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369)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배나무 (10)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변화'에 해당되는 글 5건
2023. 7. 3. 10:53

Eric Hoffer. 2002(1951). The True Believer: Thoughts on the Nature of Mass Movement. Harper Perennial. 168pages.

저자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막노동자로 일생을 지내면서 독학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써서 명성을 얻은 특이한 사람이다. 이 책은 그의 첫번째 책으로,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혁명적인 대중운동에 대한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 발생하고, 어떤 사람이 참가하고,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종결되는지 서술한다. 경험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설명이 아니라 저자의 주관적 생각을 제시한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는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궁핍과 좌절과 억압이 극에 달하는 저점에서 발생하지는 않는다. 프랑스 혁명,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등이 발생하기 이전 한동안 사람들의 삶의 수준이 향상되고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수준이 올라가는데,  현실이 그에 미치지 못할 때 기존 질서를 뒤없는 사회혁명이 발생한다. 전제주의 정권의 억압이 굳건할 때에는 체제를 전복할 사회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제주의 정권의 장악력이 떨어지는 시점, 즉 국민을 조금 풀어주는 시점에 급진적인 사회운동이 발생한다. 사람들이 먹고 살게 없다고 하여 혁명을 하지는 않는다. 극빈하면 일상의 생계를 확보하는 데 심리적 육체적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혁명에 참여할 여유가 없다. 소련의 스탈린 시절, 중국의 모택동 시절, 정책 실패로 수백만이 굶어 죽었지만, 정권의 장악력이 확고하였기 때문에 체제에 대한 반발이 유의미하게 형성되지 않았다.

급진적인 사회운동은 혁명의 이념과 목표에 자신을 완전히 헌신하는 사람에 의해 추진된다. 이들은 자신의 삶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의미를 찾지 못하여, 자신의 인생을 걸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다.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또 다른 부류는 현재의 질서에서 잘 맞지 않는 주변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실망하거나 현재의 질서에서 주변적인 사람은 현재의 질서를 뒤업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엄청난 열성을 보인다. 이들은 혁명을 방해할 어떠한 장애물도 부숴버리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광신도 fanetics 들이다. 자신의 삶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무료해 하고 암담해 할 때, 사회를 뒤집어 업고 새 세상을 만든다는 이념과 목표에 쉽게 빠져든다. 이들은 혁명이 가져오는 혼란과 변화 그 자체에 희열을 느끼며, 막상 목표를 현실적으로 실현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다. 광신도들이 없다면 기존 질서를 뒤업는 작업이 수반하는 혼란과 폭력과 저항을 이겨내고 계속 나아가는 추진력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기 때문에 혁명은 실패한다. 

광신도들은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혁명적 이념에 엄청난 열정을 투입하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재의 질서를 바꾸려는 사람은 계산적이기 때문에 추진력이 약하며 기득권의 저항과 역경을 이겨낼 수 없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기존의 질서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새로 시작하려 하기보다 기존의 질서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하는 선택을 한다. 자신의 일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사람들, 예컨대 지식인, 예술인이나, 자신의 가진 것 있는 사람들은, 외부의 이념에 자신을 희생하는 헌신을 하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가난한 사람들 또한 혁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

혁명은 기존 체제에 대해 사람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야 발화가 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식인들은 새로운 이념과 대안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한다. 기존의 질서에 대한 불만만으로는 부족하며 대안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만 혁명의 동력이 작동한다. 혁명의 시작은 지식인의 말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의 시작은 예수의 말이며, 볼셰비키 혁명의 시작은 맑스와 레닌의 말이며, 종교개혁의 시작은 루터의 말이다. 사람들은 혁명적 이념이 제시하는 환상, 현실을 대치하는 대안에 대한 희망에 끌려서 혁명에 참여한다. 혁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를 바꾼다는 희망, 자신을 일개 개인이 아니라 사회전체와 동일시하는 환상에 빠져서 자신을 희생한다. 이러한 희망과 환상에 모두 설득당하고 동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을 수반한다. 광신자들은 사회전체의 이름으로 혁명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을 적으로 몰아 증오하며,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반대자를 억압하고 처단한다. 

