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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0. 10. 21:44

Tasheng Huang. 2023. The Rise and Fall of the EAST: How Exam, Autocracy, Stability, and Technology brought China success, and why they might lead to its decline. Yale University Press. 353 pages.

저자는 정치경제학자이며, 이 책은 15세기까지 서구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던 중국 문명이 이후 왜 서구에 뒤지게 되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해 저자의 이론적 및 경험적인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중국은 서기 600년경 수나라에서 과거가 도입된 이후, 사회의 모든 인적 자원과 이념적 자원이, 오로지 유교 지식만을 테스트하는 과거를 통해 국가 관료가 되는 길 하나로 집중되면서 다양성이 사라졌기 때문에, 기술 발전, 경제 발전, 정치 발전의 동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이다.

서구가 16세기 이래 과학기술이 발전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유럽 세계가 여러 나라로 잘게 쪼개져서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였기 때문이라고, 많은 경제사학자들이 주장한다. 여러 나라들이 경쟁하는 유럽 세계에서 어느 나라의 군주도 자신의 독단적인 변덕과 억압때문에 기술발전이 뒤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며, 이웃나라를 앞설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했기 때문에, 유럽 전체적으로 과학 기술이 상승 발전할 수 있었다. 반면, 중국은 하나의 권위체로 일찌감치 통일되었기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경쟁적으로 장려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 15세기 명나라 때에는 군주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해상 무역을 금지하고 먼바다를 항해하는 선박 건조를 금지함으로서 기술의 맥이 끊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중국 정부는 상공업을 천대한 반면 지주와 관료를 우대했기 때문에, 상공업 분야에서 생산성 향상의 동력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나라가 멸망한 뒤 350년간의 혼란을 수습하고, 서기 600년경 수나라가 전국을 통일한 이래, 중국은 현재까지 대체로 계속하여 하나의 나라로서 통일을 유지해 왔다. 수나라는 과거를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를 전국적으로 시행하였다. 과거제는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성공하는 '성과주의 체제' meritocracy 를 구현하였다. 대부분의 다른 나라에서는 귀족과 군벌이 왕과 권력을 분점하고 통치에 참여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객관적인 시험인 과거를 통해 선발된 관료가 왕의 권한 위임을 받아 통치를 담당하였다. 과거를 통해 선발된 많은 유능한 관료들은 국가의 권력이 국민의 생활 전반에 침투하는 매우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국가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는 서구 유럽의 국가 역량이 근대에 이르기까지 제한적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전체적으로 왕의 감독하에 치러지는 과거는 비교적 공정하게 집행되었다. 이중 블라인드 처리를 하여 시험 응시자의 가족 배경이 선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과거제도는 전국의 모든 인적 자원과 이념적 자원을 이것 하나에 전적으로 집중시켰으므로, 다른 사상이나 다른 경력이 존재할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전국의 모든 인재들은 오로지 과거의 시험 과목, 즉 유교의 경전을 익히는데 어린시절부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였다. 중국이 오랜 동안 분열되지 않고 하나로 통일을 유지할 수 있던 비결은 바로 과거제에 있다. 과거제는 가족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객관적인 시험을 통해 성공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었으므로, 웬만한 지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과거를 준비하고, 과거에 붙으면 그것의 정당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였다. 오랫동안 과거를 준비할려면 생산 활동에 종사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은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지주 계층이 주를 이루었다. 상공인들도 어느 정도 재력을 모으면, 자식에게 자신의 가업을 잇게하기보다, 과거 준비에 몰두하게 했기 때문에, 상공업 자본의 축적이나 생산성 향상의 선순환이 만들어내지 못했다. 요컨대 과거제도는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체제를 오랫동안 안정되게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새로운 아이디어의 발전을 막고 경제적 및 정치적 발전의 동력을 차단하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지금까지 경제사학자들은 중국이 서구보다 기술이 뒤떨어지게 된 시기를 대체로 1500년경 명나라 때로 지적한다. 특히 명나라때 정화의 대원정 이후 왕의 명령으로 해외 무역을 금하고 먼바다를 나가는 배를 짓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중국이 기술발전의 대열에서 벗어난 상징적 사건으로 종종 언급한다. 그러나 저자가 중국의 10,000건이 넘는 발명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경험적으로 분석한 결과, 중국에서 기술 개발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서기 600년 수나라 때 무렵부터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역사에서 기술발전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진나라가 전국을 통일하기 이전 춘추전국시대라 일컬어지는 혼란기와, 한나라가 망하고 수나라가 통일하기 이전 위진 남북조 시대라 일컷는 혼란기였다. 이 두시기에 여러 나라가 경쟁하는 분열의 양상이 펼쳐졌는데, 이는 유럽에서 여러 나라가 분열해 경쟁하던 상황과 흡사하다. 이 시기에 유교, 불교, 도교, 등 다양한 사상이 경쟁하였으며, 정부의 이념에서도 여러 사상이 혼합되고 교차하였다. 이 시기를 "백가쟁명의 시대"라 지칭하는데, 이렇게 생각과 행동의 다양성이 허용되는 환경에서 새로운 발명이 활발하게 전개된 것이다. 반면 국가의 이념이 유교로 제한되고, 과거제도로 모든 인재들이 쏠리던 송나라 이후에는 발명의 건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중국은 1970년대 중반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1980년대 후반까지 개혁의 시기를 맞았다.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가 허용되고, 국유기업의 사유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부분적으로 도입하면서, 생산성이 빠르게 향상되고 높은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사태를 계기로 개혁파가 제거되고 보수파가 실권을 잡으면서, 이전 시기의 개혁적 조치들은 취소되거나 제한되었다. 그럼에도 개혁의 모멘텀은 계속 유지되었으며, 경제성장을 정권의 정당성으로 삼는 기조는 이어졌다. 각 지방 정부는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개발을 추진하면서, 경제성장의 성과를 놓고 서로 경쟁하는 성과주의 원칙 meritocratic principle 이 지배하였다.

