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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에 해당되는 글 2건
2019. 6. 16. 10:42

Kwame Anthony Appiah. 2018. The Lies Than Bind: Rethinking Identity, creed, country, color, class, culture. Liveright publishing co. 219 pages.

저자는 영국 출신의 철학자로 미국의 뉴욕대 교수로 있다. 이 책은 그가 BBC 라디오 강좌를 위해 쓴 원고를 보완한 것이다. 일반 독자를 상대하므로 전문용어나 이론적 논의를 최소화 하면서 정체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가나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의 전통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성장하면서 정체성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의 정체성, 즉 '그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리 간단히 답할 수없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사람들은 정체성을 본질적 특성의 반영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성, 종교, 민족, 인종, 계급, 문화 등 이 모든 정체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사람들을 묶어주는 거짓말' 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정체성에 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잘 못된 것일뿐 아니라 해악적인 요소를 포함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영한다. 

첫번째 장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예로 하여 이것이 본질적(essential) 특성의 반영인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construct) 것인지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소개한다. 사람들은 구분되는 범주에 대해 이름을 붙이며 이 이름은 본질적인 무엇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남성은 여성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을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이 남성 여성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대부분은 '성 역할'이라 지칭하는 사회적 성에 해당한다. 사회적 성 정체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을 지칭하기보다 사회가 만들어 낸 것으로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인종 또한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구분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피부색의 차이를 반영하지만, 그 핵심은 서구의 세계 지배의 산물이다.  흑인을 백인보다 열등한 종으로 인식하고 흑인을 노예로 지배한 역사를 통해 인종은 서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정체성 항목이 되었다.  

종교적 정체성은 인종과 엮여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도라는 정체성은 백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하며 서구 문명의 핵심이다. 민족 구분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여부가 핵심이지만, 서구에서도 19세기에야 비로서 형성된 구분이다. 그 전에는 한 나라에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으며, 언어의 구분 또한 애매하다. 따라서 민족은 매우 자의적인 구분이다. 가족이나 소규모의 부족 혹은 마을을 넘어선 큰 집단, 즉 서로 대면할 일이 없는 큰 집단을 하나의 민족이라는 단일 정체성 집단으로 만든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정치적 과정의 소산이다. 계급은 경제적 자산의 다과에 따라 만들어진 범주인데 과거에는 귀족, 지주, 평민 이라는 신분으로 구분되었으며, 근대로 오면서는 교육 수준, 소득, 직업 으로 구성되는 사회경제적 지위로 대표된다. 사회경제적 지위는 지위 집단간 뚜렷이 구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중시하는 경계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컨대 대학을 졸업했는지, 몸을 쓰지 않는 사무직에 종사하는지, 등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구분된다.  아무리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는 업적주의 사회가 도래한다고 해도 능력이나 업적 자체가 세대간에 세습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특정 계급 집단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교과서적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정체성에 대해 일반적인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게 된다. 대립되는 논쟁을 소개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평이하게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2010. 7. 30. 09:25
  우리 사회에서도 영어 광풍이 일고 있지만, 인도네시아는 상황이 더 심한 것 같다. 모국어보다는 영어를 쓰는 것을 더 자랑스럽게 여기고 심지어는 모국어를 서투르게 하는 것이 영어실력에 대한 과시로 사용되기까지 한다니. 우리나라에서도 거리를 가다가 가끔씩 아이들이 영어로 서로 의사소통하는 광경을 지나치는 데,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영어로 밥을 먹고 살지만,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으로서 실용적인 용도에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어 구사력이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서서 지위의 상징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대체로 국제적인 업무를 하는 직업은 보수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으므로 영어 구사력과 사회적 지위가 함께 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국어를 잘 못하면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을 더 높이 쳐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영어를 잘 못하는 주변 한국인에 대해서는 콧대를 세울 수있는 수단일지 모르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서는 이방인이 자신들을 모방하는 아류 정도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국제화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영어권 국가의 이등 시민 쯤으로 인정되기를 기대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약소국의 시민으로 태어나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거래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어쩔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모국의 언어도 배우면서 강대국의 언어를 동시에 익혀야 하는 힘든 운명을 타고 났다. 미국인은 외국말을 전혀 배우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있는데 말이다. 미국의 지도자가 외국어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으나 한국의 지도자가 외국에 나가 힘들게 영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접할 때 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낀다.

  그러나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말을 잊어버린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며, 장기적으로는 그 나라의 이등 시민으로 편입되는 길이다.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나라에서 주변사람들보다 상위의 지위를 획득하는 길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릴때부터 미국으로 자식을 유학보내고 혹은 외국인 학교에 보내면서 한국말 보다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하도록 하는 전략이 그릇된 방식은 아닌듯하다. 단지 성공 목표가 너무 낮으며 주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하류의 전략이라는 것만 빼놓으면 말이다. 그렇게는 큰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자신만 잘먹고 잘사는 성공한 사람을 양성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으로 넘쳐난다면 살기 힘든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내 자식은 상대적으로 잘먹고 잘산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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