폭력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혁명의 진행 단계에 따라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등장하여 제 몫을 하여야 한다. 혁명의 이념과 대안과 희망을 제시하는 지식인, 자신을 희생하면서 기존의 질서를 부수고 혁명의 행동강령을 실천하는 광신도, 혁명 사업을 실행하고 조직을 관리하는 현실적인 실행인, 광신도와 실행인을 아우르고 이끌어가는 지도자, 혁명이 성공했을 때 뒤정리를 담당하며 혁명의 이념과 목표를 제도로 구체화시키는 관료, 등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실행인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 광신도만으로는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 지도자가 없는 광신도들은 오합지졸에 불과하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했을 때 현실적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많은데, 이를 새로운 질서, 새로운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을 할 인재들이 필요하다. 이들이 없다면 혁명은 혼란으로 끝나게 된다. 혁명의 초기에는 광신도들이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이들은 혁명 후반 제도화의 단계에는 오히려 정착을 반대하는 걸림돌이 된다. 이들은 안정을 원치 않고, 비현실적인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것을 계속 부르짖으며, 질서를 만들기보다 질서를 파괴하는 데 더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혁명은 오래 끌면 실패한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변화보다 안정을 선호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존 질서에 문제가 많다고 하여도, 사람들은 웬만하면 참고 그대로 지내려 한다. 혁명적 변화란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화라는 충격에 짧게 노출되어야만 견딜 수 있다. 기존의 혁명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근본적으로 변한 부분도 있지만, 기존 질서의 대부분은 혁명 이후에도 계속 이어진다. 단기간의 혁명을 통해 기존의 질서에 균열이 가고 변화의 방향이 설정되면, 시간을 두고 충격의 여파가 퍼지면서 서서히 변화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기독교의 탄생에서 로마의 국교가 되기까지 300년의 세월이 걸렸으며, 16세기의 종교개혁이나,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혁명과 미국의 독립혁명, 등도 혁명의 충격이 가시고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가 전개되었다.

저자는 특이한 이력답게, 글쓰기 방식이나 논지의 전개에서도 파격적이다. 다르다. 객관적 증거를 제시하거나, 기존의 논의 위에 자신의 주장을 덧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의 오랜 경험과 반추의 결과물을 일방적으로 토해낸다. 주관적이고 선택적으로 추출하는 과장이 엿보이지만, 독창적인 신선함이 엿보인다. 다만 이 책에서는 혁명의 중요한 요소를 누락시키고 있다. 저자는 주로 개인의 심리적인 측면에서 혁명 참가자에 촛점을 맞추는데, 혁명은 사회구조적인 현상이다. 혁명의 원인은 혁명 참가자의 심리에 있기보다, 사회구조적 모순에 있다. 저자는 이부분을 처음에 약간 언급한다. 여하간 재미있게 읽었다.

2021. 9. 18. 10:55

Valcrav Smil. 2021. Grand Transitions: How the modern world was made. Oxford University Press. 296 pages.

저자는 생태학자이며, 이책은 세계가 물질문명의 측면에서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포괄적으로 서술한다. 인구, 식량, 에너지, 경제, 환경의 다섯 분야에서 변화를 서술한다. 

