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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에 해당되는 글 4건
2023. 6. 24. 23:05

Nassim Nicholas Taleb. 2010(2007).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2nd ed. Penguin books. 397 pages.

저자는 증권딜러를 거쳐 통계학자로 변신한 사람이며, 이 책은 미리 예상할 수 없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관해 논의한다.

검은 백조란 매우 드물게 일어나지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는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세상사는 예상할 수 있는 위험보다는 예상하지 못하며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위험에 의해 좌우된다. 근래로 올수록 이러한 경향이 과거보다 더 심하다. 사람들은 이러한 위험이 발생한 뒤에 사후적으로,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narrative fallacy), 사전적으로 이러한 일이 발생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려 하는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남겨두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아무런 사전적 이유 없이 랜덤하게 발생하거나, 원인이 있다 해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전에 일어났지만 우리가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그러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검은 백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problem of silent evidence). 검은 백조는 이전에 발생한 사건을 원인으로 하여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매우 특이한 사건이다.

실재의 현상은 이론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모두 이론에 따른 가정을 바탕에 깔고 현실을 설명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랜덤하게 발생하는 사건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이론적 접근을 버리고 데이타에 충실하여, 현실로부터 잠정적으로 패턴을 추정하는 귀납적 방식을 택해야 한다. 검은 백조 현상은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칠면조는 주인으로부터 1000일동안 먹이를 받아먹으면, 앞으로도 계속하여 먹이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1000개의 사건에 대한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하여  1001번째 날을 예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1001번째 날이 크리스마스라 주인은 칠면조를 잡아먹는다. 칠면조의 입장에서 볼 때 1001번째의 죽음은 검은 백조이다. 검은백조가 나타나리라고 예측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은 없다.

통계학, 경제학 등 인간사를 연구하는 학문은 근본적으로 세상사는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하나, 사회의 현상 중 정규분포를 따르지 않는 것이 많다.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 간에 비례적 선형적 관계를 가정하나, 비선형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이 많다. 물질적 속성의 것, 예컨대 키, 체중, 수명, 등은 선형적 관계이나, 비물질적인 속성의 것, 예컨대 소득, 매출, 정보, 손해, 기술, 등 많은 사회현상은 정규분포나 선형적 관계를 따르지 않는다. 지수적 법칙 power law 은 이러한 비선형적 관계의 한 예이다. 지수적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초기 값에 조그만 차이로도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크게 벌어진다. 정규분포에 따른다면 평균에서 벗어나면 급속하게 가능성이 줄기 때문에 예외적인 현상의 비중이 매우 작지만, 지수적 법칙으로 증가하는 함수의 경우 평균에서 벗어난 예외적 현상의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에 전체의 평균이 이 예외적 현상에 의해 좌우되게 된다.

검은 백조는 이러한 비선형적 사건의 일종이다. 비선형적인 극단적인 사건이 전체를 좌우하는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 (Extremistan), 정규분포를 따르는 상황을 예외적인 것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학문적 접근은 정규분포의 상황을 기본으로 하고(Mediocristan), 비선형적 분포의 상황을 예외적인 것을 취급하는 데, 이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처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은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 경제예측이나 재무분야의 포트폴리오 관리 이론은 모두 사기이다. 그들의 예측을 현실과 비교해 보면 전혀 맞지 않음에도, 사람들은 이들의 전문적인 설명에 혹해서 그릇된 세계관을 가지게 되고 위험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생활을 한다. 

검은 백조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대비할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튼튼하게 대비하여 (robust)  미리 미리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연은 이러한 예상치 못한 위험에 대해 대비하게끔 진화하였다.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중복을 두는 것 (redundancy) 이 그것이다. 자연의 유기체들은 비상상황에서 하나가 망가지더라도 나머지 하나로 버텨나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에 대비하지 못한 생물은, 드물지만 엄청난 충격을 주는 위험에 노출되어 멸종되어 버렸다. 최대의 효율을 추구한다고 여유를 두지 않고 최적화하는 것 (optimization) 은 자신을 예기치 못한 드문 위험에 취약하게 노출시키는 어리석은 행위이다. 취약함을 줄이는 방식으로(anti-fragile)으로 살아야 한다. 

