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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정'에 해당되는 글 22건
2012. 3. 30. 13:28

 요즈음 미국에서는 조셉 코니라는 사람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사람은 우간다의 군벌 두목으로 어린 아이들을 유괴해서 총을 쥐어준 뒤 이들을 조정해서 무차별적으로 만행을 저지르는 나쁜 인간이다. 아프리카에는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 사람이 새삼 유명해진 이유는 일군의 미국 젊은이들이 이 사람을 제거하여 아이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비디오를 만든 것이 엄청난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든 29분짜리 비디오가 유튜브에 지난 3월 5일에 올라온 이후 오늘까지 8천 6백만명이 시청을 하였다. 이 비디오에서 그들은 미국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아이와 우간다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대비하면서 미국의 힘으로 코니를 잡아 정의를 바로세우자고 호소한다.


Atlantic_AmericanNationalism.hwp



  이 비디오를 만든 젊은이들은 우연히 우간다를 여행하다가 코니의 만행을 접하고 8년전에 “보이지 않는 어린이”(Invisible Children inc.)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동안 주로 참상을 고발하는 영상물을 만들어 퍼뜨리면서 모금활동을 하고 미국 정부에 동참을 호소하였으나 미국 정부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영상물이 인터넷을 통해 크게 호응을 얻고 주요 언론에서 이 비디오의 경이로운 성과를 보도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침내 정치인을 움직여 중앙아프리카에 100명의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코니의 만행을 중단시키도록 미국 정부가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이번 비디오에서는 다가오는 4월 20일을 D-day로 잡고 미국 젊은이들이 궐기하여 세상을 바꾸자고 호소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한 달도 못되는 사이에 8천만 명이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마침내 정치인조차 이들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이 젊은이들의 활동에 대해 식자층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뉜다. 소위 힙스터라 지칭되는 미국 중상류층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활동이 아프리카의 어린이에게 얼마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회의를 표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자신의 일상사와 관련이 없는 세계 반대쪽에 사는 사람의 고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미국의 숭고한 이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는 양쪽의 주장 모두에 공감한다. 코니가 어린 아이를 유괴해서 총질하게 만드는 것의 원인은 빈곤과 교육 부족에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코니를 잡는다고 해도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어린아이를 착취해서 나쁜 일을 할 것이다. 교육 받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고 질병의 위협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먹을 것을 주면서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나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들 모두에게는 죽음이 바로 곁에 있기에 남을 착취하고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사람이나 남을 죽이는 사람이나 큰 일이 아니다. 기아와 질병이 가져오는 죽음의 위협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을 제대로 교육받도록 하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면 그들도 앞날을 개척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 것이며 남의 생명을 존중할 것이다. 요컨대 서구인이 누리는 문명의 혜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프리카인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지, 군벌 한명을 추적하여 사살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젊은이들의 일시적인 관심에 눌려서 아프리카 한가운데 100명의 군사고문단을 파견했지만 그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 듯하다. 아프리카 중앙지대는 미국의 이해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중동이나 아시아와는 달리 매스컴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인은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 젊은이들의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신의 이해와 무관한 대의를 위해 오래 일하기는 힘들다. 이 단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지금까지 모금된 돈의 대부분을 비디오를 제작하는 데 썼을 뿐 실제 아프리카의 고통 받는 어린이의 복리를 향상시키는 데 쓴 돈은 쥐꼬리 만큼이라고 비판한다. 이 젊은이들이 비디오를 통해 유명해지고 모금으로 거둔 돈을 자신들의 활동비로 쓰면서 끝날 가능성은 다분히 크다. 아프리카인의 비참을 이용하여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자신의 명성을 추구하는 얄팍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기는 이유는, 잘 먹고 편히 사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웃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은 어찌되었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활동에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미국의 중상류층 백인 젊은이들은 아프리카도 좋지만 자신의 나라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흑인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거리 하나만 건너면 비참한 지경에서 살아가는 흑인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 흑인 남성 셋 중 하나는 감옥에 가는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이웃의 병원비를 내 돈으로 내서는 절대 안된다고 외치면서 전국민의료보험을 반대하는 것이 미국인이 아닌가? 미국에서 정의가 바로 선다면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뒤따라서 좋게 바꾸지 않을까? 나는 우리 사회의 나쁜 면이 부분적으로 미국의 나쁜 측면만을 본받아서 그리되지 않았나 의심을 할 때도 있다. 미국은 이러저러하다고 아는체 하는  식자층에게 미국에서 비참한 사람들의 삶을 당신이 아느냐고 묻고 싶다.   

2012. 3. 17. 21:52

  미국의 중류층을 떠받치던 중간 기술의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하면서 미국에는 고급기술의 고임금 일자리와 저임금의 단순 노동만 남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중류층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질문은 두 가지 방향에서 제기된다. 첫째는 현재 중간 기술의 일에 종사하던 사람이 그들의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현재 지향형의 질문이다. 둘째는 앞으로 중간 기술의 일이 점차 줄어들면 미국의 젊은이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미래 지향형의 질문이다.