서구사회는 인구 감소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앞으로 인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인구가 주로 증가할 것이다. 인구가 증가하는 가난한 나라로부터, 인구가 감소하는 부자 나라로의 인구 이동은 앞으로 필연적이다. 부자 나라는 노령화로 인해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무엇보다 노령 인구를 돌볼 사람이 필요한데, 자체로는 조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식량 생산은 1960년대의 그린 혁명을 거치며 비약적으로 늘어, 이제 식량의 절대량에서 지구의 인구를 먹여살리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러나 선진 산업국에서 육식 소비가 많고 폐기되는 식량이  절반에 달하는 현재의 상황이 지구 전체로 확대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생활 수준과 생활 방식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말이다. 식량의 고기 전환 효율이 낮은 소고기의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전환 효율이 높은 닭고기의 소비와 콩 단백질을 이용한 인조고기의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인류의 주요 에너지 원은 유기체의 근육의 힘에서 벗어나, 나무, 석탄, 석유, 가스, 전기로 이전해 왔다. 한때 원자력이 미래 에너지의 주종이 되리라는 예견은 어긋났다. 현재 태양광이나 풍력 등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열풍이 불고 있지만, 석탄과 석유에 대한 의존은 앞으로도 오랫 동안 지속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주 에너지의 전환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체 에너지원이 주가 되는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특정 에너지를 이념적으로 옹호하거나 배척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핵에너지, 태양광과 풍력, 뿐만 아니라 석탄, 석유, 가스, 전기에서 기술 혁신을 꾸준히 추진하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선진국의 경제 성장율은 점차 둔화되고 있지만, 성장율이 정체하거나 후퇴하는 것은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앞으로 성장이 지속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중국을 비롯하여, 뒤이어 인도의 경제성장은 꾸준히 지속되면서 선진국과 격차를 좁힐 것이다. 아프리카의 경제 성장이 어떻게 전개될지 현재로는 불투명하다.

인류의 발전은 환경 악화와 함께 했다. 인간 때문에 많은 종이 사라졌으며, 기후 변화는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지속가능 성장을 언급하고 있으나, 개발도상국에게는 성장이 최우선과제이며 환경에 대한 고려는 뒷전이다. 환경 파괴로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저자는 인류의 적응력을 신뢰한다. 환경 문제가 악화하면, 인류는 그에 맞추어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기술 개발은 물론, 규제와 탄소세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파국을 막으려 할 것이다. 어느 선을 넘어서면 되돌릴 수 없기에 인류가 멸망하리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의 발전과 경제 성장은 자연과 생태의 한계 내에서 이루어졌다. 지금까지의 성장이 기울기가 가팔라지는 궤적을 앞으로도 계속하여, 궁극적으로 인류와 자연이 합일하는 "단일체(Singularity)"의 상태에 도달하리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는 물질적 존재이며 물질적 제약 속에서 생존하기 때문에, 앞으로의 변화도 물질적 제약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물질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극단적인 낭비를 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 책은 엄청난 양의 통계 수치를 인용하며 서술하여 읽어 나가기 힘들다. 통계 책자를 읽는 느낌이다. 이렇게 책을 쓰기도 힘들텐데. 저자의 인내에 감탄하는 한편으로, 계속되는 숫자와 밋밋한 서술은 독자의 호기심을 죽인다.

'과일나무 > 모과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과나무 목록  (0) 2021.09.18
플랫폼의 성공 조건  (0) 2021.09.14
플랫폼 혁명이 다가오고 있다  (0) 2021.09.12
행복해지는 방법  (0) 2021.09.08
창업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0) 2021.09.04
2021. 7. 1. 15:21

Annalee Saxenian. 1994. Regional advantage: Culture and competition in Silicon Valley and Route 128. Harvard University Press. 168 pages.

저자는 도시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보스턴의 Route 128 지역과 실리콘 밸리를 비교하면서, 왜 전자 기술의 발달은 보스턴 지역에서 시작했으나 실리콘 밸리에 따라잡히게 되었는지, 왜 실리콘 밸리에서 컴퓨터 기술 혁신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설명한다.

보스턴 주변 지역은 뛰어난 산업 입지를 가지고 있다. 18세기 미국의 산업혁명이 이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우수한 대학과, 높은 인구 밀도와, 정치 경제의 중심지를 인근에 둔 덕분에, 오래전부터 미국에서 이 지역은 기술과 산업의 중심이었다. 특히 2차 대전을 전후하여 정부의 대규모 방위산업 수요에 부응하여 전자기기, 항공기, 미사일, 등 첨단 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이 지역의 기업들은 방위산업 예산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면서, 신기술 분야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였다.

