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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에 해당되는 글 3건
2019. 12. 30. 18:49

Elliot Liebow. 2003(1967). Tally's Corner: A Study of Negro Streetcorner Men. Rowman & Littlefield. 166 pages.

사회인류학자인 저자가 흑인 남자들의 삶에 대해 일년 반 동안 참여관찰한 결과를 기록한 책.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으로 출간된 것으로, 참여관찰 방법론 분야의 고전으로 지목되며, 나온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가난한 흑인의 삶에 대해 언급할 때 종종 인용되는 놀라운 책이다. 워싱턴시의 흑인 슬럼가 길모퉁이에 정기적으로 매일 모이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여 그들의 일의 세계, 부모와 자식관계, 남편과 아내관계, 연인 관계, 친구 관계를 시시콜콜 묘사하면서 저자의 생각을 덧붙여 해석을 내린다.

도심의 빈곤지역에 사는 흑인 남성은 일의 세계에서 실패하고 사회의 생존 경쟁에서 낙오한 루저(loser)이다. 교육을 받지 못하였고, 중학교를 다녔다 해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며, 변변한 기술이 없는데다 흑인이기 때문에 일생 안정된 직업을 가져보지 못했다. 접시닦이, 청소부, 건설 막노동자, 등 걸리는 대로 일을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일을 찾지 않는다. 그들을 고용하는 사람에게 그들이 하찮은 존재이듯이, 그들에게도 일이란 별볼일 없는 것이다. 그들은 책임이 따르는 일을 해본 적이 없으며, 툇짜 맞고 패배한 경험을 숫하게 하면서 자신감을 상실했다. 기분에 따라 일을 그만두며, 돈이 긴급히 필요하면 아무 일이나 걸리는 대로 한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고되고, 보수가 작고,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며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고, 불안정한 것이기에, 그들에게도 그러한 일이란 짧게 급한 돈을 쥐는 용도 이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한 일을 마음을 바쳐 성실하게 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다.

그들은 현재의 만족을 우선시하는 삶을 산다. 다가올 내일이 별 볼일 없으리라는 것을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당장 기분이 좋지 않으면 어제까지 나가던 일도 중단하며, 돈이 생기면 술이나 도박으로 써버린다. 그들은 자기 절제를 하고 저축을 하면 지금까지와 다른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들의 부모의 삶을 통해, 또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에는 기대할만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 숫한 실망과 수치와 패배와 버려짐을 거치면서 무엇하나 자신이 주체적으로 할 수없는 수동적인 삶이 엮여진 것이다.

흑인 남성은 그들의 자녀와 느슨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의 자녀는 대체로 엄마와 같이 살며 그들과 같이 살지 않는다. 그들이 가족의 생계부양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인과 자녀를 버리는 것과 부인이 그들을 내쫒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맞는지 구별할 수 없다. 그들의 자녀의 엄마는 때때로 자녀를 데리고 그들을 방문하여 돈을 타가지만, 여러해 동안 자녀를 전혀 보지 않는 경우도 많다. 흑인 남성과 자녀간의 관계는 흑인 남성과 자녀의 엄마와의 관계에 좌우된다. 흑인 남성이 자녀의 엄마와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만 자녀와의 관계가 지속된다. 그들의 삶에서 자녀란 그리 큰 비중을 차지 하지 않는다. 남자로서 씨를 뿌린 결과 자녀가 태어났지만, 그들은 자녀의 양육에 간여하지 않기에 자녀또한 그들의 생물학적 아버지와 정서적 유대가 없다. 자녀가 성장하면서 아버지와는 사실상 남남이 된다.  그들이 비정한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자녀의 양육을 재정적으로 책임질 수 없기 때문에 부자간의 관계를 포기한 것이다.

