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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에 해당되는 글 4건
2019. 9. 13. 10:50

Wilber Zelinsky. 2001. The Enigma of Ethnicity: Another American Dilemma. University of Iowa Press.

문화지리학자인 저자가 미국의 인종민족의 다양성에 관한 문제를 분석한 학술서이다. ethnicity 는 우리말로는 번역이 안되는는데, 특징이 구별되는 집단을 ethnic group 민족 집단이라 하고, 그렇게 스스로 구별하고 주변 타자들이 구별을 짓는 특성을 ethnicity라 한다. ethnicity 는 주류 집단이 타자를 구분짓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주류 집단인 영국계는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부터 온 이민자들을 민족 집단으로 구별짓고 편견과 차별을 가하였다. 독일계, 북유럽계,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랜드계, 유대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영국계 자신에 대해서는 이 개념이 적용되지 않는다. 즉 ethnicity는 집단간에 권력의 차이, 위계적인 질서를 반영한다. 유럽의 영국이외 지역 출신의 이민자 후손은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에스닉 집단이라는 오명이 붙었으나 20세기 후반 들어 백인 미국인이라는 개념으로 통합되어 가고 있다. 즉 ethnicity 가 탈색되고 주류 집단으로 편입되고 있다.

그렇다면 1970년대 이래 ethnicity에 관심이 높아지고 유럽의 다양한 민족 출신, 특히 이탈리아계나 아일랜드계 후손들이 자신의 민족성에 다시 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는 symbolic ethnicity 상징적 민족성일 뿐이다. 이는 삶의 조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문화적 취향을 취사선택하는 것, 즉 개인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입었다 벗었다 하는 옷에 불과하다. ethnicity 와 함께 따라다니던 열등함이 사라졌기 때문에 마음편히 택할 수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의 구속력은 미약하다.

중남미계, 아시아계, 특히 흑인들의 경우 ethnicity 의 구속은 가까운 시일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설사 사회경제적으로 백인 주류에 동화한다고 하여도, 외모로 구별되는 인종적 특성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는 명찰이 쉽게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의 백인 주류사회는 인종주의를 쉽게 버리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종주의는 백인에게 권력관계에서 우위를 부여하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백인이기 때문에 여러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고 이익을 취하는 것이 가까운 시일내에 바뀌지 않을 것이다.

1980년대 이래 소수자의 권리를 짓밟아서는 안되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분위기가 퍼지면서 민족 문화의 다양성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풍조가 자리잡았다. 그러나 저자는 다양한 문화를 진정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가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특정 집단의 문화는 그 집단의 권력관계에서의 위치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권력을 주도하는 집단과 이에 대응하는 하급의 집단이 존재하며 이는 문화적 다양성에도 투영된다. 어느 사회에서나 주류와는 다른 소수자의 문화가 특이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것은 그것이 주류가 아니고 열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1980년대 이래 특정 지역과 연관되지 않고 여러 문화가 혼합된 형태로 존재하는 새로운 다문화 개체가 출현했다고 주장한다. 이민족, 이인종간에 결혼이 증가하고, 이민자들이 본국과 미국의 양쪽에 발을 디디고, 이민초기부터 지위가 높은 직업에 종사하고, 이민자 밀집 거주지를 형성하지 않고 흩어져 살면서, 서로간에 사회문화적 교류를 하는 집단은 미국의 백인주류와는 다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소수자 민족집단의 전형에도 맞지 않는다.이들은 분명 주류와는 다른 ethnic group이지만 그렇다고 열등한 성격의 ethnicity에 해당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미국은 앞으로도 다양한 민족들이 이민을 오고 서로 섞이면서도 변형되고 약화된 형태로 자신들의 다양성을 지속해 가는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왜냐하면 미국은 특정 주류 집단과 피로 연결된 이념적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구심점은 계속 유지될 것이지만 관습, 가치관, 음식문화 등은 다양한 민족 문화가 섞이면서 변형을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강점이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물론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면서 미국 문화의 구성은 달라질 것이고, 이러한 변화를 두려워하고 반발하는 백인들의 움직임 역시 강해해지고 있지만, 이들이 미국 문화의 변화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낙관주의자이면서 미국을 사랑하는 감정이 연구에 녹아있다. 이 책은 학술적 분석서이기는 하지만, 미국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학식이 녹아 있다. 저자는 정말 많은 사례를 구구절절 나열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의 미학을 표현한다. 물론 그의 낙관적인 예상이 단기적으로는 맞지 않을 수있다. 도날드 트럼프의 예에서 보듯이. 장기적으로도 미국이 다양성이 주는 체제의 강점을 계속 살려나갈까? 저자는 다양성을 긍정적으로보지만, 유색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 달가운 명찰이 아니다. 백인의 반발이 큰 폭력 없이 다양성의 확대라는 흐름으로 흡수될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회의적이다. 근래에 미국과 중국의 패권 싸움에서 보듯이, 권력 다툼의 장에서는 평화적 타협과 조화라는 결과는 역사상 예가 없다.  미국의 백인이 ethnic group의 일원으로 바뀌는 것은 평화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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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6. 16. 10:42

