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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에 해당되는 글 8건
2019. 5. 18. 22:24

Jonah Lehrer. 2009. How We Decide. Houghton Mifflin Harcourt. 265 Pages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결정하기란 어렵다. 특히 문제가 복잡해 질 수록 결정하기가 어렵다. 선택지가 많거나 관련되어 고려해야할 변수들이 많을 수록 어려워진다. 당면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많이 생각할수록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 주장이 과거에는 지배했다. 플라톤이나 칸트와 같은 이성주의자들의 견해가 그것이다. 그러나 장고끝에 악수둔다는 격언이 있지 않은가? 저자는 과거의 철학자들이 이성을 우선시하고 감정을 비이성적인 것으로 치부한 전통에 반기를 든다. 근래에 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의 행위에서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옹호한다.

저자는 그 분야에 오랜 훈련을 쌓은 전문가들의 경우 많은 변수가 연관된 복잡한 문제를 대했을 때 이성보다는 느낌 혹은 직관이 더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 영역에서 오래도록 경험을 축적했을 때, 그들이 문제를 접하여 받는 느낌이란 다름 아니라 복잡한 정보를 처리한 결과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은 동시에 다양한 정보를 처리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문제가 복잡해질 경우 처리 능력에 제한에 부닥쳐 오류를 만들어 내는 부실한 컴퓨터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은 오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고도의 컴퓨터이기 때문에 이성의 정보처리 한계를 뛰어 넘을 수있다. 우리의 감정이 이렇게 고도의 정보처리 컴퓨터가 된 것은 진화의 산물이다. 감정은 우리의 생존에 근접한 문제일수록 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을 발휘하도록 진화의 과정을 통해 발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정이 항상 올바른 결정으로 유도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복잡하지 않을수록 이성적으로 따지는 것이 효과적이며, 과거에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문제일수록 이성적으로 깊이 파고드는 것이 창의적인 접근방법을 찾아내는 데 효율적이다.  반면 문제가 복잡해 질수록 전문가의 느낌이나 직관이 큰 통찰력을 발휘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전문가의 오랜 경험과 축적된 지혜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신이 범한 오류를 반추하여 개선할 점을 생각해 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혜를 축적하게 된다. 저자는 오류를 분석하여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생각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인간을 동물보다 앞서게 하는 비결이다. 

이 책의 장점은 무수한 예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있게 쉽게 이해할 수있도록 제시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다양한 예가 나오는데 이러한 예들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친숙한 것들이다. 이 책에서 거론되는 대표적인 예로는 비행기 조종사의 결정, 풋볼 선수가 필드에서 벌이는 결정, 포커 선수가 포커판에서 전개하는 결정, 일반 사람들이 마트에서 쇼핑할 때 하는 결정, 자동차나 집을 구입하는 결정,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의 결정, 등이다. 이러한 예들은 거의 모두가 학술적인 연구결과와 함께 엮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최근의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를 종횡무진하게 인용한다.  

근래에 연구의 조류가 감정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은 흥미롭다. 사실 감정이란 이성과 달리 그 과정을 분석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신경과학과 진화론을 결합하여 인간의 감정도 이성 못지 않게 충분히 효과적이고 유력한 문제해결 능력을 품고 있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묘미이다. 그러나 무모한 감정적인 대처는 그야말로 무모함일 뿐이다. 오랜 경험과 반추를 통해 쌓여서 만들어진 능력은 감정의 영역일까 이성의 영역일까? 이 책은 이성과 감정을 양분하는 지적 전통은 틀렸다고 말한다.   

저자의 직업이 과학 기자라는 점이 백퍼센트 발휘된 결과물이다. 그 많은 연구들을 들여다보고 주변의 예들을 수집한 저자의 부지런함에 놀라지 않을 수없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흥미있는 한편으로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2019. 5. 7. 16:27


어제는 힘든 하루였다. 하노버를 아침 7시에 떠나는 버스에 맞추어 일찍 터미널에 나갔으나 버스는 80분이나 연착했다. 버스에 타서도 고속도로가 막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네덜란드의 그로닝엔에 도착했다. 고속도로가 긴 구간에 걸쳐 한 방향을 막고 전면 재포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중간에 휴게소에서 45분이나 쉬었는데 운전사가 자신이 오늘 아침 6부터 운전을 했기 때문에 이제 쉬어야 한다고 하면서 휴게소로 들어갔다. 도중에 회사와 전화를 하여 다음 교대자와 연락을 취하는 것 같은데 차가 막혀 교대자가 있는 도시까지 갈래면 아직 멀었던 것이다. 승객들은 아무도 군소리를 하지 않고 차에서 얌전히 기다린다. 숙소에 빨리 가도 특별히 할일은 없었으나 여행이 막바지로 다가가면서 몸과 마음이 지친 것 같다. 허리가 뒤틀리고  차창 밖의 풍경이 마음에 다가오지 않는다.
