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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에 해당되는 글 6건
2023. 7. 6. 12:30

Giovanni Federico. 2005. Feeding the World: An Economic History of Agriculture, 1800~2000. Princeton Univ. Press. 232 pages.

저자는 경제사학자이며, 이 책은 서구를 포함한 전세계의 농업의 발전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많은 데이터를 인용하면서 서술한다. 농업은 지역과 환경에 따라 매우 다양하고, 정치적 사회적 요인과 얽혀 있어서 일반화가 힘들며, 신뢰할만한 데이터가 많지 않다.

1800년대 이래 근래까지 농업은 꾸준히 발전해 왔다. 농업 생산량은 비약적으로 늘어, 그동안 크게 증가한 인구를 먹여살리는 데서 넘어, 잉여 산물을 많이 생산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1900년대 초반까지는 생산요소들, 즉 토지,노동,자본을 이전보다 더 많이 투입하여 더 많은 양을 생산하였으며, 1900년대 이후에는 생산성의 증가가 생산량의 증가를 이끌었다. 1900년대 이후 화학 비료와 농약, 기계화, 종자 개량, 등으로 생산성이 크게 증가하였다.

농업은 제조업과 달리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지 않다. 대규모 농장은 감독의 어려움과 인센티브의 한계 때문에 효율성이 그리 높지 않다. 1800년대까지는 토지에 대해 전통적 소유권이 지배했다. 자신이 소유한 토지를 경작하는 가족농 family farm, 지주와 생산물을 나누는 소작농 share-cropper, 미리 정한 임대료를 지불하는 임차농 tennant, 마을 공동 소유의 농지 common, 빚에 구속되어 자신이나 남의 토지에 붙박이로 살아가는 농민 debt-peonage, 많은 일꾼을 고용하여 자본주의적으로 경영하는 농장 management farm, 강제적 혹은 자발적 집단 농장 collective farm, 등 다양한 형태가 공존한다. 세계의 여러 나라들은 20세기 들어 토지 소유권을 경작자에게 주는 토지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이러한 개혁 정책이 불평등을 줄이고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한 효과는 일관되지 않다. 한국과 타이완의 토지 개혁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이다.

개별 농가의 토지 규모는 개발도상국의 경우 꾸준히 감소한 반면, 선진 산업국에서는 1950년대까지 큰 변화가 없다가, 이후에는 빠르게 증가하였다. 전통사회에서도 시장경제가 농업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농민들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고 상업 작물을 재배했으며, 일꾼을 일시 혹은 장기적으로 고용하였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까지 정부는 농업에 개입하지 않고 자유방임적인 태도를 취했으나, 대공황을 계기로 정부가 나서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보조금을 지급하고, 가격을 통제하는, 등으로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선진국 정부의 농업 정책은 소비자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농민을 보호하는 정책인 반면, 개발도상국에서는 농민의 희생을 요구하면서 제조업과 도시 노동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구사했다. 선진국에서 농민들은 도시 주민과 유사한 수준의 소득에 도달했으며, 투표권을 매개로 강력한 로비력을 행사하여 자원 배분의 비효율과 생산성을 외곡하고 있다.

이 책은 농업경제사 분야의 전문학술서이다. 데이타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며, 막상 이론적인 서술은 많지 않다.  농업은 인류의 역사와 경제발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지만, 통찰력을 주는 좋은 책을 찾기는 어렵다. 이책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구입했으나,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여하간 끝까지 대충 읽었다.

2023. 5. 14. 22:57

Eric Jones. 2003(1981). The European Miracle: Environments, Economics and Geopolitics in the History of Europe and Asia. 3rd ed. Cambridge. 257 pages.

저자는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인, 서구가 왜 세계의 다른 모든 지역을 앞서 발전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찾는다. 자연 환경적인 요인과 제도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서구가 아시아보다 앞서 산업화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서구가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앞서게 된 시점은 대략 1500년대, 즉 북서유럽 사람들이 대양으로 나아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양을 거쳐 인도와 중국에 진출하게 된 무렵이다. 1500년대 이전에는 중국 문명이나, 이슬람 문명이 기술적으로 서유럽보다 앞섰으며, 물질적 수준에서도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었다.

서유럽은 아시아의 다른 문명권과 비교하여 인구 출산률이 낮았으며, 인구 밀도가 높지 않았다. 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가뭄과 홍수 등 자연 재해가 빈발하였기 때문에 자연출생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로 자녀를 낳는 전략을 택한 반면, 서유럽은 자연재해가 적었으므로 최대 자연출생력에 못미치는 출산 관행이 지배했다. 서유럽에서는 사람들이 결혼을 늦게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서 출산력을 조절하는 사회관습이 정착했다.

서유럽은 아시아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높지 않으므로 인력보다 자본을 더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농업이 주였던 시절에, 아시아는 논에 많은 노동력을 투입하여 생산력을 높이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서유럽에서는 목초지에 가축을 키우고,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을 투입하여 밭을 경작하였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 서유럽에서 수력, 풍차, 석탄을 사용하여 에너지를 얻고, 새로운 생산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것, 즉 생산 과정에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서구가 발전하는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반발이 높았으며,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는 보수주의가 지배하였다.  

