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 main image
분류 전체보기 (429)
복숭아나무 (18)
미국 사정 (22)
세계의 창 (25)
잡동사니 (26)
과일나무 (285)
Visitors up to today!
Today hit, Yesterday hit
daisy rss
tistory 티스토리 가입하기!
'유럽'에 해당되는 글 4건
2025. 4. 13. 16:27

Tony Judt. 2005.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 Vintage Books. 831 pages.

저자는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이차대전 종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럽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서술한다. 크게 네개의 시기로 구분하여 각 시기의 핵심 이슈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1945~53 기간은 전쟁후에 혼란을 딛고 새로운 질서를 되찾는 시기이며, 1953~71 기간은 서유럽은 경제적 번영, 동유럽은 정체의 시기이며, 1971~1989 기간은 서유럽은 경제적 후퇴로 어려움을 겪고 동유럽에서는 공산주의 정권의 균열이 확대되는 시기이며, 1989~2005 기간은 공산권의 몰락 이후 유럽 통합 심화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의 시기로 서술한다. 국내 및 국제 정치 이슈를 중심으로 서술하며,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은 피상적으로 훓는다.

유럽은 20세기어 두차례에 걸쳐 대륙 전체가 참여한 전면전을 치루며 1945년 전쟁이 끝났을 때, 물질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완전히 피폐하고 탈진하였다. 미국을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소련을 축으로 하는 공산주의 경제/권위주의 정치체제는 근본적으로 사이좋게 공존하기 어렵다. 2차대전 동안 히틀러의 파시즘 정권의 위협에 대항해 임시로 손을 잡았지만, 전쟁이 끝났을 때 소련은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유럽의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소련에 인접한 동유럽 국가들을 자신의 세력권 하에 두는 조치를 신속히 전개했다. 이러한 소련의 행동에 미국은 경악하였으며,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가 서유럽은 물론 세계 다른 지역에 확장되지 않도록 하는 반공 억제전략 containment policy 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은 전후 유럽의 경제적 피폐와 소련의 위협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마샬플랜과 베를린 봉쇄에 공수로 맞서는 정책이 그것이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부의 강대국에 의해 유럽 대륙은 둘로 갈라져 냉전체제에 수동적으로 편입되었다.

서유럽은 전쟁으로 탈진한 상황에서, 그들이 전세계에 소유한 식민지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을 제압할 힘이 없었다. 전후 서유럽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나라들은, 미국과 소련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줄서지 않는 '제삼세계' 세력을 형성하였다. 유럽은 지금까지 세계사에서 누리던 세계의 제국 중심의 지위를 상실하였으며,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질서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서유럽은 미국의 방위 우산 하에서 경제발전에 매진하였으며, 다시는 본격적인 전면전을 벌이지 못하리라는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전쟁 동안 히틀러가 유럽 대륙의 거의 대부분을 점령하였으므로, 히틀러가 패하였을 때, 유럽의 각 나라는 자국에서 히틀러의 지배에 협력한 사람들과 침략자 독일을 응징한다는 명분 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벌하고 자신의 영토로부터 몰아내는 작업을 하였다. 그결과 전후 유럽 대륙은, 전쟁 이전에 각 지역에 살던 소수 민족은 사라지고 각 국가마다 하나의 다수 민족으로 재편되는 새로운 형태로 변화했다.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중화학공업 중심의 계획경제발전 전략을 취한 소련의 경제적 성취가 대단하게 보였다. 진보적인 지식인과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할 대안으로서 공산주의에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1958년 헝가리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민중의 민주화 요구에 대해, 소련이 탱크를 앞세워 일방적으로 진압하는 것을 보고, 서유럽 사람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났다. 동유럽 사람들은 이후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암울함과 정체가 경제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서유럽이 1950~60년대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룰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요인 때문이다. 전쟁으로 많은 인명과 건물이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생산 시설의 피해는 실질적으로 크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 직후의 혼란이 진정되었을 때 생산력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두번째 요인은, 전후 물질적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한 상황에서, 온국민이 경제적 풍요라는 유일한 희망에 매달려 전력으로 매진할 수 있었다. 서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종전후 5년 이내에 전쟁 이전의 생산력을 회복하였으며, 이후 매년 5~6%의 성장을 거듭하면서 60년대 후반에는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풍요에 도달했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기존의 정치체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완전히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정치인과 엘리트들은 새로운 정책으로 국민의 마음을 추스리려고 하였는데, 그것은 복지국가 체제이다. 국민 모두의 기본적 삶을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국가 체제는, 20세기 초반 유럽에서 관련 정책이 도입된 이후, 전후에 내실을 다져 1960년대말이 되면 완비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전후에 독일이 빠르게 경제부흥하는 것을 지켜본 프랑스는, 독일이 과거와 같은 전쟁을 다시는 주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유럽이라는 공동체 속에 독일을 옭아매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프랑스가 1950년대 초에 주도하여 독일과 프랑스가 참여하는 석탄철강 공동체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하여, 1989년 동서독이 통합되었을 때, 유럽 통합을 더욱 강화하는 경제통합을 추진하였다. 역내 관세를 철폐하고, 통화를 통합하고, 국경 통제를 없애는 등 통합의 심도를 깊이하는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었다. 그러나 각 나라의 고유한 정체성이 유럽이라는 큰 단위로 흡수되지 않았으므로, 2000년대에 들어 정치통합을 추진하는 정책은 중단되었다. 또한 유럽 통합 내에서 가난한 나라와 부자나라간의 격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내적 긴장이 수시로 표출되는 상태에 있다.

