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50대 중반이 되면서 직업 전선에서 물러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한창 일할 연령인 25세에서 54세 사이에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1970년대까지 95%를 넘었으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의 경제 상황이 바뀌면서 이 비율이 급격히 감소하여 근래에는 80%후반에 머물고 있다. 경제활동 참가율이란 해당 연령대의 인구 전체 중에서 일을 할 능력이 있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의 비율을 의미한다. 일할 능력은 있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구직을 포기한 사람은 경제활동인구에서 제외된다.
50대 후반 남성들이 근래에 경제활동에서 더 많이 퇴장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요인이 작용한다. 기술 변화가 급속하여 낡은 기술을 가진 중년을 직장에서 선호하지 않는데다, 한 직장에서 오랫동안 일하여 연공서열을 쌓아 높은 임금을 누리던 남성 근로자들은 싼 임금을 찾아 공장이 해외로 이전하면서 해고 되었을 때, 주변에 싼 임금을 주는 서비스 직종에서 새로이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쌍용 자동차에서 강제 해고된 사람들이 시급 오천원의 임시직에서 일하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의 아내들이 과거보다 더 많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좀 더 여유가 있다. 미국에서 기혼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상승하여 연령대에 따라서는 70%를 넘어섰다. 과거에는 남성이 밥을 벌어 와야 한다는 압력이 대단하여 직장이 열악하더라도 어떻게든 참고 다녔으나, 부인이 돈을 벌어온다면 남성은 실직을 해도 한숨 놓고 과거에 일하던 수준의 보수에 걸 맞는 직장을 알아볼 뿐 열악한 일자리를 찾아 고생하려고 하지 한다.
50대에 일자리를 벗어난 중년 남성들은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교육수준이 낮을수록 일찍 일에서 은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모든 은퇴한 남성들이 유사한 방식으로 하루를 지내고 있지는 않다.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소개한 사례는 비교적 교육수준이 높은 사람들로 보인다. 집에서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이 제일 많다. 과거보다 잠을 많이 잔다. 일을 할 때는 평일에 8시간 이하로 자던 사람들이 은퇴하고 나서는 9시간 이상 잔다. 텔레비전의 시청시간이 눈에 띠게 늘었다.
평소에 하고 싶었던 취미활동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다. 음악을 좋아 하던 사람은 하루에 많은 시간을 음악을 들으며 보내고, 악기를 좋아 하던 사람은 매일 악기 연습에 많은 시간을 쓰고 때때로 동호회 연주 모임에도 나간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책을 많이 읽게 된 사람도 있다. 그동안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것을 새로이 배우거나 해보는 사람도 많다. 소설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사람이 많으며 교양 강좌를 듣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사실 50대 후반 60대 초반의 나이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왕성한 나이이므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만 아니라면 자신이 해보고 싶은 것을 더 늦기 전에 시도해보고 갈 때까지 가보고 싶은 때이다.
사실 은퇴라는 것이 경제적인 어려움만 아니라면 해볼 만하다. 그러나 현실은 50대 중반에 은퇴하면 나쁜 점이 훨씬 많다. 경제적 어려움은 시간이 가면서 가중된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라면 30년 이상 근로 소득 없이 버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을 멈추면 미국에서는 처음에 실업 수당이 나오고 몸이 아프게 되면서 장애 수당을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미래에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걱정 때문에 사기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 압박 때문에 과거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하는 중년 남성이 점차 늘어난다.
경제활동에서 은퇴하기에는 50대 중반이 이른 나이이므로 경제적으로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압력을 많이 받는다. 일을 해야 할 나이에 일을 하지 않으면 놀고먹는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덮어씌워 지면서 자긍심을 훼손당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으며 주위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기생충 취급한다면 계속 살아야 할 가치를 부정당하게 된다. 남성의 경우 놀고먹는다는 자아 이미지는 견디기 힘들기에 사회생활이 움츠러들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쉽다.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정신적으로 피폐해 지면 오랜 세월 함께 하던 주위사람들, 특히 자신의 배우자 마져 떠나게 된다.
사실 누구나 직장생활이 힘들기에 빨리 은퇴할 나이가 되어 마음 편히 놀고먹는 생활을 기다리는 마음이 굴뚝같다. 문제는 사회에서 인정하는 은퇴 연령이 점점 뒤로 늦추어 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십년 전만해도 경제활동연령은 59세에 종료되고 60세 부터는 노인, 즉 사회적으로 당당하게 은퇴 생활을 해도 되었다. 현재 64세까지로 되어 있는 경제생활연령은 조만간 뒤로 늦추어 질 것이 분명하다. 근래 여론조사에서 70세부터 노인이 시작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라 하며, 건강 상태로 볼 때 70세까지는 일하는 데 크게 지장이 없다고 하니 경제활동 연령이 69세로 늦추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 지금 대로라면 연금 재정이 파탄날 것이 분명하기에 연금 개시 연령도 뒤로 늦추어 질 것이 분명하니 50대에 은퇴하기는 글렀다. 마음 편히 놀고먹을 수 있는 날이 훨씬 뒤로 늦추어 지는 것이다. 무엇을 하건 필사적으로 일하면서 최소한 60대 초반까지는 버티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50대 중반에 은퇴하여 조금 먹더라도 여유자적하며 살고 싶지만 꿈같은 이야기이다. 직장 생활에 쫒기지만 않는다면 더 뜻있게 삶을 살 수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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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는 우리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어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다. 아직 몇 달 더 남아 있어 단정하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의 공화당은 미국의 민족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어 합리적인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미국인의 정체성에 호소하는 부분이 있으며, 공화당과 미국의 기득권층과의 결합은 매우 공고하기에 선거때 큰 힘을 발휘한다. 돌발 사태가 발생할 때 미국인의 감정에 호소하고 기득권층의 여론조작과 돈의 힘이 작용하여 짧은 시일내에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오바마 대통령이 흑인이라 찜찜해 하는 미국인이 많이 있기에 오바마 대통령의 권력 기반은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훨씬 취약하다. 2000년과 2004년에 부시 대통령이 당선과 재선될 때 외부인의 관점에서 논리적으로 따지면 그가 그렇게 지지를 획득하리라 예상하기 어려우나 그의 스타일과 지지 배경은 미국인에게 상당한 힘으로 작용하였다. 결국 그 반작용으로 흑인인 바락 오바마가 2008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부시에게 주었던 비합리적인 애정과 그가 망쳐 놓은 경제 때문에 다수의 미국인은 정말 하기 힘든 선택을 했던 것이다.