빚을 지는 것은 취약한(fragile) 생활방식이다. 예기치 못한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다. 개인이건 국가이건 최대한 자신의 소득 이내에서 살아야 한다. 빚을 동원하여 사업을 하면(leveraged), 예상치 못한 드문 위험이 닥쳤을때, 그동안 벌어놓았던 모든 이익 이상의 것을 까먹기 때문에, 망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금융계나 대기업의 보상 방식은, 이익에 대해서는 비례 이상으로 많이 보상을 하면서, 손해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금융계는 무모한 정도로 많은 위험을 안고 사업을 하는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상태에 빠져 있다. 2007년의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이러한 무모한 영업이 초래한 위험을 당사자들이 지지 않고 세금으로 손해를 메웠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현재의 보상 구조가 지속되는 한, 과도한 위험을 안은 취약한 사업 방식은 미래에 예기치 않은 드물게 발생하는 위험에 노출되어  또다른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위험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위험에 따른 손해를 짊어지는 보상 구조(skin in the game) 로 바꾸어야만 위기를 막을 수 있다.

저자는 금융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답게 학술적 접근의 비현실성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는 검은 백조, 랜덤한, 비선형적인, 등 매우 매력적인 주제를 다루어서 스타가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이 랜덤한 사건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살면서 모두 경험하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다. 세상사가 랜덤하게 발생한다고 하는 것은 "왜 그런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다" 는 말을 하는 것이므로, 아무도 자신이 모른다고 드러내서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도 검은 백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예측이나 설명을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책은 그렇게 잘 쓴 책은 아니다. 주제와 무관한 잡다한 사설을 곳곳에서 쉼없이 냉소적으로 퍼부어 대기 때문에, 정말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정신 똑똑히 차리고 가려서 읽어야 해서 필요 없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장황하게 반복하는 것도 흠이다. 주제와 무관한 개인적인 에피소드와 진지하고 복잡한 사안을 수시로 섞어가며 서술하는 것 역시, 그의 스타일이라고 하지만, 주의를 분산시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서술이다. 그럼에도 통계학이나 경제학에서 기존에 하던 말과는 다른 신선한 주장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어디까지 그의 주장이 옳은지를 살펴야 하는 피곤함이 따르기는 하지만. 그의 주장은 부분적으로만 맞다.

2023. 3. 26. 20:39

David Ropeik. 2010. How risky is it really? Why our fears don't always match the facts. McGraw Hill. 262 pages.

저자는 저널리스트이며, 이 책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위험이 실재와 얼마나 왜 다른지 설명한다. 사람들은 대상 위험에 대한 객관적 사실보다 그에 대한 두려운 감정에 우선적으로 휩쓸려 위험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다.

어떤 대상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대상 위험에 신속히 대응하기위하여 발달하였다. 대상에 대해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우리의 생사를 좌우하는 위험요소에 대한 반응으로는 부적합하다. 과거 인간이 수렵채취 시절을 거치면서 진화시킨 이러한 반응 장치는, 현대 사회에서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대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대상의 위험도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상에 대하여 실재의 위험도와 우리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위험도가 어긋나면 우리의 안전을 효과적으로 확보하기 어렵다.

인간의 인식 과정은 심리적 오류에 쉽게 빠진다. 사전적인 암시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framing), 제한된 정보를 가지고 확대 해석하는 것(categorization), 가급적 손실을 피하려는 성향(loss aversion), 임의적인 시작 기준 쪽으로 편향되는 성향(anchoring), 강한 인상을 남긴 것에 과도하게 휘둘리는 성향(awareness/ready recall effect), 숫자에 약한 성향, 미래를 낙관하는 성향(optimism bias) 등. 이러한 심리학적 오류는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에서 근래에 많이 언급되고 있다.