Kwame Anthony Appiah. 2018. The Lies Than Bind: Rethinking Identity, creed, country, color, class, culture. Liveright publishing co. 219 pages.

저자는 영국 출신의 철학자로 미국의 뉴욕대 교수로 있다. 이 책은 그가 BBC 라디오 강좌를 위해 쓴 원고를 보완한 것이다. 일반 독자를 상대하므로 전문용어나 이론적 논의를 최소화 하면서 정체성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가나 출신의 아버지와 영국의 전통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영국에서 성장하면서 정체성의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들의 정체성, 즉 '그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그리 간단히 답할 수없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사람들은 정체성을 본질적 특성의 반영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성, 종교, 민족, 인종, 계급, 문화 등 이 모든 정체성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책의 제목  '사람들을 묶어주는 거짓말' 은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 정체성에 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잘 못된 것일뿐 아니라 해악적인 요소를 포함한다는 그의 주장을 반영한다. 

첫번째 장에서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을 예로 하여 이것이 본질적(essential) 특성의 반영인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construct) 것인지에 관한 이론적 논의를 소개한다. 사람들은 구분되는 범주에 대해 이름을 붙이며 이 이름은 본질적인 무엇을 지칭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남성은 여성과 본질적으로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적인 성(gender)을 구분해야 한다.  사람들이 남성 여성에 대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의 대부분은 '성 역할'이라 지칭하는 사회적 성에 해당한다. 사회적 성 정체성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을 지칭하기보다 사회가 만들어 낸 것으로 사회에 따라 다양하다. 인종 또한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이다. 백인과 흑인의 구분은 생물학적 측면에서 피부색의 차이를 반영하지만, 그 핵심은 서구의 세계 지배의 산물이다.  흑인을 백인보다 열등한 종으로 인식하고 흑인을 노예로 지배한 역사를 통해 인종은 서구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정체성 항목이 되었다.  

종교적 정체성은 인종과 엮여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도라는 정체성은 백인이라는 정체성과 함께 하며 서구 문명의 핵심이다. 민족 구분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지 여부가 핵심이지만, 서구에서도 19세기에야 비로서 형성된 구분이다. 그 전에는 한 나라에 다양한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살았으며, 언어의 구분 또한 애매하다. 따라서 민족은 매우 자의적인 구분이다. 가족이나 소규모의 부족 혹은 마을을 넘어선 큰 집단, 즉 서로 대면할 일이 없는 큰 집단을 하나의 민족이라는 단일 정체성 집단으로 만든 것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정치적 과정의 소산이다. 계급은 경제적 자산의 다과에 따라 만들어진 범주인데 과거에는 귀족, 지주, 평민 이라는 신분으로 구분되었으며, 근대로 오면서는 교육 수준, 소득, 직업 으로 구성되는 사회경제적 지위로 대표된다. 사회경제적 지위는 지위 집단간 뚜렷이 구분되는 경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중시하는 경계 구분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컨대 대학을 졸업했는지, 몸을 쓰지 않는 사무직에 종사하는지, 등에 따라 사람들의 생활 방식이나 사고방식이 구분된다.  아무리 개인의 성취를 중시하는 업적주의 사회가 도래한다고 해도 능력이나 업적 자체가 세대간에 세습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특정 계급 집단의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교과서적 사실을 다양한 예를 들어 알기 쉽게 풀어 쓴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정체성에 대해 일반적인 지식을 일목요연하게 확인하게 된다. 대립되는 논쟁을 소개하거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므로 평이하게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2012. 8. 26. 22:41

  오늘 감동적인 글을 읽었다. 아틀랜틱 몬슬리 9월호에 나온 “Fear of a Black President"라는 제목의 글이다. 미국에서 백인 주류 사회에 대한 흑인의 분노와, 흑인에 대한 백인의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다. 노예제에 뿌리를 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비인간적인 차별은 미국 사회의 곳곳에서 여전히 감지된다. 흑인은 근본적으로 열등하다는 인종주의는 많은 백인의 머릿속에 또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흑인들은 좌절과 분노로 자신을 파괴하는 한편, 범죄로서 주류의 질서에 저항한다. 백인은 흑인을 두려워하며 가급적 멀리하려 한다.