  현재 지향형의 질문, 즉 이미 실업에 처했거나 혹은 조만간 실업에 처할 중간 기술의 근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자못 심각하다. 일자리의 구조가 고급 기술과 단순 노동으로 양극화 된다면 이들이 갈 길은 분명하다. 기존에 이들이 하던 것보다 상위의 고급 기술을 요하는 일로 이동하거나 혹은 하위의 단순 노동직으로 이동하는 것, 둘 중의 하나이다. 새로이 고급 기술을 익히도록 훈련하여 이들에게 과거보다 더 좋은 일자리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늙은 개에게 새로운 기술을 가르치기는 어렵다는 속담이 있다. 이미 직장에 다닌 사람을 재교육 시키는 직업훈련의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이 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새로운 도전과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어렵다. 예컨대 컴퓨터를 젊은 시절부터 익숙하게 쓰지 않던 사람이라면 나이가 들어 컴퓨터를 익숙하게 다루면서 일을 처리하도록 만들기는 매우 힘들다.

  결국 기술이 앞서 가고 일의 방식이 바뀌면서 과거의 관습에 익숙한 사람 중 대부분은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설사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다고 하여도 떠오르는 젊은 세대에 비하여 생산성이 높지 않다. 왜냐하면 과거의 방식에 익숙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과거의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하는데, 이는 새로운 방식이 정착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에게 새로운 방식을 배우게 하여 구조조정의 와중에서 불완전하나마 적응하여 노동가능 연령 동안 버티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구조조정은 이들에게는 쓰라린 시련이지만 크게 보면 생산 방식의 변화와 함께 치러야 할 대가이다. 낡고 비효율적인 방식이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담당하는 주역들이 대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게나마래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다수는 나이가 들면서 결국 단순 노동직으로 하강할 수밖에 없다. 서비스 일자리는 앞으로도 풍부할 것이므로 이들이 갈 곳은 그곳밖에는 없다. 이는 서비스 일자리의 특성인 불완전한 고용상태와 낮은 소득을 받아들이면서 노동 가능 연령이 끝날 때까지 힘겹게 지내야 함을 의미한다. 사실 어느 쪽이건 이들에게 힘든 선택이기는 매한가지이다. 변화에 적응하기도 힘들며 변화에 도태되면 더 힘든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미래 지향형의 질문, 즉 지금 성장하는 새세대에게 양극화되는 일자리 구조에서 어떻게 살아남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대응하기 어렵다. 일자리 구조가 양극화된다면 이들 역시 둘 중에 하나로 진출해야 할 것이다. 상위의 고급기술 직종은 고등 교육을 받고 높은 기술을 가진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돌아갈 것이므로 다수는 중간 기술의 일자리를 맛 본적도 없이 취업의 첫걸음부터 단순 기술직으로 진입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는 대학만 졸업해도 중간기술의 괜찮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었으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고급 기술 직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만으로는 안된다. 더 고급 기술을 익히기 위해 대학원과 직업 현장에서 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실리콘 밸리의 프로그래머나 월가의 첨단 금융기법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대학교만 졸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은 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높은 기술을 교육시켜서 상위 일자리에 더 많이 포진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실직에 처한 사람이건 미래의 직업을 준비하는 젊은이이건 중간 기술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변화에 대해 가장 좋은 대비책은 교육과 훈련을 강화하여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기술 수준이 높고 컴퓨터가 대치할 수없는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일에 진출시키는 것이 변화되는 노동시장에서 승자가 되는 길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중간층이 감소하는 문제에 관해 언급하는 사람은 한결 같이 교육의 질과 기술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재정 지원과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함을 역설한다.

  문제는 교육의 질과 기술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일자리와 소득 구조의 양극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겠는가 하는 점이다. 왜냐하면 상위의 고급 기술을 요하는 일자리는 소수이며 대부분의 일자리는 하위의 단순 기술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된다고 해도 고급 기술의 일자리는 노동 생산성이 높으므로 많은 고용을 수반하지 않는다. 예컨대 애플의 아이폰 생산이 백만 개에서 천만 개로 확대된다고 해도 이를 위해 필요한 프로그래머, 디자이너, 마케팅, 금융, 기타 관리직의 소요인원은 열배로 증가하지는 않는다. 반면 생산과 중간관리를 담당하는 중간 기술의 일자리는 해외의 생산기지로 이전할 것이므로 다수는 미국에 남겨진 열악한 서비스 일자리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고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따라서 해외로 가는 것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외국에서는 미국만큼의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자리가 없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낮은 임금이라도 감수하면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여하간 미국 중류층의 임금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월등하게 높은 한 중간 기술의 일자리가 계속 외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만은 결국 비경제학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즉 잘나가는 상위의 사람들이 힘들게 일하면서 사는 다수의 사람과 혜택을 나누어 갖는 방향의 정치적인 해결책이 해답이라고 지적한다. 정보화와 세계화는 고급 기술을 가진 소수의 생산성을 크게 높이고 그로 인한 소득을 엄청나게 안겨다 준다. 예컨대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게이츠나 페이스북의 주커버그와 같은 사람은 시장이 전세계적 규모로 확대되었기에 그들의 발명으로 천문학적인 돈을 벌 수 있었다. 잘나가는 소수의 미국인들이 세계 시장에서 거두는 높은 수익이 서비스직에서 단순 노동을 하면서 저임금을 받는 다수의 미국인들에게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단순 노동을 하는 미국인은 유사한 일을 하는 개발도상국 사람과 비교해 볼 때 자신의 생산성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뉴욕의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은 방글라데시의 거리를 청소하는 사람보다 몇 배나 많은 임금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이 담당하는 일은 외국으로 이전할 수 없는 것이므로 생산성에 따른 보수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경쟁력이 높은 고소득 직종의 사람이 저임금에 종사하는 단순 노동자를 도와주는 길은 다양하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여 이들을 도와주는 방법과 간접적으로 이들의 힘을 높여서 더 높은 소득을 얻도록 하는 방법 모두를 구사할 수 있다.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길은 세금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 법으로 규정하는 최저임금을 높이는 것, 법으로 노동조건을 제한하는 것, 등이다. 한편, 노동자들이 조직화하여 협상력을 높이도록 하는 것은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 못지않게 효과가 큰 방법이다.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히 높으며, 개별 사업장에서는 물론 산업 전반과 경제 전체로 노동자의 조직력이 세질 때 소득 분배가 더 평준화된다는 것은 북구의 경험에서 확인되었다.