사람들이 대상을 실재보다 더 혹은 덜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요인을 망라하면 다음과 같다. 대상에 대해 신뢰가 부족할 때, 손실과 이익을 비교할 때, 대상을 통제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대상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대상 위험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일 때, 대상이 고통을 수반할 때, 대상 위험이 불확실할 때, 대상 위험이 일시에 한꺼번에 닥칠 때, 대상 위험이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될 때, 대상 위험이 익숙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일 때, 대상 위험이 아동에게 닥칠 때, 대상 위험이 집합적 성격이 아니라 특정 개인에게 닥치는 것일 때, 대상 위험이 공정하지 않을 때, 등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대상 위험을 실재와 달리 잘 못 인식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집단적 성향에 휩싸여, 대상에 대해 정확히 판단하려 하기보다 집단의 의견에 무의식적으로 따른다(tribalism). 예컨대 미국의 민주당 지지자들은 원자력 발전의 위험에 대해 실재보다 과대평가하는 반면, 공화당 지지자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을 과소 평가한다. 미국 사회에서 위험을 잘못 파악하고 있는 예를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암보다 심장병이 훨씬 더 위험함에도 암에 대한 관심이 심장병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높다.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것의 이익이 훨씬 큼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주민의 반대 때문에 불소화를 하지 못한다. 핵 에너지에 대한 사람들의 위험 인식은 실재와 크게 어긋나게 과장되어 있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진영에 따라 큰 격차를 보인다. 사람들이 대상 위험을 잘못 인식하는  데에는 언론의 잘못도 있다. 언론은 시청자의 주의를 끌기 위하여 위험을 실제보다 더 과장되게 보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상 위험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를 바로잡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인간이 대상 위험을 인식하는 방식이 감정에 좌우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사실을 항시 유념하면서, 다양한 의견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고, 대상 위험에서 한걸음 물러나 시간을 두고 냉정하게 생각하며, 대상 위험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가급적 많이 수집하고, 중립적인 입장의 출처로부터 의견과 사실을 수집하려고 노력하고, 대상 위험의 실체에 대해 질문하는 습관을 기르면, 약간이나마 순간의 감정에 휩싸여 그릇되게 판단하는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정부가 대상위험에 대해 국민을 설득할 때에도, 사람들이 감정에 사로잡힌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대상 위험에 대해 객관적으로 정확한 사실을 제공함과 더불어,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두려운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책은 저자의 저널리스트로서의 과거 경험과 심리학 연구들을 많이 인용하면서, 비교적 평이하게 나열하는 방식으로 서술한다. 문제를 지적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서, 저자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고백한다.

2020. 3. 28. 12:51

Gerd Gigerenzer. 2014. Risk Savvy: how to make good decisions. Penguin Books. 261 pages.

저자는 심리학자이며 독일의 막스플랭크의 연구소장이다. 인간은 리스크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떻게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판단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연구해 왔다. 이 책은 그의 연구 결과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완벽히 확실한 해결책을 찾는 것은 일을 그르친다. 그보다는 상식과 직관적인 이해에 바탕을 둔 대략의 어림짐작(rule of thumb)을 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 결정이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문제가 복잡하여 선택지가 많을 수록, 그에 대한 데이터가 많지 않을수록 대략의 어림짐작 방법이 최적화 방법보다 좋다. 반면 비교적 확실한 상황이며, 선택지의 수가 작고, 그에 대해 축적된 데이터가 많을 수록 복잡한 모델을 세워서 최적의 선택을 내리는 방법이 효과를 발휘한다.

리스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선택지들과 각각의 선택지가 발생할 확률이 알려진 리스크(known risk)가 하나로 이는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나 카지노의 슬롯머신이 대표적 예이다. 가능한 선택지를 모르며, 각각의 선택지가 발생할 확률을 알지 못하는 리스크(unknown risk)가 다른 하나이다. 현실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사건은 대체로 후자에 속한다. 주가가 추락할 확률, 지진이 날 확률, 사고가 날 확률, 사업이 망할 확률, 전염병이 창궐할 확률 등이다. 탈레브의 책에서 'trukey risk' 라는 용어를 빌려온다. 주인이 그가 키우는 칠면조에게 먹이를 주는 날이 늘수록 칠면조가 인식하기에 다음 날에도 그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 다음날에 그가 잡아 먹히는 사건이 일어날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즉 단 한번 밖에 일어나지 않는 사건의 리스크를 합리적으로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단 한번 일어날 사건의 확률을 알려진 확률로 오인하여 판단을 그르친다. 물론 개별 사건의 확률은 알지 못하나 개별 사건이 속한 집단의 확율은 파악하는 경우는 많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용인하면서, 일단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고, 그것으로 부터 배워 문제가 발생할 위험을 줄이도록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다음번에 문제를 덜 발생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반면 문제가 발생할 때 문제의 원인을 찾아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문제 발생자의 책임을 추궁하는데 치중한다면, 다음번에 문제의 발생 위험을 줄일 수없다. 여러 상황 조건이 맞아 떨어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므로, 문제 발생자의 행위는 여러 요인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많은 경우 배경조건이 문제를 발생시킨 진정한 원인이며, 문제 발생자의 행위는 문제의 사건과 거짓 관계 spurious relationship를 맺고 있으므로, 문제 발생자를 문책하는 것이 다음번에 문제 발생의 위험을 낮추지 못한다. 

전자의 사례로 비행기의 사고를 줄이는 노력을, 후자의 사례로 의료 사고를 든다. 비행기 사고의 경우 철저하게 원인을 검토하고 결과를 공유하며 문제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개선한 결과 사고의 위험이 놀랄만큼 줄어들었다. 반면 의료 사고는 감추는데 급급하여 사고를 발생시키는 조건을 개선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의료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이는 방어적 과잉 치료 관행을 부추기며, 가장 최선의 치료 방법이 아니라 의사에게 책임을 추궁을 피할 수 있도록 하는 차선의, 혹은 환자에게 해롭기까지 한 치료 방법이 선택된다.