중국은 공산당 독재체제이지만, 과거 모든 권력을 한 사람이 독점하여 무모한 정책을 밀어붙여 중국을 위기에 빠뜨린 모택동 시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등소평 시대 이래 권력을 여러 지위로 분산하는 조치가 이루어졌다. 당서기, 수상, 군 총사령관, 원로회의, 등으로 최고의 권력이 분산되어,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도가 형성되었다. 또한 당서기의 임기를 최대 10년까지로 하여, 두차례에 걸쳐 평화적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중앙의 권력을 여러 지위 여러 사람이 나누어 갖는 관행은 1989년 보수파가 실권을 잡으면서 부분적으로 깨어졌다. 2012년 시진핑이 집권한 이래 모든 최고위 자리를 그가 겸직하여 독점하거나 폐지하면서 일인이 권력을 전적으로 독점하는 체제로 다시 돌아갔다. 시진핑은 2018년 헌법을 개정하여 당서기의 임기 제한을 없앰으로서, 등소평 시대 이래 권력을 제한하는 취지의 개혁적 조치는 완전히 무위로 돌아갔다. 

시진핑은 중국에서 다양성을 제거하는 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하였다. 홍콩의 독립 체제를 무너뜨리고, 시지핑 일인의 개인 숭배 이념을 주입하고, 시진핑의 독재 권력에 위협이 되는 잠재적 경쟁자를 부패 처단을 명분으로 숙청하고, 언론과 미디어의 통제를 강화하고, 민간 기업을 국가의 통제권 하에 두고, 성공한 기업가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등으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시진핑의 정책은 경제성장을 둔화시키고, 새로운 기술 발전을 억압하고,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결국 체제의 위기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견한다. 시진핑은, 과거 명나라 시대에 철저하게 유교 이념으로 무장하여 다양성을 죽이고, 국가의 명령으로 기술 발전을 가로막던, 그런 길로 중국을 몰아가고 있다. 시진핑이 이끄는, 다양성이 사라진 강력한 권위주의 정치체제는, 과거 정체되고 폐쇄된 중국이 다양하고 역동적인 서구에 의해 몰락했듯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무장된 서구와의 대결에서 중국이 또다시 패배할 위험을 안고 있다. 