  제조업과 같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수 있는 분야에서 노동자의 힘은 절대적으로 약하다. 그들의 임금 대비 노동생산성이 같은 일을 하는 개발도상국의 근로자보다 훨씬 낮을 경우 공장의 해외이전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경제적 효율성이 최고의 기준이므로 효율성이 낮은 선택을 하라고 기업에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서비스 산업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일의 특성상 해외로 사업장을 이전하기 어려움으로 같은 성격의 일을 외국에서 더 낮은 비용으로 한다는 이유로 근로자에게 낮은 임금을 강요할 수는 없다. 서비스 근로자의 협상력이 높아진다면 이들은 상당한 수준의 임금을 받아낼 수 있다. 예컨대 쓰레기 수거가 몇일만 중단된다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방법이 없다. 문제는 서비스 산업의 속성상 전통적인 노동조합의 방식으로는 이들을 조직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노동자의 협상력을 키워 임금을 높이는 방법은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정치권이 부유한 층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므로 힘들게 사는 사람의 목소리는 정치에 반영되지 못한다. 가난한 나라에서 새로운 이민자를 계속 받아들임으로서 서비스 일자리가 저임금으로 계속 유지되도록 만들고 있다. 새로운 이민자는 자신의 출신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높은 임금을 받으면서 일하기 때문에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해야 할 필요를 덜 느낀다. 이들은 언어 장벽과 사회문화적 격차 때문에 미국 출생자와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이들을 미국의 저임금 노동자와 연대시키는 것은 힘들다.

  앞으로 기술이 계속 발달하면서 지금까지는 복잡한 것으로 여겨졌던 일이 컴퓨터의 도움으로 단순화하게 되고, 해외로 이전될 일이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결과 중간 기술의 일자리는 점점 더 많이 미국을 떠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까지 고급 기술로 여겨진 일은 중간 기술의 일로 바뀌고, 또 새로운 발명품이 등장하면서 이를 생산하기 위한 중간 기술의 일자리들이 새로이 출현하기도 할 것이다. 예컨대 아이폰이 도입되면서 그전에는 없던 중간 기술의 새로운 일자리들이 다수 출현했듯이 말이다. 새로운 혁신이 가져올 일자리의 변화는 예측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기술 변화의 사이클이 빨라지면서 미국에서 중간 기술의 일자리는 급속히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노동자들이 혁신의 이익을 누리는 기간이 점차 더 짧아진다. 미국이 혁신을 계속 주도한다면 모르지만 만일 혁신의 경쟁에서 뒤처지게 되면 분명 미국의 노동자들은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한편 미국의 중류층 일자리가 계속 감소한다면 정치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날 수도 있다. 중류층 감소 현상은 자본주의 경제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에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므로 경제적인 원칙을 적용하여 해결하기는 어렵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강조하는 미국이 봉착하는 문제는 결국 시장외적인 방식 즉 정치적인 방식으로만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그냥 놔두면 어떻게 될까? 부자와 빈자간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사회갈등이 제도권 정치를 마비시키고 결국 폭동이나 범죄 등으로 불거지면서 살벌한 사회가 될 것이다. 아마도 그 와중에 없는 사람의 정치적 목소리는 커질 것이고 소득 재분배의 요구는 어떤 방식으로건 정치적으로 처리될 것이다. 민주주의 정치 과정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말이다. 

2012. 3. 17. 12:30

   미국에서 중류층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노조가 조직된 제조 산업에서 일하며 중류층 생활을 하던 생산직 근로자들은 외국으로 공장이 이전하면서 일자리를 잃어버렸다. 제조업의 메카였던 중서부 지역은 대량 실업과 인구 감소로 고통을 겪고 있다. 사무직이라고 사정이 그리 좋지는 않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과거에 열 명이 하던 일을 이제 한명이 처리할 수 있고 단순 사무 업무는 외국으로 급속히 빠져나가고 있다. 컴퓨터로 하는 일은 국내에서 하던 혹은 멀리 인도에서 하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싼 임금을 찾아서 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콜센타나 자료 입력 등의 단순한 업무만 이전했다면, 근래에는 프로그래밍, 회계, 재고 관리, 인사, 고객 관리, 법률 서비스, 등 거의 모든 사무직 업무들이 해외로 이전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일자리가 해외로 이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개발도상국 대졸자의 임금은 미국인의 임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미국 대졸자의 생산성이 개발도상국 사람들보다 크게 높지 않으므로 기업의 입장에서는 해외로 이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영어에 문제만 없다면 개발도상국의 대졸자가 미국의 대졸자보다 생산성이 높은 경우도 많다.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기업의 목적은 국내에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이므로 해외로 일자리를 이전하는 행위를 탓할 수 없다. 세계 전역에서 생산과 소비를 하는 다국적기업의 경우 비경제적인 이유로 어느 특정국에 일자리를 몰아주는 것은 기업의 고객이나 주주의 기대에 어긋나는 비윤리적 행위이다.

