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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28. 13:06

William H. McNeill. 1977. Plagues and Peoples. Anchor Books. 257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며, 이 책은 전염병이 인류에 미친 영향을 역사 전개에 따라 서술한다. 저자는 서구,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전지구적인 사람과 물자의 교환에 강조점을 두고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전염병의 역사는 이러한 역사 접근의 가장 대표적인 주제이다. 17세기 이전까지 전염병에 대한 자료는 미진하므로, 많은 경우 상황 정보를 종합하여 추론한다.

전염병은 인간과 접촉이 잦아지면 '문명화'(civilized)의 과정을 겪는다. 특정 전염병에 처음으로 노출된 인구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는다. 한 마을 전체가 몰살하거나, 백명 중 한두 명만 살아남을 정도로 피해가 심하다. 그러나 이렇게 인간에 치명적인 병원체는 대상 인구를 소진한 다음에는 계속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에게 덜 심한 피해를 입히는 변종으로 대치된다. 한편 이러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노출된 인구는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기 때문에, 면역력이 없는 다음 세대로 대체되기 전까지 같은 전염병으로 다시 크게 피해를 입지 않는다. 이렇게 병원균과 인간 상호간에 적응(adaptation)이 진행되면,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치명적이었던 전염병이,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태어난 면역력이 없는 아동들에게만 치명적인 병으로 안정화(stabilized)된다. 특정 전염병은 대체로 3~4세대의 주기, 즉 약 100년을 주기로 하여 다시 찾아와 큰 피해를 입힌다. 3~4 세대가 지나면 특정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전염병은 대부분의 성인에게 다시 큰 피해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이 16세기까지 모든 인류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경험이었다.

인류 사회는, 한편으로는 전염병 즉 생물체에 기생하면서 숙주와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인 '미세한 기생충'(microparacitism),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인간에 기생하면서 그들을 착취하여 살아가는 인간들인 '큰 기생충'(macroparacitism)이 서로 밀접히 연결되면서 역사가 전개되었다. 큰 기생충의 적응 방식은 미세한 기생충의 적응 방식과 유사하다. 큰 기생충인 지배자들은 생산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생산한 것의 일부를 폭력을 바탕으로 전쟁, 약탈, 세금, 지대, 등의 방식으로 빼앗는다. 이웃 나라를 정복한 지배자들은 초기에는 생산자들이 생존을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혹하게 수탈하여 생산자들의 생산 기반을 몰락 시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이 계속 생산을 할 수 있을만큼 남겨두고 수탈을 하며, 지배자와 생산자간 안정된 공생관계가 자리잡는다. 큰 기생충이 생산자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면, 생산자들의 영양 상태가 악화되고 병원균에 대한 저항력이 떨여져 전염병의 피해가 커진다. 전염병이 몰아닥쳐 생산자들의 생산 능력이 떨어졌는데도, 큰 기생충이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수탈을 계속할 경우, 그 사회는 붕괴하게 된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일부 지배자들은 생산자들을 적정 수준으로 착취하여 둘 간의 관계가 안정화된다.

인류는 그리스 로마 시대, 즉 기원전 500년경에 이르러, 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의 지역이 주요 전염병에 접촉한 경험을 갖게 되고, 어느 정도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중동에 기원한 고대 문명과, 중국, 인도 문명 사이에 드물지만 사람과 물자의 교류가 때때로 이루어지면서, 통일되고 문명화된 전염병의 풀이 형성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는 전염병의 주기적 출몰로 인구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면서, 인구 증가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안정 상태가 1,200년대까지 이어졌다.