오늘 경향신문에 "미국 대선, 공화당의 한계"라는 제목으로 임원혁(KDI 국제대학원교수) 교수가 쓴 글이 경제적 측면에서 현재의 상황을 잘 설명하고 있기에 다음에 전문을 소개한다. 그러나 그가 '공화당의 근본적인 한계'라고 지적한 부분은 미국 정치에서 작용하는 '공화당의 괴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에 약간은 한계가 있다.
<미국 대선, 공화당의 한계>, 임원혁, 경향신문 2012년 8월 23일.
오는 11월6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설 후보를 공식 선출하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다음 주와 그 다음 주에 열린다. 주 단위로 실시되는 미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총 538명의 선거인단 중 270명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주별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하여 대선 결과를 예측하는 웹사이트(www.electoral-vote.com)에 따르면, 8월21일 현재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는 284표,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는 241표, 무승부는 13표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업률이 8%를 상회하여 사회적 불만이 쌓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임자인 오바마 후보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는 롬니 후보의 개인적인 문제와 미국 공화당의 근본적인 한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전략을 구상할 당시 롬니 후보는 본인이 민간 CEO와 매사추세츠 주지사로서 올린 성과를 내세우면서, 경제·사회·외교 부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저지른 실정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이와 같은 대선 전략에 따라 롬니 후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지 4년이 넘고 대규모 부양책이 시행되었음에도 경기 회복이 지지부진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이 보편적 의료보험을 확립한다는 명분하에 의료보험 매입을 의무화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침해했고, 대외적으로는 외국의 눈치를 보면서 저자세 외교를 구사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대선 전략은 사실관계에 배치될 뿐 아니라 롬니 후보와 공화당의 행적을 부정적으로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선 롬니 후보가 내세웠던 민간 CEO 경험은 주로 기업 인수·매각에 관한 것으로, 향후 미국 경제를 재건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즉, 사모투자회사에는 좋을지 몰라도 국민경제에 과연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롬니 후보가 현재까지 공개한 납세신고 기록에 따르면, 2009년과 2010년 근로실적이 없는데도 소득이 4200만달러에 달하고, 스위스 은행계좌를 보유하고 있으며, 실효 세율이 13.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 운동 등을 통해 금융계에 대한 일반 대중의 불만이 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롬니 후보의 CEO 경력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사실관계 차원에서 보더라도 글로벌 금융위기는 공화당 부시 행정부 당시의 잘못된 정책에 기인한 바 컸고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에도 공화당은 재정 정책과 관련하여 딴죽을 걸었기 때문에 현재의 경기 부진을 오바마 행정부 책임으로 돌리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미 대법원에서 판결한 바와 같이 의료보험 매입 의무 조항은 세금과 마찬가지로 공공정책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으로, 특히 롬니 후보는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재임할 당시 이와 유사한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를 선구적으로 도입한 장본인이기 때문에 더욱 할 말이 없다. 외교·안보분야를 봐도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외국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사마 빈 라덴 사살까지 감행한 행정부를 허약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이처럼 원래 구상한 대선전략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롬니 후보는 하원 예산위원장으로서 작은 정부를 주창하여 보수층의 총애를 받고 있는 폴 라이언 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여 지지층을 결집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폴 라이언 의원이 제시한 감세와 재정지출 개혁안은 고소득층에게는 큰 혜택을 주지만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상당한 타격을 주는 방향으로 되어 있어 그 세부 내용이 알려지면 일반 유권자의 반발을 초래할 것이다. 즉, 롬니 후보가 본인의 선명성을 입증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잠재적 자충수인 것이다. 이처럼 롬니 후보와 공화당의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에 유로존 위기의 심화 등 돌발변수가 없는 한 2012년 미 대선은 오바마 후보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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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을 타고난 사람은 어떻게 해도 잘 된다고 했던가? 근래에 미국이 바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새로운 종류의 천연가스가 엄청나게 많이 매장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쉐일 가스”(shale gas)라고 부르는 것으로 지하 수 킬로미터의 암반 사이에 고여 있는 천연 가스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매장량을 추정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이를 지상으로 끌어내는 기술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수년전에 ‘프래킹’(Fracking)이라는 새로운 채굴 기술이 미국에서 개발되면서 새로운 자원의 보고가 열리게 되었다. 프래킹이란 지하 수 킬로 미터를 수직으로 파이프를 박은 다시 수평으로 구멍을 뚫고 들어가 물의 압력을 이용해서 쉐일 가스를 품고 있는 바위를 부순뒤 가스를 뽑아내는 기술이다.
현재 세계의 주에너지원은 화석 연료이다. 석탄과 석유가 주를 차지하며 핵 에너지가 다음을 차지한다. 천연 가스는 매장량이 많지 않고 취급하기 어렵기에 제한적으로만 사용된다. 쉐일 가스의 발견으로 천연 가스가 주요 에너지원으로 새로이 등장 할 수도 있다. 현재 사용되는 매장량이 많지 않고 호주, 인도네시아, 중동, 시베리아 혹은 북해 바다 밑 등에서 주로 생산되어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다. 채굴 비용에 비하여 운송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높으며 폭발의 위험도 높다. 새로운 종류의 천연가스인 쉐일 가스는 현재 알려진 매장량만 기존의 천연가스의 수십배에 달하며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에 많이 매장되어 있다. 미국과 중국에 특히 많이 매장되어 있는데 이 나라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나라이다.
석유에 주로 의존하는 미국은 이러한 새로운 에너지원의 발견으로 흥분에 들떠있다. 현재 쉐일 가스를 채굴하고 있는 몬태나의 작은 마을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임시 숙소가 사방에 들어서며 생필품의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마치 과거에 금광붐이 불었을 때처럼 말이다. 미국에서도 아직은 쉐일 가스를 채굴하는 초기단계이지만, 조만간 이 가스가 많이 매장된 중서부나 서남부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가스를 채굴하면 주변 산업단지에서 이 가스를 많이 소비할 것이다.