  어찌보면 미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나라 사람보다 생산성이 낮은데 훨씬 더 많은 보수를 받아온 것이 문제이다. 과거에는 일자리의 이전이 불가능했으므로 두 나라 근로자들 사이에 보수의 비교가 어려웠지만 이제 일자리를 옮기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생산성과 보수를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각자 실력과 노력에 맞게 유사한 수준의 보수를 받게 되는 것은 더 공평한 세계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에 문제이지만. 

  결국 미국에 남는 일자리는 두 종류밖에 없다. 하나는 컴퓨터가 담당하기 힘든 창의적인 업무이며, 외국에서 대체할 수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다른 하나이다. 사무직이건 생산직이건 단순 반복적인 일자리는 싼 임금을 찾아서 조만간 대부분이 외국으로 이전할 것이 분명하다. 새로운 혁신과 높은 수준의 두뇌 활동을 요하는 연구와 개발, 디자인과 마케팅, 고급 기술과 기획 등의 일만이 해외 이전의 위험에서 자유롭다. 이것과 정반대의 성격의 일, 즉 점포에서 손님을 응대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애를 보는 일은 결코 해외로 이전할 수 없다. 이러한 일을 해외로 이전할 수는 없지만 대신 해외로부터 싼 임금도 마다 않는 사람을 국내로 들여와서 맡게 한다. 결국 중류층의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다.

  미국의 중류층의 일자리가 감소하는 것은 미국인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개발도상국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선진국으로부터 이전하는 일자리는 기존의 것보다 상대적으로 보수가 좋으므로 이 나라의 중류층을 늘이는데 일조한다. 인도와 중국의 중류층이 근래에 급속히 성장한 것은 미국 산업의 구조조정의 결과이다. 즉 미국만 보면 소득 분배가 양극화된 것이지만, 미국과 인도와 중국을 함께 연결해서 보면 과거보다 소득 분배가 더 평준화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여하간 미국으로 볼 때 소득구조가 양극화되는 것은 크게 우려되는 현상이다.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고 중류층이 줄어들면 부자 혹은 빈자에게 호소하는 극단적인 주장이 호응을 얻는 반면 온건한 주장은 지지기반을 잃으므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진다. 빈부격차가 뚜렷해지면 사회적인 결속력이 줄어들고 범죄와 여러 사회문제들이 증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세계화에 따라 구조적인 이유로 벌어지므로 개별 기업의 입장에서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기반을 이전하여 경쟁력을 높이는 데 특정 업체만 국내에서 버티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자본주의와 자유를 최고의 원리로 하는 미국으로서도 정부가 나서서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해결책은 없을까? 다음 글에서 해결책을 논의하겠다. 

2012. 3. 10. 23:21

매년 1월 말이면 미국 대통령이 상하 양원 합동 의회에서 연설을 한다. 이것은 일년에 한번 있는 의례적인 행사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관심이 현재 어디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올해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선을 노리므로 대통령의 연설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임한 지난 삼년간 미국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웠다. 대외적으로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수렁에 빠져 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엄청난 재정 부담을 안아야 했다. 이 두 개의 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한다는 공약을 완전히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여하간 오바마 대통령은 이에 거의 근접한 조치를 취했다. 대외적 성과와는 달리 대내적으로 미국 경제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2008년에 터진 금융위기로 많은 회사가 파산하고 많은 가구가 빛 더미에 올라앉고 실업자가 넘쳐났다. 이러한 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과거 공화당 정권의 무절제한 금융규제 완화에 있지만 미국인의 고통에 따른 원성을 오바마 대통령이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그러한 경제위기 덕분에 흑인이면서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지만 말이다.

그의 연설의 대부분은 미국의 경제적 어려움 특히 경제적 양극화와 엄청난 실업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바쳐졌다. 마치 대통령이 회사의 세일즈맨인 것처럼 미국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미국 경제의 양극화와 중류층 일자리의 감소는 구조적인 변화의 산물이므로 대통령이 기업의 팔을 비튼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다국적 기업은 미국인만이 아니라 세계인을 상대로 사업을 하므로 반드시 미국인의 이익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미국 대통령이 이들에게 미국에 더 유리하도록 경영하라고 하는 것이 왠지 구시대적 발상에서 나온 말처럼 들린다. 과연 미국의 대기업 경영자들이 대통령의 말을 귀담아 들을까?