역사학자들은 전염병이 사건의 전개에 미친 영향을 과소 평가하는데, 이는 전염병의 출몰이 예기치 못한 사건이며, 전염병에 대한 기록이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의 중요한 분기점, 예컨대, 서구에서 아테네의 몰락, 페르시아의 패배, 로마제국의 붕괴, 중세 봉건제의 발달, 등에서 전염병의 발흥이 사건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요인이다. 또한 황하강 유역에서 시작된 중국문명이 1300년대까지 양쯔강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인도 북부의 세력이 인도 중부 이남으로 확대되지 못한 것 역시, 아열대 지역의 높은 전염병 위험이 서늘한 지역에서 시작된 문명의 남하를 막았기 때문이다. 따뜻한 지역은 전염병의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인구 밀도가 낮으며, 생산력이 높지 못하여 큰 규모의 비생산인구를 부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몰살을 당하는 혼란 속에서, 사람들은 기존의 이념과 권위 체계에 대한 신뢰를 거둔다. 대신 이러한 혼란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구하는 데, 기독교, 불교, 유교는 사람들의 고통을 토양으로 성장하였다. 세속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많은 사람, 특히 가까운 사람들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해, 기독교는 이를 하나님의 심판, 인간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설명하였으며, 죽은 다음 천국에 간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의 허무를 달래 주었다. 불교는 이러한 고통과 혼란에 대하여, 세속적 욕망에서 물러날 것과, 죽은 다음 다시 환생한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을 위무하였다. 유교는 가족의 유대를 강조하여 조상에서 자신 그리고 후손으로 이어지는 연결에 대한 믿음을 통해 인생의 허무를 잊게 하였으며, 중앙집권 체제에서 가족의 확대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과 관료적 의례와 절차를 믿음의 일부로 만들었다.

1300년대에 흑사병이 유럽을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휩쓸었다. 흑사병은 쥐를 매개로 하여 인간에게 전염되는 질병이다. 이 병원균은 히말라야 북단에 원천을 두고 있었는데, 1200년대 중반 몽고 제국이 이 지역에 정벌을 갔다 돌아오면서 병원균을 가지고 왔으며, 이것이 징기스칸의 서방 정벌을 따라서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을 넘어 터키와 헝가리까지 진출했으며, 마침내 1300년대 초에 서유럽을 휩쓸었다. 몽고의 서방 정벌이 헝가리에서 멈추게 된 이유 역시 몽고 정벌군이 흑사병으로 크게 피해를 입어 후퇴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흑사병은 선박을 통해 이탈리아 북부에 유입되어 유럽 전체에 퍼졌다. 서유럽에서는 초기에 큰 피해를 입은 뒤, 이후 다시 흑사병이 몰려왔을 때 격리와 검역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피해를 점차 줄여 나갔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도입하지 않아 1700년대까지도 흑사병의 출몰로 큰 피해를 입었다.

흑사병은 기존의 권위와 이념 체계에 큰 균열을 가져왔다. 중세 시대에 굳건했던 정통 기독교의 조직과 교리 대신에, 신비주의와 내면의 성찰을 강조하는 믿음이 활개쳤으며, 기존의 기독교 교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1500년대의 종교개혁의 발단이 되었다. 흑사병에 대한 기독교의 대응이 무력한 것을 체감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헌신이 약화되었다. 이는 1500년대에 종교의 영향에서 벗어난 르네상스와 과학기술의 발달을 낳았다. 흑사병에 대한 대응 조치가 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중앙집권이 확대된 반면 교회와 지역 영주의 세력은 약화되었다. 흑사병은 1300년 무렵에 중국으로부터 화약이 도입되고, 이후 총과 대포가 발명되면서 봉건 영주와 기사의 세력이 약화된 것과 더불어 중세를 붕괴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흑사병은 서유럽 전체에 노동력 부족 현상을 초래했으며, 이는 중세의 생산과 사회관계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한편 이 시기 중국에서는 몽고제국의 후손인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섰으며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는데, 이러한 변화 역시 몽고 지역에서 흑사병의 피해가 심각하여 지배력을 계속 행사하기 어려웠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다.