저자는 과거 중국의 역사로 부터 얻은 교훈으로 현재의 체제를 들여다보는 흥미있는 사고 실험을 한다. 과거제도에 대한 논의와 중국 공산당에 대한 논의는 연결되기는 하지만 구분된 논의이다. 그의 분석은 과거제도에 대한 논의에서 더 설득력이 있다. 시진핑 체제가 그의 예상과 같이 위기에 빠질지는 두고 볼 일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서술하는 것은 흥미를 북돋우기는 하지만, 논의의 중복이 매우 많다. 경쟁과 다양성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 나아가 경제성장을 낳는다는 그의 지적은 설득력이 크다. 서구가 앞서게 된 원인을 서구가 아닌 중국, 특히 과거제도에서 찾는 그의 분석은 흥미롭고 한국의 과거를 설명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2020. 12. 26. 12:16

Matt Ridley. 2020. How Innovation works: and why it flourishes in freedom. Harper Collins. 373 pages.

저자는 과학을 주제로 여러권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이다. 이 책은 인류 역사상 중요한 혁신의 사례를 검토하고 혁신에 관한 사회 현상을 기술한다. 혁신의 범주로 에너지, 보건, 운송, 식량, 저수준 기술의 혁신, 통신과 컴퓨터로 구분했으며, 선사시대의 혁신을 추가하였다. 인류 사회는 주요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 냈다. 책의 후반 3분의 1에서는 혁신을 둘러싼 사실의 일반화를 전개한다.

혁신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 오랜 시간의 발견과 지식이 축적되면서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어느날 갑자기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혁신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다듬어지는 것이다. 실패가 없이 찾아오는 완성된 혁신은 가능하지 않다. 기존에 알고 있던 상이한 범주의 지식을 새로이 조합하면서 혁신의 아이디어가 탄생한다. 다양함을 허용하는 문화가 아이디어의 탄생을 촉진한다. 혁신은 팀워크의 소산이다. 특정 발명가가 단독으로 해내는 혁신이란 신화이다. 중앙집중의 강력한 권력이 지배하는 정치에서보다 여럿으로 나누어진 권력 환경이 혁신을 탄생시키는 들어내는 데 유리하다. 왜냐하면 모든 혁신은 기득권자의 반발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혁신은 과거보다 더 적은 자원으로 더 많은 산출을 만들어내는 길이다. 경제성장의 열쇄는 혁신에 있다. 혁신이 없다면 경제성장은 중단될 것이다. 생산요소를 증가시키는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혁신은 과학의 발전보다 선행한다. 과학은 혁신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발전한다. 혁신은 도태되는 분야에서 실업을 유발하나 새로 탄생하는 분야에서 고용을 늘리기 때문에, 전체로 보면 사람들이 전에 못지 않게 일하면서 더 많이 생산하는 사이클을 형성한다. 혁신을 통해 사람들의 노동 시간은 점차 줄어든 반면, 노동의 질은 높아졌다.