가스는 석유와는 달리 운송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그러나 쉐일 가스를 액체 상태로 하여 파이프를 통해 육상 운송할 경우 비용을 현저히 낮출 수 있다. 수년내 쉐일 가스의 채굴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면 미국의 에너지 비용이 현재의 절반 이하로 낮아질 수 있다. 값싼 에너지를 이용하며 미국의 제조업이 다시 부흥할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일본 중국 다음으로 천연가스를 많이 수입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쉐일 가스가 매장되어 있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미국이 강대국이 된 것이 풍요로운 자연 조건 때문만은 아니다. 그러나 천연자원이 풍부히 매장되어 있고 온화한 기후에 경작 가능한 토지가 매우 넓고 인구 밀도가 낮은 것이 미국인이 잘 살게 된 주원인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재화가 토지임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강점은 명확하다. 그래서 한국인은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이나 캐나다나 호주로 이민을 가고 싶어 하며, 몽골의 끝없는 평원을 보고 흥분한다. 유럽계 이민자들은 북미 대륙에 건너와 원주민을 몰살하고 그곳을 하느님이 자신들에게 축복을 내린 땅이고 자신을 하느님의 선택받은 자라고 굳게 믿었다. 아직까지는 그들의 믿음이 계속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인이 유럽인보다 특별히 신앙심이 강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는 말은 부정의한 세계에 대해 사람들이 자신을 위안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란 생각도 든다.
미국을 관찰하다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면서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먹고 살 수 있는 헐벗은 나라임을 새삼 깨닫는다. 미국과 같이 끝 모르게 풍부한 자원을 캐내면서 흥청망청 살아가도록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적 자원'을 잘 개발하고 활용하고 있는가? 저출산 타령만 하면서 여성들을 하릴 없이 집에 묵히고, 사람들을 젊은 나이에 은퇴하도록 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매몰차게 저버리는 우리 사회는 아직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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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은 여러 가지로 특이한 경력의 정치인이다. 인종주의가 만연한 미국에서 흑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도 기적적인 일이지만, 빈곤 운동가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미국의 대통령은 대체로 중상류 출신으로 고상한 경력을 통해서 성장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은 시카고의 빈곤지역에서 빈민을 상대로 빈곤퇴치를 위한 조직 활동을 하였다. 그는 현장 활동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느껴 정치적인 힘을 키워서 빈곤 문제를 퇴치하겠다는 꿈을 품고 하버드 법학대학원에 진학하였다. 그의 성장 배경을 볼 때, 그의 정치적 태도는 겉보기에 온건하지만 그의 속내는 매우 진보적일 것이다.
미국은 일인당 5만불을 넘는 고소득 국가이지만, 추악한 빈곤 문제를 안고 있다. 중위소득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극빈층이 전체 인구의 6.7%에 달하며, 특히 아동 빈곤 비율은 20%를 넘고 있다. 어린이 다섯 명 중 한명은 빈곤한 가정에서 생활한다. 미국 대도시의 도심에는 대낮에도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한 극빈지역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빈곤과 항시 함께 따라오는 범죄는 선진국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이다.
문제는 이렇게 심각한 빈곤 현실이 근래로 오면서 미국 사회와 정치권에서 심각하게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빈곤은 정치권에서 진지하게 다루고 싶어 하지 않는 문제이다. 빈곤은 뿌리가 깊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어려우며, 어설프게 접근해서는 빛도 나지 않고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기에 정치인들은 빈곤문제에 피상적인 립서비스 수준으로만 접근한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선거 유세 때 노점상에서 오뎅을 먹는 사진을 찍고는 그만인 식이다. 또한 중상류층의 정치적 관심은 높은 반면 빈곤층은 투표에 참가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관심은 빈곤층보다 중상류층의 삶에 더 집중된다.
빈곤은 대물림된다. 어떤 사람이 빈곤한 이유는 교육을 제대로 못 받아 돈벌이 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질 수 없으며, 영양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저항력이 낮아 쉽게 병에 걸리며, 먹고살기 위해 아파도 무리를 하기 때문에 계속 참고 일을 하다보면 더 심각하게 병에 걸려 돈을 벌지 못하고 약값과 병원비로 지출만 늘게 된다. 가난한 집 아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 이유는 집안이 공부할 환경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중류층 가정의 아이들과 경쟁에서 밀리고 학교와 사회에서 소외되어 좌절하면서 학업을 소홀히 하고 결국 일찍 중단한다. 가난한 가정은 부부간에 불화가 심하고 한부모 가족인 경우가 많으며, 부모도 하루하루 먹고 살기 어려우므로 자녀에게 규칙적인 삶의 방식을 가르치거나 공부를 봐주거나 학교를 잘 다니도록 뒷바라지할 여력이 없다.
어려서부터 집안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소외된 아이들은 공부를 착실히 해야 할 동기가 생기기 어렵다. 그러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자신의 충동적 감정을 조절하면서 미래의 성취를 위해 계획적으로 생활하고 현재의 어려움을 참아야 될 이유가 없다. 그 결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때그때 충동에 따라 제멋대로 행동하며 자란 아이들은 성장하여서도 직장에서 진득이 어려움을 이겨낼 능력이 없다. 엄청난 현실의 스트레스에 접해, 손쉬운 돈벌이나 범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술이나 도박에 의지해 당장의 어려움에서 도피하려고 하며, 불규칙한 생활로 인하여 질병에 고생하고, 배우자나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가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 있게 행동하지 않기에 항시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가난한 사람들이 허덕이며 일생을 살아가는 전체의 그림이 보이는가? 가난한 사람들은 사고를 훨씬 자주 당하며 단명한 삶을 산다.
