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이슬람 사원을 짓는 것을 지지하는 취지로 말한 것이 아니라, 미국은 여러 인종과 민족이 모인 다문화 사회이며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나라이므로 개인 소유지에 이슬람 문화센터를 짓는 것은 미국의 국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였을 뿐,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해명했다.
두가지 측면에서 오바마 발언에 대한 미국인들의 비판을 생각해 볼 수있다. 하나는 미국이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미국인이 제법 많다는 사실이다. 많은 보수주의 백인들은 미국이 유럽을 뿌리로 하는 기독교 백인의 국가이어야 하며, 다른 피나 문화가 섞여이는 것은 미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톤도 이런 사람 중 하나이다.
두번째는 오바마는 흑인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이름 속에 후세인이 있는 것을 두고
선거때 많은 미국 사람들은 오바마가 이슬람교도라고 생각했었다. 그가 기독교도라는 증거가 엄청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믿을 수없다고 말했다. 사실 그들에게 오바마가 기독교도인지 여부가 마음에 걸린 것이 아니라, 그가 흑인이면서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누리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성향은 정말 끈질기며 음험하기까지 하다. 정의, 형평, 사랑, 인권, 등 어떤 가치를 앞세워도 사람들은 자신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말로는 다른 구실을 내세우면서 반대하지만 마음의 밑바닥에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고집이 자리잡고 있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를 아무래도 자신의 지도자로 인정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사람이 미국 백인중에는 참 많다. 형편없는 흑인들이 주위에 득실 거리고 이들을 내려다보고 살면서 자존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똑 같은 피부색의 흑인을 존경할 수있겠는가? 경제위기 때문에 마지못해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용인하기는 했지만, 그가 크게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실패한 별볼일이 없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하는 백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이 오바마를 바라보는 마음속은 착잡하며 이율배반적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정치를 잘하고 경제를 일으켜 세운다면 자신도 좀더 잘 살게 될 것이나, 그의 성공은 흑인이 백인보다 더 잘 할 수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그다지 기쁘지 않다.
이슬람 교도를 자신과 같은 미국인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심리이다. 이들은 이슬람교도를 이등 시민으로 간주하며, 자유 평등이라는 미국의 국시가 그들에게는 적용될 수없다고 생각한다. 마치 과거 흑인 노예나 인디안에게는 미국의 헌법을 적용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은 자유 평등을 실현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처럼 말이다.
그런데 역사는 순환하는 것이라서, 이들 보수주의 백인들도 결국 소수자가 되는 날이 올 것이다. 백인들은 애를 많이 낳지 않으므로 아무리 이민을 막는다고 해도 유색인의 비율이 증가하는 것이며, 유색인이면서 성공한 사람이 늘면서 인종주의적 생각을 포기하는 백인들이 늘 것이기 때문이다. 백인이 아니고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동등한 미국인으로 대접받는 날은 빠른 시일내에 오지는 않겠지만, 미국에서 보수주의 백인의 위세가 갈수록 약해질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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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소개하는 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 올해 다섯달 동안 시장에서 거래된 책 중 8.5%가 전자책이었다고 한다. 앞으로 삼사년 내에 전자책 시장은 40%에 달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말 빠른 변화의 속도이다. 불과 15년전에만 해도 인터넷을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은 불과 10년전에 처음 나타났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인 페이스북은 이제 6년째이며, 트위터는 2~3년 밖에는 안된다. 블랙베리라는 스마트 폰이 몇년 됬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일반 사람이 전화기로 인터넷을 이용한 것은 이삼년전에 나온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일 것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빠른 변화에 적응할 수있을까? 대답은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더라도 과거 기술에 익숙한 사람은 과거의 기술을 계속 이용하는 관성을 지속한다. 생존의 위협 앞에서 마지못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지만, 아무리 해도 새로운 기술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생활하고 일하는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결국에는 새로운 기술을 익숙하게 사용하면서 성장한 새로운 세대가 이들을 대체하면서 새로운 기술의 잠재력은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나는 컴퓨터 1세대이다. 대학교때 처음으로 컴퓨터를 접했으며, 윈도우 이전 운영체제인 도스 프로그램을 가지고 많은 시간을 씨름했었다. 