흑인 남성들또한 중류층과 마찬가지로 결혼의 책임과 의무를 소중히 여긴다. 살림을 차리는 관계와 결혼을 한 사이는 그들의 세계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그들은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지고 싶어하며, 그들의 여자친구 또한 그러한 관계를 꿈꾼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는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결혼을 해도 얼마 오래가지 못한다. 그들이 가장으로서 제대로 밥을 벌어오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결혼은 갈등의 연속이며 그러한 긴장을 오래 지탱해 낼 수 없다. 

그들과 여자친구의 관계는 일시적 성적 대상에서부터 완전히 마음을 준 연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들의 여자친구는 성적 욕구 충족의 대상이며 그들로부터 돈을 갈취 당하는 피해자이다. 그러나 연인관계와 착취 관계의 경계는 모호하다. 그들은 남성은 본래 한 여성에 만족할 수없는 동물적 존재라고 자신의 무책임한 여성 편력을 변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특정 여성에 대한 애착이 단순히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 위한 것은 아님을 그들의 대화 속에서 드러낸다. 그들은 생계를 이어가는 데 필요한 돈이 항시 부족하고 수시로 위기에 봉착하기때문에, 그들의 여성과의 관계는 안정적일 수 없다. 잘 지내는 듯하다가 어느날 심각하게 싸우고 헤어지며, 한동안 안보다가 다시 만나 같이 산다. 여성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남성은 감정적 욕구를 채우는 대상이며, 힘들 때 의지할 보호막이며 , 때로는 자신을 착취하는 존재이다. 그들의 삶에서 남녀 관계는 항시 불안정하면서 의존적이고, 서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롭히면서도, 삶의 무의미함을 이겨내는 수단이다.

흑인 남성들 사이에 친구 관계는 가까운 듯하지만 피상적이며 느슨하다. 그들은 의형제를 맺은 사이에서도 돈문제나 여자 문제로 다툼을 벌이고 헤어지며, 서로 과거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다. 가까운 친구간에는 서로의 여자친구를 건드리지 않은 불문율이 있으며, 서로 어려우면 도움을 주고 받지만, 진짜 어려울 때에는 자신의 문제를 각자 챙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가진 자원이 빈약하기 때문에 서로 돕는데 한계가 있고, 수시로 어려움과 위기에 봉착하기에 그들의 관계는 수시로 변하며 잠정적이다. 그럼에도 서로 같은 처지이기 때문에 매일 길모퉁이에 모여 잡담을 하고 시간을 보내며 감정적으로 의지한다. 그들은 밖에 사회에서 버림받은 쓰라림과 수치심을 마음 속에 품은 채, 서로 잡담을 하고 장난을 치면서 자존심에 난 상처를 위로한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빈곤의 문화'(culture of poverty) 이론을 반박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중류층과는 다른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주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이유는 그들의 불안정한 환경과 빈약한 자원 때문이다. 그들도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책임있게 일 하고 싶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삶이란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어렵게 자라나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주위에 의지할 사람이나, 길을 이끌어 줄 사람이나, 닮을만한 롤모델이 없으며, 가진 것이 전혀 없다.  그들은 흑인 남성이기에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배척되며, 그들이 아무리 열심히 살려 해도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일은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건설현장의 막노동을 하려 해도, 수입이 좋고 안정된 일은 노조에 가입해야 하며,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진 곳은 보수가 낮거나 불안정하거나 허리가 부러질 정도로 힘든 곳 뿐이다.

책의 부록에서 저자가 어떻게 현지 참여관찰을 하게 됬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워싱턴 빈민가에서 잡화점을 하는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흑인들의 삶에 친숙했다. 저자가 이 연구를 위해 흑인 빈민지역으로 걸어들어간 첫날 거리에서 벌어진 조그만 사건을 구경하는 사람과 대화를 하고, 길 모퉁이에 모여 이야기 하는 흑인의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를 건네고, 그들의 어려움에 우연히 도움을 주는 계기를 가지고, 이러한 일이 수주 동안 쌓이면서 그들의 가까운 친구로 받아들여진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나는 대로 길 모퉁이 모임에 참여하고, 잡담을 하고 술을 함께 마시고, 그들의 집에 찾아가고, 함께 놀러가고, 이런 생활을 일년 반 동안 했다. 길모퉁이의 흑인들은 저자가 백인 대학졸업자로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자원을 이용하기도 하고 함께 어울리면서 그들의 삶에 감정적으로 깊숙이 들어간다. 1990년대 중반 저자가 암으로 죽을 때까지 이들과 연락을 지속했다고 한다. 