혁신은 항시 반발을 유발한다. 혁신은 기득 이권을 허물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새로운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항시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반발하는 행위를 업으로 하여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근래에 서구 사회에서도 혁신을 막는 경우는 흔히 발생했다. 유럽에서 유전자변형식물 GMO를 막는 것이나, 핵발전을 막는 것이나, 유전자 편집을 통한 개량종의 탄생을 막는 것이 그것이다. 핵발전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서 핵발전 기술이 시행착오를 통해 개량되는 길을 막아버렸다. GMO나 유전자 편집을 막는 것은 이념적인 이유와 더불어 환경단체를 포함해 이를 반대하는 집단의 이익 때문이다. 모든 가능한 위험을 고려해 새로운 혁신을 평가해야 한다는 원칙은 혁신을 막는 길이다. 기존의 것들도 위험과 이익의 균형 속에서 존재하는데, 새로운 혁신에 대해서만 혁신이 가져올 이익은 도외시하고 가상적 위험에 큰 비중을 두어 평가하는 정책은 기득이권을 보호하는 방편에 불과하다. 혁신을 일단 수용하면서 유발되는 위험에 대해 시행착오를 통해 수정해나가는 태도가 혁신의 탄생을 촉진하는 길이다. 혁신이 그것이 유발할 가상적 위험에 철저히 안전하다는 것을 혁신자에게 입증하도록 요구하는 제도는 혁신을 질식시킨다. 혁신은 불완전한 과정의 연속 속에서 시행착오를 통해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에 대해 항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체제를 버리고, 새로운 것은 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체제로 바꿀 때 혁신이 촉진된다. 유럽이 전자에 해당하며, 미국이 후자에 해당한다. 유럽이 새로운 것을 사사건건 규제하기 때문에 근래에 일련의 기술 혁신 과정에서 유럽은 미국에 크게 뒤쳐졌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고 싶은 인재는 유럽을 버리고 미국에 간다.  혁신은 사람들 사이에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실험을 허용하고 시행착오를 장려하고 실패에 관대한 사회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현재의 엄격한 지적재산권은 혁신을 막는 역기능을 낳았다. 지적 재산권은 혁신의 이익을 보호함으로서 혁신이 만들어지는 것을 촉진한다는 원래의 취지와 달리, 혁신자의 아이디어 소유권을 지나치게 보호함으로서 혁신의 확산과 후속 개량 작업을 가로막는다. 혁신을 추구하는 동기는 금전적 이익도 있지만, 혁신을 추구하는 행위 자체가 가져오는 성취감 때문이다. 혁신은 오랜 기간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특정 개인에게 혁신의 소유권을 전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혁신의 소유권을 제한할 때, 혁신의 확산과 개량이 더 넓게 더 빨리 이루어지는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20세기 후반 들어 혁신이 둔화되고있다는 주장에 저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컴퓨터와 통신기술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냈으며, 유전자 편집기술은 농업혁명과 의료 혁신을 가져왔다. 이러한 기술은 앞으로 더 발전할 것이다. 앞으로 30년 후의 세상은 이러한 혁신 덕분에 지금보다 나아져 있을 것이다.

저자는 철저한 연구를 바탕으로 통찰력을 제시하는 글을 쓰기에 그가 내는 책은 번번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 역시 혁신에 대해 전반적 조망과 함께 통찰력을 제시한다. 자유와 다양성을 허용하는 사회가 궁극적으로 융성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제시한다. 유럽이 왜 미국에 뒤쳐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2020. 3. 4. 22:01

James Surowiecki. 2004. The Wisdom of Crowds. Anchor Books. 282 pages.

저자는 잡지 뉴욕커의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하였다. 지역 축제에 말의 체중을 알아맞추는 게임에서 군중의 추측을 평균한 값이 참값에 놀랄만큼 근접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군중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의 판단보다 더 낫다는 주장을 편다.

군중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의 판단보다 나으려면 몇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군중의 지적 배경이 다양해야 한다(diversity).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소유한 사람들이 지혜를 합칠 때, 소수의 전문가보다 더 풍부한 정보 자원을 동원할 수있기에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둘째, 군중의 사고과정이 서로 독립적이어야 한다(independence).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을 모아도 소수의 자원밖에는 활용할 수없다. 집단 토론을 거치면서 사람들의 편견은 증폭되므로, 사람들이 서로 영향을 끼치면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보다 더 극단에 치우칠 수있다. 권위적 위계 때문에, 집단토론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원활하게 의견을 소통하지 않고, 상위자의 의견이 좌중을 압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집단 구성원의 사고 과정이 독립적이지 않다면 군중의 지혜는 작동하지 않은다.