소련 공산주의는 자체의 축적된 모순 때문에 벽에 부닦뜨렸다. 1980년대에 고르바쵸프가 개혁을 추진했을 때, 예상치 못한 동유럽에서의 반발에 직면해 통제력을 상실하면서, 급속히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고 소련 제국이 해체되었다. 소련의 지배에서 풀려난 동유럽은, 소련의 미래 위협을 우려해 서유럽의 품으로 신속히 들어가는 선택을 하였다. 러시아는 이러한 소련 제국의 해체에 굴욕감과 배반감을 품게 되었으며,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 경제가 피폐해지고 사회가 혼란한 틈을 타서, 권위주의 체제의 복원을 추구하는 푸틴이 국민의 호응을 얻고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 책은 20세기 후반 유럽을 깊이있게 이해하는 필독서이다. 다만 유럽을 구성하는 나라들이 많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아우르는 서술을 성실히 따라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 전체의 변화를 서술한다고는 하지만, 각국의 국내 정치 사정을 세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고유명사나 사건들이 정말 많이 등장해서 읽으면서 두뇌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800쪽이 넘는 분량에 글씨는 또 얼마나 작은지 조금만 읽으면 눈이 침침하고 저려왔다. 맨 후반 일부는 결국 건너 뛰며 읽었다. 고생 고생 하며 이 책을 읽고 나서, 여하간 그간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유럽과 그 사람들을 깊이 알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2000년 무렵에서 서술이 끝난 것이 아쉽다. 대단한 책이다.

'복숭아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이비붐 세대 이후의 변화  (0) 2025.04.21
동물과 인간의 주관적 세계  (0) 2025.04.14
생명이란 무엇인가  (0) 2025.04.10
협상의 기술  (0) 2025.04.01
서구 문명은 왜 앞서게 되었나  (0) 2025.03.24
2025. 3. 10. 16:20

Timothy Garton Ash. 2023. Homelands: A Personal History of Europe. Yale University Press. 348 pages.

저자는 20세기 유럽을 전공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유럽이 1945년 이차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에 EU의 출현, 1989년의 베를린 장벽 붕괴,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등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거쳐온 과정과 역사적 의의를 개인적 경험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엮어서 서술한다.

사람들이 성장기에 겪었던 중요한 경험들이 이후 평생동안 그들의 생각과 의사결정을 좌우하면서 역사는 전개된다. 1914년 1차대전을 겪은 세대, 1939년 이차대전을 겪은 세대,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를 경험한 세대가 그들의 경험을 전후의 유럽 역사 전개에 투영하였다.

유럽은 국가들 사이에 언어와 문화의 다양성이 크지만, 로마제국에 뿌리를 둔 통일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정체성이 나폴레옹, 히틀러, EU, 등의 사람들의 희망과 정치체에 투영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였기 때문에, 완전한 통일체를 구현하려는 역사적 시도는 번번히 내부의 저항으로 좌절되었다. Brexit 도 그러한 역사적 경험의 연장선에 있다.