90년대 후반 홈페이지라는 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html언어로 직접 타이프 치면서 나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나 요즈음 이미지 중심의 컴퓨터 사용이나, 이동성 중심의 인터넷 활용이나, 일 이외의 용도로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하는 데는 친숙치 못하다. 먹고살기 위해 이러한 기술을 부지런히 쫒아가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끌리지 않는다. 나는 아무래도 문자 중심의 컴퓨터 사용, 책상에 앉아서 하는 인터넷 활용, 일을 하는 도구로서 컴퓨터와 인터넷 세대에서 벗어날 수없다. 그렇다면 현재 하고 있는 블로그는? 아무래도 일 쪽이다. 놀면서까지 컴퓨터 앞에 있고 싶지는 않기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도 10년 이내에 전자책이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변화 수용 속도는 정말 감탄할만 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착같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고 잘 이용하는 체 해야 할 것이다. 나도 조만간 전자책을 많이 읽게 되겠지만 얼마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일을 위해서라면 전자책도 마다하지 않겠지만, 놀면서 흥미로 읽을 때는 종이책을 고집하면서 살다가 죽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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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는 영어권 국가로서 수십만명의 외국 유학생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시장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영국 대학도 만만치 않은 수의 외국인을 받아들인다. 이들 나라에 학생을 보내는 송출 국가로는 중국과 인도가 다수를 점유하며 아시아와 중동 등 제 삼세계의 나라도 많은 유학생을 보낸다. 영국 대학의 걱정 중 하나는 과거에 자신의 교육을 소비하였던 나라들 가까이에서 지역의 유학생 수요를 흡수하는 경쟁자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지아, 등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국제적인 수준의 대학교에 유학하는 이 지역의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조만간 중국은 유학을 꿈꾸는 우수한 학생들을 자국의 대학에서 흡수할 수있는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어떻게 하면 자국에 더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 수있을까? 조셉 나이 교수는 미국의 힘을 소프트 파워에서 찾는 데, 과학 기술과 문화에서의 매력과 우위가 군사적인 우위보다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미국의 가장 큰 강점은 뭐니뭐니해도 과학과 기술에 있다. 인터넷, 컴퓨터, 자동차,휴대전화, 전기, 등 우리가 이용하는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미국에서 처음으로 발명되었거나 혹은 실용화되어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의 문제점을 흔히 지적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실용화시키는 능력에서 아직 미국을 따라갈 나라는 없다. 이러한 새로운 아이디어 생산의 중심에는 미국의 대학이 있는 것이다. 미국 대학의 연구소는 불이 꺼지지 않으며 계속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고 산업체에 공급하고 있다. 근래에 새로운 발견 발명은 대부분 미국 대학교의 연구소에서 시작된다. 미국 문화의 흡인력은 또 어떻고 말이다. 세계의 영화관이 미국 헐리우드 영화로 도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이 아마도 유일한 예외일 것이다.
사실 이들 나라에게 외국인 유학생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 이들이 공부하는 동안 돈을 뿌려주는 것은 물론, 이들이 매우 열심히 공부하기때문에 자국 학생에게도 자극이 되어 대학의 수준을 우수하게 유지하는 데 촉매제가 된다. 마라톤에서 페이스메이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와 국적의 외국인 유학생들이 캠퍼스에서 돌아다니면 대학교의 국제적인 분위기는 저절로 조성된다. 세계화와 함께 선진국 기업들은 국제적인 사업과 국제적인 경쟁에 많이 참여하게 되고 이 나라 학생들은 교육 과정 속에서 이러한 국제적인 소양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데, 외국인 유학생은 바로 이러한 교육 목적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자국에 돌아가면 자국에서 지도적인 자리를 차지하면서 미국 혹은 영국에 우호적인 의견과 생각을 전파하게 된다. 이들에게 익숙한 외국의 문물은 자신이 유학했던 나라일 것이므로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이 나라의 사례를 많이 언급하면서 사람들에게 이 나라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미국이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등으로 제삼세계의 똑똑한 학생이나 언론인, 공무원, 정치가 등을 자국에서 공부하도록 지원하는 데는 충분한 이유가 있다. 한국의 지도급 인사 중에 미국 정부의 돈으로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아마 소수일 것이다. 자비를 들여서 공부한 사람까지 포함한다면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은 거의 전부가 미국을 자신의 사고의 축으로 삼고 있다. 결과 한국에서 외국의 사례라고 하면 모두 미국을 인용한다. 어디 프랑스나 러시아의 사례를 언급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이들이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한다면 어떤 영화를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선호하겠는가? 프랑스 음식점이나 러시아 식당이 주위에 드문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지도자를 자국에서 공부시키는 데 엄청나게 많은 돈을 썼지만 그 몇배로 수익을 보장받는 투자를 한 것이다.