놀라운 책이다. 객관적 시각에서 그들의 삶을 서술한 기록물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삶에 대해 따뜻한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문학 작품이다. 저자의 서술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그리는 사람들의 삶이 머리 속에 그려지며, 저자의 해석에 공감하게 된다. 저자는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만, 그들의 삶의 표면 밑을 흐르는 슬픔과 소외감을 감지한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대등한 눈높이에서 그렇게 따뜻한 이해심을 갖기란 힘들다. 저자의 공감능력이 부럽다. 이 글을 읽으면서 흑인 남성의 삶에 동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고, 나도 그들과 같은 처지에 있을 수 있다.

2015. 4. 3. 05:21

할렘을 대표하는 두 흑인 운동가의 대조적인 생애


  

(7-1-3) 두보이스, 1918흑인과 백인의 혼혈로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귀인상이다흑인 최초로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으며 흑인 운동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7-1-4) 마커스 가비, 1924짙은 고동색 피부두터운 입술뭉툭한 코투박한 복장전혀 세련되지 않은 모습이나 그의 연설에 흑인들이 열광했다그는 흑인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줄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1920년대 할렘 르네상스는 흑인의 문예 부흥이 중심이지만 흑인의 지위를 높이는 사회 운동에서도 큰 자취를 남겼다. 그 당시 할렘을 중심으로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두 흑인 운동가, 두보이스(W.E.B. Du Bois)와 마커스 가비(Marcus Garvey)의 활동은 이후 흑인 운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이며 그들의 운동 방식 또한 그들의 성격만큼이나 차이가 크다. 이들의 생애와 흑인 운동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지 살펴보면 자못 흥미롭다.

두보이스는 1868년 보스턴에 엘리트 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쪽 가계는 노예제 시절 매우 예외적이었던 자유 흑인이다. 조상이 미국의 독립 전쟁에 참가해 자유를 획득했다. 그의 아버지 쪽 가계는 프랑스인과 흑인의 혼혈로 아이티에서 대지주였다. 두보이스는 지식인 부모 밑에서 어릴 때부터 고급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하버드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다. 한때 대학 교수를 했으며 활발한 저술 활동을 통해 백인 사회의 위선과 불의를 고발하고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한 일에 매진했다. 그는 글뿐만 아니라 흑인 중류층을 중심으로 1909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를 만들었다. 수십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사회학, 역사학, 정치학, 심리학 등 사회 과학 전반에 걸쳐 그가 논의하지 않은 주제가 없을  만큼 지적인 활동 범위가 넓었다. 그는 흑인의 시민권 획득과 자결, 자조를 강조했는데 대체로 자유, 평등, 인권 등 유럽의 가치에 입각해 흑인의 지위 향상을 도모한 지식인이다. 그의 글과 활동은 이후 흑인 운동의 주류를 형성해 1950년대 민권 운동으로 연결되었으며, 그가 만든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는 흑인 사회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현재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말년에 공산주의를 찬양하다 FBI의 조사를 받았으며 해외에 출국한 뒤 입국이 거절되어 196193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가나에서 사망했다.