1400년대 후반에 유럽은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었다. 유럽인들은 대서양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하였으며, 바다를 통해 아시아에 진출하였다. 유럽 세력이 대양을 넘어 확장하게 된 원인은, 1300년대 이래 거듭된 흑사병의 위협을 이겨내고 인구가 빠르게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시대에 중국의 명나라는 해외로의 진출을 억제하고 중국 대륙 내로 한정하는 정책을 펼쳤다. 중국은 강력한 중앙집권체제가 지배하였으므로, 지배권의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펼쳤다. 반면 유럽은 중세의 봉건체제를 벗어나 중앙집권이 강화되는 과정에서 작은 나라로 쪼개졌으며, 이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장려되었다.

아메리카인들은 유라시아의 전염병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었으므로, 유럽인이 가져온 전염병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었다. 마치 유럽인이 아시아로부터 건너온 흑사병에 처음 노출되었을 때처럼. 외부에서 온 전혀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죽은 반면, 이러한 병원균에 면역력을 가진 침략자들은 거의 피해가 없는 것을 보고, 전염병으로부터 살아 남은 생존자들은 삶의 의미를 잃고 자기 파괴적으로 생활하거나, 지금까지 자신의 사회의 믿음과 권위 체계를 부정하고 침략자의 지배와 이념을 순순히 수용하였다.

1600년대 이후 유럽의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다. 웬만한 치명적인 전염병에 대해 면역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전염병이 돈다고 해도 때 방역과 격리 등의 방법으로 전과 같이 큰 피해를 입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수입한 감자, 옥수수, 알파파 등의 생산성이 매우 높으므로 인구 전반의 영양 수준이 높아졌으며, 아메리카 대륙으로 유럽인이 이동하면서 유럽의 인구 압력이 낮아진 것, 등이 인구 증가의 원인이다. 1700년대에 들어 경험주의의 과학적 접근이 의료 분야에 확대되면서 병원균의 확산을 억제하는 실증적인 방법이 개발 보급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홍역을 예방하는 예방 접종이 그것이다. 또한 도시의 비위생적인 환경를 개선하는 조치들이 속속 전개되었다. 1800년대 중반 현미경의 발명으로 병원균의 실체가 확인되면서 전염병은 마침내 인류가 실체를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대상이 되었다.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유럽의 도시들은 주변 농촌지역보다 사망율이 높지 않은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전까지 도시인의 수명은 농촌 사람들보다 낮았으므로, 계속하여 주변 지역으로부터 도시로 인구가 유입되어야만 도시가 유지되었다. 1800년대에 서유럽의 위생과 의료 지식이 전세계의 유럽인이 진출한 지역에 보급되면서, 한 지역의 사람들이 외부로부터 유입된 새로운 전염병에 노출되어 몰살당하는 현상은 사라졌다.

이 책은 거의 반세기전에 집필되었음에도 대단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서유럽에 국한된 시야를 세계로 확대시키고, 지배자와 정치 분야에 집중된 전통적 역사 서술을 넘어,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아우르고 사회전반의 변화를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안목을 제공한다. 정말 대단한 책이다.

 
2023. 1. 12. 17:41

Howard Zinn. 1999. 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492-present. Harper perennial. 688 pages.

저자는 저명한 역사학자이다. 모든 역사책은 강자, 지배자의 입장에서 기술하나, 이 책은 약자, 억눌린자, 없는자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 전개를 서술한다. 백인 정복자가 아닌 인디언의 입장에서, 백인이 아닌 흑인의 입장에서, 부자가 아닌 빈자의 입장에서,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의 입장에서, 남성이 아닌 여성의 입장에서, 미국인이 아닌 제삼세계 사람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역사를 서술한다.

약자를 억압하고, 회유하고, 굴복시키고, 말살하기 위해, 강자는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고, 약속을 태연하게 어기고, 상대를 착취하고, 폭력으로 위협하고, 반항하는 사람은 고문하고, 신체를 훼손시키고, 죽였다. 약자는 강자의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고, 짓밟히고, 때때로 개별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반항하였다. 그러한 반항은 단기적으로 뚜렷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았으며 더 큰 억압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반항이 거듭되면서, 크게 보면, 조금씩 처지가 개선되는데 기여하였다. 약자의 이익과 권리는, 강자에 대한 그들의 저항을 통해서만, 강자로부터 조금씩 양보를 받아냄으로서 진전되었다. 약자의 인간적인 삶의 권리는 결코 위로부터 시혜적으로 주어지 않았다. 피를 흘리는 투쟁을 통해 뺏어낸 것이었다.