1500년대 무렵 유라시아 대륙에는 크게 네개의 문명권, 즉 유럽 문명, 중동의 오토만 제국, 인도의 무굴 제국, 중국의 명나라 제국이 존재했다. 서유럽을 제외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은 정복 문명이었다. 중동과 인도 및  중국의 원나라와 청나라 제국은 모두 중앙아시아의 초원 지대 유목민들이 남하하여 세운 나라이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유라시아 대륙의 다른 문명과 달리 유목민 약탈자 권력이 닿지 못한 행운을 누렸다. 외부로부터 유입된 정복 세력은 토착인을 최대한 착취 약탈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을뿐,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경제를 관리하고 국민을 통치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복 국가의 국민들은 중앙 집권의 권력에 포획되어 있었으며, 귀족들 또한 권력 집단의 일원으로서 국민을 착취하는 역할만 하였다.

반면 서유럽은 작은 여러 나라로 나뉘어서 서로 경쟁하였다. 유럽의 자연 환경은 산, 강, 바다로 지역을 잘게 나누고 있으며, 북서 유럽에는 숲이 널리 퍼져 있어 지역간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였으므로, 단일 권력이 전 지역을 장악하기 어려웠다. 각각 분할된 지역에 토대를 둔 국가들은 서로간 끊임 없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권력 집단들의 틈바구니에서 상공업자들은 상대적 자율성을 누릴 수 있었다. 서유럽의 권력자들은 자의적으로 상공업을 제한하거나 상공업자의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 전횡을 부릴 수 없었다. 서유럽의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축적하여 재투자하여 성장하는 것이 가능했다. 반면 아시아의 약탈적 정권 하에서 상공업자들은 자본을 모으는 것이 위험했으므로,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사치한 생활에 소비하거나, 지주 혹은 관료의 지위로 갈아타려고 노력했다.

서유럽은 작은 나라들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었지만, 기독교 문화의 일원으로서 서로 간 어느 정도는 유사했다. 서유럽의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사람들의 이동을 통한 아이디어의 전파가 매우 빨랐다. 한 지역에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면 서유럽 전체로 곧 퍼졌다. 지역간 언어의 차이가 있지만 유럽 대륙 전체로 지식인들은 라틴어를 사용하였으며, 지역 언어들 사이에 유사성이 높았으므로 다른 언어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 나라의 권력 집단이 자의적 횡포를 부리면, 곧 그 나라의 상공업자와 자본가들은 다른 지역으로 기술과 자본을 들고 이동하여, 그 지역의 세수가 감소하고 군사력이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각 지역의 권력 집단은 자신의 지역에서 경제가 활발하도록 항시 관심을 기울였다. 상공업자들은 정치 권력 집단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누렸으므로, 이후 이들이 주도하여 정치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발달하였으며, 상공인들의 경제활동을 돕기위해 도로를 닦고 상공업의 규칙을 관리하는 등으로 국가가 국민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 국가 service state 로  발전하였다. 

저자는 서유럽이 1500년경 무렵에 세계를 앞서게 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1400년경 혹은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점차로 배경이 무르익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권력이 상공업자의 자본을 자의적으로 탈취하지 못하는 관행은 1200년경 이탈리아에서 상공인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의 독립적인 존재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와 비교하여 볼 때 서유럽에서는 1500년 이전부터  상공인의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관행이 자리잡은 것이다. 중세시대에도 교회와 왕으로 권력이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에, 왕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데 제한이 있었다.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전통은 영국에서 1300년대 후반 세금을 내는 상공인과 지주가 왕에게 압력을 가해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문서인 마그나 카르타를 받아내었으며, 서유럽 전지역에서 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의회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중동이나 인도 문명은 역병의 피해를 자주 많이 받았으나 국가가 역병의 확산을 제한하는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은 반면, 유럽에서는 일찌감치 국가가 주도하여 방역을 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중국에서는 명나라 이전 서유럽보다 발달했던 생산 기술과 항해 기술을 국가가 금지하여 이후 기술이 퇴화하였다. 이는 중앙 관료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보수 세력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이겼기 때문이다. 반면 서유럽에서 보수세력의 변화에 저항하는 힘은 중국만큼 크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신기술의 도입을 금지하였다고 해도 이웃나라가 버티고 있으므로 이러한 명령은 실제로 엄격히 지켜지지 못했다.

서유럽은 물론 아시아 전체적으로 1000년대 이래 인구가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증가하여 기존의 생산수단에 비교하여 인구압력이 계속 높아졌다. 1300년대 중반 페스트가 창궐하여 인구압이 일시적으로 낮아졌지만 100년도 못되어 다시 인구가 증가하였다. 서유럽과 중국은 높아진 인구압을 배출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서유럽에서는 농업 기술의 발전 및, 1500년대 이래 아메리카 대륙 등 식민지 개척으로 높아진 인구 압력이 분출될 탈출구가 마련되었으며, 이는 새로운 시장의 확대 등으로 자본주의 산업화를 이끌었다. 한편 중국은 명나라 이래 남쪽 지역으로 경작을 확대하여 높아지는 인구압을 배출하였다. 중국에서는 논농사 지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기술 개발 없이 인구를 많이 투입하여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한 반면, 서유럽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여 농업과 이후 제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다. 즉 중국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제의 외연적 확대가 이루어졌으나 생산성의 향상은 높지 않았던 반면, 서유럽에서는 인구 증가와 더불어 기술 발전과 자본 투입이 높아지면서 생산성의 향상이 함께 갔다.