물론 이러한 일반적인 유형에서 벗어나는 예외적인 경우도 드물게는 있지만 대체로는 이러한 빈곤의 대물림 사이클을 반복한다. 오바마는 시카고의 빈민 지역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사회 운동가로서 이러한 수렁에 빠진 사람들을 단편적으로 돕는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한다. 미래에 정치인이 되어 국가의 재정과 힘을 동원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삶 전체에 대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빈곤 전략을 구사하겠다고 결심한다. 문제는 그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빈곤층에게 집중적으로 자원을 투입하는 정책이 정치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중상류층은 자신의 돈이 빈곤층에게 돌아가는 데 반대하기에 빈곤 정책을 입법화하고 예산을 따는 것이 어렵다. 또한 정치인 오바마가 빈곤층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재선을 목표로 하는 그에게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1960년대의 빈곤과 전쟁을 선포한 존슨 대통령 이후 실질적으로 빈곤층에게 가장 큰 도움을 준 대통령이라고 한다. 겉으로는 별로 드러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가 빈곤 문제의 해결로 내세운 전략은 ‘교육’이다. 빈곤의 대물림을 끊는 고리로 교육 특히 어린 나이부터 가난한 아이들의 교육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이다. 가정환경의 차이가 아이들의 성취에 큰 차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린 시절에 가정환경의 불리함을 보완할 장치를 제공하는 것은 빈곤 퇴치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략이어야 한다.
어린이의 빈곤 문제는 사회정의의 문제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나, 이로 인한 결과는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에서 중류층 부모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이것은 한편은 좋은 일이지만 이것의 뒷면은, 능력이 되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매우 어린나이부터 교육과정이 끝나는 20대까지 일관되게 심각하게 불리한 처지에서 게임을 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잔인한 사회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매우 각박한 현실을 자각하면서 긴장해서 살고 있다. 일단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하여도 경쟁에서 탈락하면 빈곤층과 흡사한 수준으로 떨어질 수있고, 그러면 자신은 물론 자식 세대에서 다시 올라서기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우리사회가 진실로 풍요로운 사회가 되려고 한다면 이러한 잔인함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해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잔인한 사회에서는 아무리 내가 지금 잘 먹고 잘 살아도 위험이 상존하고 있기에 정말로 편안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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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최근에 "뉴욕사람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문화에 대한 흥미를 배경으로 새로운 글쓰기를 시도한 작품이다. 그동안 주로 학술적 글쓰기만을 하다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교양서를 썼다. 출간된 책을 받아 보니 글보다도 내가 똑딱이 사진으로 찍은 이미지가 매우 아름답게 구현되어 뿌듯했다. 사실 이 책은 2년전에 구상하여 작년 봄에 탈고한 것인데, 출판사를 찾고 제작하는 데만 일년 이상이 걸렸다. 우리나라의 고급 교양서 시장이 열악하다는 것을 새삼 절감하였다. 근래에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새 책을 구상하고 있는데 과연 햇볕을 볼 수있을지 아직은 확실치 않다. 이 문화에 대한 흥미와 지적인 호기심을 잘 결합한 교양서를 찾는 사람이 제법 많다는 것을 이 책을 내면서 발견하다.
다음은 출판사에서 만든 책 소개이다. 출판사와의 계약 때문에 본문은 실지 못하지만, 전에 출간한 책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한참 지나 상업적인 가치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때 블로그에 올릴 생각이다.
이 책은 뉴욕을 모델로 미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관찰한 글이다. 뉴욕 맨해튼을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들을 묘사하고, 뉴욕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그들은 어떤 희로애락을 겪으며 살아가는지 이야기한다. 덧붙여 그들이 왜 그렇게 살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이 책은 관광 안내서는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가고, 무엇을 먹고 놀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안내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 책에서는 뉴욕에 사는 다양한 사람들과 우리의 삶의 방식을 비교하고 뉴욕의 관광지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뉴욕, 그리고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해까지를 도모한다. 미국학자인 저자가 학교에서 연구하고 강의한 미국학 관련 지식이 곳곳에 깔려 있기는 하지만 현학적 논의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미국 문화에 호기심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뉴욕에 대해 이 책의 저자와 유사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
저자는 과거에 뉴욕에 살았지만 이 책의 집필을 위해 여러 번 뉴욕을 방문했다. 맨해튼 섬을 동서남북으로 걸어서 답사한 것만도 여러 번이다. 저자가 꼼꼼히 기록하고 사진으로 찍어 전하는 뉴욕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미국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이해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1장 ‘뉴욕의 화려한 부활’에서는 뉴욕은 어떤 곳이며 그곳으로 몰리는 세계의 인파들은 어떤 부류인지에 대해 개괄했다. 2장 ‘문화 상징의 메카’에서는 뉴욕의 주요 여행지 및 명물들, 교회와 박물관, 대학교 등에 대해 다루었다. 3장 ‘로어 맨해튼’에서는 월가와 유엔 본부가 위치한 남부 지역을 통해 뉴욕의 경제·정치적 풍광을 조망했다. 4장 ‘뉴욕의 터줏대감’에서는 흔히 인종 집합소라고 불리는 뉴욕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민족인 이탈리아 인, 유대 인, 중국인 들의 생활상과 위상을 다루었다.
5장 ‘보보스 문화의 매력’에 1980년대 상업적 부르주아와 1960년대 보헤미안의 가치를 합성한 보보스 계층, 소위 ‘문화 감각이 넘치는 엘리트’들의 삶의 터전과 매력적인 생활상을 담았다. 6장 ‘뉴욕의 상류층 대 소시민’에서는 뉴욕에서도 경제적 격차가 뚜렷한 지역들을 다루었으며, 7장 ‘흑인 문화의 고향’에서는 흑인 삶의 터전인 할렘과 베드퍼드-스타이브샌트를 기반으로 흑인의 생활상과 위상을 다루었다. 8장 ‘뉴욕의 마이너리티’에 뉴욕의 소수 민족인 한국인, 인도인 등 다양한 이민자들의 삶의 터전과 생활상을 담았다.