Atlantic_FearofBlackPresident.hwp



  이런 인종주의 사회에서 2008년 흑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그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인데다 여러 가지 요인이 겹쳐서 다른 선택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다. 전임 대통령인 아들 부시의 오랜 실정과 경제 위기가 공화당의 계속된 집권을 어렵게 했으며, 민주당의 예비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역시 여성인데다 전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점이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했다. 인종주의 사회에서 소수 인종인 흑인이 다수의 지지를 얻어 지도자로 선출된 것은 정말 닥치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미국 사회는 초유의 사태에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 흑인을 자신의 지도자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많은 미국인들은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거나 혹은 이슬람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그를 부정하려고 하였다.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반대로 일관하여 그의 정부가 실패로 끝나기를 바랐다.

  흑인은 백인에 대해 가슴속 깊이 분노를 품고 산다. 오바마는 흑인이다. 오바마는 이러한 분노를 어떻게 삭혔을까? 오바마는 영민한 사람이다. 백인에 대한 흑인의 분노의 감정을 절대 밖으로 표출해서는 안된다는 것, 존재 자체를 백인 주류사회에 눈치 채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을 잘 안다. 흑인의 분노의 감정이 담긴 것으로 해석되게 오해되는 발언이나 행동을 조금이라도 한다면 엄청난 비난과 반발이 퍼부어질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어느 대통령보다 인종에 대한 언급을 가장 적게 한 대통령이다. 백인이라면 특별히 인종적인 함의가 있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을 발언도 흑인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오바마는 대통령이기에 앞서 흑인이다. 백인에게 오바마의 발언과 행동은 흑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의심받기 쉽다.  그러한 의심은 여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어 그러한 발언을 한 취지 자체를 무력화시킨다. 오바마는 이러한 오해가 발생할 소지가 있을 때에는 자존심을 굽히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한가지 예를 들면, 일전에 하바드 대학교의 흑인 교수가 자신의 집 앞에서 백인 경찰에게 가택 침입죄로 체포되었다. 열쇠를 집에 놓고 나와 문을 억지로 따려고 씨름하고 있을 때 지나치던 경관이 다가왔다. 그가 자신의 교수 신분증을 보이고 이곳에 오래 산 사람임을 거듭 말했으나 경찰이 이를 무시하고 그들 연행하여 경찰서에서 하루 밤을 재우고 풀어준 것이다. 그가 백인이었다면 아마도 경찰이 그의 학교나 이웃에 확인하여 웃고 지나갔을 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한 경찰의 행동이 지나친 치안 행위라고 언급했다. 정부의 책임자로서 그의 발언은 지극히 온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백인 경관은 기자들을 향하여 자신은 조금도 잘 못한 것이 없다고 발언하여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여론이 시끄러워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그 경관이 자신의 말을 오해했다고 굽히고 들어갔고, 백악관에 경찰과 교수를 초청하여 맥주잔을 건네면서 화해를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 당시 의료보험 개혁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던 상황에서 여론이 인종 문제로 들끓어 올랐을 때 기꺼이 자신을 굽힘으로서 논란이 사그라들기를 바랐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책에서 인종주의로 인하여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받고 좌절과 분노의 나날을 보냈던가를 솔직히 썼다. 대통령이 된 지금도 흑인으로서의 쓰라린 기억을 가끔씩 노출한다. 예컨대 최근에 플로리다에서 후드티를 입은 트레이본 마틴이란 순진한 청년이 경관의 추격을 받아 총 맞아 죽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손에는 스키틀이라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탕과 아이스티만 들려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만일 아들이 있었다면 그도 트레이본처럼 보였을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흑인으로서 쓰라린 감정의 정곡을 찌르는 발언아닌가?

  오바마 대통령은 백인의 인종주의에 대해 직접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미국의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우회 전략을 취한다. 미국의 어려운 사람 중에 흑인이 상대적으로 더 많으므로 이는 결국 흑인에게 혜택이 더 돌아간다. 이러한 인종 중립적인 정책을 추진함으로서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을 특별히 우대하려고 한다는 비판을 피해갈 수 있다. 그가 추진한 의료개혁의 주요 내용인, 모든 미국인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도록 하는 것은 의료보험을 누리고 있는 중류층 백인보다는 지금까지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흑인들에게 더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정책이다. 미국의 백인들이 오바마의 의료보험 개혁을 적극적으로 저지하려고 하는 데에는 인종주의적 의도도 바탕에 깔려있다. 