보스턴 지역에서는 연방정부의 대규모 발주에 의존하는 기술 대기업이 지역의 산업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기술 대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자원을 내부에서 조달하는 수직적 계열화 체제를 갖추고 있었으며, 한 지역에 있으면서도 기업들 서로간에 연관이 적은 독립적 단위로 존재하였다. 이 대기업들은 기술 개발이나 부품 조달을 모두 내부에서 하였으며, 위계적 조직과 비밀주의가 팽배한 관료적 경영 행태를 보였다.

실리콘 밸리 지역은 2차 대전 이전까지 특별한 기술 기업이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샌프랜시스코 지역에 돈과 사람이 몰리면서 이 지역은 활력을 얻게 된다. 실리콘 밸리가 기술 개발의 메카로 뜬 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다. 하나는 보스턴 지역에서 일하다가 스탠포드 대학의 전자공학 교수로 부임한 Frederick Terman 이 서부지역에 기술 개발의 동력을 불어넣기해 산학협력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시도한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은 인근 산업체와 학교 연구실이 밀접히 협력하는 것을 장려하였으며, 교수와 학생의 연구결과물의 사업화를 지원하였다. 기업체 엔지니어가 대학의 강의를 듣게 함으로서, 기업이 최신 기술을 학교로부터 전수 받고, 학교가 산업 현장의 감각을 획득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휴렛팩카드, 선 마이크로시스템, 등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업이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생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그들은 졸업해서도 기업활동에서 서로 유대를 지속했으며, 경영이나 기술적 문제에 관해 서로 주고받고 대학과 연계를 유지하는 고리가 되었다.

둘째는 직접회로의 기술이 1950년대에 개발되었는데, 스탠포드를 나오고 동부의 벨 연구소에서 일하던 William Shockley가 실리콘 밸리에 직접회로 칩을 생산하는 기업을 만들었고, 이곳에서 일하던 엔지니어 8명이 이 기업에서 나와 Fairchild Semiconductor 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것이다. 이 기업은 이후 무수히 많은 실리콘 밸리의 기술기업들을 파생시켰다. 대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업적 중심의 문화, 휴랫패커드의 수평적 경영, 쇼클리의 권위를 배격하는 경영, 일하던 기업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이 창업하는 많은 사례 등이 실리콘 밸리의 수평적이고, 비공식적 네트워크를 중시하고, 정보가 자유롭게 교환되고, 업적 중심의 경쟁을 우선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들은 소속 기업에 대한 충성보다 동료 기술집단에 대한 충성이 더 컸다. 기술 변화가 워낙 빠르고, 그에 따라 기업 활동도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기술에 대한 신뢰가 조직에 대한 신뢰보다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배경이 없이 기술과 아이디어만으로 출발하여 크게 성공하고, 사업에 실패해도 크게 오명이 붙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기 위해 창업을 힘들지 않게 택하였다. 지역에 지원 공급망의 생태계가 잘 갖추어져 있으므로 창업에 큰 비용이 들지 않았다. 핵심 아이디어를 제외하고는, 인근에서 모두 경영 지원, 기술 지원, 부품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컴퓨터관련 기술이 워낙 빨리 변하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 경쟁이 매우 치열했으며 조금만 방심하면 기술이 낙후되어 퇴출되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 개발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계속 확대되는 플러스 섬 plus sum의 환경이므로, 기술 비밀주의나 비용이 많이 드는 법정 다툼을 하기보다는 약간의 보상을 받으면서 서로에게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지역 내에서 엔지니어와 물자의 잦은 이동을 통해 기술이 금방 상대 기업에게 노출되기 때문에 비밀주의가 통하기 어려웠다. 가격 경쟁보다는 높은 품질과 기술적 우위가 우선적인 고려 사항이었으며, 지역내 인력과 물자의 이동을 통해 전반적으로 기술수준이 높아지고, 향상된 기술의 수익을 모두가 누리는 분위기였다.