<목차>
뉴욕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01_뉴욕의 화려한 부활
1. 우리가 뉴욕이라고 부르는 곳
2.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은 도시 1위, 뉴욕
3. 뉴욕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 뉴욕 시는 네덜란드 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02_문화 상징의 메카
1. 타임스 스퀘어, 세계의 교차로
▶ 그랜드캐니언과는 또 다른 이유로 타임스 스퀘어를 찾는다
2. 뉴욕의 미술관
3. 관광지 순례
4. 뉴욕의 교회
03_로어 맨해튼
1. 그라운드 제로, 9?11 세계무역센터의 폐허
▶ 그라운드 제로와 오바마 대통령
2. 월가와 유엔 본부
3. 이스트 빌리지, 오리지널 이민자 동네
▶ 이스트 빌리지에서 다양성의 매력을 발견하다
04_뉴욕의 터줏대감
1. 리틀 이탈리아, 리틀 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 인이 살지 않는다?
▶ 콜럼버스 데이 퍼레이드 참관기
2. 유대 인의 딜레마, 성공했기에 사라지는 민족
▶ 내가 만난 유대 인
3. 차이나타운, ‘황색 위협’-인종 차별의 소산
▶ 군침 도는 먹거리 천지, 맨해튼 차이나타운 답사기
05_보보스 문화의 매력
1. 그리니치빌리지, 맨해튼에서 가장 고풍스러운 동네
▶ 그리니치빌리지에서 보낸 한여름
2. 첼시와 미트패킹, 뉴욕 경제와 함께 부활한 새로운 매력의 발산지
▶ 옛날 것을 재활용해 성공한 세 가지 사례
3. 센트럴 파크, 도심 한가운데 구현한 완벽한 인공 자연
▶ 생활 속의 자연, 센트럴 파크
06_상류층 대 소시민
1. 어퍼 이스트사이드, 소위 ‘부자이며 유명한’ 사람들의 동네
▶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사는 부자들의 삶을 엿보다
2. 미드타운 이스트와 어퍼 웨스트사이드
▶ 어퍼 웨스트사이 대 어퍼 이스트사이드
▶ 맨해튼 보통 사람들의 생활
3. 엘리트 대학 대 서민 대학
07_흑인 문화의 고향
1. 할렘, 흑인 사회 문화의 중심지
▶ 할렘을 대표하는 두 흑인 운동가의 대조적인 생애
▶ 할렘을 걷다
2. 흑인 교회, 정신적 구원과 실질적 뒷받침이 함께하는 곳
▶ 아비시니안 침례교회 방문기
3. 베드퍼드-스타이브샌트, 흑인만의 세상
▶ 할렘보다 더 진짜 흑인 문화가 숨 쉬는 곳
08_뉴욕의 마이너리티
1. 코리아타운, 한국 이민자들의 풍경
2. 동부 할렘, 푸에르토리코 인의 근거지
▶ 동부 할렘 사람들의 사는 모습
3. 인도 사람들, 백인인가 아시아 인인가?
4. 퀸스, 세계 모든 나라 이민자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
▶ 퀸스로 가는 전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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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면 많은 사람이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각자의 세계 속에 몰입해 있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눈이 어두운 노인이거나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뿐이다. 사실 스마트폰을 산지 얼마 안되었기에 사용법을 익히고 새로운 앱을 시험해 보느라 바쁜 것은 이해한다. 나는 전철을 타면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맞은편에 앉은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무슨 재미로 살까, 어떤 고민을 안고 헤메고 있나, 어떻게 저런 표정의 얼굴이 만들어졌을까, 젊었을 때는 어떻게 살았을까, 저사람은 과연 어떤 희망을 가졌을까, 여자는 남자와 어떻게 다를까, 등등 사람을 보면서 이모저모로 관찰하노라면 연민의 정이 느껴지고, 호기심이 피어오르고, 덧없다는 느낌도 들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페이스북 계정을 처음 만들면, 알만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추천해 주어 친구를 맺게 한다. 오랫 동안 소식을 몰랐던 사람을 새삼 발견하고 신기해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 상의 접촉은 실제 대면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연락을 취하지는 않는다. 페이스북의 관계가 피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어 친구 초청에도 응하지 않고 아예 들어가 보지도 않는다. 내 페이스 북 계정에는 친구가 한명도 없다.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자주 휴대전화를 열어보고 이메일을 체크하는 것을 보면 불쌍한 생각이 든다. 누군가 찾아주기를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지만, 막상 상대와 접촉하면 왠지 불편해지는 것이 요즈음 사람의 심사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안다. 사람들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개인주의적으로 된 것이다. 집단의 압력에 구속되던 상태에서 해방된 것까지는 좋은데, 의미있게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각자 자신의 틀을 지키면 서로 접촉하기가 조심스럽다. 상대가 쉽게 접근해 오면 나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어 튀기고 싶은 변덕이 발동한다. 내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가고 싶건만 막상 상대를 마주치면 왠지 상대의 못난 구석이 먼저 눈에 띠어 물러서 버리곤 한다. 나도 상대에게 그렇게 보일 것임을 알고, 나 자신이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각자 자신의 것을 지키고 자신에게 충실하면 의미있는 무엇을 발견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 속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삶의 울림을 찾지 못한다. 자신만의 세계를 찾으라는 조언은 그릇되다. 아무래도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가장 감동을 받을 때는 남과의 연결 속에서 무엇을 할 때이었던 것 같다.
페이스북이 그렇게 많은 접속건수를 기록하지만 그것이 사람들 간의 직접적인 대면 관계를 대치하지는 못한다. 인터넷에 시간을 많이 쏟는 사람은 외로운 사람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물론 둘 간에 인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외로운 사람이 인터넷에 더 몰두하기는 할 것이다. 인터넷을 많이 들여다보다 인터넷 세상으로 빠져든다는 환상은 매트릭스나 아바타와 같은 영화에서 소재로 사용되었다. 세컨드 라이프라는 프로그램에서 인터넷 속의 대리적인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지만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아직 인간의 진화 수준은 인터넷 가상 세계에서보다는 물리적으로 대면하는 관계 속의 삶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동굴에서 나와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서로에게 구속되는 것을, 또한 상대의 영역에 침범하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각자의 동굴 속에 머물러 있다. 인터넷이라는 제한된 통로를 통해 상대와 접하려고 하나, 편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별로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 사회에 외로움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많으며 그들에게 대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 직업이 번성하고 있는 것은 슬픈 일이다. 혼자만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물질적인 여유가 있는 선진국 사람들은 외로움이라는 비용을 비싸게 치른다. 가난한 나라에서라면 본인이 원치 않아도 항시 남과 부대껴야 하니 부자나라의 개인주의적 삶에는 양면성이 있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면 그래도 선진국 사람의 개인주의적이며 외로운 삶이 집단의 압력에 이리저리 밀치면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나는 도저히 뗄 수없는 끈끈한 관계나 함께 망가져본 경험이 있는 허물없는 사이가 한편으로는 부럽지만 썩 내키지는 않는다. 일생 함께 점심을 같이해야 하는 직장 동료라는 말은 나에게 구속으로 다가올 뿐이다.