중국에서 새로이 개척할 땅이 다했을 때, 결국 권력 집단은 국민을 더 가혹하게 탈취하고 국민들은 참다참다 결국 폭발하여 정권이 교체되지만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되었다. 중국의 청나라 시절 연거퍼 발생한 대규모 민중 봉기와 엄청난 인명 피해의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이는 새로이 개척할 땅이 없었던 중동의 오스만 제국이나 인도의 무굴제국이 간 길이기도 하다.  반면 서유럽은 인구 증가와 생산성의 향상 및 식민지로의 인구 배출이 함께 전개되었기 때문에 엄청난 인명 피해를 동반한 민중의 대규모 반란은 찾아 볼 수 없다.

이 책은 세계사의 핵심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의 학술적 논의를 비판적으로 낱낱이 검토하면서 저자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교양서로 읽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저자의 글 쓰는 방식 역시 축약적이고 복합적으로 서술하기 때문에 이해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주제와 관련하여 대표적으로 추천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논의가 균형되고 포괄적이기 때문이다. 읽기는 어려웠지만 영양가가 높았다.

2022. 8. 31. 17:13

Douglass North. 1990. Institutions, institutional change and economic performa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40 pages.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그의 생애를 통틀어 수행한 연구의 요점을 정리한 책이다. 그의 연구의 출발점은, 미국과 유럽의 경제사를 연구하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선택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므로 정보 비용이 발생하지 않으며 완전경쟁을 한다는 신고적 경제학 모델의 한계를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사람들은 시장이라는 차단된 공간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공식적 제도와 비공식적 규범의 틀 내에서 경제활동을 한다. 제도란 incentive system에 다름이 아니다. 경제활동에서 핵심적인 제도는 소유권을 둘러싼 제도이다. 계약, 소유권,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가 공식적으로 마련되어 있고, 정치권력과 정부가 이를 성실히 준수하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낮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 반면,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부실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는 제도 환경에서는 거래비용이 높으, 사람들은 생산적 경제활동을 통해 부를 창출하는 데 관심을 쏟지 않으며 경제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 비용(transaction cost)이 높은 경제에서는 경제 참여자들 사이에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전문화의 수준이 낮고, 전문화가 안되면 기술 개발이 힘들며, 생산 규모가 커지지 않는다. 개별 생산 규모가 작으면,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규모의 경제의 이익을 거둘 수 없다.

경제 발전은 경로의존적(path-dependent)이다. 과거의 제도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변화는 느리게 전개된다. 표면적으로는 혁명처럼보이는 경우도, 혁명적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실제 일이 이행되는 과정을 보면 과거의 제도가 여전히 살아서 작용하고 있다. 제도와 규범은 빨리 바뀌지 않는다.

북미와 남미가 다른 경제발전 경로를 밟게 된 것은, 이들의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과 스페인/포르투갈의 제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영국은 명예혁명을 통해 부르주아가 왕권을 견제하게 되었고,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가 의회를 통해 제한되고, 소유권의 보장이 이루어지고 계약 이행을 강제하는 공식적 장치가 만들어졌다. 그 결과 거래비용이 낮아졌으며, 생산적 경제활동이 촉진되고, 금융시장이 발달하게 되었고, 영국이 전비를 상대적으로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었기에 프랑스를 이기고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 소유권을 보장하는 제도는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이었기에, 이는 산업혁명과 기업 활동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반면, 스페인/포르투갈에서는 왕권과 그를 보좌하는 중앙정부의 관료가 지배하는 제도 환경이 지속되었다. 왕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는 수시로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낳았으며, 그 결과 생산적 경제활동보다는 권력에 기생하는 이익추구(rent-seeking) 행위가 지배하였으며, 결국 경제의 후퇴를 가져왔다. 중남미의 식민지가 모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과거 종주국의 제도를 물려받아, 권력자와 관료의 자의적인 권력 행사를 허용으로 하는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와, 생산적 활동이 장려되지 않는 제도 환경을 정착시켰다. 반면 북미는 영국의 전통을 이어받아 중앙 권력을 견제하는 민주주의 헌법을 만들어 내고, 소유권과 계약의 이행을 공식적으로 강제하는 제도가 정착하고, 개인의 창의를 장려하면서, 이민자의 유입, 서부로의 진출, 생산적인 기업 활동이 활성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제도를 수입해도, 이것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한다. 제도는 여러 다양한 요소가 그물망처럼 엮여 있기 때문에, 특정 제도가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여러 연관된 제도들이 함께 제대로 이행되어야 하기때문이다. 개발도상국에 소유권을 보장하는 법규가 존재하지만 권력자와 관료가 개인의 소유권을 훼손하는 조치를 하고, 계약의 이행을 강제하는 사법부의 역할이 부실하다면, 사람들 사이에 거래는 활성화되기 어렵다.  