셋째, 집단의 의견을 수렴할 수있는 유효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aggregation). 집단의 의견이 효과적으로 수렴되지 못한다면 집단의 지혜는 발현될 수없다. 산술적인 평균 이외에 집단의 의견을 수렴하는 다양한 사회 장치가 있다. 시장기구가 대표적이며, 민주주의의 투표 제도, 구글의 서치알고리즘, 스포츠나 경마의 베팅 사이트, 등이다. 저자는 의사결정시장(decision market)을 유용한 의견 수렴장치로 제시한다. 주요 선택지에 대해 참가자의 선택이 상대 가격으로 표시되는 제도이다. 참가자들의 결정을 반영하는 선택지의 가격은 참가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관련 주제에 전문가나 혹은 회사의 구성원이 참가자로 등록하여 그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가격 기구가 만들어진다면 개개 전문가나 조직 구성원의 다양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있다. 단적인 예로, 일반인이 참여하는 의사결정시장을 통해 선거 결과를 예측했을 때, 전문가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군중의 의사결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면 정보의 쏠림(information cascades)이 발생할 수있다. 최초 결정자의 의견을 뒤에 사람이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타인을 모방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뒤에 사람들은 앞에 사람들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뒤로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따르게 된다. 극단적인 예가 주식시장의 거품현상이다. 

군중의 지혜를 모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때로는 군중이 서로의 행위를 조정하지 못하여 실패 혹은 비효율을 만들기도 한다. 교통 혼잡, 주식시장의 거품이 단적인 예이다. 

과학 활동은 다수의 협동으로 이루어진다. 즉 다수가 서로 경쟁하면서 지식을 얻는 일에 매진하는 가운데 과학이 발전한다. 근래로 올수록 단독으로 새로운 지식을 발견하기 어려우며, 지금까지 쌓아 올려진 탑 위에 새로운 무엇을 추가하는 과정이 과학 발전이다.

현장에 가까운 사람들이 현실을 더 잘아는 반면, 위계의 상위로 올라갈 수록 현실에서 멀어진다. 따라서 문제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밑으로부터 의견이 수렴되는 것이 위로부터 밑으로 지시를 하는 방식보다 낫다.  위로부터 밑으로 지시를 하는 방식으로 조직이 움직이는 것은 현실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려는 목적 이외에 다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CEO가 엄청난 보수를 받는 것은 그의 결정이 회사의 문제를 푸는데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은 아니다.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민주주의가 전문가에 의한 지배보다 낫다. 전문가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보다 낫다는 그의 주장은 서구 사회의 기본 가치에 반하는 주장이므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지도자와 영웅을 추켜세우는 역사관을 주입받으며, 전문가가 보통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이 상식이다. 보통사람 다수의 지혜가 소수의 전문가나 지도자보다 낫다는 그의 주장은 반지성적, 반권위적으로 들린다. 저자는 후기에서,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사람들의 의견을 효과적으로 수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졌으므로, 군중의 지혜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그의 예언은 맞지 않았다. 두가지 이유때문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전문가와 지도자가 자신의 권력을 훼손하는 의사결정 방식을 좋아하지 않기때문이다. 군중의 지혜에 기반해 의사결정을 한다면 현재와 같이 전문가와 지도자가 후한 보상을 받는 체제의 정당성은 뿌리에서부터 흔들릴 것이다. 둘째는 문제가 복잡해 질수록 일반 사람들은 내용을 전혀 모르기에 전문가를 동원해야 할 경우가 늘어난다. 전혀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리 잘 수렴해도 전문가를 당해낼 수 없다. 물론 많은 의사결정 사안은 일반사람들이 전혀 내용을 모르기때문에 전문가나 지도자가 의사결정을 독점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정부에서 국민 참여 토론회를 통해서 복잡한 문제에 대한 답을 도출하려는 것이 반드시 옳은 방식인지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이 책은 뒤로 갈수록 서술이 장황해지는 결점이 있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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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 3. 17:17

Victor W.Hwang and Greg Horowitt. 2012. The Rainforest: the secret to building the next Silicon Valley. Regenwald. 282 pages.