1980년 공화당이 집권한 이래 미국 정치에서 공화당과 민주당간에 분열은 갈수록 심해졌다. 두 정당은 상대방을 반대하기 위해 무모하리만치 완고한 태도를 취함으로서 미국의 정치는 파행을 지속하고 국민의 원성이 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시절 그의 화합을 강조하는 연설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고 마침내 대통령에까지 당선되었다. 그러나 최근의 예산 삭감을 둘러싼 의회의 대치에서 보듯이 벼랑 끝 전술을 동원하여서 까지 오바마 행정부를 곤경에 몰아넣으려는 공화당의 전략을 보면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의 연설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간의 화합을 거듭 강조하기는 했지만 마치 허공에다 대고 소리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래도 우리나라와 달리 대통령이 집권당을 일방적으로 휘둘러서 날치기로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몸싸움을 벌이며 반대하는 풍경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서 반대 정당을 설득하려는 열성과 함께, 결국 국민의 여론을 통해 반대 당의 힘을 꺽는 민주주의의 원칙에 대한 신뢰를 읽는다. 확실히 우리나라보다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미국의 대통령이나 국민 모두가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2012. 3. 2. 21:31

 컴퓨터 회사인 애플을 보면 미국 경제가 어떻게 변해 가는지 알 수 있다. 애플은 미국에서 디자인과 소프트웨어를 만들지만 기기의 제조는 전적으로 중국에서 한다. 중국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이유는 반드시 싼 임금 때문만은 아니다. 제품 전체의 가치에서 생산 노동자의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부가가치 제품일수록 크지 않다. 미국은 중국의 제조 산업이 제공하는 강점에 도저히 필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노동자과 산업체는 배가 불러서 신속한 변화 요구에 민활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반면, 중국 노동자와 업체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어 애플의 어떤 요구에도 신속히 대응하여 맞춘다. 신속한 변화는 많은 스트레스를 수반하고 기득이권의 포기를 필요로 하므로 미국의 노동자와 업체가 중국에 필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미국은 새로운 기술 개발과 혁신으로 중국의 업체와 노동자가 따라올 수 없는 선발의 이익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신기술 개발이나 혁신은 고용의 증가를 수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플의 소프트웨어나 디자인 개발은 기기 제조에 비해 현저히 적은 인원을 필요로 한다. 경제활동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면서 이들 상대적으로 작은 수의 엘리트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높은 보상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중류층을 뒷받침 하던 제조업의 수 많은 일자리는 점차 해외로 이전하면서 사라진다.  

미국에는 애플의 개발자와 같은 고급 근로자와 함께 외국으로 이전할 수 없는 하급 일자리만이 남는다.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애를 보고, 청소하고, 슈퍼마켓에서 진열대를 정돈하고, 공사장에서 일하는 등등. 이러한 일자리는 외국으로 이전할 수 없고 기계화하기 어렵기 때문에 많이 존재하지만 부가가치가 크지 않으므로 저임금 업종이다.

문제는 과거에 대학교육을 받은 중류층이 담당하던 일마저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도움으로 해외로 속속 이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콜 센터는 물론이고 자료 처리, 고객 관리, 회계처리, 디자인과 리서치에 이르기까지 기업 활동의 거의 전영역이 외국으로 이전하고 있다. 화이트칼라 업종 중 컴퓨터가 담당하기 어려운 창의적인 업무만이 미국에 남는다.

국내에 가까이 있으면 신속히 협의하고 조정할 수는 있으나, 요즈음 업무는 대부분 컴퓨터와 통신망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구지 근접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강력한 노동 윤리와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된 인도의 젊은이가 미국의 별 볼일 없는 대졸 노동자보다 훨씬 생산성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섭섭한 일이지만, 전지구적인 관점에서 보면 훨씬 바람직한 변화이다.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미국인이 열심히 노력하는 제삼세계의 인재보다 낮은 보상을 받는 것은 정당하다. 모두를 세계 시민의 일원으로 볼 때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터무니 없이 큰 이익을 부여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미국 사회의 양극화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양극화된 사회에서는 가진자와 못가진자간에 사회적 갈등이 커진다는 점이다. 미국인이 숭배하는 가치인 개인주의가 지속되는 한, 능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기회를 얻은 사람과 실패한 사람 사이의 간극은 커질 것이다. 미국은 이러한 사회적 간극이 낳는 부작용을 새로운 이민자를 계속 받음으로서 피해가려 할 것이다. 새로운 이민자는 미국 사회의 바닥에서 시작하면서 열심히 일하므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안전판으로 기여해 왔다. 이들이 계속 들어오면 아메리칸 드림은 계속 살아있게 되고, 극심한 불평등에 대한 반발은 어느 정도 완화된다.

미국은 여전히 기회의 땅이면서 불평등이 극심한 냉혹한 사회를 지속할 것이다. 미국인의 마음속에서 “이익을 서로 나누면서 함께 잘 살아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가까운 시일 내에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도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기미가 보인다. 물론 야후의 창업자인 제리양이나 구글의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같이 능력이 있는 세계의 젊은이들은 미국에서 큰 기회를 잡을 수있다. 미국은 이러한 세계의 인재들을 흡수하면서 활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화려함 속에서 보통사람들은 허덕이면서 살아가겠지만 말이다. 

