에 농업 생산성이 그렇게 높지 않았으므로, 비생산 인구를 많이 부양할 수 없으며, 낮은 농업 생산성 때문에 대부분의 인구가 생존의 경계에서 살아가고 있으므로, 예기치 못한 변화 때문에 농사 작황이 나쁘면 그 희생을 누군가는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와 지배집단은 노예 혹은 거주의 자유가 없는 농노를 통해, 생산자들을 한곳에 붙박혀 도망치지 못하고 힘든 일을 하도록 강제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고대는 물론 중세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농업 국가의 부의 원천은 땅 못지 않게 노동력에 있다. 국가의 지배자들은 서로 전쟁을 벌여 땅과 노동력을 탈취하였다. 고대 국가에서 노예제는 보편적인데,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노예상들을 통해 노예를 사고 팔았다. 농노와 노예의 삶의 수준은 열악했으므로, 출생율이 낮고 사망율이 높아 인구 증가 속도는 매우 더디었다. 사람들이 밀집하여 거주하고 인간과 가축이 근접해 사는 농업사회에는 역병이 자주 발생하여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곡물을 재배할 환경이 양호하며, 국가의 지배자들의 착취를 피해 도망치기 어려운 평야지역에서만 국가가 출현하였다. 반면 산간이나 소택지나, 전적으로 곡물 재배에 의존하지 않고 수렵채취로 살 수 있는 지역이나, 곡물을 재배한다고 해도 수년에 한번씩 이동하는 화전민에게는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았다. 곡물을 재배하는 평야지역에서도 농작물 작황이 극도로 나쁜 경우, 국가의 권력이 미지지 않는 주변지역으로 도망치는 사람이 많았다. 국가의 권력은 한곳에 붙박이로 곡물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행사된 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즉 상업, 공업, 어업, 임산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약하다. 왜냐하면 농업 이외의 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시로 이동하고 생산과정과 생산물에 대해 외부인이 확실히 파악하기 어려워, 이들을 착취하기가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배집단은 이들을 항시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아시아의 농업사회에서 농업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했던 배경에는, 바로 국가의 지배집단이 이들의 활동을 장악하기 힘든 점이 암묵적으로 작용했다.

소수의 곡물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초기의 국가는 취약하여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곳에서 매년 동일한 소수의 곡물을 재배하는 농업 방식은 기후나 병충해 등 환경의 변화에 취약하여 생산성이 높지 않으며 생산량의 진폭이 심하였다. 기본적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생산성의 수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황이 특히 좋지 않은 경우, 세금과 부역으로 착취를 당하고 농민들의 삶이 더 열악해져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지 않으면, 해가 갈수록 삶이 더 악화되는 악순환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농민들이 도망치고, 반란이 일어나고, 이웃나라와 전쟁에 패해 파괴되면서 국가는 멸망한다.

국가가 멸망한다고 하여, 그곳에 살던 사람들까지 모두 일시에 죽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지배집단의 착취를 피해 주변 지역으로 도망쳐 화전을 일구고 수렵채취로 생계를 이어가거나, 승리한 국가이 지배집단 밑에서 노예로 일하면서 삶을 이어간다. 자신의 국가에서 농노로 일하나, 승리한 국가에서 노예로 일하나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문화가 유사한 이웃나라의 노예가 되면 조만간 그 나라의 하층 계급의 일원이 된다. 이후 새로이 노예가 유입되면서, 계층의 사다리에서 한단계 상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밟게 된다.

역사는 국가의 기록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을 문명화된 사람으로 묘사하는 반면,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은 무지한 야만인으로 비하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주변의 다양한 가용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살아간다. 농업에 기반한 국가의 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생산되는 산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 둘간에는 상호의존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는 구리, 아연, 등의 광산물, 모피와 가죽, 목재, 기타 산과 바다에서 나는 것들을 생산하여 국가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곡물과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가와 국가 사이의 변방에 위치하며 이들을 이어주는 교역을 한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기동력이 좋고 무예에 능하기 때문에 국가 내에 사는 사람들을 수시로 위협하는 존재였다. 중국의 변방에 위치한 흉노족, 위구르족, 만주족, 몽고족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의 힘이 강할 때에는 이들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쪼그라들지만, 국가의 힘이 약할 때에 국가의 영역 밖에 위치한 사람들은 수시로 국가를 침범하고 멸망시키기도 하였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국가와 같은 강력한 권력 기구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들 내에 지위의 격차가 크지 않으므로 상대적으로 삶이 자유롭고 분방하다. 그러나 변방인들의 삶이 반드시 풍요로운 것만은 아니다.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 또한 그들 사이에 전쟁을 벌여 노예를 포획하여 국가에 팔며, 그들 자신이 국가의 용병으로 고용되어 생계를 유지하기도 한다. 서기 1500년경까지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구에도 상당한 규모였다. 이후 국가의 권력이 커지면서 국가의 영역 밖에서 사는 사람들은 갈수록 쪼그라져, 결국 서구에서는 사라졌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적 연구의 결과이며, 동시에 저자의 세계관이 스며들어 있는 글이다. 저자는 국가를 지배집단이 폭력을 독점하며 생산자를 착취하는 깡패집단의 도구로 본다. 전형적인 막시스트의 관점이다. 무정부주를 신봉하는 저자의 설명이, 한편으로는 맞지만, 그렇다면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변하지 않는다. 세계는 국가를 통해 거대한 집단적 노력을 투입하여 기술발전, 풍요, 평화를 거두었다, 최소한 서구 선진산업사회에서는. 국가가 없다면 이러한 위업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국가의 힘이 약한 나라에서는 극심한 빈곤이 횡횡하며, 빈부의 차이가 크며, 폭력이 난무하며,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시달리고 일찍 죽는다. 물론 서구의 국가에서도 집단 노력의 산물을 모두가 공평하게 누리고 있지는 않다. 계층 차이는 매우 크며, 국가는 지배집단의 이익을 중하층의 이익보다 더 보호한다. 여하간 통찰력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