미국과 영국의 대학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산출되는 한, 세계의 젊은이들은 이들 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할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자국민보다 외국인 유학생이 더 똑똑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데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 약간 께름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똑똑한 외국 학생들에게 시민권을 주고 이들 나라에 남아서 계속 아이디어를 생산하도록 한다면 이들 나라의 대학과 산업은 계속 우위를 유지할 것이니, 사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외국학생이 본국 학생보다 더 잘하는 것이 위협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나라 사람 중 다수가 똑똑한 외국인이 들어와 좋은 직장을 선점하고 자신들은 밀려나서 싸구려 일자리에서 해메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영국이나 외국 유학생은 받아들이고 싶어하지만 이들이 자국에 남아서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려고 안달한다. 과거에는 박사를 따면 시민권을 쉽게 얻고 직장도 쉽게 구할 수있었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사실은 이들 덕분에 선진국 국민이랍시고 그나마 잘 살고 있는 것인데도 말이다. 똑똑한 외국인 유학생이 없었다면 실리콘 밸리는 생겨날 수없었으며, 근래에 눈만 뜨면 새로 들려오는 인터넷 세계의 새로운 아이디어들도 미국의 몫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할만큼 소프트 파워가 있는가? 우리나라의 대학은 똑똑한 학생들을 자국의 대학에 유치할만큼 실력을 쌓아가고 있는가? 혹시 조만간 싱가포르나, 홍콩이나, 중국으로 유학가는 학생들이 줄을 서서 공항을 빠져나가지는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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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소개하는 기사는 미국 남동부의 대도시인 애틀랜타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밀고 싸우다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미국에서 사람들이 싸우다 다치고 죽는다는 이야기는 기사거리도 안되는데, '제삼세계 미국' (Third World America)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읽어보니 정말 아프리카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벌어졌다.
요지인즉 정부에서 주는 주택보조수당(Housing Voucher)에 지원하기 위한 지원서를 나누어주기로 했는 데 이틀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여 당일에는 13000명이나 모였다는 것이다. 30도가 넘는 더위 속에 그늘하나 없는 땡볓아래 주차장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졸도한 사람이 속출하는가 하면 서로 먼저 받으려고 싸움이 벌어져 경찰과 소방관이 출동하고 난리가 났다.
궁금한 것은 돈이나 물건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지원서 즉 종이쪼각 한장을 받으려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이틀 전부터 줄을 서야 했는가이다. 그들이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도 생활형편 등을 심사하여 수혜 여부를 판단할텐데 말이다. 당국자의 말인즉 사실 주택보조수당 재원이 형편없이 적어 신청한 사람의 대부분은 신청서를 제출하여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이 바보라서 이틀전부터 와서 무턱대고 줄을 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과거 경험으로 볼 때 신청서를 터무니 없이 부족하게 나누어줄 것이 뻔하기에 그리하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복지 수당은 컴퓨터로 신청자의 신상을 조회하여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과거에 얼마나 엉터리 같은 방식으로 수혜자를 선정하였으면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도 아니고 신청서 용지를 받기위해 그렇게 이틀씩이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일까? 그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아프리카 사람들이 구호물자를 받기 위해 며칠이나 걸어와서 경찰의 제지하에 아우성치면서 밀가루를 받는 모습과 중첩된다. 대부분이 흑인인 이들의 처지는 노예였던 그들의 선조에게 대했던 백인 주인의 태도를 연상케 한다.