반면, 보스턴 지역의 대기업은 모든 기술과 생산을 회사 내에서 소화하려고 했기 때문에 변화의 속도가 느렸다. 시작은 앞섰으나 시간이 갈수록 신기술 개발 속도에서 실리콘 밸리에 뒤쳐지게 되어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보스턴의 기업들은 기술 개발 부문을 실리콘 밸리로 이전하여 첨단의 기술 개발 속도에 따라갈려고 하였으나, 최종적 의사결정이 여전히 동부의 대기업 관료의 손에 있었으므로 서부의 민첩하게 움직이는 기술 기업을 따라갈 수 없었다. 예컨대 1960년대에 DEC 는 중형 컴퓨터 분야에서 독보적 지위를 구축했는데, 퍼스널 컴퓨터와 워크스테이션으로 넘어가는 기술 변화의 흐름에 뒤쳐져 1990년대에 결국 망했다.

실리콘 밸리가 보스턴을 따라잡고 1970년대 이래 미국의 전자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을 한 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래 메모리 칩이 대량생산의 범용제품이 되면서 실리콘 밸리의 반도체 생산 기업들이 일본의 경쟁에 밀리게 되었다. 대규모의 설비를 투자하여 비용 감축과 효율성을 높이는 대량 생산방식에서 실리콘 밸리 기업들은 일본의 후발주자에게 패했다. 결국 1990년대 들어 메모리 칩 생산을 포기하고 프로세서 칩에 집중하였으며, 소규모의 주문생산이 요구되는 첨단기술이 집적된 칩을 디자인 하고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실리콘 밸리는 기술개발의 동력을 회복하였다.

저자는 동부의 보수적이며 폐쇄적 대기업 문화와 서부의 엔지니어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변화에 민첩한 창업가 문화를 잘 대비하고 있다. 기술 변화가 매우 빠른 반도체와 컴퓨터 분야에서 실리콘 밸리의 엔지니어 기업 네트워크이 얼마나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지 잘 보여준다. 관계자 인터뷰, 지역 신문기사, 통계 자료를 조합하여 훌륭한 분석을 제시하였다.

2020. 11. 14. 20:12

 

James C, Scott. 2020(1998). 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Yale University Press. 357 pages.

저자는 예일대학의 정치학 교수로, 세계 여러 국가들이 추진한 대대적 개혁 사업이 왜 모두 실패로 끝났는지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이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과 계획 조림을 통해 인위적으로 조성한 숲을 비교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연상태로 울창한 숲은 말끔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다양한 종류의 식물과 동물이 공존하며, 가뭄, 홍수, 화재, 병충해 등의 외부적 충격에 강하다. 반면 계획 조림을 한 숲은 외양은 깨끗하지만 외부 충격에 취약하여 지속가능하지 않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의 성장이 정체되고 병충해의 공격으로 완전히 전멸하기도 하므로, 이러한 계획 조림 숲을 계속 유지하려면 인위적으로 다양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서 관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자연상태의 숲을 밀어내고 그자리에 단일한 종의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숲을 조성하는 이유는, 외부인이 그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쉽게 파악하고(legibility), 통제하기 위함이다. 자연상태의 숲은 목재를 생산한다는 상업적 목적에서 보면 부적합하기 때문에 상업적 목적의 계산이 가능한 단일 종의 숲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국가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개혁 사례로, 17세기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 소련의 공산주의 혁명 이후 농장 집단화 사업, 브라질의 브라질리아 행정수도 건설, 탄자니아의 독립 이후 추진된 농촌 집단 정주촌 건설 사업을 분석된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 작업은 전통적인 복잡한 토지 사용 관행을 무시하고 소유여부라는 단일 척도로 단순화하려는 시도였다. 인간의 합리적인 계획으로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는 근대화(mordernism)이념으로 무장하고, 전통적 공동체와 농업 방식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자리에 완전히 계획된 집단 농장과 도시를 만들었다. 이러한 시도는 모두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프랑스의 토지 등록작업은 주민의 실제 토지 사용관행을 반영하지 못했기에, 서류상의 소유관계와 실제의 사용관계가 유리된 결과를 낳았다. 소련의 집단 농장과 탄자니아의 농촌 집단 정주촌 사업은 농업 생산성이 추락하여 농민이 먹을 것 조차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다. 브라질리아는 주민간 인간관계가 메마르고, 활력이 없고,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도시가 되었다.