2010. 12. 28. 15:24

제 2장. 미국을 구별짓는 특징



흔히 미국의 특징은 ‘다양성’ 그 자체라고 지적한다. 이 말은 한마디로 미국의 특징은 이렇다고 규정지으려는 것이 무모한 노력임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올라서면서 한때 미국의 특징을 찾는 연구가 성행했다. 유럽과는 구분되는 미국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미국학(American Studies)이라는 학문 분과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이들은 미국의 문학 작품과 역사를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총체적인 시각에서 미국인의 심성과 역사를 관통하는 고유한 어떤 것을 찾으려고 했다. 신화상징 학파(Myth-symbol school)라고 불린 이 학자들은 그들이 ‘미국 문명(American Civilization)’이라고 규정한 것의 정신적인 특징을 탐구했다. 한편 일부 인류학자나 사회학자들은 미국인의 국민성에 관해 좀 더 경험적인 연구에 몰두했다. 미국인은 타자 지향형 인간이라거나, 자아도취 상태에 있다거나,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이라거나 하는 논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노력은 다문화주의의 도전에 직면해 수그러들었다. 미국인 모두에게 총체적으로 동질적인 무엇이 있다고 가정하고 미국의 정신이나 미국인의 국민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과거에 미국의 정신이나 미국인의 국민성이라고 지칭되었던 것이 사실은 영국계 백인 남성을 중심으로 한 차별적 사고의 소산으로 드러났고, 단일한 특성으로 규정짓기에는 미국이 너무나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인식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매우 특이한 나라’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미국의 뿌리인 유럽과 비교해 보아도 그러하거니와, 유럽인들이 정착한 다른 지역, 예컨대 남미, 캐나다, 호주 등과 비교해 보아도 그렇다. 물론 일본이나 중국 같은 비유럽 사회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더욱 크다. 앞 장에서 논의한 미국의 예외주의가 미국의 역사적 전개에서 서구 유럽과의 차이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본 장에서는 객관적 조건과 사회·문화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미국의 특성을 검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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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문화의 기초 (목차)  (0) 2010.12.28
2010. 12. 28. 15:07



<이현송. 1996. 미국문화의 기초. 한울아카데미.>


머리말 5

 

제1장 미국의 신화와 예외주의 11

1. 미국의 신화와 상징 14

2. 미국의 이념 37

3. 미국은 얼마나 예외적인가? 59

 

제2장 미국을 구별 짓는 특징 67

1. 자연환경적 요소 68

2. 정치·경제적 요소 82

3. 사회·문화적 요소 92

4. 미국적인 것은 근대적인 것인가? 116

 

제3장 이민자의 나라 123

1. 시기에 따라 상이한 이민의 물결 125

2. 이민의 영향 154

3. 다민족 사회의 응집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182

 

제4장 미국의 지역문화 191

1. 지역 구분 193

2. 지역 차이를 가져오는 요인 196

3. 지역성과 변화 209

4. 미국의 지역성은 사라지는가? 254

 

제5장 미국 사회에서 인종의 의미 263

1. 인종은 사회·문화적 구성물이다 265

2. 미국인의 인종 분포 273

3. 인종주의와 인종 유지의 사회적 기제 277

4. 인종 문제의 역사적 설명 284

5. 다문화주의 논쟁 303

6. 인종 문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 314

 

제6장 인종 문제의 다양성과 변화 325

1. 흑인은 왜 항시 새로운 이민자보다 뒤처지는가? 325

2. 적극적 차별 개선 프로그램을 둘러싼 공방 334

3. 히스패닉의 부상은 미국의 주류 문화를 위협하는가? 344

4. 아시아계 미국인은 ‘모범적인 소수자’인가? 352

5. 인디언의 집단 정체성은 지속될 것인가? 362

6. 백인 민족 집단은 백인이라는 단일 정체성으로 통합될 것인가? 369

7. 인종과 계급의 관계: 인종의 중요성은 사라지고 있는가? 374

 

제7장 개인주의와 미국인의 꿈 383

1. 개인주의의 의미와 구성요소 384

2. 미국 사회와 개인주의 가치관 398

3. ‘미국인의 꿈’ 이념 418

 

참고문헌 453


<머리말>

미국의 특징은 다양성 그 자체이다. 세계에서 미국만큼 자연환경이 다양한 나라도 없으며, 미국인만큼 서로 이질적인 국민도 없다.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민자를 보내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인 사이의 빈부의 차이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세계적인 부자는 대부분 미국에 모여 있는 반면, 미국의 빈민가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비참함을 연출하고 있다. 미국의 범죄, 마약, 미혼모 문제는 비교를 초월하며, 미국인 100명 중 한 명은 감옥에서 생활한다.