미국의 정치, 경제의 제도권은 모조리 가진자에 의해 장악되어 있으며, 오로지 그들의 이익을 위해 기여해 왔다. 미국의 양당 정치권은 약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일반 사람이 원하는 것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원칙은 허울에 불과하다. 국민의 대표 중에 가지지 않은 자는 없으며, 이들은 가진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가진자를 위해 일한다. 민주당, 공화당 모두 일반인의 이익을 돌보지 않기 때문에, 미국인의 정치권에 대한 소외는 매우 심하다.

미국의 군사 외교 정책은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미국 정치인들이 외교 분야에서 '미국의 이익'을 언급할 때, 이는 미국 일반 사람들의 이익이 아니라 미국의 자본가의 이익을 의미한다. 미국은 제삼세계의 독재자를 지지하는 대신, 그들 국민의 지지를 받는 독립적인 지도자를 배제하는 데 열을 올린다. 제삼세계 국민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는 미국 자본의 이익에 순종하지 않으며, 그들 국민의 이익을 미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기 때문에, 미국은 갖은 수단을 써서 이들을 제거하려 한다. 중남미와 중동은 미국 자본의 이익이 크게 걸린 곳이기에,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노골적이다. 칠레와 니카라과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CIA의 공작으로 만든 쿠데타로 뒤집어 엎었으며, 파나마에서는 운하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조종하는 반군을 동원해 콜럼비아로부터 독립 정부를 세웠다. 중동에서는 미국의 석유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이란, 이라크 등의 독재자를 지원하거나, 미국군을 동원하여 반대세력을 굴복시켰다.

이 책은 읽기 쉽게 쓰였으며, 곳곳에서 약자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하기 때문에 서술에 힘이 있다. 역사란 지배자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서술한 이야기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 뼈져리게 느낀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약자의 좌절과 분노에 공감하고, 다른 한편으로, 세상 돌아가는 원리, 인간의 삶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비록 달팽이의 걸음으로나마 약자의 지위가 나아져왔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게 된다. 오랫 동안 책장에서 먼지를 먹으면서 언제나 저 책을 읽게 될까 생각했는데, 막상 책을 손에 잡으니 단숨에 읽었다. 대단한 책이다. 그가 1990년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제대로 커버했다면 정말 도움이 될텐데,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으니 아쉽다.

2020. 12. 4. 17:46

Hohn H. Lienhard. 2006. How Invention begins: Echoes of old voices in the rise of new machines. Oxford University Press. 242 pages.

저자는 기계공학과 역사를 전공한 교수다. 이 책은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미친 비행기, 증기기관, 금속활자라는 세가지 발명의 역사를 더듬으면서 발명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술한다. 

저자는 발명의 과정을 gestation, cradle, maturation이라는 세단계로 파악한다. gestation 즉 태아가 발생되는 단계에 오랜 기간 동안 아이디어가 조금씩 쌓이며, 이렇게 무르익은 아이디어가 마침내 구체적인 시도로 실현되는 요람 cradle 의 단계에 이른다. 발명의 초기단계는 아직 결함이 많은데, 점차 다듬어져서 완성도가 높아지는 성숙 maturation 의 단계에 도달하며 이후에는 큰 변화없이 유지된다.  

발명은 오랜 기간 동안 서서히 전개되는 과정의 산물이므로 특정 발명가에게 발명의 공을 독점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그롯되다. 라이트 형제가 독자적으로 비행기를 발명한 것이 아니며,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을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며, 구텐베르크가 금속 인쇄술을 독자적으로 발명한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무르익은 단계에 도달하면 (그는 이를 '시대정신' Zeitgeist 이라고 표현하는데), 특정 발명가가 아니라도 다른 사람이 유사한 발명을 할 것이다. 한 가지 발명은 그와 연관된 다른 발명으로 이어지며 아이디어의 축적은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특정 인물이나 특정 발명을 아이디어 발전의 연속선으로부터 콕 집어내는 것은 어느 정도는 자의적이다.