실패한 이유를 검토하기 앞서 왜 이러한 무모한 시도를 했을까 생각해 보자. 전통적 농촌 마을과 전통적 생산방식은 오랫동안의 인간관계와 삶이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러한 복잡한 관계는 외부자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으며, 외부자가 전통적 생산방식을 이해하고 통제하기는 힘들다. 전쟁이나 정치적 투쟁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엘리트 집단은 기존의 전통 관계를 파괴하여 외부로부터의 통제가 가능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비록 이러한 무자비한 정책이 생산성의 저하를 낳는다 해도, 세금을 더 거두고 잠재적 반발 세력을 무력화하기 때문에 엘리트 집단에게는 득이 된다. 반면 외부의 엘리트로부터 통제 당하는 주민들에게 이러한 정책은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준다.

중앙의 일관된 계획에 따른 실험, 소위 '사회적 공학'(social engineering)이 실패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간 관계와 삶의 방식을 몇개의 원칙으로 단순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과 일하는 방식은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축적해온 지혜를 반영한다. 이러한 현장의 지혜를 무시할 때 일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중앙 관료의 지시에 따라 일을 추진하면 주민은 강압에 못이겨 수동적으로 따를지 몰라도 일은 제대로 될리가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창의(innitiative)와 오랜 시행착오로 축적된 실용적 지혜(practical know-how)를 무시한다면 생산성을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일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다. 소련의 집단 농장이나, 브라질리아나, 탄자니아의 집단 정착촌이 그나마 오랜 시간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정부의 공식적 지시와 원칙을 어기고 비공식적으로 생존하는 방식을 만들어 내었기 때문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아프리카의 개발도상국에서 전통적 농법을 폐하고 과학적 영농 방식으로 자연을 개조하려는 시도들이 왜 실패했는지 분석한다. 전통적 농법은 여러 작물을 섞어서 재배하고 윤작을 하는 데, 이는 상업적인 생산의 관점에서는 매우 비효율적으로 보인다. 과학 영농이라 하여 비료와 살충제를 많이 써서 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은 처음에는 생산성이 있는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추락한다. 전통적 농법은 지역의 구체적 사정에 맞추어 적응된 방식이며 오랫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효율적으로 판명된 것이 살아남은 결과이다. 단순히 실험실에서만 성공한 표준화된 과학적 영농방식을 다양한 현지 사정에 일괄 적용하면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전통적 농법은 자연의 실험장에서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선택된 종자와 재배 기술인 반면, 과학적 영농은 먼저 특정 종자와 재배 방식을 실험실에서 개발하고 자연을 실험실의 상황으로 개조하여 적용하는 방식이다. 자본을 많이 투입하고 자연 환경을 실험실의 상황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미국 중서부나 유럽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방식이 성공할 수없다.

복잡한 현상을 소수의 몇개 변수로 단순화하여 파악하는 것은 과학적 인식의 기본이다. 소수의 몇개의 변수로 단순화해야만 자연 현상에 대한 통제와 조작이 가능하다. 관심의 촛점이 되는 소수의 변수를 제외하고 다른 모든 요인들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 과학적 실험이다. 인류는 이러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자연 현상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 왔다. 사회 현상은 자연 현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수의 영향을 통제하는 것이 훨씬 힘들기 때문에 인간의 삶에 관해 모르는 부분이 훨씬 많다. 특정 지역, 특정 집단, 특정 인간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은데, 소수의 원칙을 적용하여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 하면 반드시 실패한다.