미국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를 받으려면 인간적인 수모 쯤은 참아야 한다는 것을 나도 겪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 살 때 한번은 보건소에 방문해야 했는데, 사방에서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신청서만 쓰고는 막연히 기다리는 상태에서 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이 반나절 이상을 지냈었다. 중류층이 이용하는 시설에서 흔히 보는 번호표 발급기와 현재 서비스 받는 사람이 몇 번인지를 알리는 전광판을 설치하는 데 큰 돈이 드는 것은 아닐텐데. 버스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던 경험은 또 어떠한가.
미국의 정치인 중에는 가난한 사람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제법 많다. 사람들은 자신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며, 또한 사람들에게 성공을 향한 강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해 사회의 낙오자들에게 어줍지 않은 동정을 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참으로 가혹한 사람들이다. 여하간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절대로 가난한 흑인으로 태어나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가난한 달동네가 훨씬 살기 좋다. 물론 용산 참사같은 사건도 때때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한동안 미국 사람을 만나면 어느 무더운 여름날 애틀랜타의 주차장 땡볕 아래에서 종이조각 한장을 얻기 위해 이틀동안이나 줄을 서야 했던 가난한 흑인들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불쌍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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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서도 역시 단순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행복을 높이는 사례임을 처음에 지적하면서, 서구의 물질중심주의적 행복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과시적인 소비나 불필요한 소비가 생활을 더 복잡하게 하며 행복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가 어려워져서 무턱대고 많이 소비하는 것이 힘든 상황에서 내적인 성찰을 통해 행복을 추구하려는 의도가 읽혀진다. 어느 정도 물질적으로 기본적인 것이 충족된 상태에서 추가로 물질을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은 행복의 증진에 별반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많이 검증되었다.
사실 문제는 물질적인 만족이 아니다. 고급 승용차를 타는 것은 물질적으로 더 편하자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지위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하다. 명예, 지위 등과 같이 남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는 정말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옛 성현들은 명예나 지위에 초연하기를 권고하지만, 과연 그사람 자신이 정말 그렇게 살기를 원했는지 의심스럽다. 사회적인 성공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삶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냐. 물론 소를 모는 목동이나 밭을 가는 농부를 칭송하는 시도 있기는 하다마는. 서구의 가치관은 젊은 시절에 야망을 품고 성공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라지 않는가? 사회적으로 별볼일 없는 사람으로 살면서 행복하라는 것은 도인이 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아무나 넘볼 수없는 달관의 경지이다. 체념만으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별로 달관의 경지를 크게 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꼭 행복 추구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지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일을 벌리지 않으면 무엇에 연루되어 골치를 썩일 일도 없겠지만 이루는 것도 없기에 바람직하지는 않다. 집착하여 열심히 매진하는 것이 없다면 실패할 까닭도 없지만 얻는 것도 없다. 크게 불행해 지지만 않는다면 많은 일을 이루고 여러 사람과 엮이면서 살고 싶다. 방글라데시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하여도 부럽지는 않다.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다고 하여도 이웃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많은 고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이룬 것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 때때로 너무 힘들 때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쉬운 길을 가고 싶은 유혹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물질적인 소비보다는 작지만 뜻깊은 체험이 행복을 증진시킨다고 한다. 물론 어느 정도 물질적인 필요가 충족된 다음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좋은 사람과 기억에 남을 일을 하거나 혹은 자신을 무엇에 몰입하면 물건을 소비하여 얻는 행복보다 더 크고 오래 기억될 수있다고 한다. 여행과 같이 돈이 드는 체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면 큰 돈 들지 않으면서 뜻있는 경험도 주위에 얼마든지 많다. 예컨대 요즈음 나에게는 집가까이에 개천을 산책하면서 하늘과 풀을 보고 물소리를 듣고 얼굴을 지나치는 바람을 느끼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경험이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함으로서 행복을 얻는 것이 어렵다면 일상이 허락하는 대로 자신에게 뜻있는 자잘한 체험을 자주 찾아 나설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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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장인 생산 체제의 특징은 생산 기술의 향상이나 사업 확장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매출을 늘리려고 혹은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중세의 길드 체제와 유사하게 소수의 명품을 생산하면서 평생 서로 공동체 구성원으로 화목하고 안정된 생활이 계속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세계화로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들의 안정된 방식이 지탱하기 힘들어진 것이다.