앞으로도 가야할 여정이 많이 남았다면 그리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한동안 마라톤을 뛴 일이 있다. 21킬로의 하프 마라톤을 여러해 동안 봄가을로 대회에 참가하여 뛰었는데 마지막 몇킬로가 무척 힘들었다. 반환점을 돌 때까지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뛰고 일단 반환점을 돌면 뛰는만큼 종착점에 가까워지는 것에 힘을 얻어 뛴다. 그런데 종착점이 이삼킬로 앞으로 다가오면 이제 얼마 안남았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어져서인지 무척 힘들다. 그야말로 마지막 피를 짜내는 기분으로 어찌어찌 하여 끝낸다. 마라톤을 뛸 때마다 출발선에 서면 매번 끝까지 뛸수 있을지 불확실하여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로닝겐 숙소에 도착해서는 마음이 푸근해졌다. 이제 길을 헤메는 일은 끝났다. 이곳에서 이틀 밤을 묵으며 책을 읽고 산보를 하며 슬슬 지내다 버스로 두시간 거리에 있는 암스텔담 공항으로 출국하면 된다. 다행히 이곳 숙소는 편안한 분위기이다. 오래전에 문을 닫은 것같은 공장 마당에 콘테이너를 들여와 숙소로 개조했다. 숙소가 세개의 콘테이너이고 콘테이너 두개를 마주 이어 붙인 것이 거실겸 부엌이다. 이외 화장실겸 샤워를 하는 콘테이너 하나와 창고와 주인이 잠을 자는 콘테이너가 따로 있다. 주인은 30살쯤 되보이는 젊은 여성인데 이곳을 끔찍히 아끼는 것같다. 내가 묶은 콘테이너 안에도 액자와 작은 화분이 여러개 있다. 저녁 9시가 넘어서까지 거실에서 책을 읽었는데 그녀의 남자 친구가 찾아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다. 그가 가고 나서는 라디오를 듣고 뜨게질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침에 눈을 떠서는 이곳에 바로 인접한 공원에 갔다. 입에 김이 서리고 손이 시리지만 견딜만하다. 공원은 꽤 넓었다. 간간이 개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을 마주칠 뿐이다.  이 나라가 물을 잘 관리한다는 사실은 공원에서도 보인다. 사방으로 좁은 실개천과 연못이 있다. 연못위로 아침햇살을 받으며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사슴 수십마리를 기르는 곳이 보인다. 야생 닭 비슷한 것도 함께 있는데 사슴과 닭이 함께 지내는 데 문제가 없다. 공원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려고 노력하여 쓰러진 나무에서 이끼가 자라고 수풀이 우거져 있었지만 세심하게 관리한 흔적이 엿보인다. 길이 질척이는 곳은 두꺼운 철판을 깔아 다니기 편하게 해 놓았고 길과 실개천이 만나는 곳곳에 콘크리트로 납작한 원기둥 모양의 징검다리를 놨다.
인생에는 답이 없다. 열심히 일하고 힘들면 쉬고 일상에 지치면 기분전환삼아 여행을 하며 원기를 회복하면 다시 일에 몰두하는거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뒷정리를 하며 마음이 지치고 힘들었다. 아이가 독립하여 떠나고 허전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일에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불확실한 미래를 직시하며 열심히 살아야 한다. 슬슬 사는 것은 없다. 죽거나 까무러치거나 하는 마음으로 정신 똑똑이 차리고 살라는 어머니의 말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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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6. 23:13


그예 버스를 놓쳤다. 아침 10시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삼십분이나 전에 나갔고 내가 타야 할 버스를 바로 눈 앞에서 빤히 바라보았음에도 그 버스가 출발하고 정류장에 사람들이 다 빠진 후에야 그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였음을 깨달았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여러 요인이 겹쳤다. 간이 버스 터미날이라 안내가 부실한 점, 버스 전면에 보통 주요 중간 경유지를 디지털로 안내하는데 이 버스는 최종 도착지만 프린트로 붙여 놨다는 점, 운전사가 사람들에게 빠른 독일어로 중간 경유지를 외치는데 나는 전혀 알아 듣지 못한 점, 내 주변에 아랍어를 하는 흑인 청년 세명이 어찌나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법썩을 떨든지 주의가 분산된 것 이다. 그들 중 한명은 버스에 몰래 탑승하였으며 어떻게. 운전사가 알았는지 버스가 출발한 후에 다시 돌아와 그를 내려놓았다.
 
무엇보다 나의 선입견이 작용하여  똑바로 인식하는 것을 막았다. 나는 하노버로 가려고 하는데 버스는 뒤셀도르프가 행선지로 표기되어 있었다. 내 머리 속에서 뒤셀도르프는 드레스덴의 서쪽에 있고 하노버는 북쪽에 있기 때문에 버스티켓에 뒤셀도르프 행이라고 표기되어 있고 그것을 확인했음에도 잊어 먹었다. 버스를 놓치고 버스 회사의 사무실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그 버스가 하노버를 지나 뒤셀도르프로 돌아가는 것이 맞단다. 버스 팃켓을 환불하고 두시간 뒤에 출발하는 버스 표를 새로 샀다. 이 Flixbus는 출발시간에 가까울수록 또 자리가 찰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창구에서 구입하면 구입수수료를 3 유로 추가로 내야 한다. 독일회사 답게 무섭게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원래  버스표를 34 유로에 샀는데 추가로 20 유로를 더 내고서야 다음 버스표를 살 수있었다. 계원은 나의 사정을 듣고 동정을 표했지만 원칙대로 철저히 처리한다. 12시에 파리를 향해 출발하는 버스를 이번에는 제대로 타고 하노버에 6시가 넘어 내렸다.