인간은 진화의 과정에서 위험 요인을 두려워하고 피하도록 조건지워졌다. 이는 현대과학문명에서 실제 매우 작은 위험 상황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피하는 비효율적 의사결정을 낳았다. 그 결과 비행기 사고나 테러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경악하여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 미디어는 이러한 사람들의 과도한 경계 성향을 부채질함으로서 돈을 번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이 불확실한 리스크를 통제할 수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주식 투자가 그것으로, 특정 주식의 오르내림은 예측이 불가능한 리스크이다. 가장 합리적 투자는 n 분의 1 씩 나누어서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다. 주식시장은 불확실하고, 선택지가 많고, 과거 데이터가 충분치 않은 대표적 사례이므로 가급적 단순한 접근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복잡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상황에 경험이 많은 전문가의 직관(gut feeling)에 의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의사결정법이다. 전문가의 직관은 수치화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을 무의식 속에서 복합적으로 반영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장래의 배우자를 고를 때나 구매를 할 때, 모든 선택지를 다 탐구해본다음 최고의 것을 선택하는 방식, 즉 최적화 방법(maximize)은 비효율적이다. 그보다는 머리속에서 대략의 수준을 정해두고 그에 근접한 사례가 나타나면 더이상의 검색을 중단하고 선택을 내리는 것, 즉 웬만큼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것(good enough)이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다.

저자는 의료계 위험에 전문가로 이 주제에 많은 논의를 할애한다. 의료 테스트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 그 질병에 걸렸을 확율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예컨대 유방암 검사가 양성으로 나왔을 때 실제 유방암에 걸렸을 확율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베이즈의 조건부 확율을 이해하는 의료인은 많지 않다.

의사는 자기 방어(self-defence), 의료 통계수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innumeracy), 환자의 이익보다는 의사 본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conflicts of interest), 이 세가지 원인 때문에 과잉진료를 하며, 환자에게 테스트 결과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정기 검진보다는 실제 증상이 있을 때 진료를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유방암 검사와 전립선암 검사를 예를 들자면, 테스트를 하면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양성 반응의 사례에서 활성 암인 경우는 매우 적다. 많은 사람은 비활성 암을 가지고 살다가 죽는다. 그러나 테스트를 하여 양성으로 나타나면 수술 등 적극적인 치료에 들어가는 데, 이는 필요치 않은 과잉 치료에 속하며 해롭기까지 하다. 증상이 없는데 테스트 결과 양성이어서 항암치료나 수술을 받은 사람이나, 혹은 테스트를 받지 않고 비활성 암을 가지고 살다 죽은 사람이나 죽는 연령은 거의 비슷하다. 테스트를 하여 양성이 나온 환자를 수술하여 5년동안의 생존율이 높다는 사실을 들어 정기적 테스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사실의 일부만을 호도하는 것이다. 의료계는 테스트 및 후속의 적극적 치료를 통해 돈을 벌기 때문에 정기적 검진을 강조하는데, 이는 conflicts of interest에 속한다.

정기적 테스트를 하여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암을 예방하는 방법이 아니다. 증상이 없다면, 암을 조기에 발견하거나 혹은 조기에 발견하지 않거나간에 암으로 죽는 연령은 거의 흡사하기 때문이다. 암은 해로운 행위 요인 때문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흡연, 음주, 비만, 운동안함, 패스트 푸드와 설탕물 탄산음료, 육류지방과 소금의 과도한 섭취, 등의 요인을 개선하는 것이 암을 예방하는 진정한 방법이지 정기적 검사는 암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위험에 지혜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 부터 위험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건강 위험, 금융 위험, 디지털 위험에 대해 어렸을 때 정확한 지식을 교육받고 바른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육을 통해 통계적 사고 방식을 습득하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 대략의 어림짐작을 하는 방법을 훈련하고, 작은 위험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패닉하지 않도록 심리적 훈련을 하는 것이 지혜롭게 위험에 대응하는 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문적인 연구 결과를 일반인을 위해 풀어서 쓴 것이므로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이 많고 깊이가 있다. 확율을 계산하는 부분에서는 서술을 따라가기 어려운 곳도 있다. 지적인 면에서나 실용적인 면에서나 좋은 책이다.

2020. 2. 25. 12:46

Nassim Nicholas Taleb. 2018. Skin in the Game: Hidden asymmetries in daily life. Random House. 236 pages.