저자는 경제발전의 요인으로 크게 두가지를 든다. 제도와 기술이 그것이다. 제도와 기술은 서로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발전해왔다. 소유권이 잘 보장될 때 개인의 창의와 기술 발전이 활성화되며, 기술이 발전하면 계약의 이행과 소유권 보장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은 저자의 일생의 연구를 종합하여 요약한 글이므로 매우 압축적이라 논의를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그의 주장은 이제 사회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이 책은 그의 이론을 전반적 훑으며 통찰력을 얻는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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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on Acemoglu and James Robinson. 2006. Economic Origins of dictatorship and democracy. Cambridge. 379 pages.

저자는 경제학자와 정치학자이다. 이 책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고,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않는지, 어떤 경우에 민주주의가 공고해지는지에 대한 이론을 제시한다. 전반은 저자가 제시하는 이론에 관해 개념적으로 설명을 하고, 중반 이후는 수리모델을 적용해서 이 이론을 검증한다. 

정치는 집단간에 경제적 이익이 충돌하는 장으로서, 부를 가진 소수의 엘리트 집단과 가난한 다수의 대중들 간의 투쟁이 정치과정의 핵심이다. 비민주적 정치체제는 엘리트의 부를 지키는 데 기여하며 다수의 대중에게 돌아가는 부의 몫은 적은 반면, 반대로 민주적 정치체제는 다수의 대중에게 부가 재분배되는 정책을 구사하므로 엘리트의 이익에 반하나 대중에게는 이익이 된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들어서면 재분배 정책을 채택하기 때문에 소득의 불평등 수준은 완화된다. 엘리트가 대중의 위협이 없는 데도 자발적으로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소수의 엘리트와 다수의 대중사이에 밀고 당기는 관계로부터 민주주의가 출현하는데, 저자는 이를 게임 이론을 적용하여 이론화한다. 다수의 대중으로부터의 참정권 요구, 부를 나누라는 요구가 커지면 엘리트들은 이러한 요구를 물리적으로 억압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 요구에 굴복하여 참정권을 확대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매우 큰 데, 엘리트들이 무리하게 힘으로 억압한다면 혁명이 일어나게 되며, 이 경우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타협하는 결정을 한 경우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다.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엘리트들은 일시적으로 당근책을 제시하지만, 민중은 일시적 당근을 넘어서 미래에도 자신들에게 계속 유리하게 분배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장받기 위해 의사결정 제도를 민주주의로 바꾸려고 한다. 민주주의 제도는 대중이 엘리트로부터 미래의 분배를 보장받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로 이행하거나, 혹은 이행하지 않는 유형을 네가지로 단순화한다. 첫째는 영국의 모델이다. 영국은 17세기에 명예혁명을 통해 귀족과 지주로 구성된 의회가 왕권을 견제하는데서부터 시작해, 19세기에 들어 수 차례의 정치 개혁으로 참정권을 점차 확대하여, 1870년대에는 남성 모두에게 참정권이 부여되는 민주주의를 확립했다.

엘리트가 참정권 확대를 양보하는 이유는,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셀 때 이를 물리적으로 억압하여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참정권을 확대하여 민중의 요구에 타협하는 비용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영국은 상공인 계층이 확대되면서 과거에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물리적 억압의 비용이 더 들게 된 반면, 참정권을 확대한다고 해도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해 엘리트가 떠앉아야 하는 비용이 적어지게 되었다. 엘리트가 토지에만 부를 의존하면, 대중을 물리적으로 억압하면서 초래하는 혼란의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반면, 상공업이 확대되어 엘리트의 부가 무역, 상공업, 인적자본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면, 대중의 억압이 초래하는 물리적 혼란의 비용이 매우 크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무역과 상공업의 비중이 클 경우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다고 해도 부의 재분배 조치로 인한 희생은 엘리트가 토지에만 의존하던 때보다 훨씬 적다. 상공업의 부는 토지의 부보다 해외로 부를 이전하거나 조세를 회피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엘리트들은 민주주의로 양보하는 것을 쉽게 허락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 민중의 요구가 특히 19세기에 거세졌을까? 이는 18세기의 계몽주의 운동, 프랑스 혁명, 미국 혁명 등으로 민중의 정치 의식이 높아졌으며, 산업화, 도시화로 민중의 조직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면 농업이 주인 경제에서는 민중이 농촌에 흩어져 있어 조직화하기 어렵기에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약할 수 밖에 없다.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된 19세기 후반에 들어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선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중간계층의 존재는 다수의 민중과 소수의 엘리트 사이에서 양쪽의 요구를 절충하는 선택을 용이하게 한다. 따라서 중간계층이 성장하면 민주주의가 탄생하고 공고화되기 유리한 조건이 조성된다. 엘리트들은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대해, 먼저 중간계층을 포섭하여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밑으로부터의 압력을 약화시킨다. 다음 단계에서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다시 높아지면 참정권을 조금 더 허용하면서 점진적으로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경로를 밟는다.