하노버는 북부의 상업 도시인데 독일의 주요 도시들이 다 그렇듯 도심의 건물이 모두 현대식이다. 2차 대전에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어 새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옛모습을 보이는 건물도 있는데 이는 전후에 복구하면서 옛 건물의 외관을 살려 재생한 때문이다. 독일은 방문할 때마다 감탄한다. 가로가 잘 정돈되어 있고 조그만 것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효률적으로 마련해 놓았다. 사람들은 규칙을 잘지키며 성실하게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엉뚱하게 사기를 치려 하지 않으며 서로간에 신뢰도가 높다. 국토가 넓어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물가가 싸고 공간이 넓고 녹지가 많다. 이런 조건이 모두 만족되니 풍요롭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 대학 등록금은 무료이고 어느 도시를 가던 균등하게 삶의 질이 높다. 서구의 나라들 중 가장 살기 좋은 나라를 꼽으라면 단연 독일을 꼽겠다. 북구의 나라들도 독일과 유사한 분위기이나 그곳은 겨울이 길고 춥고 낮이 짧아 삶이 힘들다. 영국은 계급차이가 두드러져 마음이 편치 않다. 노동계층을 향한 중류층의 젠체하는 모습과 그들을 향한 노동계층의 적의와 자조적 태도는 지켜보는 나를 씁슬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마져. 든다. 프랑스는 오래 살아보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감정적이며 합리성이 떨어져 독일만큼 풍요롭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많이 보인다. 미국은 개인의 자유를 다른 사회보다 지나치게 강조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 빈부의 차가 심하고 인종주의가 강하여 백인 중산층이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은 힘들게 살아야 한다.
독일 사회를 볼 때마다 감탄하지만 오늘 경험했듯이 이 사람들은 원칙을.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외부인인 나에게 냉담한 인상을 풍긴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한국과 같이 사람들이 감정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고 엉터리로 두리뭉수리 넘어가려고 하고 눈뜨고 코베일 까봐 조심해야 하는 사회와 독일은 정반대이다. 이사람들도 코너에 몰릴 때는 극단적인 행위도 한다. 유태인을 말살하려 했으니 말이다. 미국의 백인들처럼 인종주의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아리안 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은 이들의 심성 밑에 깔려 있다. 그들에게 무엇을 물어보면 친절하기는 하지만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인상을 받아 그리 마음이 편치 않다.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우월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숙소를 어렵게 찾아가니 이곳은 여행자를 위한 호스텔이라기보다 싸구려의 외국인 노동자 숙소이다. 공용 공간이 전혀 없이 침대만 여러개 있는 방과 공동 화장실겸 샤워실이 전부이다. 방에서도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거나 말을 섞는 법이 없다. 큰 트렁크가 침대마다 옆에 놓여 있고 옷가지와 잡다한 물건들이 주변에 흩뜨러져 있는 수가 이들은 여행하며 잠시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집을 떠나 이곳에서 일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중에 한국인 청년도 있었다. 한국을 떠난지 일년 반쯤됬다고 하는데 그 동안 어학원에서 독일어를 배웠으며 내일 중요한 취업 면접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전기 계통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도 이곳에 있는 다른 사람과 같은 행색이다. 별로 예의를 갖출 생각을 않고 방에서 빤스 바람으로 지내며 큰 소리로 전화를 오래 한다. 동구에서 온 다른 사람도 그의 아내와 이야기하는 것인지 큰 소리로 전화를 한시간 이상이나 해서 내가 나가서 하던지 혹은 목소리를 낮추어 달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더니 나보러 나가라고 하며 화를 낸다. 힘들게 사는 사람이구나 치부하고 더이상 괘념하지. 않았다. 삶이 힘들면 예의를 갖추는 것은 사치이다. 독일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규칙을 잘지키고 자신의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한다면 어느 사회나 이렇게 될텐데 하고 생각하며 다시금 부러워했다. 독일은 내 마음속에 진정한 선진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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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5. 13:28


아침 8시 좀 넘어 버스에 올라 3시 경에 독일 드레스덴에 도착하다. 중간에 프라하에서 버스를 갈아타느라 한시간을 기다렸다. 프라하는 몇년 전에 방문했는데 사방에 건물이 올라가고 활기차다. 체코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대부분의 구간에서 포장공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동유럽이 빠르게 발전하는 것을 실감했다. 
오늘 아침에 하마터면 버스를 놓칠 뻔했다. 아침 산책을 하다보니 숙소에서 좀 떨어진 옛 성까지 가게 되어 이를 둘러보느라 지체된데다가 어제 통성명을 한 싱가포르에서 온 청년과 대화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호스텔 부엌에서 아침을 먹고 있는데 그도 아침을 먹으려 들어와 함께하였다. 그는 영국 대학에서 전기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박사 논문을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체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박사를 받고 일자리를 찾는 문제로 그와 길게 이야기 했다. 싱가 포르로 돌아가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문제 없으나 가급적 유럽에서 취직해 한 동안 일하다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단다.