하루도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의 생활에서 볼 때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일견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체제의 약점은 낮은 생산성 때문에 많은 사람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데 있다. 이러한 생산 방식은 높은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부유층을 위해 생산하며, 이미 길드 집단 내에 있는 사람에게만 고용을 보장한다. 많은 보통 사람의 물질적인 필요나 고용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폐쇄된 방식이다. 사실 장인 생산 방식의 명품 생산은 대중의 수요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니 이러한 논의가 맥락에 맞지 않는지는 모른다.
사실 장인 생산 방식이 위기에 놓여 있다는 소식은 별로 급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경제 전체가 마치 소멸해 가는 장인 생산 방식으로 운용된다면 문제이다. 이탈리아 경제 전체가 기득권에 안주하여 혁신과 성장을 추구하지 않고 정체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기업은 규제의 혜택을 계속 누리려고 하고, 기존에 고용된 사람은 지위를 결사적으로 사수하려 하고, 기존에 복지 수혜자는 이것을 절대 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결과 새로운 기업과 새로운 근로자는 시장 진입이 차단되고 일자리를 구할 수없다.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율이 40%를 넘어선다는 소식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듣는 이야기이다. 이런 기업과 이런 경제는 생산성이 후퇴하면서 함몰할 수밖에 없다.
명품과 장인 생산도 좋지만 평민의 아들인 나에게는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가져오는 생산 방식이 더 좋다. 기득권을 옹호하는 공동체적 고용보다는 집단 밖에 위치한 사람에게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기회가 제공되는 개방된 체제를 선호한다.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은 현재의 상태를 보호하고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겠지만, 아직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은 혁신과 성장을 통해 풍요와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꿈꾼다.
장인 생산 방식은 전통의 향기를 풍기지만 전통적인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경쟁에 노출되는 생활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경쟁이 없이 끼리끼리 해먹으면서 외부인에게는 아예 기회를 차단하는 것보다는 낫다. 누구나 안정을 희구하지만 향상이 없는 정체는 환영하지 않는다. 한해가 다르게 급박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살면서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 신기루를 쫒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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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카우보이의 나라이다. 선과 악은 분명히 구분되며 악한은 반드시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원칙에 투철하다. 먹고 살기 위해 혹은 상황에 몰려서 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으리라는 동정적인 시각은 환영받지 못한다. 범죄자도 자신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며, 자신도 부모를 잘 못 만나거나 불운이 겹치면 죄를 저질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미국적이지 않은'(unamerican) 불온한 사상으로 공격받기 십상이다. 많은 지역에서 판사를 주민 투표로 선출하는 데, 이들은 범죄자에 대해 보다 더 가혹하게 처벌하여 안전을 가져오겠다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남발하기에 범죄에 대한 처벌 수준은 갈수록 높아지며 범죄자에 대해 관대한 재판관은 설 자리가 없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사람을 감옥에 가두어 두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수감자 한명당 18,000-50,000달라의 돈이 들어간다고 한다. 이 돈을 범죄의 원인이 되는 빈곤과 무지를 개선하는 데 사용한다면 더 안전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되련만. 미국 사람들은 무지와 가난을 개선하는 데 쓰는 돈은 매우 아까워하면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담을 좀더 높이 쌓고 위반자에게 좀더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데 사용하는 돈은 펑펑 쓴다.