20세기 이전까지 과학적 이론과 설명은 발명품이 출현한 후에 이를 이해하기 위한 후속 과정이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특정 발명가가 이리저리 두드려보면서 (tinkering) 홀로 독립적으로 발명하던 시대는 지났다. 대신 집단적으로 연구소에서 과학적 이론을 적용하면서 과학자와 공학자가 협업하여 발명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반도체, 집적회로, 컴퓨터가 대표적 사례이며, 제트기나 화학약품의 발명도 그러하다. 이렇게 집단적으로 연구 개발을 하면서 발명과 개량의 주기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18세기에 증기기관 발명의 연원은 그리스시대에 공기는 물질이라는 인식과, 이후 증기가 일을 할 수있다는 아이디어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증기의 힘을 어떻게 그 시대의 당면한 필요에 부합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시도한 결과 증기기관이 발명되었다. 18세기에 영국은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었다. 서구에서 첫번째 에너지 위기는 13세기 초반에 왔는데, 철을 녹이기 위해 그당시까지 나무를 썼는데 유럽의 나무 자원이 고갈되었다. 이 에너지 위기는 나무 대신 석탄을 사용하면서 해결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석탄을 500년가까이 사용하자, 석탄을 채굴하는 갱도의 깊이가 해수면에 도달하게 되어 더이상 석탄을 채굴할 수 없게 되었다. 해수면 아래로 파들어가 석탄을 채굴하려면 물을 퍼내야 하는데 그당시 기술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다. 18세기 중반 증기기관의 발명 덕분에 광산에서 물을 퍼내는 문제가 해결됨으로서 당면한 에너지 위기가 해결되었다.

증기의 힘을 활용하는 다음 단계는 속도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원적 욕구를 만족시켰다. 인간의 갈망(desire)은 필요(needs)와는 다른 행위 동기이다. 빨리 이동하지 않아도 인간은 생존할 수있지만, 빨리 움직이고 싶은, 속도감을 느끼고 싶은 갈망은 일단 이를 충족시키는 발명품이 나타났을 때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것이 된다. 비행기 역시 인간의 날고 싶어하는 본원적 갈망의 소산이다.

금속 활자 인쇄술의 발명은 인류에게 증기기관 못지 않게 큰 영향을 미쳤다.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이용하여 성경을 인쇄함으로서 보통 사람들이 지식을 쉽게 습득하는 길을 열었다. 1500년대에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나, 이후 과학기술의 발전 또한 효율적인 인쇄술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엄청나게 많은 책이 생산되고 그 결과 보통 사람의 지식 수준이 높아졌기에 가능했다. 미국인들은 인쇄물을 읽는 열의가 대단하였고 문자 해독률이 높았다. 미국은 일찍부터 교육이 널리 보급되었고 벽지에서는 통신 교육을 통해 배움을 얻으려는 열의가 높았는데, 이는 모두 저렴한 비용으로 인쇄물을 쉽게 획득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발명가는 돈을 벌려는 욕심때문에 발명에 매진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벌려는 생각도 있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몰두하는 것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때문에 밤낮으로 매진한다. 새로운 것을 만들었을 때 맛보는 희열이 그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이 책은 발명의 근원을 체계적으로 파헤치기보다는 저자 본인이 기계 공학자로서 오랜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을 서술하려 한다. 사례와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아가며, 때때로 유명 문호의 시를 인용하면서 감정적 접근을 시도한다. 서구의 사례만 인용하기 때문에 발명의 역사를 균형있게 다룬 책은 전혀 아니다. 이야기와 함께 삽화가 많이 나온다. 재미로 읽을 거리 수준이다. 