문제는 유럽 시민이 아니면 좋은 일자리를 잡기 힘들다는 것이다. 일전에 스웨덴 연구소에서 만난 중국인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똑똑하고 적극적인 여성이었는데 결국 벨기에의. 조그만 대학에. 일자리를 구하긴 했지만 아쉬워했다. 이 청년은 영국에서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현재 폴란드에서 인턴을 하고 있단다. 박사를 받으면 본격적으로 일자리를 잡으려 하는데 폴란드에서는 영어만으로는 의사소통에 한계가 있어 정착을 주저하고 있었다. 폴란드는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일자리를 잡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모양이다. 어제 숙소에서 만난 또다른 폴란드 청년은 현재 ING 은행에서 일 하고 있는데 그도 기회가 닿으면 서유럽 직장으로 옮기고 싶어했다. 현재 다니는 직장이 국제적으로 유명한 회사 아니냐니까 서유럽에서 일하면 훨씬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단다.
싱가포르 청년과 이야기하다 그가 내게 어떻게 현재 일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 이야기가 길어졌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을 때 미래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아무런 아이디어가 없었다. 그당시에는. 취업하는 것이 쉬웠기 때문에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내가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사람을 많이 접하고 사람들과 부대끼는 일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세일즈맨을 지원했다. 부서 배치를 받을 때도 지원기능을 담당하거나 혹은 대규모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보다  중소기업 제품을 팔면서 사람을 많이 상대하는 일에 배속되었다. 덕분에 회사 생활이. 온통 잔국을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 씨름하는 일로 채워졌다. 그가 물었다. 왜 4년이상이나  그 일을하다 직업을 바꾸었냐고. 그는 중간에 중단 없이 학업을 계속하여 올해 30세에 박사를 받게 되었는데 그도 한 때 취직할까 망설였던 모양이다.
직장에서 한가지 일을 3년 정도 하니 웬만큼 길이 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감이 왔다. 사람들이 무엇에 울고 웃으며 왜 갈등하고 일이 결국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된 것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고 무모한 청년이었지만. 그래서 본격적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할 수 있게 됬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어찌 전개될지 생각했는데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세일즈맨으로  실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주위에 중소기업 사장들을 보며 나중에 독립해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가기로 마음을 먹고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출장을 다니면서 영어단어를 외어 시험을 봤는데 나쁘지 않은 성적이 나왔고 몇몇 미국 대학에 지원했는데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이 있어 돈 문제도 해결되었다. 결혼 문제도 해결하고 가고 싶어 주위에 여자를 소개해 달라고 광고를 했지만 그일은 결국 해결하지 못하고 유학길에 올랐다. 유학 자금을 집에서 조금이라도 댈 수 있었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유학을 갈 마음을 먹었을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완전히 막혀 있다고 생각했기에 취직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훗날 내가 제출한 유학관련 서류를 보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영어가 엉망인데다가 내용이 부실하여 아것을 보고 어떻게 나를 선발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지금까지 살면서 중요한 인생의 갈림길이 있었다. 후회하는 일들이 여럿 떠오르지만 그중 가장 최근의 것은 유학을 가기로 결정하고도 회사를 계속다녀  유학준비를 부실하게 해서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이다.  내가 전공한 사회학은 대학에 취업 하기 어렵다. 박사를 받고 미국에서 취업하는 것이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학교 평판에 따른 차별이 더욱 커서 결국 내 전공으로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인정에 끌려 막판까지 일하다가 미국 대학 학기가 시작하는 9월을 한달 앞두고야 직장에서 나왔다. 나중에 나의 관심은 사회학보다 경제학이 더 맞고 경제학을 전공했으면 순탄한 길을 가게 됬으리란 것을 깨달았지만 길은 오래 전에 갈라져 버렸다.
사실 인생의 갈림길은 좀더 이전에 나뉘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때 인문계와 자연계 중 선택할 때 인문계를 선택했는데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문계와 자연계의 차이를 별로 의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형과 누이가 인문계 쪽으로 갔으므로 별 생각 없이 선택했을거다. 국어나 역사보다는 수학이나 물리에 더 흥미를 느꼈고 성적도 더 좋았는데. 나중에 대학을 얼마쯤 다니고 나서 화학에  흥미가 발동했으나 전공을 바꿀 용기는 나지 않았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사람들 간의 관계는 여전히 나에게 어려운 일이고 사회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정답이 없어 지금도 어렵게 느낀다. 자연과학이 훨씬 친숙하고 흥미가 있다. 그 길로. 같으면. 마찬가지로 힘들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지도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그와 주거니 받거니 하느라 시간가는 것을 깜박했다. 나는 무엇에 몰두하면 시간가는 것을 잊어먹어 곤경에. 처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가 순박해 보이고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해서 과거 의 나를 떠올리며 호감이 갔다. 문득 시간이 꽤 지났음을 깨닫고 시계를 보니 버스 출발시간이. 20분밖에. 안남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죽어라하고 뛰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내가 탈 버스가 막출발하려 하고 있었다.