2001년 9.11 사태로 미국인이 테러의 위험에 노심초사하면서 아프가니스탄과 이어서 이라크를 침공하여 그 전쟁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전쟁에 퍼붓고 있는 천문학적인 돈의 삼분의 일이라도 그나라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썼다면 미국인은 훨씬 안전한 세계의 지도자로 칭송받으며 살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전쟁을 치루면서 지출한 돈의 많은 부분은 미국의 군인과 미국의 전쟁관련 회사와 그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으니까, 미국인의 입장에서는 헛된 낭비는 아닐 수도 있다. 엄청난 수의 범죄자를 잡아들이고 재판하고 가두는 데 쓰인 돈 역시 그러한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안전 관련 사업을 흥하게 하는 데 투입되었으니까 반드시 공중으로 사라진 돈은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범죄자를 잡아 가두어도 거리에는 항시 새로운 범죄자들이 출현하고, 그렇게 많은 돈을 써서 전쟁을 해도 미국인의 안전은 테러의 위협에 변함없이 노출되며, 그렇게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쓰고도 사회가 살기 좋은 쪽으로 개선되지 않는 데 있다. 미국의 의료 비용이 다른 나라의 1.5~2배에 달하지만 미국인의 건강 수준은 훨씬 열악한 것처럼, 미국 사회의 안전 보장 비용도 다른 나라의 몇배를 쓰지만 훨씬 안전하지 않은 사회인 것을 볼 때, 미국 사회의 어떤 측면은 모방해서는 안될 나쁜 모델로 연구하고 가르침을 얻을 가치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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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논을 이용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어서 지금은 일본 전체에 유명하고 급기야 뉴욕 타임즈에까지 사진과 함께 기사가 실리고, 그 기사가 사람들이 많이 보는 기사로 선정되었다. 논의 벼에 색을 입혀서 논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처음에는 두개의 색의 벼로 시작하여, 유전공학의 기술을 응용하여 이제는 여러 개의 다양한 색을 구사하여 보다 현란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은 새로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한다. 지도력이 있는 영웅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중요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비록 처음 창안한 사람에게 큰 돈을 가져다 주지 못하며, 후에 오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다듬어져야만 무언가 가치있는 것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인류의 생산성을 꾸준히 높여와 오늘 우리가 인간답게 살게 된 비결은 수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계속 만들어낸 덕택이다.
부동산을 사고 팔면 큰 돈을 벌 수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은 그것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고 해도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반면, 남의 호주머니에서 내 호주머니로 돈을 이전시키는 데 성공하거나, 혹은 자신의 뜻대로 다른 사람들을 좌지우지 한 실력자도 별로 의미있는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서 아무리 떵떵거리고 호의호식을 해도 내 눈에는 별로 존경할 구석이 없다. 남들이 피땀흘려 만든 것을 가지고 마치 자신이 한 양 생색을 내면서 밥만 축내는 무리들이다.
심지어는 도덕보다도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 도덕적인 사람은 현재를 잘 사는 것을 강조하지만,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사람은 현재보다 더 잘 살게 되는 것을 꿈꾼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의 성격에 따라 중요시하는 가치에 차이가 있다. 자신의 일에서 규율과 순종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자식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규율의 중요함을 역설하는 반면, 일에서 아이디어가 핵심인 사람은 아이디어를 다른 어느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 과연 나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질문하면서 오늘도 머리를 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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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영어로 밥을 먹고 살지만,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외국인으로서 실용적인 용도에서이다. 그러나 현실은 영어 구사력이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서서 지위의 상징으로 기여하기도 한다. 대체로 국제적인 업무를 하는 직업은 보수나 사회적인 지위가 높으므로 영어 구사력과 사회적 지위가 함께 하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국어를 잘 못하면서 영어를 잘 하는 것을 더 높이 쳐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영어를 잘 못하는 주변 한국인에 대해서는 콧대를 세울 수있는 수단일지 모르지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에서는 이방인이 자신들을 모방하는 아류 정도로 취급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국제화되는 것은 꼭 필요하지만, 영어권 국가의 이등 시민 쯤으로 인정되기를 기대해서야 말이 되겠는가?