유럽은 1945년 이차대전 종전 이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는 70여년 동안 주요국들 사이에 본격적인 전쟁 없는 평화로운 시기를 경험하였는데, 이는 유럽의 역사에서 매우 예외적인 시기이다. 물론 1990년대에 유고슬라비아가 분열하면서 코소보 전쟁으로 큰 상흔을 남기기는 하였지만, 이는 유럽의 주변부에서 일어난 일로 유럽인 다수에게 큰 기억을 남긴 전쟁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르다. 러시아라는 핵을 가진 강대국이 이웃 나라를 침략한 국가들 사이의 본격적인 전쟁이다. 국가들 사이에 관계가 힘에 우위에 따라 좌우되는, 제1차대전 이전까지 유럽을 지배한 국제질서가 다시 되돌아온 것이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이어 공산권의 몰락은 여러가지 원인이 동시에 겹쳐서 일어난 결과이다. 1970년대까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진영보다 더 잘나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1980년대들어 공산주의 경제와 권위주의 정치 체제의 모순이 누적되어 균열이 커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초반 폴란드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된 것이 중요한 계기이며, 이는 결국 1980년대 후반 자유주의 노조의 민주주의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주변국들에 연쇄 반응을 촉발시켰다. 한편 서독은 동독을 상대로 1960년대 이래 정치적 경제적으로 포용정책을 펴왔는데, 1989년에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에게 그 나라의 국경을 통한 동독인의 서독으로의 탈출을 막지 않도록 협력하는 댓가로 경제지원을 하는 것이 결정적으로 동독인의 대규모 탈출을 촉발하였으며, 이것이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 되었다. 러시아에서 고르바초프가 들어서면서 권위주의적 지배를 완화하고 서방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의 물꼬를 튼 것이, 예상치 못하게 동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의 장악으로부터 벗어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유럽은 1991년 소련이 붕괴했을 때의 미래에 대한 낙관을 뒤로 하고, 2000년대 중반이래 쇠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세계화의 결과, 중국 인도 등 제삼세계 국가들이 약진하고, 유럽인들 사이에 불평등이 커지고, 유럽 주위 국가의 사람들이 대거 유럽으로 몰려들고, 경제 성장이 정체하고, 인구 노령화로 복지국가의 기능이 약화되고, 유럽의 중하층의 불만이 높아졌다. EU 안에서도 부자 나라와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유로 위기를 몰고왔다. 급기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의 중심국가에서까지 극우 민족주의와 권위주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고 유럽 통합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후 유럽이 추구했던 이상인 리버럴리즘은 각국에서 도전 받고 있다.

저자는 유럽의 미래를 어둡게 본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미국의 방위 보호에서 독립해 홀로 서야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확장 위협에 대해 유럽 국가들이 단결하여 대응해야 하나, 현재의 모습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제삼세계의 정치 경제 비중이 커지면서 세계에서 유럽의 상대적 영향력은 약화 일로이다. 유럽은 화려한 서구문명의 정통 계승자로서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을 옹호하는 리버럴리즘 liberalism 의 보루이기를 지향하나, 유럽 내에서도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실 자유와 개방과 포용을 주창하는 자유주의 이념은 국내에서는 물론 국외 이웃에서 소외와 비참이 지속되는 상황과 함께 할 수는 없다.  인구 노령화로 인한 노동인구의 감소를 보충하기 위해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민자를 받지 않을 수 없는데, 새로이 유입된 사람들과 기존 국민 사이의 격차를 계속 유지하고 차별하는 것은 리버럴리즘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기존 국민과 동등하게 되도록 하는 것은, 서구의 근대사를 지배해온 또 다른 이념인 민족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기술 발전으로 세계화가 더욱 진척되고, 서구 사회의 인구 노령화가 계속되고, 부자와 빈자사이에 생활과 정보의 거리가 좁혀지면서 이러한 딜레마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유럽이 처한 어려움과 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유럽은 평화와 번영을 뒤로하고 새로운 역사적 시기로 접어들었다고 진단한다.

이 책은 1945년 이래 시기를 직접 살아온 당사자로서 자신의 개인사와 경험을 역사적 사실과 조합하여 서술하는 이야기 전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주요 역사 사건에 참여한 본인 및 주변인들의 경험과 인터뷰를 역사 사실에 투영하여 서술함으로서 현장감을 높인다. 역사학자이면서 저널리스트로의 경험이 풍부하게 담긴 이야기 전개가 돋보인다.

'복숭아나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구 문명은 왜 앞서게 되었나  (0) 2025.03.24
바다에 관한 모든 것  (0) 2025.03.10
의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0) 2025.02.28
감정의 힘  (0) 2025.02.20
부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0) 2025.02.17
2021. 8. 29. 17:46

Charles Tilly. 1990. Coercion, Capital, and European States. Blackwell. 227 pages.