드레스덴은 무척 추웠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찬 공기가 뼈속까지 시려온다. 사람들은 두꺼운 파카를 입고 다닌다. 물어보니 오월에 이런 날씨가 특이한 것이 아니란다. 내일은 눈이 예보되어 있단다. 숙소에 들어와 쉬고 있는데 밖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큰 소음이 들리고 집이 쿵쿵 울려 나가 보았다. 끝이 안보이는 젊은이들의 무리가 군데군데 대형 스피커를 단 차량을 두고 행진을 한다. 무슨 일이냐니까 오늘이 tolerance day 즉 관용의 날이라 기념 행진을 한단다. 과거에 이날을 기념할만한 일이 있었냐니까 아무도 모른다. 분명히 뭔가 계기가 있었을텐데 그에 대한 기억은 중요치 않고 젊은이들이 모여 흥겹게 지내는 이벤트만 남았다. 중고등 학생 나이에서 부터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커플까지 다양하다. 한 손에 맥주병을 들고 마시며 떠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지나간다. 모두들 흥에 겨워 허리를 흔들흔들하며 걷는다. 그들을 따라가 보니 가까이에 있는 큰 공원에서 행진을 멈추고 모여 논다. 날씨가 추워서 밖에. 그렇게 오래 있는게 힘들텐데도 많이 참가했다. 펑크 복장을 한 히피 차림도 있지만 대부분은 반듯한 대학생과 직장인으로 보인다. 스피커로 계속 무언가 계속 떠들기에 무슨 내용이냐고 물으니 이웃과 주위를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내용이한다. 그들의 풍요와 개방성과 자유로운 정신이 부러웠다. 나도 그들의 일부가 되고 싶어 추운 날씨에도 군중 틈에 끼어 꽤. 오랫동안 서성거렸다. 그들이 정말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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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에 부다페스트에서 버스에 올라 오후 3시경에 체코의 브루노에 내리다. 지난 며칠간 버스를 오래 탔는데 오늘은 4 시간만 타니 훨씬 살 것 같다. 브루노는 체코에서 두번 째로 큰 도시라는데 몇 백년 전 건물과 시가가 잘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이 거리에 많이 눈에 띤다. 폴란드가 이번 주말이 3일 연휴라 많이 왔다고 한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와 달리 아시아인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언덕에 중세 시대에 지어진 거대한 성당이 있고 중세의 성이 보존되어 있어 관광객이 제법 온다고 한다. 골목이 복잡해 숙소를 바로 가까이에 두고도 찾는데 한참 걸렸다. 나는 중세의 성보다는 현재 이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더 궁금하다. 성당 앞 중앙 광장에는 장이 서 있는데 딸기와 블루베리가 제철인가보다. 내가 묵은 숙소도 외관은 옛날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현대식으로 수리한 모습이다. 계단이 가파르고 공간이 협소하다. 옛 건물답게 벽이 무척 두껍다. 
헝가리와 체코는 비슷한 인상을 준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고 긴장한  표정이며 거리가 복잡하고 곳곳에서 건물이 올라가고 도로 공사를 한다.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음식을 먹고 남녀를 불문하고 담배를 많이 핀다. 한마디로 한국과 유사한 느낌이다. 근래에 가난에서 벗어나 성공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경쟁이 치열하다. 독일이나 네덜란드는 부유하고 세련되며 안정된 모습인 반면 체코와 헝가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특유의 무질서와 역동성을 느낄 수있다. 사람들의 얼굴 모습이나 식습관은 다르지만 웬지 익숙하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며 한국에 와본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삼성 전화기 광고판을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며 현대 기아 자동차를 종종 거리에서 본다. 요즘 미국과 마찰로 크게 문제가 된 화웨이 전화기 광고를 훨씬 자주 본다. 내가 쓰는 태블릿도 화웨이. 제품이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스마트폰의 위력을 절감했다. 나는 일을 하면서 항시 컴퓨터를 들여다 보기 때문에 평소에 가급적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다. SNS도 하지 않고 정보를 검색하는 일은 컴퓨터로 한다. 스마트 폰 세대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없다면 이렇게 여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일 숙소에 도착하면 다음 날의 여정을 짠다. 어느 도시로 이동할지 지도를 보며 생각하고 이동하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티켓을 구매하고 숙소를 예약한다. 방문하는 도시의 지도를 다운로드하고 버스에서 내려 숙소까지 가는 방법을 검색하여  저장한다. 이런 일을 모두 하는데 30분 남짓이면 충분하다. 나는 까다롭게 이것저것을 살펴 고르지 않는다. 웬만하다 싶으면 바로 결정한다. 그 덕분에 무지하게 시끄러운 술집 이층에서 자기는 했지만. 버스에서는 가급적 스마트폰을 보지 않지만 창밖을 보는 것이 무료해지면 지금 가는 도시나 나라에 대한 일반 정보를 위키피디에서 찾아 읽는다. 스마트폰의 화면이 작기 때문에 대부분의 작업은 태블릿으로 한다. 여행은 노는 것이지만 놀러 다니는 일의 생산성이 엄청 높은 것이다
버스에서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잠을 잔다. 여행을 하면서도 항시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는 습관에서 떠나지 않는다. 기성 세대는 이런 요즘 젊은이들의 행태를 비판하지만 사실 스마트 폰은 엄청나게 다양한 정보를 가져다주는 요술 방망이 이다. 젊은이들이 보는 동영상이나 이미지는 차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보다 훨씬 변화무쌍하고 다양하며 재미있다. 물론 사진이나. 동영상이 실제 현장의. 감동을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가끔 눈을 들어 밖을 쳐다보는 것으로 족하다. 감동을 주는 대단한 곳에 가면 그때 그것을 보면 되고. 스마트폰 덕택에 젊은이들의 정보의 소비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물질의 소비만이 풍요의 전부는 아니다. 물질적인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정보의 소비를 원한다. 