2020. 7. 14. 16:09

Paul Kennedy. 1987. 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Vintage. 540 pages.

저자는 역사학자로, 1500년경부터 서구에서 강대국이 차례로 흥했다 쇠하는 과정을 서술한다. 스페인 제국, 네덜란드 제국,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 대영제국이 20세기 초까지 그 길을 밟았으며, 20세기 들어서는 미국과 소련이 그길을 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례에서 '경제력이 궁극적으로 군사력을 좌우하며 강대국의 힘의 배경이다'라는 명제를 주장한다. 두번째의 명제는, 한 나라의 국력이란 상대적인 비교에서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그의 적의 군사력과 비교를 통해서만 강약을 가름할 수 있다. 한 나라의 체제의 강점과 약점 역시 그와 대비되는 다른 나라의 강점과 약점과 비교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강대국이 될 수록 전세계 곳곳에 담당해야 할 안보의 부담이 늘어난다. 강대국은 시간이 흐르면 자신의 경제력이 정상적으로 감당할 수있는 정도를 넘어서 더 큰 군사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국가의 자원의 많은 부분을 군사력 유지에 써야 하는데, 이는 생산적 투자에 써야할 부분이나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써야 할 부분의 희생을 수반한다. 생산적 투자에 자원을 덜 투입하면 경제 성장이 늦추어지며, 국민의 삶의 풍요를 위해 쓰는데 자원을 덜 투입하면 국민의 불만이 높아진다.

강대국의 밑에 단계에 있는 나라들은 강대국과 비교하여 군사력보다 생산적 투자에 더 많은 자원을 할애 하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라들 중 강대국을 능가하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나타난다. 그들의 경제력이 높아지면, 필연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력을 증강하게 되고, 기존의 강대국을 물리치고 새로운 강대국으로 등극한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교체는 결코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15세기까지만 해도 중국, 인도, 이슬람 문명이 서구를 앞섰으나, 이후 서구가 앞서나가며 다른 문명을 복속시킨다. 가깝게는 유럽의 정치문화에서,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연환경의 차이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유럽은 다양한 정치 집단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이러한 경쟁은 제도와 기술의 혁신, 경제 발전과 군사력의 성장을 낳았다. 반면 중국, 인도, 이슬람 지역에서는 강력한 단일 정치집단이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하면서 변화를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문화를 뿌리내렸다. 이러한 지역에서는 기득이권 집단이 거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으므로, 새로운 아이디어가 발붙일 여지가 없었다. 기존 질서에 위험 요소가 될 어떠한 것이라도 초기에 싹을 자르는 조치를 취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명나라 시기에 해외무역을 금지하면서 큰 배를 모두 없애고 새로 건조하지 못하도록 한 조치를 들 수있다.

유럽이 동양과 달리 다양한 정치 집단이 공존할 수있었던 것은, 산악과 바다와 강, 다양한 기후의 자연 환경이 단일 정치체제의 출현을 방해하였기 때문이다. 영국은 대륙과 바다로 떨어져 있으며, 이탈리아와 독일, 스페인과 프랑스는 산악으로 서로 분리되어 있다. 그들은 군사적으로 서로 경쟁하고, 중상주의 정책에서 보듯이 경제력에서 서로 경쟁하며, 영국의 산업혁명이 유럽 대륙으로 확산된 사례에서 보듯이 과학과 기술에서 서로 경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는 서구의 강대국들이 흥하고 쇠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대영제국은 18세기 말 산업혁명을 처음으로 시작하면서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여, 1760년대에 7년전쟁을 통해 스페인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의 지배적인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합리적인 제도를 갖추지 못했으며 경제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전통적인 체제가 지배하였다. 이들 나라의 군사력은 컸지만 경제력이나 제도의 효율성에서 영국보다 훨씬 낙후되어 있었다. 19세기 초반 영국은 전세계의 산업생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제력을 축적하였고, 전세계에 식민지를 축적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이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 혁명이 다른 나라로 확대되면서 영국의 압도적인 경제력은 점차 쪼그라들었다. 영국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새로운 혁신을 방해하고, 노동자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영국의 상대적인 산업 경쟁력은 떨어지고 경제성장의 속도는 느려졌다. 반면 독일은 새로운 기술 혁신이 계속이루어지고, 통일을 통해 국토가 확장되면서 경제력이 크게 성장하였다. 국제질서에서의 기존의 지위가 독일의 경제력에 걸맞지 않게 되었기에 독일은 1차대전을 일으켰으며, 결국 2차 대전까지 치르고 나서야 독일의 도전은 중단된다.