저자는 역사사회학자이며, 이 책은 서기 990년 부터 1990년까지 유럽의 역사를 훑으면서 유럽의 국가들이 탄생된 과정을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한다. 유럽의 국가(state)들은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였다.

"전쟁은 왜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전쟁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wars work) 라고 답한다. 전쟁을 통해 다른 나라의 것을 빼앗아 이익을 취하고, 다른 나라의 위협을 격퇴하고, 다른 나라를 지배하에 두고 착취할 수있다. 한 나라가 어떤 이유로건 약해지거나 변화가 있으면, 이웃 나라가 침략하였으며, 국가간의 제휴관계를 통해 집단적으로 전쟁에 간여하였다. 로마 제국의 붕괴 이래 유럽은 많은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었다. 전쟁을 치르지 않은 해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나라가 없을 정도로, 전쟁은 유럽 국가들 사이에 일상적인 것이었다.

전쟁을 하려면 자원이 필요하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인력, 물자, 무기, 기술, 조직을 어떻게 마련하는가 하는 문제는 유럽의 왕들의 가장 주요한 일상 관심사였다. 왕은 전쟁 자원의 조달을 둘러싸고 영토 내에 자원을 가진 세력과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었다. 국가 형성의 길은 지역의 상황에 따라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진다.

영토내에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가 있는 네덜란드나 베니스 등에서는, 대규모 자본을 소유한 도시의 상공인 세력이 왕과의 협상을 주도한다. 왕에게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상공인 세력은 왕과 국가의 권력을 나누어 갖는다. 도시의 상공인 세력은 왕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이 국가들의 전쟁은 상공인 세력의 대외적 이익을 보호하고 확장하는 목적에 기여한다. 상업이 발달한 지역에서는 국가가 전쟁 자원을 조달하는데 별도의 큰 인력과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조직은 대외적인 힘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다. 이 국가에서는 상공인으로부터 조달한 돈으로 해외로부터 용병을 고용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다. 이는 17세기에 조그만 나라였던 네덜란드가 어떻게 세계적인 상업망을 구축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국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대지주가 지역을 전적으로 지배하는 폴란드,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에서,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는 왕의 통제로부터 독립된 존재였다. 왕은 명목적인 통치자일 뿐, 지역의 농민에 대한 실질적 지배는 대지주 권력자가 행사하였다. 왕은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인력을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로부터 얻어 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강압(coercion)을 행사했다. 왕의 강압은 지나치게 착취된 농민의 반발을 등에 업은 대지주의 반란을 종종 불러일으켰다. 왕의 권력은 언제라도 대지주 권력자들에 의해 찬탈될 위협에 놓여 있어 불안정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많은 전쟁 자원을 빠른 시일내에 조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이 나라들은 보다 효과적으로 전쟁 자원조달을 하는 국가에 비해 국제 경쟁에서 열세에 처하게 되었다.

영토 내에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가 있고, 또한 농업에 종사하는 광범위한 지역과, 지역의 농민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대지주 권력자가 있는 영국, 프랑스, 독일의 경우, 왕은 한편으로 도시의 대자본가 상공인 집단과 타협을 통해 전쟁 자원을 조달하며, 다른 한편으로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에 대한 강압을 통해 그들을 제어하였다. 이 나라들에서는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권력이 지역의 대지주 권력자를 건너뛰어 농민들에게 직접 미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왕의 권력이 농민들에게 까지 확장되는 과정에서 국가의 조직이 커졌다.

18세기 말 프랑스에서는, 왕의 전쟁 자원조달 노력이 도시의 자본가나 지역의 농민들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섰을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프랑스 혁명은 농민과 노동자들의 착취에 대한 반발을 등에 업고 전문직 집단이 주도하여 왕의 지나친 전쟁자원 조달에 반기를 든 것이다. 혁명의 주도세력과 나폴레온 정부는 중간 매개자를 거치지 않고 노동자와 농민으로부터 직접적으로 국가의 전쟁 자원을 조달하는 길을 택했다. 주위 유럽 국가의 공격에 맞서 프랑스의 농민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에서 국가에 세금을 납부했으며 전쟁에 병사로서 참가했다. 혁명 주도세력은 지역 권력자들의 반발을 꺽고 국민을 직접 통치하는 국가 조직을 만들어냈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하여, 국가가 국민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국민이 국가의 통치에 직접 간여하는 '국민국가'(national state) 가 탄생한 것이다. 국민국가는, 도시의 대자본가 상공인과의 타협을 통해 전쟁자원을 조달하는 방식이나, 지역의 대지주 실력자에 대한 강압을 통해 전쟁자원을 조달하는 모델보다, 훨씬 효과적이며 신속하게 전쟁에 소요되는 대규모의 인력과 자원을 조달할 수 있었으므로, 국제 전쟁에서 다른 모델의 국가를 모두 패퇴시켰다. 나폴레온의 유럽 정복을 거치면서 국민국가 모델은 전 유럽 국가들에 전파되었으며, 국제경쟁 속에서 이 모델만이 유일한 국가의 전형으로 살아 남았다.