관계 맺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니. 선진국 사람과 같이 제한적으로 또 계약적으로 관계를 맺으면 결코 그 관계가 편안해 질 수 없다. 하긴 나도 그리 관계 맺는 데 능한 사람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고 내식으로 살아가는 개인주의적인 삶이 편하기는 하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끊임없이 남들에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나도 마음속 구석에 사람들과 관계 맺고자 하는 갈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게다. 나도 따지고 보면 외로움에 절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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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에서 지난 반세기 동안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이 크게 증가하였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성역할 분업, 즉 여성은 집에서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고 남성은 밖에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을 이상적으로 여겼다. 물론 경제형편이 어려운 계층은 이러한 사회적 이상형을 실천하기 어려웠다. 가난한 집의 부인은 남편과 마찬가지로 생계를 위해 돈벌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중류층에서 기혼 여성이 돈벌이를 하는 것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세상은 변해 이제 서구사회에서는 70% 이상의 기혼 여성이 경제활동을 한다. 물론 그들 중 절반 이상은 전업직이 아니며, 남녀간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30%이나 난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만일 어떤 여성이 밖에 나가 일 하지 않으면 그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으로 반전되었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것이 돈벌이를 하지 않아도 될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지 않을 날도 멀지 않다.
여성이 밖에서 일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여성이 독립적인 경제기반을 가지면 남성과 여성간의 권력차이는 좁혀진다. 정치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가 늘고, 사회 전반적으로 여성의 발언권이 세지고, 이혼하고 재혼하는 사례가 늘고, 자녀를 적게 낳는 풍조가 정착한다.
이러한 변화는 여성 본인의 의지도 작용하지만 국가가 주도하는 측면도 있다. 인구가 노령화하면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고 경제의 활력이 줄어드는 것을 보충하려면 여성의 참여를 늘릴 수밖에 없다. 여성의 교육이 남성과 동등한 수준에 근접하고 있는데 여성 인재를 집에 모셔둔다면 자원의 낭비가 엄청나다. 여성 인재를 놀리는 나라는 여성 인재를 활용하는 나라와 경쟁이 되지 않을 것이며, 우수한 여성을 고용하지 않는 회사는 그렇지 않은 회사에 뒤질 것이다.
여성의 경제력이 늘고 사회적 역할이 남성에 근접하면, “여성다움”이라는 문화적 상징도 달라질 것이다. 지금처럼 자신을 치장하고 남성에게 잘보이는 데 과도한 노력을 쏟아야만 하는 “여성다움”은 사라질 것이다. 적극적이고 독립적이고 능력있는 여성을 이상적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는 문화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환상, 남성에 대한 여성의 환상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컴퓨터가 없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듯이, 여성과 남성의 구별이 없는 사회에서 사는 것이 어떨지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게 더 낳은 방식의 삶이고 인간성을 존중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누구에게 의존해 살아가는 방식은 아무리 아름다운 말로 호도해도 비인간적이다. 물론 각자가 자신의 삶에 책임지면서 사는 것이 더 편하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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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미국에서는 조셉 코니라는 사람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사람은 우간다의 군벌 두목으로 어린 아이들을 유괴해서 총을 쥐어준 뒤 이들을 조정해서 무차별적으로 만행을 저지르는 나쁜 인간이다. 아프리카에는 이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이 사람이 새삼 유명해진 이유는 일군의 미국 젊은이들이 이 사람을 제거하여 아이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비디오를 만든 것이 엄청난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만든 29분짜리 비디오가 유튜브에 지난 3월 5일에 올라온 이후 오늘까지 8천 6백만명이 시청을 하였다. 이 비디오에서 그들은 미국에서 행복하게 자라는 아이와 우간다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을 대비하면서 미국의 힘으로 코니를 잡아 정의를 바로세우자고 호소한다.
Atlantic_AmericanNationalism.hwp
이 비디오를 만든 젊은이들은 우연히 우간다를 여행하다가 코니의 만행을 접하고 8년전에 “보이지 않는 어린이”(Invisible Children inc.)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그동안 주로 참상을 고발하는 영상물을 만들어 퍼뜨리면서 모금활동을 하고 미국 정부에 동참을 호소하였으나 미국 정부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만든 영상물이 인터넷을 통해 크게 호응을 얻고 주요 언론에서 이 비디오의 경이로운 성과를 보도하게 되었다. 그들은 마침내 정치인을 움직여 중앙아프리카에 100명의 군사고문단을 파견하게 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코니의 만행을 중단시키도록 미국 정부가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었다. 이번 비디오에서는 다가오는 4월 20일을 D-day로 잡고 미국 젊은이들이 궐기하여 세상을 바꾸자고 호소한다.
대단하지 않은가? 인터넷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한 달도 못되는 사이에 8천만 명이 그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마침내 정치인조차 이들의 움직임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이 젊은이들의 활동에 대해 식자층의 의견은 찬반으로 나뉜다. 소위 힙스터라 지칭되는 미국 중상류층 젊은이들의 치기어린 활동이 아프리카의 어린이에게 얼마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지에 회의를 표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 자신의 일상사와 관련이 없는 세계 반대쪽에 사는 사람의 고통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미국의 숭고한 이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는 양쪽의 주장 모두에 공감한다. 코니가 어린 아이를 유괴해서 총질하게 만드는 것의 원인은 빈곤과 교육 부족에 있다. 이러한 문제를 제거하지 못한다면 코니를 잡는다고 해도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 어린아이를 착취해서 나쁜 일을 할 것이다. 교육 받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고 질병의 위협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총을 쥐어주고 먹을 것을 주면서 사람을 죽이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나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들 모두에게는 죽음이 바로 곁에 있기에 남을 착취하고 사람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사람이나 남을 죽이는 사람이나 큰 일이 아니다. 기아와 질병이 가져오는 죽음의 위협에서 해방시키고, 그들을 제대로 교육받도록 하고, 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면 그들도 앞날을 개척할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 것이며 남의 생명을 존중할 것이다. 요컨대 서구인이 누리는 문명의 혜택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프리카인이 비참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하는 지름길이지, 군벌 한명을 추적하여 사살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다.