약소국의 시민으로 태어나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거래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어쩔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모국의 언어도 배우면서 강대국의 언어를 동시에 익혀야 하는 힘든 운명을 타고 났다. 미국인은 외국말을 전혀 배우지 않고도 잘 살아갈 수있는데 말이다. 미국의 지도자가 외국어를 하는 것을 본적이 없으나 한국의 지도자가 외국에 나가 힘들게 영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접할 때 마다 마치 나의 모습을 보는 듯 동병상련의 심정을 느낀다.
그러나 강대국의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말을 잊어버린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일이며, 장기적으로는 그 나라의 이등 시민으로 편입되는 길이다. 단기적으로는 자신의 나라에서 주변사람들보다 상위의 지위를 획득하는 길이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어릴때부터 미국으로 자식을 유학보내고 혹은 외국인 학교에 보내면서 한국말 보다 영어를 더 유창하게 하도록 하는 전략이 그릇된 방식은 아닌듯하다. 단지 성공 목표가 너무 낮으며 주변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는 하류의 전략이라는 것만 빼놓으면 말이다. 그렇게는 큰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자신만 잘먹고 잘사는 성공한 사람을 양성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람으로 넘쳐난다면 살기 힘든 사회가 될 것이다. 그 속에서 내 자식은 상대적으로 잘먹고 잘산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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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북,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는 미국인의
삶에서 중요한 일부로 자리잡았다. 페이스 북이 생긴지 6년 남짓밖에 안 됐는 데 가입자가 5억 명을 돌파했다고 하며, 수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트위터가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확산 속도가 너무 빠르기에 이것이 일시적인 유행인지 아니면 중요한 변화를 의미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사람들은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고 상대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자신의 사이트에 사진을 올리고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소상히 이야기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서로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를
만족시키려 한다는 점에서 온라인 행위는 오프라인의 만남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사람들은 막연한 외로움 내지는 삶의 권태에서 무언가 흥미 있는
것을 찾아 온라인 공간을 기웃거린다.
온라인 행위는 오프라인의 만남과는 달리 제한이 없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의 정보가 노출되며, 특정 상대와의 관계가 종료된 이후에도 내가 상대에게 준 나에 관한 정보가 온라인 공간 어딘가에 남는다.
남의 사생활을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사실 우리들 모두-에게 온라인 공간은 천국과 같은 곳이다.
만일 온라인 공간에서 한 나의 행위가 지워지지 않고 일생동안 나를 따라다닌다면 어떻게 될까? 온라인 공간은 무한한 저장 능력을 가지므로 허황한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하는데 이 실수가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으로 검색하면 언제나 튀어나온다면 정말 문제이다. 과거 나의 어리석은 사진이나 어리석은 말실수가 나와 관계된 사람의 손에 쉽게 들어가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내가 온라인 공간에 올린 정보는 물론, 어디에 방문해서 무엇을 보았는지가 어디엔가 저장된다는 사실은 생각하기 싫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동시에 자신을 감추고 싶어하는 모순적인 욕구를 지닌다는
점이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만, 또한 남들이 나에 대해 상세히
아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온라인 공간에서 내가 행한 다양한 활동을 짜맞추면 내가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 나의 모습이 되지는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온라인이 우리 삶 속에 깊숙이 파고들수록 온라인 공간에 저장되는 나의 삶의 단편은 증가할 것이다. 앞으로 온라인 공간에서 자신을 감추기란 점점 더 힘들 것이다. 오프라인 활동을 할 때, 온라인에 저장된 나의 기록은 항시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날 때나, 취업을 하려 할 때나, 배우자를 구할 때나 말이다.
혹자는 이것이 한단계 더 수준이 높은 신용사회로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있다. 각자의 삶을 더 잘 관리해야 하며, 상대의 진면목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다. 서로에게 투명한 사회가 서로를 잘 모르는 불투명한 사회보다 더 낫다고 순진하게 주장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일은 그리 단순하게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온라인에서 자신의
과거 기록을 관리해주고 원치 않는 정보가 검색되는 것을 막는 서비스가 최근 미국에서 성행하고 있다고 한다. 미래 사회에서 돈 없는 사람의 과거는
완전히 까발려지지만 돈 있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감출 수 있다. 정보사회에서도 돈의 힘은 여전히 위세를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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