한편 미국은 새로운 기술과 경형 혁신이 계속 이루어 지고, 이민자가 계속 들어오고,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가용 자원의 절대 규모가 늘어났으며 19세기말에는 경제력에서 영국을 능가하게 되었다. 미국은 제 1, 2차 대전을 통해 막강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였다. 두차례의 전쟁으로 유럽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폐허가 된 반면,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이 전쟁을 통해 더 증가하면서 압도적인 강국으로 올라섰다. 소련은 두차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쟁 후에도 상당한 국력을 남길 수있었으며 거대한 국토 덕분에 미국과 경쟁하는 강대국의 지위에 올라섰다.

2차대전이 종결된 시점에 미국의 상대적인 국력은 최고에 도달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전세계의 절반을 차지했으며, 군사적인 우위가 최고점에 있었다. 이후 유럽의 선진산업국과 일본은 전전의 경제력을 회복했으며, 놀라운 속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1970년대 초반에는 서구유럽 전체로 볼 때 미국의 수준을 넘어섰다. 미국은 1960년대 이후 복지확대와 베트남전쟁 때문에 재정적자가 누적되었으며, 1970년대에 들어 마침내 유럽과 일본에 비해 산업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보다 수입이 증가했으며 무역적자가 누적되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미국의 상대적인 경제력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강대국으로서 전세계에 군사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은 줄어들지 않으므로 딜레마에 빠졌다. 한편 소련은 공산주의 체제의 계획경제의 비효율이 누적되면서 서구와 생산성 격차가 갈수록 벌어졌으며, 경제력 대비 군사적 부담의 면에서 미국보다 더 심한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저자는 1980년대 중반의 시점에서 볼 때, 세계 질서가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에서 다섯개의 강대국이 경쟁하는 다극체제로 가고 있다고 진단한다. 미국의 강대국의 지위는 조금씩 쇠퇴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의 경제성장 속도나 영토로 볼 때 앞으로 대단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것이지만, 미국이나 소련과 경쟁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갈 길이 멀다. 유럽의 통합이 진전되면서 점차 강대국으로 올라서고 있는데, 문제는 여러 나라들간 이견을 조율하는 비효율 때문에 아무리해도 미국 만큼의 강대국은 되지 못할 것이다. 일본은 대단한 경제력을 쌓았으며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상황이 변하면 이러한 경제력을 군사력으로 전환하여 대단한 강대국이 될 것이다. 소련은 장기적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대단한 군사력을 비축하고 있고 엄청난 영토 덕분에 앞으로도 강대국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요컨대 세계의 질서는 국력이 충돌하는 무정부상태의 혼돈이 지속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책은 국제정치의 역학을 잘 이해할 수있게 하는 유익한 책이다. 특히 1차 대전을 전후한 국제정치 역학을 매우 잘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국가들 간에 상대적 관계를 통해 상황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유능하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 합스부르크-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간의 상호 관계를 통해 어떻게 유럽의 정치경제가 지난 오백년간 전개되었는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저자도 인정하듯 유럽과 미국이외의 지역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지난 오백년 동안 세계의 정치경제는 서구가 지배했기 때문에 그러할 수밖에 없지만. 1991년에 일어난 소련의 붕괴를 예측하지는 못했지만 소련 체제의 어려움을 잘 파악하고 있다.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오랜 정체를 겪은 현 시점에서 국제 정세는 1980년대 초반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럼에도 이책은 훌륭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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