   마커스 가비는 지식인 두보이스와 달리 선동가이고 풍운아다. 그는 1887년 카리브 해에 있는 자메이카의 소도시에서 석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었으며 인쇄공으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다. 중남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쇄공으로 일했고, 한때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대학 강의를 듣기도 했다. 영국에 머무는 동안 흑인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사에서 일했으며, 런던의 하이드파크에 유명한 연설자의 코너라고 이름 붙여진 연단에서 수시로 연설을 하기도 했다. 이후 자메이카로 돌아와서는 세계 흑인 향상 협회를 결성했다. 이 조직은 백인의 억압 때문에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흑인이 아프리카에 있는 흑인과 단결해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의 발상이 엉뚱하지 않은가?

   그는 미국에 건너가 전국을 돌면서 흑인에게 연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조직의 미국 지부를 만들어 미국 흑인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사회 운동을 추진했다. 할렘을 근거로 흑인을 위한 신문을 발간했으며, 흑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산업을 건설하기 위해 회사를 설립했다. 미국의 흑인을 아프리카 서안에 위치한 라이베리아라에 단체로 이주하는 계획을 세웠다. 미국의 흑인이 아프리카로 모두 건너가서 자신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웅대한 계획을 실현에 옮기기 위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그곳에 단체로 건너갈 선박을 구입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가 역설한, 아프리카로 단체 이주하는 계획에 실제 동조한 흑인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조직에 400만 명이나 가입했으며 그가 연설하는 곳마다 흑인으로 넘쳐흐를 정도로 호응은 대단했다. 그는 천부적인 연설가였다. 마커스 가비가 불러일으킨 흑인 사회의 열광은 엄청났으므로 미국 정부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FBI는 그를 감시하고 사소한 구실로 그들 잡아들였다. 미국 정부는 그의 계획이 사기라고 발표하고 3년간 수감한 후 자메이카로 강제 추방했다. 미국에서 추방된 후 그는 자메이카에서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의 여러 나라에서 활동하다 1940년 영국 런던에서 사망했다.

   마커스 가비가 미국에서 활동한 기간은 길지 않다. 감옥에 갇힌 기간을 제외하면 불과 7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의 자취 는 이후 오래 지속되었다. 1960년대 말콤 엑스가 주도한 흑인 분리주의 운동으로 이어지며, ‘검은 것이 아름답다.’는 주장으로 대표되는 흑인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찾는 흑인 정체성 운동과, 흑인 민족주의와 범아프리카주의로 이어진다. 중남미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마커스 가비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가나의 국기는 마커스 가비가 조직한 세계 흑인 향상 협회의 깃발 문양을 빌려왔으며, 그가 제안한 아프리카인의 단결은 아프리카 합중국(United States of Africa)’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논의되고 있다. 말콤 엑스가 흑인의 주체성에 대한 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그의 부모가 마커스 가비가 조직한 세계 흑인 향상 협회의 회원으로 열렬히 활동하던 것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하니 놀랍다. 말콤 엑스는 할렘에서 활동하면서 분명히 마커스 가비의 숨결을 느꼈을 것이다.

   마커스 가비는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적인 정책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그가 제시한, 전 세계 흑인이 단결해 하나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목표나 미국의 흑인이 아프리카로 돌아가 그들만의 나라를 건설한다는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운 꿈이다. 반면 두보이스는 흑인 엘리트로서 백인 사회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흑인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적인 활동을 많이 했다. 흑인들은 누구를 더 기억할까? 물론 실제 미친 영향력으로 보면 두보이스가 훨씬 크지만, 흑인에게 꿈을 가져다 준 사람으로 마커스 가비를 기억하는 사람이 적  지 않다. 마커스 가비의 부름에 흑인들은 열렬히 응답했다. 그가 활동하던 때에 할렘의 흑인들 사이에서 불러일으킨 열광은 물론이고 현재도 흑인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예컨대 힙합의 노랫말 가사에서 마커스 가비의 이름을 만난다. 마커스 가비는 실행자이기보다는 종교적인 카리스마를 가진 전설적인 선지자로 삶을 살다 간 것이다.