저자는 유가증권 딜러의 경험을 바탕으로 위험의 속성을 세상사에 적용하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일에 간여하는 사람이 그 일의 결과, 즉 성패의 위험을 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자신의 일의 결과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때 사람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며, 자신의 역량을 최고도로 발휘하며, 사회 정의가 바로 서게 된다. 반면 일의 결과를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 일의 결과가 만들어내는 이익은 자신이 챙기지만 손해는 다른 사람이 지게 하는 그런 구조는 현실을 외곡하고 결국 망하게 되는 길이다.

금융가, 학자, 저널리스트, 분석가, 정책 입안자들은 말로만 일을 할뿐 그 일이 초래하는 실제의 위험을 지지 않거나, 이익만을 선택적으로 챙기고 손실은 남에게 떠넘기기 때문에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지식인은 현상을 복잡하게 설명함으로서 먹고사는 무리이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맞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동료 지식인들에게 받아들여지는가가 중요한데, 지식인들은 복잡하게 보여야만 마치 중요한 것을 하는 듯이 보여서 먹고살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외곡하는 일에 공모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헬스장에서 근육의 힘을 키운다는 목적으로 복잡한 기구를 잔뜩 들여 놓지만 막상 바벨은 없다. 가장 단순한 바벨이 근육의 힘을 키우는 데 가장 효과적이다. 헬스장에 있는 복잡한 기구는 특정 결함이 있는 사람에게 특정 부위를 재활시키는 목적의 것이다.

그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근육의 힘을 단련시키는데 바벨이 가장 효율적이라는 지적은 맞지만, 복잡한 기구는 근육의 힘을 단련시키는 목적만은 아니다. 단순한 반복과 권태를 싫어하는 인간의 속성에 대응한 수단이다.  전문가가 복잡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것도 이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속성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은 '냉혹한 사실'(brute fact)을 원하지 않는다. 설사 복잡한 설명이 맞지 않더라도 냉혹한 사실의 냉혹함을 감추어주는 이야기꾼의 복잡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과 실패의 쓴맛을 잊고 위무받는다. randomness 의 냉혹함을 똑바로 바라보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왜 나에게 이런일이?'(why me?)라는 질문은 정확한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위무를 원하는 것이다. 전문가와 종교인이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부응해 위무를 제공한다.

지식인보다는 상인, 사업가, 장인이 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있다. 상인, 사업가, 장인은 일의 실패 위험을 본인이 지며 실제 가치있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반면, 지식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위험을 지지 않으며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에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말이나 생각보다는 행위와 결과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실제 무엇을 하는지, 세상이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 것은 현실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혹은 전문가가 어떻게 진단하는지가 아니라, 세상이 작동한 결과에 주목해야만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있다. 시간의 시험을 통과하여 살아남은 것만이 합리적인 것이다. 합리적이지 못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 탈락하기 때문이다. 생존의 시험만이 일의 타당성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다. 세월의 시험을 통과한 할머니의 지혜가 사회과학자의 분석 결과보다 더 값지다.

평균으로 계산한 위험의 확률은, 드물지만 한번 닥치면 큰 피해를 주는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일상의 위험 중 후자의 것이 많은데,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직관적으로 알기에 피한다. 이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의 성향으로 나타나는 데, 이러한 인식의 편향성(bias)은 생존을 위하여 꼭 필요하다. 진화의 결과 이런 성향을 가진 생물만 살아남았다.

저자는 간접 경험의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데, 인간의 지식의 발전은 사람들의 직접경험이 간접경험으로 축적되어서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과학이나 기술의 세계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위대한 발견과 지식의 가치를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스 시대보다 오늘날 사회에 대한 이해가 더 높으며, 덜 폭력적이며, 비참이 덜 하고, 더 잘살게 되지 않았는가? 물론 말로 먹고 사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지적처럼 필요없이 현상을 복잡하게 외곡하며,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비겁자라는 지적은 맞다. 그러나 지식 행위 전반을 부정하는 저자의 반지성주의에는 동의할 수없다.

이 책은 잠언집의 성격이다. 권력자와 전문가 집단의 권위와 위선에 대해 도전하며, 냉소적인 에피소드와 경구적인 발언으로 채워져 있다. 그가 쓴 기존의 책의 메시지를 반복한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가치있지만, 책 전체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별 상상력없이 반복한다. 그는 겸손하고 독자에게 친절하게 다가가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독자가 이해하지 못할 라틴어와 수사를 계속 나열하는 것은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는 저자 자신이 권위를 탐하는 행위이다. 그가 조금더 친절하고 겸손했다면, 사람들이 그의 지혜에 눈을 떠서 덜 어리석게 살아갈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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