저자는 소수의 사례들에 관해 흥미롭게 서술하며, 이론적 설명도 설득력이 있다. 다만 저자의 설명이 실패한 사례들에는 잘 적용되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인류 역사상 큰 변화를 가져온 사례에도 설득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짧은 시간에 큰 변화를 추진한 시도는 원래 의도한 대로의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는 기득이권의 구조를 파괴하고 변화를 위한 장을 마련한다는 면에서 의의가 있다. 원래의 실험이 실패한 바탕 위에 원래보다 덜 과격하지만 변화를 추구하는 또 다른 실험이 전개되거나, 최소한, 실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사회가 전개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며, 사회의 기득이권 구조는 변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변화란 어찌보면 무모한 실험의 연속을 통해 조금씩 만들어져 온 것이다. 학술적으로 단단한 연구에 바탕을 둔 흥미로운 책이다.

2012. 3. 2. 21:31

 컴퓨터 회사인 애플을 보면 미국 경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다. 애플은 미국에서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만들지만 기기의 제조는 전적으로 중국에서 한다. 중국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이유는 반드시 싼 임금 때문만은 아니다. 제품 전체의 가치에서 생산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부가가치 제품일수록 크지 않다. 미국은 중국의 제조 산업이 제공하는 강점에 도저히 필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노동자과 산업체는 배가 불러서 신속한 변화 요구에 민활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반면, 중국 노동자와 업체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 애플의 어떤 요구에도 신속히 대응하여 맞춘다. 신속한 변화는 많은 스트레스를 수반하고 기득이권의 포기를 필요로 하므로 미국의 노동자와 업체가 중국에 필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미국은 새로운 기술 개발과 혁신으로 중국의 업체와 노동자가 따라올 수 없는 선발의 이익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신기술 개발이나 혁신은 고용의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플의 소프트웨어나 디자인 개발은 기기 제조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인원을 필요로 한다. 경제활동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면서 이들 상대적으로 작은 수의 엘리트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높은 보상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류층을 뒷받침 하던 제조업의 수 많은 일자리는 점차 해외로 이전하면서 사라진다.  

미국에는 애플의 개발자와 같은 고급 근로자와 함께 외국으로 이전할 수 없는 하급 일자리만이 남는다.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애를 보고, 청소하고, 슈퍼마켓에서 진열대를 정돈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등등. 이러한 일자리는 외국으로 이전할 수 없고 기계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이 존재하지만 부가가치가 크지 않으므로 저임금 업종이다.

문제는 과거에 대학교육을 받은 중류층이 담당하던 일마저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도움으로 해외로 속속 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콜 센터는 물론이고 자료 처리, 고객 관리, 회계처리, 디자인과 리서치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의 거의 전영역이 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화이트칼라 업종 중 컴퓨터가 담당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업무만이 미국에 남는다.

국내에 가까이 있으면 신속히 협의하고 조정할 수는 있으나, 요즈음 업무는 대부분 컴퓨터와 통신망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구지 근접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강력한 노동 윤리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된 인도의 젊은이가 미국의 별 볼일 없는 대졸 노동자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섭섭한 일이지만,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훨씬 바람직한 변화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미국인이 열심히 노력하는 제삼세계의 인재보다 낮은 보상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모두를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 볼 때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터무니 없이 큰 이익을 부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미국 사회의 양극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가진자와 못가진자간에 사회적 갈등이 커진다는 점이다. 미국인이 숭배하는 가치인 개인주의가 지속되는 한,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기회를 얻은 사람과 실패한 사람 사이의 간극은 커질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사회적 간극이 낳는 부작용을 새로운 이민자를 계속 받음으로서 피해가려 할 것이다. 새로운 이민자는 미국 사회의 바닥에서 시작하면서 열심히 일하므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안전판으로 기여해 왔다. 이들이 계속 들어오면 아메리칸 드림은 계속 살아있게 되고, 극심한 불평등에 대한 반발은 어느 정도 완화된다.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면서 불평등이 극심한 냉혹한 사회를 지속할 것이다. 미국인의 마음속에서 “이익을 서로 나누면서 함께 잘 살아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기미가 보인다. 물론 야후의 창업자인 제리양이나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같이 능력이 있는 세계의 젊은이들은 미국에서 큰 기회를 잡을 수있다. 미국은 이러한 세계의 인재들을 흡수하면서 활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화려함 속에서 보통사람들은 허덕이면서 살아가겠지만 말이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