유사한 시기 할렘에서 활동한 이 두 인권 운동가는 외모에서부터 활동 성향까지 뚜렷이 대조적이다. 두보이스는 유럽인의 윤곽과 짙은 갈색 피부에 지적 풍미를 풍기는 세련된 엘리트의 모습이다. 반면 마커스 가비는 짙은 고동색의 피부에 아프리카 흑인의 두터운 입술과 뭉툭한 코를 지닌, 세련과는 거리가 먼 비서구적인 모습이다. 마커스 가비는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열적인 연설가이기는 했지만 논리 정연한 주장을 폈던 것 같지는 않다. 두보이스의 글은 지금도 대학에서 광범위하게 읽히고 있으나 마커스 가비의 연설은 글로 출판된 것이 없다.

   마커스 가비는 조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가 만든 조직은 두보이스가 만든 조직에 비해 이상은 높지만 흑인의 지위 향상을 위해 실제 한 일은 별로 없다. FBI가 그를 조사해 사기죄로 감옥에 집어넣었을 때, 그가 한 약속에 비해 실제 진척된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사기를 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이상적인 약속을 실행에 옮기려 했으나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약속을 믿고 참여했던 사람들이 그가 사기를 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을 것 같지는 않다.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두보이스는 백인을 능가하는 지력을 이용해 백인에게나 흑인에게나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했다. 반면 마커스 가비는 흑인의 응어리진 가슴을 풀어줄 희망을 전하는 전도사였다. 마커스 가비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엄청난 수의 추종자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흑인의 감정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백인 식민주의와 백인 우월주의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억눌리고, 자기의 정체성을 부정당한 흑인에게 흑인도 고유한 가치를 가진 존귀한 존재이고 아프리카의 뿌리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는 희망  을 가져다주었다. 흑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후세 사람은 그들의 삶의 방식만큼이나 다르게 그들을 기억하고 있다. 두보이스는 흑인 연구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한 학자로서, 하버드 대학에는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가 있다. 그 연구소에는 그의 지적 활동과 관련된 유물이 보존돼 있다. 반면 마커스 가비의 자취는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든 할렘의 공원이 전부다. 그가 활동했던 할렘의 사무소나 집은 헐린 지 오래이며, 그의 유물은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는 흑인 민중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다.

2012. 8. 26. 22:41

  오늘 감동적인 글을 읽었다. 아틀랜틱 몬슬리 9월호에 나온 “Fear of a Black President"라는 제목의 글이다. 미국에서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흑인의 분노와, 흑인에 대한 백인의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다. 노예제에 뿌리를 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비인간적인 차별은 미국 사회의 곳곳에서 여전히 감지된다. 흑인은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종주의는 많은 백인의 머릿속에 또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흑인들은 좌절과 분노로 자신을 파괴하는 한편, 범죄로서 주류의 질서에 저항한다. 백인은 흑인을 두려워하며 가급적 멀리하려 한다.


Atlantic_FearofBlackPresident.hwp



  이런 인종주의 사회에서 2008년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인데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서 다른 선택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인 아들 부시의 오랜 실정과 경제 위기가 공화당의 계속된 집권을 어렵게 했으며, 민주당의 예비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역시 여성인데다 전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점이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했다. 인종주의 사회에서 소수 인종인 흑인이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지도자로 선출된 것은 정말 닥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사회는 초유의 사태에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 흑인을 자신의 지도자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많은 미국인들은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거나 혹은 이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그를 부정하려고 하였다.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여 그의 정부가 실패로 끝나기를 바랐다.