벤쳐 캐피탈리스트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와 밴쳐 업계를 분석한 책. 저자는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천연림(rainforest)와 같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구성원이 기존의 관행에 얽매지 않고 서로 자유로이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 받다보면 우연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것이 창출되는데, 이는 마치 천연림에서 잡초가 자라나는 것과 같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이것이 사업으로 성사되기까지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서로 연결되어 협력해야만 가능하다. 캘리포니아의 실리콘 밸리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많으며 이들 사이에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용이하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데 성공한 기업이 탄생할 수 있었다.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드는 데에는 다양한 자원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서로 소통과 협력을 쉽게 하도록 할지가 관건이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좁은 범위의 집단 내에서만 소통을 하며 집단을 건너서는 적대적이다. 지역, 인간관계망, 문화, 언어, 불신 등에 의해 제한된 사회적 장벽은 집단간 접촉의 거래비용(transaction cost)를 높이기 때문에 생산적 소통이 만들어지기 어렵다. 다양한 자원을 가진 주체들이 서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유용한 자원을 교환할 때,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증명하듯이, 교환에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에게 이익이 돌아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다양한 자원을 보유하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구성원이 있다. 집단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사람 혹은 핵심적인 기관이 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밴쳐 자본가, 컨설팅 회사나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 변호사 등이 이런 위치에 있다. 다른 하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사업가이다. 이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성향이 있으며, 다양한 정보를 흡수하여 조합하고 적용하며,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이 잘 축적되어 있으므로 구성원들이 서로 쉽게 관계 맺우며 도움을 주고 받는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합리적 경제 원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는 도정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고 무모할만치 엄청난 노력을 투입해야 한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합리적 동기보다는 비합리적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이들은 성공의 확률이 지극히 적음에도 무모하리만치 열심이다. 그들을 움직이는 비합리적인 동기는 다음과 같다. 경쟁의 스릴, 남을 돕는다는 이타적 정신, 모험에 대한 갈망, 새로운 발견과 창조의 즐거움, 미래 세대에 대한 염려, 삶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희망, 등이 그것이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는 제로섬 관계가 아니라 관계하는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오도록 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다. 기존의 규칙을 깨뜨리고 새로운 꿈을 꿀 것,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에게 귀기울일 것, 상대를 신뢰하고 신뢰받을 것, 실험하고 또 함께 실험을 반복할 것, 모두에게 공정하고 상대를 이용해먹지 않을 것,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끈질기게 지속할 것,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제공할 것, 등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를 지배하는 규율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러한 생태계를 새로이 구축할 것인가인데, 소수의 핵심적인 사람들이 이러한 규율에 따라 실천을 한다면 점차로 이러한 규율과 문화가 확산되면서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생태계는 외부로부터 전체적으로 주입될 수 없다. 구성원이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의 행위양식을 직접 실천하는 가운데 그들의 사정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먼저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 행위를 하면 주위 사람들이 이를 배우고, 이러한 행위와 배움이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면, 이를 따라 롤모델이 형성되고, 신뢰가 통하는 집단의 범위가 넓어질 것이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단순히 자본을 제공하는 역할에 그쳐서는 안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으로 성공하려면 생사를 좌우하는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하는데, 일반 투자가가 투자 수익만을 보고 이러한 과정에 자본을 참여하기는 어렵다. 밴쳐 자본가는 신생 기업가에게 사업이 성숙해가는 과정의 단계마다 그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조언과 도움을 제공하여 성공의 확률을 함께 높여 나가야만, 그의 투자가 결실을 거둘 수있다. 정부의 자금 지원은 이 초기단계의 투자를 가능케 하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을 뿐이다. 돈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성사시키는 일이다.