미국 정부가 젊은이들의 일시적인 관심에 눌려서 아프리카 한가운데 100명의 군사고문단을 파견했지만 그들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 듯하다. 아프리카 중앙지대는 미국의 이해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중동이나 아시아와는 달리 매스컴에서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미국인은 아프리카 대륙 한가운데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대한 미국 젊은이들의 관심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자신의 이해와 무관한 대의를 위해 오래 일하기는 힘들다. 이 단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지금까지 모금된 돈의 대부분을 비디오를 제작하는 데 썼을 뿐 실제 아프리카의 고통 받는 어린이의 복리를 향상시키는 데 쓴 돈은 쥐꼬리 만큼이라고 비판한다. 이 젊은이들이 비디오를 통해 유명해지고 모금으로 거둔 돈을 자신들의 활동비로 쓰면서 끝날 가능성은 다분히 크다. 아프리카인의 비참을 이용하여 자신의 허영심을 만족시키고 자신의 명성을 추구하는 얄팍한 사람들이라고 매도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노력을 가상하게 여기는 이유는, 잘 먹고 편히 사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이웃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은 어찌되었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활동에 그리 호감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사실 미국의 중상류층 백인 젊은이들은 아프리카도 좋지만 자신의 나라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흑인에게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거리 하나만 건너면 비참한 지경에서 살아가는 흑인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 흑인 남성 셋 중 하나는 감옥에 가는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지름길이다. 이웃의 병원비를 내 돈으로 내서는 절대 안된다고 외치면서 전국민의료보험을 반대하는 것이 미국인이 아닌가? 미국에서 정의가 바로 선다면 많은 나라들이 미국을 뒤따라서 좋게 바꾸지 않을까? 나는 우리 사회의 나쁜 면이 부분적으로 미국의 나쁜 측면만을 본받아서 그리되지 않았나 의심을 할 때도 있다. 미국은 이러저러하다고 아는체 하는 식자층에게 미국에서 비참한 사람들의 삶을 당신이 아느냐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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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론조사에서 선호하는 종교가 없다고 응답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종교가 없다고 응답한다. 미국인 주류 집단의 정신적 지주가 기독교에 있으므로 미국의 식자층은 이러한 변화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물론 선호하는 종교가 없다고 해서 신에 대한 믿음까지도 없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미국인 열 명 중 아홉은 어느 정도는 신을 믿는다고 말한다.
유럽사회는 이미 세속화되어 신을 믿는 사람이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반면 미국은 서구문명에 속하면서 근래까지 세속화의 물결이 침투하지 않은 예외적인 사회로 여겨져 왔다. 과학 기술의 힘을 신봉하고 물질주의와 소비문화가 팽배한 미국인이 독실한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이율배반처럼 생각되나, 실제 미국인 중 독실한 기독교 신자는 적지 않다. 기독교 근본주의를 추종하는 복음주의 교파 개신교 교도만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한다. 이런 미국인의 독실한 신앙심이 근래에 두드러지게 균열하고 있다.
미국인의 개인주의는 개신교 신앙과 맞닿아 있다. 신에 대해 개인이 홀로 영적인 책임을 지며, 기도와 성경 읽기를 신에게 다가가는 최고의 수단으로 여기며, 신이 개개인의 구원 여부를 미리 정해 놓았다는 교리 등은 모두 개인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것을 명한다. 부모나 형제조차도 자신의 신앙에 직접적으로 간여할 수 없다. 기독교 신자들은 교회를 통해 서로 사교하고 믿음을 부추기며 지내지만, 개신교는 신앙에 관한 한 개인이 사막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근래에 많은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종교가 없다고 하며 교회에 나가는 것을 게을리 하는 것은 개인주의의 발현이다. 이들은 기성의 교회 조직이나 자신 이외의 외부의 권위를 부정한다. 삶의 의미를 찾고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서 기존의 권위에 의지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용감한 행위이다. 그러나 자신의 내부에서 혹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나서는 것은 결국 허무로 흐를 위험성이 크다. 기존 종교나 교회와 거리가 멀어지는 것은 유럽의 경우 세속화된 인간으로 이전하는 중간과정이었다. 이들에게 신 혹은 초월적인 힘에 대해 막연한 개념은 남아 있으나 인간사는 인간이 관장하는 것이라는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지배하게 된다.
그게 무슨 문제냐고 질문한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할 것이지만 미국인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다.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보통 미국인의 생각이다. 신이 없으면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도덕이 없고 무엇을 해도 죄가 된다는 관념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극한 개인주의자와 무신론자가 합체가 되면 무서운 사람이 탄생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생각은 약간 다를 것이다. 질서라는 것은 신으로부터 보다는 내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나온다. 내가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는 것은 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나의 가족이나 내가 속한 집단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한 마음에서 나온다. 동양 사회에 절대자 신을 모시는 종교가 큰 세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간절히 바라는 것을 이루게 해달라는 구복적인 신앙은 어느 사회에나 있지만, 절대적인 가치나 삶의 의미를 신에게서 찾는 믿음은 동양 사람에게 생소하다.
서구인이 교회와 신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절대적인 가치와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아나서는 노력이 어디에 귀결될지 궁금하다. 불교의 참선이나 요가 등과 같이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그리 큰 성과를 거두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솔직히 자신의 내면을 골똘히 들여다보면 가치 있는 무엇을 발견하리라는 약속을 믿지 않는다. 나는 생물학적인 존재이면서 사회적인 존재이다. 생물학적인 나에서 삶의 의미를 추출한다면 아마도 진화생물학에서 주장하는 ‘종족 본능’이 최고로 추구해야 할 가치일 것이다. 그런데 왜 종족이 보전되고 융성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인간이 너무 많아서 지구상에 모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가?