  흑인은 근본적으로 열악하다는 인종주의를 깨는 효과적인 전략은 그렇지 않은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가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음으로서 인종주의를 부정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 그가 미국사회의 인종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음에도 그의 존재 자체가 인종주의를 무너뜨리는 증거로 작용하고 있음을 잘 알기에 그는 누구보다 인종주의적 갈등이 촉발되어 일을 망쳐버리지 않도록 조심한다. 인종주의적 백인 또한 이를 잘 알기에, 그의 발언이나 행동이나 그의 정책에서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가 실패한 대통령이 되면 오랫 옛날 노예제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인종주의가 옮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백인 인종주의자들은 흑인은 선천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지도자가 될 수없으며, 설사 잘못되어 지도자로 선출되었더라도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음을 증명하고 싶어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인종 문제에 직접 간여하면 그들의 계책에 말려들어 일이 잘 못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것을 오바마 대통령은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과거에 오바마 대통령의 자서전 “Dreams from my father"을 읽을 때의 감동이 몰려왔다. 오바마는 지혜로우며 용감한 사람이다. 진실로 위대한 사람을 찾기 힘든 오늘날 그는 나에게 정말 존경스러운 사람으로 새삼 우러러 보인다. 역사도 그를 그렇게 기억할 것이다. 

2010. 8. 15. 15:34
    요즈음 미국은 9.11 테러가 났던 곳 근처에 이슬람 문화센터를 짓는 것을 허용할지 하는 문제로 연일 시끄럽다. 엇그제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교의 라마단 축제를 맞아 미국내 이슬람 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 발언이 구설수에 올랐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에 의해 미국인이 희생된 자리에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을 지지하는 듯한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을 지지하는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라, 미국은 여러 인종과 민족이 모인 다문화 사회이며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나라이므로 개인 소유지에 이슬람 문화센터를 짓는 것은 미국의 국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뿐,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해명했다.

   두가지 측면에서 오바마 발언에 대한 미국인들의 비판을 생각해 볼 수있다. 하나는 미국이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인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많은 보수주의 백인들은 미국이 유럽을 뿌리로 하는 기독교 백인의 국가이어야 하며, 다른 피나 문화가 섞여이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톤도 이런 사람 중 하나이다.

  두번째는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이름 속에 후세인이 있는 것을 두고
선거때 많은 미국 사람들은 오바마가 이슬람교도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기독교도라는 증거가 엄청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믿을 수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들에게 오바마가 기독교도인지 여부가 마음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가 흑인이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향은 정말 끈질기며 음험하기까지 하다. 정의, 형평, 사랑, 인권, 등 어떤 가치를 앞세워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말로는 다른 구실을 내세우면서 반대하지만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고집이 자리잡고 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를 아무래도 자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 미국 백인중에는 참 많다. 형편없는 흑인들이 주위에 득실 거리고 이들을 내려다보고 살면서 자존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똑 같은 피부색의 흑인을 존경할 수있겠는가?  경제위기 때문에 마지못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용인하기는 했지만, 그가 크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실패한 별볼일이 없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는 백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오바마를 바라보는 마음속은 착잡하며 이율배반적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정치를 잘하고 경제를 일으켜 세운다면 자신도 좀더 잘 살게 될 것이나, 그의 성공은 흑인이 백인보다 더 잘 할 수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그다지 기쁘지 않다. 

   이슬람 교도를 자신과 같은 미국인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심리이다. 이들은 이슬람교도를 이등 시민으로 간주하며, 자유 평등이라는 미국의 국시가 그들에게는 적용될 수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거 흑인 노예나 인디안에게는 미국의 헌법을 적용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은 자유 평등을 실현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런데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라서, 이들 보수주의 백인들도 결국 소수자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백인들은 애를 많이 낳지 않으므로 아무리 이민을 막는다고 해도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이며, 유색인이면서 성공한 사람이 늘면서 인종주의적 생각을 포기하는 백인들이 늘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이 아니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동등한 미국인으로 대접받는 날은 빠른 시일내에 오지는 않겠지만, 미국에서 보수주의 백인의 위세가 갈수록 약해질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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