  흑인은 백인에 대해 가슴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산다. 오바마는 흑인이다. 오바마는 이러한 분노를 어떻게 삭혔을까? 오바마는 영민한 사람이다. 백인에 대한 흑인의 분노의 감정을 절대 밖으로 표출해서는 안된다는 것, 존재 자체를 백인 주류사회에 눈치 채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흑인의 분노의 감정이 담긴 것으로 해석되게 오해되는 발언이나 행동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엄청난 비난과 반발이 퍼부어질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어느 대통령보다 인종에 대한 언급을 가장 적게 한 대통령이다. 백인이라면 특별히 인종적인 함의가 있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을 발언도 흑인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오바마는 대통령이기에 앞서 흑인이다. 백인에게 오바마의 발언과 행동은 흑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의심받기 쉽다.  그러한 의심은 여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어 그러한 발언을 한 취지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오바마는 이러한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을 때에는 자존심을 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전에 하바드 대학교의 흑인 교수가 자신의 집 앞에서 백인 경찰에게 가택 침입죄로 체포되었다. 열쇠를 집에 놓고 나와 문을 억지로 따려고 씨름하고 있을 때 지나치던 경관이 다가왔다. 그가 자신의 교수 신분증을 보이고 이곳에 오래 산 사람임을 거듭 말했으나 경찰이 이를 무시하고 그들 연행하여 경찰서에서 하루 밤을 재우고 풀어준 것이다. 그가 백인이었다면 아마도 경찰이 그의 학교나 이웃에 확인하여 웃고 지나갔을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한 경찰의 행동이 지나친 치안 행위라고 언급했다. 정부의 책임자로서 그의 발언은 지극히 온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백인 경관은 기자들을 향하여 자신은 조금도 잘 못한 것이 없다고 발언하여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그 경관이 자신의 말을 오해했다고 굽히고 들어갔고, 백악관에 경찰과 교수를 초청하여 맥주잔을 건네면서 화해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당시 의료보험 개혁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던 상황에서 여론이 인종 문제로 들끓어 올랐을 때 기꺼이 자신을 굽힘으로서 논란이 사그라들기를 바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책에서 인종주의로 인하여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고 좌절과 분노의 나날을 보냈던가를 솔직히 썼다. 대통령이 된 지금도 흑인으로서의 쓰라린 기억을 가끔씩 노출한다. 예컨대 최근에 플로리다에서 후드티를 입은 트레이본 마틴이란 순진한 청년이 경관의 추격을 받아 총 맞아 죽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손에는 스키틀이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아이스티만 들려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만일 아들이 있었다면 그도 트레이본처럼 보였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흑인으로서 쓰라린 감정의 정곡을 찌르는 발언아닌가?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의 인종주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미국의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우회 전략을 취한다. 미국의 어려운 사람 중에 흑인이 상대적으로 더 많으므로 이는 결국 흑인에게 혜택이 더 돌아간다. 이러한 인종 중립적인 정책을 추진함으로서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을 특별히 우대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 그가 추진한 의료개혁의 주요 내용인, 모든 미국인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은 의료보험을 누리고 있는 중류층 백인보다는 지금까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흑인들에게 더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정책이다. 미국의 백인들이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고 하는 데에는 인종주의적 의도도 바탕에 깔려있다. 

  흑인은 근본적으로 열악하다는 인종주의를 깨는 효과적인 전략은 그렇지 않은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가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음으로서 인종주의를 부정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그가 미국사회의 인종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음에도 그의 존재 자체가 인종주의를 무너뜨리는 증거로 작용하고 있음을 잘 알기에 그는 누구보다 인종주의적 갈등이 촉발되어 일을 망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인종주의적 백인 또한 이를 잘 알기에, 그의 발언이나 행동이나 그의 정책에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면 오랫 옛날 노예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종주의가 옮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흑인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될 수없으며, 설사 잘못되어 지도자로 선출되었더라도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문제에 직접 간여하면 그들의 계책에 말려들어 일이 잘 못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것을 오바마 대통령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과거에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 “Dreams from my father"을 읽을 때의 감동이 몰려왔다. 오바마는 지혜로우며 용감한 사람이다. 진실로 위대한 사람을 찾기 힘든 오늘날 그는 나에게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새삼 우러러 보인다. 역사도 그를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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