왜 미국의 서부에서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가 처음으로 생겨났을까? 미국은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와 세운 나라이며, 서부는 미국 내에서도 동부의 기득권과 전통을 뒤로 하고 새로운 기회와 모험을 찾는 사람이 가는 곳이다. 서부에서는 그가 어떤 배경을 가진 누구인지(who you are)가 중요치 않다. 대신 그가 무엇을 하는가(what you do)가 중요시되는 사회이다. 미국의 서부는 세계에서 집단 종족주의(tribalism)가 가장 약한 곳이다. 따라서 이곳에 다양한 자원의 사람이 모여들고, 서로간에 자유로이 소통을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우연이 개입되면서 새로운 무엇이 만들어지기 쉽다. 

이 책을 읽으면 밴쳐 사업에 깊숙이 간여한 사람이 풍기는 열정이 느껴진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생태계에 참여한 사람 모두는 이러한 열정과 순수함이 없다면 밴쳐 사업은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열정은 전염된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열정의 씨앗이 퍼져 뿌리를 내리면 그 주변으로 조금씩 새로운 실리콘 밸리가 만들어질 수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시장의 원리만으로 안되고, 정부의 지원만으로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찾고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이 있기에, 어디에서건 실리콘 밸리가 조성될 수는 있다. 새로운 것에 개방적이고,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나 지역이 새로운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가장 크다.

이 책은 체계적인 분석서라기보다 실천가의 견해를 피력한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제시하는 메시지는 그리 복잡하지 않으며, 비유를 많이 들어 반복적으로 설명한다. 이론은 쉽지만 실제 그것을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2019. 9. 13. 10:50

Wilber Zelinsky. 2001. The Enigma of Ethnicity: Another American Dilemma. University of Iowa Press.

문화지리학자인 저자가 미국의 인종민족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를 분석한 학술서이다. ethnicity 는 우리말로는 번역이 안되는는데, 특징이 구별되는 집단을 ethnic group 민족 집단이라 하고, 그렇게 스스로 구별하고 주변 타자들이 구별을 짓는 특성을 ethnicity라 한다. ethnicity 는 주류 집단이 타자를 구분짓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주류 집단인 영국계는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을 민족 집단으로 구별짓고 편견과 차별을 가하였다. 독일계, 북유럽계,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랜드계, 유대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영국계 자신에 대해서는 이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ethnicity는 집단간에 권력의 차이, 위계적인 질서를 반영한다. 유럽의 영국이외 지역 출신의 이민자 후손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에스닉 집단이라는 오명이 붙었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백인 미국인이라는 개념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즉 ethnicity 가 탈색되고 주류 집단으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다면 1970년대 이래 ethnicity에 관심이 높아지고 유럽의 다양한 민족 출신, 특히 이탈리아계나 아일랜드계 후손들이 자신의 민족성에 다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는 symbolic ethnicity 상징적 민족성일 뿐이다. 이는 삶의 조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문화적 취향을 취사선택하는 것, 즉 개인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에 불과하다. ethnicity 와 함께 따라다니던 열등함이 사라졌기 때문에 마음편히 택할 수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의 구속력은 미약하다.