누구나 배가 부르면 남들은 뭐하는지 재미있는 것은 뭐 없는지 찾게. 된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십년 남짓 전인 2007년이다. 그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이렇게 바꾸어 놓다니. 놀랄 일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러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변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정말 흥미진진한 변화는 앞으로 무궁무진하게 다가올 것이다.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 것이. 20세기 초이고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것이 18세기 말이다. 세상을 바꾸어 놓은 신기술의 도입의. 초기 단계에는. 앞으로 이것이. 어떻게. 발전하고 사람들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 올지 모른다. 전기가 처음 발명된 19세기 말에 사람들은 이를 신기한 장난감 정도로 여기고 그 가능성을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전자의 흐름을 이용하여 반도체를. 만들고 컴퓨터를 만들고 스마트폰을 만들어 이렇게 여행하게 되리라고 처음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인생은 한번 밖에 살지 못한다. 지금 정보통신 기술이 가져오는 변화를 보면서 나는 이미 지나간 세대이므로 젊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치부하며 뒷자리에 물러나 살다 죽고 싶지. 않다. 내가 다시 산다면 이런저런 일을 할텐데 하면서 아쉬워 하는 것은 부질없다. 인생은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다. 나는 올해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머신러닝을 익혀 변화를 앞서서 이끄는 역할을 하려 한다. 이제. 몇 달 동안 열심히 하니 파이선 프로그램과 머신러닝의. 기본은 웬만큼 익힌 것 같다. 이제 스팸메일을 거르는 프로그램 쯤은 짤 수 있다. 프로그램을 짜는 것이 낫설지 않고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던 것이. 점차 자연스레. 이해. 된다. 일단 올해에 일 천 시간을 투입하여 성과를 보고 다음 단계를 모색하려 하는데 이제 삼사백시간 정도 투입한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 좀 익숙해 지면서 이 머신러닝 기술을 사회현상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적용할지 선례가 적어 고심하고 있다. 잠재력이 대단하다 것은 짐작하지만 현재까지 개발된 기술은 거친 수준이라 앞으로 갈길이 멀다.  구체적인 성과가 없으면 허사이다.
공부해 보니 이 기술이 아직 발전의 초입 단계라  체계가 잘 잡혀 있지 않고 응용 범위가 넓지 않다. 예컨대 deep learning의 범용 프로그램인 tensor flow나 그것에 토대를 둔 keras 는 구글에서 개발하여 공개한 것이 2015년이니 불과 4년 밖에 안됬다. 매년 프로그램을 개선하기에 몇 년전 책에 나온 프로그램을 돌리면 잘 돌아가지. 않는다. 구글의 번역 프로그램의 정확도가 높아지는 속도를 보면 얼마나 변화가 빠른지. 짐작할 수 있다. 사용자의. 정보를 분석하여 연관 상품을 추천하는 머신러닝 기술을 핵심으로 성장한 Amazon은 회사가 출범한지 20년이.못됬는데 미국의 소매 유통시장을 뒤집어 놓았으며 유사한 기술로 성장한 Netflix는 그렇게 철옹성 같던 티브이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주역이 되지 못하고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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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3. 13:40



숙소에서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11시 버스에 올라타다. 부다페스트에 내린 것은 내 시계로 6시가 넘어서다. 루마니아에서 헝가리로 국경을 넘자 퍽 다른 풍경이 펼 진다. 고속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고 집들의 상태가 양호하다. 국경하나 건넌 것인데 사람들의 생활이 다르다. 헝가리 에서는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평원을 세시간 이상 달렸다. 하늘에. 뭉개구름을 하염없이 봤다. 이제 여행에 지쳐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면 다시 잡아야 할 일 생각도 난다.
부다페스트는 생각보다 크고 화려한 도시였다. 거리에 자동차와 사람들이 붐비고 화려한 옛 건물이 많다. 이 도시는 과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수도였다. 일차대전에 패하고 각민족이 뿔뿔이 독립하면서 지금은 조그만 한 나라에 불과하지만 그 때는 중부 유럽을 호령하는 큰 나라였다. 관광객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빠르다. 지하철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의 소음이 크길레 다가가 보니 속도가 서울의 두배는 되는 것 같다.
버스터미날에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 찾아간 숙소는 유흥지역 한 가운데 있었다. 짐을 풀고 시내 산책을 나오니 숙소 주변의 술집과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메어 터진다. 문제는 내가 묵은 숙소의 아래 층이 큰 술집이라는 거다. 네모 모양의 건물 가운데 정원이 술과 댄스를 하는 곳이다. 서로 대화가 안될만큼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놓았으며 사람들의 대화 소음과 섞여 귀가 멍멍하다. 이 숙소를 인터넷으로 예약할 때 우리 호스텔은 분위기가 끝내주며 부다페스트의 밤을 즐기는데 최적이다. 밤에 잠을 잘 생각을 하지 않는 젊은이라면 우리에게 오라 고 소개 문구가 써 있어 그냥 광고인지 알았다. 숙소 침대에 누워도 소음이 대단하다. 소돔과 고모라가 바로 밑에 있는 것 같다.
워낙 피곤했기에 10시 경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소음 속에서도 금방 잠에 빠진 것 같다. 한 잠을 자고 깨어보니 소음은 여전하다. 시계를 보니 2시다. 다시 잠에 빠져 6시에 눈이 떴다. 몇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방에 들어와 부시럭 대는 통에 깬 것 같다. 그들은 밤을 새고 놀다 이제 들어와 침대에 들려 한다. 모두들 바로 코를 골며 잠에 빠진다. 그들의 에너지가 부럽다.