다른 나라라면 이 정도의 다양성을 한 나라의 테두리에 포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대체로 다양성이 극에 달하면 분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미국인은 다른 어느 나라 사람보다 자신의 나라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미국인은 거의 모두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다시 태어나도 미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이 책은 “어떻게 이런 사회가 가능한가?” 하는 단순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미국의 생활과 문화는 세계인을 매혹시키는 요소로 가득 차 있다. 아름다운 자연, 넓은 공간과 물질적인 풍요, 개인주의적인 자유와 독립성, 도전과 창의를 높이 사는 태도, 형식과 전통을 배격하고 효율과 실리를 중시하는 태도, 과학과 기술에 대한 신뢰, 적극적인 추진력과 낙관적인 사고방식 등 우리가 삶에서 기대하는 좋은 것은 모두 미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반면 상업주의의 폐해, 물질주의의 저속함, 엄청난 경쟁과 스트레스, 피상적인 인간관계와 소외, 환경 파괴 등 우리가 혐오하는 현대인의 삶의 문제 역시 미국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적인 사람이 또 남을 가장 많이 돕는 사람일 수 있을까? 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인 사회에서 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신앙심이 깊을 수 있을까? 근대적 민주정치 체제를 최초로 건설한 나라이면서 어떻게 그렇게 인종차별이 만연할 수 있을까? 미국은 그야말로 모순투성이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에 대한 논의는 분과 학문에 따라 주제를 나누어 접근한다. 미국의 정치, 미국의 경제, 미국의 사회, 미국의 문화는 각각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문학, 철학 등에서 영역을 구분하여 논의한다. 역사학자는 주로 과거를 담당하며, 다른 학문 분야의 사람들은 주로 현재의 일에 집중한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미국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이렇게 전문적인 접근도 유용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여러 학문 분야를 아우르는 학제 간의 연구가 필요하다. 이 책은 지역학적 관점에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미국의 사회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미국에 대한 종합적인 논의는 대체로 미국에 대한 인상을 피상적으로 나열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러한지’를 체계적으로 묻고 탐색하기보다는 ‘그렇게 보이더라’고 말하고는 그만이다. 이유를 탐색한다고 해도 단편적으로 나열할 뿐이다. 이 책에서는 가급적 피상적인 논의나 단편적인 나열은 지양하고, 미국 사회·문화의 기초를 형성하는 것을 체계적으로 파헤쳐 보려고 노력했다. 미국인은 어떤 사람들이며, 왜 그런 태도와 성향을 가지게 되었는지, 미국 사회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미국 문화의 장점과 단점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은 겉으로 보기에 여럿인 것 같지만 사실은 뿌리가 하나에 닿아있다. 이 책에서는 바로 현대 미국 사회·문화를 구성하는 것의 뿌리를 캐어 ‘왜 그러한지’를 밝혀보려고 한다.

사실 이런 질문은 한 사람이 탐구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것이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해야 할지 실마리를 찾기조차 어렵다. 그동안 미국 사회·문화와 관련하여 책도 많이 읽고,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강의도 많이 했지만 아직도 명쾌한 느낌이 와 닿지 않는다. 이 책이 그런 노력의 중간 결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 기술한 많은 아이디어는 책에서도 왔지만, 미국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생각나는 것을 발전시킨 부분이 적지 않다. 아마도 그런 직접적인 경험과 느낌이 뒷받침되어 있기에 이 책의 가치가 조금이나마 살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책을 완성하는 데에는 많은 사람이 도움을 주었다. 미국학 분야에 눈을 넓히는 데 도움을 준 육군사관학교의 정연선 교수와 한국외국어대학교의 성경준 교수에게 감사한다. 필자에게 진솔하게 이야기를 해준 많은 미국인들에게 가장 크게 감사하고 싶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텍사스 주립대학교의 기드온 쇼버그(Gideon Sjoberg) 교수이지만, 이외에도 저자가 미국 사회·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방인이라는 것을 알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어려울 때마다 항시 삶의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준 가족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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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미국을 구별짓는 특징  (0) 2010.12.28
2010. 8. 15. 22:26
   일전에 미대사관으로부터 현재 주한 대사인 스티븐스의 사진집을 받고 간담이 서늘해진 일이 있다. 그 사진집에는 그녀가 1970년대 중반 순수한 처녀시절에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예산의 한 시골 학교에서 머물면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녀는 그당시 가난하나 소박하게 살아가던 우리나라 농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한국과 그 사람들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한국의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던 그녀가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우리나라에 온 것이다. 그 사진을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마치 그녀가 나의 과거를 꿰뚤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근래에 미국 대학생들 중에 재학 중 일이년을 해외에 나가 공부하면서 현지인의 생각과 관습을 체험하고 익히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그곳의 대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지인의 입장에서 중동 문제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익히는 미국 학생이 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 계속 있었더라면 도저히 얻을 수없는 통찰력을 얻으며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 돌아가면 중동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문제해결을 위하여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할 수있으리라는 섣부른 자신감도 내비친다.

  일전에 미국에서 한달간 방을 임대해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 집주인이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수년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척은 인도, 캐나다,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전화할 때 보면 대화 상대에 따라 인도말을 쓰기도 하고, 영어를 쓰기도 하고, 때때로 스페인어를 쓰기도 한다. 그의 고객 중 중남미계 이민자가 많아서 스페인어를 배웠으며 직장에서는 종종 스페인어를 쓴다고 한다.

   미국에는 그야말로 세계 구석구석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들은 적도 없는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이나 중앙아시아 사람을 여럿 만났다. 이들은 미국인이 되고자 열심이다. 다양성이 극에 달하면 문제도 많겠지만, 다양성은 미국을 활력있는 나라로 만든다. 세계화 시대에 자신의 국민 중에 세계 곳곳에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다. 한국과 거래하는 데 한국을 잘 아는 한국계 미국인을 활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현지인의 생각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미국인도 많다. 미개한 현지인의 말과 생각은 그저 무시하고 눌러버리면 그만일 뿐, 군사적인 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소위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국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오면 우방이고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니 더 무슨 말을 하랴. 중동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그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 불편하기만 할 뿐이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잘 아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미국은 세계 각양 각색의 사람들을 자신의 국민의 일부로 흡수하며, 미국 사람 중에는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현지인의 생각과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2010. 8. 15. 15:34
    요즈음 미국은 9.11 테러가 났던 곳 근처에 이슬람 문화센터를 짓는 것을 허용할지 하는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엇그제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교의 라마단 축제를 맞아 미국내 이슬람 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미국인이 희생된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을 지지하는 듯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을 지지하는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라, 미국은 여러 인종과 민족이 모인 다문화 사회이며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나라이므로 개인 소유지에 이슬람 문화센터를 짓는 것은 미국의 국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뿐,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해명했다.