중남미계, 아시아계, 특히 흑인들의 경우 ethnicity 의 구속은 가까운 시일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설사 사회경제적으로 백인 주류에 동화한다고 하여도,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적 특성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는 명찰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는 인종주의를 쉽게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종주의는 백인에게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백인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까운 시일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되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퍼지면서 민족 문화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풍조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문화를 진정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가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정 집단의 문화는 그 집단의 권력관계에서의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권력을 주도하는 집단과 이에 대응하는 하급의 집단이 존재하며 이는 문화적 다양성에도 투영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주류와는 다른 소수자의 문화가 특이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그것이 주류가 아니고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80년대 이래 특정 지역과 연관되지 않고 여러 문화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새로운 다문화 개체가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민족, 이인종간에 결혼이 증가하고, 이민자들이 본국과 미국의 양쪽에 발을 디디고, 이민초기부터 지위가 높은 직업에 종사하고, 이민자 밀집 거주지를 형성하지 않고 흩어져 살면서, 서로간에 사회문화적 교류를 하는 집단은 미국의 백인주류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소수자 민족집단의 전형에도 맞지 않는다.이들은 분명 주류와는 다른 ethnic group이지만 그렇다고 열등한 성격의 ethnicity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다양한 민족들이 이민을 오고 서로 섞이면서도 변형되고 약화된 형태로 자신들의 다양성을 지속해 가는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특정 주류 집단과 피로 연결된 이념적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구심점은 계속 유지될 것이지만 관습, 가치관, 음식문화 등은 다양한 민족 문화가 섞이면서 변형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강점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물론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미국 문화의 구성은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반발하는 백인들의 움직임 역시 강해해지고 있지만, 이들이 미국 문화의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낙관주의자이면서 미국을 사랑하는 감정이 연구에 녹아있다. 이 책은 학술적 분석서이기는 하지만, 미국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학식이 녹아 있다. 저자는 정말 많은 사례를 구구절절 나열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미학을 표현한다. 물론 그의 낙관적인 예상이 단기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있다. 도날드 트럼프의 예에서 보듯이. 장기적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주는 체제의 강점을 계속 살려나갈까? 저자는 다양성을 긍정적으로보지만, 유색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달가운 명찰이 아니다. 백인의 반발이 큰 폭력 없이 다양성의 확대라는 흐름으로 흡수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서 보듯이, 권력 다툼의 장에서는 평화적 타협과 조화라는 결과는 역사상 예가 없다.  미국의 백인이 ethnic group의 일원으로 바뀌는 것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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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15. 22:26
   일전에 미대사관으로부터 현재 주한 대사인 스티븐스의 사진집을 받고 간담이 서늘해진 일이 있다. 그 사진집에는 그녀가 1970년대 중반 순수한 처녀시절에 한국에 평화봉사단으로 와서 예산의 한 시골 학교에서 머물면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녀는 그당시 가난하나 소박하게 살아가던 우리나라 농촌의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한국과 그 사람들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 한국의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던 그녀가 3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대사로 우리나라에 온 것이다. 그 사진을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마치 그녀가 나의 과거를 꿰뚤어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근래에 미국 대학생들 중에 재학 중 일이년을 해외에 나가 공부하면서 현지인의 생각과 관습을 체험하고 익히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 그곳의 대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현지인의 입장에서 중동 문제와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을 익히는 미국 학생이 늘고 있다. 이들은 미국 내에서 계속 있었더라면 도저히 얻을 수없는 통찰력을 얻으며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에 돌아가면 중동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문제해결을 위하여 다른 방식의 접근을 할 수있으리라는 섣부른 자신감도 내비친다.

  일전에 미국에서 한달간 방을 임대해서 머물렀던 적이 있다. 집주인이 인도계 캐나다인으로 수년전에 미국으로 이민와서 은행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친척은 인도, 캐나다, 미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하는데, 전화할 때 보면 대화 상대에 따라 인도말을 쓰기도 하고, 영어를 쓰기도 하고, 때때로 스페인어를 쓰기도 한다. 그의 고객 중 중남미계 이민자가 많아서 스페인어를 배웠으며 직장에서는 종종 스페인어를 쓴다고 한다.

   미국에는 그야말로 세계 구석구석에서 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미국에 가기 전에는 들은 적도 없는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이나 중앙아시아 사람을 여럿 만났다. 이들은 미국인이 되고자 열심이다. 다양성이 극에 달하면 문제도 많겠지만, 다양성은 미국을 활력있는 나라로 만든다. 세계화 시대에 자신의 국민 중에 세계 곳곳에 연결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힘이다. 한국과 거래하는 데 한국을 잘 아는 한국계 미국인을 활용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현지인의 생각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 세계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보수적인 미국인도 많다. 미개한 현지인의 말과 생각은 그저 무시하고 눌러버리면 그만일 뿐, 군사적인 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소위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미국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오면 우방이고 아니면 적이라고 생각하니 더 무슨 말을 하랴. 중동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그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데 불편하기만 할 뿐이라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상대를 잘 아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다.
미국은 세계 각양 각색의 사람들을 자신의 국민의 일부로 흡수하며, 미국 사람 중에는 세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현지인의 생각과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힘은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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