영국은 프랑스와 달리 유혈 혁명을 거치지 않고 국민국가 모델로 이전하였다. 대의제를 통해 대자본가와 상업화된 대지주에게 국가의 권력을 점진적으로 이양하면서, 그들의 동의를 거쳐 전쟁 자원을 효과적으로 조달하였다. 영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상공업이 발달하였으므로, 네덜란드와 비슷하게 대자본가와의 타협을 통해 대규모의 전쟁자원을 효과적으로 조달하였다. 프랑스가 영국에 패한 주원인은 영국이 프랑스보다 전쟁자원을 훨씬 효과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자신의 국민으로부터 전쟁자원을 조달하려면, 국민의 다양한 요구에 응해야 한다.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입헌 민주주의가 확대되었으며, 국가의 전쟁에 필요한 군사와 재정의 기능 이외에, 치안, 복지, 교육, 노동, 경제 개발, 교통, 주택 등 다양한 기능이 국민의 요구에 응해 더해졌다. 급기야 20세기에 들어 국가의 주요 기능이 복지를 제공하는 데 맞추어진 복지국가가 출현하였다.

국가의 핵심 기능은 국제 경쟁 체제에서 전쟁 수행에 있으며,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형성되고 국가의 기능이 변화하여 왔다는 저자의 분석은 명쾌하다. 유럽의 지난 천년간의 역사를 꿰뚫으면서 설명을 하기에 논의가 복잡하다. 정말 대단한 연구 성과이다. 

 

 

 

 

 

2020. 8. 23. 18:17

Walter Scheidel. 2019. Escape from Rome: The Failure of Empire and the Road to Prosperi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527 pages.

저자는 하버드 대학의 역사학자로 역사학계의 핵심 화두인, "서구는 왜 중국보다 앞서게 되었는가"에 대해 인과론적인 답을 제시한다. 서구가 중국을 앞서게 된 사실의 원인을 사후적으로 발견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사후적 설명의 함정을 벗어나기 위해 사회과학적 비교 연구 방법을 차용한다. 서구가 중국과 다른 길을 가는데 어떤 요인이 핵심이었는지 찾기 위해, 만일 특정 요인의 값이 실재와 달랐다면, 다시 말하면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일이 다르게 전개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생각해본다. 한편으로 추론의 방법을 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특정 요인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례를 비교함으로서 그 요인의 인과적 중요성을 평가한다. 기본적으로는 유럽과 중국을 비교하는 것이 핵심이지만, 비교의 목적으로 중동과 남아시아의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서구에서는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 다른 제국이 다시는 들어서지 못한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연이어 지배하였는데, 바로 이 점이 서구와 중국의 역사를 다르게 만든 핵심 요인이다. 강력한 중앙 권력이 지배하는 제국은 기본적으로 변화보다 안정과 질서를 추구한다. 제국에서는 기존 체제와 기득이권에 도전하는 파괴적 발전(creative destruction)이 전개되기 어렵다. 로마가 멸망한 이후 서유럽은 여러 국가로 쪼개지고, 각 국가 내에서도 다양한 정치세력이 공존하는 다원적 체제가 들어섰다. 이러한 다원적 체제에서는 국가와 세력들이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는 가운데, 실력과 효율을 중시하고, 서로를 모방하고 개량하는 발전의 동력이 계속 작동하였다. 

로마 제국이 서기 450년 경에 멸망한 후 동로마에는 비잔틴 제국이 들어선 반면, 서로마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주권국가로 나누어졌다. 이 나라들은 서로를 견제하고 합종연횡하면서, 한 나라가 전체를 장악하는 제국이 다시 만들어지지 못하는 구도를 형성하였다. 중세 봉건 시대에는 각 나라 내에서 왕과 영주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졌으며, 교회와 세속 정치가 서로 견제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중세 후반에 들어 도시가 세력을 키웠고, 왕과 귀족에 대항해 상공인들이 세력을 키웠다. 서유럽은 왕, 귀족, 성직자, 상공인 사이에 권력이 분점되고,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이 나누어지고,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와 구교가 나누어지는 등, 다원적 경쟁체제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국가와 국가간, 세력과 세력간 전쟁과 갈등이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이러한 경쟁은 발전을 만들어 낸 동력이 되었다. 여러 국가들이 서로 경쟁했기 때문에, 한 국가에서 반대 세력은 다른 국가로 피신하여 자신의 뜻을 펼 수 있었다. 다른 경쟁 국가로 넘어가는 선택지가 열려있기 때문에 어떤 국가의 지배자도 반대 세력이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다.