영국은 민주주의제도가 도입된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 제도가 공고해지는 과정을 밟았다.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민주주의의 틀을 조작하여 계속 유지하면서 민중의 재분배 요구에 조금씩 양보하는 것이, 판을 뒤집어 업는 것보다 엘리트들이 부담해야 하는 피해가 덜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두번째 유형은 중남미 모델이다. 이 모델은 일단 형식적 민주주의가 들어서기는 하나,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한다. 아르헨티나 등은 19세기 초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후 독재의 길을 걸어 오다가 19세기 중후반부터 형식적 민주주의를 만들기는 했으나, 쿠데타로 엎어지고, 다시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기를 1980년대말까지 반복해왔다. 대농장 소유에 의존하는 중남미의 엘리트들은 대중의 분배 압력에 못이겨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를 허용했다가, 이러한 민주 정부의 혼란으로 쿠데타가 발생하여 군부가 집권하면, 민주정부때 도입했던 재분배 정책이 취소되면서 엘리트의 이익에 우호적인 환경이 만들어지고, 이어서 다시 민주주의의 압력이 높아지는 악순환을 거듭하였다. 중남미는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기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서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면 엘리트들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이 매우 크다. 부의 불평등 수준이 높아 밑으로부터의 압력이 혁명으로 비화될 위험도 크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형식적 민주주의에 동의하기는 하나,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것에는 한사코 소극적이다. 민주주의 정부가 혼란에 빠져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면 엘리트들은 쉽게 이들을 지지하는 편에 서게 된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계기, 및 민주주의가 퇴행하는 계기는 모두 경제적 위기 상태에 빠질 때 발생한다. 외부적 요인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격게 되면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거세져서 엘리트가 양보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일단 민주주의 체제가 들어섰어도 경제적 혼란에 처할 경우 이 정부는 군부 쿠데타에 쉽게 허물어진다.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는 민중의 분배와 정의의 요구보다는 질서와 경제 안정을 우선시 하기에, 이들은 엘리트와 쉽게 결탁하며 기득권 집단에 유리한 정책으로 선회한다.

세번째 모델은 국민들이 참정권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지 않는 비민주주의 체제로 싱가포르가 이에 해당한다. 싱가포르는 부의 분배가 상대적으로 평등하며 정부가 능력에 따라 움직이도록 투명하게 개방되어 있다. 국민은 국가의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데에서는 배제되어 있지만, 현재의 부의 분배와 삶의 수준에 어느 정도 만족하므로 엘리트의 독점적 권력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중들은 민주주의를 강하게 요구함으로서 엘리트와 충돌하여 피해가 발생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것의 보상이 크지 않다고 판단하기에 현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높으므로 언제라도 민주주의 요구가 커질 수 있고, 엘리트의 입장에서 볼 때 민주주의 체제로 양보하는 것의 희생 역시 크지 않으므로, 장기적으로 볼 때 싱가포르에는 국민의 참여가 확대되는 민주주의가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네번째 모델은 민주주의로 이행할 가능성이 차단된 경우로, 인종차별이 철폐되기 이전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이에 해당한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과 유색인사이에 부와 이념의 격차가 매우 크므로, 백인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색인의 요구를 억압하려 하였다. 유색인들의 참정권 요구는 백인의 노골적인 폭력에 부딛쳐 좌절되었다. 북미 대륙에서는 인디안 원주민들이 질병과 살육으로 오래전에 제거된 반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흑인 원주민들이 제거되지 않고 백인 지배자의 착취 대상으로 복속되어 20세기까지도 이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해 왔다. 

그러나 1990년대에 남아프리카에서도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20세기 중반 이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가 다원화되고, 국제적 압력이 높아지면서, 백인 권위주의 정권에 가해지는 내외의 압력은 점차 높아졌다. 경제 다원화에 따라 흑인들의 소득이 점차 상승하면서 백인과 흑인간에 불평등의 정도도 완화되었다. 1980년대 이래 백인들은 흑인들에 대한 억압의 고삐를 점차 늦추면서 흑인들과의 공생관계를 모색하였다. 넬슨 만델라라는 흑인 지도자가 백인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백인과 권력을 분점하는 방안을 제도화하면서, 마침내 1990년대에 민주주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중간층이 얇으며 소득 격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공고화되기 어려운 취약한 상태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였다. 전반적으로 민중들의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아진 것, 세계화가 확대되면서 민주주의 정권의 재분배 정책으로 인한 엘리트의 희생이 감소한 것, 국제적 압력의 확대와 전염효과 등을 들 수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지 못하던 아르헨티나, 칠레, 콜럼비아 등에서도 앞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의 다변화, 대중의 소득과 교육 수준 상승 등의 요인이 중남미 민주주의의 공고화에 기여하는 요인이다.