나는 지금까지 자정을 넘겨 놀아본적이 거의 없다. 술마시고 즐겁게 노는 사람이 부럽다. 나의 형은  술을 좋아해 사람들과 어울려 항시 술을 마시며 친구도 많다. 그는 하루의 피로를 술마시며 푼다고 한다. 나는 술이 몸에 받지 않아  조금만 마시면 몸에 발진이 돋고 머리가 어질하다. 맑은 정신으로 술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사람들과 오랜시간 이야기 하며 친해질 기회가 없다. 술을 마시고 긴장을 풀며 사람들과 허툰 이야기를 하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축복이다. 삶이 힘들고 지루한 것을  항시 직시하며 살기에 인생이 너무 길다. 나는 나의 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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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 13:13


아침 9시에 버스에 올라 저녁 6시가 지나 내렸으니 아홉 시간이나 버스를 탔다. 부다페스트에서 클루지나코타라고 루마니아 북부에 있는 도시까지 이동했다. 그 도시에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부다페스트로 가는 중간점에 있는 대도시이다. 거리로 340 킬로 쯤 된다는데 버스가 중간에 있 소도시를 모두 들러 가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하루 종일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도중에 두번이나 큰 사고를 목격했다. 하나는 콘테이너 트럭이 급커브 길에서 뒤집힌 것이며 다른 하나는 승용차 두대가 경사로에서 충돌했다. 두 차가 엄청나게 우그러진 것으로 보아 두차에 탄 사람은 죽거나 크게 다쳤을 것이다. 버스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에 정차 했으며 여러 도시의 버스 터미날에 쉬어갔다.
나는 출입구 가까운 좌석에 앉은 덕분에 많은 만남과 작별을 목격했다. 부크레시티에서 탄 중년 여인이 기억난다. 그녀는 훤칠한 키에 글래머 스타일로 머리를 올리고 화장을 짙게. 하고 긴 숄로 멋을 낸 차림이었다. 그녀를 배웅하러 나온 여성은 그녀보다 몇살 젊어 보이는데 한눈에도 모델같다. 버스를 탄 여성은 한창 때를 지나 얼굴이 약간 이지러졌다. 성형수술을 한 것이 오래되 망가진 것 같다. 반면 그녀를 배웅나온 여성은 한창 때다. 찬 아침 공기에도 그둘은 차가 출발할 때까지 오래도록 함께 하며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 한다. 한동안 못볼 사정인가 보다. 추측컨대 두 여성은 같은 일에 종사했는데 한 사람이 그 일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내려 가는 것이다. 레스비언일 수도 있다. 버스가 출발하고도 두 사람은 전화로 오랫동안 이야기 한다.
가장 감정이 풍부한 만남과 헤어짐은 연인 사이이다. 어느 소도시에 버스가 정차하여 한 여성이 내리자 그녀를 마중나온 남자가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다가 온다. 둘은 한동안 포옹을 풀지 않았다. 그것을 보는 나에게 까지 가슴이 따뜻해 온다. 버스가 떠날 때까지 몇번이고 키스를 하며 작별을 아쉬워 하는 커플도 여럿 보았다. 아버지가 멀리 떠나는 딸과 함께 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마치 그 아버지가 나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멀리 떠나는 딸을 배웅하며 한편으로 든든해 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 험한 세상에 조심하라고 몇번이나 당부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며 문득 나에게도 있던 지독한 이별이 떠올랐다. 무엇을 모르던 한창 젊은 시절 한 여인을 만났다. 그녀와 만나는 나날은 설레이고 날아갈듯한 기분으로 살았다. 세상에 두려울게 없었다. 어리석고 능력이 부족하여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오랫동안 세상 살아갈 기운을 다 잃은 듯 헤멨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그 후 어느 것에도 감흥이 없고 무미건조한 사람이 됬다. 설레이는 삶을 갈구했지만 다시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와 만남이 성사되어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았더라도 크게 다르지 안았을 것이다. 아니 더 힘들게 살게 됬을 수 있다. 그래도 다시 살라면 그녀와 함께하는 삶을 택하겠다. 몇년이 지나 유학을 떠나고 결혼을 임박하여 그녀의 어머니와 잠시 통화 했다. 나에게 무척 잘해준 분이기에 어린마음에 그냥 떠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섭섭해 하며 말을 잇지 못하던 일이 생생하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관찰하고 생각했다. 먹고 사는 일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 하는 것 같다. 먹고 사는 것 외에 바쁜 일이라면 단연 만나고 헤어지는 일이다. 동물의 짝짓기 말이다. 짝짓기의 계절이 지나면 아이를 키우느라 바쁘다. 그 아이들이 크면 또 짝짓기를 할테고. 내가 연애하면서 그렇게 설레었던 것은 짝짓기를 하도록 조건지어진 진화의 결과이다. 그때가 지나면 그런 감정은 다시 샘솟지 않는다. 그 시절을 그리워할 뿐.