사회적인 나에서 삶의 의미를 추출한다면 아마도 이웃과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서 절대적인 가치를 찾을 것이다. 사회의 복리를 높이는 데 기여하는 나의 행위에서 내가 사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궁극적인 답을 주지 못한다. 신에 귀의하여 모든 삶의 의미를 신에게서 찾는 것이 가장 쉬운 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신을 상실할 때 의지할 것은 주위의 이웃, 내가 속하는 사회밖에 없다.
어찌 생각하면 왜 사회가 발전하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가치가 되어야 할지에 의문이 든다. 인류가 멸망한다고 하여도 그만 아닌가? 자연 그 자체에는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의 기준이 없으므로 인류의 생존과 발전은 인간이 임으로 만들어낸 가치일 뿐이다. 결국 생물학적인 생존 본능만을 궁극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서구인들이 개인주의를 견지하면서 어떻게 신에게서 떠나서 삶의 의미를 찾을까? 아마도 헤매면서 살 것이다. 왜 사는지의 질문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하고, 정 떠오른다면 적당히 얼버무리고 뒤로 미루고, 일상의 번잡함에 묻혀서 살다가 가는 것이다. 편하게 사는 것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분히 바쁘고 벅차지 않겠는가?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삶이니 종교나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나중에 생각하는 것으로 하고 말이다. 이러한 주류에서 벗어난 행위를 하는 특이한 사람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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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지의 핵 에너지 특집호는 “실패한 꿈”이라는 머리기사로 시작한다. 핵 에너지는 인류의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있는 묘한 존재다. 화석 에너지는 조만간 고갈될 것임을 모두 알기에 대체 에너지를 찾으려 노력한다. 태양광, 풍력, 조력, 지열 에너지 등 환경론자가 선호하는 대안은 현재까지는 화석 에너지의 대체 수단으로 한계가 있다. 기술 수준이 낮아 비용이 많이 들거니와 무엇보다 산발적으로 소량의 에너지를 뽑아내는 방식은 현재의 산업 구조와 잘 맞지 않는다. 현재의 산업구조는 집중하여 대량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방식으로 체제가 잡혀있다. 반면 핵 에너지는 화석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집중적인 방식으로 대량의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으며 원료 확보가 용이하고 생산비가 저렴하다. 안전 문제만 아니라면 핵 에너지는 화석 에너지를 대체할 가장 이상적인 수단이다.
핵 에너지는 이상적인 에너지원이기에 저주를 받고 태어났다. 우주의 엄청난 에너지는 모두 핵 에너지이지만, 그 규모가 엄청나기에 인간에게 피해를 줄 위험성이 현재까지는 이익을 상쇄하고 있다. 핵 에너지 개발이 핵폭탄 개발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문제는 인류가 그렇게 엄청난 에너지원을 관리할 기술과 사회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핵 에너지관련 기술 발전이 느린 것은 이유가 있다. 핵 에너지를 연구한다고 하면 바로 핵폭탄을 연상하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려는 노력이 저지된다. 소수의 나라의 허가받은 기관이 아닌한 함부로 핵에너지를 연구하거나 새로운 방식을 시도할 수 없다. 사실 무서운 것일수록 피하기보다 그것을 잘 다루어 유용하도록 만든 것이 인류 발전의 역사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행착오와 아이디어가 결집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핵에너지 개발은 그러한 발전의 과정이 원천적으로 막혀있다.
사실 핵 에너지의 문제는 기술 못지않게 사회적인 문제이다. 아무리 무서운 것이라도 관리를 잘 하면 어느 정도는 쓸만하며, 휘험 요소를 모두 숙지하고 사회가 합리적으로 공평하게 분배한다면 핵 에너지 개발에 찬성할 사람은 훨씬 많을 것이다. 핵 에너지 개발의 과정에서 피해를 누가 분담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대부분의 사회는 이를 현명하게 처리하지 못한다. 에너지의 혜택은 힘 있는 사람이 누리면서 힘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떠않는 방식으로 처리되고 있기에 핵 에너지는 사회 갈등의 씨앗인 것이다. 북구의 나라들과 같이 이익과 위험을 사회전체가 합의에 따라 공동 분담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면 핵 에너지는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이다.
나는 솔직히 서구 환경론자의 주장에 그리 동조하지 않는다. 환경을 생각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자신들은 편안하게 살고 많이 소비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방식을 고민하는 것은 위선적인 태도이다. 자신의 소비를 줄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부를 나누어준다면 지구의 환경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미래의 에너지원인 핵 에너지를 포기하는 대신 환경친화적인 방식을 채택하려고 한다면 지금과 같이 풍요롭게 사는 서구인의 삶의 방식은 수정되어야 한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대양열이나 풍력을 주 에너지원으로 한다면, 그러한 설비 자재를 생산하는 데 훨씬 많은 자원을 소모해야 하며 온 산천은 태양광 집열판과 풍력 프로펠라로 뒤덮일 것이다.
"Small is Beautiful"이라는 철학을 정말 신봉하는가?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삶이 바람직하다는 이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대한다. 좀 더 잘 살고 싶고 좀 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 사실 일인당 소득이 4만불을 넘는 선진국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지금보다 조금 덜 풍요롭게 살아도 괜찮다. 그러나 세계 70억 인구 중 90%이상은 1만불도 안되는 소득으로 힘들게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 어느 정도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려고 한다면 엄청난 자원이 필요하다. 핵에너지의 엄청난 매력에 등을 돌릴 수 없는 이유이다. 이들을 서구인 수준으로 생활하도록 하려면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재의 기술과 사회체제로는 불장난에 가까운 것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문제를 해결해 가면서 핵에너지 개발에 좀더 투자해야 한다. 중국이 핵에너지에 몰입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엄청난 수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주기 위해 아무리 위험이 크더라도 핵 에너지의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도 핵 에너지 개발의 피해는 주로 힘없는 사람이 떠않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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