배링턴 무어가 "민주주의와 독재의 사회적 기원"이라는 책에서 민주주의의 이행을 사회계급 사이의 구조적 관계로 설명함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민주주의와 독재의 경제적 기원"이라는 유사한 책 제목을 달고 경제적 이해의 갈등 관계로 민주주의의 이행 여부를 설명한다. 두개의 논의는 모두 경제결정론이라는 유사점이 있다. 무어는 사회학자답게 보다 사회구조적인 배경에 설명의 촛점을 맞추는 반면, 이 책은 경제적 결정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정치학의 행위자 모델을 접목하는 설명을 한다. 경제 이외의 요인, 예컨대 인종이나 민족 등에 따른 정치적 갈등도 깊이 들여다 보면 경제적 이익의 분배와 관련된 것이므로 경제결정론적인 설명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정치를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의 분배를 둘러싼 갈등의 장으로 보는 접근 역시 독특하다. 모든 정치과정은 경제적 이익을 둘러싸고 전개된다는 시각이다. 

이 책은 저자들이 제시하는 이론에 대해 개념적 설명을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수리 모델을 제시하는 중반 이후부터는 이해하기 어렵다. 저자들의 다른 책이 그렇듯이 통찰력이 크며 감탄할만하다. 수리모델이 얼마나 타당하고 유용한지는 까막눈인 필자로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개념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은 명쾌하다.

2020. 11. 3. 21:55

Deirdre McCloskey. 2010. Bourgeois Dignity: Why Economics can't explain the modern world. University of Chicago Press. 450 pages.

 

저자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연구한 경제사학자로, 이 책은 어떤 요인이 영국의 산업혁명을 낳고 이후 200년간 16배 이상의 실질 소득 상승을 이끌었는지 설명하는 저자의 삼부작 중 두번째 책이다. 저자는 부르주와(bourgeois), 즉 상공업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생각, 태도, 윤리, 아이디어, 담화의 변화가 이러한 비약적인 경제 발전을 가져온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경제학에서 경제발전을 설명하는 데 동원하는 물질주의적 인과론을 배격한다. 물질적 조건이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끈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와 그것을 실제에 적용한 파괴적 혁신이 비약적 발전의 사이클을 돌게 하였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상공업(business)을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했다. 과거 동서양의 모든 사회는 지주, 귀족, 관료, 무인, 문필가, 예술인을 숭상한 반면, 물건을 만들고 팔고 사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천대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용적 목적에 활용하여 돈을 벌며, 기존의 방법을 개혁하여 효율을 높이는 상공인들은 기존의 지배질서를 어지럽힐 위험이 있는 사람으로 경원시하였다. 이러한 구질서에서는 기존의 방법을 답습하여 비즈니스에서 부를 축적하면 어떻게든 이를 벗어나 지주, 관료, 귀족 계층으로 올라서려고 할 뿐, 더 좋은 방법을 고안하여 생산성과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유럽의 봉건체제에서 지주 계층을 우대하고 상공업을 천시한 것이나, 중국의 유교 질서, 인도의 카스트제도, 이슬람 세계에서 상공업을 천시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상공인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dignity)을 갖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자유(Liberty)를 갖게 됨으로서, 그들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여 파괴적 혁신(distruptive innovation), 파괴적 창조(distruptive creation)을 계속해 나갔으며, 그 결과 엄청난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 일반인이 상공업을 비하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로 변화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6세기 계몽주의(Enlighment), 과학혁명(Scientific Revolution), 종교혁명(Reformation), 인쇄술의 발전, 17세기에 부르주아로 구성된 의회가 왕을 견제하게 된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 도시의 발전, 무역의 발전, 등 여러 요인이 오랜 시간 동안 중첩되어 작용하면서 네덜란드에서 점차로 비즈니스를 존중하는 태도가 출현하였으며, 이것이 영국으로 바로 이전되었다.

저자는 기존에 경제학자들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의 원인으로 주장한 것들을 각개격파 방식으로 반박하면서 왜 그것이 진정한 원인이 될 수 없는지 설명한다. 40여개 장에 걸쳐 기존의 주장을 반박하는 학술 논쟁을 계속 전개한다. 물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이 축적되어 산업혁명이 출현하고 이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며, 투자를 더 많이 한다고 하여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아니다. 노예제, 식민지, 제삼세계의 착취나 노동자가 생산한 잉여의 착취로 부터 얻은 이익 덕분에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와 제삼세계의 착취는 그들에게 큰 고통과 피해를 안겨 주었지만, 그로부터 얻은 이익은 대단치 않으며 결코 비약적 생산성 증가를 이끌 수없다. 지리적 이점이나 풍부한 자연자원이 산업혁명과 경제발전을 이끌지도 않았다. 경제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경제적 탐욕의 동기나 절제와 합리적인 생활태도, 막스베버가 주장하는 개신교 윤리 또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원인이 아니다. 무역의 증대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이끌지 않았으며, 노벨경제학자 올리버 노스가 주장하듯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제도 및 법에 따른 지배(rule of law)와 같이 인센티브를 보장하고 부정과 부패를 막는 합리적 제도가 생산성의 비약적 향상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이러한 요인들이 과거 로마제국, 중국, 인도, 이슬람세계에서 한때 존재했으나 산업혁명과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을 이끌지 않았던 사실에서 입증된다. 