사람들은 자신이 젊은 시절에 듣던 음악을 일생 좋아 한다. 지금 나이든 사람은 7080 음악을 좋아하고 그 전에 나이든 사람은 뽕짝을 좋아한다. 이는 자신이 짝짓기 시절 귀에 들어오는 소리에 감정이 고정된 때문이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가 엄마의 목소리와 냄새에 고정되듯이. 내가 마음이 허전하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것은 사랑의 계절이 지나 버렸기 때문이리라. 지금 사랑하는 젊은이는 내가 과거에 그랬던 것 처럼 설레고 날아갈 것 같이 하루를 살겠지.


2019. 5. 1. 09:34


어제는 일기를 건너 뛰었다. 소피아에서 부크레시티까지 밤 버스를 타고 이동했기 때문이다. 가급적 대낮에 이동하려 하지만 다른 수단이 마땅치 않아 그리했다. 역시 새벽에 버스를 내리고 나니 술취한 것 처럼 머리가 띵하다. 다행히 숙소에서 아침부터 머물도록 허락해 방에 들어가서 쉬면서 아침을 보내다.
어제 머문 소피아의 호스텔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중 타이완에서 온 까무잡잡하고 키 작은 젊은 여성이 인상 깊다. 그녀는 칠 개월째 여행하고 있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단다. 태국에서 시작해 말레이지아 미얀마 방글리데시 인도 이런 식으로 하여 불가리아 까지 온 것이다. 돈은 별로 안들었단다. workaway 라는 사이트에서 일하면서 여행하는 자리를 찾아 한 곳에서 몇 주씩 머물며 지냈단다. 이 호스텔은 하루에 5시간 일주에 5일을 일하면 숙식을 제공한다. 지금 까지 국가간 이동은 주로 비행기로 하고 국내 이동은 히치 하이킹으로 했다. 앞으로 유럽의 쉥겐 지역으로 들어가면 모두 히치 하이킹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히치 하이킹을 하면 운전사와 대화를 하면서 문화와 삶의 방식을 잘 알 수 있어서 좋단다.
Dumpster Diving 라는 말을 들어 봤냐고 묻는다. 쓰레기 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찾는 것이다. 그녀의 주장인즉 먹을 만하지만 유효기간이 약간지나서 혹은 야채가 일부 상해서 버리는 것이 엄청 많은데 이 것을 재활용하는 것은 지구 환경을 지키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대학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전공하고 3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는데 학적이 말소되는 2년 안에 복귀할 생각이지만 지금으로서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기에 어찌 될지 모른단다. 그녀는 눈이 빚나고 활발하고 말도 많이하고 발발거리며 일도 잘한다. 어디 가서나 환영 받을 거다.
 그곳에서 직업이 항공기 승무원이라는 한국계 미국인 여성도 만났다. 그녀는 조금 나이가 들었는데 사람들을 안내하고 의사소통 하는 기술이 돋보인다. 서비스 기술이 몸에 배어 있어서이겠지만 워낙이 친절한 심성인 것 같다. 그녀도 그곳에서 두주간 일하며 머물고 있는데 이제 너무 오래 머문 느낌이라 집에 돌아가려고 한다. 항시 이동하는 직업인데 따로 여행이 필요 하냐니까 일과 여행은 다르단다. 그녀와 이야기가 통하는 것 같아 좀더 대화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일하느라 바쁘고 무엇보다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자제했다. 남자와는 달리 여성과 이야기 할 때는 좀더 조심하게 된다. 그녀는 삶이 심드렁 한 나이에 접어든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어딜 가도 신날게 없다.
부쿠레시티 숙소에서 드문 경험을 했다. 방을 함께 쓰는 시칠리아에서 왔다는 젊은 남자가 뉴질랜드에서 온 건장한 남자의 돈을 훔쳐서 도망친 것이다. 그들은 이곳이 유럽 여행에 첫날이라는데. 나는 그 시칠리아에서 온 남자와 조금 이야기 해보고 신뢰가 가지 않아 오후에 시내 산책을 가며 귀중품을 모두 가지고 나가서 피해를 면했다. 어제 이야기 한 타이완에서 왔다는 여성은 텔레비에서 그리는 것 처럼 세상이 그리 험하지 않고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모두 친절하고 주장하지만 나는 사람이란 기회만 나면 거짓과 도둑질을 하는 심성을 타고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주장이 맞다면 그 많은 독재자와 부패는 생겨나지 않고 오늘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기에 그녀의 주장은 틀렸다.
불가리아와 이웃 인 루마니아는 퍽 달랐다. 부쿠레시티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흡사하다. 사람들의 발 걸음이 빠르고 시가가 붐비며 사람들이 긴장되 있다. 반면 소피아는 모든 것이. 느리다. 이렇다할 일거리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느릿느릿  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는 느낌이다. 공산국가라 그런지 공원이 많고 공공 조각상이 곳곳에 눈에 띤다. 반면 루마니아는 공산주의를 오래 전에 졸업하고 자본주의 경쟁으로 깊숙이 발을 들인 것 같다. 그들을 보며 일단 자본주의 경쟁의 빠른 리듬에 들어서면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데 하고 생각했다. 루마니아 사람들이 불가리아 사람보다 훨씬 세련되고 잘 살지만 웬지 불가리아 사람들의 삶에 정감이 간다. 물론 당사자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합리성의 댓가는 스트레스와 외로움이다. 모두가 따뜻하게 함께 사는 사회는 지구상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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