유럽과는 대조적으로 중국은 전지역에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제국이 계속 지배했기 때문에, 유럽의 다원주의 체제가  만든 발전의 동력을 갖지 못했다. 지배 세력을 위협할 새로운 세력이나 아이디어는 초기에 싹을 잘라버리는 정치 문화가 자리잡았다. 유교 사상은 왕을 정점으로 하는 위계체계를 정당화하고 사람들을 이에 순응하도록 설득한다. 상공업은 기존의 위계 체계를 넘어서 부와 세력을 만들어낼 위험성을 지니므로 일찍부터 억압하였다. 반면 농업은 사람들이 토지에 붙박여 있고, 혁신적인 발전이 일어날 수 없어서 기존의 지배체제를 위협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농업을 우대하였다. 중국에서도 춘추전국시대에는 서구와 같이 다양한 세력간에 경쟁체제가 조성되었으나, 한나라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 제국이 계속 지배하면서 발전을 질식시켰다.

왜 유럽은 로마의 멸망 이후 여러 작은 나라로 쪼개진 반면, 중국에서는 제국이 이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자연 조건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는다. 두가지 차이를 지적한다. 첫째, 서유럽에서는 산, 강, 바다가 장애물을 많이 만들어서 여러 독립적 정치체제가 들어설 수 있었던 반면, 중국에서는 황허와 양자강 사이에 대평원이 단일 정치체제를 가능케하였다. 둘째,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가에 차이가 있다. 서유럽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으며, 카르파티아나 알프스와 같은 산맥으로 차단되어 있다. 반면 중국은 몽고와 중앙아시아의 대평원에 인접해 있다. 대평원의 기마민족은 유목을 생계로 하면서 때때로 주변의 농경민족을 침탈하여 필요한 것을 조달하였다. 이들은 기동성과 전투력이 뛰어나기에, 이들에 인접한 지역은 이들의 침탈에 방어하기 위해 강력한 국가 권력을 만들어 냈다. 반면 유럽에서는 몽고나 터키족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 민족의 침입이 헝가리에서 멈추었다. 서유럽은 상대적으로 중앙아시아의 기마민족의 침탈로 부터 안전한 환경에 놓여 있었기에, 잘게 쪼개지고 서로 경쟁하는 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저자는 로마가 멸망한 시점을 첫번째 역사 분기점 (First Great Divergence), 16세기 유럽에서 종교개혁, 대탐험, 합리적 세계관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중첩되면서 이후 비약적으로 앞서나가게 된 사건을 두번째 역사 분기점(Second Great Divergence)라고 칭한다. 첫번째 역사 분기점 사건이 발생한 것이 두번째 역사 분기점을 발생하게 된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로마 제국이 유럽 전역에 공통의 문화적 토양을 제공해 줌으로서, 이후 다양한 나라들 사이에 경쟁이 공통의 기초 위에 전개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한 후 또다른 제국이 들어섰다면 중국과 유사한 길을 가게 됬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저자는 책의 맨 마지막 문구에서, 유럽의 여러 국가들 간에 갈등과 경쟁은 끊임없는 전쟁을 낳았고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이것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유럽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권력과 기득 이권은 외부로부터의 경쟁과 위협 없이는 변화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3년전에 역사적으로 불평등의 추이를 분석한 Great Leveler 라는 대단한 화제를 불러일으킨 책을 썼다. 불과 3년만에 또다시 대단한 작품을 썼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이책을 통해 역사는 경쟁과 전쟁을 통해 전개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역사는 농경민이 주축이 되었다고 배웠는데, 저자는 북방 유목민을 중국 역사를 추동시킨 핵심으로 제시한다. 책의 후반 4부에서 지금까지 나온 이론들을 정리하여 서구가 앞서나가게 된 과정을 문화, 제도, 해외 식민지, 지식과 가치관의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한 부분은 여러번 읽을 가치가 있다. 대단한 책이다.  

prev"" #1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