저자는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 경제발전은 오로지 파괴적 혁신에 의해서만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기존의 방식을 개혁한 사람들(tinkerer)은 이윤동기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혁신 자체에서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았으며, 이는 상공인의 자긍심(dignity)과 자유롭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펼칠 수있는 환경(liberty)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일반인들이 비즈니스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사회가 이들의 자유를 구속한다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파괴적 혁신은 만들어질 수없으며, 산업혁명과 이후의 비약적 생산성 향상은 인류 사회에 도래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도 서구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상공인을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비즈니스를 장사꾼과 공돌이가 하는 것이라고 천시하면서 인문학, 예술을 숭상한다. 그들은 돈버는 비즈니스에 종사하기보다는 학자나 관료가 되거나 비영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고상하게 생각한다. 동서양의 지식인들은 시장의 효율성에 맡기기보다는 중앙에서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이 더 큰 선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사회주의 체제가 비효율로 인해 붕괴했음에도 여전히 시장보다 규제를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선호한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비즈니스를 통제하려 한다. 근래에 사회주의가 붕괴한 자리에 환경주의(environmentalism)가 들어서 규제를 좌지우지한다. 그러나 부를 창출하고, 가난을 척결하고, 자연파괴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에는 시장과 파괴적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답이다. 섯불리 가난한 사람을 위하는 규제 정책이나 비영리 활동은 오히려 정체와 후퇴를 낳을 뿐이다.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무능한 결과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난 200년 동안 엄청난 부의 창출과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은, 인문학이나 관료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파괴적 창조를 지속한 상공업, 비즈니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경제역사학자로서 학술적으로 뛰어나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한 특이한 지식인이다. 그는 시장 규제에 반대하는 자유방임주의(libertarian)의 입장에서 기존의 학계와 지성계를 통렬히 비판한다. 이 책은 그의 박식한 배경을 종횡무진 발휘하여 기존의 연구들을 샅샅이 꿰뚫으면서 비판하기에 논의를 제대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학술적으로 엄격하면서 탈권위주의적인 태도에서 나온 돈키호테식의 솔직함은 기존의 권위적인 사고의 틀을 파괴하면서 새로운 관점과 통찰력을 제공한다.

2020. 7. 7. 18:20

Jeffry A. Frieden. 2006. Global Capitalism: Its fall and rise in the twentieth century. W.W. Norton. 476 pages.

저자는 하버드의 정치경제학 교수로, 이 책은 지난 백년간 전세계적으로 자본주의가 팽창과 수축을 거듭한 과정을 기술한 경제사 책이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왜 지난 백년간 세계적으로 팽창과 수축을 겪었는지 경제적, 정치적 원인을 설명하면서, 이러한 변화에 내재된 문제를 진단한다.

이야기는 19세기말 20세기 초반 서구에서 무역과 금융의 자유 이동을 허용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상당한 정도에 도달했다는 분석에서 출발한다. 국가간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은 각 나라들이 자신들이 비교우위에 있는 부문에 전문화함으로서 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높이며 부의 빠른 증가를 가능케 했다. 금본위제 덕분에 환율이 안정되고 국제간 자본이동이 활발해졌으며, 운송수단의 발달로 국제간 교역이 크게 증가하였다. 가장 먼저 산업화되었고 금융이 발달한 영국의 주도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시장의 통합이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장통합은 각 나라에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반발을 유발했다. 또한 뒤늦게 산업화를 시작한 미국과 독일은 보호무역의 장벽을 높이 쳐서 자국의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을 추구하는 영국과 보호무역 주의를 추구하는 독일간에 세력 싸움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각 나라들은 보호무역 정책을 추진했으며, 미국이 특히 그러했다.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은 유럽의 금융 위기를 불러왔고,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전세계로 퍼졌다. 대공황 이후 서구는 전쟁 전의 시장 통합을 버리고 각자 도생을 추구하며 각국이 고립된 경제 체제로 후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로 IMF와 IBRD(World Bank)를 설립하면서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서구 세계에 점차 확대되었다. 미국은 시장 개방을 주도하면서 GATT를 통해 국제적으로 무역 장벽을 낮추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국제 무역은 꾸준히 증가하였다. 2차 대전 이후의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 노력은 미국은 물론 서구 세계 전반에 큰 번영을 가져왔다. 자본의 효율성을 쫒아 국제 자본 이동이 활발해 졌으며, 국제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세계 시장에 참여한 모든 나라들에게 전문화의 이익이 높아졌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서구 경제는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유럽 국가들과 일본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 미국 시장에서 미국 산업을 위협하였으며, 미국 정부는 확대된 복지지출과 베트남 전쟁의 전비 때문에 적자 재정에 빠져들었다. 이에 더하여 1973년 중동 산유국의 자원민족주의가 폭발하고 원유 가격이 폭등했을 때, 전세계 자본주의 전체에 불황의 골이 깊어 졌다.

미국은 1980년대의 구조조정으로 비효율적인 부분을 도려내고 경제의 효율성을 높였으며, 1990년대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 덕분에 생산성이 꾸준히 향상되었다. 유럽 역시 미국보다는 정도는 덜하지만 구조조정을 겪었으며 이후 생산성의 향상을 기록하였다.  미국은 노동자의 세력이 약하여 사회보장 수준이 낮은 덕분에 경제 구조조정 이후 열악한 질의 일자리나마 높은 고용율로 복귀할 수 있었다. 반면 유럽은 노동자의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와중에도 높은 사회보장 수준을 유지해야 했으며 고용을 줄이는 선택을 하였다. 그 결과 유럽은 경제 전체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실업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댓가를 치뤘다.