   두가지 측면에서 오바마 발언에 대한 미국인들의 비판을 생각해 볼 수있다. 하나는 미국이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인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많은 보수주의 백인들은 미국이 유럽을 뿌리로 하는 기독교 백인의 국가이어야 하며, 다른 피나 문화가 섞여이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톤도 이런 사람 중 하나이다.

  두번째는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이름 속에 후세인이 있는 것을 두고
선거때 많은 미국 사람들은 오바마가 이슬람교도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기독교도라는 증거가 엄청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믿을 수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들에게 오바마가 기독교도인지 여부가 마음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가 흑인이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향은 정말 끈질기며 음험하기까지 하다. 정의, 형평, 사랑, 인권, 등 어떤 가치를 앞세워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말로는 다른 구실을 내세우면서 반대하지만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고집이 자리잡고 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를 아무래도 자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 미국 백인중에는 참 많다. 형편없는 흑인들이 주위에 득실 거리고 이들을 내려다보고 살면서 자존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똑 같은 피부색의 흑인을 존경할 수있겠는가?  경제위기 때문에 마지못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용인하기는 했지만, 그가 크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실패한 별볼일이 없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는 백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오바마를 바라보는 마음속은 착잡하며 이율배반적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정치를 잘하고 경제를 일으켜 세운다면 자신도 좀더 잘 살게 될 것이나, 그의 성공은 흑인이 백인보다 더 잘 할 수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그다지 기쁘지 않다. 

   이슬람 교도를 자신과 같은 미국인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심리이다. 이들은 이슬람교도를 이등 시민으로 간주하며, 자유 평등이라는 미국의 국시가 그들에게는 적용될 수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거 흑인 노예나 인디안에게는 미국의 헌법을 적용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은 자유 평등을 실현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런데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라서, 이들 보수주의 백인들도 결국 소수자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백인들은 애를 많이 낳지 않으므로 아무리 이민을 막는다고 해도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이며, 유색인이면서 성공한 사람이 늘면서 인종주의적 생각을 포기하는 백인들이 늘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이 아니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동등한 미국인으로 대접받는 날은 빠른 시일내에 오지는 않겠지만, 미국에서 보수주의 백인의 위세가 갈수록 약해질 것은 분명하다.


 
2010. 8. 14. 17:13
    미국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두배가 넘는 부자 나라이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불평등한 나라이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의 비참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대도시의 슬럼가는 대낮에도 들어가기가 겁나는 곳인데 혹시 가본 적이 있다면 정말 놀랄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이 사방에 있고 도로가 망가져 곳곳에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으며 잡초가 제멋대로 번성하고 쓰레기가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다. 다리나 터널의 벽에는 기괴한 모양의 낙서와 벽화가 그려져 있으며, 건물의 창문은 부서지거나 판지로 못을 쳐놓았으며, 사람이 살것 같지 않은 건물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굳게 닫쳐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허물어져 가는 건물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곳에서 걸어오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정말 무섭지 않을 수없다. 영화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폐허의 모습 그대로이다.

    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미국 남동부의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밀고 싸우다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싸우다 다치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기사거리도 안되는데, '제삼세계 미국' (Third World America)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니 정말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요지인즉 정부에서 주는 주택보조수당(Housing Voucher)에 지원하기 위한 지원서를 나누어주기로 했는 데 이틀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여 당일에는 13000명이나 모였다는 것이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그늘하나 없는 땡볓아래 주차장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졸도한 사람이 속출하는가 하면 서로 먼저 받으려고 싸움이 벌어져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궁금한 것은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서 즉 종이쪼각 한장을 받으려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틀 전부터 줄을 서야 했는가이다.
그들이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도 생활형편 등을 심사하여 수혜 여부를 판단할텐데 말이다. 당국자의 말인즉 사실 주택보조수당 재원이 형편없이 적어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은 신청서를 제출하여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바보라서 이틀전부터 와서 무턱대고 줄을 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신청서를 터무니 없이 부족하게 나누어줄 것이 뻔하기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 수당은 컴퓨터로 신청자의 신상을 조회하여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과거에 얼마나 엉터리 같은 방식으로 수혜자를 선정하였으면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도 아니고 신청서 용지를 받기위해 그렇게 이틀씩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일까?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며칠이나 걸어와서 경찰의 제지하에 아우성치면서 밀가루를 받는 모습과 중첩된다. 
대부분이 흑인인 이들의 처지는 노예였던 그들의 선조에게 대했던 백인 주인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인간적인 수모 쯤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나도 겪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살 때 한번은 보건소에 방문해야 했는데, 사방에서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신청서만 쓰고는 막연히 기다리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이 반나절 이상을 지냈었다. 중류층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흔히 보는 번호표 발급기와 현재 서비스 받는 사람이 몇 번인지를 알리는 전광판을 설치하는 데 큰 돈이 드는 것은 아닐텐데.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던 경험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정치인 중에는 가난한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사람들에게 성공을 향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사회의 낙오자들에게 어줍지 않은 동정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가혹한 사람들이다. 여하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나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달동네가 훨씬 살기 좋다. 물론 용산 참사같은 사건도 때때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한동안 미국 사람을 만나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애틀랜타의 주차장 땡볕 아래에서 종이조각 한장을 얻기 위해 이틀동안이나 줄을 서야 했던 가난한 흑인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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