1980년대의 구조조정에 이어 1990년대의 정보통신 기술의 혁신과 운송기술의 발달 덕분에 이전에 볼수 없었던 정도로 세계경제가 통합되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 자본투자는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전세계적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이라 불리는 국제 분업 생산 체계는 생산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규모와 심도는 20세기 초의 국제화 시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이러한 국제적 분업 생산체계의 혜택은 선진 산업국만이 아니라 개발도상국에게도 넓게 미쳤다.

1970년대까지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등 남미의 국가들과 인도는 국제 경제 체계에 연결되지 않고 각국이 자립적으로 발전하는 길을 추구했었다. 국제 경제에 종속되는 것은 이익보다 손해가 크기 때문에, 각 나라들은 수입과 수출을 최소화하는 대신 수입대체 산업화를 통해 국제경제에 의존하지 않는 발전 전략을 택하였다. 한국에서도 한때 '민족주의 경제론'이라 하여 이러한 발전 전략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제법 있었다. 그러나 국제경제에 연결되지 않는 고립적 산업화 노력은 자본부족, 기술부족으로 벽에 부딛쳤으며, 경제 불황에 정치적 불안이 중첩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소련을 필두로 공산주의 국가들 역시 중앙집중 계획 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된 결과 결국 1990년에 붕괴되고, 이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경제 발전의 길을 걷게 되었다. 20세기 후반 세계는 선진 산업국은 물론이고 개발도상국도 모두 국제 자본주의 경제에 연결된, 즉 국제적 자본과 국제 무역에 크게 의존하여 경제를 운용하는 모델로 수렴하였다.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 자본과 선진 기술을 활용할 수 있으며 비효율을 제거하고 경쟁력을 가진 부문에 특화하게 함으로서 경제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순기능을 갖는다. 반면 국제 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전략은 국제적 기준에 미달하는 부문, 국제 경쟁력을 갖지 못한 부문을 도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 연결된 댓가는 냉혹하다. 세계 자본주의 시장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은 국내의 경제 참여자의 복지를 위하는 것과 상충될 수있다. 국내 경제가 침체되면 정부는 이자율을 낮추고 돈을 풀고 적자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 하는데, 이렇게 하면 해외 자본이 이탈할 위험이 커진다. 정부가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을 인위적으로 지원한다면, 국제 자본은 이 나라를 버리고 해외에 더 효율적인 곳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떨어지는 노동자들은 개발도상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몰리게 되었다. 이들은 선진국의 공장이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면서 일자리를 잃고, 자본가에 대항하는 협상력이 떨어지고, 임금이 하락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반면 국제적 분업 생산 전략을 고도로 구사하는 다국적 기업에서 일하는 높은 기술의 노동자들은 생산성 향상과 거대한 시장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수익을 독차지 하면서 높은 임금을 구가했다. 자본의 국제 이동이 자유화되면서 자본을 가진 사람이나 금융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수익은 크게 높아졌다. 그 결과 선진국의 소득 불평등은 크게 높아졌다. 누진적 세금과 사회보장 제도를 통한 완충 기능이 약한 미국은 불평등 정도가 유럽보다 훨씬 심하다. 

국제경제에 연결되어 발전하는 개발도상국에서 역시 불평등이 확대되었다. 국제 경제와 연결된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 중 중산층이 늘어난는 반면, 농촌이나 전근대적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산업화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근대화의 과정에서 낙후되었다. 도시와 농촌간, 근대적 산업 노동자와 전근대적 부문의 노동자간의 격차는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요인이다.

21세기에 들어 다시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통합이 후퇴하는 징후를 보인다. 선진국에서 세계화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서구의 각국은 비관세 무역 장벽을 높이고, 자본 이동을 제한하고, 이민자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경제 수준이 높아질 수록 선진 산업국에서 기술 수준이 낮아 세계화에 낙오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며, 이들의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21세기에 들어 중국의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미국인 중 중국의 부상을 반대하고 세계화를 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선진 산업국에서 세계화가 경제의 규모를 키우고 경제 효율성 증대의 혜택이 구성원 다수에게 돌아가는 한 세계화는 지속될 것이다. 반면 경제가 불황에 빠지고, 세계화의 혜택을 다수가 배제된 채 소수가 독점하고, 소득 수준이 정체되거나 악화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세계화를 거부하는 목소리는 크게 힘을 받을 것이다. 자본의 이동 속도가 빨라졌기 때문에 쏠림 현상의 부작용으로 불황에 빠질 위험은 과거보다 더 커졌다.  지금까지 세계화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지만,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저자는 20세기 경제사를 이해하기 쉬운 문체로 잘 정리하였다. 저자는 특히 금융 분야에 관심이 많아, 국제 자본주의 시장의 변화에서 금융의 측면에 많은 논의를 할애 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서 금본위제가 왜 그렇게 중요한 문제였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와 벌어진 일이 많지만, 이책은 20세기 말까지만 커버하고 있어 아쉽다. 다시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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